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해설 42 페이지 > 기독정보닷컴

낫다
ajpokaqivsthmi
되돌리다, 회복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아포카디스테미는 아포($575)와 카디스테미($2525)에서 유래했으며, 기본 의미는 '이전의 상태로 되돌리거나 회복시키다'이며, 이 의미에서 다음의 의미가 파생되었다.||(a) '반환하거나 돌려주다', 임대한 것이나 빌린 것에 대하여 사용되었다.(P. Oxy., Xenoph.)||(b) '복구하다'나 '회복하다'.|① 수로(canal)에 대하여 사용되었다(Ditt. Or.).|② 중간태로 '치유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Diosc.).||(c) 우주론적으로 '세상을 새롭게 하다'(Herm. Trismeg.).||(d) 정치적으로 '나라를 재건하다'(Antiochu Ephipanes)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아포카디스테미는 70인역본에서 48회 나오며, 몇회를 제외하고는 모두 히브리어 슈브(7725)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되돌리다, 회복하다'라는 의미에서 '돈을 지불하는 것'(창 23:16), 우물 아구에서 돌을 굴려 내는 것(창 39:3), 전직을 회복하거나 복직하는 것(창 40:13; 창 40:21, 창 41:13), 물이 다시 흐르는 것(출 14:26 이하)을 나타낸다.||그리고 출생 때가 같이 되게 하는 것(호 2:5), 공의를 세우는 것(암 5:15), 이스라엘을 포로에서 고국으로 되돌아오게 하는 것(렘 16:15; 렘 23:8; 렘 24:6), 지위를 회복하는 것(겔 16:55), 마음을 서로 돌이키는 것(말 4:6), 병에서 치유됨(욥 33:25) 등을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아포카디스테미는 신약성경에서 8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아포카디스테미는 '회복하다'는 의미에서 '치유하다'를 의미한다.|① 막 3:5, "저희 마음의 완악함을 근심하사 노하심으로 저희를 둘러 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병행구, 마 12:13; 눅 6:10).|② 막 8:25, "이에 그 눈에 다시 안수하시매 저가 주목하여 보더니 나아서 만물을 밝히 보는지라".||(b) 아포카디스테미는 '만물을 회복한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① 마 17:11,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일을 회복하리라"(병행구, 막 9:12). 변모 기사에서 이 예수님의 언급은 말 4:5 이하에 대한 언급이다. 이것은 엘리야가 모든 사물을 올바른 상태로 회복시키므로, 백성들을 회복시키며 개조시키는 도구가 되어 메시야에 대한 올바른 개념과 그의 오심을 준비하도록 할 것이라는 것이다. 세례(침례) 요한이 출현하기 전에는 그들의 견해가 잘못되었고 세상적 기대로 가득차 있었으며, 그들의 행동은 말할 수 없이 부패해져 있었다. 세례(침례) 요한은 메시야에 관한 그들의 잘못된 개념을 바로 잡아 주었으며(마 3장), 광범한 개혁을 행함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회복시키는 도구가 되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유대인들의 메시야에 대한 그릇된 견해를 바로 잡고 메시야의 오심을 준비하도록 하였다(참조: Barnes' Notes).|그러므로 메시야에 관한 논쟁에서 예수님께서 "많은 고난을 받고 멸시를 당할" 인자의 운명을 언급함으로, "모든 것을 회복할" 엘리야의 기능에 집중된 정치적 메시야에 대한 소망을 논박하신다.||② 행 1:6 이하에서 이와 유사한 경향을 찾아볼 수 있다: "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여전히 정치적 메시야의 관점에서 인식했던 제자들의 이런 질문에 대해 예수님은 기한을 계산하지 말고 약속 받은 성령의 선물을 기다리라고 답변하신다.||(c) 히 13:19에서 아포카디스테미는 '되돌아 가다'를 의미한다: "내가 더 속히 너희에게 돌아가기를 위하여 너희 기도함을 더욱 원하노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H. -G. Link; A. Oepke).
계시가 있다
ajpokaluvptw
폭로하다, 덮개를 벗기다, 나타내다, 드러내다.||#1. 고전 헬라어 문헌||아포칼륍토는 칼륍토($2572: 덮다, 감추다)와 아포($575: ~로부터)에서 형성되었으며, 헤로도투스 이래로 고전 헬라어에서 사용되는데, 그 의미는 '덮개를 벗기다'에서 '이전에 감추인 것을 나타내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a) 아포칼륍토는 70인역본에서 약 80회 나오며, 거의 예외없이 히브리어 동사 갈라, 특히 '벗기다(strip)'라는 뜻의 니팔형과 '드러내다,폭로하다'라는 뜻의 피엘형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그러므도 이 단어는 창 8:13에서 문자적으로 방주의 뚜껑을 제친다는 뜻으로 사용되었고, 민 5:18에서는 머리를 푼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그러나 이 단어는 본래 레 18:6 이하와 레 20:11 이하의 법규에서 처럼, 그렇지 않았더라면 덮여있을 성기를 성적 결합을 위하여 노출시킴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던 것 같다. 그런즉 벗김의 목적은 멀리서 관찰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가장 강렬한 형태의 만남으로 들어가는데 있으며, 여기에는 개개인의 인격까지도 포함될 수 있다. 이 개념을 가장 두드러지게 채택한 사람은 에스겔이었는데, 그는 이스라엘의 범죄와 타락상을 묘사하기 위해서 이말을 사용하였다(겔 13:14; 겔 16:36 이하, 겔 16:57; 겔 21:29; 겔 22:10; 겔 23:10, 겔 23:l8; 겔 23:29).|상징적이면서도 여전히 일상적으로 사용된, 아포칼륍토는 '계시하다, 알리다'를 의미한다. 이 단어는 수 2:20; 삼상 20:2; 삼상 20:13; 삼상 22:8; 삼상 22:l7에서 인간의 언어를 나타내는 말로 사용되었고 마카베오일서 7:31에서 인간의 계획을 나타내는 말로 사용되었다.||(b) 대체로, 아포칼륍토가 70인역본에서 신학적인 의미로 사용된 경우는 비교적 드물다. 일반적인 용법이 지배적이다. 이 단어는 민 22:31과 민 24:4; 민 24:16에 기록되어 있는 발람의 예언적 경험의 설화에서 나타난다. 하나님께서 발람 선지의 내면적 눈을 여시고 그에게 참된 실재관을 제공해 주셨는데, 물론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저주해 주기를 바라는 발람의 소망과 일치하지 않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지존자의 지식을 주시어 그로 그의 말씀을 듣고 말할 수 있게 하셨다.|계시가 희귀하던 때에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전에 자기를 알지 못했던 사무엘에게 계시하셨으며(삼상 3:7; 참조: 삼상 3:1), 사무엘의 선지자적 권위는 그 후의 일련의 계시들에 근거한 것이었다. 사무엘은 분명히 완전히 깨어 있었으며 무아경의 상태에 있지 않았다(삼상 3:9 이하). 삼상 9:15과 삼하 7:27에는 귀가 열림에 대해 언급되어 있다. 어떻게 해서, 사무엘과 다윗은 하나님의 훈계와 약속을 들을 수 있었다. 시편기자는 "내 눈을 열어서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라고 기도한다(시 119:18). 자기의 종인 선지자들에게 하나님은 자기의 신적 파이데이아($3809: 교훈) 즉 자기의 은밀한 조언을 계시하신다(암 3:7).|하나님의 계시는 하나님의 지식, 신의(神意)와 비밀들을 전달하는데, 요컨대 이 지식은 무한한 것이다. '지혜의 근원이 누구에게 계시되었느뇨?'(집회서 1:6). 지식의 전달과 함께 하나님의 행위가 계시된다, 삼상 2:27의 말씀은 이스라엘의 노예 시기에 애굽에서 행하신 하나님의 행위의 계시를 회고하는 것이다. 사 52:10과 사 53:1은 하나님의 "팔", 곧 권능의 계시를 말한다. 사 56:1에서 하나님은 자비하심을, 그리고 시 98:2 이하에서 자신의 의(義)와 구원을 계시하시는데, 세상의 종말 때에 이것을 보게 될 것이다. 70인역본의 언어는 옛 언약 하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계시 활동의 분명한 모습을 제공해 준다.||#3. 유대교에서의 계시||(a) 유대교는 더 이상 직접적인 계시를 기대하지 않는다. 초점은 율법, 예언서, 성문서들에서 나타난 과거의 계시에 있는 것이다. 구전(口傳)은 단지 해설으로서의 의미만 지닐 뿐이다. 하나님의 뜻은 지금도 알려지고 있고 앞으로도 알려질 것이다. 마지막 때에는 새로운 계시가 임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계시의 일부는 새로운 설명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b) 묵시는 개시의 대용어이다. 묵시의 유형은 위경(僞經)이다. 계시들은 과거의 위대한 인물들에게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신적인 초월성이 강조된다. 새 시대는 이미 존재한다. 악이 절정에 달할 때 새 시대는 능력을 가지고 동틀 것이다. 선견자들에게 있어서는 환상 속에서 이미 베일이 제거되었다. 선견자들은 싸우고 있는 하나님의 종들을 격려하기 위해 이러한 환상을 제시해 준다. 묵시의 주제들의 중요성. 세계사에 대한 개념, 그리고 계시에 대한 역동적인 이해로 인해 묵시는 중요하게 된다.||(c) 헬레니즘 유대교는 한편으로는 변증적인 이유로 말미암아,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논쟁적인 이유로 말미암아 더욱 내재주의(immanentism)적인 경향을 띠고 있다. 필로와 지혜서(예: 13:3 이하)는 세상의 아름다움과 목적론 속에서 하나님을 식별한다. 따라서 우상숭배는 비록 용서할 수 없는 것이기는 하나 또한 측은한 것이다. 헬라 철학에서처럼 필로에게서도 아래로부터 위로의 이동이 나타나고 있으며, 따라서 필로는 범신론의 위협을 피하기가 어렵다. 바로 여기에 문제점이 있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계시된 율법과 자연법을 동일시하는 견해가 발전한다.|헬레니즘 유대교에서 아포칼륍토와 아포칼륍시스라는 용어는 드물게 사용되었다. 필로는 이 두 단어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4. 신약성경의 용법||(a) 아포칼륍토는 신약성경에서 26회 나타난다. 눅 2:35에서 아포칼륍토는 생각을 드러낸다는 일상적인 뜻으로 사용되었다: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라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하더라".||(b) 공관복음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계시의 전달자이다. 마 11:25 이하와 병행구절인 눅 10:21 이하에서 예수님은 계시자로서 우리를 상면하시니, 거기서 그는 지혜롭고 슬기있는 자들에게가 아니라, 어린아이들에게 계시하시는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를 찬양한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 사람은 율법에 조예가 깊은 서기관들이나 바리새인들이나, 대제사장들과 영적 지도자들이 아니라 "심령이 가난한 자", 갈릴리 출신의 어부들이었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가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마 11:27; 병행구: 눅 10:22). 옛 언약을 통한 하나님에 대한 지식도 탁월한 것이지만, 그것은 예수님의 계시가 전달하는 지식을 향한 첫 단계로서만 여겨질 수 있다.|요한복음에서 이 명사는 사용되지 않고 이 동사가 요 12:38에서만 사용되었다 할 지라도(사 53:1에서 인용), 예수님이 하나님 계시의 전달자라는 주제는 공관복음서에서보다 휠씬 더 강력하게 설명되어 있다: "주여 우리에게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뉘게 [나타났나이까] 하였더라".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진리도 그가 행하신 기적도 유대인들을 믿게 하지는 못하였다'(Hoskyns). 그는 성부를 알려준 유일한 성자이다(참조: 요 1:18). 그는 그가 성부에게서 들은 바를 세상에서 말씀하고 계신다.|(참조: 요 3:32; 요 8:26; 요 15:15).||(c) 신약성경의 계시에 대한 신학적 이해는 첫째로 내용 지향적이지만 계시의 행동과 사건 역시 중요한 것이다. 그것은 눅 10:22 이하(참조: 마 13:16)에서 밝혀 준다: 제자들은 계시를 받은 것이다. 구약성경의 진술은(참조: 민 22:31; 삼상 9:15 등) 계시가 하나님의 영향으로 눈과 귀가 열리는 것임을 분명히 한다. 신약성경도 다를 바 없다. 눈에 맞게 보여지는 것, 하나님 혹은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이 있다(참조: 딤후 1:1O; 딛 2:11; 딛 3:4). 귀의 열림과 맞게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있다(히 1:1 이하). 하나님의 계시는 지상 세계에서 인지될 수 있어야만 한다. 이것에 알맞게 사도들은 그들이 듣고 본 것을 그리고 심지어 그들의 손으로 만진 것을 전파하였다(행 4:20; 요일 1:1). 이 본 것의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 말씀이 육신이 되심, 생명의 말씀이다(요 1:14; 요일 1:1). 제자들은 축복 받았는데. 그 이유는 많은 선지자들과 의인들이 갈망하였으나 거부되었던 것을, 그리고 천사들이 보기를 고대하던 것을 듣고 보도록 허락되었기 때문이다(벧전 1:12; 참조: 마 13:I6; 눅 10:22 이하). 하나님의 영광을 인지하기 위해 이런 방식으로, 그리고 신앙으로 듣고, 보는 것은(요 11:40) 불신앙의 듣고 보는 것과 다르니, 사실 그것은 전혀 듣거나 보는 것이 아니다(이것을 밝혀 주는 사 6:9 이하가 신약성경에서 6회나 인용되다: 마 13:13 이하; 병행구, 막 4:12; 눅 8:1O; 요 12:39 이하; 행 28:26 이하; 롬 11:8).|이전의 계시를 능가하는 하나님의 새 계시에 대한 지식은 신약시대 기독교인들의 신앙 자세의 특색이다. 선지자들에게 주어진 그 이전의 계시는 그리스도와 복음에 대한 하나의 지침이다(벧전 1:11 이하; 참조: 롬 1:2), 그런즉, 믿지않는 유대인이 구약성서를 읽을 때에 그들의 마음에 베일이 덮여 있는데 그것은 그들이 그리스도께로 개종해야만 제거될 수 있다(참조: 고후 3:14 이하).||(d) 계시의 중심 내용은 그리스도 자신이다. 하늘에 계신 성부께서 베드로에게 예수가 누구인지를 계시하였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 16:l7). "혈육"은 이 지식을 그에게 전달할 수 없었다. 제자들은 그들에게 계시되어진 바와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신 바를 그들의 선포에서 공개적으로 선언하여야 했다.|마 10:26과 병행구인 눅 12:2에서 아포칼륍토는 복음 전파와 박해와 관련하여 사용되었다: "그런즉 저희를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감추인 것이 실제로 덮여서 그런 상태로 있던지, 혹은 일급 비밀이든지, 그것이 무엇이든, 그 덮개는 열려지거나 벗겨질 것이며, 폭로될 것이다. 이 말은 일반적 의미로서 여기서는 그리스도의 원수들과 그들의 모든 비밀과, 한편 제자들과 복음의 비밀을 모두 두고 한 말씀이다. 즉 박해를 하는 자나 박해를 받는 자에게 있어서 그 사실이 밝혀질 날이 올 것이며, 심판날이 그 기록을 바로 잡을 것이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담대하게 전파해야 한다. 지금 제자들은 어떻게 되든 조금도 두려워 말아야 한다(참조: R.C.H.Lenski; R.Earle).|이렇게 하여 제자들의 설교에서 계시의 사건이 계속된다. 제자들의 말을 듣는 자는 예수님 자신의 말씀을 듣는다(참조: 눅 1O:16; 마 1O:40; 요 12:44; 요 13:20).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증거할 진리의 영을 그의 제자들에게 약속하고 계신다. 그가 그들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그들을 완전한 진리로 인도할 것이다(요14:26; 요 15:26; 요 16:13). 계시의 사건은 예수님의 지상 실존에서 종결되지 않았다.||(e) 고전 2:10에서 성령이 사도들에게 주어진 계시의 장본인으로서 나타난다: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엡 3:5(롬 16:25)의 진술도 사도들의 메시지의 계시적 성격을 구체화하는데, 그것은 그리스도의 신비와 일치한다: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같이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게 하지 아니하셨으니".|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다른 기독교인들도 그러한 계시를 받을 수 있다(고전 14:30; 빌 3:15; 참조: 고전 l4:26). 이것은 하나님이 에베소인들에게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주실 것을 구하는 바울의 기도에 대한 설명이다(엡 1:17). 제자들을 모든 진리로 인도하시는 성령은 예수님과 사도들의 말씀으로 그들에게 주어진 계시를 이해케 한다.|(참조: 엡 2:18; 요 16:13).||(f) 말씀을 통한 계시와 아울러 하나님의 행위 속에서의 계시도 있다. 바울이 율법 아래 갇힌 사람의 입장에서 계시되어야 할 믿음(피스티스)의 메시지에 대해 말할 때에 이것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 메시지 자체의 사상 뿐만 아니라, 그 내용인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원 사건의 사상이 있다(갈 3:23). 복음에는 구원을 포함한 하나님의 큰 선물 곧 "하나님의 의"가 노출되어 있는데, 이로써 죄인이 의롭게 된다(롬 1:17; 롬 3:21).|이 계시는 물론 다른 계시, 곧 하나님의 진노의 계시와 대조되는데, 그것은 죄악된 인간성에 임하여 그를 죄 속으로 훨씬 더 깊이 가라앉게 한다(롬 1:18 이하).|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그것이 회개치 않은 자를 가혹하게 칠 것이다. 이 계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죄에 대한 증오를 보여주는 그리스도의 복음과 십자가에 의해 예기되었다. 고전 3:13에서도 주의 날에 계시될 "불"을 말한다. 여기서 바울은 심판의 불 뿐만 아니라, 순결케 하는 불도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그렇지만 그리스도의 날(살후 2:2) 이전에, 하나님의 지성소를 장악할 적 그리스도의 권세의 계시가 있을 것인데, 주께서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그것을 폐할 것이다(살후 2:3; 살후 2:6; 살후 2:8).|강림일은 하나님의 아들들의 계시 및 하늘의 영광의 계시와 결부되는데, 하나님의 아들들은 이러한 영광 때문에 그 시대의 고통을 망각해 버리고 만다(롬 8:18 이하). 베드로전서에서 베드로가 이 단어를 사용할 때는 언제나 마지막 계시를 염두에 두고 있다. 그리스도의 계시는 그의 영광의 계시이니, 지금은 기독교인들이 고통과 여러가지 유혹을 당하나 , 이 계시 안에서 분깃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들의 모든 소망을 이 구원과 은총에 두어야 한다(벧전 1:5 이하; 벧전 5:1; 참조: 벧전 4:13).|(참조: W. Mundle; A. O. Epke).
계시
ajpokavluyi"
폭로, 덮개를 벗김, 드러남, 계시.||#1. 고전 헬라어 문헌||명사 아포칼륍시스는 아포칼륍토($601: 덮개를 벗기다, 드러내다, 폭로하다)에서 유래했으며, 덮개를 벗김,’또는‘이전에 감추인 것을 나타냄’이란 의미에서‘폭로, 드러냄, 벌거벗김, 계시’를 의미한다. 이 단어는 후기에 사용되었으며, 주로 종교적 의미로 사용되었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아포칼륍시스는 70인 역본에서 삼상 20:30에서만 발견되며, 거기에서 히브리어 에르와(벌거벗음 nakedness)의 역어로 사용되었고, 외경 집회서에서 히브리어 상당어 없이 3회(집회서 11:27; 집회서 22:22; 42:1)나온다. 집회서 22:22과 42:1에서는 비밀의 누설 혹은 폭로라는 세속적 의미로 사용되었다, 집회서 11:27에서는 신학적 의미가 있는 것으로, 인생의 종말에 '그의 행적의 계시'가 있다고 한다. 아마도 하나님의 심판을 의미하는 것 같다.|구약성경에서 그것은 신적 계시에 대한 특별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70인 역본에서 취할 수 있는 하나의 좋은 예는 아모스 3:7이다 - “주 여호와께서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다". 이에 따르면 하나님의 계시가 예언자들에게 선포되기 전에 마지막 사건이 등장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물론 하나님의 통고는 예언자들을 위해서만 규정된 것이 아니라 그들에 의해 계속 전해져야 하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선포되어야 한다(암 3:8). 예언자들의 권능은 예언자들의 행위가 하나님의 계획과 그 계획이 역사적으로 실현되는 것 사이의 중간 매체로써 이어진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따라서 세상의 종말도 역시 그것이 예언자들의 입을 통해서 예언됨으로써 비로소 초래된다. 이것이 이 계시록의 보다 깊은 의미이다(Heinrich Kraft).||#3. 신약성경의 용법||신약성경에서 아포칼륍시스는 19회 사용되었는데 바울이 그 중 13회, 요한 계시록에 1회 사용되었다.||(a) 눅 2:32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계시의 전달자이다: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롬 16:25에서 바울은 "비밀의 계시"(the revelation of the mystery)를 말하고 있다. 이것은 사도들의 메시지의 계시적 성격을 구체화하는데 그것은 그리스도의 신비와 일치한다.|갈 1:12에서 바울은 그의 복음을“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아”받았다: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b) 사도들의 메시지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일컬어진다(고전 14:29; 참조: 골 1:25; 눅 5:1; 눅 8:21). 예수님의 선포만이 계시요 초대 교회의 설교는 그것에의 접근에 불과하다는 견해는(J.Jeremias) 상기의 주장의 관점에서 볼 때, 신약성경의 진술을 공정하게 다루지 못한 것이다. 신약성경 기자는 여기서 구분을 짓지 않는다. 신약 성경은 사도들의 메시지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한다. 이러한 이해의 결론은 초대 기독교가 복음서에 전해진 예수님의 말씀과 사도 문서들을 정경으로 채택하여 신적 계시의 권위있는 기록으로서 인정하였다는 것이다.|마찬가지로 바울 서신에서 아포칼륍시스는 그리스도의 기초 메시지에만 사용되지는 않았다. 갈 2:2에서 바울은 자신이 계시에 근거하여 사도 회의에 참석차 예루살렘으로 여행하였다고 보도하는데, 다시 말해서 그가 하나님의 지휘에 기초하여 여행하였다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어떤 방법으로 그 계시를 받았는지에 대한 더 상세한 내용에 관하여는 알지 못한다. 고후 12:1 이하와 고전 14:6에서는 "환상과 계시"라는 말이 언급되어 있는데, 바울이 이것을 경험하였으며 또한 이것은 황홀한 경험이었던 것같다.|그러나 이 계시들이 사도 바울 개인의 신앙과 생활을 위하여 얼마나 중요한 것이든 간에, 우리는 그것들을 그리스도의 기본적인 첫 계시와 구별해야 한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다른 기독교인들도 그러한 계시를 받을 수 있다(고전 l4:26; 참조: 고전 14:30; 빌 3:15). 이것은 엡 1:17에서 하나님이 에베소인들에게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주실 것을 구하는 바울의 기도에 대한 설명이다. 제자들을 모든 진리로 인도하시는 성령은 예수님과 사도들의 말씀으로 그들에게 주어진 계시를 이해케 한다(참조: 엡 2:18; 요 16:13).||(c) 아포칼륍시스는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 사용되고 있다. 강림일은 그리스도께서 그의 권능의 충만함으로 나타나시는 그리스도 계시의 날이다(고전 1:7; 살후 1:7). 강림일은 하나님의 아들들의 계시 및 하늘의 영광의 계시와 결부되는데, 하나님의 아들들은 이러한 영광 때문에 그 시대의 고통을 망각해 버리고 만다(롬8:18 이하). 롬 2:5에서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이다.|베드로전서에서 베드로가 이 단어를 사용할 때는 언제나(벧전 1:12은 별도로) 마지 막 계시를 염두에 두고 있다. 그리스도의 계시는 그의 영광의 계시이니, 지금은 기독교인들이 고통과 여러 가지 유혹을 당하나, 이 계시 안에서 분깃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들의 모든 소망을 이 구원과 은총에 두어야 한다(벧전1:5 이하; 벧전 1:13; 벧전 4:13).||(d) 그러한 아포칼륍시스는 요한 계시록(계 l:l)의 대 주제이기도 하다. 요한계시록에서 이 단어는 계 1:1에서만 사용되었다. 빈센트(Vincent)는‘여기 계시록은 신적 비밀(the divine mysteries)이 드러난 것이다’고 말했다.“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란 말은 무슨 의미인가? “예수 그리스도의”라는 문구를 목적 속격으로 보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계시'가 된다. 그러면 예수님이 계시되고 있는 것을 가리키는데 이 견해의 근거는 우리가 계시록 첫 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환상을 가진다는 사실에서 찾는다. 그러나 이것은 계시록의 내용으로 볼 수 없다. 다음으로, 주어 속격으로 보면,'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계시'가 된다. 이것은 계시록의 내용의 거의 전체를 설명해준다. 현대의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후자의 견해를 받아들인다.|요한계시록은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0)라는 기도로 이 미래 환상이 끝난다. 이 영원한 미래에 대한 소망은 양도될 수 없는 계시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신앙의 한 부분이다.|(참조: W. Mundle).
간절한 기대
ajpokaradokiva
간절한 기대 eager expectation.||#1. 아포카라도키아의 의미||명사 아포카라도키아는 기독교 이전 헬라어 문헌에는 나오지 않는다. 이 단어는 아포($575: ∼로부터)와 카라(머리)와 데코마이(받아들이다, 생각하다; 아마도 본래는 '앞으로 내밀다'; 참조: '계속 감시하다, 주의하다')의 합성어이며, 따라서 '머리를 내미는 것'을 나타낸다.|그런데 B.C 2000년 경의 희귀한 동사 아포카라도게오는 '('침착하게, 긴장하여, 정신을 차리고') 기대하다'를 의미하는데, 아포카라도키아의 의미를 밝히는 단서가 될 수도 있다. 어떤 학자는 '어떤 것을 간절히 그러나 염려스러워하며 기대한다'는 의미를 제시한다(G.Delling; E.Hoffmann).||#2. 신약성경의 용법||아포카라도키아는 신약성경에서 2회, 로마서와 빌립보서에만 나온다.|빌 1:20에서 아포카라도키아는 소망과 연결되어 나오며 따라서 '확신에 찬 기대'를 의미한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롬 8:19에서도 이와 동일한 의미를 가진다: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은 미래를 고대하고 있다. 즉, 갈등의 시련 속에서 간절한 바램으로 기다리고 있다. 여기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나타남을 열망하는 것을 크티시스(피조물)에 연관시킨다. 피조물이 소망을 가지고 썩어짐에 종노릇 하는 것을 오직 하나님의 자녀들만이 알고 있다. 소망(엘피스)은 아포카라도키아에서 오는 긴장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과 불확실성으로부터 오는 긴장을 제거해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두 단어는 함께 사용되어(빌 1:20) 기대의 힘이 감정의 강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셨고 또한 특별히 소망하는 "확실성에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루터(Luther)는 롬 8:19을 "초조한(걱정스러운) 기다림"으로 번역한다. 그러나 헬라 교부들은 이 명사를 부정적인 어감을 풍기지 않고 "강렬한 예상", "강하고 열광적인 기대"로 해석하였다. 좌우간 종말론적 기대의 감정적인 효과가 여기에 강하게 강조된다.|(참조: J.H.Thayer; G.Delling; E.Hoffmann).
화목케 되다
ajpokatallavssw
화해시키다, 화해하다.||동사 아포카탈랏소(기독교 문헌에만 나타남)는 아포($575)와 카탈랏소($2644: 화해시키다)에서 유래했으며, '화해시키다, 스스로 화해하다'를 의미한다.|신약성경에서 아포카탈랏소는 3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엡 2: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본절은 화해를, 하나님 앞에서의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관계에 그것이 미치는 영향에 대해 고찰한다. 일찍이 이방인들은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었다(엡 2:12). 그러나 이제 그들은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 졌다"(엡 2:13). 그러나 그의 죽음은 이방인들만 화해시킨 것이 아니라, 이전에 일찍이 주어지지 않았던 구원의 길을 유대인들에게 제공해준다는 점에서 볼 때, 유대인들도 화해시켰다. 동시에 유대인과 이방인을 하나님과 화해시키는 행동은 그들 서로를 화해시키는 것이요 새 인간성을 만드는 것이다.||(b) ① 골 1: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② 골 1:21; 골 1:22, "21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22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케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H. Vorlader; C. Brown).
회복하심
ajpokatavstasi"
회복 restoration||#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아포카타스타시스(Aristot.; Epicurus, Polyb.; Diod.)는 아포카디스테미($600: 화해시키다)에서 유래했으며, 기본 의미는 '이전 상태로의 회복이나 복구, 회복'을 의미한다.|이 의미에서 다음의 의미들이 파생되었다.||(a) 법률에서 이 단어는 '담보를 되돌려줌'(Polyb.), '재산의 반환'(P. leid., P. Oxy.)을 의미한다.||(b) 정치에서 이 단어는 '정치적 체제의 재편성'(Polyb.) '정치적 향상'(P. Par.)을 의미한다.||(c) 천문학에서 이 단어는 별자리의 복귀, 해, 달의 다시 비췸을 의미한다. 그리고 우주의 순환 주기의 연속, 불사조의 주기(The period of phoenix)에 대해 사용되었다. 여기에서 아포카타스타시스는 항상 옛 주기의 마지막 단계, 그리고 새 주기의 시발점을 의미하였다.||(d) 개인의 영혼과 관련해서 이 단어는 불멸의 영혼이 환생을 통해 죽을 운명의 육체 속으로 들어가는 반복적 현상을 의미한다(신 플라톤주의). 이러한 현상에서 구속은 영원의 회복이라기보다는 물질에서의 해방이다(Herm.).||#2. 유대 문헌의 용법.||명사 아포카타스타시스는 70인역본에 나오지 않는다. 요세푸스는 이 단어를 유대인의 포로 생활로부터 귀환을 묘사하는데 사용한다. 필로는 이 단어의 개념을 영혼의 회복이라는 신비적 개념과 연결시킨다(Rev. Biv. Her.).||#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아포카타스타시스는 신약성경에서 행 3:21에 한번 나온다: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을 의탁하여 말씀하신 바 만유를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본절에서는 엄밀히 말하면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한 그것의 회복, 혹은 그들이 말한 것의 확립에 관한 언급이다. 문법적으로 이것은 사람들의 회심(conversion)을 의미한다고 볼 수 없다. 선지자가 말한 회복은 그들의 약속 그 자체가 성취되는 한편 창조된 본래의 모습으로 회복된다는 것이다. 새로워지는 그 때는 예수님의 메시야적 사역을 통한 변혁의 시작을 표한다.|이 본문은 때때로 관련되어온 보편 구제설의 문제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 유대인들은 그러한 소망을 가지고 있지 않는다. 그리고 바울은 둘째 아담의 포괄적인 사역을 강조하지만(롬 5:8; 고전 15:22; 골 1:20), 그는 또한 심판이 이중적 결과를 초래할 것이며(롬 2:7 이하), 한편 하나님께서는 대적을 타도하심으로 말미암아 만유의 주가 되실 것이라(고전 15:25 이하)고 말한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A. Oepke; H. -G. Link).
싸두다
ajpovkeimai
쌓아두다, 임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아포케이마이(Pind.)는 아포($575)와 케이마이($2749)에서 유래했으며,||(a) 기본 의미로 '놓여 있다, 저축해 두다', 그래서 '쌓아두다'.|(b) '어떤 사람에게 운명으로 임하다'.|(c) '멸시받다, 거절 당하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아포케이마이는 신약성경에서 4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아포케이마이는 '저축해 두거나 쌓아둔다'를 의미한다.|① 눅 19:20, "또 한 사람이 와서 가로되 주여 보소서 주의 한 므나가 여기 있나이다 내가 수건으로 싸두었었나이다".|② 골 1:5,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둔 소망을 인함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③ 딤후 4: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b) 히 9:27에서 사람에게 '임한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 이것은 사람이 복종해야 하는 신의 명령에 의해 그에게 정해진 것이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F. Buchsel).
목 베다
ajpokefalivzw
목을 베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아포케팔리조(Philod.; Epict. 등)는 아포($575)와 케팔레($2776: 머리)에서 유래했으며, '목을 베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아포케팔리조는 신약성경에서 4회 나오며, 세례(침례) 요한의 목을 '베는 것'과 관련하여 사용되었다. 마 14:10; 막 6:16; 막 6:27; 눅 9:9.|(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닫다
ajpokleivw
굳게 또는 완전히 닫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아포클레이오(trag., Hdt. 이래)는 아포($575)와 클레이오($2808: 닫다)에서 유래했으며, '굳게 또는 완전히 닫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아포클레이오는 신약성경에서 눅 13:25에 한번 나오며, 문을 '완전히 닫는 것'을 의미한다: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저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너희가 어디로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끊다
ajpokovptw
잘라(베어) 버리다, 끊어버리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아포콥토(Homer 이래)는 아포($575)와 콥토($2875: 때리다, 치다)에서 유래했으며, '잘라내다, 자르다'를 의미하며, 다음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a) 문자적 의미로,|① 잘라내다, 자르다, 베어버리다를 의미하며, 나뭇가지(Homer), 몸의 지체(Hdt.)에 대해 사용되었다.|② '잘라버리다, 끊다'를 의미하며 끈이나(Homer) 닻줄(Od.)에 대해 사용되었다.|③ '부수다'를 의미하며 교량에 대해 사용되었다.|④ '베어 넘어뜨리다'를 의미하며, 특히 원수들에 대해 사용되었다(Xenoph.). 그리고 원수들을 '베어 넘어 뜨리는' 것, 교량을 '끊어 버리거나 부수는 것'에 대해 사용되었다.||(b) 상징적으로 '슬퍼(애도)하다'(Eur.).||(c) 비유적으로.|① '잘라내다, 자르다, 제거하다',|② 수사학에서 '돌연히 끝을 맺다',|③ 문법에서 어미음 소실, 즉 철자 한 두자를 생략하는 것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아포콥토는 70인역본에서 9회 나오며, 히브리어 카라트(3772: 잘라내다, 베어버리다)를 번역하여 신을 '베인' 자(신 23:1), 카차츠(7112: 잘라내다)를 번역하여, '찍어버리거나 끊는 것'(신 25:12; 삿 1:6, 7), 아페스(656: 그만두다, 끝내다)를 번역하여 '다하다'(시 77:9)를 나타내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아포콥토는 신약성경에서 6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아포콥토는 범죄케한 손이나 발을 '잘라 버리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① 막 9:43,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버리라 불구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② 막 9:45,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버리라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b) 아포콥토는 귀를 '베어버리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① 요 18:10, "이에 시몬 베드로가 검을 가졌는데 이것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오른편 귀를 베어버리니 그 종의 이름은 말고라".|② 요 18:26, "대제사장의 종 하나는 베드로에게 귀를 베어 버리운 사람의 일가라 가로되 네가 그 사람과함께 동산에 있던 것을 내가 보지 아니하였느냐".||(c) 행 27:32에서 아포콥토는 줄을 '끊어 버리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에 군사들이 거룻줄을 끊어 떼어 버리니라".||(d) 갈 5:12에서 중간태로 '스스로 베어버리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너희를 어지럽게 하는 자들이 스스로 베어 버리기를 원하노라". 구원에 이르는 길로서 할례를 전하는 것은 십자가의 거치는 것(=거리낌)을 제거하는 것이 될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모든 종류의 인간 스스로의 구원 방식에 대한 십자가 자신의 비판적 기능을 무력화시키는 것이 될 것이다(참조: 고전 1:18-고전 1:24). 따라서 여기서 바울은 할례 요구에 대하여 "스스로 베어 버리라"는 아주 신랄한 비판을 하였다(참조: 독일 성서 공회판).|(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선고
ajpovkrima
유죄 선고, 정죄.||#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아포크리마(Polyb. 이래)는 아포크리노($611)에서 유래했으며, '유죄 선고, 정죄, 대답'을 의미하며, '어떤 문제를 결정하는 공식적인 결의'를 나타낸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아포크리마는 신약성경에서 고후 1:9에 한번 나온다: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 인간적인 관점에서 볼 때 바울은 유죄 선고를 받는 자와 같다. 그는 판결을 내린 자의 이름을 말하지 않는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여짜와
ajpokrivnw
대답하다, 말하기 시작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아포크리노(Hdt. 이래)는 아포($575)와 크리노($2919)에서 유래했으며,||(a) '스스로 분리하다',|(b) '자신을 변호하다',|(c) '대답하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아포크리노는 신약성경에서 230여회 나오며,||(a) '질문, 요청' 등에 대하여 '대답하다'를 의미한다.||(b) '말하기 시작하다'를 의미하며, 항상 이미 말했거나 행한, 선행한 어떤 것을 평가할 때 사용되었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대답
ajpovkrisi"
대답 answer||#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아포크리시스(Theognis, Hdt. 이래)는 아포크리노($611)에서 유래했으며,||(a) '분리, 분비물(액)'(의학에서),|(b) '대답'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아포크리시스는 70인역본에서 16회 나오며, 히브리어 슈브(7725: 돌아가다, 욥 13:22; 욥 33:5; 욥 40:4; 욥 31:14), 아나(6030a: 대답하다, 반응하다, 욥 15:2), 마아네(4617: 응답, 대답, 반응, 욥 32:5; 잠 15:1)의 역어로 사용되어 그런 의미를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아포크리시스는 신약성경에서 4회 나오며, '대답'이란 의미로 사용되었다.|(a) 눅 2:47, "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기이히 여기더라".||(b) 눅 20:20, "이에 저희가 엿보다가 예수를 총독의 치리와 권세 아래 붙이려 하여 정탐들을 보내어 그들로 스스로 의인인 체하며 예수의 말을 책잡게 하니".||(c) 요 1:22, "또 말하되 누구냐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대답하게 하라 너는 네게 대하여 무엇이라 하느냐".||(d) 요 19:9, "다시 관정에 들어가서 예수께 말하되 너는 어디로서냐 하되 예수께서 대답하여 주지 아니하시는지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F. Buchsel).
감추어 두었다
ajpokruvptw
감추다, 숨기다 hide.||#1. 고전 헬라어 및 70인 역본||동사 아포크륍토는 전치사 아포($575: …로부터)와 크륍토($2928: 감추다, 숨기다)에서 유래했으며, '덮다, 숨기다', 그리고 비유적으로 '비밀을 지키다'(대개는 좋은 뜻으로)등을 의미한다. 자동사로 사용할 때 '시야에서 사라지다'를 뜻하기도 한다.|7O인 역본에서 아포크륍토는 대개 비유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예: 사 40:27; 지혜서 6:22).(참조: A.Oepke).||#2. 신약성경의 용법||아포크륍토는 신약성경에서 6회(마 25:18; 11:25; 눅 10:21; 고전 2:7; 골 1:26; 엡 3:9) 나타난다. 마 25:18의 달란트 비유에서 신실하지 못한 종이 자신의 돈을 땅 속에 감춘다.|계시의 은밀함과 하나님의 계시 역사의 은밀하심을 다루는 말씀들은 신학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어린 아이들에게 주시는 계시(啓示)는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감추어진 것이다(마 11:25, 병행구절 눅 10: 21). 계시의 은밀함은 하늘 나라의 은밀함과 일치한다.|바울은 사도의 메시지가 하나님께서 영원부터 우리의 영광을 위해 정해 놓으신 하나님의 감취었던 지혜라고 선언한다(고전 2:7). 이 메시지는 신적 계시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롬 16:25; 고전 2:10, 갈 1:12). 그 내용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지혜(wlsdom)가 되게 하신 그리스도이시다(고전 1:30). 성령의 영감을 받은 이 메시지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지식을 가져다준다(고전 2:10 이하)|에베소서와 골로새서는 이 개념들을 더욱 자세히 전해준다. 이 메시지가 태초부터 이전 세대들까지는 숨겨진 비밀이었으나 이제는 성도들(골 1:25 이하)과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계시되었다(엡 3:5 이하). 이 메시지는 기독교인들 가운데 임재하시는 그리스도와 그 측량할 수 없는 풍성함을 우리에게 선포하고(골 1:27; 엡 3:8), 영원부터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비밀의 경륜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엡 3:9).|(참조: W. Mundle)
아포크뤼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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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추인, 은밀한 hidden.||#1. 고전 헬라어 및 70인 역본||형용사 아포크뤼포스는 아포크륍토($613:숨기다, 감추다)에서 유래했으며, (보물등이)'감추인' 또는 '비밀의' 등을 의미한다. 아포크뤼포스는 영지주의에서 (암호로 쓰여진) 비밀책 또는 글을 나타내는 전문용어가 되었다. 점성가들이 이 어군을 많이 사용했다.|우리가 주목하는 가장 중요한 사항은 아포크뤼포스라는 단어가 마술서와 점성술 교본에서 큰 역할을 담당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초월성에 대한 인식과 하나님에 대한 접근불가함과 은밀함에 대한 강조를 나타내는 하나님에 대한 성경 교리는 헬라어와 헬라 종교에 있어서는 매우 이질적인 것이다.|7O인 역본에서 아포크뤼포호스는 사 45:3; 마카베오일서 1:23; 단 11:43에서 비밀의 보화들에 대해 사용된다.(참조: W.Mundle; A.Oepke).||#2. 신약성경의 용법||아포크뤼포스는 신약성경에서 3회 사용되었다. 눅 8:17의 "감추인 것이 장차 알려지고 나타나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는 말씀은 막 4:22의 말씀, "나타내려 하지 않고는 감추인 것이 없느니라"의 변형이다. 병행되는 이 말씀들은 앞에 언급된 단어들의 의미들 간에 분명한 구분이 될 수 없다.|골 2:3에서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 있는 보화에 대하여 말한다: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 있느니라". 하나님의 비밀은 위에서 가리킨 바대로 그리스도 자신인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하나님의 모든 속성이 감취어 있다. 이것이 비밀인 것이다. 감취어진은 그것들이 제 때에 나타나기를 기다리면서 억제된 것을 의미한다(고후 4:3-4). 지혜와 지식의 모든 신의 보화는 그리스도 안에 그 원천을 두고 있는 것이다. 그는 용서, 성결, 지혜,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길이다. 그리스도 외에 어떤 다른 능력이나 지식의 원천이란 없다. 그러므로 그는 제쳐 놓고 단지 인간의 사색을 통하여 지식에 이르려고 하는 그노스주의의 방법은 거짓된 것이다. 구원의 방법에 대한 참된 지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완전한 하나님의 계시, 곧 바로 하나님 자신으로 이해하는데 있다. 거기에 미치지 못한 것은 무엇이나 "헛된 속임수"(골 2:8절)이다. 그리스도는 만유시다(골 3:11). 지식의 원천으로서 그 안에 모든 지식과 그 지식을 적용하는 수단이 되는 모든 지혜가 저장되어 있는 것이다(롬 l1:33; 고전 I:30)|(참조: J.B.Niel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