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해설 214 페이지 > 기독정보닷컴

행복
makarismov"
복, 행복||#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마카리스모스(Plat. 이래)는 마카리조($3106: 복되다 부르다, 복되다 선언하다)에서 유래했으며, '복되거나 행복하다고 칭송함'을 의미하며,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최초로 '지복' beautitude(macarism)를 의미하는 전문 용어로 사용되었다.|이 단어는 70인역본에 나오지 않는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마카리스모스는 신약성경에서 3회 나오며,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만 사용되었다.||(a) 롬 4:6; 롬 4:9에서는 죄사함 받는 것의 복됨에 대해 사용되었다: "6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윗의 말한바 9 그런즉 이 행복이 할례자에게뇨 혹 무할례자에게도뇨 대저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 하노라".||(b) 갈 4:15에서는 복음을 받는 것의 복됨에 대해 사용되었다: "너희의 복이 지금 어디 있느냐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할 수만 있었더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를 주었으리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F. Hauck).
마게도냐
Makedoniva
마게도냐 Macedonia(지)||마케도니아는 '숭배'를 의미하며, 그 지명이 이 신약성경에 22회 나온다.|마케도니아/ 마게도냐는 현재의 발칸 반도인 아가야(그리스)의 남쪽에 위치하는 마가돈의 필립이 통치했던(B.C. 359-336) 강한 민족의 국가이며 수도는 펠라(Pella)이다.|마케도니아 제국은 필립의 아들, 알렉산더 대왕(Alexander the Great: B.C. 336-323)에 의해 그 경계가 동쪽으로 인도(India)까지 확장된다. 알렉산더와 그의 후계자들은 기독교의 출현을 위한 헬라 세계의 틀을 형성하는데 공헌하였다.|마게도냐는 로마에 의해 정복당하여(B.C. 168) 식민지가 되었다(B.C. 142). 바울의 시대에는 지금의 발칸 반도를 가로질러 아드리아해(Adriatic)로부터 에게해(Aegean)에까지 확장되었다. 마게도냐는 달마티아(Dalmatia: 지금의 유고슬라비아[Yugoslavia]), 모에샤(Moesia)의 남쪽에, 그리고 아가야(Greece)의 북쪽에 위치한다.|바울은 환상 중에 마게도냐 사람이 그에게 나타나서 그의 민족을 도와 달라고 부르는 것을 본 후에(행 16:9), 아시아 대륙의 드로아로부터 마게도냐 연안의 빌립보 성을 향하여 항해한다.|바울은 "직행하여" 사모드라게(Samothracia)의 작은 섬으로 도착한 후, 네압볼리로 갔다가 곧 마게도냐의 빌립보로 갔다. 거기에서 바울은 유럽에서 첫 번째 그리스도인 개종자를 얻었다. 그 개종자는 두아디라성의 루디아로서 장사를 하는 여자였는데 그녀의 온 집안 식구와 함께 세례(침례)를 받았다. 여기에서 바울과 실라는 너무나 성공적이어서 적대적인 군중들은 그들을 붙잡아서 관원들에게 넘겨주었다(행 16:21-40).|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은 또한 데살로니가 전서, 후서의 수신자인 데살로니가의 마게도냐 도시들, 암비볼리와 베뢰아를 방문하였다(행 17:10).|바울이 아덴과 고린도에서 전도하는 동안 마게도냐에서의 사역은 실라와 디모데에 의해 계속되었다(행 18:5). 바울은 네압볼리로부터 빌립보를 거쳐 데살로니가에 이르는 지역을 가로지르는 에그나티아 대로를 이용하였다.|그 후의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의 마게도냐 방문은 행 20:1-행 20:3에 기록되었고, 아마도 바울의 첫 번째 투옥 후 세 번째 마게도냐에서의 체류가 딤전 1:3에 기록되어 있다. 그리스도교를 전파하기 위해 생명의 위협을 무릅쓴 마게도냐인들은 가이오와 아리스다고(행 19:29)와 세군도(행 20:4)였는데 그들은 바울의 충실한 친구로 남아있었다.|마게도냐인들, 특히 빌립보의 마게도냐인들은 가난한 그리스도인들에게 후히 베풀었으며(롬 15:26) 바울 사도 자신에게도 그러하였다(고후 8:1-5; 빌 4:15).|바울은 세 통의 서신을 마게도냐의 교회들에게 썼다: 그것들은 빌립보서와 데살로니가 전 후서이다. 데살로니가 전 후서에 그는 데살로니가인들의 복음의 수용(살전 1:5 이하)과 그들의 마게도냐와 아시아에서의 복음 선포(행 1:8)를 크게 상기한다. 그는 그들의 성장에 대해 항상 감사하였고(살후 1:3, 살후 2:13),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않도록 격려한다(살후 3:13).|(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HBD).
마게도냐 사람
Makedwvn
마게도냐 사람 Macedonia||마케돈은 '마게도냐 사람, 마게도냐의 거주민'을 의미한다.|신약성경에서 마케돈이란 명칭은 5회 나오며, 사도행전에 3회, 고린도후서에 2회 사용되었다.||(a) 행 16:9에서 바울이 마게도냐에 관한 환상을 본 것을 언급한다: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가로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b) 행 19:29에서 마게도냐의 제자들에 관해 언급한다: "온 성이 요란하여 바울과 같이 다니는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잡아가지고 일제히 연극장으로 달려들어 가는지라".|행 27:2에서도 마게도냐의 제자들에 관해 언급한다: "아시아 해변 각처로 가려 하는 아드라뭇데노 배에 우리가 올라 행선할쌔 마게도냐의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도 함께 하니라".||(c) 고후 9:2에서 바울은 연보에 관해서 마게도냐 교인들에게 아가야(고린도)에서 일년전부터 준비했다고 자랑한 것을 언급하고, 고후 9:4에서 만일 디도와 두 형제를 바로 뒤따라서 몇 명의 마게도냐 교인들이 바울과 함께 간다면 고린도 교인들이 준비치 아니한 것을 그들이 볼지도 모르는 위험이 있는 것이다. 만일 그러하다면 바울과 그의 동료들은 - 교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 교회에 대한 그들의 추정 또는 신뢰로 인하여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 대책이 필요함을 계속해서 말한다.|(참조: TB; F. G. Carver).
시장
mavkellon
식품 시장 Food market.||#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마켈론은 라틴어 마켈룸(macellum)과 관련이 있으며, '울타리로 막는 땅이나 장소', 그 다음에 '식품 시장' Food market를 의미한다.|시장은 돔형의 지붕을 가진 정방형의 뜰이며, 중간에는 샘이 있고 옆에는 노점들이 있으며, 아마도 희생 제사 식사를 위한 방도 있었을 것이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마켈론은 신약성경에서 고전 10:25에 한번 나온다: "무릇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여기서 마켈론은 바울이 시장에서 파는 고기에 대하여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고린도의기독교인들에게 말할 때 사용된다. 그런데 이 고기들은 이교 신전에서 나온 것일 가능성이 높으나 또한 단지 쉽게 이용할 수 있는 고기였을 가능성이 크다. 바울이 충고는 모든 것이 주의 것이므로 묻지 말고 먹으라는 것이다.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양심이 불필요하게 부담을 받지 않도록 고기의 출처를 알아보는 것을 금한 것이다. 단 불신자들이 이 고기는 이교 제사에서 바쳐진 것이라고 말하면 우리는 그들을 위해 그 고기를 먹지 말아야 한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J. Schneider).
먼데
makravn
멀리, 멀리서.||#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마크란(아에쉴루스 이래)은 원래 형용사 마크로스($3117: 긴, 먼, 멀리 떨어진)의 여성형 대격이며,||(a)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진',|(b) 시간적으로 '오랜, 긴'을 의미하며, 부사로도 기능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마크로스 마크란은 70인역본에서 12개의 히브리어 단어들의 역어로 사용되었다.||(a) 마크로스는 공간적 의미로 사용되었다(창 44:4; 민 9:10; 사 27:9; 잠 2:16; 잠 13:19).||(b) 마크로스는 비유적 의미로, 신학적으로, 하나님의 멀리 계심(시 22:1), 하나님의 구원(사 59:11)이나 하나님의 의(사 59:14)가 멀리 있음을,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있음을 나타낸다(렘 2:5). 죄로부터 멀리 있다는 주제가 종종 나타난다(잠 4:24; 시 119:155; 잠 15:29). 삼하 7:19; 겔 12:22에서 마크란은 시간의 오램을 가리킨다.||#3. 신약성경의 용법.||마크란은 신약성경에서 10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마크란은 공간적 의미로 사용되었다.|① 마 8:30에서 돼지 떼가 '멀리서' 먹고 있는 것을 나타낸다: "마침 멀리서 많은 돼지 떼가 먹고 있는지라".|② 요 21:8에서 육지에서 제자들과의 거리에 대하여 사용되었다: "다른 제자들은 육지에서 상거가 불과 한 오십 간쯤 되므로 작은 배를 타고 고기든 그물을 끌고 와서".|③ 행 22:21에서 바울의 개종 기사에서 사도의 선교지에 대해 사용되었다: "나더러 또 이르시되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하셨느니라".|④ 행 2:39에서 하나님의 약속의 범위에 대해 사용되었다: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b) 마크란은 비유적 의미에서 신학적으로 사용되었다. 우 마크란(**)은 신약성경에 흔히 나오는데,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심연이 극복되었음을 나타낸다.|① 막 12:34에서 예수님은 서기관에게 하나님 나라에 "멀지 않다"고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그 지혜 있게 대답함을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 멀지 않도다 하시니그 후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② 행 17:27에서는 하나님께서 우리들 각자에게서 "멀리 계시지 않다"고 한다: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③ 엡 2:17에서는 "멀리" 있던 이방인들이 가까이 왔다고 언급된다: "또 오셔서 먼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참조: 사 57:19).|눅 15:20에서 아버지는 탕자를 "멀리서" 보자마자 그에게로 재빨리 달려간다: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H. Preisker).
멀리(서)
makrovqen
멀리 afar, 멀리서 from afar||#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부사 마크로덴(Polyb. )은 마크로스($3117: 긴, 먼, 멀리 떨어진)에서 유래했으며, '멀리, 멀리서'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부사 마크로덴은 약 40회 나오며, 라호크(멀리, 멀리 떨어진, 거리)와 그 어군들의 역어로 사용되었다(창 22:4; 수 9:6; 수 9:9; 출 2:4; 렘 2:5 등).||#3. 신약성경의 용법.||부사 마크로덴은 신약성경에서 14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마크로덴은 공간적 의미로 사용되었다.|① 막 5:6에서 거라사의 귀신들린 사람에 대한 기사에 사용되었다: "그가 멀리서 예수를 보고 달려와 절하며".|② 막 8:3에서 예수님에게로 모여든 4,000명의 일부에 대해 사용되었다: "만일 내가 저희를 굶겨 집으로 보내면 길에서 기진하리라 그 중에는 멀리서 온 사람도 있느니라".|③ 막 11:13에서 무화과 나무와 멀리 떨어져 있는 예수님의 위치를 지적한다: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④ 막 14:54에서 베드로가 멀리 떨어져 예수님을 따라 대제사장의 집 뜰로 들어갔다: "베드로가 예수를 멀찍이 좇아 대제사장의 집 뜰안까지 들어가서 하속들과 함께 앉아 불을 쬐더라"(병행구, 마 26:58).||(b) 마크로덴은 비유적 의미로 사용되었다.|① 막 15:40과 병행구 마 27:55; 눅 23:49에서 아포 마크로덴의 용법은 비유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 어떤 사람들이 십자가의 주위에서 증오하고 조롱하는 동안 여인들은 '멀리' afar off 서 있었다. 이것은 두려워서 그런 것이 아니다. 공관복음의 묘사에 의하면 그들이 조롱하는 자들과 함께 있을 수 없고, 떨어져서 말없이 오직 십자가에 못박히심의 증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멀리' 떨어져 서 있었다.|② 눅 16:23에서 아포 마크로덴은 부자와 나사로 사이에 있는 커다란 틈을 묘사한다: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③ 계 18:10; 계 18:15; 계 18:17에서 이 단어는 바벨론에 대한 심판을 볼 때 느끼는 공포를 표현한다: "그 고난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가로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 견고한 성 바벨론이여 일시간에 네 심판이 이르렀다 하리로다".|④ 눅 18:13에서도 이런 간격, 거리의 의미는 강하게 나타나는데, 여기에서 세리는 자기의 무가치함을 인식하고 멀리 서서 기도한다: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Ho. Preisker).
길이 참다
makroqumevw
오래 참다, 인내하다 have patience.||#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마크로뒤메오는 마크로스($3117: 긴, 먼)와 뒤모스($2372)에서 유래했으며, '참다, 인내하다, 기다리다'(Plut.)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마크로뒤메오는 70인역본에서 10회 나오며, '참다, 인내하다, 기다리다'(욥 7:16; 집회서 2:4), '인내심이 강하다, 참을성이 있다'(잠 19:11; 집회서 18:11; 29:8)라는 의미를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마크로뒤메오는 신약성경에서 10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① 마 18:26; 마 18:29: "26 그 종이 엎드리어 절하며 가로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하거늘 29 그 동관이 엎드리어 간구하여 가로되 나를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참조: 마 18:23 이하). 이 비유에서 첫째로는 왕의 오래 참음에, 둘째로는 종의 오래 참음에 호소하고 있다. 이 비유는, 결코 반제될 수 없는 빚에 대한 완전한 강요와 아울러 진노의 심판을 전제한다. 그 양을 무시하고 퀴리오스(주인)는 빚 전체를 지불 유예나 연기가 아니라 관대한 은혜로 탕감해 준다. 이러한 종류의 오래 참음은 그와 상응하는 종 편에서의 오래 참음을 요구한다. 이러한 응대의 부재는 오래 참음을 의문시하게 할 것이다. 이 신적 용서는 인간이 하나님을 향하여 정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법칙이 아니다. 이것은, 언제나 하나님의 거저 주시는 은혜이며, 하나님의 넘치는 사랑이 이웃에 대한 용서의 사랑이라는 응답을 야기하지 못한다면 이것이 취소될 수도 있다.|② 눅 18:7은 해석에 있어서 논란이 있는 구절이다. 이 구절의 바로 앞에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가 나온다(눅 18:1-눅 18:6). 이 비유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가르치시기 위한 것이다. 이 비유에서 과부는 끈질긴 탄원을 통해 마침내 그 재판관으로 하여금 자기의 원한을 풀어주도록 하는 데에 성공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도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고 하신다.|엘리스(E. E. Ellis)는 네 가지 가능한 해석을 제시하면서 첫째로, '하나님께서 그들의 불평불만을 잘 참고 받아 주시지 않겠느냐'라는 해석을 제시했다. 자신은 마 18:26의 유사한 용례를 들면서, 이 해석을 지지한다. 또 전치사 에피($1909)가 두 가지 경우로 사용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이처럼, 불의한 재판관은 그 과부가 늘 와서 그를 괴롭게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마 18:5) 그녀의 원한을 풀어주었으나, 반면 하나님은 선하시고 자비하시니 그의 백성과 그들의 울부짖음에 대해 더욱 더 잘 참아주실 것이다. 비유의 문맥에 이 해석이 적합하다.|J. 호스트의 다음과 같은 해석도 고려해 볼만 하다: 의인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의 옳음을 옹호해 준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지체하시는가? 물론 하나님이 이 비유(마 18:1 이하)의 불의한 재판관과 같기 때문이 아니라 택함받은 자들 자신들이 믿음과 기도를 위해 은혜의 기간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며 이 믿음과 기도에 의해서만 그들이 응보의 날까지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참조: 요 18:8).||(b) 그리스도인의 오래 참음.|① 살전 5:14에서 하나님의 오래 참음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유사한 오래 참음을 가지도록 요구한다: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규모 없는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안위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오래 참으라".|② 고전 13:4에서 사랑 그 자체는 오래 참음이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③ 히 6:15, "저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참조: 창 22:16 이하). 인내는 아브라함이 보여 주었던 것과 같은, 그러한 믿음과 소망의 한 양상이다. 모든 신자도 아브라함처럼 인내를 통해 하나님의 약속들을 상속받을 수 있다.|④ 약 5:7에서 신자에게 요구되는 인내에는 또 하나의 측면이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강림"을 기다리는데 필요한 것이다. 약 5:7-약 5:11에서는 두 가지 측면을 함께 연결시키고 있다. 즉 하나는 우리의 이웃과 관련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 세상의 모든 시험과 환란을 극복하기 위해 재림 때까지 필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야고보는 그 편지의 수신자에게 인내하라고 권면하고 있다(약 5:7-약 5:10). 주의 강림이 가까우므로 마음을 굳게 하며(약 5:8), 심판자가 문밖에 서 계시니 서로 원망하지 말고(약 5:9), 선지자들을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으로 삼음과 동시에(약 5:10) 욥처럼 굳은 인내를 소유하라고(약 5:11; 참조: 욥 1:21 이하; 욥 2:10) 야고보는 권면하고 있다.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이시기 때문이다(약 5:11; 참조: 시 10:38; 시 111:4).|⑤ 벧후 3:9, "주의 약속은 어떤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베드로후서 3장에서 재림의 외견상 지연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이는 막연한 연기가 아니라, 인간에게 회개의 충분한 기회를 주기 위한 하나님의 인내의 표시이다.|(참조: U. Falkenroth; C. Brown; J. Horst).
길이 참으심
makroqumiva
인내, 오래참음 patience, for bearance.||#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마크로뒤미아(Menander 이래)는 마크로뒤모스($3116: 인내하는, 오래 참는)에서 유래했다.||(a) 이 단어는 '체념, 감수, 강제적인 수락'을 의미한다. 고통을 알지 못하는 신들의 행복과는 달리 인간에게 있어서 유일한 옵션은 마크로뒤미아 곧 체념이나 감수해야하는 인내이다(Menander).||(b) 이 단어는 '자포자기적인 인내'(Strabo)를 의미한다.||(c) 이 단어는 '지연, 지체, 행동을 연기하거나 미루는 것'(Artemid)를 의미한다.||(d) 이 단어는 '인내, 확고부동', 목적에 도달할 때까지 '참음'이라는 좋은 의미도 지니게 되었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마크로뒤미아는 70인역본에서 5회 나오며, '오래참음'(잠 25:15; 렘 15:15), '견딤, 확고부동' 등, 특히 고난과 재난을 참는데서 보이는 것 같은 것(사 57:15; 마카베오일서 8:4)을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마크로뒤미아는 신약성경에서 14회 나오며, 바울 서신에 10회, 히브리서, 야고보서, 베드로전서, 베드로후서에 각각 1회 사용되었다.||(a)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 바울은 하나님의 오래참음을 그의 진노와 관련시킨다.|① 롬 2:4,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뇨".|② 롬 9:22, "만일 하나님이 그 진노를 보이시고 그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하나님의 진노는 이미 명백히 나타났지만 오직 진노의 날에만 절정에 달할 것이다(참조: 롬 2:5). 오래참으심은 분명히 우유부단이나 굴종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감정에 의해 동요되지 않으며 의도적 목표를 가지고 있다. 지체는 회개의 시간을 허락할 수 있지만 또한 진노를 증가시킨다. 그것은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요구의 여지를 전혀 남겨 좋지 않으며 단지 그것의 종말론적 차원에서 하나님의 목적을 분명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 목표가 오직 소극적인 것만은 아니다. 이는 진노의 그릇들 조차도 자비의 그릇들에서 보이는 하나님의 자비를 선명하게 해주는 구실을 하기 때문이다.||(b) 그리스도인의 오래 참음.|하나님의 오래참음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유사한 오래참음을 가지도록 요구한다(참조: 살전 5:14).|① 갈 5:22에서 오래 참음은 사랑에 의해 지배되는 성령의 열매로서 결국 상호간의 보정(補正)이 된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② 고후 6:6에서 오래 참음은 하나님을 섬기는데 필요한 자질이며 지식과 친절을 연결해 준다: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③ 골 1:11에서 오래 참음은 하나님의 영광에 그 기원을 둔, 그리고 즐거운 감내로 자체를 완성하는 하나의 영적 힘이다: "그 영광의 힘을 좇아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④ 골 3:12 이하에서 택함받은 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들의 새 의복으로서 오래 참음을 입는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입고".|⑤ 엡 4:2에서 오래 참음은 그리스도의 한 몸에로의 그들의 소명에 부합한다(참조: 엡 4:1 이하):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⑥ 딤전 1:16에서 그리스도께서 친히 바울을 향하여 오래 참음을 발휘하신다: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절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와 같이 하여 그는 대적자들을 대함에 있어서 우리를 위한 하나의 모본을 제공하신다. 아무도 쉽게 포기되어서는 안된다. 하나님의 오래 참음은 자연적으로 찬양에 이른다(딤전 1:17).|⑦ 딤후 3:10에서 오래참음은 선교 사역에서 의무적인 것으로 부과된다: "나의 교훈과 행실과 의향과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와".|⑧ 딤후 4:2에서 오류와 맞서는 최선의 길은 오래참음에 의한 것이며 이것은 한편으로 후퇴하지 않으면서 온갖 신뢰로 신적 재판관에게 판결을 맡기는 것이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⑨ 약 5:7 이하에서 부당한 고난을 당함에 있어서 마크로뒤미아는 그리스도의 강림을 기다리는 오래참음이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그리스도의 가까우심에 대한 인식은 분노의 감정을 끄며 승리적 확고부동함을 낳고 열매의 확실성을 부여한다.|⑩ 히 6:12(참조: 히 6:11-히 6:12)에서 강조점은 믿음과의 관련성에 놓여 있다: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 마크로뒤미아는 기다림에 의해 초조해지지 않는 믿음과 소망의 확고부동성이다. 그것의 기초는 의로우신 하나님의 약속이다.|⑪ 벧전 3:20 이하: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명 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여기에서 노아의 시대에 하나님의 오래참음은, 구원과 멸망으로 나타날 순종과 불순종의 진전을 고려에 넣고 있다. 그것은 오늘날 선포와 세례(침례)를 통한 그리스도의 사역에 의해 특색을 이루고 있다.|⑫ 베드로후서에서는 하나님의 마크로뒤미아가 중심 개념이다. 이것은 파류샤(재림)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이유를 설명해 준다(참조: 벧후 3:4). 그것의 목적은 전적으로 적극적인 것, 즉 회개의 기간을 허락해 주는 것이다. 심판은 마침내 악인들 위에 떨어질 것이다(참조: 벧후 3:7).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은 흠없이 발견되도록 열심을 내야 한다(참조: 벧후 3:14). 그렇지만 우리는 주의 오래참으심을 구원으로 여겨야 한다: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벧후 3:15).|(참조: V. Flkenroth; C. Brown; J. Horst).
너그러이
makroqumwv"
인내심을 가지고, 참을성 있게.||부사 마크로뒤모스는 '인내심을 가지고, 참을성 있게'를 의미한다.|이 단어는 신약성경 행 26:3에만 나타난다: "특히 당신이 유대인의 모든 풍속과 및 문제를 아심이니이다 그러므로 내 말을 너그러이 들으시기를 바라옵나이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makrov"
먼, 멀리 떨어진, 긴, 오래 지속되는.||#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마크로스(Homer 이래)는 '긴' long을 의미하며,||(a) 장소에 대해 '먼, 멀리 떨어진'(Aeschyl., Prom. 814),|(b) 시간에 대해, '오랜, 긴' long, '오래 지속하는' lasting long(Homer)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마크로스는 신약성경에서 4회 나오며, 공관복음에만 사용되었다.||(a) 막 12:40에서 마크로스는 '긴, 오래 지속되는'을 의미하며, '긴 시간 동안 기도하는 것'을 표현한다: "저희는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하시니라"(병행구, 눅 20:47).||(b) 눅 15:13에서 마크로스는 '먼, 멀리 떨어진'을 의미한다: "그 후 며칠이 못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허비하더니".|눅 19:12에서도 마크로스는 같은 의미를 지닌다: "가라사대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에".|(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장수하는
makrocrovnio"
오래 사는 long-lived.||#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마크로크로니오스(Hippocr. 이래)는 마크로스($3117: 긴, 먼)와 크로노스($5550: 시간)에서 유래했으며,||(a) 문자적으로, '긴 시간의' long-timed(라틴어 longaevus),|(b) '오래 사는' long-lived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마크로크로니오스는 신약성경에서 엡 6:3에 한번 '오래 사는(장수하는)'을 의미한다: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네가 잘되고"라는 번영의 사상은 신명기(신 5:16)에서 온 것이고, "땅에서 장수하리라"는 말은 출애굽기(출 20:12)에서 온 것이다. 이 약속을 단순히 이스라엘의 한 자취로만 여길 것인가? 아니면 오늘날에도 적용되는가? 우리는 번영과 장수를 순종의 보상으로 믿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시대는 그리스도교를 하나의 상업적 거래처럼 여기는 일이 있다. 하지만 한편 우리들은 성경이 선포한 보상을 잊어서는 안된다.|데오돌 웨델은 '잘 관찰해 보면 의로운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하나님의 보상이 있다. 이것이 비물질적인 것이지만 그러나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는 보상은 아니다'고 하였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W. H. Taylor).
약한 것
malakiva
약함, 부드러움, 병.||#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말라키아(헤로도투스 이래)는 말라코스($3120)에서 유래했으며,||(a) 원래 '부드러움'(softness)을 의미했으며, 여성처럼 '나약한 사람'에 대해서도 사용되었다.|(b) 의학 저술에서 '약함'이나 '병'을 뜻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c) 후기 헬라어 용법에서는 이 단어를 노소스($3554: 질병)와 관련시켜 육체적 '질병'을 묘사하기도 하였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말라키아는 70인역본에서 약 15회 나오며, 주로 히브리어 홀리(약함, 병)를 번역하며, 병에 관한 일반적 용어로 사용되었다(신 7:15; 신 28:61; 사 38:9; 사 53:3 등).||#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말라키아는 신약성경에서 마태복음에만 3회 나온다(마 4:23; 마 9:35; 마 10;1). 여기서 말라키아는 '약함'이나 '병'을 의미한다. 마태에게 있어서 육체에 나타난 병을 고친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의 중요한 양상이다.|(참조: Walter Bauer; J.H.Thayer; R.K.Harrison).
부드러운
malakov"
부드러운 soft||#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말라코스(Homer. 이래)는 기본어이며, '연한, 부드러운, 나약한, 여자 같은'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말라코스는 신약성경에서 4회 나오며, 마태복음, 누가복음, 고린도전서에만 사용되었다.||(a) 마 11:8(병행구 눅 7:25)에서 '부드러운' 옷에 대해 사용되었다: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자들은 왕궁에 있느니라".||(b) 고전 6:9에서 '여성적인, 미동' 즉 자기 몸을 변태적인 호색에 제공하는 남성에 대해 사용되었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마할랄렐
Malelehvl
마할랄렐 Mahalaleel(인)||말렐레엘은 히브리어 마할랄렐(하나님을 찬양하는)에서 유래했다.|말렐레엘은 신약성경에서 한번 나오며, 눅 3:37에서 그리스도의 조상 중 한 사람으로 나타난다: "그 이상은 므두셀라요 그 이상은 에녹이요 그 이상은 야렛이요 그 이상은 마할랄렐이요 그 이상은 가이난이요".|(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더욱
mavlista
매우, 특별히||#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부사 말리스타(Homer 이래)는 기본 부사 말라(**: 매우, 대단히)의 최상급이며, '매우, 특히, 특별히, 주로, 무엇보다도'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부사 말리스타는 신약성경에서 12회 나오며, '매우, 특별히'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a) 행 20:38에서 말리스타는 '매우'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다시 그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한 말을 인하여 더욱 근심하고 배에까지 그를 전송하니라".||(b) 나머지 구절들에서 말리스타는 '특히, 특별히'라는 의미를 지닌다(행 25:26; 행 26:3; 갈 6:10; 빌 4:22; 딤전 4:10; 딤전 5:8; 딤전 5:17; 딤후 4:13; 딛 1:10; 몬 1:16; 벧후 2:10).|(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