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staurov"
막대기 stake, 십자가 cross.||#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스타우로스(Homer 이래)는 다음을 의미한다.||(a) 스타우로스는 '똑바른 막대기'이며, 검도용이나(Hom. Od., 14, 11) 기초를 쌓거나(Thuc. 7, 25, 5) 그 울타리를 치는 등(Homer 이후) 여러 목적들에 이용되었다.||(b) 스타우로스는 중죄인들을 신문하는 고문 기구이다. 스타우로스는 때때로 처형된 죄인을 매달아 놓은 장대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누구든지 볼 수 있는 곳에 처형된 죄인을 매달아 놓음으로써, 끔직함을 보여 그 이상의 처벌 효과를 보았다. 스타우로스는 수직으로 세워져 있는 말뚝에 좁은 의미에서 십자가를 이루는 똑같은 길이의 대들보로 교차되어 있는 처형 기구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 막대기는 T자형(라틴어, crux commissa)이나 十자형(crux immissa)의 형태를 취했다.||(c) 십자가는 잘 알려진, 가장 잔인하고 수치스러운 형벌 도구로서 헬라인들과 로마인들이 페니키아(베니게)인들로부터 차용한 것이다; 로마에서, 콘스탄틴 대제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가장 악질적인 범죄자들, 특히 가장 비천한 노예들, 강도들, 반란의 주동자와 선동자들을, 그리고 때로는 속주(provinces)에서 총독들의 변덕스러운 쾌락에 의해 정직하고 온순한 사람들도, 심지어는 로마 시민들도 이 십자가에 매달았다. 막대기나 대들보나 십자가에 매달거나 붙들어 매는 것은 아직 살아있는 사람을 처벌할 때 사용하는 방법이었다(참조: Hdt., 120, 4). 그러나 여러가지 처형 방식들 사이에는 차이점이 있음에 틀림없다. 교살할 경우는 다소 빨리 죽었다. 다른 한편 매다는 형벌은 사람에게 있어서 지리하고 고통스러운 것이었다.|스타우로스를 세우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었던 것 같다. 처형 대상의 사람을 처형 장소의 바닥에 놓여 있는 십자가에 묶어서 그대로 십자가 위로 들어올리는 방법이 있었던 것 같다. 그 대신에 아마 처형전에 나무를 땅에 박는 것이 일반적인 방법이었던 것 같다. 희생자는 가로대에 묶여졌으며 수평 들보와 함께 끌어올려져서 수직 나무 기둥에 고정되었다. 이것이 십자가 세우기의 방법 중에서 간단한 형태였으며, 노예들에게 대들보(patibulum) 운반의 형벌이 부과되었으므로 T자형(crux commissa)의 형태가 일반적으로 사용되었던 것 같다.|로마 관례에 의하면, 그 당시 십자가형의 절차는 다음과 같았다고 한다. 첫째로, 법률상의 유죄 선고가 있었다. 처벌이 선고 장소와 다른 어떤 곳에서 행해졌을 경우, 처형되는 사람은 보통 성읍 밖에 있는 장소까지 그 십자가(patibulum)를 지고 갔다. 노예 처벌의 전형적인 표현인 "십자가를 지다(스타우로스)"라는 말의 기원은 여기에 있다. 처형 장소에서 희생자는 벌거벗겨져서 채찍질을 당하였다. 처형되는 사람은 양 팔을 쭉 뻗친 채로 아마도 자기의 어깨에 지워져 있었을 대들보에 묶여졌다. 헤로도토스에는 못박았다는 한 실례를 소개한다. 요 20:20, 요 20:25이하에는 예수님의 손에 못을 박았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눅 24:39에는 그의 손과 발에 못을 박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나서 희생자는 대들보와 함께 막대기 위로 끌어올려졌다. 그 희생자는 기갈과 질식에 의한 지독한 고통 속에서 서서히 죽어갔다. 그 시체는 부패하거나 육식동물과 까마귀의 음식물이 되도록 처형대에 그대로 두었던 것이다. 때로 친지들이나 면식있는 사람들에게 그 시체가 인계되기도 했다.|1968년 6월에 주후 1세기 초엽, 고통스럽게 십자가에 달려 죽었던 젊은 남자의 뼈가 담겨있는 납골당이 예루살렘의 북쪽에 있는 무기 언덕(Ammunition Hill)에서 발견되었다. 양 팔뚝에 못이 한 개씩 박혀 있었으며, 그곳에 세번째 못이 있었는데, 그것을 양 발목을 한꺼번에 쳐서 박았다. 그의 다리는 요 19:32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린 두 명의 강도들의 다리처럼 꺽여있었다(참조: V.Tzaferis and others).||(d) 스타우로스는 70인역본에서 사용되지 않았다. 동사 스타우로오도 2회 정도 나올 뿐이다. 유대교 율법에는 십자가 처형이 없다. 돌에 맞아 죽은 사람을 나무에 매달아 하나님께 저주받아 죽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2. 신약성경의 용법||스타우로스는 신약성경에서 27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① 문자적 의미로 스타우로스는 공관복음에 두번 나타난다: 막 15:21에서 구레네 사람 시몬이 예수의 십자가를 지고 형장으로 간 것이다(병행구, 마 27:32; 눅 23:26).|요 19:17에서 그 상황을 다르게 묘사한다: "예수께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그곳으로 나아가신 것이다.|다른 공관복음에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에 대한 조롱을 묘사하는데(막 15:30, 막 15:32; 병행구 마 27:40, 마 27:42), 예수님께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도전했다.|② 요한복음에서 스타우로스는 고난 기사에 나오는데 요 19:19에서 빌라도가 패를 십자가 위에 붙였다고 한다(참조: 마 27:37; 눅 23:38; 막 15:26).|요 19:25에 의하면 여인들이 "십자가 곁에" 서 있었으며, 그 첫번 가까운 곳에 예수님의 모친이 있었다. 요 19:31에 따르면, 예수님과 강도들은 큰 안식일에 십자가 상에 그대로 방치되어 있지 않았다. 신 21:23을 암시한다. 안식일 전에 그들의 시체를 내리는 것은 유대교의 방식이다.|③ 복음서 외에서 스타우로스는 문자적 의미로 두번 나온다. 빌 2:8에서 예수님은 "죽기까지 복종하였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다. 이것은 종 예수를 종들의 십자가에 못박힘을 연결시켜 생각한 것이다.|히 12:2에서 '예수님이 자기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고 십자가를 참으셨다'고 한다.||(b)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의 신학적 문제.|① 바울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원하는 의미를 설명한다. 빌 2:8에서 바울은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말한다. 십자가의 죽음은 비하의 가장 낮은 단계이지만, 한편 복종의 완성이다. 주님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심으로, 구속 사역은 완성하셨다.|고전 1:17에서 바울은 지혜의 말을 사용하기를 거부했는데 이는 지혜의 말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원하는 의미를 설명하거나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십자가의 말씀이 죄인들에게는 어리석으나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감취었던 하나님의 지혜가 나타난 것으로서 십자가는 완전히 하나님의 지혜의 계시이다(참조: 빌 2:6, 빌 2:7).|빌 3:18에서 바울은 어떤 사람들을 십자가의 원수들이라고 한다. 그는 여기서 십자가의 구원하는 의미를 부인하지는 않으나 그들의 생활 방식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업신여기거나 거부하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갈 6:12에서 바울은 "무릇 육체의 모양을 내려 하는 자들이 억지로 너희로 할례 받게 함은 저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인하여 핍박을 면하려 함 뿐이라"고 말한다.|여기서 바울은 유대주의자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한 박해를 받지 않고 유대인 중에서 인정을 받기 위하여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할례를 강요하려고 하는 것을 지적한다. 사도 자신이 유대인들에 의해 받는 박해는 십자가의 전도와 매우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다.|갈 5:11에서 "형제들아 내가 지금까지 할례를 전하면 어찌하여 지금까지 핍박을 받으리요 그리하였으면 십자가의 거치는 것이 그쳤으리니"라고 말한다. 만일 그가 구원의 근거와 방법으로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보다 할례를 선포한다면 그와 유대교 사이에는 화목할 것이다. 그러나 할례와 십자가는 상호 배타적이며, 양립할 수 없다.|갈 6:14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구원 역사에 있어서 결정적 계시라고 고백한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여기에서 십자가는 그의 유일한 영광이며, 모든 자기 영광은 사라지는 것이다.|② 골 1:20; 골 2:14; 엡 2:16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속죄의 방편으로 묘사되었다. 십자가는 우주 만물을 화목시키는 기반이다(골 1:20), 예수님의 피에는 모든 것을 포용하는 속죄의 능력이 있다. 죄를 사하는 은혜의 표시로 하나님은 고소장 문서를 도말하사 십자가에 못박으셨다(골 2:14). 하나님은 십자가를 통해 유대인과 이방인을 다같이 하나의 인간으로 만들어 하나님과 화해하게 하셨다(엡 2:16).||(c) 비유적 의미로 ① 스타우로스는 복음서들에 나타난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제 십자가를 지고 그를 따를 것을 요구하신다. 그렇게 하지 않는 자는 그에게 합당하지 않은 것이다(마 10:28; 마 16:24; 막 8:34; 눅 9:23; 눅 14:27).|② 고전 1:18에서 바울은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역설한다. 십자가의 도는 십자가에 못박히신 유일한 분인 그리스도가 율법주의 신학의 궁극적 목표점인 것이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J. Schneider; E. Brandenburger; H. W. Kuh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