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게 되다
ajpovllumi
멸망시키다 destroy.||#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아폴뤼미(Homer 이래)는|(a) '멸망시키다, 죽이다'(예: 전쟁에서),|(b) '상실당하다, 상실하다'(예: 아버지, 배우자, 용기, 생명 등),|(c) '죽다, 사멸하다'(경제적 재난이나 폭력으로 인하여),|(d) '사라지다, 잃어버리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아폴뤼미는 70인역본에서 38개의 히브리어 단어들의 역어로 사용되며, 주로 아바드(잃어버리다[죽다], 멸망하다 혹은 파괴하다)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비종교적인 문맥들에서 이 단어는 다양하게 한 도시, 한 무리의 사람들, 또는 한 지파의 멸망에 대해 사용된다(참조: 민 16:33; 32:39; 33:52). 그리고 (아폴뤼미는 종종 능동태로 사용됨) 원수들과 같은 개인이나 집단의 존재 바로 그것을 위협하는 것이다. 성결법(Holiness Code)의 요구사항들이 아주 중요시된다. 이 성결법은 곧 몰록(Moloch)에게 자녀를 제물로 바치는 자들과 점장이나 죽은 자의 영들에게 의견을 묻는 자들처럼 율법을 위반하는 자들에게 그들이 언약의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다른 말로 말해서 그들은 돌로 침을 받을 것이다(레 20:3,5,6). 신명기를 결론짓는 권고들은 전민족이 순종함으로써 장수의 축복을 받을 것인가 아니면 불순종함으로써 멸절의 저주를 받을 것이냐 하는 양자택일에 관한 것이다(신 28:20; 신 22:24; 신 30:18 등).||#3. 신약성경의 용법||아폴뤼미는 신약성경에서 90회 나오며, 문자적 의미와 비유적 의미로 사용되었다.||(a) 아폴뤼미는 문자적 의미로 사용되었다. 눅 15:4; 눅 15:8은 양과 동전의 잃어버림에 대해 말한다. 마찬가지로, 양과 아들의 경우에, 잃어버림의 상태에 대해 중간태가 사용된다(눅 15:4; 눅 15:6; 눅 15:24; 눅 15:32).|아폴뤼미는 마 2:13; 마 27:20; 막 3:6; 막 9:22; 막 11:18; 눅 6:9에서 '죽이다, 멸망시키다'라는 의미로 발견된다. 각각의 경우에 이 단어는 사람을 언급하고 있다.|반면에 아폴뤼미는 사 29:14을 인용한 고전 1:19의 본문에서 비인칭 목적어를 수반한다: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중간태도 역시 '사라지다'나 '소멸하다'라는 의미로 발견되는데 모든 사물에 대해 사용된다(요 6:12; 요 6:27 조각, 양식, 벧전 1:7 금, 히 1:11 하늘, 벧후 3:6 세상).|아폴뤼미는 사람을 언급하는데에 보다 자주 사용된다(막 4:38; 마 26:52; 눅 11:51; 눅13:3, 5, 33; 눅 15:17; 고전 10:9이하; 고후 4:9).||(b) 아폴뤼미는 비유적 의미로 사용되었다. 누가복음 15장의 세가지 비유(잃은 양, 눅 15:4이하; 잃은 드라크마, 눅 15:8이하; 탕자 눅 15:12이하)에는 인간의 상실된 상태가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하나님이 없는 사람은 목자에 의해 구조되지 않는다면 죽을 수밖에 없는 잃은 양과 같다(참조: 시 119:176). 예수님께서는 이 목자로 묘사된다(참조: 요 10:11이하). 그는 "잃은 자를 찾아 구원하러" 오셨다. 그는 아버지께서 자신에게 주신 자들을 잃지 마라는 명을 받으셨다(요 6:39; 요 18:9). 한 인간이 버려지느냐 또는 구원되느냐 하는 문제의 결정권은 예수님과의 관계 속에 있다. 자신의 노력으로 생명을 구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다.|그러나 그리스도와 복음을 위하여 자신을 그에게 드리고 그를 따름으로 생명을 잃은 자는(마 16:25) 그 생명을 지키게 될 것이다(막 8:35, 병행구, 마 10:39; 눅 17:33; 요 12:25). 왜냐하면 생명이 그와 함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사랑을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내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c) 아폴뤼미는 소테리아(구원)와 조에 아이오니오스(영생)가 확실한 영원한 구원을 의미하는 것과 같이 "최후의 멸망, 곧 단순히 육체적 실존의 근절이라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지옥과 소망 없는 사망의 운명으로의 영원한 돌입이라는 의미에서의 멸망"을 의미한다(A.Oepke).|영생을 받는 자들 외에 또한 "멸망할" 자들도 있을 것이다(고전 1:18; 고후 2:15; 고후 4:3). 지금 이후에는 오직 신자와 불신자들 만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제는 또한 구원 받은 자와 상실된 자, 곧 생명을 소유한 자와 사망에 거하는 자들만이 있다(R.Bultmann, The Gospel of John, 1971, 155). 하나님과 함께 하는 생활의 대조적인 위치에 영원한 멸망의 무서운 가능성이 있다.|파멸은 회개하지 않은 자(벧후 3:9), 진리의 사랑을 거부하는 자(살후 2:10)가 당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유다는 특히 "멸망의 영들"로 묘사된다(요 17:12). 멸망은 자신의 영혼을 부패케하는 자(롬 14:15; 요 10:10), 또는 하나님의 위임을 받은 자들에 의해(막 1:24; 그러나 눅 9:56), 또는 심판자로서의 하나님 자신에 의해서(약 4:12; 마10:28; 마 22:7; 막 12:9 병행구), 어떤 사람에게 임한다. 심판자로서의 하나님의 역할은 진노의 나타내심에서도 보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