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해설 199 페이지 > 기독정보닷컴

아담한
kovsmio"
존경스러운 respectable, 명예로운, 고상한 honourable.||#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코스미오스(Aristoph. 이래로)는 코스모스($2889)에서 유래했다. 이 단어는 처음에는 질서있고 균형잡힌 인품을 가리키는 철학적 용어였는데, 후에 '예절바른, 존경할만한, 영예로운, 고결한'이란 의미로 발전했다.||#2. 70인역본의 용법||코스미오스는 70인역본에서 전 12:9에 한번 나오며, 히브리어 타칸(곧게 하다, 바르게 하다)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여기서 코스미오스는 '정리나 편집하다'라는 의미를 지닌다.||#3. 신약성경의 용법||코스미오스는 신약성경에서 디모데전서에서만 2회 나타난다.||(a) 딤전 2:9에서 코스미오스는 '예절바른'이란 의미를 나타낸다: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아담한 옷을 입으며 염치와 정절로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b) 딤전 3:2에서 코스미오스는 '존경할만한'이란 의미를 나타낸다: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근신하며 아담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참조: H. Sasse; J. Guhrt).
세상 주관자
kosmokravtwr
세상의 통치자.||#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코스모크라토르는 코스모스($2889: 세상, 세계)와 크라테오($2902: 강하다, 통치하다)에서 유래했으며, '세계의 통치자(지배자)'를 의미한다(Orph. Hymns 8, 11 등).|이 명칭은 혹성들 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인간의 운명을 좌우하는 우주의 주관자들에 대한 명칭이다. 70인역본과 필로(Philo)는 이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단어가 랍비 문헌에서 차용어로 다시 나온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코스모크라토르는 엡 6:12에 한번 나온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여기서 코스모크라토르는 복수가 사용되어 우리가 투쟁해야 할 세상의 통치가들과 악한 영을 가리키고 있다.
단장
kovsmo"
질서 order, 꾸밈, 장식 adornment , 세계(세상) world.||#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코스모스(Homer 이래로)의 어원은 불확실하다. 그 본래 의미는 '건설이나 설립, 확립'을 의미하며, 질서(order)라는 의미와 관련되어 있다. 이 단어는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a) 코스모스는 '개개의 구성 요소나 부분들이 잘 모아지거나 구성된 것'을 나타낸다. 예를 들면 기병대의 조직(Homer), 말(words)의 구성(parm. Fr.) 등이다.||(b) 코스모스는 조직의 대상들이 하나로 통합되는 개개인들로 구성될 때, 사람들간의 질서를 의미하나, 노젓는 이들이 앉는 배열(Hom. Od.), 전투를 위한 대형에 대해 사용되었으며, 이 군사 용어에서 코스모스는 도시 국가의 시민 사회의 삶의 규정, 제도라는 보통 정치적 용어가 되었다(plat. Leg). 코스모스는 스파르타에서 국가의 법적 용어로, 크레데(Crete)에서 직함(official title)으로 사용되었다.||(c) 코스모스는 '질서(order)'라는 일반적 의미를 가지며, 이 의미에서 '바른 질서를 따라, 질서 정연하게, 바르게'를 의미한다.||(d) 아름다움이란 개념이 잘 정돈된 것과 분리될 수 없기 때문에 코스모스는 '장식, 꾸미기'라는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여인들, 건물들, 신전들, 벽들, 제의적 행위들과 관련하여 사용되었다(Hom.11.,Hes. Op.,Soph.Al.,P. Oxy.).||(e) 코스모스는 세계라는 의미를 가진다. 헬라 철학에서 코스모스는 근본적인 용어로 등장하는데 대체로 세계질서, 세계의 체계, 이러한 질서에 의해 유지되는 사물의 총체, 공간적인 의미에서의 '세계, 우주, 땅'과 그 거민들, 인류라는 의미를 가진다.||#2. 70인역본의 용법||(a) 코스모스는 70인역본에서 약 70회 나오며, 다음과 같은 히브리어 단어들의 역어로 사용되었다.|① 아디(장식)의 역어로 8회 사용되었다(출 33:5, 6; 렘 2:32; 렘 4:30 등).|② 켈리(장식, 보석)의 역어로 1회 사용되었다(사 61:10).|③ 티베렛(장식)의 역어로 2회 사용되었다(잠 20:29; 사 3:18).|④ 차바(천체군, 별)의 역어로서 5회 사용되었다(창 2:1; 신 4:19; 신 17:3; 사 24:21; 40:26).|⑤ '세계 world'라는 의미로는 70인역본에서 외경에서만 발견된다.|따라서 코스모스는 70인역본에서 하늘의 군대, 장식, 별들, 질서, 세계, 하늘과 같은 개념을 나타낸다. 지혜서와 마카베오서 같은 책들에서 '천지'라는 더 오래된 용어 대신 코스모스가 사용될 때 '우주'라는 의미를 지닌다.||(b) 구약성경에서는 헬라어 코스모스와 부합되는 세계에 해당하는 말이 없다. 우주를 하늘과 땅이라고 부른다. 구약성경에는 문자만 없는 것이 아니라 우주에 대한 헬라적인 개념마저 없는 것이다. 구약성경의 사고방식에 의하면 세계는 독립된 개체가 아니라 항상 창조주이신 하나님과의 관련 속에 있는 것이다.|창조기사(창 1:1-2:4)는 우주론에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진술이 뜻하는 유일한 목적은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주 하나님을 증거하는 일이다.||(c) 코스모스가 '우주'라는 의미로 흔히 사용된 것은 후기 헬라 작품에서만 나타나며, 이런 용법은 분명히 헬레니즘 유대교에 의하여 그 당시 용법으로부터 채택된 것이며, 철학적인 가르침의 흔적도 전해준다. 하나님께서 우주의 창조주, 주, 왕이라고 불리워질 수 있다는 사실은 이 단어가 아마도 예배 용어로 사용되었을 것이라는 점을 보여준다(참조: 요 1:9).|코스모스의 용법의 영향을 받아 올람(영원)과 같은 히브리어 용어는 새로운 공간적 의미를 갖게 되었다. 인간을 소우주로 보는 헬라 개념이 랍비적 사고에 유입된 것도 발견된다.||#3. 신약성경의 용법||코스모스는 신약성경에서 185회 사용되었으며, 그 중 78회는 요한복음에서, 24회는 요한의 서신들 중에서, 47회는 바울서신에서, 14회는 공관복음서에서 쓰였으며, 22회는 신약성경의 나머지 문서들 중에서 사용되었다.||(a) 코스모스는 '장식'이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코스모스는 신약성경에서도 일반 헬라어나 헬라니즘 유대교에서와 같이, '세계 world'를 의미한다. 유일한 예외는 벧전 3:3에서 이 단어는 '장식, 꾸밈'이란 의미를 나타낸다: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b) 코스모스는 우주, 즉 피조물의 전체인 세계를 의미한다.|① '우주'로서 코스모스, 구약성경의 '하늘과 땅'(행 17:24)의 동의어이다. 우주는 모든 생물이 거처하는, 공간적인 장소이다(요 21:25).|우주(cosmos)가 창조된 모든 사물의 전체라는 개념은 요 1:10과 같은 구절들에서 표현되어 있다.|② 코스모스는 모든 피조물과 같이 지속 기간이 제한되어 있다. 따라서 우주는 시작(마24:21), 창조(롬 1:20), 창세(눅 11:50; 히 4:3), 그리고 그 시대의 마지막으로 우주의 끝이(엡 2:2) 있다. 무상함이 창조된 모든 것의 특징이다(벧후 1:4). 세상은 지나간다(요일 2:17).|따라서 이 세상은 다가올 영원한 세상과 대조된다(고전 3:19; 요 12:31; 요 16:11). 그렇지만 신약성경에서는 미래에 나타날 세상을 언급할 때 코스모스를 사용하기를 피한다.|현재의 코스모스는 그 창조주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다. 따라서 코스모스라는 용어는 종말론적인 소망이 있는 영원한 세계를 나타내기에 부적합하다는 생각이다. 아이온($165)이라는 용어가 이러한 의미로 더 잘 쓰인다. 마찬가지로 신약성경에서는 대개 하나님과 관련하여 코스모스를 사용치 않는다(행 17:24은 제외).|따라서 신약성경에서는 하나님을 우주의 왕 또는 우주의 주라고 부르지 않고 대신에 만세의 왕(참조: 딤전 1:17), 또는 하늘과 땅의 주(참조: 마 11:25; 행 17:24)로 일컫는다. 현재 이 세상은 이 세상 통치자(임금)의 권세 안에 있다.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의 실행이 종말론적인 기대의 목적이다. 승리를 완전히 얻을 때 비로소 세상의 왕국이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왕국이 되었다는 노래가 울려퍼질 것이다(계 11:15).||(C) 코스모스는 인류의 거처, 역사의 현장, 곧 사람들이 사는 장소나 영역으로서의 세계, 지구를 의미한다.|① 코스모스는 인간 생활의 무대로 볼 때 '사람이 사는 세계'이다. 이 의미는 마 4:8의 "천하만국", 눅 12:30의 "세상 백성" 막 8:36의 "온 천하", 롬 4:13 "세상의 후사",롬 1:8 "온 세상"이란 표현 중에서 나타난다.|② 코스모스는 "세상에 와서"(예: 요 1:9; 요 3:19; 요 11:27; 딤전 1:15; 요일 4:1; 요이 1:7), "세상에 계셨으며"(요 1:10; 요 9:5; 요 13:1; 요일 4:17; 고후 1:12; 요일 4:3), "세상을 떠나"(고전 5:10; 요 13:1)라는 표현에서 '인류'와 근사한 의미를 나타낸다. 이러한 문구에 암시되어 있는 의미는 인간 생활의 현장이라는 의미다. 우리가 이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않았다고 말할 때(딤전 6:7), 또는 죽음은 이 세상 것, 곧 이 세상과 이별이라고 말할 때도 같은 의미를 가진다.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셨다'거나 '세상에 계신다'고 말할 때만이 코스모스에 특별한 의미가 부여된다. 왜냐하면 이제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무대라고 하는 새롭고도 독특한 신약성경의 의미가 코스모스에 부여되었기 때문이다.||(d) 코스모스는 인간 세상, 곧 타락한 피조물과 구원의 대상으로서의 세계를 의미한다.|코스모스는 인간이 사는 세계로서 '인간 세계'나 '인류'라는 보다 좁은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는 막 16:15의 지상명령에 나타난다: "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여기에서 중요한 개념은 땅에 있는 모든 거주자들에게 복음을 전한다는 것이다.|'인간 세계'라는 의미는 또한 마 5:14; 마 13:38; 마 18:7; 벧후 2:5; 히 11:7; 고전 4:13; 고전 4:9(여기에서 천사들이 포함됨)과 같은 구절에서 주요 요지이다. 하나님께 적대적인 인간 세계라는 의미는 고전 1:27 - 고전 1:28; 히 11:38에 암시되어 있다.|코스모스는 하나님의 피조물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세상의 통치자요 심판자이시다. 인간 세상은 악한 세상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인 것이다. 따라서 코스모스는 이제 구원의 현장이며, 그리스도는 세상의 구주이시다(요 4:42; 요일 4:14).||(e) 바울에게 있어서 코스모스는 전형적으로 인류학적이며, 역사적 의미를 가진다.|① 세상에는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죽음이 세상에 들어오게 되고 세상을 지배하게 되었다. 따라서 전 세상(인류)은 하나님 앞에 범죄하였으며(롬 3:19), 하나님의 심판(롬 3:6)과 정죄 아래 있다(고전 11:32). 세상을 심판할 성도들만이 이 정죄 밖에 있다(고전 6:2).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박은 자는 세상의 지배자들이었다(고전 2:8).|교회와 세상과의 관계는 변증법적으로 결정된다. 그것은 세계를 무조건적으로 거부하는 것도 아니요 무조건적인 굴복도 아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코스모스 안에서 사는 만큼(고전 5:10; 빌 2:15) 세상과의 관계는 면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은 세상과 하등의 관련이 없는 듯해야 하는 것이다(고전 7:29이하). 교회는 모든 것이 그들에게 속해 있으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그들 자신은 코스모스에 속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고전 3:21이하). 따라서 세계는 이제 복종과 신앙의 지속을 위한 도장이 되었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세상에 대해 자신이 담당해야 할 모든 책임과 세상과의 관련성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자유 속에 여전히 설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세상과 세상의 규정들에서도 자유하기 때문이다(고전 7:20이하).|② 골로새인들은 초기의 기독교가 코스모스라는 문제로 인해서 얼마나 부심했는지를 보여준다. 정사와 권세는 그리스도로 인하여 패배 당했다(골 2:15). 그러므로 코스모스를 구성하는 어떠한 요소도 의식적인 축하나 예배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이다(골 2:8; 골 2:20a). 그리스도를 통하여 코스모스의 요소들에 대해 죽은 그리스도인들은 더 이상 "코스모스 안에" 살지 않고(골 2:20b), 코스모스의 법칙과 압박에 대한 굴복에서 완전히 자유롭게 되었다. 그들의 진정한 생명은 더 이상 세상에 있지 않다. 코스모스는 신자들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혔으며, 신자들은 코스모스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혔다(갈 6:14). 그런즉 코스모스는 구속받지 않은 피조물을 집약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신자들은 이 세상인 코스모스에 순응해서는 안된다(약 1:27). 이 세상과 친구가 되는 것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이다(약 4:4).|③ 세상의 영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영의 정반대이다(고전 2:12). 세상의 지혜는 하나님의 지혜를 이해하지 못한다(고전 2:6이하). 신령한 근심은 구원으로 인도하나 세상의 근심은 그렇지가 못하다(고후 7:10).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 이 깊은 심연이 생기게한 것은 죄이다(롬 5:12).||(f) 요한의 기록에서 코스모스의 성경관이 실현되었다. 코스모스는 복음서에 상술되어 있는 구원 드라마의 무대이다. 코스모스의 모든 의미는 제 4복음서의 용법에 모여 있다. 서문에서 코스모스는 거의 우주라는 의미의 세계를 뜻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빛"이라고 부를 때(요 8:12; 요 9:2; 참조: 요 3:19; 요 12:46; 요 1:9),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오셨다거나 보내심을 받았다고 말할 때(요 3:17; 요 10:36; 요 11:27; 요 12:46이하; 요 16:28; 요 17:18; 요 18:27; 요일 4:9), 전체 코스모스를 가르키는 것이며, 단지 인간 세계를 가리키지 않는다.|세상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을 보내시어(요 3:16) 심판하려 하시지 아니하고 구원하신다(요 3:17; 요 12:47).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오셨다(요 1:29; 참조: 요일 2:2). 그러나 세상(cosmos)은 그리스도도 하나님도 모른다(요 1:10; 요 17:25). 세상은 적의로써 하나님을 반대하는 일정한 주체를 구성하여 아들의 구속 사업을 저지시키고, 그를 믿지 않을 뿐 아니라 실로 그를 미워한다(요 7:7; 요 15:18이하).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사역은 세상의 심판을 수반한다(요 12:31; 요 16:11). 그러한 언급들에서 코스모스는 말하자면 그 임금에 의해서 대표되는 집합적인 인격이다.|따라서 그리스도와 세상은 서로 대립관계에 있다(요 14:27; 참조: 요일 4:4; 요 5:18 - 요 5:19). 구속사는 그리스도와 우주 또는 그것을 지배하는 악한 자 사이의 투쟁이다(요일 4:3; 요일 5:19). 그리스도는 이 투쟁에서 승리하신다(요 16:33). 신자들은 세상에서 선택받았다(요 15:19; 요 17:6). 이 신자들로 말미암아 세상은, 아버지께서 사랑으로 아들을 보내신 것을 알게 된다(요 17:21). 세상은 그리스도인들에 대하여 증오로 대할 것이다(요 15:18 - 요 15:19; 요 17:14; 요일 3:13). 그러나 그들은 세상을 이길 것이다(요 16:33; 참조: 요일 5:4 - 요일 5:5).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가 그러하였던 것처럼 세상에 있지만(요 17:11; 참조: 요 9:5) 하나님에게서 난 자들이며 더 이상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다(요 17:16). 따라서 그들이 세상으로 보냄을 받았다 할지라도(요 17:17), 세상, 즉 육체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으로 가득찬 세상을 사랑해서는 안된다. 이것은 세상을 부정하거나 세상을 멸시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악한 세상을 이기는 믿음이다.|(참조: J. Guhrt; H. Sasse; J. H. Thayer).
구아도
Kouvarto"
구아도 Quartus(인)||그는 바울의 동역자로서 바울을 통해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문안했다. 신약성경에서 롬 16:23에 한번 나온다: "나와 온 교회 식주인 가이오도 너희에게 문안하고 이 성의 재무 에라스도와 형제 구아도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kou'm
굼, 일어나라.||쿰은 히브리어 쿰(남성 2인칭 명령)이며 아람어로는 쿠미(일어나라)에 해당한다.|신약성경에서 쿰은 막 5:41에 한번 나온다: "그 아이의 손을 잡고 가라사대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소녀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심이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파숫군
koustwdiva
경호인, 보초.||쿠스토디아(POxy. )는 '경호인, 호위, 보초'를 의미한다.|쿠스토디아는 신약성경에서 마태복음에만 2회 나온다.|마 27:65이하; 마 28:11에서 그리스도의 무덤을 지키는 로마 병사들에 대해 사용되었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가볍게 하다
koufivzw
가볍게 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쿠피조(Hes. 이래)는 쿠포스(%75: 가벼운)에서 유래했으며, '(무게를) 가볍게 하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쿠피조는 70인역본에서 11회 나오며, 일이나 멍에를 '가볍게 한다'는 의미를 나타낸다(출 18:22; 왕상 12:4, 9, 10).||#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쿠피조는 신약성경에서 행 27:38에 한번 나온다: "배부르게 먹고 밀을 바다에 버려 배를 [가볍게 하였더니]". 여기서 쿠피조는 뱃짐을 배 밖으로 던져버림으로써, 배를 '가볍게 하는' 것에 대해 사용되었다.|(참조: Walter Bauer; J.H. Thayer; W.E. Vine).
바구니
kovfino"
바구니, 광주리.||#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코피노스(Aristoph., X. 이래)는 기본어이며, '바구니, 광주리'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코피노스는 신약성경에서 공관복음에만 6회 나오며, 물건을 담아 운반하는 '바구니'와 '광주리'를 의미한다.|마 14:20,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 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마 16:9,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바구니며".|막 6:43,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 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막 8:19, "내가 떡 다섯 개를 오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바구니를 거두었더냐 가로되 열 둘이니이다".|눅 9:17, "먹고 다 배불렀더라 그 남은 조각 열 두 바구니를 거두니라".|요 6:13,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 두 바구니에 찼더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kravbbato"
침대, 침상.||#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크랍바토스는 라틴어 grabatus(캠프용 침대)에서 유래했으며, '짚을 채워 만든 침상' a pallet, '(캠프용) 접침대' camp bed이다. 다소 초라한 침대로서, 단지 한 사람 밖에 수용되지 못하며 헬라인들은 이를 스킴푸스, 스킴포디온이라 부른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크랍바토스는 아굴라 역본에서 암 3:12에 한번 나온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목자가 사자 입에서 양의 두 다리나 귀 조각을 건져냄과 같이 사마리아에서 침상 모퉁이에나 걸상에 비단 방석에 앉은 이스라엘 자손이 건져냄을 입으리라".||#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크랍바토스는 신약성경에서 12회 나오며, 마가복음(5회), 요한복음(4회), 사도행전(2회)에만 사용되었다: 막 2:4; 막 2:9; 막 2:11 이하; 막 6:55; 요 5:8-요 5:12; 행 5:15; 행 9:33.|(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부르짖게 하다
kravzw
소리 지르다, 크게 소리 지르다 cry aloud.||#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크라조는 귀에 거슬리거나 목쉰 소리를 암시하는 크르(%33)+모음+후음을 사용하는데, 까마귀가 깍깍우는 것에 근거한 것이다. 따라서 그 의미는||(a) ① 큰 소리나 쉰 목소리로 부르짖거나 '깍깍하다'를 의미한다. 호머(Homer) 이후 헬라어에서 사용되었는데 아에쉴루스(Aeschylus) 이후부터 저술에서 야생 동물들 중에 까마귀 울음소리 뿐만 아니라 개구리의 우는 소리를 나타내는데서 발견된다(Aristophanes). 이 동사는 사람들에게 보다 흔하게 사용된다.|② '부르짖어 요구하다'를 의미한다.||(b) ① 헬라 세계에서 이 어군은(지하계의 신들을 불러내는) 귀신의 영역과 마술의 영역(주문)과 관련되어 종교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루시칸(Lusican)은 이 동사를 피의 제사를 드린 후에 마술사가 지하 세계의 신들을 불러내는 주문을 묘사하는데 사용했다. 이 동사는 신들에게 울부짖고, 알아들을 수 없는 중얼거림과 신비적으로 탄원하는 것을 나타내기도 한다(Hippolitus). 여자 마법사들은 마술적인 주문을 큰 소리로 왼다. 헬라인들과 로마인들은 대부분 이러한 외침이 신들에게 합당치 못한 것으로 생각했다.|② 이 단어는 선포(proclamation)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신비주의의 사제는 엘류시스(Eleusis)의 큰 신비들을 선포한다(Hippolytus, Plutarch).||#2. 70인역본의 용법||크라조는 70인역본에서 100회 이상 나오며, 주로 히브리어 차아크(sa'aq), 자아크(za'aq), 카라(qara')의 역어로 사용되었다.||(a) 크라조는 70인역본에서 전쟁시의 함성(수 6:16), 해산시의 울부짖음(사 26:17), 까마귀의 미친듯한 울부짖음, 또는 나귀의 울음소리(욥 38:41과 욥 6:5에 각각 나옴) 등을 표현한다.||(b) 이 단어는 곤궁할 때에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에 대해 사용한다. 사람들은 개인적인 또는 민족적인 재난 가운데에서 하나님께 울부짖으면, 하나님께서는 들으시고 구원하신다(출 22:22이하; 살 3:9; 시 21:5; 시 33:17; 시 106:6 등). 그러나 하나님은 악한 자들의 부르짖음은 듣지 않으신다(미 3:4; 렘 11:11). 시편에서 이러한 부르짖음은 특별한 형태를 취하는데, 이런 형태는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응답하시라는 확신에 찬 애원을 표현한다(시 27:7; 시 28:1). 여기에 하나님을 강제하려는 마술적인 시도는 없다. 하나님을 향한 외침은 슬픔의 울부짖음이기도 하고(시 22:2) 기쁨의 외침이기도 하다(시 55:17). 또 다른 용례는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사 6:3)하고 소리지른다. 사 42:2에서는 또 다른 용법으로 나오는데, 하나님의 종은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했으며, 위대한 회복의 환상을 받는다(사 33:3이하).||(c) 유대교에서 요세푸스(Josephus)는 크라조를 예언자적 선포의 의미로 사용한다(참조: Tanchuma). 랍비들은 "부르짖음"을 자신들의 견해를 뒷받침하는데 인용하는 상투적인 도입문구의 일부분으로 삼고 있다.||#3. 신약성경의 용법||크라조는 신약성경에서 약 54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공관복음. 예수님께서 귀신들을 쫓아내실 때 귀신들이 소리를 지른다. 이러한 부르짖음은 말이 아닌 불분명한 소리거나(막 5:5; 막 9:26) 또는 예수님을 알아보고 발하는 외침이다(막 3:11 등). 이 부르짖음들은 예수님께서 물리치신 귀신들의 저항을 나타낸다. 또한 예수님께 도움을 청하는 부르짖음도 있다. 가령 마 9:27의 눈먼 자, 마 15:22의 가나안 여자, 막 9:24의 귀신들린 아이의 아버지, 마 14:30의 호수에서의 베드로 등이 그런 경우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 환호의 외침을 들으셨다(마 21:9, 마 21:15); 또한 예수님께서 만일 제자들이 잠잠하면 돌들이라도 소리지를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눅 19:40).|반대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고 바라바를 놓아주라고(눅 23:18) 소리질러 외쳤다(마 27:23). 예수님께서 죽으실 때 자신이 큰 소리로 부르짖으신다(마 27:50); 이것은 말이 아닌 불분명한 부르짖음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린 마지막 기도이다(참조: 눅 23:46). 예수님의 사역은 마 12:27이하에 나오는 인용문, 즉 "그가 다투지도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도 아니하리라"에 따르면 사 42:2의 종의 표징을 지닌다.||(b) 요한복음. 그리스도의 예루살렘 입성시의 환호나(요 12:13),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요구할 때(요 19:6), 군중들이 빌라도에게 그가 만약 예수님을 놓아준다면 그는 가이사의 친구가 아닐 것이라고 소리 지를 때(요 19:12) 사용되었다.|이 단어는 메시지를 선포하는 것을 표현한다(요 1:15; 요 7:28, 요 7:37 - 요 7:38; 요 12:44 - 요 12:45). 예수님의 인격과 사역의 신비는 이 단어에 의해 엄숙하게 제시되었다.||(c) 사도행전. 행 19:28, 행 19:32; 행 19:34; 그리고 행 21:28, 행 21:36에서 이 어군은 폭도들의 소란스런 외침소리에 대해 사용되고, 한편 행 7:60에서는 스데반의 다른 사람을 위한 마지막 기도를 나타내며(참조: 눅 23:46), 행 14:14에서는 항의의 외침, 곧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달라는 외침을 나타내며, 행 23:6에서는 절박한 순간에 무엇인가를 말하는 부르짖음을 나타내며, 그리고 행 16:17에서는 귀신들린 여인의 부르짖음을 나타낸다.||(d) 바울 서신들. 바울 서신에서 크라조는 3회 사용되었다.|① 한번은 예언자의 선포라는 의미로 나온다: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뭇 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롬 9:27).|② 나머지 두 번 롬 8:15과 갈 4:6은 시편에서 매우 통상적인, 의인이 주님을 부른다는 의미와 유사하다. 그 차이점은 신자들이 "아바 아버지"를 부를 수 있게 하시는 분이 성령(양자의 영, 로마서; 하나님의 아들의 영, 갈라디아서)이시라는 점이다.|이 두 구절에서 아들된 자의 특별한 외침,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짖는다. 이 두 구절에서의 요점은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인하여 믿는 자들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새로운 관계를 하나님과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롬 8:14).|차이점은 갈 4:6에서는 성령께서 부르짖는데 반하여, 롬 8:15에서는 신자들 스스로가 외친다는 것이다. 어느 경우에도 이 외침이 황홀경 속에서의 외침이라는 암시는 없다. 사실 롬 8:16은 온전한 자기 인식을 암시하고 있다. 이러한 부르짖음은 하나님을 부르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는 편이 더욱 타당한데, 이 부르짖음 가운데 예수님의 아버지가 이제 신자들의 아버지로 불리워지게 된다. 이 부르짖음은 아마도 예수님께서 친히 그의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말씀 가운데 있는 것 같다. 성령에 대한 언급은 랍비들의 상투적 문구("성령이 외쳐 가라사대…")를 생각나게 하지만, 여기서의 성령은 그의 역동적인 실체이며, 신자들이 하나님께 종으로서가 아니라 자녀로서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들어주실 것이라는 온전한 확신을 준다.||(e) 야고보서. 약 5:4에서 부정, 또는 보다 명백하게는 지불하지 않은 삯이 의인화된 것으로 하늘을 향해 소리를 지른다: "보라 너희 밭에 추수한 품꾼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지르며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 의인화된 눅 10:40을 생각나게 하며 행 16:17에는 명백한 비난이며, 시편에는 도움을 요청하는 탄원이다.||(f) 요한계시록. 요한계시록에서 크라조는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계 6:10에서 하나님께 도움을 호소하는 외침을 표현한다: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하니".|계 7:10에서 환호의 '외침'을 표현한다: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계 10:3에서 천사의 '외침'을 표현한다: "사자의 부르짖는 것같이 큰 소리로 외치니 외칠 때에 일곱 우뢰가 그 소리를 발하더라".|계 7:2에서 '명령'을 나타낸다: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얻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계 19:17).|계 18:2에서 '선포'를 표현한다: "힘센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그리고 인자를 향한 외침(계 14:15); 해산시 여인의 울부짖음(계 12:2); 그리고 타락한 바벨론에 대한 애도이다(계 18:2). 이 극적인 외침들의 과다함은 종말이 빠르게 또한 격변적으로 온다는 사상을 강화시킨다.|(참조: Walter Bauer; D.A.Carson; W.Grundmann).
방탕함
kraipavlh
방탕||#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크라이팔레(Aristoph., Plut. )는 어원상 '머리를 이리 저리 뒤흔드는 것(딩구는 것)'이라는 의미를 지니며, 따라서 '도취, 술취함, 술로 인한 두통과 현기증, 비틀거림, 방탕'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크라이팔레는 신약성경에서 눅 21:34에 한번 나오며, '방탕'을 나타낸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해골
kranivon
두개골||#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크라니온(Homer 이래; Pind., Eur., Pla. 등)은 카라(%496: 머리)에서 유래했으며, '두개골' a skull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크라니온은 신약성경에서 4회 나오며, 눅 23:33; 병행구, 마 27:33; 막 15:22; 요 19:17에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신 곳으로 나타난다: "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두 행악자도 그렇게 하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눅 22:33).|(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옷술
kravspedon
가장 자리, 술.||#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크라스페돈(trag., X. 이래)은 원래 '머리 끝' tip of the head를 의미하며, 일반적으로 '외부의 한계' outer limit에 대해 사용되었으며,||(a) 옷의 '가장 자리, 끝, 한계'(Theor.),|(b) 나라의 '경계나 연안'(Soph., Eur.),|(c) 군대의 '외부의'(Xenoph.),|(d) '목젖이 병난 상태',|(e) '머리의 타래' lock of hair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크라스페돈은 70인역본에 5회 나오며, 히브리어 치치트(6734: 술, 장식술, 머리의 '타래', 두발; 민 15:38, 39), 카나프(3671: 날개, 말단, 최극단; 신 22:12; 슥 8:23)의 역어로 '술, 귀, 옷자락'을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크라스페돈은 신약성경에서 5회 나오며, 계명을 생각나게 하는 것으로 겉옷의 가장 자리에 다는 '술'을 가리킨다.||(a) 마 23:5, "저희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여 하나니 곧 그 차는 경문을 넓게 하며 옷술을 크게하고".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이 자기 의를 과시하여 (위에 언급한) 장식술을 지나치게 길게하는 것을 비난하신다.||(b) 마 9:20, "열 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 겉옷가를 만지니"(병행구 눅 8:44). 여기서 크라스페돈은 병든 여인이 손 댄 예수님의 겉옷 가장 자리를 의미한다.||(c) 막 6:56(병행구, 마 14:36)에서도 크라스페돈은 '옷 가장자리'를 가리킨다: "아무데나 예수께서 들어가시는 마을이나 도시나 촌에서 병자를 시장에 두고 예수의 옷가에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하니 손을 대는 자는 다 성함을 얻으니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J. Schneider).
능하신
krataiov"
강한, 강력한.||#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크라타이오스(Hom., Polyb.)는 크라토스($2904: 힘, 권능, 세력)에서 유래했으며, '강한, 강력한, 능력으로 가득찬'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형용사 크라타이오스는 70인역본에서 68회 나오며, 10개의 히브리어 단어 및 어군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주로 하자크(강하다, 경고하다)를 번역하고 있다.|70인역본은 대체로 이 형용사를 하나님께 사용한다(예: 신 7:21; 시 24:8; 71[70]:7; 잠 23:11). 그리고 31개의 구절들에서 이 단어는 케이르(손)와 결합하여 나타나며, 거의 모든 경우에 하나님의 강한 손을 가리킨다(예: 출 3:19; 6:1; 13:3, 9, 14, 16; 신 7:8, 19, 21; 11:2; 시 136:12).||#3.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크라타이오스는 신약성경에서 벧전 5:6에 한번 나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여기서 하나님의 '강력한' 손이라는 표현은 하나님이 보내시는 타격과 엄격한 형벌은 사람이 피할 수도 피하지도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암시한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G. Braumann; W. Michaelis).
강건하게 하다
krataiovw
강하게 하다, 용기를 가지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크라타이오오(Hippocr. )는 크라토스($2904: 힘, 권능, 세력)에서 유래했으며,||(a) '강하게 하다' make strong,|(b) '용기를 가지다' take courage,|(c) '~보다 우세하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크라타이오오는 70인역본에서 64회 나오며, 주로 히브리어 하자크(강하다, 견고하다)의 역어로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크라타이오오는 신약성경에서 4회 나오며, 누가복음(2회)과 고린도전서(1회), 에베소서(1회)에만 사용되었다.||(a) 누가복음에서 크라타이오오는 어린 예수님과 세례(침례) 요한의 성장을 나타낸다.|① 눅 1:80, "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지며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 들에 있으니라".|② 눅 2:40,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족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더라".||(b) 고전 16:13에서 크라타이오오는 남성적인 힘을 나타낸다: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여라"(참조: 삼하 10:12; 시 31:24).||(c) 엡 3:16에서 강해지는 것을 성령의 내적 작용으로 본다: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