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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prw'ton
첫째로, 최초로, 처음에.||프로톤은 프로토스($4413: 첫째의, 최초의, 최고의)의 중성이며, 부사로 사용되었으며 '첫째로, 최초로, 최초(처음)에(는)'를 의미한다.|신약성경에서 프로톤은 54회 사용되었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괴수
prw'to"
첫째의, 최고의||프로토스(Homer 이래)는 프로($4253: 전에, 앞에)의 단축형 최상급이며, '처음에, 첫째의, 최고의'를 의미한다.|신약성경에서 프로토스는 100회 사용되었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프로토스타테스
prwtostavth"
지도자, 우두머리||#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프로토스타테스(Thu. 이래)는 프로토스($4413: 첫째의, 최초의, 최고의)와 히스테미($2476: 서게 하다, 서다)에서 유래했으며,||(a) '맨 앞 열(지위)에 선 자', '맨 앞의(수위의) 사람'(Thuc., Xen., Polyb., Diod., Dion.),|(b) 따라서 '지도자, 장(長), 우두머리, 우승자'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프로토스타테스는 신약성경에서 행 24:5에 한번 나온다: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염병이라 천하에 퍼진 유대인을 다 소요케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 여기서 이 명사는 '지도자나 우두머리'를 의미하며 나쁜 의미로 사용되었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장자의 명분
prwtotovkia
장자의 명분, 장자권.||#1. 고전 헬라어 문헌 및 70인역본의 용법.||명사 프로토토키아(BI-D)는 프로토토코스($4416: 처음 난)에서 유래했으며, '장자임, 장자의 명분, 장자권'을 의미한다.|70인역본에서 프로토토키아는 베코라(장자권)의 역어로 사용되었다(창 27:37; 창 25:33).||#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프로토토키아는 신약성경에서 히 12:16에 한번 나온다: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먼저 나신
prwtotovko"
처음 태어난, 초태생의.||#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포로토토코스는 프로토스($4413: 첫째의, 최초의)와 틱토($5088: 자식을 보다, 낳다)에서 유래했으며, '처음 태어난, 초태생의'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형용사 프로토토코스는 70인역본에서 130회 나오며, 거의 항상 히브리어 베코르(초태생의, 장자의)의 역어로 사용되었다.||(a) 프로토토코스는 사람과 짐승에 대해 문자적인 의미로, 또한 종종 "태를 여는"이라는 문구를 수반하여 중성 단수의 명사로(예: 출 13:2), 다음의 표현들은 사람들에게 한정된다: 프로토토코스 휘오스(장자, 맏아들, 먼저 나온 자; 참조: 창 25:25[에서]; 출 4:22[이스라엘]), 그리고 명사로서의 프로토토코스는 고유 명사와 연결된다(참조: 민 3:2). 고대 동양에서는 일반적이었던, 장자가 아버지의 힘을 물려 받는다는 사상(참조: 창 49:3)은 장자에게 율법에서 특별한 위치를 부여한다(참조: 신 21:15 이하). 이 이유 때문에 장자가 아버지의 특별한 사랑을 받는 것이 통상적이었다(참조: TDNT Ⅵ 874).||(b) 전이된 의미로 프로토토코스는 아버지, 특히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를 표현한다. 여기에는 이 단어를 형성한 두개의 어근이 나타내는 육체적 탄생은 더 이상 이 의미의 어떤 부분을 담당하지 못한다(예: 출 4:22). 예를 들어 출 4:22을 보라. 시 89:27 이하에 나오는 사상은 "양자 결연"(adoption), 즉 특별한 법적 권리들과 영예들의 부여에 관한 것이다. 구약에서 프로토토코스가 은혜를 받은 자들, 선택받은 자들을 위한 영예의 칭호로 사용되는 반면에 종말론적인 의미나 구원론적 의미로는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은 주목되어야 한다.||#3.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프로토토코스는 신약성경에서 8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문자적인 의미로. 예를 들어, 눅 2:7은 프로토토코스, 곧 "먼저 난"은 아마 예수님께서 여러 자녀들 중의 맏이였다는 것을 함축하는 것 같다(참조: 막 6:3). 마리아의 동정에 대한 언급을 고려할 때 이 말은 마리아가 전에 자녀를 낳지 않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일지도 모른다(참조: 눅 1:27; 눅 1:34). 그러나 어찌 되었든지 간에 프로토토코스는 마리아의 다른 자녀들을 배제하지 않는다.||(b) 비유적인 의미에서 예수님에 대한 영예의 칭호인 프로토토코스는 바카르를 그 배경으로 하여 70인역본 헬라어의 번역으로만 이해할 수 있다. 우리가 신약성경에서 70인역본의 용법의 범위를 넘어서는 프로토토코스가 가지는 의미의 미묘한 차이들과 만날 때 이것을 망각해서는 안된다.|① 창조의 중개자에 대한 호칭으로 이 단어는 골 1:15에서 사용된다. 곧 골 1:16의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와 골 1:17의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에 나오는 유사한 말씀들에서 이것이 증명된다.|골로새서 1장에서 프로토토코스가 헬라의 신화적 사상들을 반영한다는 생각에 대한 지지자와 반대자들 모두다가 골 1:15이 만물 창조의 매개자로서 선재하시는 그리스도의 최상의 지위에 대한 고백이라는 점에서 동의한다(참조: E. Kasemann; W. Michaelis, TDNT Ⅵ).|② 이 단어는 히 1:6에서, 예수님의 승천에 주어진 칭호, 즉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천국 보좌에 앉으심으로 휘오스(아들, 5절)를 수식하여 종말론적 의미로 사용된다.|히 1:5에 인용되는 시 2:7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높이심은 예수님의 텔레이오시스와, 구속을 받은 자들이 완전하게 될 때 다른 사람도 그를 따를 것이라는 하나님에 의해 주어지는 첫번째 증거를 나타낸다.'(Kasemann).|Michaclis는 6절 상반절을 선재하시는 그리스도의 성육신에 대한 언급으로 보고 이 구절을 다른 방법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그도 역시 재림에서 높임을 받으신 그리스도의 즉위에 대한 언급의 가능성을 고려한다(TDNT Ⅵ 880). 높임을 받으신 그리스도께서는 완성으로 가는 길에서 자신을 따르는 자들 보다 한걸음 앞선 분이시므로 이미 프로토토코스요, "구속 받은 자들의 공동체의 주님이시며 아르케고스"이신 것이다(Kasemann).|롬 8:29는 '종말론적 변형', 곧 미리 아신바 되고 선택을 받은 자들이(죽은 자들의 부활로 인하여) 그리스도와 같이 되는 때를 언급한다.|프로토토코스로서 그리스도께서는 '그들과 같이 될 것이나 지위와 위엄에 있어서 그들의 위에 거하신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여전히 그들의 주님으로 계시기 때문이다.'(TDNT Ⅵ 877).|골 1:18과 계 1:5은 프로토토코스를 부활과 연관시킨다. 곧 예수님께서는 "만물의 으뜸이" 되시기 위하여 하나님에 의해 일으키심을 받은 먼저 나신 자이시다(행 26:23; 참조: 행 3:15; 행 5:31; 히 2:10; 생명 또는 구원의 개척자[창설자]).|예수님에 대한 영예의 칭호로써 프로토토코스는 어떤 다른 칭호보다 더 명확하게 하나님의 구원의 의지와 행동들의 불변성을 표현한다: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골 1:15; 골 1:18),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롬 8:29; 참조: 히 12:23). 창조주와 구속자는 한분이시고 동일하신 분이시니 "처음과 나중"이시며 "시작과 끝"이시며 자신의 백성을 영원부터 자신에게 연합하시고 그들이 자신 안에 거할 때 그들의 구원의 확증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이 사실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범위를 초월하는 것이다.|인간 나사렛 예수님(눅 2:1-2)께서는 창조의 매개자이시다. 십자가 위에서 죄인으로 처형을 받으신 분은 첫번째로 부활을 경험하신 분이시며 우리를 생명으로 인도하시는 분이시다. 이 사실은 신약의 증인들이 구약성경과 정통적인 유대교의 제한을 극복하기 위하여 신화적 언어를 살려서 표현할 수 없는 일들을 고백의 형태로 표현한 것에 대한 충분한 이유가 될 것이다(참조: 골 1장의 찬송가 양식; Kasemann). 왜냐하면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께서는 불가능한 사실을 이루셨기 때문이다. 프로토토코스이신 인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신성한 능력과 영광을 최고조에 이르게(골 1:19 이하)하셨고 그 안에 있는 분깃을 교회에 부여하셨다.||(c) 복수 프로토토코이는 교회에 대한 언급과 함께 사용된다. 히 12:23("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은 문자적으로 받아들여져야 할 것인가? 이 구절은 기독교인들이 이 땅에서 비할 바 없고 거의 위험한 방식으로 직접 그리스도와 함께 배치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의심할 바 없이 히브리서 저자는 아들(the son)과 아들들(1장과 2장), 그리고 하기아존(거룩하게 하시는 자)과 하기아조메노이(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를 매우 밀접하게 관련된 것으로 본다. 이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은 에크시 헤노스 판테스("다 하나에서 난" 자)들이다(히 2:11).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과 그리스도의 연합은 구속의 전 과정과 마찬가지로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고려함이 없이는 이 곳에서 이해될 수 없다'. 이것이 바로 히 2:10이 "저희 구원의 주($747: 개척자, 지도자)를 고난으로 말미암아 온전케 하심이 합당하도다"를 강조하는 이유이다. 그리스도의 "형제들"로서 프로토토코이는 하늘에 기록되었다. 그들은 양도할 수 없는 권리로서 장자의 지위를 소유하지는 않으나 그리스도께서 프로토토코스이시며 이와 같이 그들의 아르케고스($747: 개척자)이심을 근거로하여 상속자들과 같이 그 지위를 기대하는 것이다.|(참조: K. H. Bartels).
프로토스
prwvtw"
첫째로, 최초에.||#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부사 프로토스는 프로토스($4413: 첫째의, 최초의, 최고의)에서 유래한 부사이며, '첫째로, 최초에'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부사 프로토스는 신약성경에서 행 11:26에 한번 '최초에'라는 의미로 나온다: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 컬음을 받게 되었더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거치다
ptaivw
비틀거리다, 실수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프타이오(Pind., Aesschy., Hdt. 이래)는||(a) 타동사로 '비틀거리게 하다, 걸려 넘어지게 하다',|(b) 자동사로 '비틀거리다, 걸려 넘어지다'(Polyb.),|(c) 비유적으로 '실수하다, 잘못하다, 범죄하다, 비참하게 되다, 파멸 당하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프타이오는 70인역본에서 '미끄러지다'(집회서 37:12), 군대가 '패배하다'(삼상 4:2, 10 등)를 의미한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프타이오는 신약성경에서 5회 나오며, 로마서(1회), 야고보서(3회), 베드로후서(1회)에만 사용되었다.||(a) 롬 11:11,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저희가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저희의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여기에서 프타이오의 기본적 의미인 '비틀거리다'가 분명하며, 또한 단순히 비틀거리는 사람들은 다시 평형을 유지할 수도 있기 때문에 아마 넘어지는 것과는 구별된다. 그러나 넘어짐에는 영원한 파멸이라는 보다 큰 궁극성이 있다. 그런 넘어짐의 목적은 유대인들을 그렇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b) 프타이오는 '미끄러지다, 실수하다, 범죄하다'를 의미한다.|① 약 2:10에서는 '범죄하다'를 의미한다: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② 약 3:2에서 '실수하다'를 의미한다: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c) 프타이오는 벧후 1:10에서 '비참하게 되다'나 '패배하다'를 의미할 것이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하리라".|(참조: K. L. Schmidt).
발꿈치
ptevrna
뒤꿈치 heel||#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프테르나(Homer 이래)는 기본어이며, '뒤꿈치'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프테르나는 신약성경에서 요 13:18에 한번 나온다: "내가 너희를 다 가리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의 택한 자들이 누구인지 앎이라 그러나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니라"(시 40:10 인용). 아무개에 대항하여 '발뒤꿈치를 들다'라는 말에서 비유를 제거하면(이 비유는 발로 차는 행위 내지는 씨름군이 그의 적수를 발로 걸어 넘어뜨리는 행위에서 차용되었다). '속임수를 써서 아무개를 해하다'를 나타낸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꼭대기
pteruvgion
끝 end, 가장자리 edge.||#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프테뤼기온(Aristot. 이래)은 지소사로서 '작은 날개'를 뜻하며, 어떤 끝을 가리키는데 사용되었다. 프테뤼기온은 날개 같은 것으로 '흉장, 작은 탑, 뾰족한 지붕'을 가리킨다.||#2. 70인역본의 용법||프테뤼기온은 70인역본에서 약 16회 나오며, '날개'를 뜻하는 히브리어 카나프의 역어로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프테뤼기온은 신약성경에서 2회,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만 나온다.|마 4:5,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병행구, 눅 4:9). 마귀가 예수님을 성전의 프테뤼기온으로 데리고 가서, 그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받고 있음을 증명하도록 뛰어내리라고 재촉하였다. 아마 이것은 솔로몬의 행각 지붕에서 곧장 아래로 멀리 밑에 있는 기드온 골짜기를 볼 수 있는 성전 지역의 남동쪽 코너를 언급하고 있는 듯 하다. 그러나 예레미야스(J.Jeremias)는 이것이 성전 문의 상인방(上引枋)이나 상부 구조물이라고 주장한다. 유세비우스(Eusebius)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어떻게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를 '너의 높은 위치에서 너는 분명하게 보일 수 있으며, 너의 말이 모든 백성들에게 쉽게 들릴 수 있는 성전의 뾰족탑 위에 데려다 놓았는지를 얘기하고 있는'이란 헤게시푸스(Hegesippus)의 이야기를 보존하고 있다(HE 2, 23, 11). 그 목적은 유월절 군중들을 설득하여 예수님을 따르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야고보가 예수님을 증거하자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그를 내동댕이치고 그에게 돌을 던졌다. 힐달은 이곳이 희생자를 아래로 떨어뜨려 돌로 치던 형을 집행하던 장소였다고 주장한다. 아마도 마귀는 예수님을 이 성전의 뾰족탑 위에 세운 것 같다.|마귀가 예수님을 세운 곳은 문자적으로 성전 날개(부분)이다. 이 성전 날개(프테뤼기온)와 마귀가 인용한 시편의 "네가 그 날개(프테휙스) 아래 피하리로다"(시 91:4)라는 절 사이에 말의 기교가 있는 것 같다. 시험 기사의 기자는 우리가 이 단어로 연상되는 것을 보기를 원한다. 무엇이 하나님이 보호하시리라는 약속을 잘못 사용하도록 그 아들을 유혹하는데 보다 적절한 무대 배경이 될 수 있겠는가? 성전은 하나님이 임재하심이 그곳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효과적으로 나타나기에 매우 좋은 장소이다.|(참조: Walter Bauer; D.H.Magvig).
날개
ptevrux
날개 wing.||#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프테뤽스(Homer 이래)는 페토마이($4072: 날다)나 프테론(%619: 날개)에서 유래했으며, '날개' wing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프테뤽스는 신약성경에서 5회 나오며, '날개'를 의미한다.||(a) 마 23:37(병행구, 눅 13:34)에서 암탉의 '날개'에 대해 사용되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b) 계 12:14에서 독수리의 '날개'에 대해 사용되었다: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c) 계 4:8에서 생물의 '날개'에 대해 사용되었다: "네 생물이 각각 여섯 날개가 있고 그 안과 주위에 눈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 하고".||(d) 계 9:9에서 황충의 '날개'에 대해 사용되었다: "또 철흉갑 같은 흉갑이 있고 그 날개들의 소리는 병거와 많은 말들이 전장으로 달려 들어가는 소리 같으며".|(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새의
pthnov"
날개있는, 나는.||#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프테논은 페토마이($4072: 날다)에서 유래했으며,||(a) '날개를 갖춘, 날개 있는(달린)'(Aeschyl., Pla. 이래),|(b) 실명사로 '나는 것', 곧 '새'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프테논은 신약성경에서 고전 15:39에만 한번 나오며, '새'를 의미한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프토에오
ptoevw
두려워하다, 놀라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프토에오(Homer 이래)는 기본어이며, '무섭게 하다, 놀라게하다', 수동태, '무서워하다, 두려워하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프토에오는 신약성경에서 누가복음에만 2회 나온다.||(a) 눅 21:9에서 '두려워하다'를 의미한다: "난리와 소란의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 말라 이 일이 먼저 있어야 하되 끝은 곧 되지 아니하니라".||(b) 눅 24:37에서 '놀라다'를 의미한다: "저희가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두려운 일
ptovhsi"
공포 terror.||#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프토에시스(Pla. 이래)는 프토에오($4422: 무섭게 하다, 놀라게 하다)에서 유래했으며, '공포' terror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프토에시스는 신약성경에서 벧전 3:6에 한번 나온다: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복종한 것 같이 너희가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함으로 그의 딸이 되었느니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돌레마이
Ptolemai?"
돌레마이 Ptolemais||프톨레마이스는 삿 1:31에 나오는 "악고"와 같은 마을이다. 프톨레마이스는 마카비가 시대에 뵈니게 연안에서 가장 두드러졌던 마을이었으며(마카베오일서 5:15, 55; 10:1, 58, 60; 12:48), 신약성경에서 한번 행 21:7에서 바울이 그곳에 있는 "형제들"을 방문하기 위해 하루 동안 머물렀던 항구로 언급되어 있다.|(참조: ISBE).
프튀온
ptuvon
키질하는 삽, 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프튀온(Homer 이래, 아티카어형 %601, W. 24, 아마 어근 pu. '깨끗하게 하다'에서 유래; 참조 Curtius p. 498sq.)는 '까부르는(키질하는) 삽'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프튀온은 신약성경에서 2회 나오며, 마 3:12(병행구 눅 3:17)에 사용되었다: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프튀온은 여기서 '키질하는 삽'을 의미한다. 이 키는 곡식을 공중에 올려서 쭉정이를 바람에 날려버리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알곡과 쭉정이를 구별한다. 그리스도의 손에 든 키는 심판자로서 그의 구별하는 능력과 권위를 가리킨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