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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뤼파이오스
krufai'o"
숨겨진, 감추인 hidden.||1. 고전 헬라어 및 70인 역본||크뤼파이오스는 '숨겨진'을 뜻하는데, 드물게 사용된다.|70인 역본에서 크뤼파이오스는 비유적 의미로 나타난다. 렘 23:24; 애 3:10에서 "은밀한 곳"에 대하여, 지혜서 17:3에서 죄를 "비밀리에" 범한 것에 대해 사용되었다.||2. 신약성경의 용법||크뤼파이오스는 마 6:18(LTTrA 헬라어 성경들)에만 나타난다: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여기서 70인 역본의 용법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소득의
ktavomai
얻다, 취하다, 소유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크타오마이(Homer 이래)는 기본 동사이며 '얻다, 획득하다'를 의미하며, 여기에서||(a) 어떤 것을 '얻다, 획득하다'(Plut., Mor.), '취하다'(아내),|(b) 불행, 재앙 등에 대하여, '자신에게 초래하다'(Soph., Eur., Thu.),|(c) 완료형에서 '소유하다'(Appian, Bell. 등)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크타오마이는 신약성경에서 7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크타오마이는 물질적 이득에 대해 사용되었다.|① 마 10:9,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이나 가지지 말고".|② 눅 18:12, "나는 이레에 두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③ 행 1:18, "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나온지라".||(b) 크타오마이는 로마 시민권을 얻는 것에 대해 사용되었다: "천부장이 대답하되 나는 돈을 많이 들여 이 시민권을 얻었노라 바울이 가로되 나는 나면서부터로라 하니"(행 22:28).||(c) 살전 4:4,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취할 줄을 알고". 여기서 스큐오스($4632: 그릇, 도구)를 아내로 보면, 크타오마이는 '취하다'라는 의미를 가진다(moffat; RSV), 그러나 바클레이는 이 구절을 '... 너희 각자가 그 자신의 몸을 다스릴(control, manage) 줄 알고'라고, 필립스는 '너희 중 누구나 자기의 몸을 다스릴(control) 줄 배우고'라고 번역한다.||(d) 눅 21:19에서 크타오마이는 영혼을 '얻는 것'을 묘사한다: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재물
kth'ma
재산, 소유, 토지 재산.||#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크테마(Homer 이래)는 크타오마이($2932)에서 유래했으며, '획득한 것'을 의미하며, 모든 종류의 '소유물'에 대해 사용되었다. BC.400년부터 '토지(재산)'라는 제한적 의미로 사용되었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크테마는 70인역본에서 12회 나오며, 욥 20:29에서 '재산', 잠 12:27에서 '부', 잠 23:10; 잠 31:16에서 '토지'를 의미한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크테마는 신약성경에서 4회 나오며,||(a) 크테마는 단수로 행 5:1에만 나오며, '한 조각의 토지'를 의미한다: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 아내 삽비라로 더불어 [소유]를 팔아".||(b) 크테마는 복수로 막 10:22에 나오며, 재물을 나타낸다: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을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병행구, 마 19:22).||(c) 행 2:45에서 크테마는 다른 소유물들과 구별되어 있다: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여기서 '토지 재산'을 의미하는 것 같다.|(참조: walter Bauer; J.H.Thayer; F.Selter).
크테노스
kth'no"
가축, 짐승.||#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크테노스(Homer 이래)는 크타오마이($2932: 얻다, 획득하다)에서 유래했으며, 따라서 본래의 의미는 '소유물, 재산', 특히 '가축, 짐나르는 짐승'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크테노스는 신약성경에서 4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고전 15:39에서 크테노스는 떼(소, 돼지 등)에 속하는 동물들을 가리킨다: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라".||(b) 계 18:13에서 크테노스는 '가축'을 가리킨다: "계피와 향료와 향과 향유와 유향과 포도주와 감람유와 고운 밀가루와 밀과 소와 양과 말과 수레와 종들과 사람의 영혼들이라".||(c) 눅 10:34에서 크테노스는 '타는 짐승'을 가리킨다: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고".|행 23:24에서 마찬가지다: "또 바울을 태워 총독 벨릭스에게로 무사히 보내기 위하여 짐승을 준비하라 명하며".|(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있는 자
kthvtwr
소유자 possessor||#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크테토르(Diod.)는 크타오마이($2932: 얻다, 획득하다)에서 유래했으며, '소유자' possessor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크테토르는 신약성경에서 행 4:34에 한번 나오며, 재산의 '소유자'를 의미한다: "그 중에 핍절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조물주
ktivzw
창조하다 create||#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크티조(Homer 이래)는||(a) '만들어 내다, 작업하다',|(b) '식민지로 만들다, 식민시키다',|(c) '창조하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크티조는 70인역본에서 약 66회 나오며, 그 중 39회가 히브리어 상당어 없이 나온다.||크티조는 바라(창조하다)의 역어로 16회 사용되었으며, 신학적 용어로 주어는 항상 하나님이시다. 이 단어는 땅의 위도(시 89:12), 산과 바람(암 4:13), 땅 위의 사람(신 4:32)에 대해 사용되었으며, 또한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 사역(시 104:30), 개인의 창조(겔 28:13, 15), 사람 속에 정한 영을 창조(시 51:10), 평안과 환란의 창조(사 45:7), 무기의 창조(사 54:16)에 대해 사용되었다.||크티조는 카나(창조하다, 산출하다)의 역어로,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지으신 것을 나타낸다(창 14:19; 창 14:22).||크티조는 야차르(형성하다, 만들다)의 역어로 2회 사용되었으며, '계획하거나 경영하시는 것'을 나타낸다(사 22:11).||크티조는 쿤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처음 창조와 역사 내에서의 하나님의 사역, 즉 보석들로 단장하는 것(겔 28:13), 이스라엘을 준비하거나 세우는 것(신 32:6)을 나타낸다.||크티조는 야사드(창건되다)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애굽의 창건(출 9:18)을 나타낸다.||크티조는 아마드(하나님의 창조적인 말씀으로 서다)의 역어로 사용되었다(시 33:9).||크티조는 샤칸(놓여있다, 설립되다)의 역어로 사용되어, 세워진 회막을 묘사한다(레16:16).||#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크티조는 신약성경에서 15회 나오며, 바울 서신에 11회, 마가복음에 1회, 요한계시록에 3회 사용되었다.||(a) 하나님은 세상과 인간을 창조하신 분이시다.|① 엡 3:9,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② 골 1:16,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③ 마 19: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b)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것은 선하므로, 하나도 거부할 것이 없다. 여기서 감사함으로 받아야 하는 음식물도 포함된다: "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폐하라 할터이나 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딤전 4:3).||(c) 인간은 창조주만을 예배해야 한다. 그분만이 예배와 숭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배가 피조물에게 드려지는 곳에서는 하나님이 자신들의 악한 방법으로 범죄한 자들을 포기하신다: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롬 1:25).||(d) 한 논쟁의 구절인 고전 11:9에서 바울은 예배시 여자의 행동과 역할에 대한 자신의 가르침의 근거를 최초의 창조 원리에 둔다: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 이 최초의 창조 원리에 의하면 여자는 남자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창 2:18). 그러나 주요 구절인 갈 3:28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와의 교제 안에서 하나됨을 들어 양성의 평등성을 선언한다. 바울이 창 2:18에 근거하여 여자에게는 돌리지 않는 어떤 권위를 남자에게 돌리면서도 남녀의 서로에 대한 상호 의존성과 또한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공동 의존을 단언한다(참조: 고전 11:11 이하).||(e) 엡 2:15에서 인간들 사이의 기본적 구별, 곧 하나님의 백성과 하나님의 백성에 속하지 않은 자들, 즉 유대인과 비유대인 간의 구별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제거되었음이 화해의 결정적인 행동으로 간주된다. 하나의 새로운 인간이 이제 모든 사람들을 대표하여 하나님 앞에 서신 그리스도 안에서 창조된다: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여기에서 이 새 창조의 결과는 에베소서와 골로새서에 자주 쓰이는 어구인 새 사람으로 지칭된다. 전적으로 또한 무조건적으로,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창조 행위에 비추어 자기 자신을 하나님의 작품으로 보는 것이 이 새 사람의 본성이다(엡 2:10).|골 3:10 이하에서 이 새 사람은 더 이상 옛 사람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새로운 자아로 "덧입혀"질 수 있다. 옛 사람이 하나님 및 다른 사람들과의 친교를 파괴하는 행동들로 특징지워진 반면, 새 사람은 하나님의 뜻으로부터 나오는 새로운 지식으로 특징 지워진다. 새 사람은 이 지식으로 인하여 이웃 사랑하는 행동을 함으로 참으로 자신의 창조주의 형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엡 4:24에서보면 '하나님을 따라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의 상태란 곧 그가 하나님과 조화하도록 창조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는 (의 안에서) 우리 위에 내려진 하나님의 자비로운 판단의 공정성을 받아들이며(거룩함 안에서)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구별되며(진리 안에서) 진리이신 분, 곧 그리스도께 의존하여 산다. 자신의 노력에 의해 자신을 세우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은, 비록 이 노력들이 종교적인 성격을 가질 때일지라도, 옛 사람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선한 일들을 위한 여지는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단순하게 새 사람을 창조만 하신 것이 아니라 선한 일들을 위하여 그를 창조하셨으며, 이 선한 일들 가운데 우리가 생활하도록 하나님께서는 미리 이 선한 일들을 예비하셨기 때문이다(엡 2:10).||(f) 계 4:11에서 보좌 위에 앉으신 분이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것은 그 분은 만물을 창조하셨고 만물의 존재는 그의 뜻에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계 10:6에서 천사는 영존자이며, 만물의 창조주신 하나님 앞에 맹세의 오른손을 들고 선언한다. 이것은 그의 선언이 하나님 앞에 진실하며 이 세상에 대해 엄격함을 나타내는 것이다: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H. -H. Esser; W. Foerster).
만민
ktivsi"
창조, 피조물||#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크티시스(Pind. 이래)는 크티조($2936: 창조하다)에서 유래했으며,||(a) '창조 행위' the act of creation,|(b) '피조물, 창조된 것, 창조 행위의 결과',|(c) '권위(력) 행사의 결과', 일반적으로 '창설' foundation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크티시스는 70인역본에서 약 19회 나오며, 히브리어 혼과 킨얀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이 히브리어들은 '재산, 상품, 부, 소유'를 의미한다. 따라서 크티시스는 시 105:21; 잠 1:13; 잠 10:15에서 재물, 시 105:21에서 '피조물'을 나타낸다.||크티시스는 히브리어 상당어 없는 구절에서 더욱 흥미롭다. 많은 구절은 당시 유대교의 전형적 방식의 기도에서 창조 교리를 강조한다(토빗 8:5, 15; 유딧 9:12; 16:14; 시 74:18; 마카베오삼서 2:2, 7; 6:2). 하나님은 창조주시고, 모든 것이 그의 말씀으로 말미암기 때문에 그의 말씀에서 그를 이해할 수 있으며, 창조의 주님으로 불리워지는 것이다(유딧 16:14). 역사 안에서 하나님의 권능이 시행되는 것은 더 이상 직접적으로 고찰되거나 믿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피조물의 중개로 알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예언하시고 선택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은 사실상 하나이며 똑같은 것이다.|하나님은 자신의 대적들에게 복수를 하시기 위해 크티시스(피조물)를 무장시키신다. 이 피조물은 죄인들을 처벌하는데 힘을 발휘하며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들을 위해서는 약해진다(지혜서 5:17; 16:24). 따라서 홍해에서 기적은 여호와께서 그의 피조물에 침투해 들어간 것으로나, 피조물에 대한 주권적인 행동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은 그의 선민들을 구속하기 위해, 자기의 특별한 명령에 순종하는 피조물을 위한 특별한 새로운 상황을 창조하신 것이다(지혜서 19:6). 피조물에 대한 사람의 바른 태도는 그 경이로움에 놀라고(집회서 43:24 이하) 창조자를 찬양하고(토빗 8:5, 15), 자기 동료 인간에게 봉사하는 것이다(유딧 16:14). 반면에 불경한 자들이 격려하는 것처럼 순전히 이기적인 기쁨을 얻기 위해 이 피조물을 오용하는 것은 야비한 짓이다(지혜서 2:6). 그러나 의로운 자들은 창조 질서의 측량할 수 없는 범위 안에서 자기 자신이 미미한 존재라는 이유 때문에 허무주의에 빠져서는 안된다(집회서 16:17). 생의 의미에 대한 문제의 해답은 피조물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에 의하여 주어진다. 크티시스의 두가지 의미 곧 '창조'와 '피조물' 중 어느 하나를 뜻하는지는 각 구절의 문맥에서 명백히 알 수 있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크티시스는 신약성경에서 19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하나님은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 막 10:6에서 예수님은 일부일처제와 결혼의 영구성을 분명히 태초부터 있었던 창조 법령에 입각한 것이라고 하셨다: "창조시로부터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으니".||(b) 막 16:15에 의하면 모든 피조물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필요로 하고 있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파해야 한다: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c) 모든 피조물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그 근거를 가지고 있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계 3:14).||(d) 인간은 창조주만을 예배해야 한다. 그 분만이 예비와 숭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배가 피조물들에게 드려지는 곳에서는 하나님이 자신들의 악한 방법으로 범죄한 자들을 포기하신다(롬 1:25). 세계의 창조 이래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본성이 그의 사역 안에서 명백하게 나타났고 인식되었다(참조: 지혜서 13:5). 따라서 피조된 모든 인간들은 변명을 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롬 1:20).||(e) 인간이 창조 전체의 목적이므로 피조 질서의 상태는 인간에 의해 결정된다. 인간이 아닌 모든 피조물들이 고대하는 것은 인간이다. 따라서 모든 피조물의 모든 소망과 바람들은 인간에게 향해지는 것이다. 창조된 세계를 자신에게 굴복시킨 인간과 더불어 모든 피조물은 허무한데 굴복하고 고통 중에 탄식하게 된다(롬 8:19; 롬 8:20; 롬 8:22).||(f) 인간의 행위 때문에 모든 피조물들은 하나님과 피조 세계의 그의 대표자 사이의 바른 관계 회복에 의존한다. 이 바른 관계는 오직 하나님의 개입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이것은 롬 8:19이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남을 기다림에 대하여 말할 때, 의도한 것이다. 그들이 아직 육체에 있는 동안에(롬 8:23d) 아들로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사실이 이미 약속되었으므로(롬 8:23c), 하나님의 아들들의 궁극적인 나타남에 대한 소망은 또한 모든 피조물들이 썩어짐의 종노릇으로부터의 해방을 바라는 소망이기도 한 것이다(롬 8:21). 궁극적으로 아들이 되는 것은 신자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은밀하게 준비되어 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사랑과 동일시된다: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수 없으리라"(롬 8:39).|그래서 바울은 이 구절과 고후 5:17에서 새로운 실재에 대해 완전한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한 인간이 그리스도께 속하는 곳에서 새로운 창조는 하나의 사실이 된다. 지금까지 그의 생활을 결정하였던 이전 것들은 지나가 버렸다.|갈 6:14 이하에서 사람들이 자신들 사이에 담을 세우기 위하여 사용하던 과거의 특권들(할례와 무할례)이 그리스도 안에서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오직 그리스도에게 속하는 자만이 새로운 피조물로 간주된다. 과거는 십자가로 인하여 무효화 되었다. 그러므로 옛 창조의 구현으로서의 세상은 그리스도에 대해 어떤 주장도 할 수 없다. 기독교인은 세상에 의존하여 살 수 없다. 세상과 기독교인은 서로에 대하여 죽은 것이기 때문이다.||(g) 히 4:13,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여기서 기자는 모든 피조물들에 대한 하나님의 무한한 지식과 자신을 분명히 밝히는 피조물들의 의무 사이에 모순이 없는 것으로 나타나는 하나님의 영원한 창조 능력을 강조한다(참조: 롬 1:20; 계 4:11; 계 5:13).|히 9:11에서 기자는 옛 언약에 대한 새 언약의 무한한 우월성을 강조한다. 옛 언약에 있어서 예배의 중심은 여기 곧 우리의 현재적인 피조 질서에 속한다. 이것은 손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한 분이신 하늘의 대제사장 그리스도의 활동 영역은 그러한 제한적인 것에 지배를 받지 않는다.||(h) 벧전 2:13,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복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여기에서 크티시스에 대한 해석은 논란되고 있다. 우리가 "모든 인간 피조물"에 복종해야 한다는 무례한 가르침(이것은 피조된 존재들을 신으로 삼는 것과 동일함)을 피하기 위하여, 이 구절을 "모든 인간의 제도(ordinance)"로 번역하거나 또는 크티세이 대신 크리세이(심판)로 읽어야 한다고 주장되어 왔다. 그러나 복종의 개념은 이것이 피조물을 위해서나 우리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을 위해서라는 가르침에 의해 수식되고 있다. 곧 이 복종은 인간이 여전히 하나님의 종이라는 사실에 입각한 한도 내에서 자유의 한 표징으로 간주된다.|벧후 3:4: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여기서는 "처음 창조할 때"부터 영속적인 연속성이 있다고 주장하며, 이것을 자신들의 자기 확신을 정당화하는데에 사용하는 자들에 대하여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기독교인의 소망을 변호한다.|(참조: H. -H. Esser; W. Foerster; Walter Bauer; J. H. Thayer).
만물
ktivsma
창조된 것, 창조물.||#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크티스마(Polyb., Dionys., Strabo.)는 크티조($2936: 창조하다)에서 유래했으며, '상설(설립)된 것, 창조된 것, 창조물'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크티스마는 70인역본에서 6회 나오며, 외경에만 사용되었다.|지혜서 9:2에서 지혜를 구하는데, 지혜는 창조의 도구로, 인간의 주권 위임과 어느 정도 관련있는 것으로 나타난다.|집회서 36:15에서 이스라엘의 해방을 위해 역사적 상황에 하나님께서 간섭해 주실 것을 구하는 기도는 하나님의 창조물에 대한 계속적인 관심에 기초한 것이다.|지혜서 13:5과 14:11은 롬 1:20 이하와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고 간주되어야 할 것이다. 피조물들의 위대함과 아름다움은 그 창조자를 추단하여 주목하도록 할 수 있으나 우상들은 피조 세계 내에 존재하는 가증한 것이다.|집회서 38:34에서 기술공들은 피조물을 유지시킨다고 한다.|크티스마는 또한 수면과 같은 영원하며 선하게 창조된 질서의 요소들에 대해 사용된다(마카베오삼서 5:11).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질서의 주님이시며 이런 질서가 작용하게 하신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크티스마는 신약성경에서 4회 나오며, 디모데전서와 야고보서에 각각 1회, 요한계시록에 2회 사용되었다.||(a) 딤전 4:4,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것은 선하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은 하나도 거부될 것이 없다. 여기에는 감사함으로 받아들여져야 하는 음식물들도 포함된다.||(b) 약 1:18,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피조물들 중의 첫 열매들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진리의 말씀으로 낳은, 즉 다시 태어난 자들이기 때문이다. 이 구절은 우주론적으로 해석되기 보다는 구원론적으로 해석된다.||(c) 계 5:13,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만물이 가로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찌어다 하니". 보좌 위에 앉으신 분은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니 왜냐하면 그 분은 만물을 창조하셨고 만물의 존재는 그의 뜻에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참조: 계 4:11). 모든 만물(크티스마)의 이 예배는 보좌에 앉으신 분께만 속하는 것이 아니라 어린양(십자가에 달리시고 높임 받으신 분을 나타내는 은유)에게도 속하는 것이다. 이 찬양의 행위는 하늘로부터 나와서 중심적인 영역 곧 땅과 땅 및 세계와 바다와 그 가운데 있는 피조물들을 포함하는 데까지 이른다.||(d) 계 8:9, "바다 가운데 생명 가진 피조물들의 삼분의 일이 죽고 배들의 삼분의 일이 깨어지더라". 놀라울 정도로 현재에 잘 들어 맞는 것은 불붙는 산이 바다로 던져질 때 바다의 피조물들(크티스마타)의 삼분의 일이 죽는 환상이다.|(참조: H. -H. Esser; W. Foerster; Walter Bauer; J. H. Thayer).
크티스테스
ktisthv"
창조자 creator||#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크티스테스(Aristotle)는 크티조($2936: 창조하다)에서 유래했다.||(a) 이 단어는 '설립자, 창설자', 특별히 옛 질서의 회복자라는 기능면에서 '통치자'를 나타내는 명칭으로 자주 사용되었다(Plut., Cimon.).||(b) 이 단어는 신에게 사용될 때, '창조주'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크티스테스는 70인역본에서 8회 나오며, '창조주'(삼하 22:32; 유딧 9:12)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신앙고백과(마카베오이서 7:23) 박해의 때에 유대인들이 비유대인들 앞에서 고백할 때, 유대인들은 우주의 창조자에게 호소하였다(마카베오사서 11:5). 기도시에는 이스라엘의 구원을(마카베오이서 1:24 이하), 그리고 성전(holy war) 시에는 그 성과를 창조주에게 맡겼다(마카베오이서 13:14). 인성화된 지혜의 모습은 그와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중재자로 나온다(집회서 24:8). 이스라엘과 창조주의 역사적 관계는 더 이상 행동이란 말로 표현되지 않고, 헬라인들의 방법을 따라 존재론적으로 표현되었다. 그는 "그 자신의 본성을 따라 우리와 함께 느끼는" 분이다(마카베오사서 5:25).||#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크티스테스는 신약성경에서 벧전 4:19에서 한번 나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 그 영혼을 미쁘신 조물주께 부탁할찌어다". 하나님은 조물주, 즉 생명의 주장자로서 미쁘신 분이시다. 따라서 신자는 그의 선포하신 계획과 목적을 이루실 것을 믿을 수 있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확신을 가지고, 고난을 당할 때라도 영혼(靈魂)을 하나님의 보호에 위탁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고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더욱 나타내는데 기여해야 한다. 그것은 그들 스스로가 능동적인 선행을 유지함으로써 되는 것이다(A. M. Stibbs).|(참조: H. -H. Esser; W. Foerster).
궤술
kubeiva
주사위놀이, 사기.||#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퀴베이아는 퀴보스(%462: 육면체, 주사위)에서 유래했으며,||(a) '주사위 놀이(하기)' diceplaying, '놀음'(Pla. X., Mem.),||(b) 비유적으로 '속임, 사기'(Epic. 2, 19 등)를 의미한다. 주사위 놀이꾼들이 때로 동료 놀이꾼들을 속이고 사취하였기 때문이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퀴베이아는 신약성경에서 엡 4:14에 한번 나오며, 사람의 '사기(속임)'를 의미한다: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다스리는 것
kubevrnhsi"
조종, 다스림, 통치.||#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퀴베르네시스(Pind. 이래; Plut.)는 퀴베르나오(%538: 키를 잡다, 조종하다)에서 유래했으며, 따라서 문자적 의미로 '키를 잡음, 조종'을 의미하지만, 비유적으로는 '통치' 또는 '신의 지도'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퀴베르네시스는 70인역본에서 3회 나오며, 히브리어 타흐불로트(지도, 지시, 인도, 계획, 지혜)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바른 지도' 또는 '현명한 지도'를 나타낸다(잠 1:5; 잠 11:14; 잠 24:6).||#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퀴베르네시스는 신약성경에서 고전 12:28에 한번 나온다: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세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 이 구절에서는 분명히 공동체를 좋게 지도하기 위해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신 특별한 은사들을 언급한다. 감독이나 집사들은 이런 은사를 받은 자들일 것이다. 고전 12:29의 질문은 이 은사에 적용되지 않음을 주목할 만하다. 이것은 아마도 공직은 선거에 의한 것이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은사가 없이는 적절하게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을 시사한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H. W. Beyer).
선장
kubernhvth"
키잡이, 조타수, 선장.||#1. 고전 헬라어 및 70인역본의 용법.||명사 퀴베르네테스(Homer 이래)는 퀴베르나오(키를 잡다, 조종하다)에서 유래했으며, '키잡이, 조타수, 선장'을 의미한다. 이 의미에서 '정치가' statesman이라는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주관하시는 분이라는 뜻으로 종종 퀴베르네테스로 불리운다.|70인역본에서 퀴베르네테스는 히브리어 호벨(선원, 사공)을 번역하여, '선장'(겔 27:8, 27:28)을 표현한다. 마카베오사서 7:1에서 순교자 기록에 사용되었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퀴베르네테스는 신약성경에서 2회 나오며, 사도행전과 요한계시록에만 사용되었다.||(a) 행 27:11에서 퀴베르네테스는 '선장'을 의미한다: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b) 계 18:17에서도 퀴베르네테스는 '선장'을 의미한다: "그러한 부가 일시간에 망하였도다 각 선장과 각처를 다니는 선객들과 선인들과 바다에서 일하는 자들이 멀리 서서".||(c) 교부들의 문헌에서 교회는 배요 그리스도는 조타수나 키잡이로 종종 묘사된다. 풍랑을 잔잔케 하며 방주(배)는 출발을 하는 것이다. 이 상징은 그리스도께서 인생의 풍랑을 통과하여, 혹은 죄의 바다를 건너서 항구까지 교회를 안전하게 조종하신다는 것이다.(H. W. Beyer).|(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둘러
kuklovqen
사방에, 주위에, 둘레에.||#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부사 퀴클로덴은 퀴클로스(%464: 원 circle)에서 유래했으며, '사방에, 둘레에, 주위에'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부사 퀴클로덴은 신약성경에서 3회 나오며, 요한계시록에만 사용되었다.||(a) 계 4:3에서 무지개가 보좌의 '둘레에' 있다: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b) 계 4:4에서 보좌들이 한 보좌 주위에 있다: "또 보좌에 둘려 이십 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 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 면류관을 쓰고 앉았더라".||(c) 계 4:8에서 네 생물의 주위에 눈이 가득하다: "네 생물이 각각 여섯 날개가 있고 그 안과 주위에 눈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 하고".|(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퀴클류오
kukleuvw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퀴클류오는 퀴클로스(%464: 원 circle)에서 유래했으며,||(a) '회전(일주)하다'(Strabo 등),|(b) '둘러싸다, 에워싸다, 포위하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퀴클류오는 신약성경에서 계 20:9에 한번 나온다: "저희가 지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두르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저희를 소멸하고".|여기서 퀴클류오는 사탄이 이끄는 무리들이 성도들을 '포위한 것'을 나타낸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둘러서다
kuklovw
에워싸다, 둘러싸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퀴클로오는 퀴클로스(%464: 원)에서 유래했으며,||(a) '회전하다, 순회하다'(Pind., Eur., Polyb.),|(b) '에워싸다, 둘러싸다, 포위하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퀴클로오는 신약성경에서 4회 나오며, 누가, 요한, 사도행전, 히브리서(각각 1회)에만 사용되었다.||(a) 요 10:24에서 퀴클로오는 사람들을 '에워 싸는 것'을 표현한다: "유대인들이 에워싸고 가로되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케 하려나이까 그리스도여든 밝히 말하시오 하니".|행 14:20에서도 사람들을 '둘러 싼 것'을 표현한다: "제자들이 둘러 섰을 때에 바울이 일어나 성에 들어갔다가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b) 눅 21:20에서 퀴클로오는 예루살렘을 '에워싸는 것'을 나타낸다: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c) 히 11:30에서 퀴클로오는 여리고 성을 '에워싸고 싼' 것을 나타낸다: "믿음으로 칠일 동안 여리고를 두루 다니매 성이 무너졌으며".|(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