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해설 219 페이지 > 기독정보닷컴

술 취하는 자
mevquso"
술 취한 자, 술 고래 drunkard.||#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메뒤소스는 메뒤오($3184: 술취하다)에서 유래했으며, 형용사로는 '술취한', 명사로는 '술취한 자, 술고래'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메뒤소스는 70인역본에서 5회 나오며, '술취하는 자'(잠 23:21; 잠 26:9)를 의미한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메뒤소스는 신약성경에서 고린도전서에만 2회 나온다.||(a) 고전 5:11에서 술취하는 자와 교제를 금한다: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람하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후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토색하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b) 고전 6:10에서 술취하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제외된다: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참조: Walter Bauer).
술 친구
mequvw
(술)취하다 be drunk.||#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메뒤오(Homer 이래)는 메뒤(포도주)에서 유래했으며, '술취하다'를 의미한다.|이 단어군은 헬라어에서 주로 취하는 것과 관련하여 나온다. 플로티누스(Plotinus)의 저술에서 신주(神酒)를 먹고 취하는 것은 신과의 신비적인 결합 상태를 묘사하는 데에 사용된다. 헬라 영지주의에서 술취함은 종종 참된 그노시스와 반대되는 아그노시아(agnosia)와 연관되어 있다.||#2. 70인역본의 용법||메뒤오는 70인역본에서 약 50회 나오며, 주로 히브리어 샤카르 어군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주로 술취하는 것을 의미하며(창 9:21; 사 19:14; 사 28:1; 욜 1:5등), 이 단어는 비가 마른 땅에 새로움을 가져다 주는데 대해서 사용되기도 한다(사 55:10; 시 64:10).||#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메뒤오는 신약성경에서 7회 나오며, 다음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a)① 요 2:10에서 메뒤오는 문자적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낮은 포도주는 손님들이 매우 취했을 때만 낸다는 관례에 관하여 말한다.|② 살전 5:7에서 바울은 술취함의 위험에 대한 강력한 경고를 임박한 종말에 대해 인식시키면서 언급하고 있다: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이 주장은 기독교인들이 이제는 그리스도의 새로운 날의 빛 가운데 살고 있다는 신념에 의거한 것이다. 술취함은 밤에 경험하는 것이므로, 정통적인 기독교와 모순되는 것이다.|③ 마 24:49에서 술취함은 새시대에 있어서 봉사의 종말론적 차원을 바르게 인식하고 있는 신실한 종의 경계함과 모순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동무들을 때리며 [술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참조: 눅 21:34). 행 2:15에 의하면 '기독교인이 성령 충만을 받는 것'과 다른 것이다. 성령의 충만의 상태는 황홀경이나 신비적인 경험이 아니라 예배의 찬송과(참조: 엡 5:18-엡 5:20) 윤리적으로 행동한다(참조: 엡 5:21; 엡 6:9).|④ 고전 11:21에서 주의 만찬에서 '술취하는 것'을 나타낸다: "이는 먹을 때에 각각 자기의 만찬을 먼저 갖다 먹으므로 어떤 이는 시장하고 어떤 이는 [취함이라]". 술취함과 기독교인의 경험이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는 것이 주의 만찬에 대한 본문에 매우 명확하게 나타난다. 그들은 주의 만찬에서 친교를 말살한다. 부자들은 자신들을 가난한 자들로부터 분리하며, 따라서 전자는 폭음, 폭식하며 술취하고 후자는 굶주리는 것이다. 여기에서 요점은 당시 고린도에서 기반을 잡은 종교적 흥분을 강조하는 디오니수스 이교 제의에 대한 반대로, 취함과 주의 만찬이 화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서신 본문 가운데서 이러한 이교 의식과 성령 안에서의 기독교인의 신앙 생활 사이를 분명하게 구분하고 있다.||(b) 메뒤오는 계 17:2에서 비유적 의미로 사용되었다: "땅의 임금들도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거하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하고".|여기서 우상 숭배는 음행의 포도주에 취한 것으로 생생하게 묘사되고 있다. 아마도 이 묘사는 당시의 몇몇 이교 제식들의 술취함과 주신(主神) 제의 특성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한 듯하다.|계 17:6에는 세상에서 하나님과 대립된 능력을 상징하는 여인은 성도들의 피로 취하여 있다: "또 내가 보매 이 여자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한지라 내가 그 여자를 보고 기이히 여기고 크게 기이히 여기니".|(참조: Walter Bauer; P.J.Budd; Preisker).
메이존
mei'zon
더욱 more||메이존은 메이존($3187)의 중성형이며, '더욱, 그 이상'을 의미한다.|신약성경에서 메이존은 마 20:31에 한번 나온다: "무리가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더욱 소리질러 가로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지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메이조테로스
meizovtero"
더 큰||메이조테로스는 메가스($3173: 큰, 위대한)의 비교급이며, '더 큰'을 의미한다.||신약성경에서 메이조테로스는 요삼 1:4에 한번 나온다: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더 큰
meivzwn
더 큰, 더 위대한||메이존은 메가스($3173: 큰, 위대한)의 비교급이며, '더 큰'을 의미한다.||(a) 신약성경에서 메이존은 46회 나오며, 때때로 비교 최상급의 의미로 사용된다. 세 경우(롬 9:12, 창 25:23의 인용; 막 4:32 병행구절 마 13:32; 눅 12:18)를 제외하고는, 형용사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그 용법은 다양하다(마 23:17, 마 23:19; 요 13:16; 요 15:20; 요 19:11; 히 6:13, 히 6:16; 히 9:11; 히 11:26; 약 4:6; 벧후 2:11; 요일 3:20; 요일 4:4; 요삼 1:4).||(b) 몇 가지 종류의 용법은 언급할 만하다.|① 눅 7:28과 병행구절 마 11:11의 두 번째 부분의 말씀은 그리스도교적 '수정' rectification이다; 그것은 예수님을 뒤에 오시는 자로서 침례 요한과 대조하려고 의도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 중 가장 작은 자라도 "선지자 보다도 나은 자"(눅 7:26 병행구절 마 11:9)보다 크다는 중요성의 정도에 있어서의 본질적인 차이를 설명하고자 한 것이다.|막 9:33-35(참조: 막 10:43 이하) 또는 눅 22:24-27에서의 "가장 큰 자"에 대한 대화는 진정한 위대함은 겸손과 봉사에 있다는 것을 지적할 때에 공동체의 지도자 사이에 있을 수 있는 야망의 그릇됨을 바로잡는다. 마 23:11에서 같은 교훈이 선생들에게 주어진다.|눅 9:46-48은 그를 가장 "큰 자"가 되게 하는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역설적으로(참조: 약 2:5)- 가난한 자를 영접하라(눅 9:48 하반절)는 호소를 표현한다.|마 18:1-4는 "천국에서" 참으로 큰 것, 즉 구원과 도덕적 행위에 관하여 큼에 대해 논의한다. 오직 아이라는 상징에 의해 묘사된 자기를 낮추는 자(참조:마 5:3 이하)가 종말론적 천국을 공유할 것이다.|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대하여 주장하신 자유를 정당화하는 마 12:5-7에 추가된 변론은 근본적으로 보다 덜 개인적인 사상을 표현한다(마 12:6절은 중성 명사를 가진다: 참조: 마 12:4).|② 요한복음에서 메이존은 어느 정도 신학의 계층적인 구조와 일치한다: "만유보다 크신" 아버지(요 10:29; "모든")는 예수님 "보다 크시고"(요 14:28) 그에게 죽은 자를 살리는 능력을 주신다(요 5:20이하). 덧붙여 말하면, 예수님께서는 야곱(요 4:12)과 아브라함(요 8:53) 보다도 높으시다. 그는 그가 하신 역사로 인해 요한보다 "더 큰 증거"(요 5:36; 요일 5:9; 참조: 요 1:50), 즉 인간의 증거보다 "더 큰" 하나님 자신의 증거를 가지고 계시다(요일 5:9). 그렇지만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예수님께서 하신 일보다 더 "큰 일"을 할 것이다(요 14:12). 왜냐하면 그가 그의 드러내시는 활동 영역을 세상에까지 확장하시기 때문이다(참조: 요 17:20; 요 20:21, 요 20:29).|③ 요한은 윤리적인 질서의 범위 안에서 "더 큰 사랑"의 정의를 내린다. 그것은 예수님 자신께서 하신 것처럼(요 15:13)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어주는 데에 있다. 사랑은 그 자체가 가치의 크기에 있어서 최상의 것이다. 예언이 더 나은 은사 중 첫 번째 위치를 차지할 때에, 사랑-가장 큰 계명이라는 주제-은 믿음과 소망을 능가하는데(고전 13:13), 그것은 아마도 사랑이 영원히 지속되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덕목들이 사랑이 없이는 불완전한 채로 남아있기 때문이다(갈 5:6; 참조: 살전 1:3; 살후 1:11).|④ 결국 히브리서(히 9:11)의 예표론은 예수님께서 통과하신 하늘의 성소의 초월성을 강조하는데 이것은 옛 것을 능가하는 새로운 예배의 탁월함과 일치한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S. Legasse).

mevlan
먹 ink.||멜란은 멜라스($3189)의 중성이다. 멜란은 신약성경에서 3회 나오며, 문자적으로는 '검은' 것을 뜻하지만, "먹"(ink)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고후 3:3; 요이 1:12; 요삼 1:13.
검은
mevla"
검은 black.||#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멜라스는 헬라어에서 호머(Homer)로부터 나타난다. 이 단어의 의미는 '어두운, 검은'이며, 전이된 의미로는 '불길한, 악의 있는, 불가해한' 을 뜻한다.||#2. 70인역본 및 유대문헌의 용법||형용사 멜라스는 7O인역본에서 6회 나오며, 주로 샤호르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이 단어는 레 13:31에서 '검은 털', 아 1:5에서 '검은 피부', 아 5:11에서 '검은 머리', 슥 6:2,6에서 '흑마'에 대하여 사용되었다.|필로(Philo)와 요세푸스(Josephus)가 '낯선 자 stranger, 애통 mourning'(탈무드에도 이렇게 사용되었다), 그리고 개인적인 불운에 대한 표시로서 멜라스를 은유적으로 사용하였다.||#3.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멜라스는 신약성경에서 6회 나오며, 그 가운데 중성 멜란($3188)으로 3회 나온다.||(a) 멜라스는 마 5:36에서 류코스($3022: 흰)와 대조된다: "네 머리로도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여기에는 아마도 개념들이 복합되어 있는 듯하다. 곧 맹세는 때로 머리(head)로 하였으며(참조:Mishnah sanh.3:2), 어떤 경우에는 맹세를 머리털을 깎지 않음으로 표시하였다(참조: 출 20:25; 민 19:2; 신 15:19; 삿 13:5; 삿 16:17 이하; 행 18:18; 행 21:24).|제자들은 여러번 그들의 머리털이 다 세신 바 되었으므로 멸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였다(마 1O:30; 눅 12:7; 눅 21:18; 행 27:34). 인간은 시간의 진행을 제어하지 못한다. 그의 맹세는 백발을 다시 젊음의 검은 머리로 바꿈으로 시계를 거꾸로 돌릴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자기에게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없을 것이라는 하나님 아버지의 섭리적인 돌보심을 신뢰할 수 있다.||(b) 계 6:5에서 검은 말을 탄자는 저울을 들고 나오며, 들리는 음성은 식량의 높은 가격을 말한다. 이것은 아마도 심판으로 내려지는 기근의 표적이다. 이 계시적 표상은 하나님의 우주적 주권을 나타내는 슥 6:2의 네 마리의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W.D.McHardy; J.G.Baldwin).||(c) 계 6:12를 보면, 해가 "총담 같이 검어 진다" 하였는데 이 색깔은 종종 유대 문학에서 심판의 배경으로 나타나는 곳에 나오는 바와 같이 애통함을 나타낸다. 태양이 어두워지는 것이 되풀이 되는데 주님께서 심판 가운데 도래하심을 나타내는 말세론적 상징이며, 이 상징은 구약에서 신약이 취한 것이다(사 13:10; 50:3; 겔 32:7; 욜 2:1O; 암 8:9; 마 24:29; 막 13:24; 눅 23:45; 행 2:20; 계 6:12; 계 9:2).||(d) 후기 기독교 문학에서는 악마를 '검은 자'로 칭하였다(예: Barn. 4:9; 20:1).|(참조: Walter Bauer; G.T.D.Angel).
멜레아
Melea'"
멜레아 Melea(인)||멜레아는 신약성경에서 누가복음의 계보에 한번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으로 나온다: "그 이상은 멜레아요 그 이상은 멘나요 그 이상은 맛다다요 그 이상은 나단이요 그 이상은 다윗이요"(눅 3:31).
염려하다
meletavw
보살피다, 숙고하다, 도모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멜레타오(Soph., Thuc. 이래)는 멜레테(관심, 염려, 돌봄)에서 유래했으며,||(a) '보살피다, 신중히 돌보다',||(b) '숙고하다, 꾀하다, 기도하다, 도모하다'를 의미한다. 헬라인들에 의해 웅변가들과 수사학자들의 명상적 숙고 및 실행에 대해 사용되었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멜레타오는 신약성경에서 2회 나오며, 사도행전과 디모데전서에만 사용되었다.||(a) 행 4:25에서 멜레타오는 '도모하다'를 의미한다: "또 주의 종 우리 조상 다윗의 입을 의탁하사 성령으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족속들이 허사를 경영하였는고".||(b) 딤전 4:15에서 멜레타오는 '명상적 숙고 및 실행'을 의미하는 것 같다: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mevli
꿀 honey||#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멜리(Homer 이래)는 기본어이며, '꿀'을 의미하며, 비옥(fertility)의 표시로 사용되었다(Pind., OL. 1. 157).||#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멜리는 신약성경에서 4회 나오며, 마태복음, 마가복음, 요한계시록에만 사용되었다.||(a) 마 3:4에서 멜리는 광야에서 요한이 음식으로 먹었다: "이 요한은 약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병행구, 막 1:6).||(b) 계 10:9; 계 10:10에서 멜리는 작은 책의 맛과 관련하여 사용되었다: "9 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책을 달라 한즉 천사가 가로되 갖다 먹어버리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 같이 달리라 하거늘 10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책을 갖다 먹어버리니 내 입에는 꿀 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벌집
melivssio"
꿀벌들에 의해 만들어진, 꿀벌의.||#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멜릿시오스(Syntipas )는 멜릿사(%279 : 벌)에서 유래했으며, '꿀벌들의, 꿀벌들에 의해 만들어진'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멜릿시오스는 신약성경에서 눅 24:42 TR에 한번 나온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멜리데
Melivth
멜리데 Melita(지)||멜리데는 벌꿀이 생산되는 곳이라고 해서 바울의 시대에 헬라인들에 의해 그렇게 이름 붙여졌다. 시실리아(Sicily)의 남쪽으로 60 마일, 유럽 대륙의 남쪽으로 140 마일, 튀니지(Tunisia)의 케이프본(Cape-Bon)의 북쪽으로 180 마일의 위치에 무리진 메마른 작은 바위 섬이다.|바울이 겨울철 광풍에 두 주일 동안 표류한 후에 이 섬에서 난파 당하여(행 27:33) 그 곳에서 석달 동안 머물렀다(행 28:11). 그가 상륙한 곳은 '성 바울의 만'(St. Paul's Bay)이 되었는데 발레타(Valetta)의 북쪽으로 8마일 거리이며, 분명히 살모넷(Salmonett)의 섬과 그 만(灣) 사이의 발레타(Valetta)에서 바울의 배가 산산조각 났을 것이다.|사도행전 28장은 그 인정 많은 비 헬라인 거주민들이 겨울의 추위와 비 속에서(행 28:2) 그 일행을 얼마나 환대하였는지를 말해준다. 어떻게 해서 독사의 사건 후에(행 28:3-행 28:6) 그들이 바울을 '신'으로 생각하게 되었는지(행 28:6) 그리고 '이 섬에 제일 높은 사람' 보블리오의 아버지를 고쳐 준 후에 얼마나 그들이 바울에게 선물을 듬뿍 주었는지를 말해준다(행 28:7 이하).|멜리데에서의 바울의 전도 사역은 오늘날 그 섬의 주민들의 그리스도교 믿음 속에 살아있으며, 전통적으로 보블리오의 집에서의 바울과 보블리오와 관련된 사건이 예배 때 이야기되어 오고 있다. 찰스 5세(Charles Ⅴ)에 의해 보호된(멜리데의) 그리스도교인 기사들(Knights)이 팔레스타인에서 제명된 후 16세기에 그 곳에 정주하였다. 그들의 교차점을 향하여 똑같은 모양의 끝이 뾰족한 가지가 있는 여덟 개의 뾰족한 끝이 있는, 물고기 꼬리 모양의 십자가(8-pointed fish-tail-indented cross)는 그리스도교 상징물 중에서 인기있는 모양이 되었다. 멜리데의 주교는 451년 칼케돈 평의회(Council Chalcedon)에 출석하였다.|(참조: HBD).
멜로
mevllw
곧 ~하려고 하다 be about to||#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멜로(Homer. 이래)는 기본 동사이며||(a) '나는 가능성이 있다, 나는 할 수 있다'|(b) '~을 행하는 중이다, 막 ~하려고 하다, ~할 작정이다'|(c) '~하게 되어 있다, ~해야 한다'|(d) '~하는 것도 당연하다'|(e) '주저하다, 망서리다'|(f) 분사 멜론은 '오는 것, 미래, 장래'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멜로는 신약성경에서 107회 나오며, 고전 헬라어 용법을 모두 지닌다.||(a) ① 이 단어는 마 2:13; 눅 10:1; 눅 19:4; 요 6:6, 요 6:15; 요 7:35; 행 5:35; 행 20:3, 행 20:7, 행 20:13; 행 23:15; 행 27:30; 벧후 1:12; 히 8:5에서 '~할 작정이다, ~할 생각이다'를 의미한다.|② 이 단어는 자주 현재 부정사와 함께 나오며 가끔 '바야흐로(막) ~하려고 하다'라는 의미로 부정과거 부정사와 함께 나오기도 한다(마 24:6; 눅 7:2; 눅 19:11; 눅 21:7; 요 4:47; 행 3:3; 행 12:6; 행 16:27; 행 18:14; 계 3:2; 계 10:4, 계 10:7; 계 12:4이하).|③ 멜로에서 파생된 분사는 '미래'라는 의미의 형용사 및 명사로 사용된다(눅 13:9; 벧후 2:6; 롬 8:38; 고전 3:22; 딤전 6:19; 히 11:20).|④ 티 멜레이스(행 22:16)의 의미는 "왜 주저하느냐"이다.||(b) 멜로는 하나님의 뜻과 명령에 따라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건들, 따라서 반드시, 확실히, 불가피하게 일어나는 사건들을 표현하는 문맥에서 '…하지 않으면 안되다, ~해야 하다, 반드시 ~하게 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이 단어는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에 관한 진술에서, 특히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에 관한 내용에 나온다. 따라서 "예수께서 …자기의 당할 일을 일러 가라사대"(막 10:32)와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기울 것"이라는 내용에 나온다(마 17:22; 참조: 마 17:12; 마 20:22; 눅 9:31,눅 9:44; 눅 24:21; 요 7:39; 요 11:51; 요 12:33; 요 14:22; 요 18:32; 행 26:23).|이 단어는 또한 유다의 배반과도 관련되어 있다(눅 22:23; 요 6:71; 요 12:4).|이 단어는 은혜를 주시고 또한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행위를 나타낸다(막 13:4; 행 17:31; 롬 4:24; 롬 8:13; 갈 3:23; 살전 3:4; 딤전 1:16; 히 1:14; 히 10:27; 히 11:8; 계 1:19; 계 3:10).|이 외에도 이것은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는 예언의 말씀에도 나온다(행 11:28; 행 24:15; 행 26;22).||(c) 멜로의 분사형은 '오는 것, 도래, 미래, 장래'라는 의미의 여러 형용사 및 명사로 사용된다. 이런 의미로 사용될 경우, 이 단어는 신약성경의 중요한 종말론적 관용 문구에 나오는 것으로 이것은 후기 유대교의 묵시와 헬라의 묵시 사상을 이어받은 것이다. 두 시대의 기본적인 묵시 교리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신약성경 교리의 기초를 제공하는 것이다. 지나가버리는 현 시대는 앞으로 올 시대(멜론 아이온)에 의하여 파괴되었다. 장차 올 세상(헤 오이 쿠메네 헤멜루사, 히 2:5; 참조: 엡 1:21)은 오로지 그리스도의 영역이다. 여기 이 세상에서는 믿는 신자들이 거할(메누사) 도성이 없으므로, 그들은 장차 올(멜루사) 도성을 찾는 것이다(히 13:14). 이 장차 올 도성은 견고한 터를 가지고 있으며(히 11:10), 하나님께서 믿음의 족장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것이다(히 11:16이하). 이것이 하늘의 도성이며(히 11:16; 히 12:22), 우리의 본향이며, 약속하신 안식처인 것이다(히 3:11, 히 3:18; 히 4:3이하). 이곳은 또한 죽음과 심판에서 보호해 줄 우리의 피난처이기도 하다. 이 새로운 세상은 미래의 영광과 관련하여 묘사되어 있다(텐 멜루산 독산, 롬 8:18; 참조: 벧전 5:1). 이것은 이미 하나님과 함께 있으며, 나타날 준비가 되어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이 세상에서 당하는 피할 수 없는 고통은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고통을 두려워 하여 육체에 따라 사는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롬 8:13). 이것은 도래할 심판과 진노의 불가피한 결과이다(마 3:7; 행 24:25).|그리스도는 장차 오실 인자이시며(마 16:27) 심판관이시다(딤후 4:1). 장차 올 세상에서는 성령을 모독하는 일은 용서 받지 못한다(마 12:32; 참조: 막 3:29).|경건은 유익한데, 그것은 이 경건으로 금생과 내생의 약속을 받기 때문이다(딤전 4:8). 이것으로 장차 올 세상의 능력을 맛볼 수도 있다(히 6:5).|그리스도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이시다(히 9:11, 이는 여기에서 매우 강력하게 입증된다). 새로운 세상에 있을 좋은 일은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인하여 신자들에게 보장되었다.|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에 대한 그림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히 10:1). 여러 가지 규례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다(골 2:17). 이 실체는 장차 올 자신이 그리스도의 몸이다(참조: E. Lohmeyer). 새로운 세상을 여신 장차 오실 분이신 그리스도는 롬 5:14에는 아담의 표상으로 나온다.|(참조: W. Schneider).
백체
mevlo"
지체 member, 부분 part, 사지 limb.||#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멜로스(Homer 이래)는 다음과 같은 의미들을 지닌다.||(a) `몸의 일부(지체)',|(b) `음악 구성원, 악기, 노래, 악보, 선율'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멜로스는 70인역본에서 28회 나온다. 이 단어는 네타흐(조각)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특히 잘라놓은 희생제물의 여러 부분들(출 29:17)을 나타낸다. 사 19:29에서 레위인의 첩의 몸을 토막낸 것을 묘사한다.||#3. 신약성경의 용법||멜로스는 신약성경에서 24회 나오며, 다음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a) 실제적 의미로, 멜로스는 인체의 부분들을 의미한다. 사람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지고 있다(롬 12:4; 고전 12:12; 고전 12:24; 고전 12:18-20; 고전 12:25이하; 약 3:5).||공간복음에서 멜로스는 마태가 전하는 예수님의 말씀에만 나타난다: "만일 네 오른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마 5:29, 30). 여기서 속격 복수 멜론은 문자적으로 `지체들'을 의미한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게 할 의도가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이 말씀은 도구인 눈과 손의 악한 기능들에 적용되는 것이다. 그만두어야 할 것은 악한 기능이다. 잘라내어야 할 것은 눈과 손이 아니라 나쁜 생각과 악항 행위이다. 이 말씀이 의미하는 바는 사람이 자기 주변 세상과 접할 때 그에게 치명적이 될 수도 있는 그런 성향을 조절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사람의 몸(즉, 자신이)이 심판에서 구원받으려면 악한 생각은 뿌리 뽑혀야 한다는 것이다(J. A. Motyer).||약 3:5에서 이와 유사하게 종말론적으로 신랄하고 명료하게 혀가 모든 것을 삼키는 불처럼 멸망시키는 작은 지체로 묘사되어 있다.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어떻게 작은불이 어떻게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약 4:1에서 몸의 모든 지체에서 정욕이 생겨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 이러한 정욕은 기독교회의 공동생활까지 파괴할 수도 있다.||롬 6:13에서 몸의 지체가 한 도구로 묘사된다: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비록 죄의 왕노릇이 칭의 안에서 깨어지긴 했어도 죄야 더 이상 왕노릇할 필요가 없지만 된 사람이 은혜에서 일탈하여(16) 그만 죄로 왕노릇하도록 허락해 버릴 수가 있다. 이 사람은 그의 지체를 죄가 사용할 병기로 "드리기를 계속할" 수가 있다. "`죄로 왕노릇하지 못하게 하라'는 바로 그 말은 그것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가정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더 이상 군주로서 존재해서는 안된다. 죄가 그 강력한 도구이자 보조물인 몸을 상실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 몸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병기가 된 것이다." 이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 아니 그리스도인만이 그의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릴 수 있다. 그는 죄의 지배에서 해방되었다. 지금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인인 것이다. 그가 이제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나의 새로운 자유를 가지고 무엇을 할까? 라는 것이다. 그것을 "육체의 기회로" 사용할 것인가, 아니면 사랑 안에서 하나님과 내 이웃을 섬기는데 쓸 것인가?(갈 5:13 참조). 내 자신을 사악의 뜻에 내어 맡길 것인가, 아니면 전적 헌신의 행위로 내 자신을 하나님께 드릴 것인가?|우리의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인간의 편에서 해야할 일인 헌신이다. 하나님 편에서 하실 일은 거룩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롬 6:19에서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드려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고 말한다. 헌신은 우리의 것이요 거룩하게 함은 하나님의 것이다. 드리는 일은 우리의 것이요 변화시키는 일은 하나님의 것이다. 롬 7:5과 롬 7:23을 읽으라.||골 3:5에서 몸의 지체를 도구로 생각하는 사상이 다시 나타난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고전 6:15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기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창기의 지체"는 범죄적 성교 행위에 빠진 육체를 말한다. 왜냐하면 그러한 육체는 말하자면 창기의 육체에 속한 지체들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신자인 한 그의 지체는 그리스도의 지체인 것이다. 창기와 성적인 관계를 갖는 것은 창기와 한 몸(헨 소마)이 되므로(고전 6:16), 따라서 그리스도의 지체는 창기의 지체가 되고 마는 것이다.||(b) 비유적으로 교회라는 공동체는 실재와 기능 모두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몸이다.|롬 12:5에서 기독교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에 있는 지체들이다: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그리스도인들은 그들 중에 있고 또 머리되신 그리스도와 공유한 동일한 영의 결속에 의해서 밀접하게 연합되어 있으므로, 그 공동체가 몸에 비유되며, 개별 그리스도인들은 은유적으로 메레(치체)라고 불리워진다.||엡 4:25에서도 이런 사상을 나타낸다: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 기독교인들은 신비한 몸, 즉 교회의 지체들이다(고전 2:17; 엡 5:30). 그리스도인들의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라 불리운다. 이는 그리스도의 몸이 그리스도의 영의 거처이며, 그리스도를 섬기는데 바쳐지기 때문이다(고전 6:15).|(참조: Walter Bauer ; J. H. Thayer ; J. A. Motyer ).
멜기
Melciv
멜기 Melchi||멜키는 히브리어 말키(나의 왕)에서 유래했으며, '멜기'로 번역한다.|신약성경에서 누가복음의 계보에 그리스도의 두 조상으로 나온다.||#1. 그리스도의 한 조상.||눅 3:24, "그 이상은 맛닷이요 그 이상은 레위요 그 이상은 멜기요 그 이상은 얀나요 그 이상은 요셉이요".||#2. 그리스도의 또 다른 한 조상.||눅 3:28, "그 이상은 멜기요 그 이상은 앗디요 그 이상은 고삼이요 그 이상은 엘마담이요 그 이상은 에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