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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llon
더욱 더, 오히려||말론(Homer. 이래)은 말라(%762: 매우, 대단히)의 비교급이며, 부사로 '더욱 더, 더 큰 정도로, 오히려, 도리어'를 의미한다. 이 단어는 신약성경에서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더욱 더, 매우, 훨씬' (막 10:48; 눅 18:39; 롬 5:15; 롬 5:17; 빌 1:12 등).|(b) '더욱 확실히' (마 7:11; 마 10:25; 눅 11:13; 고전 9:12; 히 9:14등).|(c) '오히려, 차라리' (마 6:30; 롬 5:9이하; 히 12:9등).|(d) 반대가 되어 '오히려, 도리어' (마 10:6; 마 10:28; 막 5:26; 롬 14:13등).|(e) '아니 오히려, 보다 정확히 말하면' (갈 4:9).|(f) '더 기꺼이, 더 쉽사리' (고전 14:5; 고후 5:8; 고전 14:1등).|(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말고
Mavlco"
말고 Malchus(인)||말코스는 '왕의 권세'를 의미하며, 그 이름은 신약성경에서 요 18:10에 한번 나온다: "이에 시몬 베드로가 검을 가졌는데 이것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오른편 귀를 베어버리니 그 종의 이름은 말고라".|말고는 시몬 베드로에게 그의 오른쪽 귀를 베임 당한, 대제사장의 종이다(참조: 막 14:47 병행구에는 이 이름이 언급되지 않음).|(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외조모
mavmmh
할머니 grand-mother||#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맘메는 기본어이며,||(a) 초기 헬라 문헌에서 '엄마' mother를 뜻하며, 유아들이 어머니에게 말을 걸 때 사용하는 이름이었다.||(b) 후기 헬라어 문헌에서 '할머니' grand-mother(Philo, Joseph., Plut. 등)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맘메는 70인역본에서 외경 마카베오사서 16:9에 한번 나타난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맘메는 신약성경에서 딤후 1:5에 한번 나온다: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여기서 맘메는 할머니(조모)를 의미하지만, 외조모를 표현한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맘모나스
mammwna'"
맘몬, 부, 재산, 재물, 소유.||#1. 헬라어의 용법||명사 맘모나스는 마모나스(%118)로도 표기되었다. 이 단어는 신약성경에서 맨 처음 나타나며, 아람어 마몬의 강조형 마모나(아마도 '아무개가 신뢰하는 것'을 뜻하는 어근 아만에서 파생)에서 유래했으며, '부, 재물, 맘몬'을 의미한다.||#2. 유대 문헌의 용법||명사 마모나스는 70인역본에는 나오지 않으며, 유대 문헌에서||(a) '자원',|(b) '이득'(특히 부정직한 것),|(c) '배상금'이나 '몸값, 속전, 뇌물' 등의 의미로 사용되었다.|일반적으로 이것은 고상하지 못한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종종 불의한 것으로 불리고 윤리적 비난과 훈계의 표적이 된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마모나스는 신약성경에서 4회 나오며,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만 사용되었다.||(a) 마 6:24에서 땅의 '재물'을 의미한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신약성경에서 마모나스는 예수님의 말씀에서만 등장한다. 그것은 '땅의 재물'을 뜻하지만 항상 그것들의 물질적 특성에 강조점이 주어진다. 사람들이 그것을 신뢰할 때(눅 12:15이하) 또는 그것에 그들의 마음을 줄 때(마 6:21)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 그렇다면 신자들은 그것에의 노예 상태를 파기하고 나와 하나님을 의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마 6:24).||(b) 마모나스는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에 3회 나타난다. 이 비유는 제자들에게 행해진 것으로서 이는 이 세상의 부를 다룰 때 분별력 있게 하라고 가르치기 위한 것이다. 특별히 제자들은 의롭고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이 되는 방법으로 이 세상의 재물을 사용해야 한다. 이는 그 주인에게 빚지고 있는 채무자들의 빚을 경감하여 준 이 청지기의 행동이 이중의 목적을 달성했기 때문이다. 첫째로 이 주인은 율법에 의해 금지된 부당 이득으로 비난받고 있었으므로 이 청지기는 사실상 율법적으로 그 주인을 바로잡아 주었다. 또 한편 그 자신도 주인의 채무자들의 비위를 맞춰줌으로써 이익을 얻었다.|① 눅 16:9에서 주님은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고 말씀하신다. 이 권고는 재물(맘몬)과 짝하라는 것이 아니라 타인들의 유익을 위해 재물을 사용하라는 것이다. 이 구절에서 "저희"는 이러한 재물의 사용으로 이득을 얻은 자들을 지칭하는 것이거나 또는 실제로 하나님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은 채, 하나님을 의미하는 히브리식 언급일지도 모르며, 또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천사들을 언급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곳의 요점은 재물 자체는 영속적인 것이 아니나 영속적인 어떤 일을 이루는데에 사용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② 눅 16:11에서 주님은 비교적 가치가 적은 물질적인 것들과 보다 높고 인격적인 지평 위에 존재하는 참된 부를 대조시킨다: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물질적 소유물에 대한 청지기직은 곧 그 이상의 청지기직을 수행하기 위한 예비 시험인 것이다(참조: 므나의 비유[눅 19:11 - 눅 19:27]와 달란트 비유[마 25:14 - 마 25:30]). 다음 구절(눅 16:12)은 재물이 실제적으로 우리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에 있어서는 "남의 것"임을 암시한다. 제자는 자신의 것으로 위탁받기 전에 이 제물에 대한 신실하고 지혜로운 청지기임을 증명해야 한다. 청지기로서의 제자는 아직 자신의 소유의 주인이 아닌 것이다(참조: 눅 17:7 - 눅 17:10).|③ 그러나 눅 16:13에서 주님은 제자들이 재물의 종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하신다: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이 구절은 (a)의 마 6:24의 병행구절이다. 여기서 의인화되어 있는 재물은 사람이 그것을 자신을 위해 획득함으로 스스로 그 주인이 되고자 할 때 그것은 필연적으로 인간의 주인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단호한 선택에 직면하게 된다. 신자들은 그것의 노예 상태를 극복하여 하나님만 의지해야 한다.|마모나스 테스 아디키아스(불의의 재물, 눅 16:9; 눅 16:11)와 헤 아파테 투 플루투(재리의 유혹, 마 13:22; 막 4:19) 사이에는 밀접한 연관이 있다. 그러나 마모나스는 인간의 가치를 구성하는 부와 재산을 암시한다. 우리는 언제나 이 마모나스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참조: J.H.Thayer; C.Brown).
마나엔
Manahvn
마나엔 Manaen(인)||마나엔은 '위로자'이며, 그 이름은 신약성경에서 행 13:1에 한번 나온다.|마나엔은 안디옥 교회의 선지자이자 교사인 한 사람이다. 보다 자세하게 그는 분봉왕 헤롯의 쉰트로포스($4939, '젖 형제나 친한 친구', 왕자의 친구로 양육 받은 소년들에 대해 종종 사용됨)로 묘사되어 있다. 따라서 왕족과 함께 교육 받고 아마도 궁정에서 특별한 지위를 누렸을 것이다. 그 영예의 칭호는 성인이 되어서까지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HBD).
므낫세
Manahvn
므낫세 Manasseh||마낫세스는 히브리어 메낫세(잊어버리게함)에서 유래했으며, '므낫세'를 가리킨다.|신약성경에서 므낫세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두 사람이다.||#1. 요셉의 장자.||계 7:6, "아셀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납달리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므낫세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는 여기서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구성된 종말의 하나님의 백성을 대표한다(참조: 벧전 1:1; 학 1:1). 이들은 인침을 받는다. 즉 이들은 하나님의 소유라는 표시를 받는다. 이들은 모든 환란 중에서도 하나님의 보호 아래 안전하게 보존된다. 므낫세 지파 중에서도 일만 이천명이 인맞은 것이다.|므낫세는 요셉의 장자의 이름이다.||#2. 유다왕 히스기야의 아들.||마 1:10, "히스기야는 므낫세를 낳고 므낫세는 아몬을 낳고 아몬은 요시야를 낳고". 여기서 므낫세는 예수님의 한 조상으로 나타난다(참조: 왕하 21:1-18).|(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들어 알다
manqavnw
배우다 learn.||#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만다노(Homer 이래)는 어근 마드(%806)에서 유래했으며, 기본적 의미 '마음을 어떤 것에로 향하게 하다'라는 의미에서 다음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a) '어떤 것에 익숙해지다',|(b) '경험하다',|(c) '알게 되다',|(d) '이해하다',|(e) '가르침 하에서 배우다', 그리고|(f) '어떤 신으로부터 신탁에 의해 지도를 받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만다노는 70인역본에서 약 40회 사용되었으며, 히브리어 라마드(익숙하게 되다, 배우다)의 역어로 28회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만다노는 신약성경에서 25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일반적 용법.|① 행 23:27의 한 예에서 그 지휘관은 그의 편지에 바울이 로마 시민이라는 것을 자기가 '배웠다', 즉 '발견해 냈다'고 말한다.|② 계 14:3에서 새 노래를 배우는 것은 단순히 일반적 의미에서의 배우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구절들은(참조: 고후 12:4) 이것이 보다 높은 종류의 배움임을 시사하는데 특히 144,000인 외에는 아무도 그 노래를 배울 수 없다는 것 때문에 그러하다.||(b) 성경에서 배움.|① 만다노는 논쟁에서 2회 나타난다. 마 9:13에서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에게 그가 왜 죄인들 편에 서는지를 호 6:6로부터 배우라고 말한다. (마 12:7은 그러한 만다네인이 무엇을 수반하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요 6:45에서 듣는 것은 배우는 것을 의미하며, 하나님으로부터 배우는 것은 필연적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함을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와 같이 배우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그 대상으로 하지만 하나님의 뜻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서 칭한다는 이 한가지 위대한 사실에 있다.|② 요 7:15에서 만다노는 성경에 대한 학문적 연구를 의미한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공식적 교육 결핍에 비추어 그의 가르침의 권리를 의심한다. 그는 하나님의 뜻이 그의 인격과 가르침 안에서 이루어진다고 답변한다. 바울은 그 용어를 갈 3:2에서 다소 유사한 방법으로 사용하는데 여기에서 그는 정보를 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갈라디아인들로부터 하나님의 구원적 의미를, 그들이 의지하는 율법 그 자체가 그것을 선포하는대로 배우기를 원한다. 오직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을 통해서만 배우는 것이 순전한 인간의 일이기를 중단한다. 그러나 바로 성경으로부터 우리는, 그것이 이와 같이 그리스도를 증언하는대로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전 4:6).||(c) 새로운 배움.|① 마 11:29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권위를 서기관들의 권위와 마주 대하여 놓는다. 사람들은 "내게" 배워야 한다. 예수님은 단순한 교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뜻이 이루어지는 장소인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보여주는 표시이다. 그로부터 사람들은 이 뜻을 성취하는 것이 그에게 오는 자들에게 결코 짐이 되는 것이 아니라 기쁨과 안식을 가져다 준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다.|② 마 24:32은 일상적 일들이 제자들에게 있어서는 예언서들에 선언된 하나님의 영원한 법을 표현한다는 진리에 입각하고 있다. 고전 14:31에서 바울은, 성령께서 특수한 상황에서 안내를 할 때 사용하는 예언의 은사에서 그와 유사한 원리를 발견한다.|③ 엡 4:20에서는 그리스도와 그의 사역을 삶을 위한 그것의 모든 함축적 의미와 아울러 받아들인다는 완벽한 의미로 만다노를 사용한다. 진정한 만다노는 단지 율법에 의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 즉 그리스도 자체에 의하는 것이다. 이와 유사한 용법을 딤후 3:14; 롬 16:17; 빌 4:11에서 찾아볼 수 있다(마지막 구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를 배웠기 때문에 만족하는 법을 배운 것이다. 참조: 빌 4:10; 빌 4:13).||(d) 목회서신.|목회서신에는 만다노가 보다 흔하다. 이것이 주지주의적(intellectualistic) 유형과 율법주의적 유형의 거짓된 가르침을 통해 믿음에 가해지는 위협에 대한 답변으로 사용된다. 예컨대 여인들에게 종용히 배우라는 경고가 발해지며(딤전 2:11) 자녀들에게는 집에서 가족적 의무를 배우라는 경고가 주어진다(딤전 5:4). 진정한 배움은 진정으로 그리스도의 영을 좇으면서 선한 행실로 적용되는 것을 의미한다(딛 3:14).||(e) 히브리서.|히 5:8의 헬라적 말 유희는 독특한 것이다. 이 구절은 예수님 자신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가 자신의 고난에 의해 순종을 배웠다고 말하고 있다. 그가 고난 당하신 것을 통해 배웠다. 여기에서 배운다는 것은 예수님의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인식하며 그 고난을 받아들임으로써 그 뜻을 긍정하는 것을 의미한다.|(참조: K. H. Rengstorf; D. Muller).
미침
maniva
미침, 광기||#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마니아(Pind. 이래)는 마이노마이($3105: )에서 유래했으며, '미침, 광기, 열광, 광란'을 의미한다. 디오니수스는 황홀감의 출처로 여김을 받는 존경받는 신이었는데, 마니아는 그의 가장 오랜 속성들 중의 하나였다. 동시에 그는 정화 의식을 통하여 미친 사람을 자유롭게 하여 고요한 자의식으로 되돌아 가게 할 수 있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마니아는 70인역본에서 7회 나오며, 히브리어 마스메마(악의, 원한, 적의)의 역어로 사용되어 '원한'(호 9:7, 8)을 나타낸다. 시 40:4에서 거짓에 '치우치는 것'을 나타내며, 지혜서 5:4에서 삶을 '미친 것'으로 표현한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마니아는 신약성경에서 행 26:24에 한번 나온다: "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하여 가로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J. Schattenmann).
만나
mavnna
만나 manna||#1. 구약 및 70인역본||(a) 헬라어 만나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만이다. 히브리어 만은 시내 광야에서 우기(雨期)에 일종의 개각충(介殼蟲)에 속하는 만나 위성류(渭城柳)(mannatamarisk)로부터 채취되어, 조그마한 공 모양의 형태로 땅에 떨어지는 맛이 매우 단 수액(樹液)을 의미하는 이스라엘 이전 시기의 명칭이었다. 개미들이 그것을 한 데 모으지만 정오의 태양의 열기 아래 녹아 흩어지게 된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기적적 도우심으로 먹은 만나가 바로 이러한 현상으로 형성된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견해는 요세푸스(Ant., 3.1.6)와 오리겐 이래로 확실시되어 왔다고 한다.|헬라어에서 헤 만나는 음식물의 '한 작은 조각, 알곡', 특히 '향료의 알곡'을 가리키는데 사용되었다. 구약에서 만나는 메추라기와 아울러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이스라엘에게 제공해 주신 음식의 하나다. 출 16:4에 따르면, 만나는 이슬같이 내리며, 서리처럼 과립으로 쌓여 있으며, 모양은 갓씨와 닮았고, 맛은 꿀맛 같으며, 매일 거두어야 했다. 만나는 갈아서 구워먹을 수 있는 것인데(출 16장; 민 11장), 남기면 다음날엔 먹을 수가 없게 된다(출 16장). 출 16:35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이 만나로 40년 동안이나 살았다. 이것은 만나가 백성들의 유일한 음식원(原)이었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 가축떼도 이끌고 나왔다고 되어 있다(참조: 출 12:38). 게다가 오아시스에서 다른 음식도 발견했을 것이며(출 15:27), 나아가서는 적으로부터 전리품도 얻었던 것이다(민 31:25~41). 그러나 이것은 기적적으로 받은 음식으로 인하여 이스라엘이 굶어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구약성경적인 인상을 감소시키지 않는다.|수 5:12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그 소산을 먹은 다음날에 만나가 떨어지는 일이 그쳤다고 한다. 이 음식을 가리키는 또 다른 용어들은 '하늘의 떡'(한글개역, "하늘 양식", 시 105:40), '하늘에서 온 떡'(한글개역, "하늘에서 양식", 출 16:4), '하늘에서 온 곡식'(한글개역, "하늘 양식", 시 78:24), '천사들의 떡'(한글개역, "권세 있는 자의 떡", 시 78:25) 등이다.||(b) 70인역본에서 만나는 24회 나오며, 히브리어 만(10회, 출 16:35; 민 11:6-민 11:9; 신8:3; 신 3:16; 수 5:12; 느 9:20; 시 78:24), 그리고 '소제'를 뜻하는 민하의 역어로도 사용되었다(느 13:9; 렘 17:26 등 12회).||(c) 유대 묵시문학과 학가다. 랍비들은 하나님께서 만나를 제 7일이 되기 직전에 만드셨다고 생각한다. 백성들이 우물을 미리암 덕분이라고 보고, 구름 기둥을 아론의 덕분이라고 보듯이 만나의 선물은 모세 덕분이라고 보았다.|한편으로 그것은 선지자 예레미야가 감춘 언약궤와 그 내용물을 메시야가 다시 가져올 것이라는 전승과 연결되어 있다(마카베오이서 2:4이하). 출16:33에서 추론한 랍비의 전승은, 율법의 판과 함께 만나 항아리를 포함시켰다(참조: 히 9:4). 다른 한편으로 만나는 이 시대를 살아나가는 신자들을 먹이기 위해 하늘로부터 내려 올 하늘의 떡이다(Apc. Bar. Syr. 29:8). ([역자주] 적어도 일찍이 주후 300년의 한 전승에서 이미 메시야는 만나를 주는 것을 포함한 여러 면에서 모세와 유사할 것으로 되어 있다.(SB Ⅱ481).||#2. 신약성경의 용법||만나는 신약성경에서 5회, 요한복음(3회), 히브리서(1회), 계시록(1회)에만 나온다.||(a) 요 6:31이하에서 유대인들은 메시야 시대에 만나의 기적이 재현될 것이라는 소신을 피력하고 있다. "두번째" 구속자 즉, 메시야는 "첫번째" 구속자, 즉 모세와 동일한 행위를 하여야만 한다. 예수님께서 오천명을 먹이신 후 유대인들은 만나가 모세의 권위를 입증해주었듯이 예수님을 메시야로 입증할 표적을 보여달라고 예수님께 요구하였다. 광야에서 떡을 준 분은 모세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었다고 지적하심으로써,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대응론(對應論)을 반박하고 있다. 예수님은 대답하실 때 메시야의 시대는 광야 시대를 능가한다고 지적하신다. 모세는 참된 하늘의 떡을 줄 수 없었다. 왜냐하면 만나를 먹은 백성들도 역시 죽었기 때문이다.|요 6:49이하에서 광야 유랑시의 만나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참 떡과 대조되어 있다. 만나는 그것을 먹은 자를 죽음에서 지켜주지 못하였다. 하늘로부터 내려온 참 떡만이 영생을 줄 수 있다. 이것은 오직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요 6:51)이라고 자신에 대해 밝히신 그 분 안에서만 발견될 수 있을 뿐이다. 하늘에서 내려온 떡에 대해 언급되어 왔던 것이 계시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실로서 나타나게 되었다.||(b) 히 9:4에서 언약궤 안에 금항아리에 담겨 아론의 지팡이 및 율법 석판과 함께 있는 만나를 언급한다: "금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언약의 비석들이 있고".(참조: 왕상 8:9).||(c) 계 2:17에서 승리하는 자에게 감추어진 만나를 주고, 그는 구원을 받고 살 것이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참조: J.H.Thayer; R.Meyer; F.Merkel).
점으로
manteuvomai
미리 말하다, 신탁을 말하다, 예언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만튜오마이(Homer 이래)는 만티스(선견자)에서 유래했으며, '신탁을 전하다, 예언하다, 신탁, 예언을 전달하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만튜오마이는 70인역본에서 12회 나오며 카삼(점치다, 신 18:10; 삼상 28:8 등), 케셈(복술, 점, 요술, 겔 13:6), 믹삼(복술, 점, 겔 12:24)의 역어로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만튜오마이는 신약성경에서 행 16:16에 한번 나온다: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하는 귀신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니 점으로 그 주인들을 크게 이하게 하는 자라".|"점하는 귀신"은 문자적으로 '피돈의 영'이다. ← $4396 프로페테스, 고전 헬라어 문헌.|(참조: Walter Bauer; J.H.Thayer).
쇠잔하다
maraivnw
마르다, 쇠잔하다, 멸망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마라이노(Homer 이래)는 기본어이며,||(a) '끄다, 소멸시키다'(불꽃, 불, 빛[등불] 등을), '마르게 하다, 야위게 하다', 수동태, '시들다, 이울다, 마르다',||(b) 비유적으로, '야위다, 쇠잔해지다, 소멸하다, 멸망하다'( Eur. Alc. 203)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마라이노는 신약성경에서 약 1:11에 한번 나오며, '쇠잔하다'를 의미한다: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우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주께서 임하시다
mara;n ajqav
주께서 임하신다.||(a) 마라나다는 아람어 마라나 아타를 음역한 것이며, '우리 주'라는 뜻의 마란 혹은 마라나와 '오다'라는 뜻의 동사 아타의 합성어이다.||마라나타는 신약성경에서 오직 고전 16:22에 한번 나온다: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찌어다 주께서 임하시느니라".|이 단어는 또한 디다케 10. 6에 있는 성찬식 기도의 끝에도 나타나며, 후기 교회 용법에 자주 나온다.||마라나타는 언어학적으로 동일한 가능성을 지닌 세 가지 의미를 나타낸다.||(1) '주여, 오시옵소서'-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기도.|(2) '우리 주님이 오셨다'- 예수님께서 낮아지신 모습으로 오신데 대한 고백.|(3) '우리 주님이 오신다', 즉 주님의 예배 가운데 임재하신다.||(b) 바울은 이 아람어를 사용하는데 그 가장 확실한 이유는 이 말이 초기 팔레스틴 기독교 공동체 내에서 이미 인정된 관용어가 되었기 때문이다.|이 문구가 어디에서 생겨난 것인지는 논란이 있다. 하이트뮐러(W. Heitmuller)와 부셋(W. Bousset)은 두 언어 헬라어와 아람어를 병용하는 것은 안디옥 교회와 다메섹 교회와 심지어 다소 교회에서 유래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들은 헬라적인 혼합 종교에서는 신들이 널리 "주들"(퀴리오이, 고전 8:5)로 불리웠기 때문에, 마라나다는 이러한 이교적 용어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전이되었음을 시사해 준다고 한다. 하지만 이 이론도 정당성을 입증하지 못한다.|아람어로 예수님을 주로 부르는 것과 그것이 이 문구에 나타나 있다는 사실은 이 문구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했던 예루살렘 중심의 최초의 기독교회에로 소급되는 것임을 시사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아직도 예루살렘 교회를 이 어구의 가장 유력한 출처로 간주하고 있다. 더구나 사실이 그러하다면, 이것은 주(Lord)란 용어가 혼합종교적 배경에서 보다는 오히려 유대적 배경에서 이해되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시사하는 것이다.||(c) 마라나타는 디다케 10. 6에서, 성찬과 관련된 기도에서 나오는데, 거기서 이 단어는 '우리 주님이 임재하신다'라는 의미로서, 불경건한 자가 성찬식에 참예하는 것에 대하여 경고하는 듯이 보인다. 고전 16:22의 문맥이 이러한 이해를 지지해준다. 계 22:20은 '주여 오시옵소서'가 이 용어의 진정한 의미임을 강력히 시사한다. 왜냐하면 에르쿠 퀴리에 이에수는 마라나다를 번역한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만약 이것이 고전 16:22("주께서 임하시느니라")에서 바울이 말한 의미(즉 "주여 오시옵소서")라면, 그는 교회에서 재림의 소망의 긴박성을 심어주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이 용어는 성찬식과 관계가 있는데, 성찬식은 주님의 임재의 확실성 뿐만 아니라 주님의 재림에 대한 기대를 나타낸다(고전 11:26). 그러므로 우리는 마라나다가 높임 받으신 그리스도의 임재에 대한 고백이거나 그가 영광 중에 재림하시기를 바라는 열렬하고 기대에 찬 외침이라고 결론 내릴 수 있다.|(참조: K. G. Kuhn; W. Mundle).
진주
margarivth"
진주 pearl.||#1. 고전 헬라어 및 유대교||(a) 명사 마르가리테스(Theophrastus 이래)는 극히 드물게 사용되었으며, 별로 인용되지 않는 한 시에서 플리니(Pliny)는 진주의 생성 방법을 이슬이 열린 조개 속에 떨어지는 것으로 묘사하였다(Net. Hist. 9, 106-23).|진주는 고대 세계에 대개 보석으로 여겨졌다. 진주는 홍해, 페르시아만, 인도양에서 산출된다.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을 통하여 진주는 서양에 전해졌으며, 목걸이 및 기타 장신구에 이용되었다. 진주를 뜻하는 이 단어는 최고의 가치를 지닌 것을 나타내는 비유적 표현이 되었다(참조: F.Hauck).||(b) 마르가리테스는 70인역본에 나타나지 않는다. 흠정역성경(AV)의 욥 28:18a의 "진주, pearl"(히브리어 가비쉬)는 아마도 '수정'(crystal)을 가리키는 듯하다. 개역 표준성경(RSV)은 욥 28:18b의 페니님을 '진주'로 번역하지만, 그밖의 다른 곳에서는 언제나 '보석' jewels, '값비싼 돌' costly stones로 번역하고 있다. 새 예루살렘의 문에 진주를 사용한 것은 잘 알려진 메시야적 표상이었다(Baba Bathra 37:1; Sanhedrin 100, 1; Mid. Ps 87; Exod. R.15, 114, 4). 유대교는 '진주'를 비유적으로 귀중한 말씀을 가리키는데 사용한다. 그러므로 일련의 성경 구절들은 진주 목걸이에 비유된다. 종말 신학에서는 하늘 도성의 대문 역할을 하는 큰 진주들을 언급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마르가리테스는 신약성경에서 9회 나오며, 다음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a) 마르가리테스는 비길데 없는 천국의 은혜를 나타낸다. 마 7:6에서 진주는 복음 및 기독교 진리를 나타낸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 "거룩한 것"과 "너희 진주(들)"란 말은 처음에는 한 단위로 보이다가 그 다음에는 다른 부분들로 구성된 것으로 보이는 동일물이다. 예수님이 의중에 두신 것은 거룩한 복음의 진리와 이 복음을 구성하는 순수하고 값진 진리나 교리들이다. 이런 "거룩한 것", 즉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를 가지는 것을 무책임하고 그 가치를 모르는 자에게 주는 것은 삼가야 할 것이다. 순수하고 고귀한 진주들을 진흙 속에 밟으며, 그런 다음에는 자기 구미에 맞는 것은 하나도 주지 않는다고 제자들을 찢으려고 분노해서 돌아서는 돼지들의 행동을 주의해야 하는 것이다(최선의 주석은 행 13:45, 행 13:46; 행 18:6의 바울의 행동에서, 유 1:10-유 1:13; 벧전 4:4; 롬 16:17; 롬 16:18; 빌 3:18; 빌 3:19; 딤전 6:5)(참조: R.C.H.Lensk; N.Hillyer)|마 13:45에서는 가장 값진 상품을 나타내지만 마 13:45에서는 복음 및 기독교의 진리나 교리를 가리킨다: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b) 마르가리테스는 값비싼 장신구를 나타낸다:|딤전 2:9: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아담한 옷을 입으며 염치와 정절로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계 18:12: "그 상품은 금과 은과 보석과 진주와 세마포와 자주 옷감과 비단과 붉은 옷감이요 각종 향목과 각종 상아 기명이요 값진 나무와 진유와 철과 옥석으로 만든 각종 기명이요".|계 18:16: "가로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이여 세마포와 자주와 붉은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민 것인데".||(c) 마르가리테스는 계 21:21에서 새예루살렘의 열 두 대문을 나타낸다: "그 열두 문은 열두 진주니 문마다 한 진주요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 천성의 각 문은 직경이 대략 200 규빗이나 되는 거대한 진주로 되어 있다(계 21:21; 참조: 사 54:12). 각 문 위에는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의 이름이 하나씩 새겨져 있다(계 21:12). 이것의 의미는 각 사람마다 어느 지파에 할당된 특정한 출입구가 정해져 있다는 것이기 보다는, 많은 숫자의 문들은 그 성에 이르는 자유롭고 또한 충분한 접근 통로를 시사한다는 것이 더 타당하다. 문들 위에 새겨진 열 두 지파의 이름은 기초석 위에 기록된 열 두 사도의 이름들과 관련되어야 한다(계 21:14). 그 의미는 옛 언약 아래 있는 하나님의 참된 자녀들이 새 언약 하에 있는 자들과 마찬가지로 천성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성문들은 공격에 대비하기 위하여 세워진 것이 아니다-진실로 항상 열려 있다(계 21:25). 문을 지키는 천사들(계 21:12)은 무장하지 않은(참조: 창 3:24) 명예로운 수호자들이다. 진주는 실리적인 것이 아니라, 다만 장식과 아름다움 및 치장만을 위한 것이다.|마 13:46의 비유에서 총명한 상인은 매우 값진 한 개의 진주를 얻기 위하여 그의 모든 소유를 팔 준비가 되어 있었다. 많은 보석들 중에서 오직 진주만이 살아있는 유기체의 산물이라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좀 더 엄밀하게 말하자면, 진주는 산 생물체에 가해진 상처의 결과이다. 조개 껍질을 파고 들어온 이 물질은 진주층으로 뒤덮여 있다가 마침내 진주가 생성된다. 비유 속의 극히 값진 진주는 예수님께서 그 자신의 피로 값 주고 산 교회를 상징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행 20:28). 따라서 천성문의 재료를 진주로 묘사한 것은 적절한 것이다. 왜냐하면 아버지 앞에 나아가는 통로는 오직 예수님 자신의 사역을 경유하는 길 뿐이기 때문이다(요 14:6).|(참조: Walter Bauer; J.H.Thayer; N.Hillyer; F.Hauck).
마르다
Mavrqa
마르다 Martha(인)||마르다는 '숙녀'를 의미하며, 이 인명은 신약성경에서 13회 나온다.|마르다는 베다니의 마리아와 나사로의 자매이며(눅 10:38에서 "한 촌") 그녀의 집에서 예수님과 그의|동료들이 가까운 예루살렘에서 일한 후에 휴식을 구하거나 여리고로부터 올라오는 길에 환대를 구하였다. 마르다라는 이름의 여인은 신약성경에 세 번 나타난다; 그녀가 한 사람의 동일인인지 어떤지는 그리 분명하지 않다.||(a) 눅 10:38; 눅 10:40-42은 그녀가 그녀의 집에서 예수님을 환대하였다는 것과 그녀의 자매인 마리아가 식사 준비하는 것을 돕지 않는다고 예수님께 불평한 것을 보여준다. 마르다의 불평으로 인해 그녀는 그녀의 손님으로부터 책망을 받는다(눅 10:41 이하).||(b) 요 11:1-39은 마르다를 믿음과 행위에 있어서 칭찬할 만한 여인으로 소개한다. 마르다는 나사로가 사망한 동안, 예수님께서 먼 곳에서 말씀을 전파하시고 돌아오셨을 때(요 11:7)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 거리로 나갔다. 완전한 믿음으로 마르다는 만약 예수님께서 계셨더라면 그녀의 오라비는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단언하였다(요 11:22). 예수님께서 영원한 생명에 대한 위대한 말씀을 하신 것은 마르다에게였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요 11:25).||(c) 요 12:2은 예수님의 마지막 유월절을 이틀 앞두고 베다니의 문둥이 시몬의 집에 계실 때에(마 26:6-마 26:13; 막 14:3-마 14:9) 마르다가 식사 시중을 든 것에 대해 언급한다. 혹자는 마르다가 이 시몬의 아내 또는 과부라고 제안한다. 아직도 베다니의 여인들이 친구가 올 때 손을 빌려주는 바와 같이, 그녀는 토기로 된 요리용 스토브를 머리에 이고 찾아갈 만한 이웃 사람일 가능성이 더 많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HBD).
마리아
Mariva
마리아 Mary (인)||마리아는 신약성경에서 마리아 또는 마리암으로 나온다. 이 두 이름은 둘 다 미리암이라는 히브리 이름을 헬라식의 형태로 바꾼 것이며, 70인역본에서는 마리암(Mariam, 한글개역은 '미리암', 모세의 누이)으로 나온다. 이 이름의 뜻은 '가장 사랑받는'이라는 뜻의 애굽어 마르예에 그 기원을 둔 것 같다. 그러나 히브리 이름 미리암은 '완고, 반역'을 의미한다.||신약성경에서 이 이름은 다음의 사람들을 가리키는데 사용되었다.||#1. 동정녀 마리아.||(a) 예수님의 어머니, 마 1:16.|(b) 그녀에 관한 예언, 사 7:14.|(c) 요셉과 정혼, 눅 1:26-27.|(d) 동정녀 수태에 대한 예언, 눅 1:28-38.|(e) 엘리사벳을 방문함, 눅 1:39-41.|(f) 예수님을 낳음, 눅 2:6-20.|(g) 요셉과 함께 애굽으로 피난함, 마 2:13-18.|(h) 다른 자녀들의 어머니, 막 6:3.|(i) 예수님과 함께 예루살렘을 방문함, 눅 2:41-52.|(j) 예수님께서 모친 마리아를 요한에게 맡기심, 요 19:25-27.||#2. 글로바의 아내.||(a) 글로바의 아내, 요 19:25.|(b) 야고보와 요세(요셉)의 어머니, 마 27:56.|(c)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지켜봄, 마 27:55-56.|(d) 무덤까지 예수님의 시신을 따라감, 마 27:61.|(e) 부활하신 주님을 봄, 마 28:1; 마 28:9; 마 28:10.|(f)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주님의 부활을 알림, 마 28:7-9; 눅 24:9-11.||#3. 막달라 마리아.||(a) 막달라 마리아, 마 27:56, 마 27:61.|(b) 일곱 귀신으로부터 구원함을 얻음, 눅 8:2.|(c) 그리스도를 섬기기 위해 기부함, 눅 8:2-3.|(d)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지켜봄, 마 27:55-56.|(e) 무덤까지 예수님의 시신을 따라감, 마 27:61.|(f)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감, 막 16:1-8.|(g)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시신이 사라진 것을 말함, 요 20:2.|(h) 부활하신 예수님을 첫 번째로 본 사람, 막 16:9; 요 20:11-18.||#4.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a) 마르다와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 요 11:1-2.|(b) 예수님께 칭찬을 받음, 눅 10:38-42.|(c) 나사로의 죽음을 인해 슬퍼함, 요 11:19-20, 요 11:28-33.|(d) 예수님께 향유를 부음, 요 12:1-3, 요 12:7.|(e) 예수님께 다시 칭찬을 받음, 마 26:7-13.||#5. 마가의 어머니.||행 12:12-17.||#6. 로마의 기독교인.||롬 16:6.|(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