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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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게 하다 make low, 평평하게 하다 level, 천하게 하다 humble.||#1. 고전 헬라어 문헌||동사 타페이노오는 히포크라테스( Hippocrates, B.C 5세기) 이래로 사용되었으며, 다음과 같은 다양한 의미를 나타낸다.||(a) 이 단어는 '작게 만들다, 굴욕을 주다, 미약하게 하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예: 의기나 용기, 국가나 정부의 세력, 시민의 유명(renown에 대하여).||(b) 이 단어는 '비천하게 하다, 상하게 하다, 좌절시키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예: 운명 또는 생명을 주어로 하여).||(c) '어떤 사람을 복종케 하다, 어떤 사람으로 하여금(이성 따위의 ) 규칙에 복종케 하다, 억압하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d) 이 단어는 헤아우톤을 수반하는 재귀형과 중간태(이러한 용법은 주전 1 세기에 정신적 상태를 나타내는 말로도 사용되었다)는 '자기 자신을 낮추다, 자신을 천하게 하다'라는 뜻을 나타낸다.|이러한 용법은 대개의 경우 오직 품위를 떨어뜨린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주전 1세기의 가다라의 필로데무스(Philodemus of Gadara)는 자신을 낮추는 사람들은 위로를 얻고 높임을 받을 것이라고 말하였고, 플루타크(PIutarch)는 제사와 기도를 드릴 때 머리를 가림으로써 신들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관습에 대해서 언급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타페이노오는 70인역본에서 약 165회 나오며, 20여개의 히브리어군의 단어들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이 히브리어들의 의미를 모으면, '억압하다, 괴롭히다, 낮추다, 비천하게 하다, 굴욕을 당하다, 짓밟다, 욕보이다, 낮은, 중요하지 않은, 무력한, 버림받은, 절하다, 굽실거리다, 학대하다, 슬프게 하다, 겸손하다, (여성)을 욕보이다, 강간하다, 영혼을 낮추다' 등을 의미한다. 따라서 타페이노오는 다음과 같은 의미를 나타낸다.|(a) 이 단어는 '낮게하다, 천하게 하다, 구부리다'(잠 10:4; 사 40:4; 집회서 40:3), 중간태에서 '가난하게 되다'레 25:39), '내려 앉다, 초라하게 하다'(전 10:18)를 의미한다.||(b) 이 단어는 '굽히다, 억압하다, 괴롭히다'(창 15:13; 창 31:50; 출 1:12; 신26:6; 삿 12:2; 삼상 12:8; 삼하 7:10; 대상 17:9; 사 51:23; 시 10:10; 시 94:5), '약화시키다, 뒤집어 엎다'(삿 16:5,6; 삿 16:19; 대상 20:4; 대하 13:18), '파괴(파멸)시키다, 없애다'(삼상 26:9; 말 2:12), '(여성을) 욕보이다, 강간하다'(창 34:2; 신 22:24,29; 삿 19:24; 20:5; 삼하 13:12,14)를 의미한다.||(c) 이 단어는 중간태, 수동태로는 '자기를 낮추다, (고개를)숙이다'(창 16:9; 에 6:13; 시 39:2), '영혼을 낮추다, 겸비하다'(레 16:29; 시 35:13 이하)를 의미한다. 금식은 하나님 앞에서 낮추는 것을 나타낸다(대하 33:12; 대하 34:27; 대하 33:23; 렘 13:18;단 10:12). 사람들은 금식함으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낮추지만 사람들 앞에 그렇게 하지 않는다. 잠 13:7에서는 '스스로 가난(초라)하게 하다'를 표현한다.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 초라하게 하나 재물을 가지고 있다. 70인역본은 도덕적 종교적 의미를 표현한다: 재물 앞에(위해) 스스로 가난한 체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구약성경은 자기 비하를 칭찬하지 않는다. 선지자들은 금식의 습관을 비평하며, 하나님과 그의 뜻에 대한 적절한, 곧 겸손한 마음 가짐을 강조한다(욜 2:12 이하; 사 58:5 이하).||(d)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낮추시고 겸손한 자를 높이신다(삼상 2:7; 겔 21:31). 이러한 것은 이스라엘과 그의 원수들 뿐 아니라 개인들에게도 적용된다. 사 2:11은 이러한 원리에 대해 진술한다. 선지자들은 예루살렘과 시온에 대해 이러한 원리를 적용시켜 언급한다(사3:8). 시75:7은 여호와께서 어떤 사람은 낮추시고 어떤 사람은 높이신다고 명백히 말씀하신다. 그러나 병이 교만한 사람을 낮추고 사망이 그를 진토에 이르게 하는데 비하여, 하나님께서는 그의 말씀에 자신을 낮추는 자를 거절치 않으신다(시 44:25; 시 25:l7). 하나님은 개인들로 자기와 올바른 관계에 있도록 하기 위해 그들을 낮추실 경우가 있다(시 116:6). 그러므로 고난을 통하여 겸손하게 되는 것은 구원을 의미할 수 있다(시 119:71). 인간에게 있어 실로 불가결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명령에 대해 순종할 줄 아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낮추시지만 그러나 겸손한 자가 회개할 때는 고난이 그친다(왕상8:35-36).||♥ 쿰란 및 랍비 문헌||(a) 쿰란 종단의 구성원들은 자기 자신을 '가난한 자' 라고 불렀고, 공동체 규정에서 고결한 겸손은 이 공동체의 큰 미덕인 인애, 진실, 올바른 생각, 성실, 일치 그리고 인내와 나란히 둔다.(lQS 2:24; 4:3; 5:3,25). 그러나 이 태도는 지금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어둠의 자식들에 대한 증오와 나란히 병행된다(1QS 9:22; 11:1). 겸손은 하나님 앞에서 취해야 할 올바른 태도이다. 1QS 3:8은 '그의 죄악은 의와 겸손의 영에 의하여 속죄될 것이다'고 말한다. 인간의 겸손은 하나님의 응징을 따르는 것이다(1QH 17l:22). 1QS 3:8은 '그의 육신은...그의 영혼을 하나님의 모든 계명에 겸손하게 복종시킴으로써 깨끗케 된다'고 말한다.||(b) 묵시문학은 하나님의 보상과 도우심의 약속이 임할 종말론적 태도로서 겸손을 나타낸다(Test. God.5:3; 2Esd. 8:47-54).||(c) 랍비들에게 있어서도 겸손은 사람들이 얻으려고 애써야 할 미덕의 높은 경지였다(참조: SBI 191-194). 겸손의 정신은 유대인의 특징적 표식으로 간주되었다.예수님의 가르침은 이러한 고귀한 이론적 주장과 거만한 랍비 및 바리새인 등의 행위 사이의 불일치를 밝힌다(마 23:1 이하; 눅 18:9-14). 그들은 자기들끼리는 겸손하였지만, 율법을 모르는 사람들을 죄인, 또는 하나님의 미움을 받는 사람으로 간주하였다. 그들은 인간의 노력을 하나님의 은혜와 대등한 것으로 생각했고, 따라서 하나님과 그들 자신에 대해서 잘못된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타페이노오는 신약성경에서 14회 나오며, '낮게하다, 자기를 낮추다, 비천하게 하다, 겸손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a)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 타페이노오는 하나님의 왕으로서의 통치에 관한 종말론적 돌입에 관련된 선포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이것은 구약성경과 유대교의 문서에서 흔히 사용되던 것과는 다른 용법이다.|세례(침례) 요한의 사역(눅 3:1이하)은 하나님의 오심을 예비하는 것으로, 그리고 사 40:3 이하의 예언과 일치하는 것으로 기술된다: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눅 3:5).|그래서 오신 그분은 겸손의 길을 걸으셨다(마 11:29, 아래에서 설명). 그러므로 그분은,높은 자리를 차지하려는 욕망에 대한 경고를 통해서(눅 14:11; 마 18:4; 참조: 막 10:15; 벧전 5:5; 잠 3:34; 25:7), 바리새인과 논쟁을 통해서(눅 18: 14),|바리새인과 서기관에 대한 책망을 통해서(마 23:12) 자기를 낮추는 자(타페이눈 헤아우톤)는 결국 하나님에 의하여 높임을 받을 것이라고 약속할 수 있었다(수동태가 사용된 이유는 하나님의 이름을 직접 언급하지 않기 위한 것이다). 동시에 그분은 똑같은 금언을 사용하되(참조:삼상 2:7; 삼하 22:28; 겔 21:26; 집회서 7:11) 거기에 종말론적 상황에서의 새로운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최후의 심판에서 교만한 자들을 꺾을 것이라고 위협하셨다(A.Dthle, RAC Ⅲ 748).||(b) 겸손에 관한 가르침이 나오는 마 18:1 - 마 18:5은 제자에 대한 예수님의 요구가 윤리적 성취와 혼동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제자들 가운데 있는 어린아이처럼 자신을 낮추라는 요구는 자기의 실제 모습보다 더 자기를 낮추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은 어린아이 같이 자기가 실제로 얼마나 낮은가를 깨달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겸손이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실제로 얼마나 낮은가 하는 것을 아는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어린 아이'라는 말의 사용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연상시켜 준다. 이러한 성격의 겸손과 낮음은 기쁨이요 환희이다(참조:J.Schniewind). 왜냐하면 그렇게 함으로써 사람들은 하늘의 왕적 통치에 참예할 수 있기 때문이다.||(c) 마태복음에 있어서 구세주의 초대가 차지하는 중심적 지위는 바울 서신에 있어서 빌 2:6 - 빌 2:11에 나오는 그리스도 찬가가 차지하는 그것에 상응한다. 자기를 비움(7절)에서부터 시작되어 자기를 낮추심(8절)을 통하여, 하나님에 의하여 높임을 받으심에 이르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 관한 묘사에서 하나님께서 역사(歷史)를 주관하신다는 구약성경의 선포의 큰 줄기들이 그 선포들이 성취되는 시점에 이르러 한 곳에 합류되고 있음을 본다.|이로써 하나님은 자신의 약속을 지키셨다.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스스로를 낮추심은 주님의 지배 아래 있는 새로운 삶을 열어 놓았다(10절 이하). 이것이 타페이노프로쉬네, 즉 겸손(3절), 봉사할 용의, 그 본을 받는 것의 근거이다. 빌 2:5에서도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고 말씀하고 있다.|자기를 낮춘다는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다음과 같이 이중적으로 정의되었다. 한편으로 주님은 죽음, 그리고 십자가라는 극단적인 치욕에 이르기까지 복종하셨다. 다른 한편으로 주님은 하나님의 신실함에 대한 믿기 어려운 약속 이외의 다른 아무 것도 의지하지 않으셨다(참조:시 22:25; 25:18; 31:17; 90:3; 119:50, 92,150; 특히 사 53:7-12)(H.W.Wolff).||(d) 바울은 사도로서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주님을 따르는 일로 이해하였다. 주님께서는 높아지심으로써 바울에게 힘을 주셨는데, 이는 스스로 낮아지심으로써 성취한 것이다(빌 4:12 이하). 그리하여 바울은 "비천에 처하는 비결"을 알았다. 이것은 아마도 배고프고 곤궁하고, 물질이 없어 당하는 고통과 그밖의 고난을 의미할 것이다(참조:고후 11:23 - 고후 11:29; 고후 12:7 - 고후 12:10). 여기에는 아마 육체노동이 포함될지도 모르는데, 바울의 적대자들은 이것이 어떤 숨겨진 죄에 대한 속죄의 행위가 아니냐라는 생각을 은근히 표현하였지만, 바울은 그 일을 함으로써 자기는 값없이 복음을 전할 수 있고, 가르치는 활동으로 교회를 세우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 이에 대꾸하였다: "내가 너희를 높이려고 나를 낮추어 하나님의 복음을 값없이 너희에게 전함으로 죄를 지었느냐"(고후 11:7).||(e) 바울은 교회를 방문할 때 최후 수단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으로 인한 색다른 비하(humiliation)를 두려워 한다: "내 하나님이 나를 너희 앞에 낮추실까 두려워 하고". 그들의 죄를 계속 행하는 자들의 변화(회개)가 없으면 그렇다는 것이다(고후 12:19 - 고후 12:21). 이 비하는 그가 그 공동체에서 당하는 멸시 뿐만 아니라 죄로 타락한 회중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명예와 신망에 대한 위협(손상)으로 되어 있다.||(f) 약 4:10에서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라는 말은 잠 3:34("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나니")에 근거하고 있다. 높이는 것은 하나님이 자기에게 그 자신을 복종시키는 자에게 주시는 은혜이다. 이 문맥은 이 복종이 정화시키는 회개의 행위로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벧전 5:6에서 하나님께 대한 복종에 대해 말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문맥이 보이는 대로는 이것이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전적으로 믿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다.|이 단어의 헬라어 용법과 성경의 용법의 근본적 차이는 이미 시사되었다. 인간을 인간 중심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헬라 세계에서, '낮음'은 '부끄러운 것', '행동과 생각에서 회피하고 극복해야 할 것'으로 간주된다. 인간을 신(神) 중심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신약성경에서는 이 단어가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 및 동료 인간과 올바른 관계를 갖도록 해주는 사건들을 묘사하는데 사용된다.|(참조: H.H.Esser; W.Grundmann). → $5011 타페이노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