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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급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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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급히.||부사 스푸다이오테로스는 형용사 스푸다이오테로스($4707)에서 유래한 부사이며, '더욱 급히'를 의미한다.|신약성경에서 스푸다이오테로스는 빌 2:28에 한번 나온다: "그러므로 내가 더욱 급히 저를 보낸 것은 너희로 저를 다시 보고 기뻐하게 하며 내 근심도 덜려 함이니".|여기서 '더욱 급히', 즉 '가능한 빨리'라는 의미를 나타낸다.|(참조: J.H.Thayer; Walter Bauer; G.Harder).
급히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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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있는 zealous.||#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부사 스푸다이오스는 형용사 스푸다이오스($4705)에서 유래한 부사이며||(a) '속히, 서둘러, 급히',|(b) '부지런히, 열심히, 간절히' 등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스푸다이오스는 70인역본 외경 지혜서 2:6에 세상 물건을 '속히(서둘러)' 쓰는 것을 묘사한다.||#3. 신약성경의 용법||스푸다이오스는 신약성경에서 3회 나오며, 다음의 의미를 나타낸다.||(a) 눅 7:4에서 스푸다이오스는 '간절히'를 의미하며, '간절한 부탁'이란 의미를 함축한다: "이에 저희가 예수께 나아와 간절히 구하여 가로되 이 일을 하시는 것이 이 사람에게는 합당하니이다".||(b) 딤후 1:17에서 스푸다이오스는 '부지런히'를 의미한다: "로마에 있을 때에 나를 부지런히 찾아 만났느니라".|오네시보로가 바울을 만나기 위해 로마를 찾아 다녔다는 바울의 짧은 이 기록 뒤에는 많은 이야기가 생략되었다(P.N.Harrison).||(c) 딛 3:13에서 스푸다이오스는 '급히, 서둘러'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교법사 세나와 및 아볼로를 급히 먼저 보내어 저희로 궁핍함이 없게 하고".|(참조: J.H.Thayer; G.Harder).
부지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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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 zeal.||#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스푸데(Homer이래)는 스퓨도($4692: 서두르다, 재촉하다)에서 유래했으며, 본래는 '서두름, 열심'을 의미하며, 그 후에 '일, 힘쓰는 노력, 열심, 신속, 신중, 진지함, 헌신, 기꺼이함, 선의, 종교적 헌신'이란 의미로 사용되었다.|헬라 철학에서 스푸데는 자신의 환경의 극복, 또는 자기 완성이라는 도덕적인 노력을 나타내는 문맥에서 사용하고 있다. 서신에서는 이 단어가 요청의 긴급함을 강조하는데 사용되었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스푸데는 70인역본에서 약 35회 나오며, '긴급, 급함, 서두름'(출 12:11, 출 12:33; 단 2:25; 단 3:24), '당혹함, 놀람, 두려움'(욥 4:5; 욥 21:6; 사 21:3; 시 78:33; 렘 15:8), '열심'(집회서 27:3; 지혜서 14:17)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스푸데는 신약성경에서 12회 나오며 다음의 의미를 지닌다.||(a) 스푸데는 막 6:25에서 '급함, 서두름'을 의미한다: "저가 곧 왕에게 [급히] 들어가 구하여 가로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담아 곧 내게 주기를 원하옵나이다 한대".|눅 1:39에서 같은 의미를 나타낸다: "이 때에 마리아가 일어나 [빨리] 산중에 가서 유대 한 동네에 이르러".||(b) 스푸데는 '열렬한(간절한) 관심, 열심'을 나타낸다.|고후 7:11에서 스푸데는 '열렬한 관심'을 나타낸다: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명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저 일에 대하여 일절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고후 7:12에서 바울은 이 편지의 결정적 목적과 요점이 이 열심을 일으키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그 불의 행한 자를 위한 것도 아니요 그 불의 당한 자를 위한 것도 아니요 오직 우리를 위한 너희의 [간절함]이 하나님 앞에서 너희에게 나타나게 하려 함이로다".|고후 8:7에서 그가 뜻하는 것은 행위의 능력, 수행하는 열심이다: "오직 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같이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고후 8:8에서 그는 명령으로(카트 에피타겐) 기록하지 아니하고 기독교의 본질에 속하는 상호 열심을 넌지시 언급하며 디아 테스 에테론 스푸데스(다른 이들의 간절함 또는 열심으로)를 선택한다: "내가 명령으로 하는 말이 아니요 오직 다른 이들의 [간절함]을 가지고 너희의 사랑의 진실함을 증명코자 함이로라".|한편 고후 8:16에서 스푸데는 사도가 감사한 하나님의 선물이다: "너희를 위하여 같은 [간절함]을 디도의 마음에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히 6:11에서 독자들은 소망의 풍성함을 실현하는데 있어서 지속적인 열심을 보여야 한다: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한 부분이다. 왜냐하면 신자들은 그들이 누구이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알고 있으며, 그들에게 주어진 것을 잃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벧후 1:5에서도 스푸데는 비슷한 용법이나 도덕적 의미가 보다 크게 강조되어 있다: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여기에서 열심은 벧후 1:6 - 벧후 1:10에 나타난 그리스도인의 정신과 관련되어 있다. 마음을 선함에 두고 있는 참으로 가치있는, 도덕적 사람의 기본 방향과 관련된다.||(c) 롬 12:11에서 스푸데는 책무나 사명에 '헌신'을 나타내는 것이다: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d) 유 1:3에서 스푸데는 '노력이나 힘쓰는 노력'을 의미한다: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우리의 일반으로 얻은 구원을 들어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뜻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뜻이 간절하던 차에"에 해당하는 '파산 스푸덴 포이우메노스'에 대하여 NASB는 (쓰기 위하여) '모든 노력을 하는 동안에'라고 번역했다.|(참조: Walter Bauer; J.H.Thayer; G.Harder; W.Bauder).
스퓌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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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리 basket.||#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스퓌리스(Hdt., Aristoph 이래)는 '갈대 바구니' 즉 '엮어 만든 바구니', '광주리'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스퓌리스는 신약성경에서 5회 나오며, '광주리'를 의미한다.||(a) 스퓌리스는 음식 이적에 관하여 사용되었다(마 15:37; 마 16:10; 막 8:8; 막 8:20).|(b) 스퓌리스는 바울을 담아 내린 '광주리'에 대해 사용되었다: "그의 제자들이 밤에 광주리에 사울을 담아 성에서 달아 내리니라"(행 9:25).|(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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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다디온 stadium||#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스타디온(Jos., Ant.)은 기본 어근 스타(%1005)의 중복에서 유래했으며 다음을 의미한다.||(a) 거리의 단위로서 '스테이드(stade)'. 헬라의 600 피이트이며, 192미터이다.(Hdt.).||(b) '도보 경주장' stadium, '경주로' race-course, 즉 달리기 시합이 열리는 장소이다(Pind.). 이러한 경주로가 비교적 큰 헬라 도시들 대부분에서 발견되며, 올림피아에 있는 경주로처럼 길이가 헬라 족장으로 600족장(feet)이었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스타디온은 70인역본에서 8회 나오며, 외경 마카베오이서 11:5; 12:9 이하에서 거리의 단위로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스타디온은 신약성경에서 7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이 단어는 '길이의 단위'(헬라의 600 피이트)로 사용되었다. 눅 24:13; 요 6:19; 요 11:18; 계 14:20; 계 21:16.||(b) 이 단어는 '도보 경기장'에 대해 사용되었다: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찌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고전 9:24).|(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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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아리, 단지.||#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스탐노스(Aristoph. 이래)는 히스테미($2476: 서게 하다, 서다)에서 유래했으며, 헬라인들의 '토기 항아리, 단지'를 의미한다. 이 항아리 속에 포도주를 뽑아 넣어 보관했다. 그러나 다른 목적에도 사용했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스탐노스는 신약성경에서 히 9:4에 한번 나온다: "금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언약의 비석들이 있고".|(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서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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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반란||#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스타시스는 히스테미($2476: 서다)에서 유래했으며,||(a) '기립, 서있음, 지위, 확고한 위치, 견고함'|(b) '위치, 장소, 상태'|(c) '저항', 특히 '폭동, 반란,' 사회적 분쟁, 충돌, 정치적 불안, 영혼의 내적 갈등, 집단의 의견 충돌, 내적 분쟁 등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스타시스는 70인역본에서 약 30회 나오며, 주로 히브리어 암무드(기둥), 아마드(서있다), 오메드(서있는 자리), 케얌(법령, 규례, 단 6:8) 등의 역어로 사용되었다.|따라서 스타시스는 '기둥'(대하 23:13), '법령'(단 6:8), 태양의 '머뭄'(수 10:13), 쉴곳(신 28:65), 봉안(奉安: 대상 28:2), 개인적인 '싸움'(잠 17:14), 세워진 것, 경계석등을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스타시스는 신약성경에서 9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히 9:8에서 첫 장막이 계속 서 있음을 의미한다: "성령이 이로써 보이신 것은 첫 장막이 서 있을 동안에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 것이라".||(b) 막 15:7에서 '민란'을 의미한다: "민란을 꾸미고 이 민란에 살인하고 포박된 자 중에 바라바라 하는 자가 있는지라"(병행구 눅 23:19; 눅 23:25).||(c) 행 19:40에서 정치적 안정을 위협하는 '소요'에 관해 언급한다: "오늘 아무 까닭도 없는 이 일에 우리가 소요의 사건으로 책망 받을 위험이 있고 우리가 이 불법 집회에 관하여 보고할 재료가 없다 하고".||(d) 행 15:2에서 교회 안에서의 "분쟁"이 핵심이다: "바울과 바나바와 저희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에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e) 행 23:7에서는 신학적 '다툼'이 문제되고 있다. "그 말을 한즉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사이에 다툼이 생겨 무리가 나누이니".||(f) 행 24:5에서 종교적 다툼 이상의 것을 언급한다: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염병이라 천하에 퍼진 유대인을 다 소요케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 바울은 유대인과 로마인 사이의 평화를 위협하는 '소요'를 일으켰다고 고소 당한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G.Delling)
스타시아스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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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역자, 혁명가.||#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스타시아스테스는 스타시아조(%1033: 반역하다, 폭동을 일으키다)에서 유래했으며, '반역자 rebel, 혁명가 revolutionary'를 의미한다(Diod., Dionys. 등).||#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스타시아스테스는 신약성경에서 막 15:7에 한번 나온다: "민란을 꾸미고 이 민란에 살인하고 포박된 자 중에 바라바라 하는 자가 있는지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돈 한 세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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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희랍의 화폐 이름. 스타테르||#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스타테르(Aristoph., Hdt. 이래)는 히스테미(%32: 저울에 놓다, 무게를 달아주다)에서 유래했으며, '스타테르'(stater)라는 옛 희랍의 주화 이름이다. 이 스타테르는 드라크마 4개의 가치를 지닌 일종의 은화이다.||#2. 70인역본의 용법||스타테르는 70인역 아굴라 역본에서 몇 회 나오는데, 출 30:11 - 출 30:16에 의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의무적으로 인구조사를 받았을 때,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온역이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하여 각 사람에게 속전으로 반 세겔을 지불하라고 명령했다.||#3. 신약성경의 용법||스타테르는 신약성경에서 마 17:27에 한번 나온다: "그러나 우리가 저희로 오해케 하지 않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마 17:24 - 마 17:27참조).|스타테르는 4드라크마에 해당하는 로마 은화이다. 그것은 주님과 베드로 두 사람을 위하여 세금을 내기에 충분한 액수였다. 아무튼 이러한 사건은 예수님께서 신적인 속성을 소유하고 계심을 증거해 주는 것이다. 주님께서 처음으로 떠오르는 고기의 입에 돈이 들어있을 줄을 아셨다면 그것은 곧 전지의 증거가 된다. 고기가 은화를 삼키는 일은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많은 고기들이 밝은 물체를 찾아서 삼키려고 하므로 은화를 삼키는 경우가 많았다(Albert Barnes).||[몬테피요르(H.Montefiore)는 교회가 쥬피터 카피톨리누스(Jupiter Capitolinus)에게 세금을 낼 것인가라는 문제에 직면했던 주후 70년과 주후 96년 사이의 상황을 이 기사의 삶의 자리(Sitz in Leben)라고 본다. 그 이유는 기독교가 종종 유대교의 한 분파로 간주되었으며, 따라서 세금을 내어야 했기 때문이다("Jesus and the Temple Tax", NTS 11, 1964-1965, 60-71). 마태복음을 읽는 사람들에게는 예수님의 말씀이 이교적인 세금을 로마 시민들은 내지 않고 외국인들이 지불했던 포르토리아(portoria) 및 인두세(poll-tax; 텔레 에 켄손)에 비유한 것이라고 생각되었을 것이다.|그러나 몬테피오르(Montefiore)는 이 기사가 특별히 이러한 상황을 위해서 제작되었다는 것을 반대한다. 반면 그는 폴리크라테스(Polycrates)의 반지에 관한 헬라 민담(Hdt. 3, 41f.)과 인간의 모든 부를 나타내는 보석을 바다에서 잃었다가 고기 안에서 다시 찾은 랍비 민담(Shabbath 119a)과 속죄일에 가난한 한 재봉사가 한 마리의 고기 안에서 보석을 발견하였다는 랍비 민담(Ber. R.Ⅱ on Gen. 2:3)과 물고기 입 안에 든 그 동전과는 유사한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예수님의 원래의 말씀은 범죄하지 않기 위하여 세를 내라고 충고한 것이라고 시사했다. 특히 그는 예수님의 태도가 성전세의 사용에 대한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 사이의 논란을 초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성전세를 내지 않았다면 예수님이 성전에서의 예배를 부정한다는 인상을 주었을 것이다. "바리새인들이 율법적인 의무로 요구했던 것을 예수님은 자발적인 마음의 드림으로 제시하셨다"(op. cit., 71).|알레그로(J.M.Allegro)는 에세네파 사람들(Essenes)이 예수님과 같은 태도를 견지했다고 논했다].(참조: Walter Bauer; C.Brown).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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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대기 stake, 십자가 cross.||#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스타우로스(Homer 이래)는 다음을 의미한다.||(a) 스타우로스는 '똑바른 막대기'이며, 검도용이나(Hom. Od., 14, 11) 기초를 쌓거나(Thuc. 7, 25, 5) 그 울타리를 치는 등(Homer 이후) 여러 목적들에 이용되었다.||(b) 스타우로스는 중죄인들을 신문하는 고문 기구이다. 스타우로스는 때때로 처형된 죄인을 매달아 놓은 장대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누구든지 볼 수 있는 곳에 처형된 죄인을 매달아 놓음으로써, 끔직함을 보여 그 이상의 처벌 효과를 보았다. 스타우로스는 수직으로 세워져 있는 말뚝에 좁은 의미에서 십자가를 이루는 똑같은 길이의 대들보로 교차되어 있는 처형 기구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 막대기는 T자형(라틴어, crux commissa)이나 十자형(crux immissa)의 형태를 취했다.||(c) 십자가는 잘 알려진, 가장 잔인하고 수치스러운 형벌 도구로서 헬라인들과 로마인들이 페니키아(베니게)인들로부터 차용한 것이다; 로마에서, 콘스탄틴 대제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가장 악질적인 범죄자들, 특히 가장 비천한 노예들, 강도들, 반란의 주동자와 선동자들을, 그리고 때로는 속주(provinces)에서 총독들의 변덕스러운 쾌락에 의해 정직하고 온순한 사람들도, 심지어는 로마 시민들도 이 십자가에 매달았다. 막대기나 대들보나 십자가에 매달거나 붙들어 매는 것은 아직 살아있는 사람을 처벌할 때 사용하는 방법이었다(참조: Hdt., 120, 4). 그러나 여러가지 처형 방식들 사이에는 차이점이 있음에 틀림없다. 교살할 경우는 다소 빨리 죽었다. 다른 한편 매다는 형벌은 사람에게 있어서 지리하고 고통스러운 것이었다.|스타우로스를 세우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었던 것 같다. 처형 대상의 사람을 처형 장소의 바닥에 놓여 있는 십자가에 묶어서 그대로 십자가 위로 들어올리는 방법이 있었던 것 같다. 그 대신에 아마 처형전에 나무를 땅에 박는 것이 일반적인 방법이었던 것 같다. 희생자는 가로대에 묶여졌으며 수평 들보와 함께 끌어올려져서 수직 나무 기둥에 고정되었다. 이것이 십자가 세우기의 방법 중에서 간단한 형태였으며, 노예들에게 대들보(patibulum) 운반의 형벌이 부과되었으므로 T자형(crux commissa)의 형태가 일반적으로 사용되었던 것 같다.|로마 관례에 의하면, 그 당시 십자가형의 절차는 다음과 같았다고 한다. 첫째로, 법률상의 유죄 선고가 있었다. 처벌이 선고 장소와 다른 어떤 곳에서 행해졌을 경우, 처형되는 사람은 보통 성읍 밖에 있는 장소까지 그 십자가(patibulum)를 지고 갔다. 노예 처벌의 전형적인 표현인 "십자가를 지다(스타우로스)"라는 말의 기원은 여기에 있다. 처형 장소에서 희생자는 벌거벗겨져서 채찍질을 당하였다. 처형되는 사람은 양 팔을 쭉 뻗친 채로 아마도 자기의 어깨에 지워져 있었을 대들보에 묶여졌다. 헤로도토스에는 못박았다는 한 실례를 소개한다. 요 20:20, 요 20:25이하에는 예수님의 손에 못을 박았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눅 24:39에는 그의 손과 발에 못을 박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나서 희생자는 대들보와 함께 막대기 위로 끌어올려졌다. 그 희생자는 기갈과 질식에 의한 지독한 고통 속에서 서서히 죽어갔다. 그 시체는 부패하거나 육식동물과 까마귀의 음식물이 되도록 처형대에 그대로 두었던 것이다. 때로 친지들이나 면식있는 사람들에게 그 시체가 인계되기도 했다.|1968년 6월에 주후 1세기 초엽, 고통스럽게 십자가에 달려 죽었던 젊은 남자의 뼈가 담겨있는 납골당이 예루살렘의 북쪽에 있는 무기 언덕(Ammunition Hill)에서 발견되었다. 양 팔뚝에 못이 한 개씩 박혀 있었으며, 그곳에 세번째 못이 있었는데, 그것을 양 발목을 한꺼번에 쳐서 박았다. 그의 다리는 요 19:32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린 두 명의 강도들의 다리처럼 꺽여있었다(참조: V.Tzaferis and others).||(d) 스타우로스는 70인역본에서 사용되지 않았다. 동사 스타우로오도 2회 정도 나올 뿐이다. 유대교 율법에는 십자가 처형이 없다. 돌에 맞아 죽은 사람을 나무에 매달아 하나님께 저주받아 죽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2. 신약성경의 용법||스타우로스는 신약성경에서 27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① 문자적 의미로 스타우로스는 공관복음에 두번 나타난다: 막 15:21에서 구레네 사람 시몬이 예수의 십자가를 지고 형장으로 간 것이다(병행구, 마 27:32; 눅 23:26).|요 19:17에서 그 상황을 다르게 묘사한다: "예수께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그곳으로 나아가신 것이다.|다른 공관복음에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에 대한 조롱을 묘사하는데(막 15:30, 막 15:32; 병행구 마 27:40, 마 27:42), 예수님께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도전했다.|② 요한복음에서 스타우로스는 고난 기사에 나오는데 요 19:19에서 빌라도가 패를 십자가 위에 붙였다고 한다(참조: 마 27:37; 눅 23:38; 막 15:26).|요 19:25에 의하면 여인들이 "십자가 곁에" 서 있었으며, 그 첫번 가까운 곳에 예수님의 모친이 있었다. 요 19:31에 따르면, 예수님과 강도들은 큰 안식일에 십자가 상에 그대로 방치되어 있지 않았다. 신 21:23을 암시한다. 안식일 전에 그들의 시체를 내리는 것은 유대교의 방식이다.|③ 복음서 외에서 스타우로스는 문자적 의미로 두번 나온다. 빌 2:8에서 예수님은 "죽기까지 복종하였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다. 이것은 종 예수를 종들의 십자가에 못박힘을 연결시켜 생각한 것이다.|히 12:2에서 '예수님이 자기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고 십자가를 참으셨다'고 한다.||(b)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의 신학적 문제.|① 바울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원하는 의미를 설명한다. 빌 2:8에서 바울은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말한다. 십자가의 죽음은 비하의 가장 낮은 단계이지만, 한편 복종의 완성이다. 주님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심으로, 구속 사역은 완성하셨다.|고전 1:17에서 바울은 지혜의 말을 사용하기를 거부했는데 이는 지혜의 말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원하는 의미를 설명하거나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십자가의 말씀이 죄인들에게는 어리석으나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감취었던 하나님의 지혜가 나타난 것으로서 십자가는 완전히 하나님의 지혜의 계시이다(참조: 빌 2:6, 빌 2:7).|빌 3:18에서 바울은 어떤 사람들을 십자가의 원수들이라고 한다. 그는 여기서 십자가의 구원하는 의미를 부인하지는 않으나 그들의 생활 방식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업신여기거나 거부하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갈 6:12에서 바울은 "무릇 육체의 모양을 내려 하는 자들이 억지로 너희로 할례 받게 함은 저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인하여 핍박을 면하려 함 뿐이라"고 말한다.|여기서 바울은 유대주의자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한 박해를 받지 않고 유대인 중에서 인정을 받기 위하여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할례를 강요하려고 하는 것을 지적한다. 사도 자신이 유대인들에 의해 받는 박해는 십자가의 전도와 매우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다.|갈 5:11에서 "형제들아 내가 지금까지 할례를 전하면 어찌하여 지금까지 핍박을 받으리요 그리하였으면 십자가의 거치는 것이 그쳤으리니"라고 말한다. 만일 그가 구원의 근거와 방법으로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보다 할례를 선포한다면 그와 유대교 사이에는 화목할 것이다. 그러나 할례와 십자가는 상호 배타적이며, 양립할 수 없다.|갈 6:14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구원 역사에 있어서 결정적 계시라고 고백한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여기에서 십자가는 그의 유일한 영광이며, 모든 자기 영광은 사라지는 것이다.|② 골 1:20; 골 2:14; 엡 2:16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속죄의 방편으로 묘사되었다. 십자가는 우주 만물을 화목시키는 기반이다(골 1:20), 예수님의 피에는 모든 것을 포용하는 속죄의 능력이 있다. 죄를 사하는 은혜의 표시로 하나님은 고소장 문서를 도말하사 십자가에 못박으셨다(골 2:14). 하나님은 십자가를 통해 유대인과 이방인을 다같이 하나의 인간으로 만들어 하나님과 화해하게 하셨다(엡 2:16).||(c) 비유적 의미로 ① 스타우로스는 복음서들에 나타난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제 십자가를 지고 그를 따를 것을 요구하신다. 그렇게 하지 않는 자는 그에게 합당하지 않은 것이다(마 10:28; 마 16:24; 막 8:34; 눅 9:23; 눅 14:27).|② 고전 1:18에서 바울은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역설한다. 십자가의 도는 십자가에 못박히신 유일한 분인 그리스도가 율법주의 신학의 궁극적 목표점인 것이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J. Schneider; E. Brandenburger; H. W. Kuhn).
십자가에 못 박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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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에 매달다, 십자가에 못박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스타우로오(Thu. 이래)는 스타우로스($716: 막대기, 십자가)에서 유래했으며,||(a) '말뚝을 박다',|(b) '울타리를 쳐서 보호하다',|(c) '십자가에 매달다, 십자가에 못박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스타우로오는 70인역본에서 에스더서에만2회 나오며, 탈라(매달다, 에 7:9)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에 7:9에서 하만을 '그 나무'에 매단 것을 나타낸다. 에 8:12의 말은 불확실하다.||#3. 신약성경의 용법.||스타우로오는 신약성경에서 46회 나오며, '십자가에 못박다'라는 의미로만 사용되었다.||(a) 스타우로오는 ① 마 20:19에 나오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세번째 수난 예언에 나타난다: "이방인들에게 넘겨주어 그를 능욕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하리니 제 삼일에 살아나리라".|마 23:34에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에 대한 비난에서 예수님은 이스라엘에서 선지자들과 지혜있는 자들과 교사들의 못박힘을 언급함으로써 자신의 운명을 알린다: "더러는 죽이고 십자가에 못박고 그 중에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구박하리라".||② 사도행전의 사도들의 설교에서는(행 2:36에서 베드로의 설교와 행 4:10에서 산헤드린 앞에서 그의 고백) 이스라엘 전체 백성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다고 비난한다. 이렇게 행함으로써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 큰 죄를 지었다.||③ 고전 2:8의 언급은 바울 서신의 독특한 언급이다: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사도 바울은 이 세상의 통치자들, 즉 이 세대를 지배하는 불신의 세력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다고 선언한다. 그들은 근시안적인 악마적 지혜로 하나님의 지혜를 꿰뚫어 보지 못했다.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넘김으로써 그 지위를 강화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십자가 위에서 그들의 권세는 깨뜨려졌다.||④ 고후 13:4에서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박히셨다고 말한다: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으셨으니 우리도 저의 안에서 약하나 너희를 향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저와 함께 살리라". 이것은 십자가에 못박힌 그분은 자기 자신의 어떠한 능력도 사용하지 않으셨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이 그분 안에서 나타났으니, 하나님께서 그분을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제 그는 높임 받으신 주님으로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신다.||⑤ 계 11:8에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심에 대해 언급되어 있다: "저희 시체가 큰 성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저희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니라". 여기서 계시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께서 죽임을 당하신 큰 도성(예루살렘)을 본다. 두 순교한 증인의 시체가 이제 그 도성의 거리에 뉘여 였다.||(b) 스타우로오와 함께 사용된 기사들은 오직 바울 서신에서만 신학적 의미를 지닌다.|① 고전 1:23에서 사도는 자신의 메시지의 참된 내용은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라고 말한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유대인들은 표적과 기사를 요구하고 헬라인들은 지혜를 구한다. 그러나 구원에로 부름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계시하는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분을 고백한다. 따라서 그들은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에게 구원의 능력이신 십자가에 못박힌 동일한 그리스도를 선포한다.||② 고전 2:2에서 바울은 예수님,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분 예수님에 대한 지식 외에 다른 지식을 고린도에서 말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설교의 형식이 내용과 일치하고 있다. 그것은 지혜의 감동적인 말로가 아니라, 모든 그 인간적 나약함으로 인해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는 것이다(고전 2:3-4; 고전 2:13).|고린도에서 분열의 문제를 논할 때, 바울은 교회 안에서 한 분파의 우두머리로 대접 받기를 원치 않는다: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뇨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뇨"(고전 1:13).||(c)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은 이 용어를 주로 전이된 의미로 사용한다.|① 갈 3:1에서 바울은 유대주의자들에게 꾀임 당하고 있는 갈라디아인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The Crucified)은 우주적으로 바울의 게리그마의 중심 내용으로 선포된다. 그리고 갈라디아인들의 영적인 눈 앞에 놓인 것은 십자가에 못박힌 그분 자신이지 구원 역사(history)에서 그저 십자가의 의미 자체가 아니다.||② 갈 2:19에서 바울은 개인적인 고백을 한다: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 함이니라". 그는 율법으로는 더 이상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율법은 죽은 사람에게는 아무런 주장도 할 수 없다.||③ 갈 6: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여기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세상이 그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히고, 그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못박힌다고 자랑한다. 구원 역사에서 한 사건으로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세상에 대하여 근본적으로 '아니오'이다. 사도에게 있어, 다시 말하면 세례(침례)에 의하여 이 기본적인 사건에서 한 몫을 받은 그에게 있어 그것은 세상과의 연결 고리가 깨뜨려지는 장소이다. 완전한 십자가에 못박힘은 이것이 영원한 효력을 가지는 사건이라는 사실을 표현한다. 세상과 관련하여 사도의 지위와 그와 관련하여 세상의 지위는 그 사건으로 말미암아 단 한번 만에 정해진다.||④ 갈 5:24에 유사한 표현이 나온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 바울은 다른 곳에서는 수동형으로 표현한 것을 여기서는 능동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우연도 아니고 무의미한 것도 아니다. 그는 그리스도에게 속하는 자들 편에서의 의지의 행동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들은 사르크스에 자리하고 있는 죄와의 교제를 끊었다. 바울이 세례(침례)를 염두에 두고 있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사도는 세례(침례)에 의하여 그리스도에게 속하는 신자들이 세례(침례)에 근거하여 내리는 자유로운 도덕적 결단을 염두에 두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새 삶을 살기로 세례(침례)로 말미암아 약속하기 때문이다(참조: 롬 6:4). 세례(침례)에서 그들은 죄의 지배로부터 하나님의 행동에 붙잡힌 바 된다. 이제 그들은 그들 편에서 죄에 대해 근본적으로 "아니오"라고 말하며 따라서 이전의 삶 전체에 대한 심판은 지나갔다.|그러므로 갈 5:24은 세례(침례)의 비밀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 편에서의 윤리적 행동을 언급하는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참조: J. Schneider; C. Brown).
스타퓔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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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grapes.||#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스타퓔레(Homer 이래)는 '포도' grapes, '포도송이' a bunch of grapes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스타퓔레는 신약성경에서 3회 나오며, '포도'를 의미한다.||(a) 마 7:16,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b) 눅 6:44,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c) 계 14:18, "또 불을 다스리는 다른 천사가 제단으로부터 나와 이한 낫 가진 자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불러 가로되 네 이한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송이를 거두라 그 포도가 익었느니라 하더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스타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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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 ear.||#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스타퀴스(Homer 이래)는 '곡식의 이삭'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스타퀴스는 신약성경에서 5회 나오며 '이삭'을 의미한다.||(a) 마 12:1에서 안식일의 식음에 관하여 사용되었다: "그 때에 예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가실쌔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 먹으니"(병행구 막 2:23; 눅 6:1).||(b) 막 4:28에서 열매의 성장 과정에 관하여 사용되었다: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스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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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다구 Stachys(인)||스타퀴스는 '이삭'을 의미하며, 신약성경에서 롬 16:9에 한번 나온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동역자인 우르바노와 나의 사랑하는 스다구에게 문안하라".|그는 바울이 로마에 있을 때 사귄 기독교인이다. 그의 이름은 매우 드물다. 그러나 바울이 이 글을 쓸 당시에 적어도 그렇게 불리운 한 사람이 가이사의 집에서 중요한 직책을 담당했던 것이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W. M. Greathouse).
스테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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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 roof.||#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스테게(Aeschyl., Hdt. 이래)는 스테고($4722: 단단히 덮다, 견디다)에서 유래했으며, '지붕' roof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스테게는 신약성경에서 3회 나오며, '지붕'을 의미한다.||(a) 막 2:4에서 중풍병자에 관하여 사용되었다: "무리를 인하여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의 누운 상을 달아내리니".||(b) 마 8:8(병행구 눅 7:6), "백부장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