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예
uJphrevth"
하인, 고용인 servant, 조수 helper, 보조자 assistant.||#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a) 명사 휘페레테스는 Aesch.에 처음 나오며, 처음에 신들의 사자인 헤르메스에 대해서 사용되었다. 휘페레테스는 이 문맥에서 제우스의 뜻을 행하는 자, 곧 자기 배후에 최고의 신 제우스의 능력과 권위를 지닌 자를 의미한다. 그래서 자기보다 높은 존재의 뜻을 받드는 자라는 의미가 되었다. 높은 존재의 뜻은 반드시 신의 뜻만을 말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 이 단어는 군대나 의료 분야, 상업, 법률 등의 분야에서 예를 들면 의사의 보조원 또는 사법적 판결 집행자들을 의미한다.|종교에서는 휘페레테스는 제사를 돕는 사람들을 나타낼 때 사용되었다. 그리고 인간 관계에서는 휘페레테스라고 하면 친구를 위해서 무엇인가 안정되도록 이타적인 마음을 갖고 도와주는 사람을 의미한다. 복종을 하고 봉사한다는 것이 언제나 초점이다. 그러나 그가 맡은 기능이나 사명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는 그의 편에서 상당한 권한을 가질 수 있다.|한편 휘페레테스는 둘로스(종, 노예)와 구별된다. 왜냐하면 휘페레테스는 자유인이며, 자기가 제공한 봉사의 정당한 대가를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휘페레테스는 디아코노스(종)나 데라폰(종)과는 달리 상급자가 해놓은 일을 배우며, 인격적인 권위나 가치에 대한 편견없이 그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b) 전통적으로 이 어군은 에레테스(%3: 뱃사공)와 관련이 있는 것처럼 생각되어 왔기 때문에 '뱃사공, 조수'라고 설명되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뱃사공에 두 종류의 계급이 없었으며, 또한 뱃사공들이 계급이 있다고 해도 어떤 사람이 휘페레테스가 되는 것은 노를 젓기 때문이 아니라 지시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인 것이다. 그렇다면 휘페르테스는 다른 언어학적인 기원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본래의 어근은 노젓는 것보다는 키를 잡고 조종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두 명의 승무원을 태운 보트에서는 선장으로부터 지시를 받는 사람이 휘페레테스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단어는 노예는 아니면서 자유인으로서 명령에 따라야만 되는 사람을 나타내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2. 70인역본 및 유대교의 용법||(a) 휘페레테스는 70인역본에서 4회 나오며, 잠 14:15에서 왕의 '신하'를, 집회서 6:4에서 주님의 나라를 맡은 '통치자(나 관리)'를, 사 32:5에서 '종'(servant)을 나타낸다.||(b) 자신을 일컬어 자기 가족을 위한 휘페레테스이며 디아코노스라고 할 때에 휘페레테스는 하나님을 돕는다는 의미에서 자기의 역할을 나타내며, 디아코노스는 자기가 가족에게 하는 봉사를 나타내는 것이다(On Joseph 241).|요세푸스에서 휘페레테스는 주로 누군가를 돕는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모세, 레위 등은 하나님의 조수들이었다. 또한 휘페레테스는 왕의 신하들이나 공직자들, 또는 경비원들을 가리킨다. 야곱은 자기 어머니가 그에게 장자권을 얻게 하려고 음식을 준비할 때 자기 어머니를 도왔다. 둘로스는 휘페레테스처럼 행동하지만, 근본적으로 휘페레테스는 맡겨진 일을 하든지 거절하든지 자유롭게 할 수가 있다는 점이 다르다. 즉 그 행동의 기능적인 특색이 휘페레테스와 디아코노스를 구별하는 것이다.||#3. 신약성경의 용법||휘레페테스는 신약성경에서 20회 나오며, 고전 헬라어나 헬레니즘 헬라어에서와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의 뜻을 보조적으로 수행하는 자'라는 일반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a) 휘페레테스는 일반적으로 '어떤 권력자의 수행원이나 관리들'에 대해 사용되었다.|① 마 5:25에서 법정에서 죄수들의 형벌을 집행하는 관리를 의미한다: "너를 송사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송사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 주고 재판관이 [관예]에게 내어 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휘페레테스는 종말론적인 심판을 집행하는 자이다.|② 요 18:36에서 휘페레테스는 나의 종들, 왕의 지휘하에 있는 군사들을 나타낸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여기서의 의미는 예수님께서 싸움을 하는 휘페레타이(복수, 종들)를 가지고 계시지 않다는 것이 아니면, 싸움을 허용하지 않는 나라에서 휘페레타이를 가지고 계시다는 것이다. 제자들은 친구일 뿐만 아니라 휘페레타이일 수 있었다. 친구로서 그들은 왕과 친밀하지만 휘페레타이로서는 그 왕의 목적을 이루도록 왕과 함께 일하는 것이다.|③ 휘페레테스는 산헤드린의 종들이나 관리들을 의미한다(마 26:58; 막 14:54; 막 14:65; 요 7:32; 요 7:45이하; 요 18:3; 요 18:22; 행 19:6; 행 5:22; 행 5:26).||(b) 행 13:5에서 바나바와 바울은 자기들이 사도로서의 선교 사명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자기들의 뜻을 따라 주고 요구를 들어 줄 휘페레테스로 요한 마가를 데리고 있었다.||(c) 고전 4:1. 바울과 아볼로는 그리스도의 일군이다. 그들의 일은 그리스도 안에 나타나신 하나님의 뜻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들이 종들이라는 사실(또는 청지기라는 사실)은 그들에 대하여 비판하는 것이나 심지어 자기 비판까지도 막아 준다.||(d) 행 26:16. 바울은 그리스도의 일군이자 증인이다. 뒤에 나오는 단어가 앞의 단어를 더 엄밀하게 정의한다. 강조점은 주께서 그에게 맡기신 일에 있다. 행 26:19에 있는 순종한다는 문구는 16절의 휘페레테스의 역할을 지배하고 있다.||(e) 눅 1:2: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 되고 [일꾼 된 자들]의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여기에 나타난 말씀의 일꾼들이 누가복음 저자의 집필을 도와 준다. 여기서 일군들은 목격자들과 같은 것이 분명하다. 이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그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선전하는 자들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 용어는 또한 예수님의 설교와 기록된 역사 사이에 연속성을 부여하는 것이기도 한다.|(참조: J.H.Thayer; K.H.Rengst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