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워 자다
koimavw
잠자다, 죽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코이마오(Homer 이래)는 케이마이($2749: 눕다)에서 유래했으며,||(a) '(스스로를) 잠재우다, 잠자다, 잠들다',|(b) 비유적으로 '고요하게 하다, 가라 앉히다, 진정시키다'(Hom., Aeschyl., Plat),|(c) 완곡어법에 의해 '죽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코이마오는 70인역본에서 약 200회 이상 나오며, 거의 샤카브(눕다, 잠자다)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코이마오는 능동태로 창 24:11과 왕상 17:19에서 '눕다', 또는 '눕히다'를 의미한다.|그 외에 이 단어는 중간태로 나온다(눕다, 자다, 진을 치다, 눕다). 그러므로 이 단어는 '잠자다'를 의미하며(삼상 3:9), 특히 모세 5경에서는(코이마오마이 메타, 예: 창 19:32 이하) '함께 잠을 자다'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역사적인 기사에 있어서 이 단어는 명예스러운 죽음이라는 의미에서, '죽다'라는 의미 가진다(그는 자기 조상들과 함께 잠들었다; 왕하, 대하에서 36회, 왕하 14:16, 22, 29; 15:7, 22, 38; 대하 26:2, 23 등). 그리하여 이 단어는 이 의미로 사용되기에 이르렀다(겔 32:19 이하); 욥 14:12; 사 43:17; 50:11). 초기 문헌에서 이 단어는 이런 의미로 간혹 사용되었다(창 47:3; 삿 5:27 등).||#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코이마오는 신약성경에서 18회 나오며, 오직 중간태(코이마오마이)로만 사용되었다.|이 단어는 문자적 의미로 '잠자다'라는 의미로는 오직 3회 사용되었고, 15회는 '죽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a) 코이마오마이는 문자적 의미로 '잠자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① 마 28:13, "가로되 너희는 말하기를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적질하여 갔다 하라".|② 눅 22:45, "기도 후에 일어나 제자들에게 가서 슬픔을 인하여 잠든 것을 보시고".|③ 행 12:6, "헤롯이 잡아 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사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는데 파숫군들이 문 밖에서 옥을 지키더니".||(b) 비유적인 의미로 이 동사를 사용하는 사람은 주로 바울이며, 관찰자의 입장에서 본, 잠자고 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밀접한 관계를 강조한다. 그러므로 그는 보통 죽은 사람을 묘사하기 위하여 분사 형태를 사용한다. 살전 4장과 다시 고전 15장에서 이 분사형들이, 예수님에 의한 죽은 자의 부활 또는 죽은 자의 다시 깨어남에 관한 문장과 연관되어 나타난다는 것이 주목할 만 하다.|① 살전 4:13,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살전 4:14,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찐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살전 4:15,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② 고전 15:18,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고전 15: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③ 문법상으로나 의미상으로 이와 동일한 것이 마 27:52이다: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잠과 죽음 사이에 공존하는 의미가 일찍이 호머(Homer)에게서도 이미 증명되며, 70인역본에서도 증명되기 때문에 우리는 이 연관성을 과장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용어는 새 생명에로 부름받을 사람과 이미 "잠든" 즉 죽은 사람을 동일시하려는 목적에 잘 부합된다.||(c) 고전 7:39; 고전 15:6; 고전 15:51에서 코이마오마이는 '죽다'의 정확한 상당어구로 사용되었다.|① 고전 7:39, "아내가 그 남편이 살 동안에 매여 있다가 남편이 죽으면 자유하여 자기 뜻대로 시집 갈 것이나 주 안에서만 할 것이니라".|② 고전 15:6,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태반이나 살아 있고 어떤 이는 잠들었으며".|③ 고전 15: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④ 행 7:60; 행 13:36; 벧후 3:4에서도 나타난다.||(d) 요 11:11-요 11:12(요 11:11-요 11:14), "11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또 가라사대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12 제자들이 가로되 주여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 하더라".|요한은 이 나사로의 부활 기사에서 제자들의 그릇된 이해를 보여주기 위하여 순전히 의도적으로 이 동사에 대한 고대의 애매모호성을 이용하고 있다. 예수님은 나사로가 죽었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제자들은 치유를 가져올 일종의 짐을 예수님이 의미한다고 이해하고 있다. 여기서도 아마 그 언어를 사용하여 인간적으로는 정복할 수 없는 죽음의 권세를 이기신 예수님의 승리에 주의를 집중시키려한 것이다. 이 권세를 이긴 자에게는 다나토스($2288: 죽음)가 휘프노스($5258: 잠)에 지나지 않는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L. Coen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