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해설 183 페이지 > 기독정보닷컴

폐를 끼치다
katanarkevw
~에 무거운 짐이 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카타나르케오(Hippocr.)는 카타($2596: ~에 대하여)와 나르카오(%810: 무감하게 되다, 마비되다)에서 유래했으며, '마비되게 또는 무감각해지게 하다', 자동사로 아무개에게 손상을 입혀, '마비되어 있다, 비활동(작동) 중이다', '~을 무겁게 누르다(압박하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카타나르케오는 신약성경에서 3회 나오며, '무거운 짐이 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고후 11:19; 고후 12:13; 고후 12:4).|(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카타뉴오
kataneuvw
~에게 신호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카타뉴오(Homer 이래)는 카타($2596)와 뉴오($3506: 고개를 끄덕이다, 손짓으로 부르다)에서 유래했으며, '머리나 고개를 끄덕여 신호하다, ~에게 신호하다'이며, 이것은 고갯짓 또는 신호에 의하여, 아무개가 타인이 자기에게 해 주기를 원하는 것을 그에게 표시하는 것이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카타뉴오는 신약성경에서 눅 5:7에 한번 나온다: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를 손짓하여 와서 도와달라 하니 저희가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여기에서 카타뉴오는 고개짓 또는 신호로 아무개가 타인이 자기에게 해주기를 원하는 것을 그에게 표시한다는 의미를 지닌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깊이 생각하다
katanoevw
지각하다, 보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카타노에오는 카타($2596)와 노에오($3539: 지각하다, 인지하다, 생각하다)에서 유래했으며, 노에오($3539)의 의미를 강화시키며, '어떤 목적에 전심을 돌리거나 몰두하다'를 의미한다.|이 단어는 감각적인 활동에 대해 사용될 수도 있겠지만, 비판적인 검사를 나타내기도 하며, 헬라 문학에서는 숙고 또는 연구를 통해 이해한다는 개념을 지닌다. 따라서 이 단어는,||(a) '지각하다' perceive, '주목하다' note(Xenoph.), 보다 see.|(b) '곰곰히 생각하다, 연구하다, 검사하다, 시험하다'(Athen.).|(c) '깊이 생각하다, 알게되다, 파악하다, 깨닫다, 이해하다'(Hdt., Thuc., Plat.)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카타노에오는 70인역본에서 약 30회 나오며, 히브리어 라아(보다, 사 5:12; 출 19:21), 나밧(바라보다, 시 10:14[9:35]; 22[21]:17, 블레포[바라보다]의 동의어)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깨닫다' notice, '주목하다' regard를 나타낸다. 또한 카타노에오는 차파(감시하다, 지켜보다)를 번역하여, '엿보거나 지켜보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카타노에오는 신약성경에서 14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신약성경에서 이 단어의 강조점은 시각적 영역에 놓여 있다.||(a) 카타노에오는 눈으로 지각하는 것(마 7:3=눅 6:41; 행 27:39), 대상을 주의깊게 자세히 보는 것(약 1:23 이하), 사실이나 과정을 관찰하거나 고찰하는 것 - 자연적인 것이든 기적적인 것이든 간에-을 나타낸다(눅 12:24; 눅 12:27; 롬 4:19; 행 7:31 이하; 행 11:6). 이러한 감각적인 지각 또는 주시는 중요한 종교적 혹은 윤리적 통찰을 얻는 접촉점이 될 수 있는 인상(감명)을 전달한다.|지적인 지각은 눅 20:23에서 나타난다: "그 간계를 아시고".||(b) 히브리서에서 카타노에오는 명령적으로 사용되었다. 여기서 이 동사는 독자들에게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과 관련된 의무들을 부과한다: 히 3:1 이하("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에서는 구원의 중보자를 바라보고 그의 모범적인 도덕적 행실에 주의 집중할 의무를, 히 10:24("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에서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도덕적 표시를 나타낼 수 있도록 서로 서로 형제와 같이 관심을 가질 의무를 부여한다.||(c) 눅 11:42, "화 있을찐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를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아니하여야 할찌니라". Jut. Dial 17. 4에서는 카타노에오를 '~에 의하다'는 의미로, 따라서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공의에는 주의하지 않는도다'라고 번역한다.|(참조: G. Harder; Walter Bauer; J. H. Thayer).
카탄타오
katantavw
이르다 come to, 도달하다 arrive at.||#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카탄타오(Polyb., Diod.)는 카타($2596: 에 대하여, 맞서서)와 안타오(%880: 맞은 편에서 오다, 정면으로 만나다)에서 유래했으며, 문자적으로 '모임에 내려오다'를 의미하였으나 보편적 의미는 단순히 '목표에 이르다(도달하다)'이다. 목표는 정해지고 목적은 결정되며, 따라서 이 단어는 이미 정해진 목표를 만나는 것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카탄타오는 70인역본에서 5회 나온다. 카탄타오는 문자적인 의미로 예루살렘이나 두로'에 가다'(마카베오이서 4:21, 44)이다. 그러나 이 단어의 비유적인 의미는 대제사장의 지위에 이르다 또는 인간의 죄가 막중한 분량에 이르다(마카베오이서 4:24; 6:14)이다. 삼하 3:29에서는 이 단어가 히브리어 훌('~에 돌아가다')의 역어로, 여호와께서 요압의 머리에다 피흘린 죄를 갚으실 것이라는 내용에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카탄타오는 신약성경에서 13회 나오며, 사도행전과 바울 서신에만 사용되었다.||(a) 카탄타오는 '외적인 목표에 이르다(도달하다)'를 의미한다. 더베와 루스드라(행 16:1), 에베소(행 18:19; 행 18:24), 기오(행 20:15), 돌레이(행 7:7), 가이사랴(행 25:13), 뵈니스(행 27:12), 레기온(행 28:13)에 이른 것을 나타낸다. 사도행전에서 카탄타오의 요점은 여행의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을 나타낸다.||(b) 카탄타오는 '사람을 위해 정한 목표에 이르다(도달하다)'를 의미한다.|① 행 26:7에서 열 두 지파는 약속에 도달하려는 소망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겼다. 하나님은 그의 말씀과 행사로 목표를 세우시며, 목적이나 목표없이 무슨 일이든지 하시지 않으신다. 믿음으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그것으로 정한 목표에 소망을 둔다.||② 빌 3:11에서 바울은 부활에 이르려는 목적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고난에 함께하며 그의 죽으심을 본받는다. 기독교인의 삶의 궁극적인 목표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는 것이다.||③ 엡 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리니". 여기에서 공동체의 목표는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믿음과 지식에 있어서 하나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 다시 하나님은 목표를 정해주셨는데, 그 목표의 내용은 그 일치 속에서 그리스도를 닮는 것이다. 사도행전 26장과 빌립보서 3장에서처럼 그 목표는 종말론적이다. 그러나 그 목표는 또한 말씀의 사역이라는 임무를 부과한다. 이러한 일치는 성숙 및 온전성과 완전과 연관되어 있다. 개인들은 공동체와 더불어 이러한 목적에 참여한다. 다시 말하면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교회를 하나되게 하는 사랑 안에서 성숙하는 것, 견고한 믿음을 가지는 것 그리고 성장하는 것과 밀접하게 과련되어 있다(참조: 엡 4:14 이하).||④ 고전 10:11,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여기서는 약간 다른 용법이 나오는데, 바울은 옛 시대의 종말과 새 시대의 여명이 우리에게 다가온다고 말한다. 그러나 여기서 다시 우리는 목적론적이고 종말론적 의미를 지닌 하나님의 행위를 대한다. 세상 끝에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희생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이 세상에 나타나셨다(참조: 히 9:26). 이 움직임은 하나님에 의하여 그 궁극적인 목표를 향하고 있으며 우리와 함께 이 움직임은 이제는 그 목적을 달성한 것이다. 이 사상에는 말세를 여신 그리스도와 함께 새 세상의 시대가 시작되었으며 사물의 질서가 확립되기 시작했다는 확실함이 포함되어 있다. 분명히 이것은 믿는 신자에게만 나타날 것이다.||⑤ 고전 14:36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교회에 이르렀다고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난 것이냐 또는 너희에게만 임한 것이냐".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과 함께 시작되지도 않았고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유일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상기시켜 준다. 그러므로 그들은 다른 교회들이 하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하며 따라서 그들 자신의 행위를 검토해 보아야 한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O. Michel; W. Mundle).
혼미한
katavnuxi"
무감각의 심령||#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카타뉙시스(Cyrillus of Scyth.)는 카타뉫소($2660: 꿰뚫다, 꿰찌르다)에서 유래했으며,||(a) '찌름, 뚫음',|(b) '극심한 슬픔 또는 비애',|(c) 따라서 '마음의 무감각이나 마비, 무감각의 심령'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카타뉙시스는 70인역본에서 2회 나오며, 사 29:10에서 타르테마(8639: 깊은 잠)을 번역하여 '깊은 잠의 영'을 나타내며, 시 60:5에서 타르엘라(8653: 비틀거림, 휘청휘청 걸음)을 번역하여 그런 의미를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카타뉙시스는 신약성경에서 롬 11:8에 한번 나온다: "기록된바 하나님이 오늘날까지 저희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으니라". 선택된 자들을 제외한 이스라엘 백성의 완악함은 하나님이 하신 일이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무감각의 심령, 곧 마비의 심령을 주셨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H. Greeven).
카타뉫소
katanuvssw
꿰찌르다, 찌르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카타뉫소는 카타($2596)와 뉫소($3572: 꿰찌르다, 찌르다)에서 유래했으며, '꿰찌르다, 꿰뚫다', 비유적으로 '마음에 예리한 고통을 주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카타뉫소는 70인역본에서 19회 나오며, 히브리어 다맘(1826a: 말을 못하다, 침묵하다)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잠잠하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레 10:3; 시 4:4; 시 30:12 등).||#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카타뉫소는 신약성경에서 행 2:37에 한번 '마음에 찔리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그들은 통렬한 슬픔과 후회로 마음이 찔렸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능히(~) 하다
kataxiovw
가치있다고 보다 deem worthy, 합당하다고 생각하다 consider worthy.||#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카탁시오오(Aesch. 이래)는 카타($2596: ~에 대하여, ~에 따라서)와 악시오오($515)에서 유래했으며, 강의적으로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다, 합당(적당)한 것으로 여기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카탁시오오는 신약성경에서 4회 나오며, '합당한 것으로 여기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눅 20:35; 눅 21:36; 행 5:41; 살후 1:5). 이런 구절에서 카탁시오오로 표현되는 것은 구원의 선물을 받을만한 것이 되지 못한다.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가치는 인간이 그리스도의 말씀에 거하여 그 말씀에 복종하는가에 따라서 결정된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E. Tiedtke).
밟히다
katapatevw
짓밟다, 멸시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카타파테오(Homer 이래)는 카타($2596: 아래로, ~에 대하여)와 파테오($3961: 밟다)에서 유래했으며, 파테오($3961)의 강의형이며,||(a) '짓밟다' tread, down, trample(Hdt.).|(b) 비유적으로 '모욕적으로 대우하다, 경멸하다, 멸시하다'(Plat. Leg.)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카타파테오는 70인역본에서 약 50회 나오며, 포도를 밟는 것(삿 9:27), 토기장이가 진흙을 밟는 것(사 41:25), 성전을 유린하는 것(사 63:18), 사자들과 독사들을 밟는 것(시 91:13) 등을 나타낸다. 슥 12:3은 짓밟음과 조롱이 결합되어 있다. 겔 34:18에서 악한 자들이 짓밟는다고 할 때는 이들의 거만함이 암시되어 있다(겔 34:18). 시편 기자들은 자기를 짓밟으려는 당당한 적들과 마주하고 있다(시 7:5; 시 56:1-2; 시 57:3).||#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카타파테오는 신약성경에서 5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카타파테오는 '발 아래 밟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① 마 5: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② 마 7:6,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③ 눅 8:5, "씨를 뿌리는 자가 그 씨를 뿌리러 나가서 뿌릴쌔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밟히며 공중의 새들이 먹어버렸고".|④ 눅 12:1, "그 동안에 무리 수만 명이 모여 서로 밟힐만큼 되었더니 예수께서 먼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외식을 주의하라".||(b) 카타파테오는 히 10:29에서 '모욕적으로 대우하다, 멸시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하물며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가장 심한 형벌은 하나님의 아들을 모욕적으로 대우하여 부인하고 멸시하는 자들이 받을 것이다.|(참조: H. Seesemann).
안식
katavpausi"
휴식 rest, 휴식처 place of rest.||#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카타파우시스(Hdt. 이래)는 카타파우오($2664)에서 유래했으며,||(a) 능동적으로 '쉬게함', 바람을 가라앉히는 것, 직위를 해제하는 것에 대해,|(b) 수동태로 '쉼, 휴식, 안식'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카타파우시스는 70인역본에서 15회 나오며, 누아흐(쉬다, 민 10:36), 노아(쉬다, 대하 6:41), 마노아흐(휴식처, 대상 6:16), 메누하(휴식처, 신 12:9; 삿 20:43; 왕상 8:56; 시 95:11; 시 132:14; 사 66:1); 아훗자(재산, 레 25:28); 샤바트(쉬다, 출 34:21)를 번역한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카타파우시스는 신약성경에서 9회 나오며, '안식'이란 의미로 사용되었다.||(a) 행 7:49(사 66:1에 근거)에서 카타파우시스는 하나님의 안식, 즉 하나님이 그의 거처를 정하신 곳을 가리킨다: "주께서 가라사대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뇨".||(b) 히 3-4장(참조: 시 95:11)에서 카타파우시스는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에게 주시는 안식(또는 안식처)을 가리킨다. 구약성경의 약속이 모세를 넘어 그리스도를 지시하고 있는 것처럼 창 2:2에서 하나님의 안식은 여호수아와 다윗을 넘어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이 그들의 믿음을 굳게 지킬 경우 도달하게 될 궁극적인 안식을 가리킨다(히 4:7-히 4:8).|(참조: J.H.Thayer; O.Bauernfeind).
안식을 주다
katapauvw
쉬다, 안식하다, 멈추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카타파우오(Homer 이래)는 '그치게 하다, 정지시키다'라는 모든 종류의 조건과 행위를 가리키며, 다음의 의미를 지닌다.||(a) '끝내다, 예방하다', 질병을 예방하고, 신들의 진노를 끝내는 것에 대해 사용되었다.|(b) 사람에 대해 언급할 경우에, '제지하다, 해고하다, 죽이다'.|(c) '어떤 사람을 고통을 그치는 지점에 인도하다, 안식을 주다'.|(d) '그치게 하다, 그치다, 휴식 또는 안식하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카타파우오는 70인역본에서 약 75회 나오며, 16개의 히브리어 단어들을 번역하는데 그 중 누아흐를 가장 많이 번역한다. 카타파우오는 70인역본에서 하나님의 진노를 '끝내다'(거두다)(시 85:3), '편안하게 하거나 안식을 주다'(출 33:14; 신 3:20), '쉬다'(창 8:22), '숙박하다'(삿 18:2) 등의 의미를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카타파우오는 신약성경에서 4회 나오며, 다음의 의미를 나타낸다.||(a) 행 14:18에서 카타파우오는 '제지하다'를 의미한다: "이렇게 말하여 겨우 무리를 [말려] 자기들에게 제사를 못하게 하니라".||(b) 히 4:4, 히 4:8, 히 4:10에서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안식을 준 것과 하나님의 안식(4절)에 대해 말하고 있다. 카타파우오는 8절에서 '안식을 준다'(c)라는 의미를, 4절에서 '휴식하다'(d) 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따라서 여기서 구약성경은 안식 자체를 초월한 어떤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여진다. 참된 성취가 이루어질 때 하나님은 자기 자신의 안식에 적절히 부합되는 안식을 줄 것이다. 오늘 그리스도 안에 동참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러한 궁극적인 목적을 위해 인내하도록 권고 받고 있다(참조: 히 3:14)|(참조: J.H.Thayer; O.Bauernffind).
휘장
katapevtasma
가리개 covering, 휘장 veil, 장 curtain.||#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카타페타스마(Heliod. 10, 28)는 카타페타뉘미(%39: 아래로 퍼지다, 덮다)에서 유래했으며, '아래(쪽으)로 펼쳐져 있는 것'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신전의 휘장을 가리키는 전문 용어로 사용되어 온 것 같다. 카타페타스마는 헬라어 성경은 물론, 필로와 요세푸스의 저술에서 예루살렘 성전의 두 휘장에 주어진 명칭이기도 하다.||#2. 70인역본의 용법||(a) 카타페타스마는 70인역본에서 약 38회 나오며, 주로 파로케트와 다음에 마샤크(가리는 막)의 역어로 사용되었다.||(b) 카타페타스마는 70인역본에서 성막이나 성전 안에 있는 휘장, 예를들면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출 26:31이하 등) 또는 성소와 앞뜰 사이에(출 26:37 등) 쳐 있는 휘장을 가리킨다. 바깥의 휘장은 제의적인 중요성을 지니고 있지 않다. 그러나 전승에 의하면 두 그룹이 그려져 있는 안쪽 휘장은 중요한 경계 표시이다. 하나의 휘장이 있었는지(요세푸스) 아니면 이중의 휘장이 있었는지(탈무드) 논쟁이 되고 있다.||(c) 이 휘장은 청색, 자주색, 홍색의 털실로 짠 고운 아마포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 위에는 두개의 그룹의 형상이 있었다. 이 휘장은 하나님과 인간을 구분한 상징이었다. 안쪽 휘장은 제의적 중요성을 가진다. 왜냐하면 안쪽 휘장은 지성소를 가리며 대제사장만이 속죄일에 그 휘장을 통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제사장은 1년에 단 한번 속죄일에 하나님의 면전에서 속죄의 피를 드리기 위하여 들어갔다.||#3. 신약성경의 용법||카타페타스마는 신약성경에서 6회 나오며, 모두 '휘장'을 의미한다.||(a) 마 27:51,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병행구, 막 15:38; 눅 23:45). 십자가 처형이 실행된 때에 찢어졌던 "성전의 휘장"이 안쪽 휘장이었는지, 바깥의 휘장이었는지가 논의되어 왔다. 만일에 안쪽 휘장이라면 이는 예수님의 죽음이 인간에게 하나님에게로 가는 길을 열어주었다는 사실을 상징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공공연한 표적은 아니었을 것이다. 나사렛 복음서는 윗쪽의 상인방(上引枋)이 쪼개졌다고 전한다(Henn. -Schn., Ⅰ, 153). 그리고 초대 교회 교부들은 이를 성전 파괴에 관한 예언적 표적으로 보았다.||(b) 히 6:19; 히 9:3; 히 10:20에서 안쪽 휘장을 신학적으로 해석한다. 예수님께서는 안쪽 휘장의 원형인 하늘의 휘장을 통과하셨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선구자로서 그렇게 하셨다. 이 휘장은 그리스도의 육체와 동일시된다. 그리스도의 육체는 베일의 역할을 하며(참조:고후 5:16), 또한 지성소에 들어가는 길이기도 하다. 이에 근거하여 희랍 정교회는 성찬식에서 카타페타스마를 사용한다.|(참조: Walter; C.Schneider; D.H.Madvig).
빠져 죽다
katapivnw
삼켜 버리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카타피노(Hes., Hdt. 이래)는 카타($2596)와 피노($4095: 마시다)에서 유래했으며,|'취해 곤드라지게 하다', 더욱 일반적 의미로, '삼켜 버리다, 삼키다'를 의미한다.||(a) ① 문자적 의미로, 생물들이 삼키는 것에 대하여(Hes., Aristoph.),|② 물질적인 주체가 삼키는 것에 대해, 강이 땅 아래로 사라지는 것 등(Plat., Polyb., Aristot.)이다.||(b) 비유적 의미로,|① 궁극적으로 '동화하다'(Aristoph.),|② 부정적으로 '압도하다'(Plut.),|③ '소비하다, 소모하다'(Aristoph.)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카타피노는 70인역본에서 39회 나오며, 거의 대부분 히브리어 발라(1104: 삼키다, 휘말아 들이다)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삼키다'나 '멸망시키다'는 의미를 나타낸다.|카타피노는 일반적으로 사람이 광야 짐승(욘 2:1), 땅(출 15:12; 민 16:30; 민 16:32; 민 16:34; 민 26:10; 시 106:17), 깊음(시 69:15), 적(호 8:8; 애 2:16; 사 49:19; 시 124:3), 죄인들(시 35:25; 잠 1:12; 합 1:13), 하나님(욥 8:18)에 의해 삼킴을 당하거나 멸망하는 것을 나타낸다. 이 단어는 시 107:27에서 독립형으로 사용되어 인간의 지혜의 소멸을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카타피노는 신약성경에서 7회 나오며, 초인간적인 세력들에 의한 적대적 파괴를 나타내기 위해 문자적 의미와 비유적 의미를 결합하는 등 여러가지 방식으로 구약 용법을 따른다.||(a) 벧전 5:8에서 마귀에 의해 삼킴을 당하는 것을 나타낸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b) 고후 5:4에서 하나님께 적대적인 것에 대해 내리는 하나님의 심판의 역사에 의해 삼키움을 당하는 것을 나타낸다: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 진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게 하려 함이라".|고전 15:54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c) 히 11:29에서 애굽인들이 바다에 삼키움을 당하는 것을 나타낸다: "믿음으로 저희가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넜으나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d) 계 12:16에서 땅이 땅을 삼키는 것을 나타낸다: "땅이 여자를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키니".||(e) 마 23:24, "소경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약대는 삼키는도다". 여기서 비교는 바리새인들이 지극히 사소한 법령들은 범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큰 계명들을 지키지 않는 것을 쉽게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보여준다.||(f) 고후 2:7에서 근심에 '잠기는 것'을 나타낸다: "그런즉 너희는 차라리 저를 용서하고 위로할 것이니 저가 너무 많은 근심에 잠길까 두려워하노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L. Goppelt).
엎드러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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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어지다, 엎드려지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카타핍토(Homer. 이래)는 '내리 떨어지다, 넘어지다, 엎드려지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카타핍토는 신약성경에서 누가의 기록에만 3회 나온다.||(a) 눅 8:6에 씨가 바위 위에 '떨어지는 것'을 나타낸다: "더러는 바위 위에 떨어지매 났다가 습기가 없으므로 말랐고".||(b) 행 26:14에서 바울이 땅에 '엎드러지는 것'을 나타낸다: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방언으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가시채를 뒤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c) 행 28:6에서는 '넘어지는 것'을 나타낸다: "그가 붓든지 혹 갑자기 엎드러져 죽을 줄로 저희가 기다렸더니 오래 기다려도 그에게 아무 이상이 없음을 보고 돌려 생각하여 말하되 신이라 하더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카타플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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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해하여 내려가다, 기항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카타플레오(Homer 이래)는 카타($2596)와 플레오($4126: 항해하다, 배를 타고 가다)에서 유래했으며, '배를 저어 내려가다, 항해하여 내려가다, 기항하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카타플레오는 신약성경에서 눅 8:26에 한번 나온다: "갈릴리 맞은편 거라사인의 땅에 이르러". 예수님과 제자들은 바다에서 해안으로 항해하여 거라사인의 지역에 기항한 것이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고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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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제하다, 괴롭히다, 학대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카타포네오(Hippocr. 이래; Polyb., Diod.)는 카타($2596)과 포노스($4192: 노동)에서 유래했으며,||(a) 본래의 의미로 '노역으로 피로하게[지치게] 하다, 노동으로 기진하게 하다',|(b) 따라서 '해악으로 고통 또는 압제를 가하다, 괴롭히다, 학대하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카타포네오는 신약성경에서 2회 수동분사로 사용되었다.||(a) 행 7:24에서 '압제를 받는' 것을 의미하다: "한 사람의 원통한 일 당함을 보고 보호하여 압제 받는 자를 위하여 원수를 갚아 애굽 사람을 쳐 죽이니라".||(b) 벧후 2:7에서 롯에 대하여 '괴로워 하는' 것을 나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