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넹클레토스
ajnevgklhto"
책망할 것이 없는, 비난할 점이 없는, 결백한.||#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아넹클레토스(Pla., Xen. 이래)는 부정 접두어 %107와 엥클레마($1462; ① 고소, 고발, ② 범죄, 결함)에서 유래했으며, 플라톤에서부터 고소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람, 또는 죄가 없는 사람이나 사물을 의미하였고, 따라서 본래의 의미는 '고소받을 점이 없는, 결백한'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비난할 것이 없는, 훌륭한'이란 의미도 지니게 되었다.||#2. 70인역본의 용법||아넹클레토스는 70인역본에서 마카베오삼서 5:31에 한번 나오며, '결백한'이란 의미로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아넹클레토스는 신약성경에서 5회 나오며, 다음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a) 아넹클레토스는 고전 1:8에서 원래의 법적 의미로 비난할 것 없는, 즉 '무죄한' 이란 의미를 나타낸다: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케 하시리라". 여기서 주님은 종말에 대해 말한다. 하나님은 주의 날에 신자들을 책망할 것 없는 결백한 자로 견고하게 지키실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비난이나 책망할 것이 없다는 말은 윤리적 자질, 곧 기독교인 자신의 공로로 이해되어서는 안되며, 그것보다는 그리스도와의 교제에로의 부르심에 따르는 것이다(고전 1:9). 따라서 주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음이란 예수 그리스도와의 교제를 끝까지 굳게 잡음의 결과인 것이다(고전 1:8).|골 1:22에서도 유사한 의미를 가진다: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케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이 구절도 심판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기독자의 책망할 것이 없음의 근거를 이루고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사역이니, 곧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달성된 화해(Reconciliation)이다. 골로새서의 기자는, 칭의(justification)에 대해 말하고 있다.|기독교인은 그리스도의 화목케하는 죽음과 부활로 말미암아 심판 때에 흠없는 자로 서게 될 것이다(참조: 롬 8:33-롬 8:34). 여기에서 전제되는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과(고전 1:8) 믿음에 계속 거함이다(골 1:23).||(b) 아넹클레토스는 목회서신에서 보다 일반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① 딛 1:6에서 장로는 아무도 비난할 것이 없어야한다고 한다: "책망할 것이 없고 한 아내의 남편이며 방탕하다 하는 비방이나 불순종하는 일이 없는 믿는 자녀를 둔 자라야 할지라". 여기서 '책망'보다는 '비난'으로 번역해야 한다. 왜냐하면 아넹클레토스는 여기서 카테고리아("비방")와 병행하기 때문이다.|② 감독도 마찬가지이다: "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고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 급히 분내지 아니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며".|③ 딤전 3:10에서도 집사에 대해 같은 의미를 나타낸다: "이에 이 사람들을 먼저 시험하여 보고 그 후에 책망할 것이 없으면 집사의 직분을 하게 할 것이요". 책망이나 비난받을 것이 없는 생활은 현재의 기독교 지도자들에게 요구되는 것이다.|(참조: Walter Bauer; J.H.Thayer; W.Grundmann; H.Wahris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