깊이 생각하다
katanoevw
지각하다, 보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카타노에오는 카타($2596)와 노에오($3539: 지각하다, 인지하다, 생각하다)에서 유래했으며, 노에오($3539)의 의미를 강화시키며, '어떤 목적에 전심을 돌리거나 몰두하다'를 의미한다.|이 단어는 감각적인 활동에 대해 사용될 수도 있겠지만, 비판적인 검사를 나타내기도 하며, 헬라 문학에서는 숙고 또는 연구를 통해 이해한다는 개념을 지닌다. 따라서 이 단어는,||(a) '지각하다' perceive, '주목하다' note(Xenoph.), 보다 see.|(b) '곰곰히 생각하다, 연구하다, 검사하다, 시험하다'(Athen.).|(c) '깊이 생각하다, 알게되다, 파악하다, 깨닫다, 이해하다'(Hdt., Thuc., Plat.)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카타노에오는 70인역본에서 약 30회 나오며, 히브리어 라아(보다, 사 5:12; 출 19:21), 나밧(바라보다, 시 10:14[9:35]; 22[21]:17, 블레포[바라보다]의 동의어)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깨닫다' notice, '주목하다' regard를 나타낸다. 또한 카타노에오는 차파(감시하다, 지켜보다)를 번역하여, '엿보거나 지켜보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카타노에오는 신약성경에서 14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신약성경에서 이 단어의 강조점은 시각적 영역에 놓여 있다.||(a) 카타노에오는 눈으로 지각하는 것(마 7:3=눅 6:41; 행 27:39), 대상을 주의깊게 자세히 보는 것(약 1:23 이하), 사실이나 과정을 관찰하거나 고찰하는 것 - 자연적인 것이든 기적적인 것이든 간에-을 나타낸다(눅 12:24; 눅 12:27; 롬 4:19; 행 7:31 이하; 행 11:6). 이러한 감각적인 지각 또는 주시는 중요한 종교적 혹은 윤리적 통찰을 얻는 접촉점이 될 수 있는 인상(감명)을 전달한다.|지적인 지각은 눅 20:23에서 나타난다: "그 간계를 아시고".||(b) 히브리서에서 카타노에오는 명령적으로 사용되었다. 여기서 이 동사는 독자들에게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과 관련된 의무들을 부과한다: 히 3:1 이하("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에서는 구원의 중보자를 바라보고 그의 모범적인 도덕적 행실에 주의 집중할 의무를, 히 10:24("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에서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도덕적 표시를 나타낼 수 있도록 서로 서로 형제와 같이 관심을 가질 의무를 부여한다.||(c) 눅 11:42, "화 있을찐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를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아니하여야 할찌니라". Jut. Dial 17. 4에서는 카타노에오를 '~에 의하다'는 의미로, 따라서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공의에는 주의하지 않는도다'라고 번역한다.|(참조: G. Harder; Walter Bauer; J. H. Thay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