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해설 195 페이지 > 기독정보닷컴

물결
kluvdwn
큰 '물결', 큰 파도.||#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클뤼돈(Homer 이래)은 클뤼조(%472: 휩쓸다)에서 유래했으며, 크게 파도치는 '큰 물결, 큰 파도'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클뤼돈은 신약성경에서 2회 나오며, 누가복음과 야고보서에만 사용되었다.||(a) 눅 8:24에서 클뤼돈은 예수님께서 크게 파도치는 '큰 물결'을 꾸짖으신 것을 묘사한다: "제자들이 나아와 깨워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 한대 예수께서 잠을 깨사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니 이에 그쳐 잔잔하여 지더라".||(b) 약 1:6에서 클뤼돈은 바다의 파도치는 '물결'을 표현한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밀리다
kludwnivzomai
파도에 흔들리다, 정신적으로 요동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클리도니조마이(Vett., Aristaen.)는 클뤼돈($2830: 큰 물결)에서 유래했으며,||(a) '파도에 뒤흔들리다'를 의미하며,|(b) 비유적으로 (파도처럼) '정신적으로 요동하다(흔들리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클뤼도니조마이는 신약성경에서 엡 4:14에 한번 '정신적으로 흔들리거나 요동한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클로파스
Klwpa'"
글로바 Clopas(인)||클로파스는 신약성경에서 요 19:25에 한번 그의 이름이 나온다: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모친과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여기서 클로파스는 마리아의 남편으로 등장한다. 이 클로파스는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던 글로파스(눅 24:18), 또는 야고보의 아버지인 알페오(마 10:3; 눅 6:15)와 동일시되기도 한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가려워서
knhvqw
가려워 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크네도(Aristot. 이래)는,||(a) '긁다, 가렵다'(귀에 대하여)를 의미하며,|(b) 비유적으로 '남의 욕망을 부채질하는, 흥미있는 정보들을 기다리는 호기심에 대해 사용된다. 이런 가려움은 그런 새로운 교사들의 연설로 해결될 것이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크네도는 신약성경에서 딤후 4:3에 한 번 나온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이것은 이 단어의 비유적 용법을 근거로 한 개념에 자기들의 사욕을 즐겁게 해 주는 그런 것을 듣기 위해 귀가 가려워서 안달하는 자들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참조: Walter Bauer; W.E.Vine).
니도
Knivdo"
니도 Cnidas(지)||크니도스는 소아시아의 서남단에 있는 그리스의 식민지로, B.C. 6세기 경부터 에집트 및 이탈리아와 국교를 맺고 교역한 무역 도시였다. 이 도시는 아시아도에 속해 있는 한 자유 도시였으며, 2세기 경부터 유대인들이 거주했다. 이 도시에서 서쪽으로 가는 가장 좋은 행상로는 에게해를 가로 질러 가는 항로이다.||신약성경에서 크니도스라는 명칭은 행 27:7에 한번 나온다: "배가 더디 가 여러 날만에 간신히 니도 맞은편에 이르러 풍세가 더 허락지 아니하므로 살모네 앞을 지나 그레데 해안을 의지하고 행선하여".|(참조: PEB).
고드란트
kodravnth"
고드란트, 작은 주화(돈)||#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코드란테스는 두 렙돈과 동가인 작은 주화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코드란테스는 신약성경에서 2회 나오며, 마태와 마가복음에만 사용되었다.||(a) 막 12:42에서 코드란테스는 가난한 과부가 드린 연보에 대하여 사용되었다: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b) 마 5:26에서 코드란테스는 마지막 지불금에 대해 사용되었다: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여기서 "호리라도 남기없이 다"(톤 에스카톤 코드란텐)는 '마지막 작은 돈'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 이것은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작은 지불금을 의미한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나면서(모<태>에서)
koiliva
배, 위 belly.||#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코일리아(Hdt., Aristoph.)는 코일로스(%921: 속이 빈, 공동 hollow)에서 유래했으며, 본래의 의미는 '속이 텅빔'을 의미하며,||(a) '몸의 속이 빈 부분',|(b) '배, 내장, 창자, 위',|(c) 드물게 '자궁'을 의미한다.||#2. 70인역본 및 유대 문헌의 용법||(a) 코일리아는 70인역본에서 약 100회 나오며 8개의 히브리어 단어 및 어군을 번역한다.|이 단어는 '배'를 가리키는데 사용되며(욘 2:1), 또한 남성의 성기 뿐만 아니라(시 132:11) '자궁'을 가리키는데도 매우 흔히 사용되었다(창 25:24; 신 28:4, 신 28:11), 비유적으로는 '지하 세계'(욘 2:3)와 '숨긴 생각들'(욥 15:35)을 가리킨다.||(b) 필로에게 있어서 코일리아는 소화기 계통을 가리키는데, 소화기 계통은 헬라 철학에서처럼 욕망의 자리로 간주된다. 요세푸스는 병에 걸린 몸의 하반부를 가리키는데 이 용어를 사용한다.||(c) 랍비 문헌의 상당어들은 대체로 '배'와 '자궁'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또한 이 단어가 비유적으로 집의 '천장'을 가리키는 경우도 있다.||#3. 신약성경의 용법||코일리아는 신약성경에서 23회 나오며, 다음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a) 코일리아는 '배'를 가리킨다.|눅 15:16에서 탕자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려고 하였다: "저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을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막 7:19(막 15:17)에서도 배를 나타낸다: "이는 마음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배에 들어가 뒤로 나감이니라 하심으로 모든 식물을 깨끗하다 하셨느니라". 예수님은 막 7:14∼막 7:23에서 코일리아와 칼디아($2588: 심장, 마음)의 차이에 비추어서 죄를 설명한다. 외적인 것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방해하지 못한다. 악은 악한 마음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전 6:13에서 바울은 코일리아가 타락할 수 있다는 자유사상가들의 주장을 받아들인다: "식물은 배를 위하고 배는 식물을 위하나 하나님이 이것 저것 다 폐하시리라 몸은 음란을 위하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며 주는 몸을 위하시느니라". 그러나 그는 배가 도덕적인 것과는 무관하다는 주장에도 동의하지 않고, 배가 죄악된 욕망의 자리라는 주장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몸(소마)은 부활한 주님께 속해 있으며 따라서 방탕에 빠지게 내버려 두어서는 안된다(고전 6:13∼고전 6:14). 배와 음식물의 연결은 인간의 음식물에 종교적 가치를 부여하고 온갖 종류의 사상 체계에 음식물을 부속시키려는 노력이 신학적으로 부적절하며, 따라서 거부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빌 3:19에서 배를 신으로 섬기는 것을 언급한다: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롬 16:18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의 배만 섬기나니 공교하고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바울은 이 두 구절에서 억제할 수 없는 방탕과 탐욕을 언급하는 것 같이 보인다. 또한 바울은 이 구절들에서 식사규율에 지나치게 비중을 두는 유대교인들을 염두에 두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계 10:9, 계 10:10에서도 배를 가르키지만 그 이상의 의미를 함축한다: "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책을 달라 한즉 천사가 가로되 갖다 먹어 버리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같이 달리라 하거늘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책을 갖다 먹어 버리니 내 입에는 꿀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마 12:40에서 요나가 들어간 큰 물고기의 배를 가리킨다: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 속에 있으리라".||(b) 코일리아는 '자궁, 태'를 나타낸다: 눅 1:41이하, 눅 1:44; 눅 2:21; 눅 11:27; 눅 23:29; 요 3:4. 그리고 마 19:12; 눅 1:15; 행 3:2; 행 14:8; 갈 1:5.||(c) 요 7:38에서 코일리아는 내부 또는 마음을 의미한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예수님은 신자들의 내적인 갈증을 해소해 주시고, 신자들의 새로워진 내적 존재는 다른 사람들에게로 흘러 넘침으로써 보다 넓은 원기 회복의 원천이 된다(참조: 사 58:11; 슥 14:8; 겔 47:1이하).|(참조: J.H.Thayer; S.Wibbing; Walter Bauer; J.Behm).
누워 자다
koimavw
잠자다, 죽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코이마오(Homer 이래)는 케이마이($2749: 눕다)에서 유래했으며,||(a) '(스스로를) 잠재우다, 잠자다, 잠들다',|(b) 비유적으로 '고요하게 하다, 가라 앉히다, 진정시키다'(Hom., Aeschyl., Plat),|(c) 완곡어법에 의해 '죽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코이마오는 70인역본에서 약 200회 이상 나오며, 거의 샤카브(눕다, 잠자다)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코이마오는 능동태로 창 24:11과 왕상 17:19에서 '눕다', 또는 '눕히다'를 의미한다.|그 외에 이 단어는 중간태로 나온다(눕다, 자다, 진을 치다, 눕다). 그러므로 이 단어는 '잠자다'를 의미하며(삼상 3:9), 특히 모세 5경에서는(코이마오마이 메타, 예: 창 19:32 이하) '함께 잠을 자다'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역사적인 기사에 있어서 이 단어는 명예스러운 죽음이라는 의미에서, '죽다'라는 의미 가진다(그는 자기 조상들과 함께 잠들었다; 왕하, 대하에서 36회, 왕하 14:16, 22, 29; 15:7, 22, 38; 대하 26:2, 23 등). 그리하여 이 단어는 이 의미로 사용되기에 이르렀다(겔 32:19 이하); 욥 14:12; 사 43:17; 50:11). 초기 문헌에서 이 단어는 이런 의미로 간혹 사용되었다(창 47:3; 삿 5:27 등).||#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코이마오는 신약성경에서 18회 나오며, 오직 중간태(코이마오마이)로만 사용되었다.|이 단어는 문자적 의미로 '잠자다'라는 의미로는 오직 3회 사용되었고, 15회는 '죽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a) 코이마오마이는 문자적 의미로 '잠자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① 마 28:13, "가로되 너희는 말하기를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적질하여 갔다 하라".|② 눅 22:45, "기도 후에 일어나 제자들에게 가서 슬픔을 인하여 잠든 것을 보시고".|③ 행 12:6, "헤롯이 잡아 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사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는데 파숫군들이 문 밖에서 옥을 지키더니".||(b) 비유적인 의미로 이 동사를 사용하는 사람은 주로 바울이며, 관찰자의 입장에서 본, 잠자고 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밀접한 관계를 강조한다. 그러므로 그는 보통 죽은 사람을 묘사하기 위하여 분사 형태를 사용한다. 살전 4장과 다시 고전 15장에서 이 분사형들이, 예수님에 의한 죽은 자의 부활 또는 죽은 자의 다시 깨어남에 관한 문장과 연관되어 나타난다는 것이 주목할 만 하다.|① 살전 4:13,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살전 4:14,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찐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살전 4:15,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② 고전 15:18,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고전 15: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③ 문법상으로나 의미상으로 이와 동일한 것이 마 27:52이다: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잠과 죽음 사이에 공존하는 의미가 일찍이 호머(Homer)에게서도 이미 증명되며, 70인역본에서도 증명되기 때문에 우리는 이 연관성을 과장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용어는 새 생명에로 부름받을 사람과 이미 "잠든" 즉 죽은 사람을 동일시하려는 목적에 잘 부합된다.||(c) 고전 7:39; 고전 15:6; 고전 15:51에서 코이마오마이는 '죽다'의 정확한 상당어구로 사용되었다.|① 고전 7:39, "아내가 그 남편이 살 동안에 매여 있다가 남편이 죽으면 자유하여 자기 뜻대로 시집 갈 것이나 주 안에서만 할 것이니라".|② 고전 15:6,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태반이나 살아 있고 어떤 이는 잠들었으며".|③ 고전 15: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④ 행 7:60; 행 13:36; 벧후 3:4에서도 나타난다.||(d) 요 11:11-요 11:12(요 11:11-요 11:14), "11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또 가라사대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12 제자들이 가로되 주여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 하더라".|요한은 이 나사로의 부활 기사에서 제자들의 그릇된 이해를 보여주기 위하여 순전히 의도적으로 이 동사에 대한 고대의 애매모호성을 이용하고 있다. 예수님은 나사로가 죽었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제자들은 치유를 가져올 일종의 짐을 예수님이 의미한다고 이해하고 있다. 여기서도 아마 그 언어를 사용하여 인간적으로는 정복할 수 없는 죽음의 권세를 이기신 예수님의 승리에 주의를 집중시키려한 것이다. 이 권세를 이긴 자에게는 다나토스($2288: 죽음)가 휘프노스($5258: 잠)에 지나지 않는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L. Coenen).
코이메시스
koivmhsi"
쉬는 것, 휴식을 취함.||#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코이메시스(Pla., Symp. )는 코이마오($2837: 잠들게 하다, 잠들다)에서 유래했으며, '쉬는 것, 휴식' a resting, '휴식을 취함' taking a rest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코이메시스는 신약성경에서 요 11:13에 한번 나온다: "예수는 그의 죽음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나 저희는 잠들어 쉬는 것을 가리켜 말씀하심인줄 생각하는지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부정한
koinov"
공동의, 보통의, 비속한, 부정한.||#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코이노스(Hes. 이래)는 쉰($4862: 함께, ~와 함께)에서 유래했다.||(a) 소유권, 재산, 사상 등을 공유한다는 의미에서, '공동의'(Hes.,)를 의미한다.||(b) '모든 것에 관여하는 것', 국가(Thuc., Polyb.) 공동체, 즉 '제의 공동체'(Ditt. Syll.), 동업 조합, 공금(Xenoph.), 공적 결의(Polyb.).||(c) '보통의, 일반의, 작은 가치의'(P. Oxy., Plut.).||(d) 사람에 대해, '참여자, 파트너, 동료'(Soph. Oed.)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형용사 코이노스는 70인역본에서 약 20회 나오며, '공통적인'이라는 일반적 의미는 잠언에서 여러 번 나타난다(잠 1:14; 잠 15:23; 잠 21:9; 잠 25:24). 그리고 이 단어는 외경에 더 많이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코이노스는 신약성경에서 12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코이노스는 '공동의, 보통의, 일반적인'이란 의미로 사용되었다.|① 딛 1:4에서 '공통의'("같은") 믿음에 대해 언급하다: "같은 믿음을 따라 된 나의 참 아들 디도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구주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네게 있을찌어다".|② 유 1:3에서 '공동의'("일반으로 얻은") 구원을 언급한다: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우리의 일반으로 얻은 구원을 들어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뜻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③ 행 4:32,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행 2:44에서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제자들은 예수님의 본을 따라(참조: 눅 8:11 이하), 마지막 날을 기대하면서(신 15:4) "공동" 생활을 한다. 공동체에서의 이러한 생활은 경제적 이론, 법률상의 사회화, 자연의 철학적인 모방에 기초한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하여(참조: 행 2:45) 소유권을 포기하는 사랑의 교제를 나타낸다(참조: 눅 12:33). 사도행전에서 나오는 어구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는 헬라적인 말이다.||(b) 코이노스는 '비속한, 부정한' profane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① 히 10:29, "하물며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② 막 7:2에서 제의적으로 부정한 손을 언급한다: "그의 제자 중 몇 사람의 부정한 손 곧 씻지 아니한 손으로 떡 먹는 것을 보았더라".|③ 신약성경에서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은 어떤 것이든지 의식적으로 부정하다는 생각을 거부한다(롬 14:14).|"이르되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교제하는 것과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행 10:28).|더 연약한 형제들은 여전히 이러한 견지에서 생각할 수 있으며, 그들의 생각을 참작할 수는 있으나 객관적으로 볼 때는 잘못이다: "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롬 14:14).|(참조: F. Hauck; J. Schattenmann).
부정하다
koinovw
참여하다, 더럽히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코이노오(Pind., Thu.)는 코이노스($2839: 일반적인, 공통의, 보통의)에서 유래했으며,||(a) '공동(의 것)으로 하다, 참여하다, 연합하다',|(b) '교통하다' communicate,|(c) '모독하다, 더럽히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코이노오는 신약성경에서 16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행 21:28에서 성전을 '더럽히다'를 의미한다: "외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도우라 이 사람은 각처에서 우리 백성과 율법과 이곳을 훼방하여 모든 사람을 가르치는 그 자인데 또 헬라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서 이 거룩한 곳을 더럽게 하였다 하니".||(b) 마 15장에서 이 단어는 의식적 부정에 의해서가 아니라 개인적인 죄에 의해서 '더럽히는' 것을 의미한다.|① 마 15:11,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하는 것이니라".|② 마 15:18,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③ 마 15:20,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④ 병행구 막 7:15; 막 7:18; 막 7:20; 막 7:23에서 같은 의미를 나타낸다.||(c) 코이노오는 '속되다, 부정하다고 선포하다'를 의미한다.|① 행 10:15, "또 두번째 소리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② 행 11:9, "또 하늘로부터 두 번째 소리 있어 내게 대답하되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말라 하더라".|(참조: F. Hauck; J. Schattenmann).
간섭하다
koinwnevw
참여하다, 나누어주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코이노네오(Aeschyl. 이래)는 코오노노스($2844: 동료, 참여자, 동반자)에서 유래했으며,||(a) '어떤 사람과 함께(그가 가진 어떤 것에) 참여하다'||(b) 어떤 사람과 함께(그가 가지고 있지 않은 어떤 것을) 나누다', '나누어 주다'를 의미한다.|이 단어는 독립적으로 사용되거나 목적 속격이나 인격 여격과 함께 사용되거나 혹은 양자 모두와 함께 사용될 때도 있다.||#2. 70인역본의 용법.||(a) 동사 코이노네오는 70인역본에서 15회 나오며, 왕들의 '교제'(대하 20:35), 악한 자와 '사귐'(욥 34:8), 모든 산 자 중에 '참예한 자'(전 9:4)를 나타내며, 집회서 13:1에서 악한 자와 부자와의 친밀한 우정을 나타낸다.||(b) 필로는 코이노네오를 '분배하다, 나누어 주다'라는 의미로 사용했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코이노네오는 신약성경에서 8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코이노네오는 '어떤 것을 함께 나눈다'를 의미한다.|① 자녀들은 그리스도께서 사망과 마귀를 이기기 위하여 친히 참여하신 공동 운명을 나눈다: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히 2:14).|② 다른 사람들의 죄에 참여하면 죄와 심판에 걸려든다.|- 딤전 5:22, "아무에게나 경솔히 안수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죄에 간섭지 말고 네 자신을 지켜 정결케 하라".|- 요이 1:11,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예하는 자임이니라".|③ 벧전 4:13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을 즐거워 한다: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④ 롬 15:27,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신령한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신의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방 그리스도인들은 유대 그리스도인들과 동일한 복을 누리고 있으므로 이방 그리스도인들은 그들과 물질적인 것들을 함께 나누어야 할 것이다.|⑤ 롬 12:13에서 성도들은 다른 성도들이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을 그들과 함께 나누어야 한다: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b) 코이노네오는 '어떤 것을 나누어 주다'를 의미한다.|① 빌 4:15에서 상호 나누어 주는 것을 언급한다: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일에 참예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② 갈 6:6에서도 마찬가지다: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참조: F. Hauck; J. Schattenmann).
경륜
koinwniva
교제 fellowship, 참여 participation, 나누어줌 impartation.||#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코이노니아(Plind. 이래)는 코이노노스($2844: 동료, 참여자)에서 유래했으며,||(a) '참여' participation,|(b) '나누어줌' impartation.,|(c) '친교, 교제' fellowship.|(d) '자선품이나 기부금'을 의미한다.||·이 단어는 목적 속격(나누는 것), 주격 속격(나누는 사람 또는 물건), 여격(수령자)과 함께 사용되거나 전치사 및 목적 속격(참여하고 있는 자)과 함께 사용되었다.||·인간 생활-나눔은 여러 분야에서 일어난다. 예를 들면 사업, 법률관계, 결혼 등, 또한 헬라인에게 있어서 친교의 최고의 표현이 우정이다. 시민권 또한 중요하다. 왜냐하면 사회의 보존과 실로 세계(cosmos)의 보존은 정치적, 세계적 나눔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제의적 언어-원시 사상에 의하면 먹고 마심에서 신비한 신적 능력을 내적으로 받아들인다. 이런 개념은 제의적인 축제나 심지어 성적인 결합을 통하여 신과 연합한다는 헬라 개념에도 잔존해 있다. 철학은 이 개념을 순화한다. 따라서 플라톤에게 있어서 신과의 교제는 친교의 최고 형태이다. 반면에 완전한 우주에 대한 이상을 가지고 있는 스토아 철학은 인간 사이의 친교와 신과의 모든 인류의 친교를 강조한다. 신비주의는 친교를 합일(union)로 대체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코이노니아는 70인역본에서 3회 나오며, 레 6:2에서 '담보'라는 의미로, 지혜서 8:18에서 물질적 참여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코이노니아는 신약성경에서 19회 나오며, 3회를 제외하고는 모두 바울 서신에 사용되었다.||1. 코이노니아는 '함께 나누는 것'을 나타낸다.||(a) ① 고전 1:9에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아들과 친교하도록 초청받았다: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케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이런 친교에는 신비적 합일이 없으니 이 친교는 그들의 생명과 그의 생명(그리스도의)과 동일시하는 믿음으로 인한 것이다. 이 친교는 현재 얻게 된다 할지라도 미래에 완성될 것이다(참조: 살전 4:17).|② 빌 1:5에 보면 이 친교에는 복음에의 참여가 수반되며,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참조: 고전 9:23),|③ 믿음의 교제가 수반된다: "이로써 네 믿음의 교제가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미치도록 역사하느니라"(몬 1:6).||(b) 고전 10:16 이하에서 코이노니아는 주의 만찬에서 일어나는 교제에 대한 매우 중요한 표현에 사용되었다: "우리가 축복하는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함이 아니냐".|바울은 주의 만찬에서 가지게 되는 친교에 대해 코이노니아를 매우 의미심장하게 사용하였다. 기본적으로 완전히 믿음 안에서 알게된 그리스도에게 참예하는 일은 어떠한 교리와도 연관되지 않은 채 성례전에서, 고양된 형태로 이루어지고 경험된다.|먼저 바울은 주의 만찬을 유대교와 이교의 제사 의식과 구별한다. 고대의 일반적인 신앙에 따를 때 제의적 식사에 참여하는 자들은 그 신과 함께 하는 자들이 됨은 자명한다. 따라서 유대의 희생 제물을 먹는 자들은 "제단에 참예하는 자"(고전 10:18)가 된다. "제단"은 분명 하나님을 가리켜 사용된 것이다. 제단은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고 보증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교 제사에 참여하는 자들은 "귀신과 교제하는 자"(고전 10:20)들임이 분명하다. 유추적으로 주의 만찬에 참예하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동류들인 것이다. 주의 만찬에서 생기는 진정한 교제는, 그리스도인들이 이방인들의 의무 가운데 하나인 제의적 식사를 피해야만 한다는 매우 당연한 종교적 결론을 수반한다(고전 10:21).|따라서 바울은 주의 만찬의 성격을 그리스도의 인격과의 교제의 견지에서 설명한다. 즉 그의 몸과 피에 참예하는 것(코이노니아)이라고 한다(고전 10:16). 유대의 제단이 하나님의 임재를 보증하는 것이듯이 떡과 포도주(잔)는 그리스도의 임재의 방편이다. 떡과 잔에 참예함은 하늘의 그리스도와 연합(함께함)하는 것이다. 바울에게 있어 높임받으신 그리스도는 몸과 피를 가진 지상의 역사상의 그리스도와 동일하신 분이다. 코이노니아는 내적 합일(연합)을 표현하는 것이다. 바울은 이것을 이 의식에서 중요한 것으로 생각한다. 바울에게 있어서 높임 받으신 그리스도와의 진정한 합일은 그의 사망으로 말미암아 얻으신 용서의 축복을 반드시 포함하는 것임이 자명하다.|제의적 식사에서 이러한 합일이 어떻게 일어나는지에 대해서 바울은 귀신과의 교제에서도 그리스도인의 교제에서도 우리에게 말하지 않는다. 바울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이 유사한 친교 방식의 성격이 아니라 친교의 사실 그 자체이다.|고전 10:17절에 삽입된 진술에서 바울은 희생 제사에서와 마찬가지로 주의 만찬에서도 참여자들 사이에 친교가 존재한다는 것을 선언한다. 이것은 그리스도로부터 떨어져 있지 않다. 그것은 그리스도가 한 개의 떡으로 표현되는 바와 같이 그리스도와의 공통적인 연합에서 생겨난다.||(c) 빌 3: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바울에 의하면 그리스도와의 친교는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삶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참조: 롬 6:8; 롬 8:17; 롬 6:6; 딤후 2:12; 고후 7:3; 골 2:12-골 2:13; 엡 2:5-엡 2:6). 여기에는 두가지 측면의 교제가 있는데, 첫째는 그리스도의 수치(굴욕)와의 친교이며, 둘째는 그의 높임 받으심과의 친교이다. 바울은 그의 생애와 사역에서 그리스도의 전체 고난에 동참한다(빌 3:10; 참조: 골 1:24). 그러나 그는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영광에도 참여하기를 소망한다(빌 3:10; 참조: 롬 8:17).||(d) 성령에 참여는 그리스도인의 표시이다.|① 고후 13: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찌어다". 성령으로 그리스도는 신자들에게 오신다. 우리가 여기서 가지는 것은 성령에 참여이다.|② 빌 2:1,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여기서 '성령의 교제'(코이노니아 프뉴마토스)는 '긍휼이나 자비'와 같이 사람에게 있는 어떤 것과 같이 성령 안에서 친교(교제)이며, 성령이 실행하는 친교(교제)가 아니다.||(f) 요일 1:3; 요일 1:6; 요일 1:7, "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 6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이거니와 7 저가 빛 가운데 계신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여기에서 코이노니아는 그리스도 및 하나님과의 신비적 결합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 안의 교제를 언급한다.|이 사귐은 여기서 시작하여 이후에 완성될 동거함(참조: 요일 3:2; 요일 3:24; 요일 4:13)에 의하여 성부 및 성자와의 친교로 시작한다(요일 1:3; 요일 1:6). 이 사귐은 신자들의 가족적 교제를 가져온다(요일 1:3).|그 근거는 역사적 예수님에 대한 사도의 설교와 빛 안에서의 행함과 모든 죄를 씻기시는 예수님의 피에 있다. 따라서 이것은 성육신을 부정하고 죄의 특성을 잘못 전달하는 분파적인 자만심을 배격한다.||2. 코이노니아는 '어떤 것을 나누어 주는 것'을 나타낸다.||(a) 행 2:42에서 코이노니아는 독립적인 의미의 예배 생활의 필수 부분으로 간주될 수 있다: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코이노니아는 '참여, 함께 나눔(나누어줌), 교제(친교)'라는 의미에서 보면 '그리스도의 피"(빌 2:1)와 복음 사역에서의 협동(빌 1:5), 가난한 자들을 위한 헌금(고후 8:4; 고후 9:13) 등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코이노니아의 정확한 의미에 관한 다양한 견해가 있다. 그것은 행 2:44에 있는 재산의 분배를, 혹은 신자들의 공동체 안에서의 한 마음을, 혹은 친교적 의미에 있어서의 주의 만찬(고전 10:16)을, 혹은 공동 식사에 참여해서 나누는 교제, 혹은 아가페(애찬)를 말할 수도 있다.|코이노니아는 새롭고 독립적인 어떤 것을 나타낸다. 곧 성령에 의해 전달된 일치와 연합을 나타낸다. 개인은 이 공동체에 의해 완전한 후원을 받았다.||(b) 고후 9:13에서 바울이 예루살렘에 가져온 기부금, 곧 가난한 자들을 위한 헌금은 교회들의 교제를 나타내주는 확실한 표현이다: "이 직무로 증거를 삼아 너희의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실히 믿고 복종하는 것과 저희와 모든 사람을 섬기는 너희의 후한 연보를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이 기부는 종교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것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결합하는 하나의 복음으로부터 발생되었고 바울이 롬 15:26에서 말하는 것과 똑같은 영적이며 물질적인 주고 받음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에는 실제적인 궁핍이 있었다. 예루살렘 성도들 중에는 가난한 이들이 대다수였다. 예루살렘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영적인 은사들"의 시냇물은 "세상의 선물들"의 마주쳐 흐르는 시냇물로 응답되었다.|초대 교회의 이 모범은 단절된 채로 남게 되었다. 이 모범을 모방하는 것은 요구되지도 않았고 행해지지도 않았다. 사유 재산의 보전은 모든 교회들에서 당연한 일로 간주되었다. 기독교는 새로운 사고 방식을 가져온 것이지 새로운 사회 질서를 가져온 것이 아니다. 1895년의 복음 사회 협의회(Evangelical Social Conference)에서 프리드리히 나우만(Friedrich Naumann)은 '종교의 관점에서 경제 체계에 이르는 것은 가능한 일이 아니다'고 말했고, 반면에 에른스트 트뢸취(Ernst Troeltsch)는 기독교에 독립적인 혁명적 요소가 있으나 혁명을 선동할만한 뜻은 없다고 지적하였다(The Social Teaching of the Christian Churches, 1, 1931, 3969).||(c) 바울도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모금과 관련하여 이 의미를 사용한다. 이 모금은 두 부류의 기독교인 간의 친교를 보여주는 분명한 형태이다(갈 2:9; 롬 15:26). 이 모금은 신실하고(고후 8:4) 마음에서 우러난 나눔(고후 9:13)으로 섬기는 교제의 의의를 지닌다. 히 13:16에서도 적극적인 나눔을 뜻한다.|(참조: J. Schattenmann; F. Hauck; Walter Bauer; J. H. Thayer).
나눠 주기를 좋아하며
koinwnikov"
흔쾌히 나누어 주는.||#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코이노니코스(ps. -pla., Aristot.)는 코이노니아($2842: 참여, 교제, 나누어줌)에서 유래했으며,||(a) '사회 society에 속하거나 정해진'(Aristot.),||(b) '다른 사람에게 흔쾌히 나누어 주는 (자)'(Polyb., Luc.)을 의미한다. 70인역본에는 나타나지 않는다.||#2.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코이노니코스는 신약성경에서 딤전 6:18에 한번 사용되었다: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여기서 코이노니코스는 '다른 사람에게 흔쾌히 나누어 주는 자'를 의미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재물을 온당하게 사용하기 위한 지침이다. 웨슬레는 번창하는 감리교인들에게 세마디로 충고하기를 '벌 수 있을만큼 버시오. 할 수 있는만큼 저축하시오. 그리고 줄 수 있는만큼 다 주시오'라고 하였다. 돈으로 구원을 살 수는 없다. 그러나 돈을 잘 사용하면 훌륭한 그리스도인의 특성을 이루고 나아가 영생을 더 확실히 붙잡을 수 있다(J. G. Gould).|(참조: F. Hauck).
교제하는 자
koinwnov"
동료, 참여자||#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코이노노스는 코이노스($2839: 공통의, 보통의, 일반적인)에서 유래했으며,||(a) 형용사로서는 '공통의' common를 의미하며,|(b) 명사로서는 '동료, 동역자, 파트너',|(c) 어떤 것의 '공유자, 동참자, 참여자'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코이노노스는 70인역본에서 8회 나오며, 히브리어 하베르(2770: 연합한, 동료, 벗)를 번역하여 멸망케 하는 자의 '동료'(잠 28:24), 도적과 '연합하는' 것(사 1:3), 하베레트(2278: 배우자, 동료)를 번역하여 '배우자'(말 2:14), '친구'(집회서 41:18)를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코이노노스는 신약성경에서 10회 나오며,||(a) 눅 5:10에서 '동역자, 파트너'를 의미한다: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일러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b) 마 23:30에서 코이노노스는 '참여하는'이란 의미를 지닌다: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면 우리는 저희가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데 참예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 다른 사람들의 죄에 참여하면 같은 죄와 심판에 걸려든다(참조: 딤전 5:22; 요이 1:11). 하나님의 백성은 죄와 심판에 참여하지 않기 위하여 바벨론을 떠나야 한다(참조: 계 18:4).||(c) 고전 10:18에서 코이노노스는 '참여하는 자'를 의미한다: "육신을 따라 난 이스라엘을 보라 제물을 먹는 자들이 제단에 참예하는 자들이 아니냐". 고전 10:20에서는 아무와 교제하는 '동료'라는 의미를 지닌다: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 우상에게 제사 지내었던 고기를 먹는 것은 곧 이교도 제사와 귀신들과의 친교에 참여하는 자가 된다는 것이다. 이들은 주의 만찬의 친교를 하지 못하고 그리스도와 친교도 하지 못하게 된다. 주의 만찬에 참여하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동료들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우상에게 바친 음식을 먹지 않아야 한다. 떡과 포도주를 받음으로 그들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얻은 용서의 축복이 수반된 내적인 친교에 그리스도와 동참한다. 이 친교는 한 덩어리의 떡에 의해 상징되듯이 모든 참여자에게 확대된다(고전 10:17).||(d) 고후 1:7과 벧전 5:1은 사도와 교회가 고난과 부활하신 주님의 영광에 참예함을 언급하고 있다. 그리스도를 따름으로 말미암아 압제와 핍박을 당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가 주님처럼 유혹과 사망을 통해 생명을 얻을 것이라는 보장을 받는다.|① 고후 1:7, "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은 너희가 고난에 참예하는 자가 된것 같이 위로에도 그러할 줄을 앎이라".|② 벧전 5:1,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예할 자로라".||(e) 히 10:33, "혹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로 사귀는 자 되었으니". 여기서 학대 받는 사람들과 동역자가 되는 것에 대해 말하며 독자들에게 인내할 것을 권고한다. 비록 그들이 고난 당하지 않을 때라도 그들은 고난 당하는 자들의 동료이다.||(f) 벧후 1:4에서 신자들은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었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자를 앎"(벧후 1:3)과 인내로 말미암은 것이다. 곧 그는 모든 이승의 존재보다 우월한 신적 성품에 이미 참예하고 있는 것이다.||(g) 고후 8:23에서 코이노노스는 '동무나 친구'를 의미한다: "디도로 말하면 나의 동무요 너희를 위한 나의 동역자요 우리 형제들로 말하면 여러 교회의 사자들이요 그리스도의 영광이니라".|몬 1:17에서도 같은 의미를 지닌다: "그러므로 네가 나를 동무로 알찐대 저를 영접하기를 내게 하듯하고".|그리스도와의 교제는 믿음(몬 1:17)과 봉사(고후 8:23)의 협력 안에서 다른 그리스도인들과의 교제를 의미한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J. Schattenmann; F. Hau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