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해설 322 페이지 > 기독정보닷컴

슁퀴리아
sugkuriva
우연한 일, 우연.||#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슁퀴리아(Hippocr., Hesychius)는 슁퀴레인(%627: 우연히 일어나다)에서 유래했으며, '우연한 일, 우연한 일치, 우연'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슁퀴리아는 신약성경에서 눅 10:31에 한번 제사장에 관하여 사용되었다: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함께 기뻐하다
sugcaivrw
함께 기뻐하다(즐거워 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슁카이로( Aeschyl., Xen)는 쉰($4862: 함께, ~와 함께)과 카이로($5463: 기뻐하다, 즐거워 하다)에서 유래했으며, '함께 기뻐하다(즐거워 하다), 축하하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슁카이로는 70인역본에서 2회 나오며, 히브리어 차하크(6711: 웃다, 비웃다, 조소하다, 놀리다)를 번역하여 '웃다'를 나타낸다(창 21:6).||#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슁카이로는 신약성경에서 7회 나오며, '함께 기뻐하거나 즐거워 하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눅 1:58; 눅 15:6; 눅 15:9; 고전 12:26; 고전 13:6; 빌 2:17; 빌 2:18)|(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굴복시키다
sugcevw
혼란(소란)하다, 선동하다, 놀라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슁케오 또는 슁퀸노(Homer 이래)는 전치사 쉰($4862)과 케오(붓다)에서 유래했으며,||(a) '함께 붓다, 혼합하다',|(b) '혼란시키다, 혼동케하다, 소란케하다, 선동하다'(Eunap., Soph.),|(c) 수동태로 '당황하다, 소란하다, 혼란되어 있다'(PGMB, 874), '놀라다, 흥분하다'(Diod.)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슁케오는 신약성경에서 사도행전에만 4회 나온다.||(a) 행 21:27에서 '선동하거나 소란케 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 이레가 거의 차매 아시아로부터 온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바울을 보고 모든 무리를 충동하여 그를 붙들고".|행 21:31에서 '소란(혼란)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저희가 그를 죽이려 할 때에 온 예루살렘의 요란하다는 소문이 군대의 천부장에게 들리매".||(b) 행 9:22에서 '당황하거나 혼란되어 있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명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굴복시키니라]".||(c) 행 2:6에서 '놀라거나 흥분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의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슁크라오마이
sugcravomai
~와 (친하게) 교제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슁크라오마이(Polyb. 이래)는 전치사 쉰($4862)과 크라오마이($5530: 사용하다, 이용하다)에서 유래했으며, '함께 사용하다', '공동으로 사용(이용)하다'(Polyb., Diod.); '~와 관계를 가지다'(ps-Demetr., Diogener Oenoand)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슁크라오마이는 신약성경에서 요 4:9에 한번 '~와 교제하다'를 의미한다: "사마리아 여자가 가로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치 아니함이러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슁퀴시스
suvgcusi"
소동, 소란.||#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슁퀴시스(Eur., Thu. 이래)는 슁케오($4797: 함께 붓다, 혼란시키다)에서 유래했으며, '혼란, 소동, 소란'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슁퀴시스는 신약성경에서 행 19:29에 한번 '소동(폭동)'을 의미한다: "온 성이 요란하여 바울과 같이 다니는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잡아가지고 일제히 연극장으로 달려들어 가는지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함께 살다
suzavw
함께 살다 live with||#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쉬자오(Aeschyl., Pla., Arist.)는 쉰($4862: 함께, ~와 함께)과 자오($2198: 살다, 살아 있다)에서 유래했으며, '함께 살다' live with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쉬자오는 신약성경에서 3회, 바울서신에만 나온다.||(a) 고후 7:3에서 지상에서의 육체적 삶에 대해 언급한다; "내가 정죄하려고 이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전에 말하였거니와 너희로 우리 마음에 있어 함께 죽고 함께 살게 하고자 함이라"||(b) 롬 6:8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여기에서 쉬자오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새로운 삶을 살다, 즉 하나님께 바쳐진 삶을 사는 것을 나타낸다.||(c) 딤후 2:11이하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여기에서 "미쁜 말"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의 소망에 그 기반을 둔 것으로서, 세례(침례)가 의미하는 바이며 죄에 대한 항거가 그 구체적인 징표인바 그리스도와 더불어 죽은 자들과 함께, 그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장차 살며 왕 노릇 할 것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W. Ghundmann).
짝지어 주다
suzeuvgnumi
함께 멍에를 메다, 함께 결합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쉬쥬그뉘미(Eur., Xen. 이래)는 '함께 멍에를 메다, 함께 결합하다'를 의미하며, '부부결합'이란 의미로도 나타난다.||#2. 70인역본의 용법||쉬쥬그뉘미는 70인역본에서 2회 나타난다. 이 단어는 겔 1:11에서 히브리어 하말(결합하다, 연결하다)을 번역하여, 그런 의미를 나타낸다. 겔 1:23에서는 히브리어 해당어없이 나타난다.||#3. 신약성경의 용법||쉬쥬그뉘미는 신약성경에서 2회 나온다.|마 19:6에서 '부부결합, 즉 결혼'을 의미한다: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병행구 막 10:9).|(참조: Walter Bauer).
쉬제테오
suzhtevw
'토의하다, 논쟁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쉬제테오(Pla. 이래)는 쉰($4862: 함께, ~와 함께)과 제테오($2212: 찾다, 구하다)에서 유래했으며,||(a) '함께 시험(조사)하다' to examine together, 여기에서|(b) '논쟁하다, 토의하다' to dispute(p. oxy.),|(c) '분투하다' strive(p. oxy.)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쉬제테오는 70인역본에서 1회 나오며 히브리어 바카쉬(1245: 찾다, 구하다, 원하다, 요구하다)를 번역하여 '원하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느 2:4)||#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쉬제테오는 신약성경에서 10회 나오며, 마가복음, 누가복음, 사도행전에만 사용되었다.||(a) 쉬제테오는 '토의하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① 막 1:27; "다 놀라 서로 물어 가로되 이는 어찜이뇨 권세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을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② 막 9:10; "저희가 이 말씀을 마음에 두며 서로 문의하되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무엇일까 하고"|③ 눅 24:15; "저희가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저희와 동행하시나"||(b) 쉬제테오는 '논쟁하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① 막 8:11; "바리새인들이 나와서 예수께 힐난하며 그를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을 구하거늘"|② 막 9:14; "저희가 이에 제자들에게 와서 보니 큰 무리가 둘렀고 서기관들이 더불어 변론하더니"|③ 막 9:16; "예수께서 물으시되 너희가 무엇을 저희와 변론하느냐"|④ 막 12:28; "서기관 중 한 사람이 저희의 변론하는 것을 듣고 예수께서 대답 잘하신 줄을 알고 나아와 묻되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⑤ 눅 22:23; "저희가 서로 묻되 우리 중에서 이 일을 행할 자가 누구일까 하더라"|⑥ 행 6:9; "리버디노 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아인,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의 회당이라는 각 회당에서 어떤자들이 일어나 스데반으로 더불어 변론할쌔"|⑦ 행 9:29; "또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고 헬라파 유대인들과 함께 말하며 변론하니 그 사람들이 죽이려고 힘쓰거늘"|(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J. Schneider).
쉬제테시스
suzhvthsi"
토의, 논쟁||#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쉬제테시스(cicero, Philo)는 쉬제테오($4802: 함께 시험[조사]하다)에서 유래했으며, '일반적인 조사' 논쟁, 토의'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쉬제테시스는 신약성경에서 3회 사도행전에만 나오며, '논쟁, 싸움'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었다.||(a) 행15:2; "바울과 바나바와 저희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에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b) 행 15:7;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c) 행 28:29; 어떤 사본에, "저가 이 말을 마칠 때에 유대인들이 서로 큰 쟁론을 하며 물러 가더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쉬제테테스
suzhththv"
토론자, 논쟁자||#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쉬제테테스는 쉬제테오($4802: 함께 시험[조사]하다)에서 유래했으며, '조사(연구하거나 토론 하는자, 논쟁자'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쉬제테테스는 신약성경에서 고전 1:20에 한번 나온다;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 선비가 어디 있느뇨 이 세대에 변사가 어디 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 이 구절에서 바울은 이 세상의 지혜를 무가치하게 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한 선포의 '어리석음'을 칭송하는 가운데 냉소적인 어조로 이 시대의 '토론자'나 '논쟁자'가 어디 있느냐고 묻는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J. Schneider).
멍에를 같이 한 자
suvzugo"
함께 멍에를 멜 자(함께 일하는 자) yoke -fellow.||#1. 고전 헬라어의 용법||형용사 쉬쥐고스(Aeschyl. 이래)는 쉬쥬그뉘미($4801: 함께 멍에를 메다, 함께 결합하다)에서 유래했으며, '함께 멍에를 멘(자)'를 의미한다. 헬라 저술가들은 이 단어를 결혼 관계, 친척 관계, 공무, 노동, 연구, 사업, 또는 그와 유사한 것에 의해 결합되는 자들에 대하여 사용했다. 따라서 '함께 멍에를 멘 동료 동역자, 동지, 협동자, 반려자, 아내' 등을 의미한다. 70인역본에는 나오지 않는다.||#2. 신약성경의 용법||쉬쥐고스는 신약성경에서 빌 4:3에만 나온다: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자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부녀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위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여기에 그네시에 쉬쥐게("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자")의 정체는 분명하지 않다. 에바브로디도를 암시하기도 한다(빌 2:25이하). 알렉산드리아 신학자들은 그 구절이 바울의 아내에게 간청하는 호소문이라고 간주하였다(Clement, Origen). 또한 그것이 같은 성구에 암시되어 있는 유오디아와 순두게처럼 고유명칭이라는 관념은 어느정도 지지받을만 하지만 그 단어가 이름으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은 어느 곳에서도 입증되지 않는다.|(참조: Walter Bauer; H.-G.Link; C.Brown).
함께 살리다
suzwopoievw
함께 살리다 make alive together with||#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쉬조오포이에오는 쉰($4862: 함께, ~와 함께)과 조오포이에오($2227: 살리다)에서 유래했으며, '함께 살리다' make alive together with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쉬조오포이에오는 신약성경에서 바울서신에만 2회 나오며 '함께 살리다'를 의미한다.||(a) 엡 2: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여기서 바울이 이 복합동사를 사용한 것은 구원이 그리스도와의 연합에서 오는 것임을 나타낸다. 죽은 자들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모두 이루어진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그와 함께 영적 죽음으로부터 일으킴을 받는다(참조: 롬 6:11 비교).||(b) 골 2:13 "또 너희의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에게 모든 죄를 사하시고" 쉬조오포이에오는 그리스도와 연합이 새 생활의 수단이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뽕나무
sukavmino"
뽕나무 sycaminetree||#1. 고전 및 70인 역본에서의 용법||명사 쉬카미노스(Theophr.)는 히브리어 쉭마(8256: 이집트 무화과)에서 유래했으며, '뽕나무' the mulberry tree, the sycamine를 의미한다.|70인역본에서 명사 쉬카미노스는 6회 나오며, 히브리어 쉭마 또는 샤캄(8256: 이집트 무화과)을 번역하여 '뽕나무'를 나타낸다(왕상 10:27; 대상 27:28; 대하 1:15; 대하 9:27; 시 78:47; 사 9:9).|우리는 팔레스타인에서 무화과 나무와 단지 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다른 두 나무들도 찾아볼 수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주로 목재로 사용되며 그 열매는 무화과와 비슷하나 무화과보다 맛이 없는 단단한 수질의 "이집트 무화과 나무"이며, 다른 하나는 그 열매의 즙이 염료로 사용되는 검은 "뽕나무"이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쉬카미노스는 신약성경에서 눅 17:6에 한번 나온다; "주께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겨자씨 한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무화과 나무
sukh'
무화과 나무.||#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쉬케(Homer이래)는 '무화과 나무'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쉬케는 70인역본에서 약 26회 나오며, 히브리어 테에나(무화과 나무, 무화과)의 역어로 사용되어 무화과 나무를 의미한다(창 37장; 민 13:24). 무화과 나무(열매)는 약속의 땅의 특색으로 묘사되었다(신 8:8).|쉬케는 비유적(삿 9:10), 상징적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 단어는 특히 메시야 시대의 안락과 번영(왕상 4:25)을 나타낸다(미 4:4; 슥 3:10).|이 단어는 또한 본질적으로 바람직한 것(호 9:10), 갱생(욜 2:22), 시드는 것(사 34:4), 포획하기 손쉬운 것(나 3:12), 낭패된 소망(합 3;17)을 나타낸다.|다른 나무들과 수확물들의 멸종시킴 같이 무화과의 파괴는 심판을 묘사한다(호 2:12; 사 34:4; 렘 8:13; 욜 1:2-욜 1:12). 호 9:10(참조: 렘 24장)에서 이 단어는 국가를 상징하며, 그 외의 경우에는 이 국가가 대개 포도나무로 묘사된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쉬케는 신약성경에서 16회 나오며, 한글개역 성경에서 모두 '무화과 나무'로 번역했다.||(a) 요 1:48; 요 1:50에서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 아래 나다나엘을 보심에 대한 언급은 아마도 문자 그대로의 의미이며, 특별한 중요성을 지니고 있지 않다. 즉 이 기사의 요점은 나다나엘이 무화과나무 아래 있었다는 점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이미 그가 관찰하신 사실, 나다나엘이 무화과나무 아래 있었던 사실에 대한 언급을 통하여 예시하시고 계신 바와 같이 나다나엘에 대한 내적인 지식을 가지고 계셨다는 점이다.|이 단어는 나머지 구절들에서는 비유적이며 상징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b) 눅 13:6; 눅 13:7에서 무화과나무는 많은 혜택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열매를 결실하지 못한 이스라엘을 상징한다. 이 비유에서 주인은 지난 3년(예수님의 사역기?)동안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하였다. 과원지기는 무화과나무에 열매를 맺을 마지막 기회로 일년 더 여유를 주시고 그래도 열매 맺지 못하면 그 무화과 나무를 베어버릴 것을 요청한다. 여유를 준 시간은 이스라엘에게 마지막 심판의 재앙이 유보되어진 시간에 해당하는 것이며, 그래서 이스라엘이 열매를 맺을 최종적 기회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c) 마 21:19-마 21:21; 병행구 막 11:13; 막 11:20-막 11:21에 나오는 무화과나무에 대한 예수님의 저주는 공관복음서에 있어서 그의 심판에 관련된 유일한 기적으로서, 결실을 맺지 못하는 이스라엘에 대한 저주를 상징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유월절 시기에 무화과나무에 먹을 수 있는 무화과를 얻기를 기대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 것인가 하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유월절 시기는 무화과가 아직 익지 않은 상태에 있거나 그 이전의 늦은 무화과가 이미 수확된 상태에 있는 시기이다. 예수님께서 열매를 기대했던 나무는 잎사귀들이 있었다.|마가는 막 11:13에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라고 기록했다. 만일 이 나무에 잎사귀가 없었다면 예수님께서 이 나무에 오시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다른 무화과나무들에는 잎사귀 순이 막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가가 기록한대로 무화과의 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너무 때가 일렀다. 그런데 여기에 한 그루의 무화과나무가 너무나도 유리한 장소에서 자라 벌써 잎사귀들이 가득하고 다른 무화과나무들보다 훨씬 앞서 있었다. 무화과나무는 봄철에 첫 열매를 맺히고 잎사귀가 점차 그 뒤를 따라 나오므로 이 무화과나무의 무성한 잎사귀는 열매가 있을 가망이 컸다. 무화과 열매는 계속 번갈아 맺히므로 일년에 세번 맺힌다. 첫번 열매는 6월에, 두번째는 8월에, 세번째는 12월에 맺히며, 세번째 맺힌 열매들은 봄철에까지 나무에 그대로 매달려 있는 때도 가끔 있었다.|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크게 실망하셨다.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얻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새파란, 설익은 실과조차 얻지 못하셨다. 이것이 "잎사귀 밖에" 의미하는 것이다. 만일 이 나무가 한 개의 작은 설익은 열매를 갖고 있었어도 예수님께서는 이 나무를 마르게 하시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잎사귀가 당당한 이 나무는 텅빈 허식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 나무는 사람들로 하여금 적어도 먹기 알맞은 무화과가 몇개 달려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게 했던 반면 "잎사귀 밖에는" 아무 것도 갖고 있지 못했다.|열매를 맺을 수 있는 위치와 유리한 조건에서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것은 이제 존재 가치가 없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은 그의 생각에서 유리한 위치와 조건을 지니고 있었으나 기대한 결실을 맺지 못한 이스라엘을 암시하고 있다고 본다.|(참조: R.C.H.Lenski);||(d) 마 24:32이하; 막 13:28; 눅 21:29에 언급되어 있는 무화과나무에 대한 비유는 종말에 대한 묵시적인 징표들, 즉 미래의 사건들에 대한 미래의 징표들과 연관되어 있다. 이 구절들에 의하면, 무화과나무의 성장은 다가오는 여름의 표적이며, 그 여름의 절정은 무화과 열매가 수확할 만큼 무르익는 때가 될 것이다. 이 때는 인자께서 택하신 자들을 끌어 모으실 것이며(참조: 막 13:27; 마 24:36이하; 눅 21:34이하) 그리고 나서 회계를 할(참조: 막 13:34-막 13:37; 마 24:36이하; 눅 21:34이하) 때인 것이다.|예수님 사역기에 무화과나무에 대해 언급한 구절들을 연관 지으면 그 경우에 마 24:32이하, 막 13:28, 눅 21:29에서 나오는 무화과나무는, 열매를 찾으나 하나도 찾지 못하게 될 때 불가피하게 저주받은 무화과나무를 연상시키는 이스라엘을 생생하게 묘사하는 것이다.||(e) 약 3:12에서 기대되는 열매를 근거로하여 언행의 일관성을 묘사한다: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뇨 이와 같이 짠 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느니라". 이 말은 마 7:16의 내용을 상기시켜 준다.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를 하는 것은 한 나무가 각기 다른 열매를 맺는 것처럼 극히 부자연스러운 것이다. 식물은 물리적 모순을 결코 허락하지 않는다. 그런데 인간이 매우 극악한 종류의 모순을 범할 수 있을까? 자기를 지옥 세력의 통로를 만든 사람이 수시로 천국 세력의 통로를 만들거나 거룩한 제사(예배)를 드리는 자가 될 수 없다.||(f) 계 6:13에서 하늘에서 떨어지는 별들을 폭풍으로 인하여 무화과나무에서 떨어지는 열매에 비유하고 있다(참조: 사 34:4).|(참조: Walter Bauer; J.A.Motyer; J.H.Thayer; C.H.Hunzinger).
쉬코모레아
sukomoreva
무화과 뽕나무||#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쉬코모레아(Hippiatr.)는 쉬콘($4810: 무화과)과 모론(%706: 검은 뽕나무)에서 유래했으며, '무화과 뽕나무' a fig mulberry,||#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쉬코모레아는 신약성경에서 눅 19:4에 한번 나온다; "앞으로 달려가 보기 위하여 뽕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