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돌
kefalhv
머리 head||#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케팔레(Homer 이래)는 세속 헬라어에서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a) 첫째로 중요한 점은 이 단어가 `첫째가 되는 것, 최고의 것', 또는 `극단적인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단어는 일반적으로 인간이나 동물의 `머리' 또한 요점(point), 꼭대기, 끝, 출발점에 대하여 사용되었다. 이 단어는 뱃머리, 기둥머리, 벽의 꼭대기, 강의 원천, 혹은 강어구, 한 달의 처음과 끝 등에 대해 사용되었다. 플라톤에게 있어서 말의 서두는 말의 결론이다.||(b) 케팔레는 `탁월한, 뛰어난, 결정력있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의 머리는 다른 지체들 중에 단지 한 지체가 아니라 모든 다른 지체들을 결정하는 첫째로 중요한 지체이다. 그러나 단체의 우두머리를 케팔레로 언급하지는 않는다.||(c) 케팔레는 `전인'(whole man), 개인의 `생명'이며 또한 `사람 자신'이다. 예를 들면 메갈레 케팔레(위대한 사람), 필레 케팔레(귀한 사람)라는 문구들이 나타난다. 머리를 가리켜 하는 저주는 전인격과 그의 생명을 저주하는 것이다.||#2. 70인역본의 용법||케팔레는 70인역본에서 약 400여회 나오며, 주로 로쉬(머리, 꼭대기, 정상, 윗부분, 우두머리, 전체, 총계 등)의 역어로 사용되었다.|따라서 케팔레는 70인역본에서 사람의 머리(창 28:11), 짐승의 머리(창 3:16), 산꼭대기(창8:5) 혹은 탑의 꼭대기(창 11:4), 인수나 명수(출 16:16), 개인이나 사람의 전 존재의 동의어(왕하 25:27; 시 3:3; 겔 9:10; 겔33:4; 삼상 25:39), 개인의 생명(사 43:4), 다른 사람이나 단체의 지도자나 머리(삿 10:18, 왕상 21:12), 조각상의 머리(단 2:31)를 표현하는 말로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케팔레는 신약성경에서 75회 나오며, 다음과 같은 의미를 나타낸다.||(a) 케팔레는 때때로 사람이나 동물의 머리, 또는 귀신들의 모양에 대해 사용되었다. 마 8:20; 눅 9:58에서 예수님의 머리를 표현한다. 수난 기사에서 예수님의 머리를 표현한다(마 26:7; 마 27:29; 요 19:2; 마 27:30; 막 15:19; 마 27:37; 요 19:30; 요 20:7; 요 20:12). 계 1:14; 계 14:14; 계 19:12에서 부활하신 주님의 머리에 대해 언급한다.||(b) 머리는 비유적 상징적 비유들을 나타낸다.|① 머리는 명예와 위엄을 상징한다: "또 보좌에 둘려 이십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면류관을 쓰고 앉았더라"(계 4:4),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머리에 많은 면류관이 있고 또 이름 쓴 것이 하나가 있으니 자기 밖에 아는 자가 없고"(계 19:12), 또 머리는 한 수치의 상징을 나타낸다: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면류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참람된 이름들이 있더라(계 13:1).|② 행 18:6에서 사도 바울은 떠나가면서 메시야를 거절한 책임을 고린도에 사는 유대인들에게 돌렸다: "저희가 대적하여 훼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떨어 가로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요 13:9에서 자신의 머리를 씻어 주기를 바란 베드로는 자신의 삶 전체가 깨끗케 되기를 원했다: "시몬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 주옵소서".|마 5:36에서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자신의 머리로 맹세하는 것을 금하셨다: "네 머리로도 말라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누구든지 어떤 것에 대하여 맹세로 자신의 머리를 위태롭게 하는 자는 마치 자신의 생명을 마음대로 할 힘을 가진 것처럼 말을 하는 자이다. 랍비들은 어떤 누구든지 머리로 맹세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San. 3:2).|③ 머리는 유대인의 관습과 관련하여 언급되어 있다. 마 6:17에서 머리는 금식의 관습과 관련하여 나타난다: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여기서 예수님은 유대인의 남에게 보이기를 좋아하는 것에 반대하여 몸에 대한 평상적인 실행을 가리킨다(씻는 것, 기름을 바르는 것 등).|행 18:18에서 머리는 (나실인의) 서원과 관련하여 나타난다: "바울은 더 여러 날 유하다가 형제들을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갈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바울이 일찍 서원이 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깍았더라". 이것은 머리를 깎은 것은 아마도 머리를 깎아 그 머리를 제물로 드림으로 끝나는 일시적인 서원일 것이다(참조: 행 6:18). 행 21:23-24에서 바울은 유대인의 서원 관습에 순종하여 행했다: "우리의 말하는 이대로 하라 서원한 네 사람이 우리에게 있으니 저희를 데리고 함께 결례를 행하고 저희를 위하여 비용을 내어 머리를 깎게 하라 그러면 모든 사람이 그대에게 들은 것이 헛된 것이고 그대로 율법을 기켜 행하는 줄로 알 것이라".|계 18:19에서 머리는 극한 슬픔의 표시와 관련하여 언급되었다: "티끌을 자기 머리에 뿌리고 울고 애통하여 외쳐 가로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이 큰 성이여 바다에서 배 부리는 모든 자들이 너의 보배로운 상품을 인하여 치부하였더니 일시간에 망하였도다". 애통하는 자들은 큰 슬픔의 표시로서 티끌을 자기 머리에 뿌린 것이다. 왕들(계 18:10)과 상고(계 18:17)처럼 그들은 바벨론의 뜻밖의 멸망을 통탄했다.|④ 마 27:39; 병행구 막 15:29에서 머리를 흔드는 동기는 구약의 기원을 가지며, 거절을 뜻하는 힘있는 동작이다.|예수님의 머리에 기름을 붓는 것은(막 14:3; 병행구 마 26:7; 참조: 눅 7:38; 요 12:3) 존경(esteem; 눅 7:46도 그렇다)을 표하는 특별한 행위이며, 죽음을 예기하고 기름을 붓는 것을 나타내며, 메시야 왕으로 기름을 붓는 것을 나타내지 않는다(막 14:8과 병행구).|예수님의 머리를 치는 것(마 27:30; 병행구 막 15:19)은 육체적 고통 뿐만 아니라 인격적 비하를 가리킨다. 머리에 씌운 가시 면류관(마 27:29; 병행구 요 19:2)은 쓰라린 고통 외에도 왕에 대한 조롱을 나타낸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명패에 관하여 나오는 켑할레(마 27:37)는 단순히 위치(location)를 가리킨다.|마 8:20; 병행구 눅 9:58에서 머리를 둔다는(문자적으로 '숙이다') 것은 잠을 '자거나 쉰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요 19:30에서 머리를 숙이는 것은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완곡 표현이다(W. Bauer). 예수님께서 신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눅 21:28에서 "머리를 들라"는 인자의 오실 때를 위해 깨어 준비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요 13:9에서 손과 발과 함께 머리를 몸의 일부로 언급한다: "시몬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 주옵소서". 마 6:17에서 유대인의 남에게 보이기를 좋아하는 것에 반대하여 몸에 대한 평상적인 실행을 가리킨다(씻는 것, 기름을 바르는 것 등).|⑤ '머리의 털'이란 표현들이 나타난다. 머리 털을 세는 것(마 10:30; 병행구 눅 12:7)과 "너희 머리 털 하나도 상하지 아니하리라"는 말씀(눅 21:18)은 자기 자신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는 자들을 보호하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말하는 것이다. 머리 털은 눅 7:38(참조: 눅 7:46; 요 12:3); 유사하게 행 27:34에 나타난다. 계 1:14에서 "머리와 털"은 머리 털을 가리킨다.|⑥ 요 20:7에서 시체의 머리를 쌌던 수건에 대하여 말한다: "또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개켜 있더라". 요 20:12에서 '머리 편에와 발 편에'는 단순히 위/ 아래를 가리킨다.||(c) 롬 12:20에서 잠 25:21-22의 사상을 채택하고 있다: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잠언에는 "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식물을 먹이고 목말라하거든 물을 마시우라 그리하는 것은 핀 숯으로 그의 머리에 놓는 것과 일반이요 여호와께서는 네게 상을 주시리라"라고 되어 있다. 이 사상의 이면에 있는 상징에 대하여는 논란이 있다. 이것은 일종의 참회 행위로 벌겋게 핀 숯불로 고통을 받는 애굽의 참회 의식에서 그 상징이 유래한 것이라는 설이 있다(S. Morenz, "Feurige Kohlen auf dem Haupt". 참고: W. Klassen, "Coals of Fire"). 모렌쯔(Morenz)는 아마도 그 의식이 애굽에만 국한된 반면 그 은유는 더 널리 사용되었다고 한다(참조: W. Mckane, Proverbs ). 일종의 고문 형식이지만 악을 선으로 갚는 것이 원수를 이기고 적의를 극복하는 데는 더욱 효과적일 것이라고 한다.|본문에서 바울은 기독교인의 개인적인 보상에 대한 사상을 기록하지 않고 있다. 그의 관심은 믿는 자의 생은 복수에 대한 생각을 모두 없애야 하며, 친절로 원수가 죄를 깨닫고 참회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 의미하는 것은 적극적(공격적) 사랑으로 인한 감명으로 참회에 이르게하는 것을 의미한다.||(d) 고전 11:3이하에서 바울은 여인들이 공중 예배 중에 머리를 가리는 문제에 관하여 말한다. 유대교에서 여인들이 공적 장소에서 항상 머리를 가리웠다(참조: J. Jeremias ). 케제만(E. Kasemann )은 바울이 여기에서 헬라 여인들에게 생소한 관습을 고린도 교회에 도입하려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관습은 곳곳마다 여러 가지로 다양했을 것으로 여겨진다(참조: W. Ramsay, THe Cities of Paul; A. Jaubert, "La voile des femmes" ). 그러나 여기에서 바울의 가르침은 회당의 예배에서 유대인들의 관습을 계속 지키고, 또한 교회에서 되어지고 있는 일에 대해 비판적인 눈으로 바라보았을지도 모르는 고린도 교회에 출석하는 유대인들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이 구절 바로 앞에서 바울은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또는 교회에게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 것(고전 10:32)과 교회가 모든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하며, 또한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로서 자신을 본받아야 한다고(고전 10:33-11:1) 주장하고 있다. 기본적인 문제는 하나님 앞에 남녀의 새롭고 평등한 지위에 비추어 본 자유의 문제였다.|"고린도 교회의 슬로건인 자유는 그 자체와 논란이 된 그 특별한 경우와 관계하여 이 양자를 고려한 것이며, 그것에 대한 바울의 반응보다 더 개화되어 있는 듯하나 광적인 신앙의 근본적인 결점 때문에 수난을 받고 있었다. 이 광적인 신앙은 자유를 오로지 괴로운 충동으로부터의 자유라고 설명한다. 다른 한편 여기서 사도 바울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자유는 항상 그러하듯이 자유 그 자체를 봉사하기 위하여 필요하다고 여기는 그런 자유이며 그가 본 고린도 교회에서의 자유는 열광주의가 성령의 이름으로 그 주장하는 바 주장을 선포하며 기존 질서를 흔들고 있는 곳에서는 위태로운 그런 자유이다."(E. Kasemann , op. cit., 211)|바울은 자유뿐만 아니라 사회의 질서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에게 있어서 창조에 의하여 결정된 성의 역할과 관계는 구원에 의하여서도 철폐되진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것이 공중 예배에서 반영된 것은 틀림없다(참조: A. Jaubert , op. cit., 419f.). 그는 여성의 종속적 역할과 또한 여기서 기인된 것으로 머리를 가리우는 것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이론을 제시하고 있다.||① 질서의 위계: 하나님-그리스도-남자-여자 중에서 첫 세 번째까지는 각각 그 다음 사람의 머리가 된다(3절). 여기에서 머리는 우두머리나 지도자가 아니라 근원이나 기원으로 이해된 듯하다(F. F. Bruce, S. Bedale ).|창 2:2이하의 창조 기사에서는 남자가 먼저임을 지적하고 있다(참조: 엡 5:22이하; 골 3:18이하; 딤전 2:11이하).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원형으로서 더 먼저되시며(참조: 8:6; 15:46-49; 골 1:16),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참조: 3:23; 8:6)을 알고 있다. 그래서 바울은 남자가 머리를 가리고 기도하는 것은 자신의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고전 11:4, 참조: 고전 11:7). 그 이유는 그렇게 하는 것이 창조주께서 그에게 주신 주권과 위엄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자가 자신의 머리를 가리지 않고 기도하거나 예언하는 것은 자신의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다(고전 11:5). 그 이유는 그렇게 하는 것은 창조의 법령에 있어서 남자와 자신의 관계를 부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지 마치 여자가 머리를 미는 것이 일반적으로 불명예의 표시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과 같이 단지 욕되게 하는 것이다(참조: 요세푸스[Josephus]의 저서에서 베르니스[Bernis]의 경우, War 2, 313; M. D. Hooker, "Authority on her head : an examination of 1Cor. ?. 10").|이 주장에 있어서 바울의 이론은 두 가지를 전제로 하고 있다. 그 하나는 윗 사람 면전에서 머리를 가리는 것이 예의이며, 다른 하나는 남자에게 우선권을 주는 남녀의 제도적 관계이다. 주어진 이 두 가지 전제에서 볼 때 예배시에 여자의 머리를 가리는 예의는(모든 시대에 걸쳐서 이렇게 하는 것은 만물에 대한 하나님의 질서를 시인하는 가장 엄숙한 실례이다) 논리적으로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전자의 전제가 인정될 수도 이해될 수도 없는 상황에서는 그러한 결론의 타당성이 바울 시대에서 그러했던 것과 동일한 비중을 지닌다고 할 수 없다.||② 하나님의 영광과 관련하여 창조의 질서에 따른 남자의 우선권(고전 11:7-9, 12). 이 이론이 이제는 영광과 관련하여 전개된다. 창 1:26이하는 사람(히브리어 아담, 헬라어 안드로포스)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다시 말하면 남자와 여자가 모두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았다고 언급한다. 여기에서 바울은 다만 남자(헬라어 아네르[aner])에 관해서만 이야기하고 있다. 아마 그는 창 1:26이하에 비추어서 창 2:8이하를 풀이하고 있는 것 같다. 한편 그는 여기에서 창세기 기사들을 초월하는 방법으로 형상과 영광의 개념을 결부시켜 생각하고 있다.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에 마땅히 쓰지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고전 11:7). 어느 곳에서든지 바울은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다는 것(롬 3:23; 참조: 1:21)과 하나님의 영광은 인간 안에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키는(골 3:10)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복음에 나타나 있다고 주장한다(고후 4:4이하).|창조의 순서에서 남자가 우선이라는 것과 머리를 가림에 대한 중요성에 추가해서 바울은 여기에서 그의 결론에 함축되어 있는 더 상세한 두 가지 전제를 제시하고 있다. 그 하나는 하나님의 영광이 하나님의 면전에서 가리워져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게하는 것은 관계에 모순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자는 머리를 가려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한편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라는 것이다(그 이유는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았기 때문이다. 참조: 고전 11:9). 따라서 남자의 영광은 하나님 앞에서 가리워져야 한다는 것이다(참조: F. F. Bruce ). 다시 말하면 이러한 전제들을 실제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공동체 내에서 이러한 전제들이 어떻게 이해되고 있으며 인식되고 있는가에 좌우된다.||③ 천사들에 대한 언급(고전 11:10). 헬라어 본문에는 `이러므로 여자는 천사들을 인하여 권세(엑수시아)를 그 머리 위에 가져야 한다'고 되어있다. 개역 표준판(RSV)이 "가리는 것"으로 대체한 것은 요점을 모호하게 하는 해석적 주석이다. 가리는 것은 여자들의 권위의 표시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여자는 하나님 앞에서 남자와 동등한 신분을 가지고 있다. 후커(M. D. Hooker)는 가리개는 회당에서 여인에게 인정되지 않는 새로운 권위의 표시라고 주장한다. 한 여자로서 그녀는 기도할 수 있고 예언할 수 있으나(고전 11:5), 여자는 창조의 순서에 있어서의 그녀의 위치에 대한 당연한 사항을 고려해야 한다. 남자는 머리를 가리지 않음으로서 자신의 권위를 나타내는 반면에 여자는 가리개를 씀으로서 자신의 권위를 나타낸다. 가리개를 쓰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여자가 가진 자유와 속박을 나타낸다. 이 자유(모든 일에서와 마찬가지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유로부터 파생되며, 이 속박(다른 곳에서와 마찬가지로)은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사회 법규에서 파생된다.|천사들을 언급하는 것은 성(sex)을 끌어들이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천사들을 인하여"라는 이 놀라운 구절에 대해 구구한 억측들을 자아내었다. 예를 들면 악한 영들은 베일을 쓰지 않는 여인들의 모습을 즐거워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있음직한 일이 아닌 것 같다.|쿰란 본문에는 천사들이 회중의 회합에 나타난다고 한다(1QSa 2:8이하; 참조: 1QM 7:6). 부르스(F. F. Brucc)는 천사들이 창조 질서의 수호자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의 모임에 예의 바름이 요구된다고 한다.|야우베르트(A. Jaubert )는 예배 상황과 또한 어디서 예배를 드리든지 간에 예배드림에 있어서 천사들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그 이유는 천사들은 기도를 하나님에게 전달하는 임무를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계 8:3). 그들은 하나님의 현존 presence 의 표시이다(시 131, 70인역본). 천사들은 회중과 영적으로 교제한다(1QM 12:8; 1QH 3:19-23). 그러므로 그들에게 어떠한 모욕을 주거나 마음을 상하게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1QSa 2:5-9; 1QM 7:6; CD 15:15ff). 메츠(D. S. Metz)는 "천사들을 인하여"란 구절은 바울의 소신을 반영하는 것으로써 하나님의 모든 피조물은 어떤 모양으로도 참된 예배 행위에 참여한다는 것이다. 온당치 못한 단 하나의 행동도 이들 보이지 아니하는 참석자들(확대 해석도 가능할 것이다)의 감정을 상하게 될 것이며, 그 예배 및 영적 문제에 암영(暗影)을 던져 주게 될 것이라고 해석했다.|로버트슨은 '바울이 마음 속에 생각하고 있는 것은 혹자가 이야기하는 바와 같이 설교자나 유혹하는 악한 천사(창 6:1이하)가 아니라 본 절의 천사는 우리가 예배드릴 때 하나님을 순종하는 (혹은 겸손한) 천사들을 말한다(고전 4:9; 시 138:1). 이 천사들은 여호와의 앞에서 얼굴을 가리고 있다(사 6:2). 따라서 고린도 여인들의 놀라운 태도에 이 천사들이 충격을 받았을 것이라는 의미가 이 말씀에 암시되어 있다'고 해석한다.|또 하나 가능한 해석은 "여자들은 천사들이 그들의 얼굴을 날개로 가리우는 것 같이 겸손의 예로서 가리개를 머리 위에 덮어야 한다"일 것이다. 디아투스 앙겔루스("천사들을 인하여")는 `천사들에 근거하여'라고도 번역할 수도 있어서 천사들의 겸손한 모습을 본 받을 것을 호소하는 듯하다. 이러한 예배 태도는 예배 분위기를 좋게한다.|그러나 가리는 것의 의미가 같은 방법으로 이해되지 않는 그러한 문화권에서는 그 이론이 그와 동일한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도 유의할 점이다.||④ 자연 질서에 근거한 관습에의 호소(고전 11:13-15). 바울은 남자가 머리를 짧게 깎는 것은 당연하지만 서원과 관련된 경우에 길게 자라게 할 수 있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행18:18).|여자의 긴 머리는 "자기에게 영광"이며 쓰는 것을 대신하여 주는 것(고전 11:15)이라는 말은 만일 여자가 긴 머리를 가지고 있다면 머리를 가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예배시에 여자가 머리를 가리는 것은 본성과 일치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여기에 나타난 이론이 오늘날 남자들이 머리를 짧게 깎아야 한다고 주장함에 있어 성경의 주장을 제시하기 위하여 채택되어서는 안된다. 20세기 서구 사회에서 남자들이 머리를 길러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1세기 중동 사회에서 머리를 짧게해야 하는 것과 같이 통용되고 있다. 다른 한편 과도하게 텁수룩한 긴 머리를 가진 남자는 일반적으로 품위를 떨어뜨리는 것으로 생각된다(참조: 고전 11:14).|여자의 머리를 "여자에게 영광"이라고 보는 바울의 견해는 또한 하나님의 앞에서 남자의 영광이 가리워져야 하듯이(위의 (b)참조) 역시 여자의 "영광"이 가리워져야 한다는 사상을 띠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각 경우에 있어서 바울은 독사(doxa )라는 같은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고전 11:16은 이것이 바울과 또한 다른 교회들이 인정한 관습이라고 말함으로써 이 이론을 결론지우고 있다. 이 구절은 오늘날 여자가 예배시에 모자를 써야한다는 취지를 지지하는데 인용되고 있다. 이 적용이 타당하다면 이 이론은 모자를 쓰는 것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동양적인 의미에서 머리를 가리는 것을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상기의 논의는 그 효력은 바울 시대의 문화적 배경에서 타당했던 어떤 전제들을 일반적으로 이해하느냐 못하느냐에 달려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것이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면 그러한 결론은 더욱 더 통용될 수 없다. 그러나 자연과 사회 질서에 대하여 정신적 자유를 유지하는 동기 원리는 여전히 지지를 받고 있다(참조: C. Brown ).||(e) 골 1:18에 나오는 찬송시에서 그리스도를 케팔레 소마토스(몸의 머리), 즉 우주의 생명 원리와 주권자로 찬양한다: "그의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여기서 저자는 "교회"라는 단어를 추가함으로, 우주적 몸이라는 사상을 기독교 공동체로 대체하였다. 골 2:10에 의하면, 그리스도 예수는 "모든 정사와 권세"이다. 오직 여기에 퀴리오스(주)의 권세에 대한 구약과 바울의 견해가 강조되어 있다(E. Schweizer ).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로 보는 바울의 이해는 골 2:19에서 두 가지 점에서 훨씬 더 발전되어 있다: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얻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심으로 자라느니라"-반대자들은 머리를 붙들지 않는다. 그러나 성장은 머리에 달려 있다. 이것은 생리학적 비교로 설명할 수 있다. 머리-몸이라는 도식에 따른다. (M. Lallake ).||(f) 엡 4:15에서 그리스도는 머리이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리스도는 자기 몸인 교회의 머리이시다. 머리로부터 모든 것을 전달 받으며 머리로 인하여 성장한다(16절). 에베소서는 주님과 사람들, 즉 교회의 관계를 묘사하기 위하여 가장 중요한 사람의 개념을 사용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새롭고 완전한 사람을 이루기 위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한다(13절). 이러한 묘사에서 그리스도께서는 머리시며, 머리이신 그는 온 몸을 유지시키신다. 따라서 머리는 그리스도의 몸에서 사랑과 진리의 관계, 다시 말하면 진리를 행하여 사랑으로 그리스도에게까지 성장하는 자들의 교제 관계를 결정한다(15절).|엡 1:22: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코스모스의 복종과 만물 위에 그리스도의 승귀라는 모티브는 우주적 교회의 케팔레 기독론을 결정한다.|엡 1:21에서 모든 권세가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께 복종하고 있다는 것을 선언하고 있다. 아르케, 즉 정사가 이전에는 매우 중요했던 것으로 지금은 그리스도께 복종하는 많은 것들 중에 하나이다.|엡 5:23(고전 11:3)에서도 아내의 남편에 대한 복종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에서 유사성을 찾는다: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여기서 표현하고자 하는 바는 케팔레의 주권이다. 교회의 목표는 그리스도이다. 이 목표는 믿음과 지식 안에서 머리에 복종함으로 달성한다.||(g) 요한계시록에서 케팔레는 19회 사용되었다. 여기서 케팔레는 인간의 머리와 동물의 형상을 언급하는 것으로 그들의 머리 형태나 머리 장식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머리는 명예와 위엄을 상징하며(계 4:4; 계 19:12 등) 또한 수치의 상징으로도 나타난다(계 13:11). 계 17:3에서 동물 혹은 마귀의 머리에 대해 사용되었다.|(참조: Walter Bauer ; C. Brown; H. Schli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