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다
ajnabaivnw
올라가다, 오르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아나바이노(Homer 이래)는 아나($303)와 바이노(%227: 걷다, 가다)에서 유래했다.||(a) 이 단어는 '올라가다, 오르다'를 의미하며, 주로 공간적 의미로, '산에 올라 가다, 단에 오르다, 이층으로 올라가다'를 의미한다.|만일 목표 지점이 거룩한 곳일 경우에 '올라간다'는 것은 제사 의식의 행위까지 포함한다. 사람이 기도하기 위해 성전에 간다. 신비가는 신들의 세계, 하늘 또는 올림푸스로 올라갈 수 있다는 약속을 받는다(Mithraic Liturgy 10, 22).||(b) 이 단어는 '자라나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아나바이노는 70인역본에서 약 600회 이상 나오며, 거의 대부분 알라(올라가다, 오르다, 다가오다, ~에 도달하다)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특별히 하나님의 산, 성소,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것(출 34:4; 삼상 1:3; 왕하 19:13), 창 28:12에서 사닥다리에 '오르는 것'을 나타낸다. 창 41:7에서 이삭이 '나오는 것'을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아나바이노는 신약성경에서 82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때때로 아나바이노는 독립 구문에(즉 움직임의 방향에 대한 지적 없이) 주로 식물, 동물, 무생물에 대해 사용되었다.|① 식물이 '자라'는 것에 대해(막 4:7 이하; 마 13:7).|② 고기가 '오르는 것'에 대해, "그러나 우리가 저희로 오해케 하지 않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마 17:27).|③ 연기 같은 것이 '올라가는 것'에 대해,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계 14:11), "두번째 가로되 할렐루야 하더니 그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더라"(계 19:3).||(b) 아나바이노는 움직임의 방향에 대한 지적에서 인간에 대해 말할 때 자주 사용되었으며, 주로 에이스($1519), 그리고 에피($1909)로 표현되었다.|① 에이스와 함께(마 5:1; 막 3:18; 눅 9:28 등 총 39회).|② 에피와 함께(눅 5:19; 행 10:9; 계 20:9 등 총 5회).||(c) 장소의 부사는 방향을 지시하는데 사용되었다.|① 요 6:62, "그러면 너희가 인자의 이전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볼것 같으면 어찌 하려느냐".|② 엡 4:10,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케 하려 하심이니라".|③ 계 4:1,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소리 같은 그 음성이 가로되 이리로 올라 오라 이 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④ 계 11:12,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있어 이리로 올라오라 함을 저희가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저희 원수들도 구경하더라".||(d) 아나바이노 에피 카르디안은 마음에 어떤 '생각이 들다'를 의미한다.|① 행 7:23, "나이 사십이 되매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아볼 생각이 나더니".|② 고전 2:9,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e) 롬 10:16에서 바울은 신 30:12의 사상을 취한다. 거기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적용된 원리가 믿음에 바탕을 둔 의(righteousness)에 적용된다. 아무도 그것을 가지고 땅으로 내려오기 위해 하늘에 올라갈 필요가 없는 것은 그것이 그리스도를 다시 모시고 내려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이러한 표현에 대해서는 잠 24:27=30:4 70인역본; Bar 3:29; "음부에" "내려가는 것"에 대해서는 시 106[107]:26; 138[139]:8; 암 9:2; 암 9:4; 사 14:13; 사 14:15을 보라).||(f) 행 2:34에서 누가는 예수님을 "높이심"을 "하늘에 올라가는 것"으로 설명하여 메시야 왕의 취임을 그의 직책으로(시 110:1), 공간적인 도해로 바꾸어 표현한다(Lohfink 229에 따르면, 누가는 여기에서 높이심을 초대 교회의 전도로 구체화시키는데, 그 높이심을 사실에 근거를 두고 부활과 구별되는 올라가심과 관련시킴으로 그렇게 한다).||(g) 행 10:4에서 고넬료의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께 올라가서,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기억하신다"고 할 때에 구약성경과 유대적 표현을 인식할 수 있다(참조: 욥 20:6; [70인역본]; 마카베오삼서 5:9).||(h) 엡 4:8에서 기자는 시 67[68]:19을 그리스도론적으로 자유로이 사용한다. 하나님에 대한 언급은 "위로 올라가시고" 그리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시는" 그리스도에 대한 진술이 되었다. 엡 4:9 이하의 삽입 구절에서의 요점은 "모든 하늘들의 위에" 그래서 모든 중간의 존재 위에 예수님께서 "오르심"은 당연히 먼저 그의 "땅 아랫 곳"으로 내려오심을 전제로 한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i) 요 3:13의 전통적인 진술은 하늘에서 내려오신 "인자" 외에 누군가가 하늘에 올라간 적이 있다는 것을 부정한다(참조: 잠 30:4, 70인역본; 지혜에 대한 언급과 함께 Bar 3:29). 그러므로 오직 예수님, 이 땅의 인자만이 하늘의 지식을 가지고 올 수 있다. 그의 "이전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은 생명의 떡처럼 그의 "하늘에서 내려 오심"보다 더 크게 거슬리는 것이다(요 6:62).||(j) 요 1:51에 따르면 천사들이 "그의 위에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을 볼 때에, 그가 하나님께서 현존하시는 장소이심이 증명된다(참조: 창 28:12; 창 28:17,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참조: Fritsch]).||(k) 요 20: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 가지 못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하라 하신대". 그가 "아버지께로 올라가시는 것"은 그의 선물을 주시는 길을 준비하시는 것이다(평강, 기쁨, 성령, 용서, 요 20:19-23; 참조, 엡 4:8 이하).||(l) 계 4:1에서 "이리로 올라오라"는 명령은 보는 자로 하여금 하늘의 환상을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만약 계 11:3의 "두 증인"이 모세와 엘리야라면(참조: E. Lohse, Offenbarung [NTD] ad loc.), 계 11:12절에서 하늘로 올리워지는 그들의 존재는 엘리야의 경우에는 구약으로(왕하 2:11; 집회서 48:9), 모세의 경우에는 유대의 전통으로(참조: The Assumption of Moses) 거슬러 올라간다.|(참조: J. Beul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