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해설 266 페이지 > 기독정보닷컴

조상의 유전한
patroparavdoto"
조상으로부터 전해 내려온.||#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파트로파라도로스(Diod., Dion.)는 파테르($3962: 아버지)와 파라디도미($3860: 넘겨주다, 맡기다)에서 유래했으며, '조상으로부터 전해 내려온(물려 받은)'이란 의미를 지닌다.||#2.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파트로파라도토스는 신약성경에서 벧전 1:18에 한번 나온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파트롤로아스
patrolwv/a"
아버지를 때리는 자||#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파트롤로아스(Aristoph., Pla. 이래)는 파테르($3962: 아버지)와 알로이아오(%1062: 세게 때리다)에서 유래했으며, '아버지를 때리는 자'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파트롤로아스는 신약성경에서 딤전 1:9에 한번 '아버지를 때리는 자'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알것은 이것이니 법은 옳은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요 오직 불법한 자와 복종치 아니하는 자며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며 거룩하지 아니한 자와 망령된 자며 아비를 치는 자와 어미를 치는 자며 살인하는 자며".|(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파트로오스
patrw/'o"
아버지에게 속하는, 아버지로부터 내려오는.||#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파트로오스(Homer 이래)는 파테르($3962: 아버지)에서 유래했으며,||(a) '아버지나 조상에게 속하는 (것)',|(b) '아버지나 조상으로부터 내려오거나 상속 받는 것'을 뜻하며,|(c) 제우스(Zeus)는 부권의 보호자로서 파트로오스라 불리웠다.||#2. 70인역본의 용법.||형용사 파트로오스는 70인역본에서 14회 나오며, 히브리어 아브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이 단어는 '아버지'의 친구(잠 27:10), 조상들의 묘(마카베오이서 5:10; 12:39), '율법'(마카베오삼서 1:23) 등에 대해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파트로오스는 신약성경에서 사도행전에만 3회 나온다.||(a) 행 22:3에서 바울은 사람들에게 "우리 조상들의 율법(파트로우 노무)의 엄한 교훈을 받고" 자랐다고 말한다.||(b) 행 24:14에서 그는 "조상의 하나님"(파트로오 데오)을 섬겼다고 벨릭스 앞에서 증언했다.||(c) 행 28:17에서 바울은 로마에서 유대인 지도자들에게 자신이 "조상의 규모"를 배척한 일이 없었다고 말한다.|이와 같이 사도행전에서 보다 일반적인 파트리오스보다 당당한 파트로오스를 더 선호하는 일관된 용법(특히 노모스와 에데와 함께)은 이스라엘의 조상으로부터 전수되어온 율법, 하나님, 관습과 관련되어 있다.
바울(사도)
Pau'lo"
바울 Paul.||파울로스는 라틴어 고유 명사, 파울루스(Paulus)에서 유래했으며, 헬라어 음역이며, '바울' Paul로 번역한다. 신약성경에서 이 이름을 가진 두 사람이 나타난다.||#1. '서기오 바울'||로마의 지방 장관(지방 총독). 사도 바울에 의해 그리스도에게로 개심하였다: "그가 총독 서기오 바울과 함께 있으니 서기오 바울은 지혜 있는 사람이라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나님 말씀을 듣고자 하더라"(행 13:7).||#2. '사도 바울'||그의 히브리어 이름은 '사울' Saul이었다. 그는 갈리기아의 다소에서(행 9:11; 행 21:39; 행 22:3) 유대인 양친에게서 태어났다(빌 3:5). 그의 부친은 바리새인이었으며(행 23:6) 로마의 시민이었다; 따라서 그 자신도 출생 시부터 로마 시민이 되었다(행 22:28; 행 16:37). 그는 도덕적, 지성적 양면에서 모두 탁월한 은사들을 부여 받았었다.|그는 천막 만드는 일을 배웠다.|바울은 청년기 초에 예루살렘으로 데려와져서 바리새인인 가말리엘에게서 유대인의 신학을 철저히 교수 받았다(행 22:3; 행 5:34). 처음에 그는 그리스도인들을 극히 흉포하게 공격하고 핍박했으나 마침내 다메섹으로 가는 도상에서 한 기적에 의해 갑작스럽게 그리스도께로 개종하였으며 지칠 줄 모르고 굽힐 줄 모르는, 그리스도의 전파자요 많은 그리스도 교회의 설립자가 되었다.|그가 기독교의 동료들로부터 불후의 존경을 받을 자격을 확립한 것은 비단 그의 지칠 줄 모르는 사역에 의해서 뿐만이 아니라, 또한 그의 불멸의 서신들에서 나타나는 사실, 즉 그가 자기의 하늘의 주님의 마음을 완전히 파악하여,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께 "살아있는 믿음"을 두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에 의해 계획되었다는 것과, 모세 율법에 종노릇하는 것은 그리스도가 그 창시자가 되는 영적 자유와 전혀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을 지극히 명료하게 가르쳤다는 사실에 의해서이다.|그의 열심과 교리로 그는 스스로 유대인들의 불구대천적 증오심을 불러 일으켰으며, 결국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57년에[또는 보다 일반적인 의견에 따르면 58년] 그를 투옥하고야 말았다; 그리고 죄수의 몸으로 그는 처음에 팔레스타인의 가이사랴로 호송되었다가 2년 후에 로마로 보내졌으며 거기에서(64년에) 순교를 당하였다. 그러나 유세비우스에게서 유래한 교회의 전승에 따르면 바울은 이 영어 생활로부터 풀려나 스페인과 소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했으며 그 후에 2차로 투옥되어 네로가 아직 황제로 재위하였던 67년 또는 68년에 로마에서 마침내 사형을 당했다 한다.|바울은 신약성경 중 사도행전과 그의 붓으로 쓴 서신들에서 뿐만 아니라 벧후 3:15에서도 언급된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말다
pauvw
제지하다, 해방하다, 그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파우오(Homer 이래)는 다음을 의미한다.||(a) 능동태로 '중지하다, 그치게 하다, 조용하게 하다', 어떤 것을 하지 못하도록, '제지하거나 막다',|(b) '해방하다, 치료하다, 고치다',|(c) 중간태로 '멈추다, 그치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파우오는 70인역본에서 약 70회 이상 나오며, 히브리어 하달, 칼라, 샤바트 등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그치다, 멈추다, 그만두다' 등의 의미를 나타낸다(창 11:8; 창 18:33; 민 16:31; 삿 15:17; 시 36:8; 시 33:14).||#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파우오는 신약성경에서 15회 나온다.||(a) 파우오는 벧전 3:10에서 혀를 '막다, 제지하다'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b) 파우오는 벧전 4:1에서 '해방을 얻다'를 의미한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음이니".||(c) 파우오는 주로 '그치다, 멈추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① 눅 5:4,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② 눅 8:24, "제자들이 나아와 깨워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 한대 예수께서 잠을 깨사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니 이에 그쳐 잔잔하여 지더라".|③ 눅 11:1,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제자 중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④ 행 5:42, "저희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⑤ 행 6:13, "거짓 증인들을 세우니 가로되 이 사람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스려 말하기를 마지 아니하는도다".|⑥ 행 13:10, "가로되 모든 궤계와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⑦ 행 20:1, "소요가 그치매 바울이 제자들을 불러 권한 후에 작별하고 떠나 마게도냐로 가니라".|⑧ 행 20:31,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내가 삼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⑨ 행 21:32, "저가 급히 군사들과 백부장들을 거느리고 달려 내려가니 저희가 천부장과 군사들을 보고 바울 치기를 그치는지라".|⑩ 고전 13:8,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⑪ 엡 1:16, "너희를 인하여 감사하기를 마지아니하고 내가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하노라".|⑫ 골 1:9,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⑬ 히 10:2, "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케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리요".|(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바보
Pavfo"
바보 Paphos||바보는 고대 페니키아인들에 의해 세워진 키프로스(Cyprus)의 남서쪽 끝에 위치한 도시이며, 그곳이 내륙 서남쪽으로 10마일의 거리의 비옥한 대지의 "새 바보(New Paphos)"가 되었다; 그곳은 A.D. 1 세기의 로마 정부의 소재지였다.|그 곳에서 바울과 바나바가 지방 총독 서기오 바울(행 13:7)과 만났는데, 서기오 바울은 박수 엘루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행 13:8)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사도 바울을 불렀고, 그 결과 "믿으며" 주의 가르치심에 놀랐다(행 13:12); 이리하여 바울은 첫 번째로 바보의 로마 관리에게 그리스도교를 전하였다. 그 도시는 파포스의 아프로디테(Paphian Aphrodite)를 숭배하는 본거지이며, 그녀의 신봉자들은 이곳 바다에서 태어났다고 믿고 있으며 원뿔형의 운석을 중심에 두는 감각적인 의식으로 그녀를 숭배한다. 그녀의 유명한 신전은 에베소의 아르테미스(Artemis)의 신전처럼 많은 순례자들이 방문하였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HBD; NBD).
완악해지다
pacuvnw
두껍게하다 thicken, 무감각하게 하다 make insensitive.||#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파퀴노는 파퀴스(두꺼운, 살찐)에서 유래한 단어로서 아에스퀼루스(Aeschylus) 이래로 사용되었다. 이 단어는 본래 '두껍게 하다, 살찌게 하다'를 의미하였으며, 후에는 의미가 확대되어 '(물 따위가) 스며들지 않게 하다'를, 여기에서부터 비유적으로 '무감각하게 만들다', 수동태로는 '무감각하게 되다'는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파퀴노는 70인역본에서 5회 나오며, '살찌는 것이나 둔해지는 것'을 나타난다.||#3. 신약성경의 용법||마 13:15과 행 28:27은 모두 다 사 6:9이하를 인용하고 있다: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을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와 나의 고침을 받을까 함이라 하였으니".|(참조: U. Becker)
고랑
pevdh
족쇄, 차꼬.||#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페데(Homer 이래)는 페자(발, 발등)에서 유래했으며, '족쇄' a fetter, '발에 채우는 차꼬' shackle for the feet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페데는 70인역본에서 14회 나오며, 히브리어 느호쉐트(5178: 구리, 청동; 삿 16:21; 대하 36:6; 삼하 3:34; 왕하 25:7; 대하 33:11; 렘 52:11), 케벨(3525: 족쇄, 차꼬; 시 105:18)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쇠사슬, 차꼬'라는 의미를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페데는 신약성경에서 3회 나오며 '족쇄나 차꼬'를 의미한다.||(a) 막 5:4, "이는 여러번 고랑과 쇠사슬에 매였어도 쇠사슬을 끊고 고랑을 깨뜨렸음이러라 그리하여 아무도 저를 제어할 힘이 없는지라".||(b) 눅 8:29, "이는 예수께서 이미 더러운 귀신을 명하사 이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 (귀신이 가끔 이 사람을 붙잡으므로 저가 쇠사슬과 고랑에 매이어 지키웠으되 그 맨 것을 끊고 귀신에게 몰려 광야로 나갔더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평지
pedinov"
평지 plain.||#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페디노스(Hdt. 이래)는 페디온(%886: 평지)에서 유래했으며, '평지, 평원' level, plain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페디노스는 신약성경에서 눅 6:17에 한번 나온다: "예수께서 저희와 함께 내려오사 평지에 서시니 그 제자의 허다한 무리와 또 예수의 말씀도 듣고 병 고침을 얻으려고 유대 사방과 예루살렘과 및 두로와 시돈의 해안으로부터 온 많은 백성도 있더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도보로 가다
pezeuvw
도보로 여행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페쥬오(Xen., Polyb.)는 페조스(%940: 도보로, 육로로)에서 유래했으며, (말이나 차가 아닌) '도보로 여행하다', (해로로 가는 것과 대립될 경우) '육로로 여행하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페쥬오는 신약성경에서 행 20:13에 한번 '도보로 여행하다'를 의미한다: "우리는 앞서 배를 타고 앗소에서 바울을 태우려고 그리로 행선하니 이는 자기가 도보로 가고자 하여 이렇게 정하여 준 것이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걸어서
pezh'
도보로, 걸어서.||#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부사 페제(Homer 이래)는 푸스($4228: 발)에서 유래했으며,||(a) '도보로, 걸어서',|(b) '육로로'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형용사 페조스(3979)와 부사 페제는 70인역본에서 약 30회 나오며, 라글리(7273: 걷는, 도보의; 출 12:37; 삼하 8:4; 왕하 13:7; 대상 18:4)의 역어로 '보행' 또는 '보'병을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부사 페제는 신약성경에서 2회, '도보로' 또는 '걸어서'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a) 마 14:13, "예수께서 들으시고 배를 타고 떠나사 따로 빈 들에 가시니 무리가 듣고 여러 고을로부터 걸어서 좇아간지라".||(b) 막 6:33, "그 가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이 저희인줄 안지라 모든 고을로부터 도보로 그 곳에 달려와 저희보다 먼저 갔더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순종하다
peiqarcevw
복종하다, 순종하다 obey.||#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페이다르케오(Soph.이래)는 형용사 페이달로스(상관이나 정부, 또는 권세에 순종하는)에서 유래했으며, '복종하다, 순종하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페이다르케오는 신약성경에서 4회 나오며, 사도행전(3회)과 디도서에만 사용되었다.||(a) 행 5:29에서 하나님에 대해 '순종하는 것'을 나타낸다: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행 5:32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b) 행 27:21에서는 사람에 대해 '순종하는 것'을 나타낸다: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으매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면 좋을 뻔하였느니라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c) 딛 3:1에서 통치자들에 대하여 '순종하는 것'을 나타낸다: "너는 저희로 하여금 정사와 권세 잡은 자들에게 복종하며 [순종하며] 모든 선한 일 행하기를 예비하게 하며".|(참조: J.H.Thayer; R.Butmann; O.Becker).
권하는
peiqov"
권하는, 설득력 있는 persuasive.||#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페이도스는 페이도($3982)에서 유래했으며, 형용사로 '설득하는, 설득력있는'을 의미하며, 명사로는 '설득력 있는 기술'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페이도스는 신약성경에서 고전 2:4에 한번 나온다: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여기서 이 단어는 명사로 사용되어 '설득시키는 기술이나 능력'을 의미하는 것 같다.|(참조: J.H.Thayer; R.Bultmann).
굳세게 하다
peivqw
납득시키다, 확신시키다 convince, 설득하다 persuade.||#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페이도(Homer이래)는 기본 동사이며,||(a) 능동태로 '확신시키다, 설득하다, (설득으로) 유혹하다, 타락시키다'를 의미한다. 이 단어가 현재형으로 사용되면 이런 행동을 하려는 의도를 나타내고, 과거형으로 쓰이면 이런 일을 성공한 것을 나타낸다.||(b) 수동태로 '설득을 받다, 스스로 설득 당하다, 확신하다, 신뢰하다, 복종하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페이도는 70인역본에서 약 180회 나오며, 주로 히브리어 바타흐 어군(믿다, 확신하다, 신뢰, 안전)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주로 그런 의미로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페이도는 신약성경에서 52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 동사의 의미 범위는 관련되어 있는 행동의 시작과 끝과 기간에 대해 이 동사의 시제를 살펴보면 확인될 수 있다.||(a) 능동태 페이도.|① 행 18:4에서 페이도는 '확신시키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행 28:23에서도 같은 의미를 지닌다.|② 마 27:20에서 '설득시키다'를 의미한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무리를 [권하여] 바라바를 달라 하게 하고 예수를 멸하자 하게 하였더니".|행 14:19에도 마찬가지다: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초인하여]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성 밖에 끌어 내치니라".|이 두 구절에서 '설득하여 유혹하다'나 '잘못 인도하다'라는 의미와 가깝다.|행 19:26에서도 같은 의미를 나타낸다: "이 바울이 에베소 뿐 아니라 거의 아시아 전부를 통하여 허다한 사람을 [권유하여] 말하되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 하니 이는 그대들도 보고 들은 것이라".|그렇지만 행 26:28에서는 '설득하다'를 의미하는 듯하다: "아그립바가 바울더러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 이 구절은 사본 사이에 일치하지 않으며, 따라서 해석 또한 여러가지이다. 헨첸(E.Haenchen)은 이 구절을 '너는 즉시 그리스도인들의 역할을 맡도록 나에게 설득시키려 할 것이다'로 번역한다(The Acts of the Apostles). 헬라 원문, 앤 올리고 메 페이데시스 크리스티아논 포이에사이를 직역하면 '네가 쉽게(잠간동안에) 나를 그리스도인으로 만들려고(혹은 행하도록) 권하는도다'이다. 여기서 동사 포이에사이는 '어떤 역할을 하다'라는 데 사용되는 전문적인 연극 용어이다. 유대인 왕 아그립바의 이 말이 냉소적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 이 말은 그가 어떻게 회심(conversion)에 가까와지게 되었는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우수한 사본들은 아그립바가 그리스도인이 될 가능성을 직접적으로 말하고 있지 않다. 브루스(F.F.Bruce)는 이 구절을 "요컨대 너는 나를 그리스도인으로 행하도록 권하고자 하도다"(In short, you are trying to persuade me to act the Christion)로 번역한다(The Acts of the Apostles). 아그립바는 자신이 진퇴양난에 처해 있음을 알고 있다. 만일 그가 예언자들을 믿지 않는다(27절)고 말한다면 정평있는 그의 명성이 사라지고 만다. 그러나 그가 만일 바울의 이론에 동의하면 그는 바울에 대하여 공식적으로 동의하는 위치에 그가 책략적으로 말려들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③ 행 12:20에서 아마도 설득으로 '매수하다'를 의미할 것이다: "헤롯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대단히 노여워하나 저희 지방이 왕국에서 나는 양식을 쓰는 고로 일심으로 그에게 나아와 왕의 침소 맡은 신하 블라스도를 [친하여] 화목하기를 청한지라".|마 28:14에서도 같은 의미이다: "만일 이 말이 총독에게 들리면 우리가 [권하여] 너희로 근심되지 않게 하리라 하니". 그러나 여기서는 '설득으로 회유하다'에서 '진정시키다'는 의미까지를 함축한다.|④ 행 13:43에서는 '간청하다'라는 의미를 함축한다: "폐회한 후에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 많이 바울과 바나바를 좇으니 두 사도가 더불어 말하고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 [권하니라]".|⑤ 행 19:8에서는 바울이 회당에서 3개월동안 유대인들에게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를 확신시키려고 시도하면서 논하였는가를 묘사한다: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을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요일 3:19에서는 '확신시키다'는 의미를 가진다: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로다]". 우리의 마음에 스스로 책망할 일이 있든지 없든지 간에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확신을 갖는다는 것이다(요일 3:20-요일 3:21참조).||(b) 수동태 페이도마이.|① 히 13:18에서 '확신하다(되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우리가 모든 일에 선하게 행하려 하므로 우리에게 선한 양심이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눅 20:6; 롬 8:38; 롬 14:14; 롬 15:14; 딤후 1:5; 히 6:9; 행 5:40에서도 같은 의미를 지닌다.|② 행 21:14에서 '설득으로 따르게 되다, 따르다'를 의미한다: "저가 [권함을 받지] 아니하므로 우리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그쳤노라".|행 23:21; 행 27:11에서도 같은 의미를 지닌다.|눅 16:31에서 따르는 것은 거의 복종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가로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③ 히 13:17에서 '복종하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약 3:3; 롬 2:8; 갈 5:7에서도 같은 의미를 지닌다.||(c) 페포이다(완료)는 에피와 함께 어떤 사람이 이미 확신된 후에 '의지하다'(depend on)를 의미한다(눅 18:9; 고후 1:9; 고후 2:3; 살후 3:4). 막 10:24의 후기 추가에서 부자는 그들의 재물을 의지한다고 되어 있다. 바울은 교회의 믿음을 의지하고(고후 2:3; 갈 5:10), 빌레몬의 순종심을 의뢰했다(몬 1:21).|또한 형제들은 바울이 투옥된 것 때문에 오히려 확신을 갖게 되었다(빌 1:14).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의 확신은 믿음의 확신이다. 그것은 주 안에서 되는 것이며(갈 5:10; 빌 2:24),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다(빌 1:6; 히 2:13; 마 27:43). 그렇지만 신약성경에서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라고 말할 때 대부분 신앙의 형태를 띠게 되고, 현재의 처지에서 구원(시편의 입장)보다 종말론적인 구원에 관계된다. 이것은 또한 순종과 연결되며 바울이 종종 '자랑하는 것'이라고 말한 잘못된 믿음을 거부하는 것도 포함한다. 그리스도를 자랑하는 것은 육체를 신뢰하는 것과 반대되는 것이다.|(참조: Walter Bauer; J.H.Thayer; R.Bultmann; O.Becker).
배고프다
peinavw
굶주리다 hunger.||#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a) 동사 페이나오(Homer 이래로)는 '굶주리다'를 의미하며, 전의된 의미로는 '열열히 어떤 것을 열심히 욕구한다'(생의 필요로서)를 의미한다(Xenoph. Sym., 4, 36등). 페이나오(와 딥사오 $1372; 딥소스 $1373; 리논 $3043)의 의미 영역은 단지 욕구에만 한정되어 있지 않고, 지적인 그리고 영적인 생활에까지 확대되었다(Plato와 Xenophon이후). 이 단어들은 사람이 그것 없이는 살 수 없는 것, 예컨대 자유, 명예, 명성, 부, 칭송, 깨달음 따위에 대한 열정적인 갈구를 표현한다. 이러한 욕망은 때로 굶주림과 목마름을 하나로 묶음으로써 더욱 강력하게 표현되기도 한다.|고대 종교에서 신들을 예배하는 중요한 이유는 땅위 풍부한 양식의 공급을 보장받기 위한 것이다. 이스라엘이 정복 후에 풍요의 신 바알을 되풀이하여 채용한 것도 이 때문이다. 고대인들은 흉년과 기근을 신들의 진노의 탓으로 여겼다.||(b) 고대에서 자기가 통치하는 백성들이 굶주리지 않도록 하는 것은 통치자의 책무였다(예: 애굽의 바로). 통치자들은 식량을 공급하여 사람들의 생명을 보존하기 때문에 헬라 세계에서 신과 같은 영예를 누렸다.||(c) 헬라의 철학자들은 대개가 육체의 욕구에 얽매이지 말라고 그들의 추종자들에게 가르쳤다. 그래서 스토아철학자들은 금욕생활을 실천함으로써 인생의 파란많은 우여곡절로부터 자신을 해방하고자 노력하였다. 영지주의자들은 육체(이것은 신으로부터 멀어진 물질계에 속한다)를 부정함으로써 세상과의 감각적 접촉을 끊으려고 하였다. 그들이 이렇게 한 것은 영적 세계에 도달하기 위함이다(참조: L. Goppelt; W. Bauder).||#2. 70인역본 및 유대교의 용법||(a) 페이나오는 70인역본에서 약 47회 나오며, 거의 대부분 히브리어 라에브(굶주리다)의 역어로서 사용되었다(창 41:55; 삼하 17:29; 시 34:10; 잠 19:15; 사 8:21등). 그리고 아예프(피로하다, 기진하다, 지치다, 신 25:18; 사 5:27; 사 28:12), 야에프(피로하다, 기진하다)의 역어로서도 사용되었다(사 40:28, 사 40:29, 사 40:31).||(b) 필로(Philo)의 작품에는 헬라적 요소와 유대적 요소가 혼합되어 있다. 한편으로 그는 영혼을 만족시킨다는 보다 중요한 문제에 주의를 집중시키기 위하여 절제와 신체 단련이 필요하다고 권면한다(Spec. Leg. 2, 201). 다른 한편, 그는 굶주림을 가리켜 "모든 악들 중에서 가장 참을 수 없는 것"이라고 불렀다(Spec. Leg. 2, 201; 참조: TDNT Ⅵ 14).||(c) 랍비 유대교에서, 굶주림과 목마름은 더 이상 하나님의 약속의 영역에 들어오지 않고, 겨우 율법을 보다 잘 지키기 위한 동기로서만 작용한다(예: Pss. Sol. 5:1-12; 10:1-6; 13:7-10). 랍비들은 여전히 곤궁의 때를 벌로서 내려진 불행으로 또는 기껏해야 정결케 하기 위한 불행 정도로만 이해하였는데, 사람들은 선한 일로 이 불행에 대처하고자 하였다(참조: SBⅡ 643이하; Ⅳ 536-558).(참조: W. Bauder; L. Goppelt)||#3. 신약성경의 용법||페이나오는 신약성경에서 23회 나오며, 문자적, 비유적 의미로 사용되었다.||(a) 공관복음.|① 페이나오는 예수님의 육체적 굶주림에 대해 사용되었다. 마 4:2; 눅 4:2에서 페이나오는 40일간 금식하시고 난 후의 예수님의 주림을 묘사한다: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마 4:2).|예수님 자신이 굶주림과 목마름으로 고통을 당하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인성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예수님은 친히 자기의 사역을 인하여 굶주림을 겪으셨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이 광야의 시련을 통하여 가르침받는 신앙을 지지하셨다(신 8:3). 예수님이 굶주렸을 때 마귀의 시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권세를 이용하여 기적을 행하고 그렇게해서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라는 것이었다. 이 때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만 굳게 시험을 견뎌낼 수 있었다. 왜냐하면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기 때문이다(마 4:4; 눅 4:4; 신 8:3).|마 21:18이하, 병행구 막 11:12이하에서 페이나오는 이른 아침에 길 갈 때의 예수님의 굶주림을 표현한다: "이튿날 저희가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에 예수께서 시장하신지라".|예수님은 열매를 맺지 못함으로써 자신의 주림을 채워주지 못하는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셨고 이렇게 함으로써 의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모든 사람에게 어떻게 저주가 내려질 것인지에 관하여 비유적으로 보여주셨다.|② 페이나오는 사명 감당을 위해 예수님을 따른 제자들의 굶주림에 대해 사용되었다. 마 12:1이하(병행구, 막 2:23이하; 눅 6:1이하)에서 페이나오는 예수님께서 그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굶주려 이삭을 잘라먹은 행위를 두둔한 말씀에 나온다.|③ 페이나오는 장래의 새로운 질서에서 가난한 자, 곧 굶주린 자의 전도와 관련하여 나타난다. 눅 1:53(시 107:9)에서 페이나오는 오시는 메시야를 통하여 역사의 진노와 인간 생활에 이루어질 강력한 전도를 노래한 대목에 나타난다: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를 공수로 보내셨도다".|눅 6:21에서도 동일한 약속을 하고 있다: "이제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이제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신자는, 마치 자기를 도와주시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기라도 한 것처럼, 굶주림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현재의 사물의 질서는 타락한 세상의 질서이다. 장래의 새로운 질서 속에서는 하나님께서 곤궁한 자의 편에 서서 행동하실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오실 날을 내다보면서, 그들을 가리켜 이미 복 받은 사람들이라고 부르신다. 그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구원 때의 선물을 주실 것이다. 현재의 세상으로부터는 아무 것도 기대할 것이 없고, 따라서 모든 소망을 하나님께만 두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더 이상의 굶주림이 없게될 것이다(눅 6:21). 하지만, 지금의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사는 사람에게는 어떤 약속도 없다. 오히려, 그들은 슬퍼하고 울게 될 것이라고 위협을 받고 있다(눅 6:25). 이와 같이 누가복음에 나오는 축복 및 저주 선언(눅 6:21, 눅 6:25)은 가난한 자가 지금 겪고 있는 굶주림과 수탈을, 지금 잘 먹고 부유하게 사는 사람들이 겪게 될 장래의 굶주림과 대비시키고 있는데, 가난한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도우심과 장래의 구원에 관한 약속이 주어지고, 지금 부유한 자들에게는 약속이 없는 저주가 선언되고 있다.|눅 1:51-눅 1:53에서 신섭리의 중요한 특징은 인간들 중에 일어나는 운명의 변동이다. 하나님의 섭리적 심판권에 있는 자들은 교만한 자, 세력있는 자, 부자들이다. 하나님의 자비의 은총권에 있는 자들은 비천한 자, 주린 자들이다. 자신을 높이고 하나님을 생각지 않은 교만한 자는 하나님의 강한 팔로 깨뜨림을 당할 것이며, 가난한 자와 낮은 자를 학대하는 권세있는 자들은 진실로 미천한 자들이 높은 것들에 오르는 동안 권세와 높은 지위를 박탈당하며, 주리는 자, 곧 자신의 필요를 깨닫고 영적 양식을 갈망하는 자들은 축복을 받을 것이나 스스로 만족히 여기며 교만하는 부자들은 마음의 공상에서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다. 하나님은 창조물에게 부여할 수 있는 가장 큰 특권을 호사로 딩구는 자에게 주지 않을 것이다.|이 새로운 질서는 그리스도를 통한 믿음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④ 마 5:16에 나오는 페이나오를 "의에 주리고 목마름"으로 해석한다.|유대교의 율법주의의 독선(self-righteousness)과는 대조적으로, "의에 주림"은 하나님에 대한 절실한 요구와 그에 따른 갈망을 의미한다. 마태복음에 의하면, 주린 사람은 곧 하나님의 나라를 믿고 기대하고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사람이다(마 6:33). 그들에게 약속된 주림의 충족은 예수님의 오심과 더불어 시작되었고 게다가 다른 모든 것이 그들의 소유가 될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⑤ 마 25:35, 마 25:37; 마 25:42에 의하면 굶주림(페이나오)은 사랑을 실천할 좋은 기회이다. 타인의 굶주림과 목마름을 충족시켜 주는 일은 자비로운 행위들 중의 하나로 평가되는데, 이 자비 행위는 세상 심판 때에 판단 기준으로 설정될 것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리고 목마른 사람으로 자신을 숨기고, 즉 "곤궁의 옷으로 가장하고", 우리에게 나타난다는 사실도 명심해야 한다(마 25:37, 마 25:42).||(b) ① 롬 12:20에서 이 자비의 행위는 심지어 자기의 원수에게도 베풀어야 한다고 명한다: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그러나 고전 11:21, 고전 11:34에서 페이나오는 열광주의자들이 무시한 빈궁한 자에 대해 사용되었다. 고린도 교회에서 성도들이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모였을 때, 열광주의자들은 몰인정하게도 그들 가운데 있는 주린 사람들에게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② 빌 4:12에서 페이나오는 바울이 자족하는 비결을 말하는 대목에 나온다: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굶주림은 반드시 하나님의 미움을 받는 자의 징표는 아니다. 그것이 고통을 주기는 하겠지만,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지는 못한다(롬 8:35).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그것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금욕주의나 높은 지식에 의거하여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렇게 한 것이다.||(c) 요한의 기록에서 굶주림은 이중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요 6:35에서 페이나오는 결코 주리지 않은 삶에 대해 사용되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뜻이요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예수께서는 주림이 충족되는 것은 오직 자기 자신, 곧 생명을 주시는 자와의 접합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주림과 목마름의 충족에 관한 이 모든 말씀에서 약속된 것은 하나님의 새로운 세계에서만 완전히 주어질 것이다.|계 7:16에 의하면, 그 때에는 지상에서의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모든 요구들이 끝나버릴 것이다: "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지니".(참조: 계 21:6; 계 22:17=사 49:10; 사 55:1; 눅 1:53; 눅 6:21 병행구 마 5:6).|(참조: L. Goppelt; W. Baud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