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토스
skovto"
암흑 darkness, 어두움 gloom.||#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스코토스(Homer이래)는 기본어이며, '어두움, 흑암, 모호함'을 의미한다.||(a) 스코토스는 문자적 의미와 비유적 의미로 사용되었다. 스코토스는 행동이나 예지를 방해함으로 혹은 근심이나 위험을 야기시킴으로써 존재 의미를 지니는 덮어가리는 영역으로 경험되는 어두움이다. 어두움에서 사람은 불안하여 주위를 더듬는다(Ploto, Phaedo, 996). 왜냐하면 어둠에서는 인간의 시력이 엄격하게 제한을 받기 때문이다. 따라서 볼 수 있는 자라도 어두움에서는 눈 먼 자가 되며, 어떤 길로 향해야 할지를 모른다. 그러므로 어두움은 "객관적인 위험과 주관적인 불안의 영역"으로 나타난다(H.Conzelmann).|만일 빛이 참된 잠재적 가능성의 영역이라면 빛에서 끊어져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죽음을 의미한다. 죽음은 어두움이다. 그러므로 스코토스는 항상 죽음의 어두움이다. 음부는 죽은 자의 영역으로서 어두움이며, 형벌의 장소이다.|이 영역은 이미 현재의 삶 속으로 들어와 있다. 어두움은 맹목의 형태로 인간을 영향할 수 있다.||⒝ 스코토스는 비유적 의미로 인간의 생활 방식과 행동 방식을 묘사하는데 사용되었다. 따라서 이 단어는|① 인간의 '은둔, 숨김, 무명',|② 행위의 '비밀성, 은밀성, 기만성',|③ 말의 '난해함'이나 '모호함, 교화, 통찰력, 지식의 결핍'을 나타낸다.(참조: H.Conzelmann).||#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스코토스는 70인역본에서 100회 이상 나오며, 주로 호세크 어군을 번역하여 '어둠, 어두컴컴함, 암흑'을 뜻하며 비유적 의미로 '무지, 맹목, 미개, 악, 숨음, 슬픔'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여기서 흑암은 세상을 덮고 있던 태초의 흑암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빛의 주만이 아니다. 흑암도 그에게 굴복한다. 그는 흑암을 창조하셨고(사 4:7) 흑암을 지어 밤이 되게하셨다(시104:20;창1:5). 그는 그의 구원사역에서 애굽에 흑암을 보내어 밤이 되게 하실 때와 같이 흑암을 사용하실 수 있다(출 10:22).|사실상 하나님이 어두움을 다스리시는 주이시더라도 인간에게 절대적인 이와 같은 위협의 힘이 자동적으로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헬라 세계와 마찬가지로 어두움은-생명에 위협을 준다는 의미, 나에게 해로운 것이라는 의미, 도덕적 악이라는 의미에서의-해롭고 악한 것 및 치명적인 등등의 뜻을 총망라한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스코토스는 신약성경에서 30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스코토스는,|① 막 15:33과 병행구, 마 27:46; 눅 23:44에서 문자적 의미로 사용되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혔을 때 해가 어두어진 것을 나타낸다: "제 육 시가 되매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 구 시까지 계속하더니".|어두움의 세력은 예수님의 수난에 대해 지배적으로 역사했다: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을 때에 내게 손을 대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이제는 너희 때요 어두움의 권세로다 하시더라"(눅 22:53).|② 마태복음에 의하면 스코토스는 미래 형벌의 장소이다(마 8:12; 마 22:13; 마 25:30; 벧후 2:17).||(b) 스코토스는 비유적 의미로 사용되었다.|① 자연인은 어두움의 지배 아래 살고 있다. 이러한 자들은 어두움에 살고 있는 자들에게 속한다(마 4:16에서 사 9:2을 인용). 이러한 자들은 죽음의 어두움을 피할 수 없다(눅 1:79). 그러나 특히 어두움은 하나님께 대한 어두움으로 나타난다. '계시자를 만나기 전에는 모든 사람들의 생활은 어두움과 죄 안에 놓이게 된다'(R.Bultmann). 이 영역에서 "사탄의 능력"이 지배력을 가지고 있다(행 26:18; 엡 6:12). 그런 세력이 사람으로 하여금 어두움의 사악한 일을 하도록 강요한다(요 3:19; 롬 13:12; 엡 5:11). 어두움을 통하여 율법에 충실한 유대인들은 완전히 눈먼 자가 되어 결국 어두움 가운데 쫓겨나게 되는 것이다(마 8:12).|② 행 13:11에서는 하나님이 바울에 의해서 말한 성령의 말씀으로 바예수의 눈을 어둡게 하신 것이다. 창조 때처럼 하나님은 어두운데서 인간의 마음 속으로 비추신다(고후 4:6). 그는 또한 어두움을 지배하시는 주님이시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주권은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자기의 거룩한 백성을 어두운데서 그의 놀라운 빛 가운데로 부르시고(벧전 2:9) 그의 사랑하신 아들의 왕국으로 부르시기(골 1:13) 위하여 세상으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다.|③ 요일 1:6: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이거니와". 단순히 입술로 빛에 충실을 고백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면서 동시에 어두움에서 걷는다는 것은 있을 수 있다. 이러한 대립 명제가 옳다고 주장하는 자는 거짓말장이다. 자신의 전 생명과 존재에 영향을 끼치며 형제 사랑을 표현하는 그러한 유형의 신앙을 가지고 있지 못한 자는 여전히 어두움에 있다.|④ 참 빛을 완강히 부인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기를 거절하며 어두움의 일을 행하는 자들에게는, 특별히 거짓 교사들에게는(벧후 2:17; 유 1;13) 언젠가 무엇보다도 가장 깊은 흑암 즉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게 될 것이다. 이 심판시에 주께서는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실 것이다(고전 4:5). 다른 자들은 받아 들여지는 반면에 이와 같은 어두움의 사람들은 종말의 멸망의 어두운 곳으로 쫓겨갈 것이다(마 8:12; 마 22:13; 마 25:30). 이와 같은 심판은 그리스도의 재림시에 발생한 것으로 기대된다.|행 2:20에서(욜 2장을 인용하여)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면 해가 변하여 어두움이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살전 5:4-살전 5:6에서 바울은 갑자기 닥쳐올 파루시아에 대비하여 기독자들이 근신하여 깨어있을 것을 권면하고 있다(살전 5:4-살전 5:6).|(참조: H.C.Hahn; H.Conzelmann; Walter Bauer; J.H.Thay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