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해설 314 페이지 > 기독정보닷컴

지혜
sofiva
지혜 wisdom||#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소피아(Homer. 이래)는 '지혜'를 의미하며, 매우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지식에 관해 사용된다. 그러므로 이 단어가 뜻하는 미묘한 의미의 차이는 각각의 특수한 경우마다 문맥에서 찾아야 한다. 이 단어 및 단어군은 유별난 능력과 지식을 가리키는 것으로 초기에는 실제적인 영역까지도 포함했으나(목수의 소피아, Homer. I1), 후기에는 이론상의 지식에 중점을 두고 있다. 후기의 소피아는 가르침을 받을 수도 있고 습득할 수도 있는 지식으로 간주되었다. 스토아 학파에서는 이론과 실제가 일치한다: "지혜는 깨닫게 된 지식이다"라는 것이다. 지혜로운 자의 행동은 소피아이다. 그 행동에 있어서 지혜로운 자 그 자신은 스토아 철학의 필요 불가결한 주체이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소피아는 70인역본에서 약 260회 나오며, 주로 히브리어 호크마(지혜)의 역어로 사용되었다(출 28:3; 신 4:6; 삼하 14:20; 왕상 2:6; 왕상 5:9이하; 욥 4:21; 욥 11:6; 시 37:30; 잠 1:2, 잠 1:7; 전 1:13, 전 1:16; 전 1:18; 렘 8:9). 이 단어는 또한 다음에 나오는 단어들의 역어로 사용된다: 그리고 비나(이해, 잠 2:3; 잠 3:5); 테부나(이해, 왕상 3:1; 참조: 왕상 5:9 [왕상 4:29]; 잠 18:2); 다아트(지식, 잠 1:7, 잠 1:29); 무사르(징벌, 단련, 훈계, 징계, 권함, 훈계, 잠 8:33); 마하셰베트(사상, 착상, 출 35:33); 세켈(통찰력, 사려분별, 대상 22:12)의 역어로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소피아는 신약성경에서 51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전통적 용법.|복음서에서 이 단어의 용법은 일반적으로 구약성경 및 유대개념과 연관되어 있으며, 지혜는 하나님의 선물로 간주된다.|눅 2:40에서 예수님의 지혜가 '자라다'라는 말씀은 구약성경의 용례를 반영하고 있다(참조: 삼상 2:26). 이것은 율법의 지식과 경건한 삶의 형태를 가리키는 것이다. 눅 2:52에서도 같은 의미를 지닌다. 막 6:2에는 목수 아들의 지혜에 대한 나사렛 주민들의 놀라움이 묘사되어 있다(참조: 마 13:54). 사도행전에서 스데반도 또한 하나님께서 주신 성령과 지혜를 소유한 자로서 묘사되며, 바로 이 이유 때문에 그의 증거에 대한 반론을 펼 수 없었던 것이다(행 6:3, 행 6:10). 구약성경의 전례가 정확하게 언급되어 있다(행 7:10; 참조: 창 39:2이하, 창 39:21; 창 41:40-46; 시 105:21). 다가올 마지막 날 핍박 당할 때 변명할 말을 위해 지혜를 주시리라는 약속(눅 21:15)도 역시 동일한 용어로 공식화되었다.||(b) 유대인의 것과 같은 개념이 나타난다.|지혜가 사람들을 자기에게로 부른다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지혜를 인격체로 이해하는 전통이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마 11:19, 병행구절, 눅 7:35 "지혜는 자기의 모든 자녀로 인하여")라는 문장 배후에 놓여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예수님(그의 증거자인 요한도)은 구원을 가져다 주는 "지혜"의 입으로 이해된다. "이 세대"에 대한 심판의 말씀을 도입한다면(이것이 눅 11:49에서는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으로 소개되는 반면 병행구인 마 23:24이하에서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이해된다) 예수님은 땅에 오신 지혜로 이해될 수 있다. "이 세대"를 솔로몬의 지혜를 듣기 위하여 땅 끝에서 온 남방의 여왕과 대면시켰는데 여기에 함축된 책망이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라는 언명에서 확실시 된다(마 12:42, 병행구절 눅 11:31; 참조: 왕상 10:1-10; 대하 9:1-12). 사람들이 경멸하는 하늘의 지혜에 대해 생각해 볼 때 이 점을 매우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즉 예수님 안에서 이 지혜는 최종적으로 출현하였으며 소피아 기독론에 대한 거론은 일리가 있는 것 같다.||(c) 바울서신.|① 롬 11:33이하에서 바울은 지혜 용어와 지혜 개념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찬양한다. 이제 하나님의 지혜는 율법이 아니라 그리스도에게 연결되어야만 한다는 점이 다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기 때문이다(참조: 롬 10:4, 롬 10:9-10).||② 그러나 바울은 복음을 고린도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단순한 지혜의 말로 생각하지 않는다(참조: 고전 1:17; 고전 2:1; 고전 2:4). 그것은 십자가의 말씀이다(고전 1:18 이하). 동시에 바울은 그의 비판자들의 언어를 사용하여 이 말씀을 참된 지혜라고 묘사한다. 고린도인들에게 지혜는 분명히 이 시대에 속하지 않은 구원의 축복이며 이전에는 감추어졌으나 지금 우리의 종말론적 영화(glorification)를 위해 계시된 것이다. 계시를 받아들인 자들은 낮아졌다가 높임을 받으신 주님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지혜를 알기 때문에, 영적이며 지혜롭게 되고 현재와 미래의 모든 것을 알며, 새로운 시대가 완성될 때 심판 받지 않는다. 바울은 십자가를 무시하는 어리석음을 세상의 지혜라고 부름으로써 평가절하한다. 하나님은 사람보다 '지혜로운' 십자가의 어리석음으로 자신을 계시하셨다(고전 1:25). 그리스도께서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시며, 마찬가지로 믿는 자들도 그들 자신의 지혜는 없으며, 오직 어리석은 자가 되어 그리스도에게서만 능력과 지혜를 구할 때에 지혜롭다. 하나님은 어리석은 자들을 자신께로 부르심으로 지혜로운 자들을 부끄럽게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지혜로운 것들을 무효로 하시기 위해 지혜롭지 않은 것들을 택하셨다. 하나님께서 예수님 자신을 우리의 지혜가 되게 하셨으므로 자랑할 여지가 없다. 십자가는 헬라인들과 서기관들의 지혜를 어리석게 만든다. 하나님께서는 모두가 하나님을 알도록 세상에게 그의 지혜를 줄지라도 세상은 자신의 지혜를 통해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전 1:21). 하나님을 아는 것은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신다는 전도의 어리석음, 즉 그 메시지에 일치하는 선포의 형태를 통해서이다(고전 2:1). 이러한 원칙에서 바울은 오직 십자가에서의 하나님의 시작에 기초해서, 그리고 종말과 관계 있는 믿는 자들이 세상과 확고하게 거리를 둠으로 고린도인들이 그리스도에 대해 하나님의 지혜라고 말하는 것을 지지한다. 물론 많은 해석자들은 세상의 지혜를 헬라 철학에 속하는 것으로 보며, 따라서 바울은 여기에서 특정한 영지주의의 형태와 그것과 관계된 카리스마적 언설에 대해서가 아니라 고린도의 교육받은 계층에 호소하는 철학적이며 수사적인 복음에 대한 관념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고 결론짓는다.||(d) 골로새서와 에베소서|골 1:9과 엡 1:8에서 하나님의 뜻과 가치있는 행위를 포함하는 기독교적 지식의 성장을 소피아로 부른다. 이 지혜는 은혜를 얻는다(엡 1:7). 이 지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종말론적 축복에 대한 지식을 포함한다(엡 1:17-18). 이 지혜는 그리스도의 비밀에 대한 지식인데, 그리스도께는 모든 지혜의 보물들이 감추어져 있다(골 1:26-27). 이 지혜는 인간의 교훈인 영지주의적 교사들의 거짓 소피아(참조: 골 2:8)와 반대되는 것이다. 엡 3:10에서 문맥은 하나님의 각종 지혜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함께 그리스도께 들어감으로 성취되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숨겨졌다가 나중에 다시 높아지는 지혜의 개념은 공식화된다.||(e) 요한계시록|계 5:12의 죽임당한 어린 양은 종말론적 선물로 지혜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다(참조:7:12). 계 13:18과 계 17:9의 지혜는 비밀스러운 지식이다. 특별한 지식이 짐승의 수를 세고 계 17:1 이하의 환상을 해석하기 위해 요구된다. 오직 고백하는 자들만이 그 의미와 그 날에 일어나는 일의 결과를 이해할 수 있다.||(f) 야고보서|야고보서에서 지혜는 도덕적으로 올바른 발걸음이다(참조: 약 3:13, 약 3:17-18). 이 지혜는 다툼과 무질서가 아닌 평화로 인도한다. 이 점에서 지혜는 적대자들이 추구하거나 가르치는 지혜와 정반대의 입장에 서있다. 이 지혜는 이론적인 것이 않고 실제적이고 도덕적인 결과로 그 자체를 나타낸다.||(g) 베드로후서|벧후 3:15은 바울이 "그 받은 지혜대로" 썼다고 말한다; 따라서 그 말씀은 지혜를 사도의 가르침과 동등시하고 있다.|(참조: V. Wilckens).
공교히 만들다
sofivzw
지혜롭게 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소피조(Hes., Diog., Poxy.)는 소포스($4680: 지혜로운)에서 유래했으며,||(a) '지혜롭게 하다, 현명하게 하다, 가르치다'|(b) '지혜롭게 되다, 이해력을 가지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소피조는 70인역본에서 약 22회 나오며, 주로 하캄(지혜롭다)의 역어로 사용되며(왕상 5:11; 시 19:7; 잠 8:33; 전 2:15, 전 2:17), 삼상 3:8에서는 빈(깨닫다, 이해하다)의 역어로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소피조는 신약성경에서 2회 나오며, 디모데후서, 베드로후서에만 사용되었다.||(a) 딤후 3:15,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b) 벧후 1: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공교히 만든 이야기를 좇은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여기서 강조하는 선포된 믿음은 신화에 의한 것이 아니라 개인적, 역사적 만남에 기초한 것이다.|(참조: C. Brown).
지혜 있는
sofov"
지혜로운 wise||#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소포스(Theogn., Pind., Aeschyl. 이래)는 기본어이며,||(a) '숙련된, 능숙한, 숙달된'|(b) '지혜로운, 현명한'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형용사 소포스는 70인역본에서 약 200회 가까이 사용되었으며, 주로 히브리어 하캄(지혜로운, 슬기로운)의 역어로(창 41:8; 출 28:3; 출 35:10, 출 35:25; 신 1:13, 신 1:15; 신 4:6; 사 5:29; 삼하 13:3; 왕상 2:9; 대상 22:15; 욥 5:13; 욥 9:4; 시 10:107; 잠 1:5이하; 잠 3:35; 전 2:14, 전 2:16; 호 14:10; 사 3:3; 렘 4:22; 겔 27:8이하; 단 2:12, 단 2:21, 단 2:27 등) 사용되었으며, 그리고 빈(이해하다, 삼상 16:18); 하르톰(예언[점] 하는 제사장, 단 2:10); 나코아(똑바른, 잠 24:26); 하캄(지혜롭다, 욥 32:9; 잠 6:12; 잠 13:20; 잠 20:1)의 역어로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소포스는 신약성경에서 19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복음서.|마 23:34이하와 마 23:37이하의 두 위협은 유대 묵시 사상에서의 종말론적 지혜의 말씀을 반영한다. 여기서 예수님 자신이 지혜다. 그는 설교하고 있을 곳을 찾으러 오셨다. 그를 받아 들이지 않는 것은 멸망을 뜻한다. 지혜를 받아들이는 것은 또한 마 11:25이하 말씀의 기초가 된다. 지식은 특별히 어린 아이에게 나타남으로써 얻어지며 예수님께서 수고한 사람들에게 주는 안식의 선물은 대개 지혜의 선물이기 때문이다. 특히 계시자 자신이 계시의 내용이며 그는 그 자신의 사람들을 자신에게로 부른다. 두드러진 특성은 계시를 지혜있고 슬기로운 자들에게 숨긴다.||(b) 바울서신.|① 그의 십자가 신학을 전개시킨 근본적이고 광범위한 강해에서 바울은 세상의 지혜와 십자가의 메시지를 대조시킨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셨다(고전 1:20; 참조: 고전 3:19). 이것이 세상 지혜의 문장들과 기독교 지혜의 문장들을 대립시킨, 그러한 이야기나 논의에서 발생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은 행위 곧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의 죽음을 통해서였다. 왜냐하면 지혜가 본질적으로 일단의 지식 축적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일종의 존재 양식이듯이 마찬가지로 어리석음도 지식의 부족이 아니라 이 존재 양식의 결여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② 사람들은 창조물에서 하나님의 지혜를 마주치지만 하나님의 지혜에는 마음을 닫아 버리고 대신에 그들 자신의 지혜를 고안해 내려고 시도했다(참조: 고전 1:21; 고전 1:22; 롬 1:18이하).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에 관한 전도의 미련한 것을 통하여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려 하신다. 하나님의 진리에 대해 증거를 요구하는 모든 시도(참조: 고전 1:22)는 인간이 자기 자신을 자랑(고전 3:18이하)하는 모든 시도처럼 실패로 귀착될 수 밖에 없다. "고전 3:18절 이하의 의미로 볼 때 믿는 자들은 지혜로운 자들이다.|③ 고린도 교회 회중의 특성과 이 사도의 설교방법, 양자가 모두 구원의 사건에 관한 그의 설명을 명확하게 한다. 미련한 자, 약한 자, 멸시 받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택하셨다는 것은 고린도 교회의 조직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으로서, 인간의 표준에 의거하여 지혜롭다고 여기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셨음을 보여주고 있다(고전 1:26이하). 따라서 사람의 자랑을 심판하신다라고 구약성경에 선포된 하나님의 뜻이 성취된 것이다(고전 1:19; 고전 1:31).|④ 십자가의 전파(따라서 전도의 미련한 것을 통하여 지혜로 나아가는 역설적인 길도 역시, 고전 3:18)는 자기 영화와 당파에 대한 집착으로부터의 자유를 향한 부름이다. 따라서 이것은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단합 토대이며 보증이다(고전 3:18-23).|⑤ 바울이 소포스를 전문적인 의미가 아닌 일반적인 의미로 사용하기도 했다는 사실이 고전 3:10에 나타나는데, 이 구절에서 바울은 자신을 공동체의 "지혜로운 건축자"로 표현했고, 또한 고전 6:5도 그러한 용법으로 추측되는데 이 구절에서는 판단할 만큼 지혜로운 자가 그 공동체에 없는가를 질문하며 기독교 공동체는 세상 법정에서 고소해서는 안됨을 피력하고 있다. 엡 5:15에서 신자는 지혜 있는 자 같이 행해야 한다: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c) 야고보.|약 3:13에서 지혜를 친절한 일을 하는 선한 행위로 설명하고 있다. 이 서신은 명백히 반대하는 자들을 다루는 것으로 이들은(고린도에 있는 자들처럼) 그들 자신들에게 "위로부터" 온 지혜가 있다고 주장하였으나 오히려 그들은 다툼과 논쟁을 야기시키는 자들이었다(참조: 약 3:15이하). 야고보서가 이런 주장의 기초를 이루는 신념들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지혜는 화평할 수 있으며, 자비가 가득하며 위선이 없다는 것을 서술한 것이다(참조: 약 3:17). 이런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참조: 약 1:5).
서바나
Spaniva
서바나 Spain(지)||스파니아는 서바나 곧 '스페인'을 가리키며, 사도 시대에 피레네 산맥 남쪽 반도 전체였다.|로마에 보내는 바울의 편지에 2회, 분명히 로마 그리스도인들의 협력으로, 그가 방문하기를 소망했던 지역으로 언급되었다(롬 15:23; 롬 15:28). 그 사도가 서바나(Spain)에 도착한 적이 있었는지 어떤지는 확실히 알려지지 않았다. 그는 아마도 그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로마에서 순교당했을 것이다.|바울의 시대에 서바나는 제국에서 가장 완전하게 로마화된 식민지였다. 바울은 분명히 골(Gaul)이나 아프리카보다도 더 서바나로 가고 싶어했다.|(참조: HBD; Walter Bauer; J. H. Thayer).
경련을 일으키게 하다
sparassw
경련을 일으키게 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스파랏소(Aristoph.)는 스파이로(%628: 숨이 차다)와 유사어이며, '찢다, 이리저리 당기다, 떨리게 하다, 경련을 일으키게 하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스파랏소는 신약성경에서 4회 나오며, 귀신이 나가면서 경련을 일으키는 것을 나타낸다.||(a) 막 1:26,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으로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오는지라".|(b) 막 9:26, "귀신이 소리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가니 그 아이가 죽은것 같이 되어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죽었다 하나".|(c) 눅 9:39, "귀신이 저를 잡아 졸지에 부르짖게 하고 경련을 일으켜 거품을 흘리게 하며 심히 상하게 하고야 겨우 떠나 가나이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강보로 싸다
sparganovw
강보나 포대기로 싸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스파르가노오(Eur., Hippocr. 이래)는 스파르가논(%629: 감싸는 띠)에서 유래했으며, '강보나 포대기로 싸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스파르가노오는 신약성경에서 2회, 눅 2:7; 눅 2:12에만 사용되었다: "7 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일락 을 좋아하다
spatalavw
사치스런 생활을 하다, 방탕한 생활을 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스파탈라오(Polyb.)는 스파탈레(%630: 방탕한 삶, 호색, 사치)에서 유래했으며,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다, 방탕한(육욕적인) 생활을 하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스파탈라오는 신약성경에서 2회 나온다.||(a) 딤전 5:6, "일락을 좋아하는 이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b) 약 5:5,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연락하여 도살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지게 하였도다".|두 구절에서 스파탈라오는 '쾌락에 몰두하는 방탕한 생활을 하는 것'을 나타낸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스파오
spavw
(검을) 빼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스파오(Homer 이래)는 '끌어 당기다, 빼다, 뽑다'를 의미하며, 중간태로 검을 '뺀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스파오는 신약성경에서 2회 나오며, 검을 '뺀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a) 막 14:47, "곁에 섰는 자 중에 한 사람이 검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라".|(b) 행 16:27,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줄 생각하고 검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스페이라
spei'ra
보병대 military cohort.||#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스페이라(trag. 이래)의 기원은 라틴어이며, 보병대(Polyb.)를 뜻하며, 한 군단(legion)의 십분의 일(약 600명), 또는 외인부대인 경우 500명 또는 천명이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스페이라는 신약성경에서 7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막 15:16; 병행구 마 27:27과 요 18:3; 요 18:12의 그리스도의 수난 이야기에서 스페이라는 나타난다. 마가복음과 마태복음에 따르면 빌라도의 호위병은 예수님을 조롱하고 학대하기 전에 "온 스페이라"를 서로 불러 모았다.|요 18:3은 유다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서 스페이라와 몇 명의 하속들을" 얻었다 말한다. 예수님을 체포한 이 군대(RSV: band)는 횃불과 등과 병기를 갖추었지만 로마 "군대"는 아니다(Blinzler 94f.; contra Winter 44f).|요18:12은 예수님을 체포할 때에 천부장과 함께 온 같은 스페이라와 "유대인의 하속들"에 대해 언급한다. 이 스페이라도 로마 군대의 파견군이라고 할 수 없다.||(b) 행 10:1은 가이사랴에 주재하는 "이달리야 군대"에 속한 백부장 고넬료를 소개한다. 행 21:31은 예루살렘에 있는 "군대의 천부장"에 대해 말한다; 이것은 안토니아 성채의 로마 점령과 관련된다.|행 27:1은 "아구사도 군대"에 속해 있는 백부장 율리오를 소개한다.|(참조: G. Schneider).
덧 뿌리다
speivrw
뿌리다 sow.||#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스페이로(Hes., Hdt. 이래)는||(a) 문자적 의미로 '(씨를) 뿌리다'를 의미한다. '영적 씨를 뿌리다'(Aristot.), 사상을 '퍼뜨리다'(Plat.)라는 의미로도 사용되었다.|(b) '흩뿌리다, 퍼뜨리다, 낳다, 산출하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스페이로는 70인역본에서 약 60회 나오며, 히브리어 자라(씨를 뿌리다)의 역어로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스페이로는 신약성경에서 53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스페이로는 예수님의 비유에서 나오는데 밭에 뿌리운 씨앗에 대한 친숙한 이미지는 천국에 관한 심오한 교훈을 전해준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마 13:1-마 13:9, 병행구 막 4:1-막 4:9; 눅 8:4-눅 8:8)에서 예수님께서 스페르마를 하나님의 말씀과 동일시 한 것을 근거로 하여 천국 도래를 선포하는 것을 상징하는 씨 뿌리는 행위에 역점을 두고 있다.|이 비유에 대한 예수님의 해석은(마 13:8-마 13:23, 병행구 막 4:13 - 막 4:20; 눅 8:11 - 눅 8:15) 말씀이 뿌려진 네 가지 종류의 땅에 역점을 두고 있으므로 말씀에 대한 반응의 다양성을 예증한다. "길가에" 뿌리운 씨는 말씀을 이해할 능력이 없는 완악한 세속인을 상징한다. "돌 밭"에 뿌리운 씨는 영적인 열심의 부족으로 첫 반대에 부딪혀 쓰러지는 귀가 얇은 자를 상징한다. "가시떨기" 속에 뿌리운 씨는 심겨진 말씀이 이생의 염려로 기운이 막히는 이기적인 말씀 수용자로 묘사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좋은 땅"에 뿌리운 씨는 선포된 말씀을 받아들임으로 천국의 영원한 확장에 참여하는 구원받은 사람을 나타낸다. 대부분의 땅은 씨에 대하여 무반응을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비유는 영적인 수확의 차고넘침의 약속을 확장하여 복음전파를 계속할 것을 고무하고 있다. 인간적인 책임의 측면에서 이 비유의 교훈은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는 예수님의 가르침 때문에 긴장하여 받아들여야 한다.||(b) 고전 15:36이하에서 땅에 뿌리워진 씨의 비유(참조: 요 12:24)는 죽은 자들의 몸의 매장과 부활을 설명한다. 여기에서 스페이로는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어떻게 육체적 생명이 지속될 것인가를 보여주기 때문에 신학적으로 중요하다.|땅에 뿌리운 한 알의 밀알이 완전히 성장한 이삭으로 자라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땅에 묻힌 영의 생명의 싹이 성령에 의해서 생기를 받아 영광스런 새 몸으로 부활할 것이다. 땅에 심기운 케르넬(kernel)은 생명의 계속성에도 불구하고 싹이 난 식물과는 다른 것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다양한 여러가지 씨앗이 땅에 뿌리운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 종자에 적절한 몸을 마련해 주시며 장성한 식물에게는 그 몸에 옷을 입혀주시기 때문이다. "유추에 필요한 것은 동일한 점과 차이점을 결합하는 것인데 씨가 죽을 몸이 죽는 것처럼 '죽지' 않는다는 것은 동일한 점도 다른 점도 아니다"(F.F.Bruce)||(c) 고전 9:11에 의하면 포도원을 가꾸는 종처럼(참조: 고전 9:7) 영적인 열매의 씨앗을 뿌리는 이는 생활의 보상을 수확할 권리가 있다: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 육신의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d) 고후 9:6에서 스페이로는 그리스도인의 너그러움이나 활수함를 가리킨다: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바울은 복음에 대한 재정적 지원의 책임을 교회가 지고 있음을 강조하면서 여기서(갈 6:7이 이와 거의 대등한 구절임) 씨뿌리는 이가 뿌리는대로 그가 수확하는 영적 그리고 물질적 혜택이 결정된다고 주장하고 있다.||(e) 갈 6:7이하에서 이 주제가 세속적으로 오래되고 구약성경에서도 낯익은 '씨 뿌리기와 수확하기'라는 윤리적인 격언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로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참조: 욥 4:8; 잠 11:30; 잠 13:2; 암 6:12). 여기서 바울은 윤리적 행동을 심는 두 영역인 옛 성품과 새로운 성품에 주의를 집중시키고 있다. 육신에 씨를 뿌리는 것은 도덕적 타락이라는 확실한 결실을 산출하지만 반면에 영에 씨를 뿌리는 것은 영생을 산출한다.|약 3:18,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야고보는 여기서 윤리적 행동에 대한 하나님의 표준에 도달하는 것은 온유하고 겸손하며 화평으로 씨를 뿌리는 천국의 지혜를 소유한 자들에게 의해서만 성취되어진다고 덧붙이고 있다.|(참조: Walter Bauer; B.A.Demarest; S.Schulz).
시위병
spekoulavtwr
정찰병, 정탐.||#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스페쿨라토르의 기원은 라틴어이며, '정찰(병), 정탐', '특사, 스파이'를 의미한다.|황제들 밑에서 사자(使者)나 파수자 그리고 사형 집행자의 일을 하는, 종자이자 호위병의 일원이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스페쿨라토르는 신약성경에서 막 6:27에 한번 나온다: "왕이 곧 시위병 하나를 보내어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라 명하니 그 사람이 나가 옥에서 요한을 목 베어". 여기서 스페쿨라토르는 '사형 집행자'를 나타낸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부음이 되다
spevndw
(전제를) 붓다 pour out(a drink offering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스펜도(Homer 이래)는 `헌주, 또는 전제를 드리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스펜도는 70인역본에서 20여회 나오며, 히브리어 나사크(붓다, 바치다)의 어형을 번역한다.||#3. 신약성경의 용법||스펜도는 신약성경에서 바울 서신에만 2회 사용되었다. 바울은 스펜도의 용법에서 임박한 자신의 순교를 나타내는 비유로 관제의 부음을 사용한다. 이 관제는 피의 희생이나 대속제물과 같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헌신의 표현이다.|빌 2:17,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딤후 4:6,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참조: Walter Bauer; R. T. France).

spevrma
씨 seed.||#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스페르마(Homer 이래)는 스페이로($4687)에서 유래했으며, '씨'를 의미하며, 다음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a) 식물의 씨, 씨뿌리는 때에 대해 사용되었다.|(b) 동물의 '씨, 자손, 새끼', 신의 '씨'(divine seed),|(c) 전이된 의미에서 식물의 씨와 관련해서 '속이나 심, 핵심, 원재료, 기초, 요소',|(d) 사람의 씨와 관련하여, '자손, 어린아이', 또한 '족속, 인종, 가문(혈통)'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스페르마는 70인역본에서 약 217회 나오며, 주로 히브리어 제라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이 단어는 문자적 의미로 농업의 씨뿌리기(창 47:23; 사 55:10; 암 9:13)와 남성의 정액의 흐름(레 15:16; 레 22:4; 렘 31:27)을 의미하고, 개인적(창 4:25; 창 21:13)으로나 집단적(창 9:9; 시 89:4; 신 1:8)으로 '자손'이나 '후손'이란 비유적 의미로 사용되며, 그러므로 선택된 사회의 결합을 강조한다. 창 3:15에서 제라는 앞의 두 개의 개념을 모두 포함한다. 즉 집단적으로 씨는 사단과 싸우는 영적으로 새로와진 아담의 후손을 예시하는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사탄의 운명을 인봉하는 최고의 자손,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창세기에 나오는 약속의 본문에서 제라는 여호와의 언약을 믿는 아브라함의 영적 후손(창 15:5; 창 17:7, 창 17:8; 창 22:18)을, 시 22:30은 메시야의 씨(영적 후손)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비유적으로 자라는 여호와께서 땅에 이스라엘을 뿌리거나(호 2:23) 퍼뜨리는 것(스 10:9)과 여호와께서 선택된 나라를 열매 맺게 하는 것에 대해(겔 36:9) 사용되었다. 씨를 뿌리는 비유는 윤리적 행동에 대한 명령(호 10:12; 렘 4:3)과 악행에 대한 경고(욥 4:8; 잠 22:8)에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스페르마는 신약성경에서 44회 나오며, 다음의 의미로 사용되었다.||(a) 공관복음서에서 스페르마.|① 마 13:24, 마 13:27, 마 13:37 - 마 13:38에서 스페르마는 식물의 씨를 의미한다. 인자는 곡식(시토스)의 씨앗을 뿌리고 마귀는 가라지(지자니온)의 씨를 뿌리는, 곡식과 가라지의 비유는 현세대 동안에 선악이 동시에 성장함을 확증해 주고 있다.|마 13:32에서 스페르마는 같은 의미를 지닌다: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나물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병행구 막 4:31). 겨자씨의 비유에서 아주 작은 겨자씨(시나피)가 훌륭한 관목으로 성장하는 것은 천국의 하잘 것 없는 시작과 천국이 그 장엄함과 권능을 드러내는 마지막 사이의 대조를 강조하는 것이다.|② 마 22:24, 마 22:25에서 스페르마는 수혼과 관련하여 '후사'라는 의미로 나온다: "선생님이여 모세가 일렀으되 사람이 만일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에게 장가들어 형을 위하여 [후사]를 세울지니라 하였나이다, 우리 중에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 장가들었다가 죽어 후사가 없으므로 그의 아내를 그 동생에게 끼쳐두고"(병행구 막 12:19 - 막 12:22).|③ 눅 1:55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약속을 지킨다: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및 그 [자손]에게 영원히 하시리로다 하니라". 행 3:25; 행 7:5-행 7:6; 행 13:23에서도 마찬가지다.||(b) 요한의 기록에서 스페르마.|① 요 7:42에서 그리스도는 다윗의 후손이다: "성경에 이르기를 그리스도는 다윗의 씨로 또 다윗의 살던 촌 베들레헴에서 나오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며".|요 8:37에서 유대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나온다: "나도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아노라 그러나 내 말이 너희 속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계 12:17에서 그리스도의 순교자(증인)에 관하여 언급한다: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② 요일 3:9에서 하나님의 씨, 즉 성령은 믿는 자들 안에 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c) 바울 서신에서 스페르마.|① 고전 15:38에서 식물의 '종자'를 의미한다: "하나님이 그 뜻대로 저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고후 9:10에서 심은 자의 손에 '씨'가 온다: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② 롬 4:13이하에서 아브라함의 후손, 즉 유대인들을 가리킨다.|딤후 2:8에서는 다윗의 후손을 가리킨다: "나의 복음과 같이 다윗의 [씨]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라".|갈 3:16에서 그리스도에 관한 것이다: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롬 9:8에 교회에 관한 것이다: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③ 바울은 또한 롬 1:3에서 다윗의 씨, 롬 9:7에서 이삭의 씨에 관해 언급한다.|④ 바울의 경우 스페르마는 때때로 기본적인 혈육 관계를 넘어서서 구약 성도들의 영적인 후손들을 포함한다. 그러므로 신약성경에서의 아브라함의 후손이란 통상적인 표현은 이스라엘의 전체 가계에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족장과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을 모두 포함한다. 신약의 성도들은 아브라함의 참된 후손으로 표현되고 있다(갈 3:29). 그러므로 족장들에 대한 구약성경의 약속은 이스라엘의 물질적 축복을 초월하여 유대인들이든 이방인이든 간에 믿는 모든이에 대한 근본적인 영적 축복을 내포하고 있다(롬 4:16).||(d) 히 2:16에서 아브라함의 씨, 히 11:18에서 이삭의 씨, 히 11:11에서 일반 사람의 씨를 가리킨다.|(참조: Walter Bauer; S.Schulz; B.A.Demarest).
말쟁이
spermolovgo"
씨를 줍는(쪼는), 수다장이||#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스펠몰로고스는 스페르마($4690)와 레고(집어내다, 골라내다)에서 유래했으며, '씨를 집다'를 의미하며, 새들에 대해 사용되었다. 일반 헬라어 문헌에서는 '사기꾼'으로 사용될 뿐 아니라 문자적인 의미를 떠나서는 '잡동사니를 주워모아 생계를 꾸려가는 사람, 험담하는 사람, 수다장이, 재잘되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사람들에 대해 사용된다(참조: Arndt, 769).||#2.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스펠몰로고스는 신약성경에서 행 17:18에 한 번 아덴 사람은 스펠몰로고스를 바울에 대해 사용했다: "어떤 에비구레오와 스도이고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새 혹은 이르되 이 [말장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뇨 하고 혹은 이르되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보다 하니 이는 바울이 예수와 또 몸의 부활 전함을 인함이러라".|(참조: J.H.Thayer; Walter Bauer).
급히
speuvdw
서둘다, 노력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스퓨도(Homer 이래)는||(a) '서두르다, 재촉하다, 급하게 하다',|(b) '서둘러 …하다, 급히 …하다, 열심히 …하다'(B 19:1).|(c) '노력하다, 얻으려고 애쓰다'(Homer., Pind., Hdt.).||#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스퓨도는 신약성경에서 6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스퓨도는 (a)의 의미로 사용되었다.|① 행 20:16, "바울이 아시아에서 지체치 않기 위하여 에베소를 지나 행선하기로 작정하였으니 이는 될수 있는대로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이르려고 급히 감이러라".|② 행 22:18, "보매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되 속히 예루살렘에서 나가라 저희는 네가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말을 듣지 아니하리라 하시거늘".|③ 눅 19:5, "예수께서 그곳에 이르사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④ 눅 2:16,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b) 스퓨도는 (c)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벧후 3:12).|(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