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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받게 하려 하다
mimevomai
본받다, 모방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미메오마이(Pind. 이래)는 미모스(%228: 모방자, 몸짓 광대)에서 유래했으며, 다음을 의미한다.||(a) '본받다, 모방하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하는 것을 모방하는 것에 대해 사용된다. 아리스토텔레스와 데모크리투스(Democritus)에 의하면 문명화의 초기에 사람들은 동물들, 즉 거미로부터 베짜는 것과 방적을, 제비로부터 집짓는 것을 배웠다고 한다(참조: W. Michaelis).||(b) '기꺼이 흉내내다, 따르다',||(c) 예술(연극, 그림, 조각, 시)에서 '모방으로 실재를 묘사한다', '예술적인 방법으로 모방하다'. 플라톤과 달리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술에 모방이나 실재의 긍정적인 토대를 부여한다.||(d) 윤리학에서 선한 사람들을 모방하는 것은 선으로 나아가는 방법이 될 수 있으나, 악한 사람들을 모방할 위험성도 있다. 사람은 용감한 영웅을 자신의 모델로 삼아야 한다. 혹은 사람은 스승이나 부모의 좋은 모범을 본받아야 한다.||「우주론적 개념. 플라톤에 의하면 현실 세계는 이데아의 모방이며, 시간은 영원의 모방이고,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의 모방이다. 살아 있는 피조물들이 행하는 창조는 모방을 포함하며, 인간도 역시 모방할 수 밖에 없다. 여기서 두드러진 개념은 유비(analogy), 즉 원본과 사본간의 관계라는 개념이다. 그러므로 모방은 윤리적 책임 면에 있어서 어떤 모본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은 아니다. 플라톤의 이러한 사상은 신피타고라스 학파나 스토아 학파, 필로 같은 이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후에 다소 윤리적인 개념은 우주론적 이해로부터 벗어나는듯이 보이는데, 예를 들어 셰네카는 하나님을 모본으로 삼아야 한다고 언급한다」(참조: W. Michaelis).||#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메메오마이는 신약성경에서 4회 나오며, 데살로니가후서, 히브리서, 요한삼서에만 사용되었다.||(a) 요삼 1:11,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 여기에서 일반적인 권면이 나오는데, 문맥으로 볼 때 그 권면은 디오드레베보다는 데메드리오를 본으로 삼으라는 의미이다(참조: 요삼 1:9; 요삼 1:12).||(b) 히 13:7,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이르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저희 행실의 종말을 주의하여 보고 저희 믿음을 본받으라". 여기에서 본 받는 신앙이란 단순히 다른 사람의 신앙에 입각하여 살도록 노력한다는 의미가 아니고, 그리스도께 모든 것을 온전히 맡긴 자들과 똑같은 신앙의 길을 걸을 준비를 한다는 의미이다. 지도자들이나 선생들의 믿음의 자세는 자신들의 달려갈 바를 다 간 자들의 한 모범으로서 여전히 달려가는 도중에 있는 그런 신자들의 신념과 확신을 강화시켜준다.||(c) 살후 3:7; 살후 3:9, "7 어떻게 우리를 본받아야 할 것을 너희가 스스로 아나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규모 없이 행하지 아니하며 9 우리에게 권리가 없는 것이 아니요 오직 스스로 너희에게 본을 주어 우리를 본받게 하려 함이니라". 여기에서 바울은 자기 양식을 직접 벌고 다른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자의 모범으로서 자신을 언급한다. "누구에게서든지 양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살후 3:8)라는 말은 생계를 유지하는데 대한 히브리 사상이며, 보다 더 넓은 의미로 말할 수 있다. 변론의 요점은 바울이 재정적 지원을 받을 권리가 있으나 그들과 함께 있었을 때 자신의 수고로 얻은 열매로 자립 생활을 하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권리가 부여되어 있지 아니한 게으른 형제들이야말로 자신들의 생활비를 벌기 위하여 더욱 더 일해야 하지 않겠는가!.(W. Mihaelis; A. E. Airhart).|(참조: W. Michaelis; W. Bauder).
본 받는 자
mimhthv"
본받는 자 imitator.||#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미메테스(Plat., Isocr. 등)는 미메오마이($3401: 본받다)에서 유래했으며, '본받는 자, 모방자'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미메테스는 신약성경에서 6회 나온다.||(a) 히 6:12,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 여기서 "본 받는 자들"은 단순히 비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매우 능동적인 색채를 띠고 있다. 즉 독자들은 신앙과 인내를 보여 주었던 자들인 조상들처럼 약속을 유업으로 얻어야 한다. 구약에서 조상들은 자신들의 달려갈 바를 다 간 자들의 모범으로서, 여전히 달려가는 도중에 있는 그런 신자들의 신념과 확신을 강화시켜 준다.||(b) 살전 2:14, "형제들아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을 본받은 자 되었으니 저희가 유대인들에게 고난을 받음과 같이 너희도 너희 나라 사람들에게 동일한 것을 받았느니라". 여기에서는 비교가 그 요점이다. 유대 교회에서 일어났던 일이 이제 데살로니가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그 원칙에 전혀 예외가 없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받고 불가피한 반대와 세상의 핍박을 견딘다는 것은 초창기의 진실한 교회의 거룩한 승리에서 발견되는 것이다. 바울은 그 진실함의 증거로서 핍박을 알고 있다(참조: 요 15:20).||(c) 고전 4:16,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순종이라는 요소가 본 절에 뚜렷이 나타나 있다. 여기서 바울은 디모데를 보내 고린도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 안에서 그 가르친 "길", 즉 바울의 행실 뿐 아니라 그의 지시들까지 생각나게 한다.|고전 11:1에 그와 동일한 용법이 나온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의식하여 그리스도를 붙잡고 그리스도에게 복종함으로써 자신의 생을 그리스도에 의해 계속적으로 개조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여기서 바울은 자신을 하나의 모델로 제시한다(참조: 고전 10:32-33). 그는 자기가 독자들에게 당부하고 있는 그 동일한 표준에 따라 살고 있다. 그러나 모방은 바울의 예를 그대로 따르는 것 뿐 아니라 그 원칙에 순종하는 것을 포함한다. 이 때문에 바울은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인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만약 바울이 단순히 그리스도를 자신에게 필요한 하나의 모델로 여기고 있었다면, 그는 분명 고린도인들에게 직접 그리스도를 본받으라고 지시했을 것이며 어떠한 의미에서 그리스도가 모델이 되는가를 설명했을 것이다.||(d) 살전 1:6,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이 구절에서 "주를"이라는 문구는 강도를 높이는 역할을 한다. 그 다음 구절(한글 개역에서는 앞 구절)은 데살로니가인들이 어느 정도까지 본 받는 자가 되었는지를 보여 준다. 물론 이 첨가된 구절에서 강조점이 말씀을 받는 데 있는지, 아니면 많은 환난과 기쁨에 있는지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만약 전자의 경우라면 그 의미는 말씀을 받는 데 있어 독자들이 순종함으로써 본 받는 자가 되었고, 단순히 신자가 되고 하나님께 돌아옴으로써(살전 1:8), 하나의 튀포스($5179, 개역: "본")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강조가 환난과 기쁨에 있다면, 그 본 받음은 비교의 성격을 더 갖게 된다.||(e) 엡 5:1, "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여기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상적인 것(ideals)으로 이바지 하는 어떤 속성을 지닌 형이상학적인 존재로서가 아니라 그의 본질면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사실적으로 계시된 분으로 모방되어야 한다는 사상이 나타나는 주요 구절이다. 본받아야 하는 것은 사랑과 용서에서 보여진 아버지의 뜻에 열심히 순종하는 그리스도의 순종의 자세이다(참조: 마 5:48과 병행구).|(참조: W. Bauder; W. Michaelis).
밈네스코
mimnhvskw
회상하다 recall to mind, 기억하다 remember.||#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밈네스코(Homer이래로)는 므나오마이($3415: 생각나다)에서 유래했으며, 다음과 같은 다양한 의미를 가진다.||(a) '회상하다, 기억하다'|(b) '숙고하다', '궁리하다'(이 경우에는 현재를 미래에 결부시키는 지적 능력 및 그 실천을 가리킨다.),|(c) '생각하다', '고려하다'(K.H.Bartels).||#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밈네스코는 70인역본에서 약 250회 나오며, 대부분 히브리어 자칼(생각하다, 회상하다, 묵상하다, 주의를 기울이다, 언급하다, 선언하다, 암송하다, 기원하다, 기념하다, 고백하다' 등)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그 밖에 5회는 다른 히브리어들을 번역했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밈네스코는 33회 나오며, '회상하다, 기억하다'는 의미를 가지며, 수동태와 중간태는 밈네스코마이이다. 이 의미에서 다음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a) 마 26:75에서 밈네스코마이는 주님의 말씀을 상기한 것을 표현한다: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여기에서 밈네스코마이는 속격 목적어를 수반하여 '자기 자신에게 생각나게 하다', 즉 '생각해내다'라는 의미의 재귀동사로 사용되었다.|눅 1:54에서 마리아의 찬가에는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라는 회상이 나온다(참조: 솔로몬의 시편 10:4).|눅 1:72에서 사가랴의 시는 약속을 성취하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우리 조상을 긍휼히 여기시며 그 거룩한 언약을 기억하셨으니"(참조: 출 2:24; 출 6:5; 시 105[104]:8; 시 106[105]:7, 시 106:45).||(b) 밈네스코마이는 '생각하다, 관심을 가지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히 8:12도 역시 언약 신학의 틀 안에서 렘 31:34의 약속을 인용하고 있다: "내가 저희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저희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이와 똑같은 구절이 히 10:17에서 다시 인용되고 있다.|눅 23:42,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라는 회개한 강도의 애원은 결국 "나를 구원하소서!"라는 뜻이다.||(c) 눅 16:25에서 밈네스코마이는 '숙고하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아브라함이 가로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 이 구절에서도 역시 숙고한다는 의미에서 기억한다는 것은 삶의 영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 혹은 그러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 암시되고 있다.||(d) 밈네스코마이는 '마음에 간직하다'나 '간직하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벧후 3:2은 "곧 거룩한 선지자의 예언한 말씀과 주 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므네스데나이] 하려 하노라"라고 노골적으로 말하고 있다.|부활절 때에 기억은 이해를 의미한다(눅 24:6, 눅 24:8). 사실상 새롭고 진정한 시작으로서의 기억은 성령의 사역에 속한다(참조: 요 2:22; 요 12:16). 교회는 사도 바울과 그의 가르침을 기억해야 한다(고전 11:2). 이 기억은 단순히 지식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참조: 벧후 3:1이하). 다른 사람들에게 상기시킨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한다는 뜻이고, 자기 자신을 상기시킨다는 것은 자신을 온전히 이 말씀 아래 굴복시킨다는 뜻이다.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기억은 매우 중요한데(행 11:16), 그 기억은 단순히 역사적인 관심 때문에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기 판단과 자기 헌신, 그리고 형제들에 대한 배려 면에서 중요하다(히 13:3).||(e) 계 16:19에서 '언급하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만국의 성들도 무너지니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 앞에 기억하신 바 되어 그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으매". 여기에 나오는 환상에 따르면 큰 성 바벨론은 "하나님 앞에 기억하신 바 되었다. 즉 하나님 앞에 고소된 바 되었다는 뜻이다. 바벨론에 대한 정죄는 "그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으매"라는 부정사절로 표현되고 있다(참조: 계 18:5; 앞의 ⒞; 시 109[108]:14).|(참조: K.H.Barteis; Walter Bauer).
가증하다
misevw
싫어하다, 미워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미세오(Homer 이래)는 미소스(%230: 증오)에서 유래했으며,||(a) '싫어하다, 미워하다, 혐오하다, 배척하다'를 의미한다.||(b) 미세오는 어떤 행동에 대한 반감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나 심지어 신에 대한 인간의 적개심을 의미한다. 아에스퀼루스(Aeschylus)의 비극에서 신들은 악한 행위와 행악자들을 미워하는 것, 희극에서는 신들은 꼴사나운 욕정을 싫어하는 것을 나타낸다. 에픽테투스는 인간적 충동의 하나인 미움은 마땅히 극복되어야 하고 극복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만다야교 문헌 안에는 우리가 미워하는 바를 이웃에게 행하면 안된다는 황금률과 더불어 미움에 대한 금지가 나온다.||#2. 70인역본의 용법.||미세오는 70인역본에서 약 150회 나오며, 주로 히브리어 샤네(미워하다, 증오하다)의 역어로 사용되었다.|미세오는 70인역본에서 형제를 시기하여 미워하는 것(창 37:2 이하), 아내들이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것(창 29:31, 33; 신 21:15 이하; 22:13 이하; 사 60:15),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출 20:5; 신 5:9; 신 7:9-11), 바른 지식이나(잠 1:22, 29), 의로운 사람(시 34:21; 시 69:4; 시 9:13; 잠 29:10)을 미워하는 것, 악을 행하는 자를 미워하는 것(렘 44:3 이하; 슥 8:17; 말 2:6; 호 9:15; 렘 12:8), 자신을 미워하는 것(잠 15:32)을 나타내며, 원수의 동의어로 사용되었다(신 7:15; 30:7; 삼하 22:18; 시 18:17 등).||#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미세오는 신약성경에서 39회 나오며, 그 중 요한의 기록에서만 20회 사용되었다.||(a) 사람들 사이에서의 미움, 혐오. 미세오는 70인역본에서처럼 신약성경에서 여러가지 어감을 지닌다. 이 단어는 우선적으로 종교적 배경 없이 인간에 대한 인간의 인격적 혐오를 나타낸다.|마 5:43에서 예수께서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는 말씀을 인용하실 때, 그것은 레 19:18의 명령을 상기시킨다. 유대교는 이 명령에 대해 그릇되게 제한시켰는데, 사실 이 명령의 후반부는 증명되지 않은 것이다. "이 명령 전체는 예수님 시대에 일반 이스라엘인들의 친구와 원수를 향한 태도를 결정지우는 대중적인 금언이다." 따라서 예수님은 구약성경 자체가 아니라 구약성경에 대한 특정한 해석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미움을 미움으로 갚는 것을 기본적으로 금하신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눅 6:27).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모든 사람, 심지어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명하신다. 예수님은 사람들에 대한 거룩한 증오를 인정하지 않으신다. 따라서 그는 구약성경에서, 그리고 특히 유대교에서 해결할 수 없는 모순을 폭로한다. 마 6:24; 눅 16:13에서 서로 상반되는 아가판(사랑)/ 미세인(미움)은 독특한 의미를 풍긴다. 이 두 구절은 신 21:15-17에 근거하고 있다. 눅 14:26에서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안된다.||(b) 하나님의 공동체에 대한 미움. 복음서는 현재(누가복음, 요한복음)와 미래(특히 마태복음, 마가복음)의, 하나님의 공동체를 핍박하는 미움에 대해 이야기한다. 누가복음의 유년 기사에서 의인은 이미 원수들의 공격을 받으며 미움을 받고 있다고 한다(눅 1:71). 미움을 받는 것은 제자들의 운명이기도 하다(눅 6:22; 눅 6:27).|예수님의 예언에서 미세인은 신학적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묵시적 미래의 도래요 표징이다(마 10:22; 마 24:9; 막 13:13; 눅 21:17). 공관복음서의 전승에 따르면 예수님의 오심은 미움으로부터의 구원(눅 1:71), 미움에 대한 승리(눅 6:22; 눅 6:27) 뿐만 아니라, 또한 미움의 증가를 의미한다(마 10:22; 마 24:9 이하).||(c)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미움. 눅 14:26(마 10:37); 요 12:25에 기록된, 제자가 되기 위한 조건은 충격적이다: "예수님과 함께 일하고 예수님의 동료가 되기 위한 조건은, 자신의 목숨까지 포함하여 우리가 사랑해야만 할 모든 것을 미워하는 것이다. 이것은 심리학적인 의미에서 미워하라는 것이 아니라, 구약성경의 지혜 문헌에서 말하는 바와 같은 단념, 포기, 거절, 부인을 뜻한다. 예수님의 제자가 될 자들은 예수님에게 절대적으로 헌신해야 한다. 그들은 다른 무엇이나 어느 누구에게라도 얽매여서는 안된다. '미워하라'는 말은 제자들의 분리를 요구하는 것이며, 아무든지 무엇이든지 더 사랑하지 말라는 경고가 시금석이다. 이러한 포기는 심리학적이거나 광신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이고 그리스도 중심적인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d) 하나님의 거부하시는 미움. 하나님의 뜻으로서의 미움의 사상은 구약성경을 상기시킨다.|롬 9:13에는 말 1:2 이하가 선택의 교리와 관련하여 인용되어 있다: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그러나 이 예언적 말씀에는 선택에 대한 특정한 주장이 선행하지 않는다. 이것은 인간과는 무관한 하나님의 자유로운 뜻을 강조한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의 선택의 비밀이다. 하나님의 미움은 그의 완강하심의 수수께끼이다. 하나님의 미세인은 주님이자 심판자로서의 하나님과 관련된다.|계 2:6은 예수님과 에베소 교회의 미움을 언급한다. 즉 에베소 교회와 예수님은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한다. 여기서 미움은 차별과 거부, 형벌과 심판을 나타낸다. 공동체는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유혹을 거부한다.|따라서 히 1:9이 시 45:7의 말씀을 예수님의 주되심에 적용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네가 의를 사랑하고 불법을 미워하였으니". 예수 그리스도는 의를 인정하고 불법을 거부하였다. 이리하여 주님이자 심판자로서의 예수님이 여기서 묘사된다.||(e) 요한복음에서 사랑과 미움. 아가판과 미세인의 대조는 요한의 사상에서 절정에 이른다. 여기서도 하나님의 사랑(**)의 운동(cmovement)은 미움(**)의 우주적 운동(movement)과 상충하게 된다. 이 둘은 배타적이면서 포괄적이어서 하나님과 세상의 본성을 드러낸다. 하나님, 그리스도, 제자들, 공동체에 대한 세상의 이러한 미움에는 참으로 죄와 살해가 놓여 있다. 여기서 빛이 어두움으로부터 차별화된다. 악을 행하는 자는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다(요 3:20). 빛을 미워하는 것은 어둠의 세력에 의해 눈이 멀어 그것에 이끌려 다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 미워하지 않는다. 미워하는 것은 빛에 적대하는 가운데 살아가는 것이요. 빛을 거부하는 것이요, 빛의 영역을 피하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요한의 사상을 정확히 이해한다면 이 뿌리깊은 미움은, 하나님은 빛이요 사랑이시라는 사실의 대응물이다. 바로 그리스도가 세상의 빛이요 하나님의 사랑의 행위이기 때문에 세상의 미움과 적대가 강조된다. 불법의 비밀이 세상의 '미움' 속에 감춰져 있다. 세상은 예수님을 미워한다(요 7:7; 요 15:18). 예수님을 미워하는 것은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이다(요 15:23 이하). 세상은 또 제자들도 미워한다(요 15:18; 요 17:14; 요일 3:13). 빛의 영역 안에 사는 것은 필연적으로 어둠의 미움의 타켓이 된다. 이 영역에 살지 않는 자는 미움을 받지 않는다(요 7:7). 형제를 미워하지 말라는 경고는 요한일서에서 특별한 신학적 중요성을 가진다. 형제를 미워하는 것은 빛이 아닌 어둠의 영역에서 사는 것이다(요일 2:9; 요일 2:11; 요일 3:15; 요일 4:20). 요한일서는 어떻게 이러한 미움이 표현되는가를 보여주지 않는다. 그러나 그 의미는 어둠의 세력이 형제들과의 관계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미움은 귀신적인 추상적 세력이 된다.|물론 기억해야 할 것은 요한에서 미세인의 이와 같이 더 깊은 개념과 함께 이전의 전승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공관복음서의 제자직의 조건의 영향을 요 12:25에서 발견한다. 시편 기자의 불평(시 35:19; 69:5; 고난의 시편)이 요 15:25에서 반향된다. 계 2:6은 구약성경의 거룩한 미움과 연관되어 있다.||(f) 롬 7:15. 로마서 7장의 율법 아래 있는 인간의 비참한 처지에 대한 묘사에서 우리는 롬 7:15의 말씀을 본다: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 여기서 델레인(원하는 것)과 미세인(미워하는 것)이 부합한다. 자아의 긍정적인 의지와 부정적인 의지가 행위를 낳지 않는다. 행위는 보다 더 강력한 죄(롬 7:17)와 육신(롬 7:18)이 일으키는 것이다. 여기서 미세인이 에고(나)에 의한 거부를 나타낸다는 사실은 부차적인 것이 아니다. 율법으로 말미암아 인간은 단지 원치 않는 바를 행하게 될 뿐만 아니라 미움과 거부(미세인)도 행하게 된다.||(g) 미움의 개념의 기타 측면들. 눅 19:14; 계 17:16에서 미세인은 보다 세속적인 의미를 지녀, 정치적 반목을 나타낸다. 계 18:2에서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는 '하나님과 인간에게 미움받는 새'를 뜻한다. 계 2:6; 계 17:16; 계 18:2을 비교하면 이 용어가 묵시적 전승에서 많은 의미들을 획득함을 알 수 있다. 엡 5:28 이하의 훈계는 정혼한 아내를 사랑할 의무를 남편에게 지우는 것이다: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다. 아내는 그에게 속하지 아니한 다른 사람이 아니라 그의 제 2의 에고(나)이다'. "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하나니"(엡 5:29). 에베소서는 하나님이 뜻하신 생명의 질서와 인간 경험을 반복하여 말한다. 물론 이러한 것들도 예수님의 제자직으로 인해 제한되는 것은 사실이다(참조: 롬 13:14).|딛 3:3에 따르면 미움은 구세대(aeon)의 본질에 속하는 것으로서, 예전에 그리스도인들이 그 속에서 가증스럽게 행하고 서로 미워하곤 하던 생활에 속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일련의 악덕에 관한 결론은 유대교의 사상과 부합하며, 인간 관계의 완전한 붕괴를 드러내 준다. 우리는 여기서 미세인에 관한 요한의 개념을 상기한다. 하지만 여기서 그 사상은 독자적인 중요성을 지니며 연쇄적인 사상의 일부분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다.|유 1:23은 다소 이상하다: "어떤 자를 그 육체로 더럽힌 옷이라도 싫어하여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 싸워서 진 거짓 교사는 교회의 자비를 경험하더라도, 그는 위험스러우므로 그와의 모든 영적 혹은 육체적 접촉을 피하라는 뜻이다. 더럽힘이란 방탕이란 의미에서 문자적으로 취할 수도 있고, 영적인 것이든 귀신적인 것이든 인간의 정신적 태도와 힘이 그의 옷에 스며있다는 고대의 대중적인 신앙의 견지에서 이해될 수도 있다(막 5:27 이하; 행 19:11 이하).|끝으로 유 1:23 배후에는 신약성경에서도 역시 채택된 하나님의 증오라는 구약성경의 사상이 놓여 있다(참조: 계 2:6). 그러나 악에 대한 이러한 증오가 인간과 물건들에게도 확대되는가 하는 의문은 남아있다(유 1:23). 만약 그렇다면 이 미세인은 이 세대와 우주의 악으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대의가 분리됨을 신학적으로 암시하며 따라서 공동체에게 그것은 거짓 교사를 피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본문이 강조하는 것이다.||(h) 개념의 독특성.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미워하지 말라고 명하신다(눅 6:27). 사도들은 형제들을 미워하는 것(요일 2:9; 요일 2:11; 요일 3:14; 요일 4:20), 인간의 서로 간의 미움(딛 3:3)에 대해 말하며, 이것들은 어둠과 구 세대에 속한 것이라고 선포한다. 그러므로 인간 사이의 관계에서 모든 정욕은, 일반적인 것이든, 국가적 혹은 종교적인 것이든 뿌리에서부터 공격 당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위해 거절하고 거부하는 거룩한 증오의 사상은 신약성경에서 역시 순화된다(구약성경에서 이 사상은 동기와 사람 양자 모두에게 영향을 미쳤다).|신약성경도 악에 대한 거룩한 거부와 거절을 가르치지만 이것은 사람이 아니라 사물에게 향한 것이다. 지고한 사랑의 법은 결코 도전받지 않는다.|계 2:6의 미움도 니골라당의 행위를 향한 것이지 사람들을 향한 것이 아님을 주목할 만한다. 예수님께서 제자직의 조건을 제시하실 때 분명히 말씀하시는 것은 제자들이 친척들(눅 14:26; 마 10:37) 및 자신의 생명(요 12:25)과 얽매인 자연적, 법적 결속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도 역시 인간의 견지에서 설명할 수 있는 심리학적인 조건부의 멀리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요구의 무조건성과 절대성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의 요구는 심지어 율법 자체를 포함하여 지상의 가장 중요한 결속까지도 그만두라는 것이다. 신약성경에 거룩한 거부와 포기(미스에인)가 있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새 세상의 능력과 본질인 사랑으로 포용되고 해석되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이 성화시키고 깨끗케 하기 때문에 거룩한 미움을 금지된다. 사랑에서 나오지 않고, 사랑으로 이끌지 않는 거부는 신약성경에서 호소력을 가질 수 없다. 신약성경은 종교를 포함하여 인간과 인간 사이의 어떠한 가능한 형태의 미움도 극복한다. 그러나 악에 대한 거룩한 거부와 인간적인 조건 없이 그리스도께 헌신할 것을 신약성경은 가르치고 있다.|(참조: O. Michel; H. Seebass).
보응
misqapodosiva
보상, 보응 recompense.||#1. 헬라어 및 교회 문헌의 용법||명사 미스다포도시아는 미스도스($3408)와 아포디도미($591)에서 유래했으며, '임금의 지불, 보수, 보상'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미스다포도시아는 신약성경에서 히브리서에만 3회 나온다.||(a) 히브리서는 보상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행위의 견지에서만 언급될 수 있다는 점을, 거기에 걸맞는 어휘를 선택함으로써 밝히고 있다. 히 10:35 이하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보상을 가져다 주는 것은 약속의 축복이라고 이야기한다(미스다포도시아[$3405: 보상]와 에팡겔리아[$1860: 약속]가 나란히 쓰였다). 여기에서 문제되는 것은 이 미스다포도시아가 개개인의 행위에 상당하는 보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보다는 미스다포도시아는 영생을 받음, 즉 기독교 소망의 절정을 의미한다. 어떠한 인간 행위도 어떤 식으로든 가치에 있어 이것과 평형을 이룰 수가 없다. 그 반면에 이 선물은 담대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찾는 자들을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히 10:35).|충성스러운 자들을 위한 심판을 전망해 보건대 그것은 인간의 가치와 업적들을 조잡하게 낱낱이 헤아리는 것이 아니라 기쁨과 소망으로 가득차 있는 것이다(히 10:35). 이 점에서 모세가 신앙의 표본이다. 왜냐하면 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히 11:26)||(b) 미스다포도시아는 '형벌'에 대해 사용되었다: "천사들로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치 아니함이 공변된 보응을 받았거든"(히 2:2).|(참조: J.H.Thayer; P.C.Bottger).
상 주시는 이
misqapodovth"
삯을 지불하는 자, 보상자, 보응자||#1. 헬라어 교회 문헌||명사 미스다포도테스는 교회 문헌에만 나오며 미스도스($3408)와 아포디도미($591)에서 유래했으며, '임금을 지불하는 자, 보상자, 보응자'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미스다포도테스는 신약성경에서 히브리서에만 한번 나온다.|히 11:6에서 하나님께서 상주시는 자로 묘사한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참조: Walter Bauer).
미스디오스
mivsqio"
삯군, 품군 hired servant.||#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미스디오스는 미스도스($3408)에서 유래했으며, 삯을 위해 '고용된', 실명사로 '고용된 일군, 품군'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미스디오스는 70인역본에서 7회 나오며, 사킬(품군)을 번역한다(레 25:50; 욥 7:1; 토빗 5:12; 집회서 7:20 등).||#3. 신약성경의 용법||미스디오스는 신약성경에서 누가복음에만 2회 나온다.|눅 15:17, 눅 15:19에서 '고용된 일군'을 의미한다: "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참조: Walter Bauer).

misqov"
품삯, 임금, 보상||#1.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미스도스(Homer 이래)는||(a) '일에 대한 보수',|(b) '사례금'이나 '요금'(예술가, 과학자, 신학자, 시인, 연극자, 의사에게 지불하는 것),|(c) '봉금'(군인들),|(d) '임대료'(토지나 집세),|(e) '사례금'(사제들),|(f) '비용, 경비',|(g) '신랑의 지불금',|(h) 하나님이나 사람이 주는 '상',|(i) '형벌'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미스도스는 70인역본에서 약 70회 나오며, 주로 히브리어 샤칼의 어군을 번역했고, '급료, 임금, 보수, 보상, 선물' 등의 의미를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미스도스는 신약성경에서 29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미스도스는 '일의 보수'라는 문자적 의미로 사용되었다.|눅 10:7: "그 집에 유하며 주는 것을 먹고 마시라 일꾼이 그 삯을 얻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기지 말라".|딤전 5:18: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느니라".|마 20:8: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꾼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 하니".|약 5:4에서 인격화 된 품삯을 언급한다: "보라 너희 밭에 추수한 품꾼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지르며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행 1:18: "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 나온지라".|벧후 2:15: "저희가 바른 길을 떠나 미혹하여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좇는도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벧후 2:13: "불의의 값으로 불의를 당하며 낮에 연락을 기쁘게 여기는 자들이니 점과 흠이라 너희와 함께 연회할 때에 저희 간사한 가운데 연락하며".|유 1:11: "화 있을진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갔으며 고라의 패역을 좇아 멸망을 받았도다".||(b) 미스도스는 '보답, 보상, 상'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수고와 노력으로부터 자연적으로 생겨나는 열매에 대해 사용되었다(요 4:36; 고전 9:18).|미스도스는 하나님의 보상에 대해 사용되었다.|① 계 22:12에서 보상과 형벌, 양자 모두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② 선한 행위와 노력에 대해 하나님이 수여하시거나 하실 보상에 대해, 마 5:12; 마 6:2; 마 6:5; 마 6:16; 마 10:41이하; 막 9:41; 눅 6:23; 눅 6:35; 고전 3:8; 고전 3:14; 요이 1:8; 계 11:18; 마 5:46; 고전 9:17; 마 6:1.||(c) 미스도스는 '형벌'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불의의 값으로 불의를 당하며 낮에 연락을 기쁘게 여기는 자들이니 점과 흠이라 너희와 함께 연회할 때에 저희 간사한 가운데 연락하며"(벧후 2:13).|(참조: Walter Bauer; J.H.Thayer).
품군으로 쓰다
misqovw
고용하다 hire.||#1.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미스도오(Hdt. 이래)는 미스도스($3408)에서 유래했으며, '세를 주고 빌리다, 고용하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미스도오는 70인역본에서 약 17회 나오며, 주로 히브리어 사칼(고용하다)과 파생어들을 번역한다. 따라서 미스도오는 70인역본에서 '세내다, 사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창 30:16; 호 3:2; 사 7:20 등).||#3. 신약성경의 용법||미스도오는 신약성경에서 마태복음에만 2회 나온다.|마 20:1에서 '고용하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 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주인과 같으니". 마 20:7에서도 마찬가지이다.|(참조: Walter Bauer).
셋집
mivsqwma
약정 가격 contract price, 임대료 rent.||#1.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미스도마(Hdt. 이래)는 미스도오($3409)에서 유래했으며,|(a) 어떤 것을 빌리거나 고용하는 값, 임대료, 사용료,|(b) 어떤 값으로 빌리거나 고용하는 것, 셋집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미스도마는 70인역본에서 12회 나오며, 주로 에트난(임대료)을 번역한다(신 23:19[18]; 미 1:7; 겔 16:31, 겔 16:34, 겔 16:41). 이 단어는 에트나(창부의 보수)를 번역했거나(호 2:14[12]), 나단(창부의 뇌물)을 번역하기도 했다(겔 16:33).||#3. 신약성경의 용법||미스도마는 신약성경에서 행 28:30에 한번 '셋 집'이란 의미로 사용되었다: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유하며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참조: Walter Bauer).
삯군
misqwtov"
품군 hired servant.||#1.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미스도토스(Aristoph. 이래)는 미스도오($3409)에서 유래했으며, '고용된 품군, 고용된 일군'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미스도토스는 70인역본에서 약 20회 나오며, '품군'을 뜻하는 사킬을 번역하였다(출 12:45; 레 19:13; 레 22:10; 레 25:6; 신 15:18; 욥 7:2; 욥 14:6; 말 3:5; 사 16:14; 사 21:16; 렘 46:21 등).||#3. 신약성경의 용법||미스도토스는 신약성경에서 3회, 마가복음과 요한복음에만 나온다.|막 1:20 : "곧 부르시니 그 아비 세베대를 삯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 두고 예수를 따라가니라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요 10:12, 요 10:13에서 삯군의 이기성을 묘사한다: "12 삯꾼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또 헤치느니라, 13 달아나는 것은 저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아보지 아니함이나".|(참조: Walter Bauer).
미둘레네
Mitulhvnh
미둘레네 Mitylene(지)||미튈레네는 한글 개역에서 '미둘레네'로 음역되어 있다.|미둘레네는 소아시아 해안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헬라의 섬들 중에 가장 큰 레스보스(Lesbos)섬의 중요한 도시였다. 이 도시는 훌륭한 항구가 있는 남동쪽 해안에 위치하며, 강한 요새지였고 초기 문화의 중심지였다. 이올리스(Aeolian) 헬라인이 이 곳에 거주하였고, 삽포(Sappho)와 알개우스(Alcaeus)가 헬라 서정시의 기초였던 노래들을(B.C. 6세기 초엽에) 기록했던 언어도 이올리스(Aeolic) 방언이었다. 이 두 남녀 시인은 미둘레네에 살았다. 키게로(Cicero)는 고상한 도시, 호라시오(Horace)는 아름다운 도시, 비트루비우스(Vitruvius)는 장엄한 도시라고 묘사했다.||신약성경에서 미둘레네는 행 20:14에 한번 나온다: "바울이 앗소에서 우리를 만나니 우리가 배에 올리고 미둘레네에 가서".|(참조: PEB; R. Earle).
미가엘
Micahvl
미가엘 Michael||#1. 구약성경.||미카엘은 히브리어 미카엘(하나님 같은 이가 누구인가)에서 유래했으며, 천사 '미카엘'을 가리킨다.|미가엘은 가브리엘과 마찬가지로 하늘의 존재이나, 그는 그에 필적하는 바사의 군에 대항하는 이스라엘의 전사라는 특별한 책임을 맡고 있으며(단 10:13, 20), 최후의 큰 전투에서 하늘의 군대를 이끌고 와서 모든 초 자연적인 악의 세력에 대항한다(단 12:1). 후기 유대 문서에서 사람들은 미가엘을 기록하는 천사라고 믿었다(Asc. Isa. 9:22-23). 따라서 미가엘은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모세 사이의 중개자였다(희년서 1:27; 22:1; Asc. Isa. 11:21; Targ, Exod. 24:1).||#2. 신약성경.||미카엘은 신약성경에서 2회 나오며, 유다서와 요한계시록에만 사용되었다.||(a) 유 1:9에서 모세의 시체를 둘러싼 미가엘과 마귀간의 논쟁에 관해 언급한다: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대하여 마귀와 다투어 변론할 때에 감히 훼방하는 판결을 쓰지 못하고 다만 말하되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 하였거늘".|유다가 모세의 시체에 대한 미가엘의 "마귀와의 논쟁"을 인용하고 있는 것은 '지배'와 '위엄'에 대해 경멸적이고 불경스런 반응을 보인 불신의 사람들을 제때에 반박하기 위한 것이다(참조: 유 1:8). 미가엘은 마귀에 대해 감히 훼방하는 판결을 쓰지 못하였다고 했는데, 이것은 마귀가 원래 지녔던 천사로서의 위엄을 존중한 처사이다. 그는 '감히 조롱으로써 마귀를 비난할 수 없었다'(Phillips).|미가엘은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셨을 때 하신 것처럼 스스로 심판자가 되기를 거부하고 성경 귀절을 인용함으로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고 하며, 마귀에 대항하였다(참조: 슥 3:1-2; 벧후 2:11).|바클레이는 유다의 논지에 대하여 '이와 같은 상황에서도 가장 선한 천사가 가장 악한 천사를 비난하기를 거부한다면, 어떠한 인간도 어떠한 천사에 대해 악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본절의 '재판의 모범 사례인 미가엘 대 마귀의 경우'에서|① 미가엘은 모든 기독교인이 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마귀에 대항하였다(참조: 약 4:7).|② 그는 자기의 적에 대해 모욕하는 언동을 삼가하였다.|③ 그는 주님의 역사와 말씀을 의지하였다. 심판하는 것은 인간이나 천사의 일이 아니라 주님의 역사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기독교인을 통해 나타나든, 천사장이나 그리스도를 통해 표현되든 여전히 사탄을 물리치기에 충분하다.|(R. Earle).||(b) 계 12:7,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으로 더불어 싸울쌔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본절은 단 12:1의 주제를 채택하여 미가엘을 초자연적인 악의 세력들을 대표하는 사탄으로 확인된 원시적인 용의 정복자로 나타난다. 이것은 이 세대의 종말에 있을 대환란에 대한 분명한 언급인 듯하다. 그러므로 미가엘과 용 사이의 전쟁은 하나님과 사탄 사이의 영원한 투쟁을 상징할 뿐만 아니라 현 시대 말에 있을 최후 투쟁에 대한 특별한 언급이다(R. Earle).|(참조: P. J. Budd).
므나
mna'
므나(화폐)||므나의 기원은 히브리어 마네(4488: 화폐 단위)이다.||(a) 구약성경에서 중량 단위, 그리고 계산용 가상 주화 또는 돈, 100세겔과 동등하다: 왕상 10:17, 참조: 대하 9:16; 에스드라하 2:69.||(b) 아티카에서 중량 단위이자 일백 드라크마와 동등한 금액이다: 눅 19:13, 눅 19:16, 눅 19:18, 눅 19:20, 눅 19:24이하.|신약성경에서 므나는 누가복음 19장에만 9회 나온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기억하게 하다
mnavomai
생각하다, 기억하다.||밈네스코($3403)를 보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