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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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참다, 인내하다 have patience.||#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마크로뒤메오는 마크로스($3117: 긴, 먼)와 뒤모스($2372)에서 유래했으며, '참다, 인내하다, 기다리다'(Plut.)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마크로뒤메오는 70인역본에서 10회 나오며, '참다, 인내하다, 기다리다'(욥 7:16; 집회서 2:4), '인내심이 강하다, 참을성이 있다'(잠 19:11; 집회서 18:11; 29:8)라는 의미를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마크로뒤메오는 신약성경에서 10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① 마 18:26; 마 18:29: "26 그 종이 엎드리어 절하며 가로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하거늘 29 그 동관이 엎드리어 간구하여 가로되 나를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참조: 마 18:23 이하). 이 비유에서 첫째로는 왕의 오래 참음에, 둘째로는 종의 오래 참음에 호소하고 있다. 이 비유는, 결코 반제될 수 없는 빚에 대한 완전한 강요와 아울러 진노의 심판을 전제한다. 그 양을 무시하고 퀴리오스(주인)는 빚 전체를 지불 유예나 연기가 아니라 관대한 은혜로 탕감해 준다. 이러한 종류의 오래 참음은 그와 상응하는 종 편에서의 오래 참음을 요구한다. 이러한 응대의 부재는 오래 참음을 의문시하게 할 것이다. 이 신적 용서는 인간이 하나님을 향하여 정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법칙이 아니다. 이것은, 언제나 하나님의 거저 주시는 은혜이며, 하나님의 넘치는 사랑이 이웃에 대한 용서의 사랑이라는 응답을 야기하지 못한다면 이것이 취소될 수도 있다.|② 눅 18:7은 해석에 있어서 논란이 있는 구절이다. 이 구절의 바로 앞에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가 나온다(눅 18:1-눅 18:6). 이 비유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가르치시기 위한 것이다. 이 비유에서 과부는 끈질긴 탄원을 통해 마침내 그 재판관으로 하여금 자기의 원한을 풀어주도록 하는 데에 성공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도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고 하신다.|엘리스(E. E. Ellis)는 네 가지 가능한 해석을 제시하면서 첫째로, '하나님께서 그들의 불평불만을 잘 참고 받아 주시지 않겠느냐'라는 해석을 제시했다. 자신은 마 18:26의 유사한 용례를 들면서, 이 해석을 지지한다. 또 전치사 에피($1909)가 두 가지 경우로 사용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이처럼, 불의한 재판관은 그 과부가 늘 와서 그를 괴롭게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마 18:5) 그녀의 원한을 풀어주었으나, 반면 하나님은 선하시고 자비하시니 그의 백성과 그들의 울부짖음에 대해 더욱 더 잘 참아주실 것이다. 비유의 문맥에 이 해석이 적합하다.|J. 호스트의 다음과 같은 해석도 고려해 볼만 하다: 의인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의 옳음을 옹호해 준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지체하시는가? 물론 하나님이 이 비유(마 18:1 이하)의 불의한 재판관과 같기 때문이 아니라 택함받은 자들 자신들이 믿음과 기도를 위해 은혜의 기간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며 이 믿음과 기도에 의해서만 그들이 응보의 날까지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참조: 요 18:8).||(b) 그리스도인의 오래 참음.|① 살전 5:14에서 하나님의 오래 참음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유사한 오래 참음을 가지도록 요구한다: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규모 없는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안위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오래 참으라".|② 고전 13:4에서 사랑 그 자체는 오래 참음이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③ 히 6:15, "저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참조: 창 22:16 이하). 인내는 아브라함이 보여 주었던 것과 같은, 그러한 믿음과 소망의 한 양상이다. 모든 신자도 아브라함처럼 인내를 통해 하나님의 약속들을 상속받을 수 있다.|④ 약 5:7에서 신자에게 요구되는 인내에는 또 하나의 측면이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강림"을 기다리는데 필요한 것이다. 약 5:7-약 5:11에서는 두 가지 측면을 함께 연결시키고 있다. 즉 하나는 우리의 이웃과 관련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 세상의 모든 시험과 환란을 극복하기 위해 재림 때까지 필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야고보는 그 편지의 수신자에게 인내하라고 권면하고 있다(약 5:7-약 5:10). 주의 강림이 가까우므로 마음을 굳게 하며(약 5:8), 심판자가 문밖에 서 계시니 서로 원망하지 말고(약 5:9), 선지자들을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으로 삼음과 동시에(약 5:10) 욥처럼 굳은 인내를 소유하라고(약 5:11; 참조: 욥 1:21 이하; 욥 2:10) 야고보는 권면하고 있다.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이시기 때문이다(약 5:11; 참조: 시 10:38; 시 111:4).|⑤ 벧후 3:9, "주의 약속은 어떤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베드로후서 3장에서 재림의 외견상 지연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이는 막연한 연기가 아니라, 인간에게 회개의 충분한 기회를 주기 위한 하나님의 인내의 표시이다.|(참조: U. Falkenroth; C. Brown; J. Hor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