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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코스
rJavko"
천조각, 헝겊.||#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라코스(Homer 이래)는||(a) '헤어진 옷, 누더기',|(b) '천조각, 헝겊'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라코스는 신약성경에서 2회 마 9:16(병행구 막 2:21)에 사용되었다: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이는 기운 것이 그 옷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됨이요". 여기서 라코스는 (b)의 의미로 '천 조각'을 의미한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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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마 Rama.||#1. 구약성경.||라마는 히브리어 라마(높은 장소, 고지)의 음역이다. 이 명칭은 높음을 나타내며, 이 명칭의 어근에서 유래한 명칭을 지닌 마을들은 모두 해발 고도가 높은 곳에 위치한 것으로 생각된다.|라마는 베냐민 지파의 영토 내에 있는 성읍으로, 기브온과 브에롯 사이에 그 지명이 언급되어 있다(수 18:25), 라마는 한 레위인이 북쪽으로 여행하는 도중에 자신과 첩이 유숙할만한 곳으로 생각한 곳이었다(삿 19:13). 드보라의 종려나무는 이곳과 벧엘 사이에 있었다(삿 4:5). 사마리아왕 바아사는 유대왕 아사에 대항하여 라마를 요새화 하고자 하였다. 나중에 이 시도는 좌절되었으며, 바아사가 라마를 건축하던 재료들을 아사가 모아서 운반하여 베냐민의 게바와 미스바를 건축하였다(왕상 15:17; 대하 16:5). 이곳은 예레미야가 예루살렘에서 결박되어 바벨론으로 이송되어 가던 중 느부갓네살의 시위 대장이 예레미야를 풀어 놓아준 곳이다(렘 40:1). 라마는 앗수르의 진격에 대한 이사야의 묘사에서 언급되었다("라마는 떨고", 사 10:29). 호세아 선지자가 기브아와 나란히 라마를 언급하였으며(호 5:8), 포로 후에 재정착한 곳으로 언급되었다(스 2:26; 느 7:30). 라헬의 묘가 라마 근처에 있다고 알려져 있다(렘 31:15; 삼상 10:2; 마 2:18 과 비교).|위에 인용한 구절들을 종합해보면 라마가 기브아에서 북쪽으로 약간 떨어진 곳에 있으며, 기브온과 브에롯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 벧엘에 이르는 도로변에 위치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지금의 엘람과 동일하다. 라마와 엘람이 동일하다는 의견에는 유세비우스와 요세푸스도 동의한다.||#2. 신약성경.||라마는 신약성경에서 마 2:18에 한번 나온다: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함이 이루어졌느니라". 라마는 베들레헴 북쪽으로 벧엘에 이르는 도로변에 위치해 있다. 라헬이 죽어 이 베들레헴 길가에 장사되었다(창 35:19). 렘 31:15은 유대인들이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가는 포로들의 집합 장소가 라마였는데 그들의 조상 라헬이 길가 무덤에서 그것을 보고 슬피울며 애곡한다는 것이다. 마태는 이것을 베들레헴 유아 학살 사건에 적용, 예언의 성취로 이해했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ISBE).
란티조
rJantivzw
뿌리다 sprinkle||#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란티조는 라이노(%1000: 뿌리다)의 후기 어형이다.||(a) 이 단어는 '뿌리다' spinkle를 의미하며 물(Hom. od.), 기름(Hippocr.), 피(Hom. od.), 먼지(Hom. Il.), 소금(Aristot.)에 대해 사용되었다.||(b) 이 단어는 종교적으로 '정결하게 하다'를 의미한다(Plato., Cratylus).||#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란티조는 70인역본에서 히브리어 나자(5137: 뿌리다, 튀다)를 번역하여, 피가 뭍은 것(레 6:20), 피가 튀는 것(왕하 9:33)을 나타낸다.|이 단어는 시 51:9에서 하타(2398: 속죄제를 드리다, 정결케 하다)를 번역하여 '정결케 하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시편 기자는 여기서 문둥병자와 그의 집을 정결하게 하는 의식에 영감을 얻어 뿌리는 의식을 통하여 마음을 깨끗하게 한다는 상징적 표현을 만들어 내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란티조는 신약성경에서 4회 나오며, 히브리서에서만 사용되었다.||(a) 란티조는 히 9;19과 히 9:21에서 언약과 관련하여 나온다. 히 19:18-21은 시내산 언약의 끝맺음에 관하여 언급한다(출 24:3-8). 모세는 물과 붉은 양털과 우슬초와 함께 송아지의 피를 취하여, 그가 백성에게 읽어준 하나님의 율법이 기록된 책과 온 백성과 회막과 제의 기물들에 뿌린다.|히브리어 기자에게 있어서 "첫 언약"이 "피 없이"(코리스 하이마토스) 세운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은 "새 언약"을 위한 예수님의 죽음의 근본적인 중요성을 지적해 주는 것이다.-예수님은 새 언약의 중보이시다(히 9:15; 참조: 히 12:24). 모세가 백성에게 뿌린 피는 "언약의 피"(출 24:8)로 명명되며, 이것은 히 9:20에서 분명하게 인용된다. 그리스도의 피는 "영원한 언약의 피"로서 이것과 대조되는 것이다(히 13:20, 참조: 히 10:29). 첫 언약에서 희생 제물의 피로 뿌리는 것이 한 역할을 했듯이 새 언약에서도 그리스도의 피로 뿌리는 것이 한 역할을 한다.||(b) 히 9:13,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케 하거든". 본래 히 9:13 이하는 레 16장의 대속죄일을 생각하고 언급한 것이다(참조: 히 9:7). "육체"(사르크스)를 정결케 하는 제한된 효력만을 가진 염소와 황소의 피는 우리의 양심을 깨끗하게 하는("마음에 뿌림을 받아", 히 10:22) 그리스도의 피와 대조된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것은 속죄일에는 제의적 기물만이 뿌림에 의하여 깨끗하게 되고 히브리서에서 일차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뿌림은 없다는 사실이다. 다른 구약성경의 뿌리는 의식의 요소에 대한 소개에서는 사람에게 뿌리는 것이 언급되어 있는데, 이 경우에 피로 뿌리는 것이 아니라 시체로 부정하게 된 자들(여기서 케코이노메노이)을 정결케 하는 물로 뿌리는 것이다(민 19장). 그러므로 깨끗게 하는 붉은 암송아지의 재는 속죄일의 희생 제물의 속죄하는 피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피의 상징이다.|동일한 예표론적 도식이 이 모든 진술들 배후에 있다. 구약성경의 공동체에서처럼 신약성경의 공동체에서도 뿌리는 일이 있다. 구약성경의 공동체에서는 희생 제물 짐승의 피와 붉은 암송아지의 재가 뿌려졌다. 신약성경의 공동체에서는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진다. 구약성경에서 뿌림은 옛 언약에서 일익을 담당했고 신약성경에서 뿌림은 모든 면에서 옛 언약보다 우월한 새 언약에서 일익을 담당한다. 구약성경에서는 육체가 깨끗케 되었고, 신약성경에서는 양심이 정결케 된다. 이러한 대조에서 히브리서는 제의적 용어인 란티조/ 란티스모스를 채택하지만, 뿌리는 것을 그리스도의 피로 전이함으로써 실제의 제의적 용법을 제거하고 은유적으로 이용한다.|이미 Ez 36:25과 1Qs 4:21에서 이미 은유적 용법이 나타난다. 여기서 뿌리는 일은 완전한 정결을 주시는 하나님의 종말론적 행동을 나타내는 은유이다. 그러나 히브리서에서 이 뿌림은 자신의 피로 그의 백성을 정결케 하고 그들에게 새 언약에서 한 몫을 나누어주시는 하늘의 대제사장께서 공동체를 위해 이미 행하시는 것이다.||(c) 히 10:22의 상반절에 따르면 그리스도의 피로 뿌리는 일은 세례(침례)에서 일어난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히 10:22의 상반절 앞 부분은 그리스도의 피로 뿌리는 것을 가리키는데, 이것은 히 12:24(및 벧전 1:2; Barn., 5, 1)이나 간접적으로 히 9:18-21(참조: 히 10:29; 히 13:20)로부터만이 아니라 히 9:13 이하로부터도 알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붉은 암송아지의 재나 그것으로부터 얻어지는 정결의 물은 그리스도의 피의 대형(antitype)이다.|그리고 히 9:14의 말씀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는 히 10:22 상반절 앞부분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히 10:22 하반절 뒷부분이 세레(침례)를 언급한다는 사실은 거의 증거를 요하지 않을 만큼 분명하다.|이제 히 10:22 상반절의 두 병행절들은 서로 거의 분리될 수 없으며, 히 10:22 상반절 뒷부분은 침례에 대해, 앞부분은 다른 무엇에 대해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것은 세례(침례)가 육체의 단순한 씻음으로 거의 묘사될 수 없다는 사실에 의해 즉시 배제된다.|히 10:22 상반절 뒷부분과 앞부분은 하나의 동일한 것의 두 측면을 묘사한다. 몸이 물로 씻겨지듯이, 마찬가지로 마음도 깨끗해져서 악한 양심으로부터 자유로와진다.|그리스도의 피로 뿌린다는 사상은 이제 세례(침례) 신학에 속한다. 그것은 세례(침례) 사건에 대한 해석이다. 세례(침례)에서 입회자는 그리스도의 피의 속죄하고, 정케하고, 언약을 맺는 능력 안에서 한 몫을 받는다.
뿌림
rJantismov"
뿌림 sprinkling||#1. 70인역본의 용법.||명사 란티스모스(성경과 교회 문헌에만 사용됨)는 란티조($4472: 뿌리다)에서 유래했으며, '뿌림, 뿌리기' sprinkling을 의미한다.|70인역본에서 란티스모스는 5회 나오며 히브리어 닛다(5079: 불순, 더러움, 더러운 것)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메(4325: 물)와 결합하여 '더러움을 정결캐 하는 물'을 나타내며, 마콜(4726: 샘)과 결합하여 '더러움을 씻는 샘'을 나타낸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란티스모스는 신약성경에서 2회 나오며, 히브리서와 베드로전서에만 사용되었다.||(a) 히 12:24,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뿌린 피니라". 아벨의 핏 소리는 복수를 부르짖는 소리이다. 가인에게 재앙을 내릴 것을 부르짖었다. 피를 조사해 달라고 간청하였다. 그래서 살인자의 추방을 확고히 해 줄 것을 하나님께 호소하였다.|그리스도의 피는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뿌린 피(히 12:24), 갈보리에서 흘린 이 그리스도의 피는 하나님께 호소한다. 그 핏소리는 복수를 간청하는 것이 아니라 용서를 간청한다.|확실히 아벨의 피의 외침은 하나님께 상달되어서 대단히 실질적인 효과로 응답되었듯이 그리스도의 피의 외침도 하늘로부터 적절하고도 자비로운 효과를 야기시킨다. 죄인은 이 그리스도의 피로 용서를 받고 성결될 수 있다.||(b) 벧전 1: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찌어다". 이 구절은 히 10:22($4472의 란티조: 4472를 참조요)에 기초하여 세례(침례)를 언급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믿는 자는 그리스도와 결합하여 그와 함께 죽고 그와 함께 살아나는 세례(침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제사가 지닌 깨끗게하는 능력을 얻게 된다(참조: 롬 6:1 이하).|(참조: C. H. Hunzinger; G. R. Beasley-Murray).
손바닥으로 때리다
rJapivzw
때리다, 치다 strike.||#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라피조는 라피스(%70: 매, 막대기)에서 유래했으며,||(a) '막대기나 매로 치다'(Hdt., Dem., 등),|(b) '손바닥으로 치다'(Hyperid., Plut.)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라피조는 70인역본에서 3회 나오며, 해당하는 히브리어 없어 사용되었다. 라피조는 '손바닥으로 치다'(삿 16:25; 호 11:4; 에스드라일서 4:31)는 의미를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라피조는 신약성경에서 2회 나오며, '손바닥으로 때린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마 5:39,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마 26:67, "이에 예수의 얼굴에 침 뱉으며 주먹으로 치고 혹은 [손바닥으로 때리며]"|(참조: J.H.Thayer; Walter Bauer).
손바닥으로 때림
rJavpisma
강타, 세게침(곤봉, 막대기, 채찍 등으로).||#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라피스마(Antiph. 이래로)는 라피조($4474: 때리다, 치다)에서 유래했으며, '곤봉, 막대기, 채찍으로 때림(침)'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라피스마는 70인역본에서 사 50:6에서 마라트(미끄럽게 하다, 벗어지게 하다)의 역어로 한 번 나타난다: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빰을 맡기며".||#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라피스마는 신약성경에서 3회 나오며 '손바닥으로 때리거나 친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막 14:65, "혹은 그에게 침을 뱉으며 그의 얼굴을 가리우고 주먹으로 치며 가로되 선지자 노릇을 하라 하고 하속들은 [손바닥으로 치더라]"|요 18:22, "이 말씀을 하시매 곁에 섰는 하속 하나가 손으로 예수를 [쳐] 가로되 네가 대제사장에게 이같이 대답하느냐 하니"|요 19:3, "앞에 와서 가로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손바닥으로 때리더라]"|(참조: J.H.Thayer; Walter Bauer).
바늘
rJafiv"
바늘 needle.||#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라피스(Hippocr.)는 랍토(%573: 바느질하다)에서 유래했으며, '바늘' needle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라피스는 신약성경에서 3회 나오며, 마 19:24(병행구 막 10:25; 눅 18:25)에 사용되었다: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라카브
@Racavb
라합 Rachab.||라카브는 신약성경에서 마 1:5에 한번 예수님의 족보에 나온다: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4460(라압: 라합)과 같은 여자이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라헬
@Rachvl
라헬 Rachel.||#1. 구약성경.||(a) 라헬의 생애.|라켈은 히브리어 라헬(암양)에서 유래했으며, 한글 개역 성경에서 '라헬'로 음역되어 있다.|라헬은 야곱의 아내이고 요셉과 베냐민의 어머니인, 이스라엘의 여자 조상이다. 라헬은 야곱의 어머니의 오빠인 아람 사람 라반의 작은 딸이었다. 그러므로 라헬과 야곱은 사촌간이다. 그들은 야곱이 하란에 당도했을 때 처음으로 만났으며, 야곱은 라헬의 미모에 끌려 첫눈에 사랑에 빠졌다. 야곱은 창 29:10 이하에 기록된 바와 같이 기사도적 행동으로 그녀의 사랑을 얻었다. 당시 풍습에 따라 야곱은 그녀를 얻기 위해 라반과 계약을 맺었다. 즉 그녀와 결혼하는 조건으로 7년간 봉사하기로 약속하였다(창 29:17-20). 그러나 기일이 되자 라반은 야곱을 속여 라헬 대신 레아를 야곱에게 주었다. 야곱은 이에 항의하였고, 라반은 7년을 더 봉사한다는 조건 하에 라헬도 야곱에게 주었다(창 29:21-29). "라헬은 잉태하지 못하여" 크게 낙심한 반면(창 29:30, 31) 레아는 자식을 가졌다. 라헬이 시기하여 야곱에게 불평하자 야곱은 그녀에게 자식은 하나님의 선물임을 상기시켜 주었다. 라헬은 예전에 사라가 유사한 처지에 놓였을 때 사용했던 편법을 이용하였다(창 16:2 이하). 그녀는 야곱에게 여종 빌하를 첩으로 주어 "그를 인하여 자식을 얻겠노라" 하였다(창 30:3). 단과 납달리는 이렇게 해서 얻은 자식이었다. 일부다처제의 해악은 두 자매간의 무서운 경쟁심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각각 자식을 수단으로 하여 야곱의 마음을 얻고자 하였다. 자식의 어미가 되려는 간절함 때문에 라헬은 레아의 아들 르우벤이 가져온 흰독말풀 혹은 토마토("합환채", 창 30:14)를 얻으려고 레아와 흥정하기도 하였으나 이것도 별 소용이 없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 라헬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 마음의 소원에 응낙하셨다. 라헬은 첫 아들을 낳았고 이름을 요셉이라 하였다(창 30:22-24).|이후 몇 년이 지나, 야곱이 아내들과 함께 라반에게서 도망쳐 나올 때 라반의 드라빔을 라헬이 훔친 이야기가 창 31:19, 34, 35에 기록되어 있다. 라헬은 자기 아버지의 가정 신상들이 그녀 자신의 새 가정에게 번영을 가져다 주기를 바랬던 것이었다. 비록 그녀는 교묘하게도 라반에게서 그것들을 숨겨서 훔쳐 내는데 성공했지만, 후에 야곱은 그것들을 발견하고 폐기시켰다(창 35:2-4). 이 모든 일들에도 불구하고 라헬은 야곱의 총애를 계속하여 받았는데, 이 사실은 창 33:2에 분명히 나타나 있다. 이 구절에 의하면 야곱은 라헬을 가장 안전한 위치에 배치하였으며, 아들 요셉을 편애하였음을 알 수 있다. 가나안에 도착한 후 벧엘에서 에브랏으로 가는 도중 베들레헴에서 라헬은 둘째 아들 베냐민을 낳고 죽었다(창 35:16 이하).||(b) 라헬의 성격.|라헬의 성격은 그녀의 가족의 특성인 교활함과 탐욕스러움을 분명히 보여준다. 라반, 리브가, 야곱의 성격도 분명 그러하다. 비록 참된 하나님을 믿는 신자임에도 불구하고(창 30:6, 8, 22), 그녀는 아직도 드라빔을 숭배하는 등, 자기 고향의 미신적 관습에 집착해 있었다(창 31:19). 스스로 도우고 미신적인 편법에 의지하려는 그녀의 노력들이 허사가 되고 또 남편의 사랑과 더 강한 믿음(창 35:2-4) 때문에 그녀의 성품은 정화되었다. 라헬이 죽은 후에도 오랫동안 그녀에 대한 기억이 이스라엘에 남아 있었다. 룻 4:11에는 라헬과 레아의 이름이 이스라엘 집을 세운 여인으로서 결혼 축복 선언에서 나온다.||#2. 신약성경.||라켈 즉 라헬은 신약성경에서 마 2:18에 한번 나온다: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함이 이루어졌느니라".|(참조: ISBE).
리브가
@Rebevkka
리브가 Rebekah(인)||레벡카는 히브리어 리브카에서 유래했으며, 한글 개역 성경에 리브가로 표기했다.||#1. 구약성경.||리브가는 브두엘과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딸로, 나홀과 밀가의 손녀이며, 라반의 누이, 이삭의 아내, 에서와 야곱의 어머니이다. 이 이름은 대개 "동물들을 위한 매는 끈" 혹은 오히려 동물을 매는 끈으로서의 "올가미"를 뜻하는 아랍어 rabqat로부터 설명된다. 그런데 이 끈은 비유적으로 그녀의 미모(?)에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의 미모는 사람들을 사로잡거나 옭아매는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이 어근은 히브리어에서 "매는 장소"나 "마구간"을 의미하는 명사에서만 발견되는데 예컨대 '마구간의 살찐 송아지나 송아지' 같은 친숙한 어구이다. 라헬과 같은 이름의 의미를 고려하면 리브가는 '단단히 묶어둔 송아지(혹은 어린양)', 그러므로 특별히 선택해둔 살찐 것을 의미할 수 있다.|리브가는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의 자손의 족보에서 처음으로 언급된다(창 22:20-24). 사실 그곳에서 이 여인을 소개하기 위해 필요한 부분까지만 족보가 기록된다. 이후의 그녀의 계속적인 출현과 역할을 위해 분명히 이 족보는 하나의 준비로서 의도되었다. 데라 가문의 이 모든 가지는 아브라함과 롯이 가나안으로 이주하였을 때 아람에 남아 있었다. 우리가 처음으로 리브가를 만나는 것은 "나홀의 성" 하란에서이다. 즉 창 24장에서 리브가가 성문 앞 우물 곁에서 아브라함의 종에게 모습을 드러낼 때이다. 이삭의 신부감을 구하는 이 목가적인 이야기는 너무나 친숙하여 암송할 필요도 없고 너무나 단순해서 주석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게다가 이 이야기와 리브가의 전 생애의 내용은 둘 다 같은 무대에서 다른 배우들의 단막극과 관련하여 다루어진다.|하지만 우리는 처음부터 이야기의 모든 행에서 나타나는 그 처녀의 성격의 과단성에 주목한다. 이것은 독자들로 하여금 다음 장들에서 그녀 자신이 보여주는 적극적이고 야심 많고 열정적인 여인과의 만남을 준비시킨다. 비록 남편의 사랑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창 24:67) 리브가는 20년 동안 한 명의 자녀도 낳지 못했다(창 25:20, 26). 사라처럼 그녀 역시 불임이었으며 20년이 지난 후 이삭의 특별한 중보 기도 후에 비로소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쌍둥이 아들을 허락해 주셨다. 바울이 롬 9:11에서 말한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은 의아하게 여겨서 질문하는 부모에게 준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창 25:23)는 이상한 예언의 이유였다. 이 예언 때문이었는지 어떤 다른 이유에서인지 어머니의 특별한 사랑을 받은 자는 작은 아들 야곱이었다(창 25:28).|야곱으로 하여금 이삭을 속이게끔 한 자도 그녀였고(창 27:5-17) 그 속임으로 인해 닥친 위험한 상황에서 야곱을 벗어나게 할 궁리를 고안한 사람도 그녀였다(창 27:42-46). 야곱이 신변의 안전을 위해 반드시 집을 떠나야만 하게 되었을 때 리브가는 아람에 있는 자신의 친척집에 야곱을 보낼 것을 제안하고 그녀의 친척 가운데서 야곱의 결혼 상대를 구하는 것이 바람직함을 동기로 내세웠다. 아마도 그녀는 지금 사랑하는 아들을 이 여행에 떠나 보내는 것이 그를 영원히 떠나보내는 것임을 깨닫지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러한 일은 흔히 일어난다.|야곱이 25년만에 가나안으로 돌아왔을 때 아직까지 살아있었던 이삭보다 나이가 더 젊었음에도 불구하고 리브가는 헤브론 근처 막벨라굴에 매장되었다는 이 한가지 사실만이 우리에게 확실하다(창 49:31).|성경에서 리브가는 창세기 외에서 앞에서 인용한 로마서(롬 9:10-12)의 구절에서만이 언급된다. 그곳에서 그녀는 단지 그와 같은 다른 성격과 운명을 가진 두 아들 에서와 야곱의 어머니요 이삭의 아내로서만이 중요성을 가진다. 이외에도 창세기에서 그녀는 동일한 동방 혈통 출신으로 순수한 혈통을 지닌 아브라함의 가문에 기여한데 의의가 있다. 실로 그녀는 오랜 세대에 걸쳐 인종학적으로 놀랄만한 가장 위대한 요인(factor)으로 입증된 가나안인과 다른 비 히브리적 요소들로부터의 분리의 전통과 순수한 혈통, 즉 히브리 민족의 영속성을 이스라엘의 족장들에게 전수하였다.(J. Oscar Boyd, ISBE)||#2. 신약성경.||레벡카 즉 리브가는 신약성경에서 롬 9:10에 한번 나온다: "이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는데".
수레
rJevda
수레, 전차.||#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레데는 '병거, 전차' a chariot, '네 바퀴가 달린 일종의 탈 것'(Isidor., Hispal. orig. 20, 12)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레데는 신약성경에서 계 18:13에 한번 나오며, '수레'를 의미한다: "계피와 향료와 향과 향유와 유향과 포도주와 감람유와 고운 밀가루와 밀과 소와 양과 말과 수레와 종들과 사람의 영혼들이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레판
@RemfavnJ
레판 Remphan.||렘판은 토성과 동일하거나 관련이 있다고 생각되는 신의 이름이다. 70인역본에서는 이 단어를 레이판이라고 읽는데 혹자는 이것이 맛소라 사본의 독법인 키윤(RSB기윤, AV 치윤)을 잘못 음역하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혹자들은 애굽의 토성신의 세브(Seb)의 이름 중 하나인 레파(Repa)를 고의로 교체한 것이라고 생각한다.|신약성경에서 렘판은 행 7:43에 한번 나오며, 암 5:26에서 인용한다: "몰록의 장막과 신 레판의 별을 받들었음이여 이것은 너희가 절하고자 하여 만든 형상이로다 내가 너희를 바벨론 밖에 옮기리라 함과 같으니라".|(참조: NBV).
흘러 나리라
rJevw
흐르다 flow.||#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레오(Homer 이래)는 '흐르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레오는 신약성경에서 요 7:38에 한번 나온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말씀하시다
rJevw
말하다 say||동사 레오는 '말하다'를 의미하며, 수동태로만 사용되었다.|신약성경에서 24회 나오며, 한글 개역 성경에서 '말하다, 이르다, 가라사대'라는 의미로 번역했다.|아래의 원어 성구 사전을 보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레기온
@Rhvgion
레기온 Rhegium(지)||레기온은 이탈리아 반도의 끝, 시실리의 메시나(Messina) 맞은 편 네이프레스(Naples)에서 남남동쪽으로 248마일에 위치해 있는 고대 헬라인들이 건설한 도시이다. 바울은 남동부 시실리의 수라구사(Syracuse)를 떠나 이 항구에 이르렀다. 그는 레기온에서 하루를 지낸 후(행 28:13) 남풍의 도움으로 이튿날 브디올에 이르러 이곳에서 머물러 있다가 육로로 로마로 갔다. 레기온은 전설에 나오는 무서운 바다 괴물 스킬라의 동굴이 있는 곳이었다. 레기온은 오늘날의 레기오(Reggio)이다.|(참조: HB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