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한
makavrio"
복된 blessed, 행복한 happy.||#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마카리오스(Pind. 이래)는 마카르(%226: 행복한)에서 유래했으며, 그 의미는 '일상적인 염려와 걱정들로부터 놓여 자유하는' 것이다. 시적인 언어에서 이 단어는 '신들의 행복'을 가리키는 말이며, 그리고 신들의 상태와 또한 신들의 행복한 실존을 함께 나누는 자들의 상태를 나타내었다.|그래서 이 단어는 '복된, 행운의, 행복한'이란 의미를 지니게 되었으며, '...한 자는 행복하다'(마카리오스 호스[티스])는 공식 문구로 자주 사용되었다.|헬라에는 어떤 사람에게 생긴 행운이나 행복을 칭송하는 것이 발달되었다. '사람들은 그들의 행복에 대해 축하나 칭송을 바았다. 수 세기에 걸쳐 시와 산문 모두에서 흔히 나오는 지복들(beatitudes)은 내용면에서 헬라인들의 슬픔과 고통, 열망과 이상을 반영한다'. 부모들은 자녀들(Aristoph., Wasps, 1512). 부자들은 그들의 부(Bacchyl., 5, 50), 지혜로운 자들은 그들의 지식(Plato, Laws, 2, 660e), 경건한 자들은 그들의 내적인 복에(Eur., Frag. 256, ed. Nauck 434), 입문자들은 그들의 하나님의 체험(Homeric Hymn to Demeter 480), 죽은 자들은(장례식의 비문들에서) 사물들의 헛됨으로부터 그들의 탈출에 대해 칭송이나 축하를 받았다(Aesch., Persians 712).||#2. 70인역본의 용법.||형용사 마카리오스는 70인역본에서 약 64회 나오며 히브리어 해당어를 가지는 경우에, 한번을 제외하고 모두 히브리어 에셰르(기쁨, 행복, 지복)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이 명사는 언제나 남성 복수 연계형 아쉬레로 나오며, '~는 복되도다(복이 있도다)'라고 번역할 수 있다. 따라서 마카리오스는 70인역본에서 지상의 축복들(집회서 25:8; 창 30:13; 시 127:5), 번영(욥 29:10 이하), 지혜로운 삶(잠 3:13; 집회서 14:20)에 관한 것이든 하나님의 계명들을 이행하는 것(시 1:1; 41:1[2]; 119:1)에 관한 것이든지 간에 관계 없다. 지혜 전승의 영향을 받은 이 시편들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를 복이 있다고 선언한다.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다 복이 있도다"(시 2:12; 34:8[9]; 참조: 시 84:12[13]; 사 30:18). "허물의 사함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시 32:1 이하). 여호와의 은총 가운데 있는 종교적인 행복과 창조주의 은사들을 통한 지상적 행복 사이의 연결이 지혜 문학에서는 기본적인 것이다. 그러나 여호와 자신은 결코 마카리오스로 불리워지지 않는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U. Becker).||#3.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마카리오스는 신약성경에서 50회 나오며, 마태복음에 13회, 누가복음에 15회, 바울 서신에 7회, 요한복음, 베드로전서, 야고보서에 각각 2회, 요한계시록에 7회 사용되었다. 신약성경에서 특별한 특징은 이 단어가 하나님 나라에 참여를 통해 오는 독특한 즐거움을 나타내는데 사용된다는 것이다. 마카리오스는 대개 직접적인 지복을 가리킨다. 이 단어는 사람들을 언급하며, 3인칭의 지복 구문은 서술적 마카리오스, 그 다음 사람, 마지막으로 종속절의 이유로 구성된다. 종말론적 구원의 맥락에서 구약성경의 지복들은 커다란 감정적인 의미를 지닌다. 종종 거짓된 행복과 대조되기도 하지만 이제 모든 세속적 가치들은 하나님 나라의 단 하나 최고한 선에 비하면 부차적인 것이다. 따라서||(a) 신약성경의 복은 종종 신성한 역설을 포함한다(마 5:3 이하; 눅 6:20-22; 벧전 3:14; 벧전 4:14; 계 14:13). 이것은 매우 초기 전승에서 분명히 산상수훈의 도입부를 이룬 놀라운 복의 경우에 특히 사실이다. 복에 대한 이 인상적인 형태에서 기본적인 진술은 스스로를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 여기는 자들에 대한 것이다. 이 진술의 힘은 모든 인간적인 가치의 역전에 놓여있다.|누가복음에서 복은 종말론적 위로로 보다 많이 이루어진다. 특별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 즉 가난한 자, 주린 자, 우는 자, 미움받는 자들이 하나님의 나라의 복을 약속받는다. 마태복음에서는 그들 자신의 도덕적· 종교적 행위의 요소가 보다 두드러지며 옳은 행실과 하늘의 보상 간의 관계가 강조된다. 사실상 복의 두 형태들 간에 실질적 차이점은 없다. 왜냐하면 부분적으로 보다 이전의 누가복음의 복의 형태는 복되다고 불리우는 자들의 쪽의 의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복은 경건한 가난한 자들을 위한 것이다. 그들은 비천하고 압제받는 자로(눅 6:20; 마 5:30; 눅 1:52 이하; 시 10:2; 시 14:6; 시 18:27), 갈망으로 가득찬 자들로(눅 6:21; 마 5:6), 세상의 빈곤한 상태나 혹은 그들 자신의 불완전함 때문에 매우 불안한 자들(눅 6:21; 마 5:4; 참조: 사 61:2 이하)로 묘사된다. 자의적이고 완고한 부자들과 경건을 가장한 거만하고 독선적인 자들이 여기에 대조되는 자들이다(참조: 눅 18:9).|누가복음의 복에 부가하여 마태복음의 복은 또한 그 마음이 하나님의 나라의 더 높은 법에 기꺼이 순응하는 자들을 언급한다: "긍휼히 여기는 자의 복"(마 5:7), "마음이 청결한 자의 복"(마 5:8), "화평케 하는 자의 복"(마 5:9). 여기서는 또한 유대인들 가운데 의인의 태도와 다소 대립되어 있다. 하나님 앞에서 중히 여김받는 것은 율법에 대한 차가운 지식이 아니라 단순한 동정심(마 25:31 이하)이며, 독선적인 외적 정결(마 23:26)이 아니라 마음의 청결이다(시 24:4). 2인칭의 마지막 복(마 5:11)은 제자들을 핍박의 결과로 가장 영예로운 선지자들 가운데 포함된 자의 복과 역설적으로 관련시키는 것이다. 그들은 순교 가운데 굳건히 남아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보상이 확실할 것이다.|또 복은 과거에 정직한 자의 채워지지 않는 갈망과 구별하여 이제 다가오는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는 자들에게도 확대된다(마 13:16 이하, 병행구). 또 진정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결정적인 계시를 만나는 자들에게 복이 있으며(눅 1:45; 마 16:17); 따라서 하나님의 계시를 이의 없이 받아들이고(마 11:6과 병행구) 그것에 대해 그릇된 요구를 하지 않는 자들(요 20:29)에게도 복이 있다. 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눅 11:28). 예수님께서 인간 앞에 심판과 구원이라는 가공할 만한 이중적 운명을 놓아두셨은즉 굳게 지키고(눅 12:37 이하; 계 16:15) 충성하고(마 24:26; 눅 12:43)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요구를 이행함으로써(눅 14:14; 요 13:17) 하나님의 보상을 발견할 자들을 축복하신다. 유사하게 굳건히 견디는 자들이 복되다 일컬음 받는다(약 1:12). 세상에서 그들의 인내가 영원한 구원을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확실한 보상의 사상은 의를 행하는 자들이 복되다고 불리울 때 또한 나타난다(약 1:25). 이 모든 구절들에서 미래의 영광의 빛이 의로운 자의 현재의 비참한 형국 위에 비춘다. 따라서 복은 거저 미래의 암시이거나 미래에 있을 위로인 것만은 아니다. 미래의 빛을 현재에서 본다. 헬라 세계에서 심각한 불행을 모면한 사람을 행복하다고 말하듯이 예루살렘의 임박한 심판의 위협 하에서 자식이 없어 불행한 여인이 오히려 복되다고 불리운다(눅 23:29). 여인의 영광은 위대한 아들에 의해 가장 높임 받으므로, 메시야의 어머니가 복되다고 불리운다(눅 11:27; 행 20:35의 비인격적 용법에서 그리스도인의 베풂은 이기적인 베풂과 비교할 때 복되다고 한다).|공관복음에는 많은 복들에 관하여 언급되어 있는 반면에 바울의 기록에는 거의 언급되어 있지 않을 뿐더러, 바울의 기록에 나타나는 복은 특별한 금언의 형태를 지니지 않는다. 그러나 바울이 언급하는 얼마 안되는 복은 신학적으로는 중요성을 지닌다. 바울이 롬 4:7 이하에서 구약성경으로부터 취하는(시 32:1 이하) 이중적 행복(macarism)은 죄 사함을 받는 자들을 복되다고 한다. 이것은 특별한 척도(measure)에서 구원의 복이다. 롬 14:22에서는 논란이 되는 윤리적 문제를 결단함에 있어서 자책의 이유가 없는 자들은 복되다고 한다. 고전 7:40에서는 결혼하지 않은 자가 복되다고 한다. 그 이유는 그들이 세상의 괴로움을 덜고 주께 더 전심으로 헌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마지막으로 요한계시록에서는 복에 관하여 강하게 묘사한다. 14가지 재앙과 함께 7가지 복이 열거되어 있으며, 모두 선포된 금언적 형태를 지니고, 종말 바로 앞의 시대가 공동체에게 암시하는 긴장으로 가득차 있다. 그 중 다섯 가지 복은 하늘로부터 더없이 확실한 권위로 선언된다(계 14:13; 계 16:15; 계 19:9; 계 22:7; 계 22:14). 요한계시록은 시종 하나님의 비밀에 대한 복된 계시를 획득하여 지키는 자들의 복이라는 골격을 유지한다(계 1:3이 계 22:7에 확증됨). 계 14:13에서는 지금 이후로, 즉 기독교에 대항한 최종적인 싸움의 시작부터 수난을 당하는 그리스도의 증인들이 복되다고 한다. 재판정에 서고(에스드라사서 7:35) 심지어 죽음까지도 당하는 그들의 행위(일)는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한 보상을 받을 것이다. 또 지상에서 사는 날 동안 깨어 근신하며(계 16:15) 세상의 모든 매혹적인 것들과 보화보다 하늘의 약속을 더 고귀하게 여기는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은 복되다. 하나님께서 혼인 잔치에 청하신 자들은 복되다(계 19:9). 첫째 부활에 참예하고 마지막 죽음을 피한 자들은 복되다(계 20:6). 마지막 이중적 행복(macarism)은 법적 선언이다. 악한 자들은 내쫓긴바 되나, 완전한 거룩(죄사함)과 성화로 영원한 도성에 들어가기에 합당하다고 여김 받은 자들은 복되다.||(b) 행 26:2에서 이 단어는 아무개를 운좋다(다행이다)고 할 때의, 순수한 세속적 의미로 쓰였다.||(c) 목회서신에서 마카리오스는 보다 헬라적인 의미로 사용되어 세상의 괴로움과 부패하기 쉬움을 초월하는 복되신 하나님을 묘사한다(딤전 1:11; 딤전 6:15). 딛 2:13에서는 마카리오스가 비인격적으로 사용되어 그리스도인들의 소망을 가리킨다. 이 소망은 썩지 않을 복되신 하나님의 영역에 속한 것이다.|(참조: F. Hau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