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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란
koivth
침상, 부부의 침상이나 잠자리(동침), 성교.||#1. 일반 헬라어 문헌||코이테는 `침상'이라는 일반적인 의미와 `부부의 잠자리(동침)'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Aeschylus, Sophocles). 이 단어는 또한 `동물의 우리, 새의 보금자리', 그리고 `상자, 바구니'를 의미하기도 한다.||#2. 70인역본의 용법||코이테는 70인역본에서 약 77회 나오며, 7개의 히브리 단어군을 번역하고 있으며, 주로 히브리어 샤캅 어군(눕다/덮음,배출물/교접,교미,결합/침상)의 역어로 사용되었다.||(a) 코이테는 레 15:24에서 월경중에 있는 여인과 동침하는 것에 대해 사용되었다: "누구든지 이 여인과 동침하여 그 불결에 전염되면 칠 일 동안 부정할 것이라 그의 눕는 상은 무릇 부정하니라".||(b) 코이테는 삼하 11:13; 왕상 1:47; 미2:1 등 많은 경우에 잠을 자거나 휴식을 취하는 장소로서의 `침상', 출 10:23에서 눕거나 앉는 장소로서의 `처소', 사 56:10에서 `휴식', 출 21:18에서 `병상'(욥 33:19; 시 41:3도)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c) 코이테는 렘 50:6에서 양`우리', 사 11:8에서 뱀`굴', 미 2:12에서 `목장', 렘10:12에서는 들짐승의 `굴'(욥 37:8; 욥 8:40에서도 거처나 굴)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d) 코이테는 레 15:18에서 교합의 완성이란 뜻의 `설정'의 행동을 묘사하고 있다. 비슷한 표현의 용례가 레 19:20; 민 5:13에도 나온다. 그러나 레 15:16,17에서 이 단어는 교합과 관계없는 설정의 의미로 사용되었다.||(e) 코이테는 휴식이라는 의미의 `침상'을 의미하는데, 단 침상이 성을 연상시키는 경우에 한해서이다. 이런 관념은 여러 형태의 성적 부정에 관하여 다루는 레위기의 규례에서 파생되었다(레 15:21,23,24,26). 잠 7:17에서 이 단어는 `창녀의 침대'를 뜻하는데 사용되었으며, 따라서 암시적인 의미에서 `성교'라는 의미를 함축한다. 이 단어는 사 57:7에서도 마찬가지로 사용되었으며, 선지자는 사람들이 산 위에 침상을 마련한 것에 대해 책망한다. 그것은 우상숭배에 관한 내용이며, 따라서 영적 간음이라는 의미를 나타낸다.|코이테는 레 16:22; 20:13에서 남자와 `교합(동성애)', 민 31:17,18,35와 삿21:11,12에서 남자와 `잠자리를 아는 것'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레 18:20,23; 민 5:2에서 `교합'이란 의미로, 모든 경우에 혼외 정사를 뜻한다.|코이테는 또한 창 49:4와 대상 5:1에서처럼 부부침상(동침)이란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히브리어 단어들을 묘사하기도 한다.||#3. 신약성경의 용법||코이테는 신약성서에 4회 나오며, `침상, 부부의 동침, 성교'라는 의미를 나타낸다.||(a) 눅 11:7에서 이 단어는 휴식처로서의 `침상'이란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 비유에 나오는 어떤 사람은 자신과 그의 가족이 잠자리에 들었기 때문에 도움을 청하는 사람을 도울 수 없다고 주장한다.||(b) 롬 9:10에서 이 단어는 에스 헤노스 코이텐 에쿠사(개역:"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는데")라는 표현에 등장하며, 성교에 대한 완곡한 표현이며, 결과에 대한 원인을 수반하고 있는 환유법적 표현이다. 이 구절은 `한 사람 곧 남편과 잠자리를 같이 한 것'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다' 번역되었다. 이 구절의 신학적 요점은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쌍둥이를 잉태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쌍동이 아들들이 아직 선이나 악을 행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신적 주권안에서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고 정하셨다(롬 9:12; 참조:창 25:23). 유대 지도자들에게 이방인들을 하나님의 백성에 포함시키는 신적 주권의 일관성을 설명해 주어야 하는 바울의 입장에서, 이 논증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c) 롬 13:13에서 코이테는 복수형을 취하여 부정한 성교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d) 히 13:4에서 코이테는 구약성경에서처럼 `침소'(부부 잠자리나 동침)란 뜻으로 사용되었다. 이 문맥에서 필자는 결혼관계란 고귀한 것이며, 동시에 고귀하게 간직되어야 할 것이라고 확언하고 있다.|(참조: T. McComiskey; Robertson; J. H. Thayer).
코이톤
koitwvn
침소 bed chamber||#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코이톤은 코이테($2845: 침대, 침소)에서 유래했으며, '잠자는 방, 침실'을 의미하며, '침실 관리인, 침실 시종'(호 에피 투 코이톤)에 대해 사용했다(Diod., Epict.).||#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코이톤은 70인역본에서 침실 시종이나 관리자에 대해 사용되었다(삼하 4:7; 출 8:3; 에스드라상 3:3).||#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코이톤은 신약성경에서 행 12:20에 한번 나오며, '침실'을 뜻하며, 왕의 침소 관리에 대해 사용되었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붉은(빛)
kovkkino"
진홍색, 주홍색.||#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콕키노스(Herodas, Plut., Epict.)는 콕코스($2848: 낟알 a kernel, 아일렉스 코기페라 ilex coccifera의 알; 이 알들[berry]은 한 곤충의 암컷, 암연지벌레의 알 덩어리이다, 그리고 이것을 모아 빻으면 염색에 사용되는 붉은 색이 나온다, Plin)에서 유래했으며, '주홍색, 홍색의' scarlet-colored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형용사 콕키노스는 70인역본에서 약 45회 나오며, 히브리어 샤니(8144: 진홍색, 창 38:28; 수 2:18; 삼하 1:24 등), 톨라(8138: 벌레, 분홍색 물질이나 재료; 출 25:4; 출 28:8; 레 14:49), 카르밀(3758: 진홍색; 대하 2:6; 대하 3:14)의 역어로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콕키노스는 신약성경에서 6회 나온다. 신약성경에서 콕키노스는 로마의 관습 및 복장과 관련되어 있다. 붉은색은 전쟁의 색깔이다. 붉은 망토는 육군 원수와 황제의 표시이다.||(a) 마 27:28, "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여기서 예수님께서 홍포(진홍색 망토)를 입혔다. 이것은 아마도 군인의 망토였을 것이다. 여기서 분명히 군복이 참된 왕 또는 황제의 복장을 대신해서 사용되었다. 온유와 평화의 왕(참조: 마 21:5)이 로마 군대의 호전적인 복장으로 입혀진 것이니 이것은 예수님의 주장을 잘못 이해하고 잘못 생각했기 때문이다: '군인들의 견해에 따르면 유대인의 왕이 되기 위하여 예수님은 그의 군대로 로마 군대를 대항해야 했다고 한다(Schl. Mt.).||(b) 히 9:19, "모세가 율법대로 모든 계명을 온 백성에게 말한 후에 송아지와 염소의 피와 및 물과 붉은 양털과 우슬초를 취하여 그 책과 온 백성에게 뿌려". 여기서 붉은 양털이 율법 아래서의 속죄와 관련하여 언급된다(참조: 레 14:4; 레 14:6).||(c) 진홍색과 자주색은 요한계시록에서 세상의 악마적 능력의 과시를 나타낸다.|① 계 17:3; 계 17:4, "13 곧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광야로 가니라 내가 보니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의 몸에 참람된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 14 그 여자는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② 계 18:12; 계 18:16, "12 그 상품은 금과 은과 보석과 진주와 세마포와 자주 옷감과 비단과 붉은 옷감이요 각종 향목과 각종 상아 기명이요 값진 나무와 진유와 철과 옥석으로 만든 각종 기명이요 16 가로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이여 세마포와 자주와 붉은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민 것인데".||자주색과 주홍색(scarlet)은 계시록에서 마귀의 능력 바벨론의 세속적 화려함을 나타낸다. 여자가 붉은 빛(scarlat) 짐승을 타고(계 17:3), 자주빛과 붉은 빛(scarlet) 옷을 입고 있다(계 17:4). 그 예언자는 빛깔에 있어서의 짐승과 여자 사이의 이런 유사성을 강조한다. 그는 분명히 계 6:4과 계 12:3의 불타는 붉은 색(fiery red; 퓔로스)과 계 17:3; 계 17:4; 계 18:12; 계 18:16의 주홍색(scarlet; 콕키노스)을 구별하고 있으며, 주홍색과 자주색은 함께 연결되어 있다(포르퓌루스, 요 19:2; 요 19:5; 계 17:4; 계 18:16; 포르퓌라, 계 1:12). 오직 자주색과 주홍색 만이 이 여자의 행위, 즉 음행과 불경과 가증스러운 행위와 성도들과 예수님의 증인들의 살해의 포도주에 의한 방탕함과 유혹(계 17:1-계 17:6)에 어울린다. 여기에서 붉은 색은 악마의 가증스러운 행위, 사악한 음행과 하나님께 적대적인 세력을 요약한다.|메시야의 군대는 흰 세마포를 입고 백마를 타고 있다(계 19:11-계 19:14). 메시야에게는 피가 뿌려졌으나(피에 잠긴, 계 19:13; 참조: 사 63:1), 요한은 여기에서 어린 양의 깨끗케 하고 속죄하는 피에 대해 말하고 있다(계 7:14; 계 1:15). 믿음의 증거는 어린양의 피에 씻어 희게 하는 것이다. 하늘의 말탄 자와 하늘의 공동체의 흰 색은 짐승과 여자의 붉은 색에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예언자의 심상 이면에서 다시 한번 제식적인 개념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악마적인 주홍빛을 언급할 때에 예언자는 또한 옛 예언자의 회개에 대한 설교를 염두에 두고 있다.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이여 세마포와 자주와 붉은 옷을 입고 금과 보속과 진주로 꾸민 것인데"(계 18:16) 모든 사치는 모두 적그리스도적이며 마지막 하나님의 심판 때에 멸망할 것이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콕코스
kovkko"
씨앗 seed.||#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콕코스(Hom., Hdt. 이래)는 기본어이며, '낱알, 씨앗, 공물, 곡식'을 의미한다. 신약성경 이외에서 콕코스는 붉은 베리(berry)와 주홍색을 의미한다(참조: 클레멘트일서 8:3).||#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콕코스는 신약성경에서 7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마 13:3,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가지를 저희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병행구 막 4:31; 눅 13:19). 큰 관목으로 자라나는 겨자씨는 거룩한 행위로서 포괄적인 중요성이 있는 예수님의 겸손한 가르침을 나타낸다. 새들이 그 가지에 둥우리를 짓는 나무(참조: 겔 17:22-겔 17:23)는 모든 민족에게 확장될 통치를 상징한다.||(b) 눅 17:6, "주께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겨자씨 한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여기서 겨자씨는 작으나, 단단한 뽕나무에 비교되었지만, 이 겨자씨는 능히 뽕나무를 뽑아 제거할 수 있다.||마 17:20에서는 뽕나무 대신에 산을 옮길 수 있다고 한다: "가라사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여기서 말하는 바는 아주 작은 믿음이라 할찌라도 그 능력은 매우 크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은 인간의 믿음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믿음은 자신에게서 하나님께로 눈을 돌리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면 불가능한 것이 가능하게 된다.||(c) 바울과 요한은 모두 밀알(고전 15:37; 요 12:24)에서 거룩한 행동과 창조의 표징을 발견한다.|① 고전 15:37, "또 너의 뿌리는 것은 장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갱이 뿐이로되". 바울은 씨가 땅에 묻혀 생명으로 살아나오는 것에서 옛 형체와 새 형체의 연속성에 대한 상징을 깨닫는다.|② 요 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반면에 요한은 동일한 것에서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의 필요성, 그리고 주님과 제자를 연결하는 하나님의 율법의 필요성에 대한 상징을 발견한다. 이러한 종말론적인 비유적 묘사는 요한에게 있어서 그리스도론적인 긴박성을 지닌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O. Michel).
콜라조
kolavzw
짧게 자르다, 벌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콜라조(trag., Pla. 이래; Dit.)는 콜로스(%531: 짧게 잘린)에서 유래했으며,||(a) '짧게 자르다' to cut short, '잘라내다' to lop, '자르다, 깍아 다듬다' to trim을 의미하며,||(b) 비유적으로|① '방해하다' to impede, '억제하다, 제지하다' restrain,|② '벌하다, 징벌하다', 수동태로서 '손실을 당하다'를 의미한다.|하나님의 징계에 대해 흔히 사용된다. 비문에서는 제의적 법률을 범한 자들을 신이 벌한다고 한다. 몇몇 유명한 저자들은 악을 신의 응보로 간주하기도 한다.|필로는, 비록 하나님은 벌하기 보다는 오히려 용서하시고 도리에 따르지 않는 자들만 벌하실 테지만, 은혜와 응보에서 존재의 두 가지 기본적인 세력을 보았다. 형벌은 영혼의 거짓된 상태로부터 자유롭게 함으로 축복을 가져온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콜라조는 70인역본에서 약 23회 나오며, '벌하거나 징벌하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지혜서 3:4; 11:5; 11:8; 11:16; 12:14; 12:15; 12:27; 14:10; 16:1; 16:9; 18:11; 18:22; 집회서 23:21; 단 6:13; 마카베오일서 7:7; 마카베오이서 6:14; 마카베오삼서 3:26; 7:3; 7:14; 마카베오사서 2:11; 8:6; 18:5).||#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콜라조는 신약성경에서 2회 나오며, 사도행전과 베드로후서에만 사용되었다.||(a) 행 4:21, "관원들이 백성을 인하여 저희를 어떻게 벌할 도리를 찾지 못하고 다시 위협하여 놓아 주었으니 이는 모든 사람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이러라".||(b) 벧후 2:9,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 두어 심판날까지 지키시며". 여기서 콜라조는 하나님의 형벌에 대해 사용되었다. 심판의 날이란 말은 악인은 죽음과 심판 사이의 시간을 보여준다. 악인들에게는 이 때가 형벌로 채워질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운명이 최종적으로 정해질 그날까지 이 무서운 상태에 머물고 있을 것이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J. Schneider).
아첨
kolakeiva
아첨 flattery.||#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콜라케이아(Pla. 이래)는 콜라큐오(%532: 아첨하다)에서 유래했으며, '아첨' flattery을 의미한다.|70인역본에는 나타나지 않는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콜라케이아는 신약성경에서 살전 2:5에 한번 나온다: "너희도 알거니와 우리가 아무 때에도 아첨의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아니한 것을 하나님이 증거하시느니라". 여기에서 바울은 그의 설교에서 대부분의 헬라의 웅변가들과 달리 아첨의 말을 사용하지 않았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kovlasi"
형벌, 징벌.||#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콜라시스(Hippocr. 이래)는 콜라조($2849: 짧게 자르다, 징벌하다)에서 유래했으며, '형벌, 징벌'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콜라시스는 신약성경에서 마태복음과 요한일서에만 사용되었다.||(a) 마 25:46,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실질적인 윤리적 직무를 다하지 못하는 자들은 영원한 '형벌'을 받기 위해 나아갈 것이다.||(b) 요일 4: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여기에서 두려움 그 자체가 형벌이라고 언급한다(참조: 요일 3:8). 사랑이 이 두려움을 쫓아낸다. 사랑은 모든 두려움으로부터 자유한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J. Schneider).
매 맞다
kolafivzw
치다, 때리다 beat.||#1. 일반 헬라어의 용법||동사 콜라피조는 콜라포스(%117: 주먹으로 가하는 타격)에서 유래했으며, '주먹으로 치다'라는 의미에서 '치다, 학대하다'를 가지게 되었다. 70인역본에는 나타나지 않는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콜라피조는 신약성경에서 5회 나오며, 문자적 의미와 비유적 의미로 사용되었다.||(a) 콜라피조는 마 26:67의 수난기사에서 문자적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에 예수의 얼굴에 침 뱉으며 [주먹으로 치고] 혹은 손바닥으로 때리며".|막 14:65에서도 마찬가지였다.||(b) 콜라피조는 고전 4:11과 벧전 2:20에서 상용어법으로 사용되었으나 영적 고통이라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벧전 2:20은 21절 이하에 기록된 그리스도의 수난을 반영한다.||(c) 콜라피조는 고후 12:7에서 비유적으로 육체의 가시인 사탄의 사자에 대해 사용되었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육체의 가시는 박해나 음행에 대한 유혹을 가리키는 것 같지는 않고, 바울의 시각과 관련있는 극심한 고통과 관계있는 것 같다. 바울이 앓은 고통에 대하여 안질, 간질, 신경쇠약증, 편두통, 말라리아, 문둥병, 언어장애 등 여러 가지 진단을 내려왔었다. 갈 4:15; 갈 6:11(참조: 갈 6:17)은 심한 눈병이라는 이론을 뒷받침해 준다. 그러나 이 중 완전히 신뢰한 만한 것은 없다. 바울 자신은 기도 중에 그의 고난에는 깊은 의미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참조: 고후 12:9). 그리스도 역시 사단과 그 사자들 때문에 고난을 당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승리자이시며, 그리스도의 능력이 바울의 연약함 가운데 완전하게 나타난다.|(참조: K.L.SCHMIDT.; E.M.Embry).
교제하다
kollavw
결합하다, 부착(집착)하다, 달라붙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콜라오는 핀다르(Pindar) 이래로 나타나는데, 콜라(아교, 접착제)에서 유래했으며, '아교로 붙이다, 함께 굳게 결합 또는 접합시키다'를 의미한다. 문자적인 예로는 깨어진 그릇을 '붙이다', 금과 상아 세공을 '붙이다', 보리를 물에 '담그다', 상처를 '싸매다' 등이다(Galen). 이 단어는 또한 독이 몸 속으로 '스며들다'라는 의미로도 사용되었다(Hippocrates).|비유적 의미로 이 단어는 '망상 속에서 인간성이 [합일된다]'는 말에 나타난다(Aesch., Agamemnon 1566).||#2. 70인역본의 용법||(a) 콜라오는 70인역본에서 38회 나오며, 5개의 히브리어를 번역하였는데, 그 중에서 주로 히브리어 다바크(달라붙다, 부착, 접착하다)의 역어로 사용되었다.|콜라오의 기본적인 의미는 시 22:15; 시 37:6; 욥 29:10, 에 4:4에 나타나는데, 목마름으로 혀가 '달라 붙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문둥병, 흑사병 혹은 질병이 사람에게 '달라 붙는다'고 말하기도 한다(왕하 5:27; 신 28:21, 신 28:60).||(b) 콜라오는 자주 어떤 사람과 '합동하다', 그에게 '부착(굳게 결합)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예를 들면, 룻 2:8,21에서 소년들과 함께 있는 것. 삼하 20:2에서 유다 사람들이 왕과 합하는 것, 시 1O1:3에서 나쁜 것들이 결합하는 것, 시 119:3에서 주의 증거에 부착하는 것, 욥 41:15에서 비늘이 서로 결합되어 있는 것 등에 대하여 사용되었다.||(c) 콜라오는 남녀간 성관계를 포함하여 '연합이나 결합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창2:24에서 남자가 아내와 연합한다. 이러한 결합은 성적 결합 이상의 것을 의미하며, 그 의미는 전체 관계에까지 확산된다. 왕상 11:2에서 솔로몬이 이방 여인들과 연합하였고, 따라서 그녀들의 종교적인 영향을 받게 되었다. 집회서 19:2에서 창부와 연합하는 자는 지혜와 일치하지 아니하는 영향 아래 오게 된다.||(d) 콜라오는 하나님과 연합하는 것에 대해 사용되었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를 섬기며 그에게 친근히 하고"(신 10:20; 참조: 신 6:13; 왕하 18:6; 렘 13:11). 여기에서의 강조는 문맥의 제의적, 법적인 것과는 대조적으로 하나님과의 내적 연합에 있다.|(참조: H.Seebass).||#3. 신약성경의 용법||콜라오는 신약성경에서 10회, 수동태나 중간태로만 나오며 70인역본의 용법을 따른다.||(a) 콜라오는 눅 10:11에서 기본 의미 '달라 붙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우리 발에 [묻은] 먼지도...".||(b) 콜라오는 행 8:29에서 '∼밀접히 붙이는 것', 곧 '∼와 합류(결합)하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성령은 빌립에게 "이 병거로 가까이 나아가라"고 명령하셨다. 이 문구는 문자적으로 '이 병거에 다가가서 [합류하라]'고 번역할 수 있다.||(c) 콜라오는 눅 15:15에서 자신을 주인이나 다른 사람에게 '붙이다, 소속시킨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그 나라 백성 중 하나에게 붙어 사니". 방탕한 아들이 이방의 한 시민들에게 속하여 살았다.||(d) 콜라오는 행 5:13; 행 9:26; 행 10:28에서 '어떤 사람과 친밀한 교제를 가지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바울은 교회와 사귀고자 하였다(행 9:26), 예루살렘 백성들이 기독교인들을 칭송하였으나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은 감히 그들과 상종치 않았다(행 5:13). 유대인으로서 다른 민족, 즉 이방인을 "가까이하는 것"은 비난받을 만한 것이었다(행 10:28). 왜냐하면 그들은 율법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e) 콜라오는 행 17:34에서 제자직의 형태를 취한다: "몇 사람이 그와 친하여 믿으니".(참조: K.L.Schmidt).||(f) 하나님과 연합한 신자는 반드시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해야 한다]'(롬 12:9). 그는 그의 몸으로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되었으므로 그는 창부와 한 몸 즉 인격적인 연합체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기 때문이다(고전 6:17). 그는 또한 이 영안에서 살아야 하며 완전히 주님의 행동과 계시를 따라야 한다. 그러나 창부와 연합하는 자는 그녀처럼 될 것이다(고전 6:16). 창부와 성적 관계를 갖는 사람은 영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는 순전히 육체적인 행위만을 저지른 것이 아니다. 그가 행하는 모든 일에서 그의 전인간이 드러난다. 창부와 연합하는 자는 그녀와 공동의 실존을 지니는 것이다. 순전히 성적인 범죄란 존재하지 않는다. 창부의 영과 그리스도의 영은 상호간에 서로 배척한다.|(참조: J.H.Thayer; K.L.Schmidt; H.Seebass).
안약
kollouvrion
안약.||명사 콜루리온(Epict.)은 브루기아에서 제조된 눈에 바르는 가루약이었을 것이다. 라오디게아의 의료 학교는 이 가루약으로 유명했던 것 같다.|이 안약은 계 3:18에서 한번 나온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여기서 비유적으로 '그들의 영적 눈먼 상태를 치료하는 안약'을 가리킨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돈 바꾸는 자
kollubisthv"
환전업자 money-changer||명사 콜뤼비스테스는 콜뤼보스('작은 경화', '환시세')에서 유래했으며, '환전업자, 은행가'를 의미한다.|신약성경에서 3회 나오며, '환전업자' 즉 '돈 바꾸는 자'를 의미한다(마 21:12; 막 11:15; 요 2:15).|(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콜루리온b
kolluvrion
안약 eye-salve.||#1.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콜루리온은 '안약, 세안수'(현대의 영어로 eye-wash, collyrium)라는 이 물질은 고대에 있어서 흔한 것이었다. 그것은 용도가 다양하였으나 특히 안약으로 사용되었다. 헬라, 라틴 그리고 랍비 문학에서 그것에 대한 언급이 많이 발견되고 있다.||#2. 신약성경의 용법||콜루리온은 신약성경에서 계 3:18에 한번 사용되었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콜루리온에 대하여 찰스는 라오디기아에 있는 의학교가 사용한 브루기아산 가루약이라고 한다. 우리는 이 단어의 의미를 라오디게아시의 번영을 상기시키는 황금과 그 지방에서 나는 유명한 검은 모직물과 대조되는 흰 옷에 대한 언급과 함께 이해해야만 한다. 위에 언급된 이 세가지 항목들은 그 교회가 깨닫지 못함으로써 잃어버린 영적인 가치를 상징한다(17절). 세속적으로 부유한 그 교회의 성원들은 참다운 행복의 본질과 근원을 잘못 생각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참조: J.H.Thayer; W.L.Liefeld).
감하다
kolobovw
짧게 자르다, 절단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콜로보오(Aristot.)는 콜로보스(%533: 잘린, 절단된)에서 유래했으며, '잘라내다'(Aristot., Diod.), (수족 따위를) '절단하다'(Polyb.)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콜로보오는 신약성경에서 4회 나오며,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만 사용되었다.||(a) 마 24:22,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할 것이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병행구 막 13:20). 여기에서 콜로보오는 비유적으로 '짧게 자르다'라는 의미에 '짧게 잘라 줄인다'라는 의미를 함축한다. 하나님은 고난의 때를 감하신다. 하나님은 압제자들의 의도와 세력의 기간이 될 수 있는 것보다 더 단축시킬 것이다. 한편 그들의 세력은 절단되고 병신이 되어 제대로 쓸 수 없게 되어 그들이 꾀하는대로 행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하여 하나님은 선택된 자들의 육체적 파멸로부터 보호하실 것이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G. Delling).
골로새
Kolossaiv
골로새 Colossae(지)||콜롯사이(골로새)는 '버림'을 의미하며, 신약성경에서 콜롯사이라는 이름은 골 1:2에 한번 나온다.|신약시대 로마 제국의 아시아 속주에 위치한 브루기아의 한 도시. 골로새의 위쪽으로 약 17km 지점에 루커스 계곡이 있고, 좀 더 위에 라오디게아가, 약 21km 지점에 히에라폴리스가 있다. 이 세 도시들은 삼각형을 이루고 있다. 바울은 인구가 매우 조밀했던 소아시아의 남서부 지역으로 가는 관문인 에베소에 거하면서 풍성한 열매를 거둔 시기에(행 19:10) 이 도시들에게 전도의 사역을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골로새는 원래 에베소에서 유브라테스강으로 통하는 주요 도로에 위치해 있었고 동쪽으로는 사데와 버가모로 통하는 대로의 교차점에 있었다. 또 골로새는 무역과 교통의 주요 간선이 보급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지역 여러 곳에 복음을 심는 것이 바울의 가시적인 정책이었다. 루커스 계곡의 활동적인 기독교 공동체가 라오디게아와 골로새 모두에서 생생하게 예증된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그 풍요 때문에 문제가 야기되었고 골로새 교회는 세계주의적 공동 사회의 이단적 철학의 문제가 있었다. 골로새는 로마 제국 하에서 그 중요성을 상실하였다. 왜냐하면 버가모로 통하는 길이 서쪽으로 이동했으며, 적극적이고 상업적으로 진취적인 사회인 라오디게아가 이웃 도시의 상업과 중요성까지 흡수해 버렸기 때문이다. 원래 골로새는 라오디게아의 양모 무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고 페르시아 시대에는 입지적인 면이나 중요성에서 라오디게아를 능가했었던 것같다. 아하수에로(Xerxes)가 그 길을 통과했고(Her 7.30), 고레스(Cyrus)도 역시 이 길을 통과했다(Xen. Anab. 1. 2. 6). 그리고 두 역사가들이 골로새를 군대 행군시 작전 기지로 언급한 사실은 주전 5세기 초엽과 말엽에 골로새의 중요성을 지시해주는 것이다. 라오디게아는 주전 260년까지는 세워지지 않았으며 골로새에게는 경쟁 상대가 없었다.|골로새에 대한 기독교사는 추측으로만 재구성할 수 있다. 바울은 골로새를 방문한 적이 분명 없기 때문에(골 1:4; 골 2:1) 그곳에 교회를 세운 사람은 경건한 골로새인 에바브라로 생각된다(골 1:7; 골 4:12). 바울이 골로새를 방문했다면 그것은 바울이 편지를 쓰고 골로새 교회가 세워진 이후였을 것이다(몬 1:22). 아깁보가 골로새에서 풍성한 사역을 수행한 것 같으며(골 4:17; 몬 1:2), 빌레몬과 그의 종 오네시모는 그 교회의 일원이었다(골 4:9; 몬 1:10). 바울이 로마의 옥중에 갇혀 있는 동안에(행 28:30) 에바브라는 골로새 교회의 형편을 그에게 보고했으며, 이로 인해 바울은 골로새서를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바울은 이 골로새서에서 건전한 교리에서 벗어나는 것을 책망하고 철학적 오류에 빠진 자들에게 순수한 기독교리로 돌아와 그리스도의 온전한 능력(all-sufficiency)을 믿도록 촉구했다.|골로새는 7-8세기, 소아시아에서 비잔틴 세력의 몰락이 침략자들에게서 그 지위를 폭로하게 되었을 때 비참하게 약화되었다. 그때 남은 인구는 카드무스산 기슭 근처에 있는 오늘날의 코나스(Chonas)인 코내(Chonae)로 이주하였다. 그 후 12세기 터키의 침공으로 완전히 멸망하였다. 골로새 유적지는 현재 사람이 거주하지 않으며, 데니즐리시에서 16km 가량 떨어져 있다. 고고학적 조사로 골로새 교회의 위치가 확인되었다.|(참조: HBD; Walter Bauer; J. H. Thayer).
콜롯사유스
Kolossaeuv"
골로새의 Colossian||콜롯사유스는 골로새서의 표제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