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해설 31 페이지 > 기독정보닷컴

거스리다
ajnqivsthmi
대적하다, 대항하다, 거역하다, 반대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안디스테미(Homer 이래)는 안티($473: 에 반대하여)와 히스테미($2476: 서다)에서 유래했으며, '대적하다, 대항하다, 거역하다, 저항하다, 반대하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안디스테미는 신약성경에서 14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안디스테미는 '거역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엇다(롬 13:2; 롬 9:19).||(b) 안디스테미는 '대적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딤후 3:8; 딤후 4:15; 약 4:7; 벧전 5:9; 마 5:39; 엡 6:10).||(c) 안디스테미는 '대항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눅 21:15; 행 6:10).||(d) 안디스테미는 갈 2:11에서 아마도 '반대하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감사하다
ajnqomologevomai
동의하다, 찬양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동사 안도몰로게오마이는 안티($473:…대하여,대신에)와 호몰로게오($3670)의 합성어이며, '동의하다, 합의를 보다, 일치에 이르다, 기꺼이 허락하거나 신청하다, 어떤 일에 대해 감사를 표현하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안도몰로게오마이는 70인역본에서 6회 나오며, 시 79:13에서 야다(찬미하다, 칭찬하다, 고백하다)의 역어로, 단 4:34에서 셰바흐(찬미하다, 찬양하다)의 역어로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안도몰로게오마이는 신약성경에서 눅 2:38에 한번만 나온다: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구속됨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하니라". 한나의 찬양은 그녀가 늙은 나이에 경험한 하나님의 행위에 대한 응답이다. 시편기자의 신앙을 따라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와 사람들에게 하는 증거를 연결시키고 있다.|(참조: O.Michel; D.Furst).

a[nqo"
꽃||#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안도스(Homer 이래)는|(a) '꽃',|(b) '꽃들의 향기'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안도스는 신약성경에서 4회 나오며, '꽃'을 의미한다(약 1:10; 약 1:11; 벧전 1:24).|(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숯불
ajnqrakiav
숯불||#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안드라키아(Homer 이래)는 안드락스($440)에서 유래했으며, '숯불, 숯불 무더기(덩어리)'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안드라키아는 신약성경에서 2회 나온다.|요 21:9에서 "숯불"은 요 18:18의 "숯불"을 연상시킨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a[nqrax
숯, 숯불.||#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안드락스(Thu., Aristoph. 이래)는 기본어이며, '숯(coal), 숯불, 즉 타는 혹은 살아 있는 숯불'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안드락스는 신약성경에서 롬 12:20에 한번 나온다: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이 구절은 잠언 25:22에서 가져온 격언적 표현이다.|네가 너의 원수에게 베푼 호의로 말미암아 (마치 숯불이 그의 머리 위에 쌓아져 있듯이 그를 괴롭게 하는) 그가 너에게 행한 잘못에 대한 기억을 그 안에서 불러 일으켜, 그는 보다 더 신속하게 회개할 것이라는 것이다. 아라비아인들은 예리한 정신적 고통을 일으키는 것을 '마음의 불타는 숯불'과 '간장 속의 불'이라고 불렀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사람을 기쁘게 하는
ajnqrwpavresko"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고 노력하는 (자), 사람을 기쁘게(즐거이) 하는 (자)||#1. 헬라어의 용법||형용사 안드로파레스코스는 안드로포스($444: 사람)와 아레스코스(기쁘게하는)에서 유래했으며,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고 노력하는 (자),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안드로파레스코스는 70인역본에서 시 53:5에 한번 히브리어 상당어 없이 나타난다. 여기에서 '하나님이 사람들을 기뻐하는 자들의 뼈를 흩으셨다'고 말한다.||#3. 신약성경의 용법||안드로파레스코스는 신약성경에서 2회 나오며,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엡 6:6에서 안드로파레스코스는 종에 대한 규범에서만 나온다: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종들은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한 아첨하는 식이 아니라, 주를 두려워 하는 마음으로 그들의 주인에게 복종하여야 한다.|골 3:22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참조: H. Bietenhard)
사람의
ajnqrwvpino"
사람의, 인간의 human.||#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안드로피노스(Homer 이래)는 안드로포스($444)에서 유래했으며, `인간의, 인간에 속한'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안드로피노스는 70인역본에서 13회 나오며, 아담, 에노쉬, 에나쉬의 역어로 사용되어 `사람'을 나타낸다(민 5:6; 민 19:16, 민 19:18; 단 7:4, 9).||#3. 신약성경의 용법||안드로피노스는 신약성경에서 7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안드로피노스는 일반적으로 창조된 세상의 일부인 인간에 대해 사용되었다.|약 3:7에서 동물과 구별된다: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며 벌레와 해물은 다 길들므로 사람에게 길들었거니와".|벧전 2:13에서 안드로피네 크티세이("인간 제도")는 인간의 제도보다는 오히려 `인간 창조물'을 의미하는 것 같다. 이는 인간의 제도를 표현하기 위해 크티시스가 사용된 예가 없기 때문이다.||(b) 안드로피노스는 인간의 한계성을 강조하여 인간을 하나님과 구별하기 위해 사용되었다.|① 롬 6:19에서 하나님의 판단과 대조되는 인간의 판단을 묘사한다: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드려 불법에 이른 것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고전 2:13에서도 나타난다: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고전 4:3에서도 나타난다: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치 아니하노니".|② 고전 10:13에서 안드로피노스는 시험과 관련하여 나온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참조: Walter Bauer; J. Jeremias).
살인한 자
ajnqrwpoktovno"
살인하는 자.||#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안드로포크토노스는 안드로포스($444: 사람)와 크테이노(%562: 죽이다)에서 유래했으며, '살인하는 자, 살인자'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안드로포크토노스는 신약성경에서 3회 요한의 기록에만 사용되었다.||(a) 요 8:44에서 마귀는 처음부터 '살인자'이다.|(b) 요일 3:15에서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누구든지 '살인하는 자'이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인(~)
a[nqrwpo"
사람 man.||#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안드로포스(Homer 이래)는 아마도 아네르($435)와 옵스(%782: 사람의 얼굴, 눈)의 합성어로서 `사람의 얼굴'이라는 의미를 지녔다가 `사람, 인간'을 의미하게 되었을 것이다.|일반 헬라어에서 안드로포스는 짐승이나 신과 반대되는 `인간'을 의미하였다. 이 단어는 경멸적인 의미로 `노예'를 의미하였다(Hdt.와 다른 작가들에 의해 여성형으로도 사용되었다). 또한 본래 이 단어는 비난의 의미를 지니고 노예를 부를 때(Hdt.) 사용되기도 하였다. 즉 "이봐!"(Plato)이다.||#2. 70인역본의 용법||안드로포스는 70인역본에서 1500여회 나오며, 주로 아담, 이쉬, 에노스의 역어로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안드로포스는 신약성경에서 약 540여회 나오며, 다음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a) 안드로포스는 종(species )으로 `인간'을 나타낸다.|① 안드로포스는 동물(마12:12), 천사(고전 4:9), 그리스도(갈 1:12), 하나님(마 11:30)과 구별되는 인간을 나타낸다.|② 안드로포스는 약해지지 쉽고(약 5:17), 죽음(히 9:27), 죄(롬 3:4), 악(마 10;17)의 지배를 받으며, 아첨하고(눅 6:26), 실수하기 쉬운(갈 1:1) 인간을 나타낸다. 카타 안드로폰이란 어구는 인간적 영역과 인간적 논리에 대한 유비(類比) 뿐만 아니라(갈 3:15; 고전15:32) 하나님에 비교하여 볼 때 인간의 사고와 행위의 제한적 속성(롬 3:5; 고전 9:8; 갈1:11)을 암시하며, 때로는 인간의 죄된 본성에 강조점을 두기도 한다(고전 3:3; 벧전4:6).||(b) 안드로포스는 추상적인 어떤 것과 관계나 소유의 관계를 표현할 때는 속격과 함께 셈어적 양식으로 사용되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눅 2:14).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은 선택된 메시야의 구원받은 공동체이다.|살후 2:3에서 불법의 사람은 적그리스도를 의미한다: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딤전 6:11에서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을 섬기는 기독교인이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딤후 3:17).|(참조: Walter Bauer ; J. Jeremias ; J. Stafford Wright ).
총독이 되다
ajnqupateuvw
총독이 되다 be proconsul||동사 안뒤파튜오는 안티($473: ~대신에)와 휘파튜오(%846: 집정관이 되다, 최고가 되다)에서 유래했으며, '총독이 되다'를 의미한다.||동사 안뒤파튜오는 신약성경에서 행 18:12에 한번 나오며, 갈리오에 대해 사용되었다: "갈리오가 아가야 총독 되었을 때에 유대인이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대적하여 재판 자리로 데리고 와서".|(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안뒤파토스
ajnquvpato"
(지방) 총독, proconul||#1. 일반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안뒤파토스는 '총독'(지방, 식민지의)을 의미하며, 비문들과 파피루스 문서에 종종 나온다. 아우구스투스(Augustus) 황제는 로마 영토를 지방 식민 지구와 제국 지역으로 나누었다. 전자는 총독에 의해 주재 되었고, 후자는 때때로 지방 장관(propaetors)이라 불리는 황제의 총독들에 의해 다스려 졌다(Polyb., Dion. H., Lcian., Plut., and often in Dio Cass).||#2. 신약성경의 용법.||안뒤파토스는 신약성경에서 사도행전에서만 4회 나오며 한글개역성경은 '총독'으로 번역했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그치다
ajnivhmi
놓아주다 release||#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아니에미(Homer. 이래)는 아나($303)와 히에미(%239: 보내다)에서 유래한 합성어이다.|이 단어의 기본 의미는 긴장 해소이며,||(a) '돌려주다, 풀어주다, 늦추다'|(b) 비유적으로 '단념하다, 소홀히 하다, 가라 앉히다, 진정시키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아니에미는 신약성경에서 4회 나오며, 사도행전, 에베소서, 히브리서에만 사용되었다.||(a) 사도행전에서 아니에미는 '풀어주다, 늦추다'를 의미한다.|① 행 16:26, "이에 홀연히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② 행 27:40, "닻을 끊어 바다에 버리는 동시에 킷줄을 늦추고 돛을 달고 바람을 맞추어 해안을 향하여 들어가다가".||(b) 엡 6:9에서 비유적으로 '그치다, 그만두다'를 의미한다: "상전들아 너희도 저희에게 이와 같이 하고 공갈을 그치라 이는 저희와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니라".||(c) 히 13:5에서 '버려두다, 격려하지 않다'를 의미한다: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참조: R. Bultmann; Walter Bauer; J. H. Thayer).
긍휼 없는
ajnivlew"
자비없는.||형용사 아닐레오스(Herodian)는 '무자비한, 무정한'을 의미한다.|신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2:13에 한번 나오며, '자비없는'이란 의미를 지닌다: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참조: Walte Bauer; J. H. Thayer).
씻지 않은(아니한)
a[nipto"
씻지 않은 unwashed.||#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아닙토스(Homer 이래)는 부정 접두사 아(%107)와 닙토($3538: 씻다)에서 유래했으며, '씻지 않은' unwashed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아닙토스는 신약성경에서 2회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 사용되었다.||(a) 막 7:2, "그의 제자 중 몇 사람의 부정한 손 곧 씻지 아니한 손으로 떡 먹는 것을 보았더라".||(b) 마 15:20,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아닙토스는 70인역본에 나타나지 않지만 구약성경은 사역과 기도시에 손이 깨끗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레 15:11; 출 30:19-출 30:21 등). 유대교에는 식사 전에 손씻는 관습이 있었으며, 제자들이 씻지 않은 손으로 식사하였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요구 조건이 형식주의적임을 드러내셨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F. Hauck).
다시 살다
ajnivsthmi
일어나다 raise, arise.||1817 $1817 엑사니스테미|일어나다 to raise, arise.||#1. 아니스타나이와 엑사니스타나이의 의미.||(a) 타동사 및 자동사 용법에 비추어 볼 때 이 용어들은 단순형을 따르며, 성경에서 그 의미는 일반적 용법과 일치한다.|① 타동사로 사람에 대해(Homer. 이래) '일으켜 세우다' to raise up, 예를 들면 누워 있거나 웅크리고 있는 사람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행 9:41); 잠자고 있는 자를 '깨우다' to awaken; 어떤 사람을 어떤 직책에 '세우다', 대제사장을 '세우다'(히 7:11, 히 7:15); 사람을 '추방하다'; 사물에 대해(Post-Homeric): 기둥이나 제단을 '세우다'; 성벽을 '보수하다'.|② 자동사로, 잠에서(행 12:7), 침상에서(눅 11:7) '일어나다, 깨다'; 특히 병자(눅 4:39)와 절름발이(막 9:27; 행 14:10)에 대해; '회복하다'; '말하기 위해 일어서다'(눅 10:25; 행 5:34; 행 13:16; 행 15:5), 재판에서 재판관이나 증인으로 말하기 위해 일어나는 것에 대해(막 14:60및 병행구 막 14:57); '대적하여 일어나다'(막 3:26; 행 5:17).||(b) 다음의 의미들은 독특하며, 적어도 성경에서 사용될 경우 특이한 강조점을 지닌다.|① '일어나 좇으니라'(막 2:14; 병행구 7:24; 행 8:27).|명령법으로 '일어나서 ~가라'(행 8:26), '일어나 ~들어 가라(행 9:6).|② 수혼법에 의한 결혼으로 죽은 형제의 '자손을 일으키다'(아이를 얻다), 마 22:24와 병행구|③ (역사에서) 어떤 인물을 소개하다. 신 18:15, 신 18:18; 왕상 14:14; 렘 23:4; 렘 30:9; 겔 34:23를 인용해서 예수님을 보낸 것에 대해, 행 3:22; 행 7:37; 행 3:26.|'아무를 고소인으로 세우다'|④ 신학적으로 가장 중요한 의미로, '죽은 자로부터 일으키다', 혹은 자동사로 '죽은 자로부터 일어나다'.||#2. 헬라 세계에서 부활.||헬라인들은 이중적 의미에서 부활을 이야기 한다.||(a) 부활은 불가능하다(Hom. Il.)||(b) 부활은 고립된 기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Plat. Symp.).|헬라인들에게는 시대의 마지막에 일반 부활이 있으리라는 사상은 생소한 것이다. 실제로 이 사상은 프리지아의 비문에서 비난을 받는다. 행 17:18에서 아나스타시스는 청취자들에게 고유명으로 잘못 이해되어진 것 같다(참조: 행 17:31이하).||#3. 구약성경과 유대교에서 부활.||구약성경은 왕상 17:17이하; 왕하 4:18이하; 왕하 13:20이하에서 개인의 부활에 대해 자세히 언급한다. 그것은 종말론적 형태에서 일반적인 부활의 소망을 위한 내적 준비였다(겔 37:1-14; 사 53:10; 욥 19:25이하; 시 73). 그러나 이것은 페르샤의 영향에서 떨어져 공식화 되지는 않았다. 부활은 사 26:19의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와 단 12:2의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에서 최초로 매우 뚜렷해진다. 그리고 그 후 묵시 문학에서 보다 더 포괄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중간적인 상태를 획득한다는 교리에서 처음에 의인의 부활이 있고 끝에 악인의 부활사상이 더 즉시 흥미를 일으킨다.|사두개인과 사마리아인들은 이 소망을 거부했다(막 12:18과 병행구 행 23:8; Jos. Bell., 2, 165; Ant., 18, 16). 이 거부는 지속적으로 되풀이 되었다: Ber., 9, 5; "미님(Minim)은 단지 한 세상만 있다고 말한다"; Chag., 776, 4; Elisa ben Abuja는 "죽은 자의 부활은 없다"고 하였다. Sanh. 10, 1은 여기에 정면으로 맞선다: "죽은 자의 부활을 토라에서 추론할 수 없다고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미래 세상에 참여하지 못한다". 후기 유대교는 부활 소망을 신앙의 확고하고 필수적인 요소로 포함한다. 매장지에서 선언되는 송영 가운데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T. Ber., 7, 5): "그가 너희를 일으키리라. 자신 그의 말을 지켜 죽은 자를 일으키시는 자를 찬미할찌어다". 헬라 유대교에서 부활의 소망은 영적화 되었다. 요세푸스도 필로도 아나스타시스를 부활의 의미로 사용하지 않는다. 요세푸스는 바리새인들의 교리에 의해 불멸에 대한 소망을 해석한다(Bell., 2, 163). 필로는 불멸을 삶의 계속으로 이해하지 않고 신비적으로 이해하여 개인적인 일로부터의 해방, 새로운 탄생으로 본다(Quaest, 출 2:46, Harris, p. 60이하). 그는 Sacr. AC, 5에서 영혼의 승천을 기술한다. 지옥은 하나님으로부터의 분리이며, 지금 여기에 이미 실재한다.||#4. 신약성경에서 부활.||(a) 신약성경은 죽은 자로부터의 개인적인 부활에 대해 말한다. 잠들어 있거나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을 일상적으로 불러 손으로 그를 붙잡아 일으켜 세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적을 행하는 자는 죽은 자에게 그와 같이 행동하고, 그들이 살아난다(막 5:42; 막 9:27을 함께 참조하라; 행 9:40과 행 9:34). 신약성경 자체가 가르치고 있는 바와 같이 그러한 과정들은 주변 세계의 사상에 이질적인 것이 아니었다(막 6:14; 히 11:35).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 20:10이하에서는 분별할 수 있는 능력임을 보여준다. 특히 예수님의 생애에서 보여지는 부활에 관한 기록들의 특징은 진지하고, 침착하고 엄숙하다. 부활은 메시야 시대의 표징이며, 따라서 고립된 기적들이 아니다(마 11:5; 요 11:25-26; 참조: 요 5:20 이하; 요 6:39-40, 요 6:44, 요 6:54). 마 27:53은 이와 같은 연관성 내에서 이해되어야 한다.||(b)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 자신에 의해 선언되고(막 8:31과 병행구; 막 9:9과 병행구 막 9:31과 병행구 막 10:34) 초기의 선포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심은 메시야의 영광으로 높이신 천부의 역사로 묘사된다(행 1:22; 행 2:24, 행 2:31이하; 행 4:33; 행 10:41; 행 13:33이하; 행 17:3, 행 17:31; 롬 1:4; 고전 15:1이하).||(c) 예수님의 부활은 일반 부활의 첫 열매이다(행 26:23: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고전 15:20: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 고전 15:21: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골 1:18: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신약성경에서도 신앙의 내적 논리는 부활을 지향한다(고전 15:22; 롬 8:11; 요 6:39-40; 요 6:44, 요 6:54: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드러지는 관점은 이중적 부활 사상이다(요 5:29: "생명의 부활 …심판의 부활"; 참조: 롬 14:9; 고후 5:10). 아마도 눅 14:14("의인들의 부활")과 확실히 계 20:5-6("첫째 부활")에서는 유대 전승을 따르며, 생명의 부활은 천년왕국의 시작 무렵 시대에 선행하는 행위로 보여진다. 만약 고전 15:23이하에서 토 텔로스가 세상의 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죽은 자의 "휴식"을 의미한다면, 고전 15:23이하도 이와 같은 식으로 이해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살전 4:16이하에서 부활한 신자들과 아직 살아있는 자들이 주와 연합하는 일은 심판 없이 일어나는 것으로 여겨진다. 계 2:16; 살후 1:9-10; 고전 4:5; 고후 5:10에는 다른 견해가 우월한 것으로 보인다. 부활 개념들은 유대교에서와 같이 유동적이다. 비록 신자들은 그것을 현재 이미 소유하고 있긴 하지만 이 생명의 부활은 여전히 신자들이 소망하고 추구하고 있는 목적이다(빌 3:11; 엑사나스타시스, 신약성경에서는 여기서만 발견됨). 딤후 2:18에서는 영지주의자들의 오류와 격론을 벌인다: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 함으로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리느니라"(참조: Menander in Iren., I, 23, 5). 엡 5:14에서는 비유적 의미가 강하다: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고린도에서 부활을 부인한 자들은(고전 15:12) 아마도 유대의 대망의 유물론으로 인한 것이다.|(참조: A. Oepk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