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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종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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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종, 예속이나 종속.||#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휘포타게는 휘포탓소($5293: 예속시키다, 복종시키다)에서 유래했으며,|(a) '복종, 복종시킴'(Dion. Hal),|(b) 예속이나 종속, 예속이나 종속적 위치, 둘레이아($1397: 종살이, 노예 신세)와 같음(Artemid. Onirocr.). 노예, 노예 신분(Vett. Val.)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휘포타게는 70인역본 지혜서 18:16에 한번 주님의 참된 '명령'(복종시키는)을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휘포타게는 신약성경에서 4회 나오며 바울 서신에만 사용되었다.||(a) 딤전 2:11에서 주도권에 대한 포기라는 의미에서 '복종'을 의미한다: "여자는 일절 순종함으로 종용히 배우라".||(b) 딤전 3:4에서 가정의 모든 자녀들의 '복종'에 대해 언급한다: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하는 자라야 할찌며".||(c) 고후 9:13에서 바울은 이방 그리스도인들이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 헌금을 하는 것은 그리스도교의 메시지에 대한 신앙 고백으로서 복종의 행위라고 생각했다: "이 직무로 증거를 삼아 너희의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실히 믿고 복종하는 것과 저희와 모든 사람을 섬기는 너희의 후한 연보를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d) 갈 2:5에서 헤 휘포타게는 여유를 두지 않는 전술적인 복종을 의미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요구된) '복종의 행위'이다. "복종치 아니하였으니"라는 문구는 직역하면 '그 복종에서 복종치 아니하였다'이다.|(참조: G. Delling; Walter Bauer; J. H. Thayer).
굴복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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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종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휘포탓소는 휘포($5259: ~에 의하여, ~아래)와 탓소($5021: 순서 있게 정렬하다, 배열하다)에서 유래했으며,||(a) 능동태에서|① '~아래 두다'(Plut., Pap.), 기록 또는 비문에서 '~아래 쓰다'(Ditt. Or.), '제목 아래 열거하다'(Polyb.).|② '하위에 두다, 복종시키다, 종속시키다'(Aristot).||(b) 중간태에서|① '스스로 복종하다'(Herodian.), '굴종적이다, 비굴하다'(노예적 근성, Jos. Bell.). '주인으로 인정하다'(Jos. Bell.).|② '자발적으로 복종하다'(Ps. -Callisth.).|(참조: G. Delling).||#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휘포탓소는 70인역본에서 약 30회 나오며, 10개의 히브리어 단어의 역어로 사용되었다.|휘포탓소는 (a) 능동태에서 '~아래 두다, 복종시키다'(단 11:39; 마카베오이서 8:9, 22), '하위에 두다'(시 8:6), '복종시키다'(시 144:3; 시 18:48; 시 47:4), '이기다'(지혜서 18:22).||(b) 중간태에서 '복종하다'(단 6:13), '어떤 자의 지배권이나 권세를 인정하다'(대상 22:11), '하나님께 항복하다'(시 37:7; 시 62:2; 시 62:6)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참조: G. Delling).||#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휘포탓소는 신약성경에서 38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휘포탓소는 능동태로 '복종시키다, 종속시키다, ~ 아래에 두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롬 8:20; 히 2:5; 히 2:8a(시 7:8[70인역본] 인용; 고전 15:27에서도 시 7:8을 인용); 엡 1:22에서 하나님의 주어이다. 고전 15:27; 고전 15:28; 빌 3:21; 히 2:8에서 "만물을 그에게 복종시킨다"(휘포탓소 아우토 타 판타)는 표현이 나타난다.||(b) 휘포탓소는 수동태로 '복종하다, ~아래 놓이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롬 8:20; 고전 15:27; 고전 15:28; 히 2:8; 벧전 3:22(참조: 단 7:27).||(c) 휘포탓소의 중간태 용법이 가장 자주 나타나는데, '~에 종속하다, 복종하다, 항복하다, 순종하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① 주로 여격과 함께 사용된다: 하나님께, 고전 15:28; 히 12:9; 약 4:7(참조: 시 61:2; 시 61:6[70인역본]); 하나님의 법에, 롬 8:7; 하나님의 의에, 롬 10:3; 그리스도에게, 엡 5:24.|② "예언하는 자들의 영이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재를 받나니"(고전 14:32), 악한 영들이 제자들에게 항복한다(눅 10:27; 눅 10:20: 참조: T. Sim. 6:6). 어린 예수님이 부모에게 순종했다(눅 2:51).|③ 이 동사는 가정에 관련된 문제에서 가장 자주 나타나며 '복종, 순종'에 대해 사용되었다: 정치적 권세들에게(롬 13:1; 롬 13:5; 벧전 2:13 이하; 딛 3:1); 아내들이 남편에게(골 3:18; 엡 5:24b; 벧전 3:1; 벧전 3:5; 딛 2:5); 일반적인 의미로(고전 14:34; 참조: 딤전 2:11); 종이 주인에게(벧전 2:18; 딛 2:9); 연소자가 연장자에게(벧전 5:5; 참조: Josephus B.J. ⅱ. 146); 고린도의 그리스도인들이 교회 안에서 동역자들에게(고전 16:16).|'순복은 초기 기독교 전통에서 기본적으로 요구된 품행이 되어 엡 5:21과 벧전 2:13에서 특별한 권면에 앞서 그 자체가 예비 명령으로써 일반적 형태로 주어진다'(Kamlah 237; 엡 5:21에 대해 1Qs 5:23을 참조하라. 서로 순종하라. 즉 아랫 사람은 윗 사람에게 순종해야 한다).|(참조: R. Bergmeier).
깨우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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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놓다, 내던지다, 가르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휘포티데미(Homer 이래)는 전치사 휘포($5259)와 티데미($5087: 놓다, 두다, 정하다, 고정하다)에서 유래했으며,||(a) '내 던지다, 내놓다, 위험에 내 맡기다'(Lucian, Enc. Dem. 41).|(b) 중간태로 '제시하다, 지적하다'(Hom., Hdt., Pla.), '명령하다'(Hdt., Philo.), '알게하다, 가르치다'(Pla., Hipp.)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휘포티데미는 신약성경에서 2회 나오며, 로마서와 디모데전서에만 사용되었다.||(a) 롬 16:4에서 (a)의 의미로 사용되었다.|(b) 딤전 4:6에서 '가르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네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그리스도 예수의 선한 일군이 되어 믿음의 말씀과 네가 좇은 선한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아래로 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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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로 달리다(항해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휘포트레코(Homer 이래)는 전치사 휘포($5259)와 트레코($5143: 뛰다, 달리다)에서 유래했으며, '아래로 달리다, 바람을 피하여 달리거나 항해하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휘포트레코는 신약성경에서 행 27:16에 한번 나온다: "가우다라는 작은 섬 아래로 지나 간신히 거루를 잡아". 휘포트레코는 문자적으로 '아래로 달리다'이며, 여기서 섬의 기슭을 따라 '바람을 피하여 항해하는 것'을 나타낸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휘포튀포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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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본, 모형, 모범||#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휘포튀포시스(Diog., Philo.)는 휘포튀포오(%736: 묘사하다, 윤곽을 그리다)에서 유래했으며,||(a) '외형, 윤곽' an outline, '밑그림, 소묘, 약도' sketch,|(b) '견본, 표본' an example,|(c) '모형, 모범, 모본, 원형, 표준'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휘포튀포시스는 신약성경에서 목회서신에 2회 나온다.||(a) 딤전 1:16,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절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바울은 예수님께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신 바로 그 죄인들의 '견본'이었다.||(b) 딤후 1:13,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 켈리(Kelly)가 지적하듯이 "바울은 디모데가 자기의 가르침을 글자대로 옮겨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본(本)이라는 뜻은 조각가가 모형을 만들거나 작가가 전체적인 윤곽을 잡기 위해 초안을 짜는 것을 의미한다". 디모데는 사도 바울의 가르침을 '복사'할 필요가 없었다. 다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데 있어 비록 자신의 자유로운 표현과 방법을 사용하되 그 근본 가르침의 순수성과 권위에는 변동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 바울의 강조점이었다.(J. G. Gould).|(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휘포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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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탱하다, 견디다, 참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휘포페로(Homer 이래)는 전치사 휘포($5259)와 페로($5342: 견디다, 참다, 지탱하다, 운반하다, 낳다)에서 유래했으며, '지탱하다, 참을성 있게 버티다, 복종하다, 견디다, 참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휘포페로는 신약성경에서 3회, '견디거나 참는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a) 고전 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b) 딤후 3:11, "핍박과 고난과 또한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당한일과 어떠한 핍박 받은 것을 네가 과연 보고 알았거니와 주께서 이 모든 것 가운데서 나를 건지셨느니라".||(c) 벧전 2:19,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휘포코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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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돌아 가다, 물러가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휘포코레오(Homer 이래)는 전치사 휘포($5259)와 코레오($5562: 자리를 만들다, 전진하다, 나아가다, 붙잡다)에서 유래했으며, '되돌아 가다(오다), 물러가다(나다), 후퇴하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휘포코레오는 신약성경에서 누가복음에 2회 나온다.||(a) 눅 5:16에서 '물러가다'를 의미한다: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b) 눅 9:10에서도 같은 의미를 지닌다: "사도들이 돌아와 자기들의 모든 행한 것을 예수께 고한대 데리시고 따로 벳새다라는 고을로 떠나 가셨으나".|(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휘포피아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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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칠게 다루다 treat roughly, 학대하다 maltreat.||#1. 고전 헬라어의 용법||동사 휘포피아조(Aristot. 이래로)는 휘포피온(%71: 눈 아래의 얼굴 부분)에서 유래했으며||(a) '눈 아래를 때리다', '눈을 멍들게 하다'(아리스토텔레스, 플루타르크)를 의미하며, 여기서 '거칠게 다루다, 학대하다'라는 뜻이 생겨났다.|(b) 비유적으로는 '(말로) 중상모략하다, 징계를 가하다'를 의미하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휘포피아조는 70인역본에서 욥 11:13에만 한번 히브리어 파라스(펼치다, 뻗치다)를 번역하는데, 기도시에 하나님 앞에서 '손바닥을 펼친다'는 의미를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휘포피아조는 신약성경에서 2회 나타난다.||(a) 눅 18:5에서 휘포피아조는 문자적 용법인지 전이된 용법인지 결정하기 어렵다: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여기서 휘포피아조는 문자적 의미로 볼 수도 있지만 전이된 의미로 보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의미는 그녀가 결국은 공적 현장에 '나를 들어내지 않도록' 또는 '그녀가 계속 와서 완전히 나를 지치게 하지 않도록'이 될 것이다(K. Weiss).||(b) 고전 9:27에서 휘포피아조는 기독교 생활에 비교된 운동 선수의 훈련을 묘사한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당시의 권투 선수도 권투 장갑(소가죽 띠로 만든 것)을 사용했는데, 이것을 끼면 더 잘 때릴 수 있었다. 바울은 자신의 몸이 자신의 주인이 되는 것을 용납지 않았다. 그는 자기 단련의 열매로서 선을 발견하였다(고후 12:7; 롬 8:13; 골 2:23; 골 3:5) (Robertson).|(참조: E.M.Embry).
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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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swine.||#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휘스(Homer 이래)는 기본어이며, '돼지'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휘스는 신약성경에서 벧후 2:22에 한번 나온다: "참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저희에게 응하였도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우슬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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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솝, 우슬초 hyssop.||#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휫소포스(Alexiph.)의 기원은 히브리어이며, '히솝풀, 우슬초'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휫소포스는 신약성경에서 2회 나온다.||(a) 요 19:29,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머금은 해융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b) 히 9:19, "모세가 율법대로 모든 계명을 온 백성에게 말한 후에 송아지와 염소의 피와 및 물과 붉은 양털과 우슬초를 취하여 그 책과 온 백성에게 뿌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미치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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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늦게오다, 부족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휘스테레오(Eur., Hdt. 이래)는 휘스테로스($5306)에서 유래했으며,||(a) `뒤에 오다, 너무 늦게 오다, 놓치다, 미치지 못하다, 배제되다',|(b) `∼를 필요로 하다, 부족하다',|(c) `∼보다 못하다, ∼보다 열등하다',|(d) `실재하다, 동나다, 모자라다, ∼이었다, 결핍하다.'||#2. 70인역본의 용법||휘스테레오는 70인역본에서 21회 나오며, `부족하다, 필요하다, 모자라다, 제외되다' 등의 의미로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휘스테레오는 신약성경에서 16회 나오며 고전 헬라어의 의미를 나타낸다.||(a) 휘스테레오는 `너무 늦게 오다, 미치지 못하다, 놓치다, 제외되다'를 의미한다.|히 4:1,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히브리서 기자는 광야 세대가 약속된 땅에 들어가지 못한 것은 반항과 불신앙 때문이라고 언급하고난 후에(참조: 히 3:7이하), 독자들에게 어느 누구든 하나님이 약속하신 안식을 얻는데 실패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간청하였다(히 4:1).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대한 믿음의 지속적 결핍이 바로 사람으로 하여금 약속을 얻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참조: 히 4:2).|히 12:15에서도 동일한 훈계는 되풀이하고 있다: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고". 여기서 기자는 평화를 유지하고 성결해지기를 노력하지 않아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하게 되지 않도록 경계한다. 각 실례에서 은혜와 약속에 이르지 못하게 되는 원인을 인간이 하나님을 멸시함으로써 스스로가 하나님이 예비하신 것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풀이할 수 있다.|롬 3:23에서 바울은 롬 1:18-롬 3:20에 나오는 논쟁을 결론지어 말하기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역사로 인하여 우리의 부족을 보충하신 하나님의 의롭다하시는 은총을 힘입어 우리도 영화롭게 되었다. 일단 구원이 하나님의 영광의 수준에서 성취된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면, 그것은 인간의 업적일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선물로서 부여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참조: 롬 3:21-롬 3:26).||(b) 휘스테레오는 신앙 생활과 관련하여 `필요하다, 부족하다'를 의미한다.|마 19:20, "그 청년이 가로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오니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여기에서 부자 청년은 예수님께 자신이 계명을 지켰노라고 단언하였다. 그리고나서 그는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라고 물었다. 그는 자신이 절대적인 부족 때문에 영생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사실은 알지 못하고 어떤 일을 떠 맡음으로써 이행되어질, 아직 성취되지 않은 약간의 잔여 부분에 관해서만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막 10:21의 병행 기사에서 부족에 대해 말씀하신 분은 바로 예수님이시다,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가라사대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그 사람에게 부족한 한가지 것이란 자기 희생적인 헌신이었으며, 이것은 예수님의 참된 제자가 되려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갖추어야할 특징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예수님은 자기를 좇아 열 두 제자와 함께 하나님 나라의 생명에 필요한 것을 획득하라고 그에게 권유하셨다. 이 문맥에서 예수님의 부르심은 제자가 되는 것이 결국 율법에 대한 참된 순종이라는 사실을 묘사하고 있다.||(c) 휘스테레오는 풍요와 대조적으로 `부족하다'를 의미한다.|눅 15:14에서 탕자의 부족(궁핍)을 나타낸다: "다 없이한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저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기근이 들자, 탕자는 부족을 깨닫게 되고, 굶주리게 되었다.|눅 22:35에서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파하러 제자들을 보내실 때 돈주머니나 양식을 주지 않으셨지만, 그들은 결코 부족한 것이 없었다: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전대와 주머니와 신도 없이 보내었을 때에 부족한 것이 있더냐 가로되 없었나이다".|고전 1:7에서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영적 은사에서 아무 것도 부족한 것이 없었다는 사실을 하나님께 감사한다: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고린도교인들이 고전 4:8에서 보인 영적인 태도는 신학적으로 볼 때 공명심이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비교하려는 것이다.|고후 11:9, "또 내가 너희에게 있어 용도가 부족하되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함은 마게도냐에서 온 형제들이 나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음이라 내가 모든 일에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하여 스스로 조심하였거니와 또 조심하리라".|바울은 교회에 짐이 되느니보다 부족한 채로 고린도에서 고생할 각오가 되어있었다. 바울이 고린도에 있으면서 빈곤에 처해 있을 때, 그에게 부족한 것은 마케도냐에서 온 관대한 형제들에 의해 공급되었다.|빌 4:12에서 바울은 자기 자신의 삶에 관하여, 풍요를 즐기고 만족스럽게 궁핍에 처하는 비결을 배웠노라고 말할 수 있었다: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히 11:37에서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약속을 종말에 성취될 것으로 기다리는 동안 선조들이 겪었던 궁핍을 묘사하고 있다: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d) 휘스테레오는 `∼보다 못하다, ∼보다 열등하다'를 의미한다.|고후 11:5, "내가 지극히 큰 사도들보다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는 줄 생각하노라".|바울이 지극히 큰 사도들 `보다 못하거나 열등한 것이 조금도' 없다고 스스로 단언할 때, 그가 말하고자한 바는 그들과 비교함으로써 드러나게되는 어떤 결함을 보충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고후 12:11에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어리석은 자가 되었으나 너희가 억지로 시킨 것이니 내가 너희에게 칭찬을 받아야 마땅하도다 내가 아무것도 아니나 지극히 큰 사도들보다 조금도 부족하지 아니하니라".|고전 12:2에서 바울은 교회를 사람의 몸에 비교하여, 하나님께서 이 몸을 고르게 하시어 더 큰 영광을, 보다 못한 지체에 부여하신다고 말하였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사 년 전에 그가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V. Wilckens; W. L. Lane).
구차함
uJstevrhma
결핍, 부족 need.||#1. 일반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휘스테레마는 70인역본 이전의 고전 문헌이나 헬레니즘 문헌에는 실례들이 보존되어 있지 않다. 휘스테레마는 헤르메스 자료집에서 `부족'을 의미하였고, 클레멘트일서에서 `부족한 것'을 나타낸다.|디오 카시우스(Dio Cassius ) 44, 48, 2에서는 가이사(Caesar)를 위해서는 어떤 칭호든 아낌없이 붙였다고 말한다. 단일 칭호로는, 그것이 어떤 것이든, 명예나 권위의 완벽한 표현을 해주기에 부족하였기 때문에 다른 칭호들을 더 사용하여 그 부족한 점을 보충해 줌으로써 상호적 완벽성을 띠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모든 실례들에서 이 명사는 `부족', `결핍', `필요'의 의미를 지닌다.||#2. 70인역본의 용법||휘스테레마는 70인역본에서 6회 나오며, `부족, 결핍'을 나타낸다(삿18:10; 삿 19:19이하; 전 1:15; 시 34:9).||#3. 신약성경의 용법||휘스테레마는 신약성경에서 9회 나오며, 누가복음에 한번, 그밖에 모두 바울서신에만 사용되었다.||(a) 휘스테레마는 눅 21:4에서 `부족'이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의 있는 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여기서 예수님은 풍부한 가운데서 성전 연보궤에 헌금하는 부자의 헌금과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바친 가난한 과부의 헌금을 대조시킨다. 이 문맥에서 휘스테레마는 풍요의 반의어로서, `어떤 것의 상대적 부족'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궁핍이나 가난'을 의미한다.|고후 8:14에서도 같은 의미를 지닌다: "이제 너희의 유여한 것으로 저희 부족한 것을 보충함은 후에 저희 유여한 것으로 너희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평균하게 하려 함이라".|바울은 또한 고린도 교인들에게 연보 계획에 참여하라고 촉구하는 문맥에서도 똑같이 풍요와 가난을 대조시키고 있다. 여기서 바울은 모금을 격려하면서 이방인 기독교인들의 풍성함이 예루살렘 교인들의 `가난' 혹은 `궁핍'을 보충해 주어야 하며, 그렇게 함으로서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고 말한다(고후 9:12).|고후 11:9에서 바울의 "부족한 것이" 마게도냐 교회에 의해서 보충되었다고 한다: "또 내가 너희에게 있어 용도가 부족하되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함은 마게도냐에서 온 형제들이 나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음이라 내가 모든 일에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하여 스스로 조심하였거니와 또 조심하리라".|고전 16:17에 의하면, 고린도의 장로들이 방문함으로써 바울이 애정과 관심을 보인 고린도 교인들의 부족을 보충하였다: "내가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의 온 것을 기뻐하노니 저희가 너희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음이니라".|빌 2:30, "저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빌립보에 있는 기독교인들이 진심으로 바울을 염려하였으나 그 공동체에 부족한 점, 곧 그의 곁에서 수고할 기회를 제공해 준 사람은 바로 그들의 사자(使者) 에바브로디도였다. 이런 점에서 에바브로디도는 빌립보 교인들의 부족을 보충해 줌으로써 그 사도에 대한 그들의 임무를 다한 셈이었다.|바울의 "부족한 것"이 채워졌을 때 바울이 기뻐하는 것을 채워졌다는 사실 때문보다도 그것을 통해서 표현된 사랑과 나눔의 생활 때문이었다.|(참조: 빌 4:10이하).||(b) 살전 3:10에서 휘스테레마의 복수가 사용되어, 신앙의 `부족한 것들'을 나타낸다: "주야로 심히 간구함은 너희 얼굴을 보고 너희 믿음의 부족함을 온전케 하려 함이라".|바울은 디모데의 보고에 대한 응답으로, 데살로니가인들에게 자기가 벌여놓은 일을 완성하러 데살로니가로 되돌아가고 싶다는 강한 열망을 나타내는 글을 썼다(참조: 살전 2:17-살전3:13). 바울은 자신이 주야로 심히 간구함은 그들을 다시 한번 보고 그들의 믿음의 부족함을(타 휘스테레마타) 온전케 하려고 하였다. 이 문맥에서 이 복수형은 그들의 믿음이 성숙할 필요가 있는 특별한 영역들을 포괄한다. 엄밀히 말해서 이러한 영역이 살전 5:14에 시상되어 있는데, 바울은 이 구절에서 도덕적으로 약한 것(참조: 살전 4:1-살전 4:8), 게으른 것(참조: 살전 4:9-살전 4:12) 그리고 마음이 약한 것(참조: 살전 4:13-살전 5:11)을 들고 있다. 여기에서 단수형이 사용되면 데살로니가인들의 믿음 그 자체에 결함이 있음을 시사해주는 것이 된다. 그렇지만 사도 바울의 의도가 믿음의 체험에 어떤 결함들이 있음을 지적하는 데 있었으므로, 그는 편지의 나머지 부분에서 목회적인 관심을 가지고 그러한 결함들에 관련, 권고하고 있다. 그런 이유 때문에, 그는 이 명사를 복수형으로 만들었다. 이 구절은 `아직 부족한 점이 있는 특별한 영역 안에서 여러분들의 믿음을 돕기 위함이라'라고 번역할 수 있다.||(c) 골 1:24에서 휘스테레마는 그리스도의 고난의 `부족한 것들'을 나타낸다: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바울은 그리스도의 화해 사역에 참여한다고 말하는 대목에서, 그가 받는 괴로움에 대해 기뻐한다고 말한다(골 1:24a). 왜냐하면 그가 교회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고난들의 부족한 것들'(원문 참조, 한글개역 -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골 1:24b). 여기에서 이 `부족한 것들'에 대해 고찰해 볼 때, 이것을 그리스도의 대리적 고난과 구속의 완성인 십자가에서의 죽음과 결부된 언급이라고 볼 수는 없다. 바울은 화해가 진실되고 유효하게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성취되었음을 뚜렷이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사도나 다른 어떤 사람들로부터도 결코 보충받을 필요성은 없는 것이다(참조: 골 2:11-골 2:14). 더구나 들립시스("고난")이란 말은 신약성경 전체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속죄적인 죽음을 묘사하는 용법으로는 단 한번도 사용되지 않았다.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동안이나 십자가에 달린 동안 당하신 그의 고난에 사용된 예는 없다.|이 해석의 열쇠는, 신약성경에서는 이곳에만 나오는 "그리스도의 고난들"이란 문구에 있다. 일단 우리는 여러 주석가들처럼 이 문구에 속죄 사상이 없는 것으로 이해한다 할지라도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고난들"에 대하여 여러 가지 고려할 점이 있다하더라도 우리가 본 구절을 있는 그대로의 의미로서 지상에서 당하신 그리스도의 고난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경우 거기에는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첫째 해석은 라이트푸트나 그밖의 몇몇 학자들이 주장한 것으로서, 본 구절을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데 포함되는 고난의 의미로 받아들인다. 이 경우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일군들이 당할 고난의 여지를 남겨두신 것이 된다. 둘째 해석은 본 구절에 나타난 고난을 그리스도께서 바울 안에서 당하신 고난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과 그의 구세주는 신비스러운 결합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이 마지막 해석은 권장할 만한 것이다. 이 해석은 그리스도의 고난이 부족하다고 하는 어떠한 주장도 배제시켜 버린다. 이 해석은 또한 본 구절을 "나의 육체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고난"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더 나아가서 이 해석은 그리스도께서 그의 신비적인 육체 안에서 고난 당하신다는 사상, 그래서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바울에게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라고 물으실 수 있었던 사실과 잘 부합된다. 이제 우리는 교회를 위한 바울의 고난 가운데서 다음 사실을 명백히 일 수 있다. 즉,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를 구원하시려고 그의 실제적인 육체 안에서 고난 당하셨던 것과 꼭 같이, 자신의 교회를 세우시기 위해서는 그의 신비적인 육체로 구성하는 성도들 안에서 고난을 당하신다.|바울이 육체 안에 있는 그 고난은 아직 완전하지 못하다. 그래서 그는 그 고난을 채우고 있는 중이다. 합성 동사 안타나플레로오()는 어떤 다른 사람 대신(안티, ) 채운다는 사상을 암시해 준다. 그러나 모울(C.F.D.Moule)이 지적한 바와 같이 한 동사는 한 전치사와 결합하여 합성됨으로써 다른 전치사 다음에 따라 나올 수 있다. 이 경우 본절에 나타난 합성동사는 바로 앞에서 사용된 휘페르 휘몬("너희를 위하여")을 상기시켜 주는 동시(同時)에 또한 휘페르 투 소마토스 아우투 호 헤스틴 헤 에클레시아("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를 내다보게 해 준다. 그가 고난을 즐거워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의 고난은 하나님의 선택을 완성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당하는 고난은 물론 그 자신의 육체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오해를 막기 위해서 그는 자신이 위하여 고난 당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몸이 교회라는 사실을 부연하고 있다(H. M. Carson).|(참조: J. H. Thayer; Walter Bauer; W. L. Lane).
궁핍함
uJstevrhsi"
부족, 결핍||#1. 일반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휘스테레시스는 휘스테레오($5302)에서 유래했으며, 역시 명사 휘스테레마와 같이, `부족, 결핍'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휘스테레시스는 70인역본에서 6개 국어 대조판(Hexapla, 욥 30:3 아굴라역본)에만 나오며, `부족, 결핍'을 의미한다.||#3. 신약성경의 용법||휘스테레시스는 신약성경에서 2회 마가복음과 빌립보서에만 나온다.|막 12:44에서 휘스테레시스는 `부족, 부족한 것'이란 의미를 나타낸다: "저희는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셨더라".|병행구, 눅 21:4에서는 휘스테레시스 대신 휘스테레마가 사용되었는데 의미는 동일하다. 이 문맥에서 휘스테레시스나 휘스테레마는 풍요의 반의어로서, `어떤 것의 상대적인 부족'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궁핍', `가난'을 뜻한다.|빌 4:11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부족, 결핍, 가난'이라는 일반적인 의미와 사도 바울이 빌립보로부터 헌금을 받았을 때 보인 반응에서 분명해진다. 그는 궁핍에 대해 불평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모든 상황에서 자족하는 비결을 배웠기 때문이다.|(참조: Walter Bauer; W. L. Lane).
다하매
u{steron
둘째로, ∼후에, 그 후, 마지막으로||#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부사 휘스테론(Homer 이래)은 휘스테로스($5306)의 중성이며, `둘째로, 후에, 나중에' 그리고 공간적이고 시간적이고, 논리적인 의미에서의 `마지막으로', `결국'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휘스테론은 70인역본에서 15회 나오며, `후에, 나중에, 다음에, 마지막으로'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휘스테론은 신약성경에서 10회 나오며, 언제나 시간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a) 휘스테론은 주로 `후에' 혹은 나중에 일어날 일에 대하여 사용되었다. 예수님께서 주리게 된 것은 40일간 금식하고 나신 이후의 일이었다(마 4:2; 참조: 마 21:29; 마 21:32; 마21:37; 마 22;27; 마 25:11; 요 13:36).|아버지의 모든 징계가 당시에는 고통스러우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열매를 맺게된다(히 12:11). 이 경우에 휘스테론은 현재와 반대된다.||(b) 휘스테론은 `마침내, 최후에, 마지막으로' 최상급 의미를 나타낸다(마 21:37; 마 26:60; 마 22:27; 눅 20:32).|(참조: Walter Bauer; W. L. Lane).
휘스테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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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 있는 것 what is behind , 나중에 after, 후자 the latter, 뒤에 later.||#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휘스테로스(Homer 이래)는 기본 의미로는 `뒤에, 후에 있는 것'이며, 특별히 시간에 대해 사용되었다. 이 형용사는 둘 중에서 `두번째'(Aristotle) `다음' 해 혹은 `후에, 나중에, 후자'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휘스테로스는 70인역본에 4회 나오며 언제나 시간에 관해 사용되어, `후에, 나중에 다음에'라는 의미를 나타낸다(대상 29:29; 지혜서 19;11; 마카베오삼서 5:49).||#3. 신약성경의 용법||휘스테로스는 신약성경에서 2회 나오며, 마태복음과 디모데전서에만 나온다.||(a) 마 21:31에서 두 아들의 비유에서 이 말은 두 아들 중 "둘째 아들" 즉 작은 아들이라는 비교적인 의미를 가진다: "그 둘 중에 누가 아비의 뜻대로 하였느뇨 가로되 둘째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기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b) 딤전 4:1에서는 `마지막 날에'라는 최상급을 사용한다: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여기에서 이 단어는 딤후 3:1에 기록되어 있는 동일한 경고문의 도입구 "말세에"라는 관용어구와 대등한 것이며, 후자의 문구가 종말론적인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이것은 교회가, 신자들의 믿음을 파괴하는 일에 몰두해 있는 거짓 교사들에 의해 찢겨질 미래를 내다 본 말씀이다. 이처럼 휘스테로스를 최상급의 의미로 사용하는 것이 후기에는 전문적인 것이 되었다. 예를 들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마지막 때에[휘스테로이스 카이로이스] 오실… 그리스도"에 대한 언급 등에서이다(Acta Carpi 5).|(참조: J. H. Thayer; Walter Bauer; W. L. La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