엎다
ajnastrevfw
뒤집어 엎다, 되 돌아 오다(가다), 회전시키다(하다), 행동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동사 아나스트레포는 아나($303)와 스트레포($4762:돌리다, 돌아가다)에서 유래하였으며, 호머에서부터 나타난다. 이 동사는,||(a) 타동사적 의미로서 '뒤집어 엎다, 전복시키다, 거꾸로하다'.||(b) 자동사적 의미로서 '돌아오다(가다), 돌다'.||(c) 중간태와 수동태형으로도 역시 '돌다, 돌아가(오)다'의 의미를 가진다. 여기에서,||(d) (한 장소에서) '이리 저리 돌다, 빈둥거리다, 우물쭈물 지내다'라는 의미가 되었다.||(e) 비유적 의미로서 인간의 행동에 대하여 '걷다, 처신하다, 특별한 방식으로 살다' 등을 의미하게 되었다(Aristetus, Eth. Nic. 2,Ip,llO3b, 20; Epictetus, Dissertationes 3,15,5). 이로 인하여 이 단어는 아나스트로페($391)와 같이 윤리적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이러한 윤리적 의미가 고대 세계에서 전체적으로 두루 발견된다.||#2. 70인역본의 용법||아나스트레포는 구약 70인역본에서 히브리어 슈브(돌다, 돌아가 [오]다)의 역어로서 87회, 그것도 문자적 의미로만 사용되고, 히브리어 할락(걷다, 행하다)의 역어로서 8회 사용되었는데, 왕상 6:12; 잠 8:20; 잠 20:7에서만이 '걷다, 행하다' (하나님의 계명 안에서, 의 안에서, 기타 등 등)라는 비유적 의미가 적용되었다. 겔 22:30의 '바르게 행함'( 아나스트레포메논 오르도스) 이라는 구절은 히브리어 본문에 대한 자유 의역으로서 해당하는 히브리어 동사가 없다.|후기 유대 문헌에서와 사해 두루마리에서 히브리어 할락이 헬라어 아나스트레포에 해당하는 말로 곳곳에 자주 사용되었으며, 긍정적인 의미와 부정적인 의미라는 양쪽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종종 '하나님의 길을 걷는다' 든가, 또는 '죄의 길을 걷는다'고 할 때, '길 way'의 비유적 용법과 관련하여 나타나기도 한다(참조: 1QS).||#3. 신약성경의 용법||신약성경에서는 동사 아나스트레포가 9회, 명사 아나스트로페가 13회 나타난다. 명사형과 동사형 둘 다 복음서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으며, 바울 서신에는 매우 드물게 나타나고 바울 서신 이후의 것들에서 더 자주 사용되었다. 히브리서와 베드로후서에서 주로 발견된다.||(a) 동사 아나스트레포는 행 5:22에서 '돌아오다'는 문자적 의미로 사용되었다: "관속들이 가서 옥에서 사도들을 보지 못하고 [돌아와] 말하되".|암 9:11에서 인용한 행 l5:16에서도 동일한 문자적 의미로 사용되었다: 하나님은 후에 자기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그외에는 비유적 의미들뿐이다.|그리고 히 10:33(여기의 동사형은 일반적으로 '살다, 발생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됨)을 제외하고는, 시종 생활 방식을 뜻하는 말로서만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명백히 비유의 영역에 속한다. 아래서는 동사 아나스트레포와 명사 아나스트로페를 함께 해석한다.||(b) ①동사 아나스트레포와 명사 아나스트로페는 그 자체 중성 용어들로서, 한정사에 의해서만 긍정적 또는 부정적 가치 평가를 얻기 때문에, 비기독교인의 생활 방식 또는 기독교인이 되기 이전의 생활 방식을 가리키는 말(유대인에 대해, 갈1:13, 아나스트로페; 이방인에 대해, 엡2:3, 아나스트레포)로 사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기독교인의 생활 방식에도 사용되었다(고후1:12, 아나스트레포).|영위되는 삶의 종류는 무엇이 그 개인의 사고와 행위를 결정하는가에 달려 있다. 그와같은 결정 요인이 윤리적 가치 체계일 수도 있고(참조: 헬라 비문), 혹은 그 요인이 유대적 신앙이라면, 그것은 거기에 상응하는 유대적 생활 방식에 영향을 줄 것이다(갈1:13, 아나스트로페). 일정한 의무의 결핍은 방종적 생활 태도를 낳게 되고, 이 때 사람은 자기의 욕망만을 따르게 되며(벧전1:14; 벧후2:7, 아나스트로페) 결국은 자신을 파멸시키게 된다(엡4:22,아나스트로페).||② 그리스도께로 돌아가는 것은 그와 동시에 그 이전의 생활 방식에서 돌아서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 그리스도께서 그에게 자유를 주시며 힘을 주신다. 이들은 선교 활동을 추진시킬 뿐만 아니라 공동체 내에서의 신앙의 유지와도 관계가 있다.|중요한 것은 지식을 실천에 옮기는 것이다. 인간은 믿음과 세례(침례)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세력권 안으로 들어간다.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살게 되며 그럼으로써 또한 하나님과의 새로운 교제 안에서 살게 된다. 이전의 완악했던 자기의 생활 방식을 알게 됨으로써 (갈1:13, 아나스트로페; 엡4:22, 아나스트로페; 참조: 고후6:14 이하; 엡2:1 이하; 골1:21 이하; 3:1-17), 그는 새 것을 자각하게 되고 옛 것을 버리는데 도움을 얻게 된다.|그리스도를 통하여, 순종과 경건과 성결의 새 생활(고후1:12, 아나스트레포; 벧전1:15, 아나스트로페; 벧전1:17, 아나스트레포; 벧전3:16, 아나스트로페)을 할 수 있도록 그를 자유롭게 하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또는 하나님의 인격과 역사(役事)이다. 이러한 새 생활은 새로운 유형의 기독교적 행위를 결정하며 그 특성을 보여준다.|하나님 또는 그리스도께 속한 생명으로부터 자라날 때, 이러한 종류의 행동 자체는 모범적 의미를 지닐 수가 있으며(딤전4:12, 아나스트로페; 히13:7, 아나스트로페), 삶의 어떤 적절한 종말을 장식하게 된다(히13:7). 디모데전서의 기록은 "하나님의 집"(딤전3:15, 아나스트레포)인 기독교 공동체 내에서 그와같은 길을 가도록 하기 위해 가르치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다.|그러나 그러한 기독교적 행위는 계속하여 이중적 위험을 안고 있다. 즉 이방인의 행동 방식(벧후2:8)에로 되돌아 가는 것과 율법주의가 그것이다. 율법주의란 그리스도의 인격을 고수하지 않고 그 대신 그리스도와는 관계없는 비인격적 규범이 행위에 대한 규제 요소로 등장하는 것을 말한다(비교: 딤전4:1 이하에서는 독신 생활과 어떤 종류의 음식을 금하는 것을 강요하고자하는 거짓 교사들에 대한 논박을 하고 있다).(참조: M.Dibelius and H. Conzelmann).||(c) 이 단어군은 베드로전서의 비유적 용법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여기에서는 기독교인들이 세상에서 "나그네와 행인같이" 사는 현재를 믿음에 대한 시험의 때로 묘사하였다(벧전2:11 이하, 아나스트로페). 기독교인의 방식으로 살라는 권고는 여기에서 다음의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① 거룩한 하나님에 의해 종말론적으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다.|② 만유의 재판장이시며 뇌물로써 매수되지 않으시는 아버지께 간구한다는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다.|③ 그리스도께서 희생 제물로 죽으심으로써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되었다는 사실 위에 근거를 둔다(벧전1:15-18, 아나스트레포).|그리스도와 일치되는 생활 방식에 대한 권고는 기독교인들이 주위의 비평적인 이방인의 눈 앞에서 살고 있다는 이 사실 때문에도 중요하다. 바울이 고후 3:2에서 고린도 교회를 가리켜 자기의 "천거서" 라고 부를 수 있었듯이(자기의 반대자들이 공공연하게 여기 저기로 띄워 보냈던 천거서들과는 대조적으로), 여기에서는 기독교적 생활 방식의 중요성이 점차 증가되어, 이것이 기독교인 자신들이 증거하는 복음의 능력에 대한 시금석으로 여겨지고 있다.|이러한 생활 방식 자체가 주위 이방인의 의심과 비방에 대한 반박이 될 수 있으며, 나아가서는 반대자들과 비방자들을 얻을 수 있는 가능성까지도 있다(벧전2:12, 아나스트롭로페; 벧전3:1, 아나스트로페; 벧전3:16, 아나스트로페).|(참조: G. Eb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