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해설 267 페이지 > 기독정보닷컴

시험
pei'ra
시도, 시험, 시련.||#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페이라(Pind. 이래)는 기본어이며,||(a) 능동적 의미로 '시도, 시험, 시련, 실험, 모험',|(b) 수동적 의미로 '경험, 지식'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페이라는 70인역본에서 6회 나오며, '시험'이란 의미로 사용되었다(신 28:56; 신 33:8).||#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페이라는 신약성경에서 히브리서에만 2회 나온다.||(a) 히 11:29, "믿음으로 저희가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넜으나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 그들은 그 바다를 육지처럼 발을 적시지 않고 건널 수 있나 시험을 한 것이다.||(b) 히 11:36, "또 어떤이들은 희롱과 채찍질 뿐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페이라는 어떤 것의 시련(trial)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시련 또는 경험에 의해 무엇을 알게된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시험 당하다
peiravzw
시련하다, 시험하다, 유혹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페이라조(Homer 이래)는 페이라($3984: 시험, 시련, 실험)에서 유래했다.||(a) 이 단어는 '어떤 일이 될 수 있는지 어떤지를 해보다' try, '시도하다, 기도하다' attempt를 의미한다.|(b) 이 단어는 노력이 요구되는 점에서 '노력하다, 분투하다, 떠맡다, 책임지다'를 의미한다.|(c) 이 단어는 '어떤 사람을 시험하다, 유혹하다' tempt, '시험하다, 검사하다' test, '조사, 연구하다' look into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페이라조는 70인역본에서 약60회 나오며, 히브리어 나사(5254: 시험하다, 시도하다, 꾀하다)의 역어로 사용되었다.||(a) 페이라조는 70인역본에서 '어떤 것(일)을 하려고 노력하다'(신4:34; 28:56; 삿6:39; 삼상 17:39; '~을 시험(검사)하다, 어떤 것(일)을 해보다'(전2:1; 7:23; 단1:12), 증명하기 위해 시험하다(왕상 10:1; 대하9:1; 지혜서2:17)라는 의미를 나타낸다.||(b) 구약성경, 특히 신명기와 신명기의 사상을 반영하는 기록들에서 '유혹한다'거나 '시험한다'라는 사상은 종교적인 개념이 되었다. 불신앙, 오만, 불순종, 백성들 사이에서의 불평은 여호와에 대한 하나의 도전으로 여호와를 시험하는 것이다. 반대로, 여호와가 자기 백성들을 시험하시기도 한다. 게르하르트손은 구약성경에서 여호와께서 그의 언약의 아들을 시험하는 것에 관하여 언급할 경우, 그의 아들이 언약에 대하여 진실한가를 알아보기 위해 하나님께서 시험하시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 전형적인 예로는 아브라함에 대한 시험이며, 이 시험은 언약의 약속의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명령한 것이다(창22장). 출16:4에서는 여호와가 백성들을 위하여 하늘에서 비오듯이 떡을 내려보내기로 결정했는데 백성들은 매일 매일 필요한 양만큼만 거두어야 하며 그 이유는 "그들이 나의 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해 보기 위함이었다"(출20:20)라고 한다.|게르하르트손(Gerhardsson)은 하나님은 그가 택한 사람이 진실한가 아니한가를 '알기 위하여 시험하신다'라는 것을 이러한 시험과 관련하여 인정했다(신8:2). 예를 들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라고 말한다. 신13:1-5에서는 거짓 선지자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미혹하기 위하여 이적을 행할 가능성을 인정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이적이 실제로 일어났는가를 의문시함으로써가 아니라, 이스라엘이 받은 계명들에 거짓 선지자들의 가르침이 부합하느냐에 의해 그들은 시험해야 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으로 여호와는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 여부를 알려하사 너희를 시험'하신다(신13:3). 사사기에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이 그 열조의 지킨 것 같이 나 여호와의 도를 지켜 행하나 아니하나" 그들을 시험하신다는 내용이 나온다(삿2:22; 삿3:1; 삿3:4이하). 대하 32:31에는 여호와께서 "그 심중에 있는 것을 다 알고자 하사" 하나님의 언약의 아들인 왕 히스기야를 시험하셨다는 내용이 나온다.|다른 한편 하나님의 언약의 자손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시험했다.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행동 방식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일이 일어났으며, 시78:40 이하에 그런 일이 묘사되어 있다: "저희가 광야에서 그를 반항하며 사막에서 그를 슬프시게 함이 몇번인고 저희가 돌이켜 하나님을 재삼 시험하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격동하였도다"(민14:22; 시106:14; 사7:12)에도 이런 의미로 나타난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페이라조는 신약성경에서 38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어간 페이라(%685)의 기본 의미는 영어의 test(시험하다)와try(시험해보다)에 상당한다. 즉 어떤 종류의 시험을 가하는 것을 나타낸다. 이 시험은 정신적 부담이나 걱정, 위험, 불확실성, 불신에 수반되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긍정적으로 시험은 자질을 입증하는 하나의 테스트이고, 부정적으로는 실패로 유인하는 걸림돌이다. 신약성경에서는 사람이 유일한 대상이므로, 믿음, 신실, 그리고 순종이 일반적으로 똑같이 한 역할을 한다.|페이라조의 의미의 범위는 보다 광범위하다.|① 진지한 의도로 시험하다,|② 다소 심각한 의도 없이 비판적으로 시험해 보다,|③ 위협하다, 부담시키다, 부추기다,|④ 잘못 이끌다, 유혹하다,|⑤ 도전하다, 의심하다, 불신하다,|⑥ ~을 정하다, 계획하다.|물론 그 어감들을 중복된다.|페이라스모스는 세속 헬라어에서는 드물며, 의미에 있어서 다양성은 별로 나타나지 않는다. 이 단어는 대개 인간이나 다른 힘들(고난, 핍박, 유혹)에 의한 위협이나 부담을 가리키며, 따라서 분명히 인간 경험과 관련되어 있다(히3:8에서만 아마도 하나님과 관련되어 있다). 페이라스모스(4회는 복수형)는 객관적으로 볼 때 사람을 옳은 길에서 떠나도록 위협하는 어떤 위험이다. 주관적으로 이 위협은 한편으로는 염려로 인해 하나님의 도우심을 필요로 하여 보호의 간구를 하게 하는 계기가 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을 입증하는 기회로서 하나의 자극이 된다.||(b) ① 마가복음과 마태복음에서 세 가지 영역의 용법이 발견된다.|·예수님의 시험,|·예수님의 적대자들에 의한 질문(요8:6에서도),|· 제자들의 기도에서 탄원이다. 한가지 독특한 표현은 그 밖의 다른 곳에서는 살전3:5에서만 발견되는 마4:3의 호 페이라존("시험하는 자")이다.|② 누가의 용법들은 보다 독자적이다. 눅4:13과 눅22:28에서는 예수님의 '시험'을 가리키고 눅8:13과 행20:19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이 받는 시험을 강조한다.|대조적으로 페이라조는 예수님에게 한 질문에서는 두 번 밖에 사용되지 않았는데, 한번(눅10:25)의 경우에는 모독의 개념이 강조되어 있는 것 같다. 행5:9과 행15:10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페이라조는 단순히 '준비하다, 원하다'를 의미하기도 한다(행9:26; 행16:7; 행24:6).|③ 요6:6에서는 현학적인 의미에서 '시험하다'이다: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고 빌립을 시험코자 하심이라".|④ 바울의 용법에서는 대개 %685에 부정적인 의미가 결부되어 있다. 즉 죄, 범법, 적대, 반대(고전7:5; 고전 10:6이하; 갈6:1; 살전3:5; 딤전6:9), 짐을 지움(고전 10:13), 걸림이 되는 것(갈4:14) 등이다. 고후 13:5에서만 다소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된다("자신을 시험하고").|⑤ 히브리서에서는 이스라엘의 반역(히3:8이하)을 언급하고 고난 당할 때 순종하는 시험을 강조한다(히2:18; 히4:15; 히11:17).|⑥ 약1:12; 벧전1:6; 벧전4:12도 이러한 맥락에 적합한 구절이다. 즉, 시험은 무거운 짐이다. 이와 대조되는 것으로 약1:13 이하는 '죄로 잘못 인도하는 것'을 나타낸다: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⑦ 벧후2:9; 계2:10; 계3:10에서도 고난에 의해 믿음 앞에 놓인 시험을 언급하고 있다.|⑧ 계2:2에서는 비판적인 조사를 의미한다: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c)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은 광야에서 이스라엘의 반역으로 특징지워진다(고전 10:9; 히3:8이하; 또 마4:7병행구). 사람은 '도전적인 탐욕스런 소원으로 하나님의 선하심과 완전하신 능력을 의심함으로써' 하나님을 노엽게 한다(H. -J. Kraus, Pss Ⅱ[영역본 1989] 78:18).|행5:9과 행15:10은 성령 혹은 하나님을 향한 그러한 도발을 언급한다: 인간은 기만이나 오해로 하나님의 자비로우신 참으심을 곡해한다.||(d) ① 히2:18과 히4:15이 공관복음 자료와 부합하는지는 불확실하다. 여기서 예수님의 시험은 모든 인간 존재에 영향을 미치는 재해, 특히 고난과 동일한 맥락에서 나타난다(참조: 히5:7; 히11:1이하). 페이라스모스는 불순종과 체념으로 잘못 인도된 자의 위협이다. 이와 같은 고난 당하신 분으로서 예수님은 마땅히 도움을 제공할 수 있으시다. 죄없으신 분으로 예수님은 페이라스모스가 "반드시 죄로 이끄는 것은 아님"을 보여주신다(H. Zimmermann, Das Bekenntnis der Hoffnung[1977] 173).|② 지상의 대적자들에 의한 시험은 원래의 독립적인 전승의 구성 요소가 되었다(막8:11 병행구; 막10:2병행구; 막12:15 병행구; 마22:35 병행구; 요8:6). 그것들은 비판적인 도발과 음모와 속임수를 포함하고 있다.|③ 막1:12 이하와 마4:1-11 병행구에 대한 전승 비평과 문학 비평은 이제 더 이상 명료하게 해결될 수는 없다(참조: 요6:15 이하; 떡의 기적). 공통되는 출발점은 육첵적 욕구(필요)라는 상황(광야)이고 그 다음으로 두 가지 다른 노선(즉 형태-구약성경과의 관계와 해석)을 따라 발전되어 왔다.|광야의 시험이 세례(침례)와 결합된 것은 반드시 매우 초기부터 그러했던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어떠한 역사적인 핵심에 관한 문제로부터라도 완전히 떠나서 일차적으로 두가지 형태에서 그리스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때 그 해석을 결정짓는 것은 전승-역사적 관심의 변화이다. 모든 전승들은 에수님께서 시험받았다는 것-물론 대부분은 처음부터 일반적인 의미에서(마태와 누가는 각기 한번 이상)이긴 하지만-에 주목한다(마4:7병행구에 따르면 하나님에 대한 시험도 포함되어 있다).|④ 막1:12 이하는 보다 더 긴 기사의 핵심(요약)이 아니다. 막1:13의 '페이라조메노스...'는 마가가 부가시킨 것이 아니며, 시험 기사라는 전제 하에서만이 온전히 설명될 수 있다(Mahnke). 배경에 놓인 역사적 요소는(Leder에도 불구하고) 낙원 및 아담을 둘러싸고 있는 상황을 지적해 준다(엘리야 전승을 가리키지 않음; Mahnke, Jeremias, Pesch, Gnilka에서 자세히 설명함). 시험은 예수님을 종말론적 임무에 적합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예수님 편에서의 불순종과 불충성의 행동을 끌어내고자 하는 것이었다. 예수님은 시험을 물리치심으로써 이기심으로 낙원을 되찾으신다.|막1:12 이하는 그 결말을 나중에 첨가시킨 불완전한 조각이 아니다. 사탄과의 승리의 투쟁이라는 주제는 확실히 마가에게 긴요한 것이 된다.|⑤ 마4:1-11과 눅4:1-13에서 병행되는 기사에서 세가지 시험 장면은 아마도 예수님의 선지자, 제사장, 왕으로서의 삼중적 역할을 암시할 것이다. 형태와 내용에서 원래부터 기독론적 교훈을 주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여러 차원의 전승들에서 그 단편 역시 특별히 젤로티즘(정치적 메시야)과 데이오스 아네르 기독론(기적에 대한 마술적 해석)에 맞서서 한계를 정하는데 타당성을 획득했다. 예수님의 유일성에도 불구하고 시험을 이겨내신 예수님 자신의 행동은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모범이 된다(참조: 세례[침례]와의 연관 및 이스라엘 예표론, 고전 10장).|⑥ 마태는 "우리에게 예수님에 관하여 말하고, 누가는 마귀에 관하여 말한다"(Dupont 61). 마태에게 예수님은 "모든 의를 성취하시는"(마3:15) 분이며, 하나님께 복종하시는 분이고, 스스로를 도울 기회를 붙잡지 않으시는 분이다(마27:40). 그리고 동시에 스스로를 성경의 바른 해석자로 정당화하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순종에 보답하신다(마4:11). 누가는 모든 것을 예루살렘을 향하여 배열한다. 눅4:13은 부차적으로 수난을 강조한다. 예수님은 마귀의 권세 있는 지위에 저항하시며(눅4:6; 참조: 눅4:14), 결과는 "최초의 전초전"이다(Dupont 67). 예수님은 그의 대적이 도전하였을 때 물리치시는 성령으로 충만하신 분으로서 선교의 전형이 되신다(Baumbach). 눅4:13은 아마도 수난의 때까지 지속되는 "사탄이 떠난 기간"을 가리키지는 않는 것 같다. 왜냐하면 눅22:28은 앞으로의 일을 말하는 것이라기보다 회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수난은 하나님이 정하신 때요, 그때 사탄이 다시 예수님을 맹렬하게 공격할 것이다.||(e) ① "만약 당신이 주님을 섬기고자 한다면 에이스 페이라스몬(시험 또는 시련)에 너의 영혼을 준비하라"(집회서2:1). 이와 동일한 맥락의 권고가 신약성경에서도 나타난다. 그리스도인은 시험에 스스로를 준비해야 한다(짐으로서의 특히 고난으로서의 페이라스모스에: 벧전1:6; 벧전4:12; 약1:2; 약1:12; 히2:18; 히4:15; 히11:17; 보다 흔한 용어는 재난, 핍박 따위이다). 비록 시험은 즐거운 경험은 아니지만, 그것을 하나님의 가르치심의 수단으로 보고 긍정적인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참조: "고난 가운데서 기뻐함"이라는 주제(Nauck; 참조: N. Brox, 1Pet[EKKNT] 64n. 213), (세례와 관련된) 초신자에 대한 가르침과 인내하라는 말씀들(마10:22등).|② 또한 시험의 파괴적인 성격이 강조된다; 마귀는 자주 시험의 배후에 있는 존재로 지목되기도 한다(마6:13; 눅8:13; 고전7:5; 살전3:5). 이러한 이유로 페이라스모스로부터 혹은 페이라스모스에서 구원 받는다는 약속이 주어진다(고전 10:13; 벧후2:9; 계2:10; 계43:10).|③ 마6:13a병행구와 막14:38 병행구에 대한 해석은 난해하다. 주기도문에서 간구는 종말론적으로(큰 환난으로부터가 아니라 큰 환난 가운데서의 보호; 예: J. Jeremias, Abba[1966] 169 이하), 그리고 지혜의 관점에서(하나님은 우리에게 시험을 주시지 않으신다; E. Schweizer, Matt[Eng. tr., 1975] 156) 해석된다.|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에서는 예수님께서 종말론적 사탄의 시험을 만난 것인지 아니면 한 시험을 겪은 것이지(지혜의 의미에서: 예: Gnilke, op. cit. Ⅱ, 262) 의문이 제기된다. 문맥이 시사하는 바는 종말론적 투쟁의 상황이다(Kuhn, "페이라스모스"); 우리는 압제와 배신을 당할 때 견디어야만 한다. 마가와 마태에 의하면 페이라스모스는 육신의 약함으로 시작된다. 히나($2443)절은 께어서 기도하는 것의 목적을 나타낸다.|눅 22:40; 눅 22:46에서는 그렇지 않다(여기서는 기도의 내용이다; Kuhn "Jesus" 285).|④ 시험의 근원은 또한 사람 자신 안에, 특히 사람의 에피뒤미아에 자리해 있다(약 1:14; 유사하게 고전 10:6 이하; 딤전 6:9; 참조: 막 14:38). 이러한 견해는 분명히 "악한 충동"이라는 유대교 교리와 관련이 있으며 부수적으로 헬라적 요소도 포함되어 있다.|⑤ 이와 같은 시험의 다양한 양상들은 일단의 문젯거리로 함께 인식되었으며, 특히 신정설(악의 존재를 신의 섭리라고 하는 주장)이 그러하다. 페이라스모스를 하나의 부담이나 사탄의 가해라고 강력히 이해하면 할수록 지혜의 의미에서나 하나님의 역할에서 시험을 설명하는 일은 점점 더 문젯거리가 된다. 이것은 야고보서 1장에서 가장 분명하다. 페이라스모스에서 기뻐하라는 전통적 주제(약 1:2; 약 1:12)는 하나님의 면책(하나님은 아무도 시험하지 않으신다, 약 1:13)과 개개인 자신의 책임(약 1:14)과 충돌한다. 이와 동일한 요소들이 고전 10장에도 나타난다: 바울은 악한 인간의 성향을 고발하면서 이러한 성향들이 자신들을 하나님을 시험하도록 유도한다고 말한다(고전 10:9; 참조: 히 3:8 이하). 그러나 고전 10:13에 따르면 페이라스모스는 외부로부터 우리에게 오는 것이며, 따라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능력의 한계를 넘어서서 시험을 당하지 않도록 지켜주신다. 여기서 시험의 성격이 보다 잘 드러난다.|(참조: W. Popkes; W. Schmeider; C. Brown)
시험 하는 것
prirasmov"
시험, 시련, 유혹.||#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페이라스모스(Cyranides)는 페이라조($3985: 시도하다, 시험하다, 유혹하다)에서 유래했으며,||(a) '시도' attempt, '시험' test, '시련' trial, '실험' experiment, 의학적인 '검사'나 '시험',|(b) '유혹' temptation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페이라스모스는 70인역본에서 약 20회 나오며, 히브리어 맛사(4531: 시험, 시련, 고난)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시험'과 '시험의 장소'를 나타내며(출 17:7; 신 4:34; 신 6:16; 신 7:19; 신 9:22; 신 29:2; 시 95:8), 또한 이느안(엄무, 직업, 임무)의 역어로도 사용되었다(전 3:10; 전 4:8; 전 5:2; 전 5:13; 전 8:16).||#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페이라스모스는 신약성경에서 21회 나온다.|--> 페이라조($3985: 시험하다)를 보라.
페이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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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하다, 시험하다, 유혹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페이라오(Homer 이래)는 페이라($3984: 시험, 시련, 실험)에서 유래했다.||(a) 이 단어는 능동태로는,|① '해보다' try, '시도하다, 기도하다' attemt,|② '시험하다, 유혹하다' tempt,|③ '노력하다, 분투하다',||(b) 중간태나 수동태로 '누구를 시험하다, 무엇을 시험하다, 경험으로 알다'를 의미한다.||(c) 이 단어는 아주 드물게 종교적으로 사용될 때 신탁의 진위를 시험함으로써 신(god)을 '시험해 본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페이라오는 동의어 페이라조($3985)의 70인역본의 용법에서 함께 다루었으며, 페이라조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페이라오는 신약성경에서 행 9:26; 행 26:21에 나오며, '시도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페이스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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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 권면 persuasion.||#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페이스모네는 페이도($3982)에서 유래했으며, '설득, 설득함, 권면'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페이스모네는 신약성경에서 갈 5:8에 한번 나온다: "그 [권면]이 너희를 부르신 이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여기서 페이스모네는 위욕적인 '권면'를 의미한다. 이것은 갈 5:7에 나오는 순종을 방해하는 것이다. 하나님에게서 난 것이 아니었던 이 권면의 결과는 갈라디아인들이 더 이상 진리로 권면을 받지 않으려는 것이 되었다.|(참조: J.H.Thayer; O.Becker).
펠라고스
pevlago"
깊음, 바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펠라고스(Homer 이래)는 기본어이며 '깊음, 심해, 바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펠라고스는 신약성경에서 2회 나온다.||(a) 행 27:5에서 길리기아와 밤빌리아 '바다'를 나타낸다: "길리기아와 밤빌리아 바다를 건너 루기아의 무라성에 이르러".||(b) 마 18:6에서 바다의 '깊은 곳'을 의미한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목 베임을 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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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끼로 자르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펠레키조(Polyb., Plut.)는 펠레퀴스(%887: 도끼, 양날 달린 도끼)에서 유래했으며, '도끼로 자르다', '참수하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펠레키조는 신약성경에서 계 20:4에 한번 나온다: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노릇 하니". 페레키조는 '도끼로 치거나 베다'를 의미한다. 로마의 최고 권력 기관이 내린 선고에 따라 집행하는 고대 로마의 처형법이다. 스웨트는 '선견자는 여전히 그 심중에 그의 시대에 네로와 도미시안에 희생된 순교자들을 간직하고 있다'고 말한다(Ralph Earle).|(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다섯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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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fifth.||#1. 고전 헬라어 및 70인역본의 용법.||서수 펨프토스(Homer 이래)는 펜테($4002: 다섯)에서 유래했으며, '다섯째(의)'를 의미한다. 70인역본에서 이 단어는 63회 나타난다.||#2. 신약성경의 용법.||서수 펨프토스는 신약성경에서 요한계시록에만 4회 나온다.||(a) 계 6:9,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어".||(b) 계 9:1, "다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내가 보니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별 하나가 있는데 저가 무저갱의 열쇠를 받았더라".||(c) 계 16:10, "또 다섯째가 그 대접을 짐승의 보좌에 쏟으니 그 나라가 곧 어두워지며 사람들이 아파서 자기 혀를 깨물고".||(d) 계 21:20, "다섯째는 홍마노요 여섯째는 홍보석이요 일곱째는 황옥이요 여덟째는 녹옥이요 아홉째는 담황옥이요 열째는 비취옥이요 열 한째는 청옥이요 열 둘째는 자정이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가게하다
pevmpw
보내다 send.||#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펨포(Homer 이래)는 기본어이며, '보내다' send를 의미하며, '보낸다'는 단순한 사실을 강조한다.|고전 헬라어 문헌에는 어떤 사람을 스파이로 '보내다' 어떤 사람을 대표로 '보내다', 어떤 사람에게 메시지를 '보내다', 어떤 사람 '~에게, ~안으로 보내다'라는 언급들이 있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펨포는 70인역본에서 약 26회 나오며, 히브리어 샬라흐(7922: 보내다, 창 27:42; 삼상 20:20; 느 2:5), 카타브(3789: 기록하다, 조서를 내리다)의 역어로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펨포는 신약성경에서 79회 나오며, 요한복음 32회, 누가의 기록 21회로 가장 많이 사용되었다.||(a) 펨포는 인간의 의사 전달에 대해 사용되었다.|① (대개)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사람을 보냄: 마태는 언제나 정형 동사와 함께 분사 펨파스를 사용한다(마 2:8; 마 11:2; 마 14:20; 마 22:7).|그러나 우리는 공관복음의 병행구에서 편집된 문구를 발견하거나(눅 7:19) 아포스텔로의 동의적 용법을 만난다(막 6:27).|법적 소송 절차에 따른 이송(행 23:20; 행 25:25; 행 25:27: 가이사랴에서 총독 앞에서의 바울의 재판)이나 고넬료가 세례(침례) 받기 전에 가이사랴에 천사가 나타나 그에게 욥바로 사람들을 보내라고 한 명령(행 10:5; 행 10:32; 행 10:33)은 모두 다 보냄에 있어서 특별한 임무를 포함한다.|바울에게 있어서 동역자들을 보냄은 교회 안에서 권위를 가지고 특정한 역할을 수행하라고 위임하는 것이다. 따라서 디모데는 데살로니가인들을 믿음의 삶 안에 강건하게 해야 하며(살전 3:2; 살전 3:5), 고린도 교인들에게 바울의 가르침을 생각나게 해야 하고(고전 4:17), 바울에게 빌립보 교회의 사정을 알려야 한다(빌 2:19; 빌 2:23; 에바브로디도에 관해 참조: 빌 2:25; 빌 2:28).|보냄 받은 자들의 일차적인 임무(예: 두기고, 골 4:8; 엡 6:22; 딛 3:12)는 연보를 잘 간수하고(고전 16:3; 고후 9:3), 소식을 전하고 얻는 것이다.||"택하다"(에클레고마이)와 "보내다"(펨포)의 병행은 사도 회의에서 "형제들 중에 인도자"의 책임을 강조한다(행 15:22; 행 15:25). 특별히 누가는 권위를 지닌 자의 명령까지 소급하여 언급한다(눅 7:6; 눅 7:10에서 백부장; 눅 15:15에서 한 백성; 눅 16:24; 눅 16:27에서 아브라함; 눅 20:11; 눅 20:12; 눅 20:13에서 포도원 주인).||② 귀중한 물건을 보냄: "부조"(빌 4:16; 행 11:29)는 교회를 서로 연결시켜준다(참조: 계 11:10). 그리고 "책"(계 1:11)에 쓰여진 하나님의 말씀은 교회들을 격려한다.|그 밖에 귀신을 축출(막 5:15)과 하나님의 사자를 보냄(계 22:16; 눅 4:26)은 "능력을 부여받은"위임의 이미지를 지니는데, 이것은 지상에서 권세를 가진 자(벧전 2:14)나 하나님에게서 오는 "능력들"(살후 2:11)과 유사하다.||(b) 롬 8:3은 선재라는 선행 조건 아래(참조: 갈 4:4-6; 빌 2:6-11) 죽음의 희생을 예기하고서(롬 8:32) 피조된 인간 존재 및 필멸의 세상으로 하나님의 아들을 보냄을 구원론적으로 이해한다. 그리스도의 지배권 아래 서는 것은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해방됨을 의미한다.||(c) 요한은 아들이 아버지에 의해 역사상 실재적으로 보냄 받았음을 보여주는데, 이는 호 펨파스 메라고하신 예수님 자신의 말씀에서 표현된다(요 4:34; 요 5:24; 요 5:30; 요 5:37; 요 6:38; 요 6:39; 요 6:44; 요 7:16; 요 7:28; 요 7:33; 요 8:16; 요 8:18; 요 8:26; 요 8:29; 요 9:4; 요 12:44; 요 12:45; 요 12:49; 요 13:20; 요 14:24; 요 15:21; 요 16:5). 이 22개의 용례는, "그를 보내신"(요 5:23; 요 7:18) 아버지 혹은 하나님을 가리키는 3인칭으로 된 진술들과 함께 성부-성자 관계라는 기독론적 하나님 사상을 계시한다.|이 보냄은 성부께로부터 비롯하며, 이것이 아들의 사역에서 그대로 나타난다. 이 예수님의 계속적 보냄은 믿는 제자들을 포함한다(참조: 요 13:20의 예수님의 말씀). 사자는 그를 보낸 자와 동일한 권위를 가진다는 유대의 법적 원리가 적용된다.|아포스텔로($649: 보내다)와 동일한 사상을 표현하는 구절들(요 4:38; 요 17:18)과 나란히 놓인, 예수님의 말씀인 요 20:21은 기본적인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제자들의 공동체에게 하나님의 구속 활동의 권세를 전달하신다. 따라서 다음에 성부께서(요 14:26; 갈 4:6) 혹은 아들 자신이(요 15:26; 요 16:7) 보혜사를 보내시는 것이다|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은 교회의 삶 가운데 임재하는 그리스도에 대해 증거하는 성령으로만이 충분히 효력을 발하는 것이다.|(참조: D. Muller; H. Ritt).
가난한
pevnh"
가난한 poor.||#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페네스(Xen. 이래)는 페노마이(생계를 위해 일하다)에서 유래했으며, '가난한 사람'을 의미한다. 이 단어가 자신의 재산으로 살 수가 없어, 손수 일하여 벌어 먹고 살아야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데 사용되었다. 따라서 페네스는 거지가 될 만큼 가난하여 도움을 필요로 할 정도로 가난한 사람을 가리키는 프토코스($4434) 와는 다르다. 이는 단지 상대적으로 가난한 자를 듯한다. 페네스의 반대적인 의미의 단어는 플루시오스(부유한)이다. 이 단어는, 솔론의 법령(Solon's Iegislation) 이후에는, 아테네 민주주의의 주요 지지자들이었던 수공업자들과 소농민들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오랫 동안 사람들은 많은 재산을 소유하여 안정된 생활을 누리는 것이 선한 삶을 살았다는 가장 훌륭한 보증이라고 생각했다. 그에 반해 페니아, 즉 가난은 도덕적인 죄를 저지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이와 같은 견해는 플라톤 시대까지 나타나는 사상이다(Laws, Il, 919b). 소크라테스 시대 이후로는 이러한 개념이 부적당한 것으로 인식되었다. 왜냐하면 문화에 대한 의지를 창조하는 것이 사실 페니아라고 할 수 있으며, 그럼으로써 또한 삶에 있어서 진정한 이상인 행복에 이르게 한다는 것이 경험으로 입증되었기 때문이다. 자기 충족(아우다르케이아)이라는 가치관으로 인하여, 가난한 삶은 훌륭하고 자유로운 것이 될 수 있다(Plut). 그런데 어떠한 종교적인 가치도 결코 가난하다는 것에서 기인하지는 않았다.||#2. 70인역본의 용법.||페네스는 70인역본에서 약 50회 사용되었으며, `가난한'이란 의미를 지닌다. 일반적으로 페네스는 경제적으로, 법적으로 억압받는 자에 대하여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신약성경은 구약성경의 의미를 따르지만 70인역본와과 같이 여러 가지 단어를 선택하지 않고 주로 프토코스를 선택하여 사용하였다.이는 사회 안에서 있는 인간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특히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인간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하나님에게 가져갈 아무런 것도 가지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 없이 살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페네스는 시112:9("저가 재물을 흩어 빈궁한 자에게 주었으니 그의가 영원히 있고")을 인용한 고후9:9에만 나온다. 그러나 이 구절에서 히브리어 에브욘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들을 언급하고 있다.|(참조: L.Coenen).
시어미
penqerav
장모 mother-in-law||#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펜데라(Demosth. 이래)는 펜데로스($3995: 장인)의 여성형이며, '장모'(아내의 어머니)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펜데라는 70인역본에서 13회 나오며, 히브리어 하모트(2545: 시어머니; 룻 1:14; 미 7:6), 하탄(2859: 사위가 되다, 결혼 동맹을 맺다; 신 27:23)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시모, 장모'를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펜데라는 신약성경에서 6회 나오며, 공관복음에만 사용되었다.||(a) 눅 4:38(병행구, 마 8:14; 막 1:13)에서 '장모'를 나타낸다: "예수께서 일어나 회당에서 나가사 시몬의 집에 들어가시니 시몬의 장모가 중한 열병에 붙들린지라 사람이 저를 위하여 예수께 구하니".||(b) 마 10:35(병행구, 눅 12:53)에서 '시어머니'를 나타낸다: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장인
penqerov"
장인 father-in-law||#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펜데로스(Homer 이래)는 기본어이며, '장인' a father-in-law(아내의 아버지)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펜데로스는 70인역본에서 11회 나오며, 히브리어 함(2524: 시아버지, 장인; 창 38:13; 삼상 4:19; 삼상 4:21)의 역어로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펜데로스는 신약성경에서 요 18:13에 한번 나온다: "먼저 안나스에게로 끌고 가니 안나스는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의 장인이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통한히 여기다
penqevw
슬퍼하다, 애통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펜데오(Homer 이래)는 펜도스($3997)에서 유래했으며, '슬퍼하다, 애도하다, 애통하다'를 의미하며, 흔히 죽은 자를 위해 슬퍼하거나 애통하는 것을 나타낸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펜데오는 70인역본에서 약 60회 나오며, 주로 아발(애통하다)을 번역한다. 이 단어는 대부분의 경우, 이미 닥친 또는 임박한 불행 때문에 우는 행위를 내포하고 있다. 재앙을 만난 또는 맞게 될 지구, 땅, 도시의 일부분에 대하여 상징적으로 사용되었다(참조: 사 3:26; 사 24:4; 사 33:9; 렘 4:28; 렘 23:10; 애 2:8; 호 4:3). 어떤 개인의 죽음을 애도함(왕하 14:2; 대상 7:22), 후회(느 8:9), 사랑하는 사람이 없는 동안 겪은 슬픔에(왕하 13:27; 왕하 19:1)에 대해 사용되었다.|이 밖에도 펜데오는 사 16:8; 사 19:8; 사 24:4, 사 24:7; 사 33:9에서 히브리어 아말(약하다, 약해지다, 기운이 빠지다, 번민하다)을 번역하며, 이것은 이 단어가 때때로 애통의 심리적·신체적 효과를 묘사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창 23:2과 창 50:3에서 펜데오는 히브리어 바카(울다)를 나타내며, 시 78:63[77:63]에서는 할랄(찬양하다)을 번역한다. 렘 23:10에서 펜데오는 누드(두근거리다 또는 떨다, 그러므로 슬픔의 감정을 나타내다), 겔 31:15에서는 카다르(스스로를 어둡게 하다, 즉 애통하다)를 번역한다. 이상에서 볼 때, 펜데오는 후회의 외적 표현을 비롯한 슬픔의 여러가지 의미를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펜데오는 신약성경에서 10회 나오며, 다음과 같은 의미를 나타낸다.||(a) 펜데오는 마 9:15에서 사랑하는 사람이 없는 것을 '슬퍼한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뇨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막 16:10에서 펜데오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애통해 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사용되었다: "마리아가 가서 예수와 함께 하던 사람들의 [슬퍼하며] 울고 있는 중에 이 일을 고하매".|바울은, 어떤 사람들이 그들의 죄를 회개하지 않는 것을 그가 알게 될 때 자기가 겪게 될 근심에 대하여 이 단어를 사용했다(고후 12:21).||(b) 마 5:4에서 펜데오는 영적 가난에 대하여 애통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의 영적 상태와 회개와 관련된 슬픔이다.|눅 6:25에서 펜데오는 지금 웃는 사람들이 나중에는 울게 되리라는 내용 중에서 웃다의 반대어로 나온다.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것은, 지금 죄를 뉘우치지 않음으로 해서 나중에 그 댓가를 받게 될 사람들에 대한 것이다.||(c) 계 18:11; 계 18:15; 계 18:19에서 바벨론에 임한 심판을 보고, 바벨론과 무역하던 사람들이 울고 애통한다. 이들의 반응을 묘사한 곳에는 이들의 부의 원천인 바벨론이 사라져 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로 인하여 느끼는 깊은 상실감이 깃들여져 있다.||⒟ 바울과 야고보가 사용한 펜데오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슬픔 또는 회개라는 관점에서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 고전 5:2에서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자기들 중에 있는 비도덕적인 것들에 대하여 취한 태도를 묘사하는데 펜데오를 사용했다. 그는 현재 그들의 태도를 "교만"하다고 말하면서, 그들이 그러한 상황에 대하여 "통한히 여겨야" 한다고 지적한다.|야고보는 약 4:9(참조: 약 4:8-약 4:10)에서 죄인들이 하나님 앞에 스스로를 낮추는 일환으로서 "[애통하며] 울라"고 권고한다. 이러한 마음 자세를 가질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높여주실 것이다.|(참조: Walter Bauer; J.H.Thayer; T.McComiskey).
애통
pevnqo"
슬픔 sorrow, 애통 mourning.||#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펜도스(Homer 이래)는 '슬픔, 애통' 뿐만 아니라 '고통스러운 사실이나 사건'도 의미한다. 흔히 죽은 자를 위해 슬퍼하거나 애통하는 것을 나타낸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펜도스는 70인역본에서 약 55회 나오며, 주로 '애통'을 뜻하는 에벨, 아벨의 역어로 사용되었다(창 27:41; 창 50:10, 창 50:11; 암 5:16; 암 8:10; 사 60:20 등).||#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펜도스는 신약성경에서 5회 나오며 야고보와 요한계시록에만 사용되었다.||(a) 약 4:9에서 '애통하다'를 의미한다: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이것은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하나님이 하게 하시는 슬픔이요 애통이다.||(b) 계 18:7; 계 18:8에서 펜도스는 '재난과 손실로 인한 슬픔'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가 어떻게 자기를 영화롭게 하였으며 사치하였든지 그만큼 고난과 [애통]으로 갚아 주라 그가 마음에 말하기를 나는 여황으로 앉은 자요 과부가 아니라 결단코 [애통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여기에서 펜도스는 바벨론 이 멸망할 때 거기에 따르는 슬픔과 애통함을 묘사하고 있다.||(c) 이와는 대조적으로 계 21:4에서 펜도스는 일반적인 '슬픔'의 의미로 사용되었는데, 장차 새 예루살렘이 임하면 슬픔이 사라지고 기쁨만을 누리며 살게 될 것이다.|(참조: Walter Bauer; T.McComiskey; R.Bultmann).
페니크로스
penticrov"
매우 가난한, 생활이 딱한.||#1. 고전 문헌 및 70인역본의 용법.||고전 헬라어 문헌에서 페네스의 동의어인 페니크로스는 호머(Homer)가 사람이나 사물에 대하여, `매우 가난한, 생활이 딱한, 가엾는, 초라한'이란 뜻으로 사용했다.|70인역본에서 3회 사용되었다.||#2. 신약성경의 용법.||신약성경에서, 페니크로스는 오직 눅 21:2에서 성전 연보궤에 헌금하는 매우 가난한 과부에 대하여 사용되었다. 병행구절인 막 12:42에서는 프토코스를 사용하였다.|(참조: L.Coen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