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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게 하다
ajpokteivnw
죽이다, 살해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아포크테이노(Homer 이래)는 아포($575)와 크테이노(%333: 죽이다)에서 유래했으며, 타인의 목숨을(후기에는 자신의 생명도) 폭력으로 종식시키는 것을 표현한다. 따라서 이 단어는 '죽이다, 살해하다, 처형하다'를 의미하며, 자연적 생명, 영적 생명에 대하여, 그리고 비유적 의미로 사용되었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아포크테이노는 70인역본에서 150회 이상 나오며, 10개 이상의 히브리어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그 중에 주로 하라그(2026: 죽이다, 살해하다), 무트(4191: 죽다, 죽이다)를 번역한다. 이 단어는 살인(창 4:8), 사형 집행(출 32:27), 성전 중에 행하는 대량 학살(민 31:7 이하; 삼상 15:3), 심판에 대한 선지자의 예언(암 4:10; 암 9:1; 겔 23:10)을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아포크테이노는 신약성경에서 74회 나오며, 주로 사복음서와 요한계시록에 자주 사용되었으며, 바울 서신에서는 5회만 사용되었다. 이 단어는 사람으로부터 생명을 박탈하는 방법들에 대해 사용되었다.||(a) 자연적 생명에 대해.|① 아포크테이노는 직접적인 사건 묘사나(세례 요한에 대한 헤롯왕의 의도, 마 14:5; 막 6:19), 비유(포도원 일군들을 묘사한 막 12:5 이하와 병행구들, 마 23:37과 병행구), 또는 공관복음서에 나오는 묵시중 제자들과 관련된 예언의 말씀(마 24:9) 등에서 거의 항상 하나님의 사자들의 폭력에 의한 죽음을 언급한다.|② 아포크테이노는 공관복음서의 수난 예언(막 8:31; 막 9:31; 막 10:34과 병행구절)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죽임을 당하고 공격이 집중되는 증인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다(살전 2:15).|③ 아포크테이노는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죽음의 위협을 받고 있었다(요 5:18; 요 7:1; 요 7:19 이하; 요 8:37; 요 8:40; 요 11:53).|④ 아포크테이노는 제자들이 죽음의 위협의 영역에 있음을 표현한다(행 21:31; 행 23:12-행 23:14). 이 점은 특별히 계 6:11에 지적되어 있다(계 11:7에서도 짐승이 두 증인을 죽인다).|⑤ 아포크테이노는 요한계시록에서 하나님의 심판에 의한 처형과 관련하여 더 자주 사용된다(네 명의 말탄 자들에 의하여, 계 6:8; 계 9:15-18; 계 19:21).||(b) 참된 영적 생명에 대해.|① 롬 7:11에서 하나의 권세로 간주되는 죄가 계명을 이용하여 사람을 죽였다고 말한다. 계명은 인간에게 갈등을 일으키게 하는데 이 갈등은 하나님 앞에 서도록 사람을 속이며 따라서 사망을 초래케 한다.|② 고후 3:6에서 그 의미는 동일한 것으로, 그람마 문자가 생명을 주시는 성령과는 달리 죽이는 것이라고 말한다: "저가 또 우리로 새 언약의 일군 되기에 만족케 하셨으니 의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c) 엡 2: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이 구절은 십자가의 의미에 대한 후기의 해석에 있어서 예수님이 자기 죽음을 통해 "원수된 것을" "죽였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화목을 이루었다고 선포하고 있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L. Coenen).
낳다
ajpokuevw
낳다 give birth to||#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아포퀴에오는 아포($575)와 퀴에오(%546: 임신하다)에서 유래했으며 '낳다, 생산하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아포큐오는 신약성경에서 2회 야고보서에만 나오며, 비유적 의미로 사용되었다.|약 1:15에서 죽음을 낳는 인격적인 죄에 대해 사용되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8에서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신 하나님에 대해 사용되었다: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EDNT).
굴려 옮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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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리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아포퀼리오(BI-D.; Diod. 등)는 아포($575)와 퀼리오($2947: 구르다, 굴리다)에서 유래했으며, 굴려내다, 버리다 to roll off or away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아포퀼리오는 신약성경에서 4회 나오며, 예수님의 무덤의 입구를 막은 돌을 '굴리는 것'을 나타낸다: 마 28:2; 막 16:3; 막 16:4; 눅 24:2.|(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다시 맞아 들이게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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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다, 도로 받다, 영접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아폴람바노(Hdt. 이래)는 아포($575)와 람바노($2983: 취하다, 가지다, 받다)에서 유래했으며,||(a) '받다, 영수하다',|(b) '도로 받다, 되찾다, 회복하다',|(c) '따로 데리고 가다, 곁으로 데리고 가다',|(d) '환영하다, 영접하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아폴람바노는 70인역본에서 7회 나오며, 민 34:14에서만 히브리어 라카흐(3947: 취하다, 가져가[오]다, 두다, 인도하다)의 역어로 사용되어 기업을 '받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그리고 해당 히브리어 없이 정경(신 26:5; 사 5:17)과 외경(마카베오이서 4:46; 6:21; 8:6 등)에 나타난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아폴람바노는 신약성경에서 10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아폴람바노는 '받다'를 의미한다.|① 갈 4:5에서 그리스도의 구속 행위에 근거하여 아들의 권리를 '받는 것'을 나타낸다: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② 눅 16:25에서 세속심의 좋은 것을 '받는 것'을 나타낸다: "아브라함이 가로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③ 눅 18:30에서 내세와 현세에서 복을 '받는 것'을 나타낸다: "금세에 있어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하시니라".|④ 눅 23:41에서 형벌을 '받는 것'을 나타낸다: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⑤ 요이 1:8에서 상을 '받는 것'을 나타낸다: "너희는 너희를 삼가 우리의 일한 것을 잃지 말고 오직 온전한 상을 얻으라".|골 3:24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는 유업의 상을 주께 받을줄 앎이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⑥ 롬 1:27에서 보응을 '받는 것'을 나타낸다: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b) 아폴람바노는 '도로 받다, 되찾다'를 의미한다.|① 눅 6:34에서 '도로 받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너희가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빌리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뇨 죄인들도 의수히 받고자 하여 죄인에게 빌리느니라".|② 눅 15:27에서 '되찾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그의 건강한 몸을 다시 맞아 들이게 됨을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c) 아폴람바노는 '따로 데리고 가다'를 의미한다: "예수께서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사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 뱉아 그의혀에 손을 대시며"(막 7:33).||(d) 요삼 1:8TR에서 아폴람바노는 '영접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A. Kretzer).
낙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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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움||#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아폴라우시스(Eur., Thu. 이래)는 아폴라우오(%547: 즐기다)에서 유래했으며, '즐거움 enjoyment'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아폴라우시스는 신약성경에서 2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딤전 6:17에서 모든 것으로 우리가 누리도록 풍부히 준비하여 주신 하나님에 대해 언급한다: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b) 히 11:25에서 덧없는, 또는 순간의 죄의 낙에 대해 언급한다: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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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 남기다, 남아 있다. 버리고 떠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아폴레이포(Homer 이래)는 아포($575)와 레이포($3007: 남겨두다, 떠나다)에서 유래했으며,||(a) '뒤에 남기다, 두고(남기고) 떠나다',|(b) '남아 있다'.|(c) '저버리다, 버리고 떠나다',|(d) '그만두다, 치우다, 포기하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아폴레이포는 신약성경에서 7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아폴레이포는 '남겨두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딤후 4:13; 딤후 4:20; 딛 1:5.||(b) 아폴레이포는 '남아 있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히 4:6; 히 4:9에서 안식일에 대하여, 히 10:26에 제사에 대하여 사용되었다.||(c) 아폴레이포는 유 1:6에서 자기 위치를 '버리고 떠난' 천사들에 대해 사용되었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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핥다 lick.||#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아폴레이코(Apollon. Rhod. 4, 478)는 아포($575)와 레이코(%511: 핥다)에서 유래했으며, '핥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아폴레이코는 신약성경에서 눅 16:2에 한번 나오며, 개들이 나사로의 헌데를 '핥는 것'을 표현한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버리게 되다
ajpovllumi
멸망시키다 destroy.||#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아폴뤼미(Homer 이래)는|(a) '멸망시키다, 죽이다'(예: 전쟁에서),|(b) '상실당하다, 상실하다'(예: 아버지, 배우자, 용기, 생명 등),|(c) '죽다, 사멸하다'(경제적 재난이나 폭력으로 인하여),|(d) '사라지다, 잃어버리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아폴뤼미는 70인역본에서 38개의 히브리어 단어들의 역어로 사용되며, 주로 아바드(잃어버리다[죽다], 멸망하다 혹은 파괴하다)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비종교적인 문맥들에서 이 단어는 다양하게 한 도시, 한 무리의 사람들, 또는 한 지파의 멸망에 대해 사용된다(참조: 민 16:33; 32:39; 33:52). 그리고 (아폴뤼미는 종종 능동태로 사용됨) 원수들과 같은 개인이나 집단의 존재 바로 그것을 위협하는 것이다. 성결법(Holiness Code)의 요구사항들이 아주 중요시된다. 이 성결법은 곧 몰록(Moloch)에게 자녀를 제물로 바치는 자들과 점장이나 죽은 자의 영들에게 의견을 묻는 자들처럼 율법을 위반하는 자들에게 그들이 언약의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다른 말로 말해서 그들은 돌로 침을 받을 것이다(레 20:3,5,6). 신명기를 결론짓는 권고들은 전민족이 순종함으로써 장수의 축복을 받을 것인가 아니면 불순종함으로써 멸절의 저주를 받을 것이냐 하는 양자택일에 관한 것이다(신 28:20; 신 22:24; 신 30:18 등).||#3. 신약성경의 용법||아폴뤼미는 신약성경에서 90회 나오며, 문자적 의미와 비유적 의미로 사용되었다.||(a) 아폴뤼미는 문자적 의미로 사용되었다. 눅 15:4; 눅 15:8은 양과 동전의 잃어버림에 대해 말한다. 마찬가지로, 양과 아들의 경우에, 잃어버림의 상태에 대해 중간태가 사용된다(눅 15:4; 눅 15:6; 눅 15:24; 눅 15:32).|아폴뤼미는 마 2:13; 마 27:20; 막 3:6; 막 9:22; 막 11:18; 눅 6:9에서 '죽이다, 멸망시키다'라는 의미로 발견된다. 각각의 경우에 이 단어는 사람을 언급하고 있다.|반면에 아폴뤼미는 사 29:14을 인용한 고전 1:19의 본문에서 비인칭 목적어를 수반한다: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중간태도 역시 '사라지다'나 '소멸하다'라는 의미로 발견되는데 모든 사물에 대해 사용된다(요 6:12; 요 6:27 조각, 양식, 벧전 1:7 금, 히 1:11 하늘, 벧후 3:6 세상).|아폴뤼미는 사람을 언급하는데에 보다 자주 사용된다(막 4:38; 마 26:52; 눅 11:51; 눅13:3, 5, 33; 눅 15:17; 고전 10:9이하; 고후 4:9).||(b) 아폴뤼미는 비유적 의미로 사용되었다. 누가복음 15장의 세가지 비유(잃은 양, 눅 15:4이하; 잃은 드라크마, 눅 15:8이하; 탕자 눅 15:12이하)에는 인간의 상실된 상태가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하나님이 없는 사람은 목자에 의해 구조되지 않는다면 죽을 수밖에 없는 잃은 양과 같다(참조: 시 119:176). 예수님께서는 이 목자로 묘사된다(참조: 요 10:11이하). 그는 "잃은 자를 찾아 구원하러" 오셨다. 그는 아버지께서 자신에게 주신 자들을 잃지 마라는 명을 받으셨다(요 6:39; 요 18:9). 한 인간이 버려지느냐 또는 구원되느냐 하는 문제의 결정권은 예수님과의 관계 속에 있다. 자신의 노력으로 생명을 구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다.|그러나 그리스도와 복음을 위하여 자신을 그에게 드리고 그를 따름으로 생명을 잃은 자는(마 16:25) 그 생명을 지키게 될 것이다(막 8:35, 병행구, 마 10:39; 눅 17:33; 요 12:25). 왜냐하면 생명이 그와 함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사랑을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내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c) 아폴뤼미는 소테리아(구원)와 조에 아이오니오스(영생)가 확실한 영원한 구원을 의미하는 것과 같이 "최후의 멸망, 곧 단순히 육체적 실존의 근절이라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지옥과 소망 없는 사망의 운명으로의 영원한 돌입이라는 의미에서의 멸망"을 의미한다(A.Oepke).|영생을 받는 자들 외에 또한 "멸망할" 자들도 있을 것이다(고전 1:18; 고후 2:15; 고후 4:3). 지금 이후에는 오직 신자와 불신자들 만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제는 또한 구원 받은 자와 상실된 자, 곧 생명을 소유한 자와 사망에 거하는 자들만이 있다(R.Bultmann, The Gospel of John, 1971, 155). 하나님과 함께 하는 생활의 대조적인 위치에 영원한 멸망의 무서운 가능성이 있다.|파멸은 회개하지 않은 자(벧후 3:9), 진리의 사랑을 거부하는 자(살후 2:10)가 당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유다는 특히 "멸망의 영들"로 묘사된다(요 17:12). 멸망은 자신의 영혼을 부패케하는 자(롬 14:15; 요 10:10), 또는 하나님의 위임을 받은 자들에 의해(막 1:24; 그러나 눅 9:56), 또는 심판자로서의 하나님 자신에 의해서(약 4:12; 마10:28; 마 22:7; 막 12:9 병행구), 어떤 사람에게 임한다. 심판자로서의 하나님의 역할은 진노의 나타내심에서도 보여진다.
아볼루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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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볼루온 Apollyon, 파괴자 Destroyer.||#1.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아폴뤼온은 히브리어 아밧돈(멸망, 십년)의 의인화이다. 이 단어는 '파괴자'(destroyer)를 의미하며, 재앙의 신인 아폴론(Apollon )의 이름에 대한 말의 기교(pun)를 부린 것으로 여겨진다. 아폴로는 특별히 로마의 신으로 간주되며, 그가 메뚜기(locust)를 만들었다고 한다(Aesch., Agamennon 1081).||#2. 신약성경의 용법||아폴뤼온은 신약성경에서 한번 계 9:11에만 나온다: "저희에게 임금이 있으니 무저갱의 사자라 히브리 음으로 이름은 아바돈이요 헬라 음으로 이름은 아볼루온이더라". 아폴뤼온은 히브리어 아밧돈의 역어로 나온다. 아밧돈은 구약성경에서 '멸망의 장소'로 나타난다(욥 26:6; 잠 15;11). 아밧돈은 지하 세계의 사자, 마지막 날에 인간을 괴롭히는 전갈, 괴물들의 왕, 지상의 파괴자에게 주어진 고유명사이며, 헬라어 아폴뤼온(파괴자)으로 번역되었다. 이렇게 묘사함으로서 헬라어 아폴뤼온은 아폴레이아에 대한 70인역본의 용법과 재앙과 멸망의 신으로 아폴뤼온을 생각하는 개념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Aeschylus Agamemnon 1082). 이렇게 묘사함으로서 하나님의 구원(소테리아)과 종말론적 파멸(아폴레이아) 간의 대조를 다시 한번 명백하게 나타내고 있다.|(참조: J. H. Thayer; J. JEREMIAS; A. Oepke; H -C. Hahn).
아볼로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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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로니아 Apollonia||아폴로니아는 아폴론(%861: 이방신의 이름)에서 유래했으며, 신약성경에서 행 17:1에 한번 나온다. 아폴로니아는 마게도냐의 해안 도시, 암비볼리에서 하루가량 [안토니우스 여행기(Antonine Itinerary)에 의하면 32로마 마일] 걸리는 곳으로서,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36마일이 더 멀다]로 가는 길에 경유한 도시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아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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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볼로 Apollos.||아폴로스는 '파괴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신약성경에서 한글개역 성경은 '아볼로'라고 번역했다. 아볼로는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유대인으로, 이방 문학과 유대 문학이 교류되는 헬라 문화권의 중심지에서 성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아볼로의 구약성경에 대한 정통한 지식과 뛰어난 변론술은 알렉산드리아적인 배경의 영향인 것 같다. 그 당시 알렉산드리아에서는 '필로'와 같은 대학자를 배출하였으며, 70인역본도 번역하여 유대인들에게 제공해 주었다. 루터는 이러한 것에 근거하여 아볼로가 히브리서의 기자일 것이라 생각하였지만 추정에 불과하다.||(a) 아볼로는 학문이 많고 성경에 능한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이다(행 18:24). 그는 "일찍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님에 관한 것을 가르치었다. 그러나 그의 가르침은 불완전하였으니 "요한의 세례"만 알 뿐이었으며, 이것은 어떤 논쟁을 일으킨 것이다. 아볼로는 아마도 요단 건너편 베다니에서 행한 세례(침례) 요한의 전도에 대하여 직접으로, 다른 사람들로부터 들었을 것이다.|분명히 아볼로는 수사학을 익힌 언변이 탁월한 성경 학자이다. 그가 어디서 기독교의 가르침을 받았는지 전해지지 않는다. 또한 그러한 사람이 어떻게 요한의 세례(침례)만 알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받는 세례(침례)에 관해서는 아직 아무것도 알지 못했는지도 확인되지 않는다(참조: 행 2:38).||(b) 아볼로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에게 하나님의 도를 자세히 배웠다(행 18:26). 에베소에 거하면서 아볼로는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를 시작했다." 청중 가운데 두 평신도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있었다. 이들은 아볼로의 능변과 열정에 감동을 받았으나 그의 설교는 미숙한 설교였다. 그래서 이들은 아볼로를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보다 정확하게 설명해 주었다. 이것은 그들이 바울이나 사도들과 가까이 하면서 배운 그대로였다(행 18:26).||(c) 아볼로는 이 복음의 진수를 깨닫고는 에베소 교인의 추천서를 받고 격려를 받으며 '아가야'로 전도 여행을 떠났다. 그는 아가야에서 교인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었다. 새롭게 깨달은 복음의 진리를 가지고 예수님은 구약성경에 예언된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유대인들에게 증명해 주었다(행 18:27-행 18:28).||(d) 고린도에서 아볼로의 선교의 영향으로 시련을 겪게 되었다. 고린도교회에서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속한자라" 하면서 여러 분파로 나누어진 적이 있었다(고전 1:12). 아볼로의 설교에 깊은 감명을 받은 일부 고린도 교인들은 나누어진 4파 중의 하나인 아볼로파를 형성했다. 좋아하는 설교자를 중심으로 분쟁하는 자들은 이들 모두가 하나님의 동역자임을 생각지 못했다.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뇨", 각각 주께 받은 은사대로 일하는 사역자로서 바울은 심고 아볼로는 물을 주고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신다(고전 3:3-고전 3:8). 바울이 이같은 분당을 꾸짖을 때 아볼로가 아니라 고린도 교인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e) 아볼로는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기록할 당시 에베소에 그와 함께 있었다(행 16:12). 고린도 교인들은 아볼로에게 고린도로 돌아와 주기를 바랐다. 바울도 역시 아볼로에게 고린도 교회를 다시 한번 방문해 보라고 권면했지만 아볼로는 거절했다.|이는 지난날 고린도 교회에서 일어난 분파 문제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볼로는 자신이 분파 중 어느 한 파의 중심 인물이 되었다는 것은 바울과 마찬가지로 아볼로에게도 가슴 아픈 일이었다. 아볼로는 그 불씨가 완전히 사그러지기를 바란 것이다.||(f) 딛 3:13에서 바울은 디도에게 아볼로에 관하여 말했다. 아볼로는 이 때(A.D. 약 63년) 에베소 남쪽 그레데섬에 머물고 있었다. 바울은 디도에게 "교법사 세나와 및 아볼로를 급히 먼저 보내라"고 했다.|(참조: WEB; ISBE).
발명하다
ajpologevomai
자신을 변명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아폴로게오마이(Eur., Hdt. 이래)는 아포($575)와 로고스($3056)에서 유래했으며,||(a) '자기의 변호를 위해 말하다, 자신을 변호하다',|(b) '사람을 변호하거나 변명하다, 사물을 방어하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아폴로게오마이는 신약성경에서 10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아폴로게오마이는 '자신을 변호하다'를 의미한다.|① 독립적 용법으로 눅 21:14; 행 26:1.|② 호티가 뒤따라 호티 이하의 일을 변명한다(행 25:8).|③ 눅 12:11에서 티스($5101)를 수반하여 '스스로를 변호하기 위해 어떤 것을 제출한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행 26:24에서도 마찬가지이다.|④ 행 24:10에서 '나는 내 자신에 관한 사건을 …변명한다'라고 번역할 수 있다.|⑤ 행 26:2에서 비인격 속격과 함께 페리($4012) 및 인격 속격과 함께 에피($1909)를 수반하여, '재판석 앞에서 어떤 사실에 관하여 변명하다'를 나타낸다.|⑥ 사람 여격과 함께, 그(여격)에게 나를 변명하여 나는 무죄하거나 옳다고 확신시키려 애쓰다, '~의 눈 앞에서 나 자신을 변명하다, (혹은) 옳다고 주장하다'(행 19:33; 고후 12:19).||(b) '사람을 변명하다' 혹은 '사물을 방어하다'(롬 2:15; 행 26:2).|(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발명
ajpologiva
변호, 변명.||#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아폴로기아(Pre-Socr., Thu. 이래)는 아폴로게오마이($626: 자기를 변호하다)에서 유래했으며, '변호'를 의미하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사건과 관련하여, '변호의 말'에 대해,|(b) 행위에 관하여, 법정에서 '변호'('나의 첫 변호에서' 등)에 대해,|(c) '변명, 해명'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아폴로기아는 70인역본 외경 지혜서 6:10에서 심판의 '답변'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아폴로기아는 신약성경에서 8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아폴로기아는 행 22:1에서 (a)의 의미로 '변호의 말'을 의미한다: "부형들아 내가 지금 너희 앞에서 변명하는 말을 들으라 하더라".|고전 9:3에서도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나를 힐문하는 자들에게 발명할 것이 이것이니".||(b) 딤후 4:16에서 (b)의 의미로 처음 '변호'할 때를 나타낸다: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저희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행 25:16에서 '변명'의 기회를 표현한다: "내가 대답하되 무릇 피고가 원고들 앞에서 고소 사건에 대하여 변명할 기회가 있기 전에 내어주는 것이 로마 사람의 법이 아니라 하였노라".||(c) 고후 7:11에서 자신을 변호하는 열성에 대해 사용되었다: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명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저 일에 대하여 일절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빌 1:7에서 복음을 변호하는 것에 대해 사용되었다: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예한 자가 됨이라".|벧전 3:15에서 어떤 사람에게 변호할 것을 준비하라고 한다. 이러한 구절들에서 변호에 대한 열성을 보여준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아폴루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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씻다 wash||#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아폴루오(Homer 이래)는 아포($575)와 루오($3068: 목욕하다, 씻다)에서 유래했으며, 루오의 강의형으로 역시 '씻다, 씻어내다'를 의미한다. 의식적인 정화를 위해 씻는 것은 고대인들 중에서 흔히 있는 일이다. 정화를 나타내는 일반적 용어는 루오이며, 아폴루오는 이러한 문맥에 드물게 나타낸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아폴루오는 70인역본에서 욥 9:30에서 한번 나오며, 히브리어 나하츠의 역어로 사용되어 '자신을 씻는 것'을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아폴루오는 신약성경에서 2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행 22:16에서 아폴루오는 세례(침례)와 관련하여 죄를 '씻어낸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이제는 왜 주저하느뇨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하더라".||(b) 고전 6:11에서 행 22:16과 같은 단어가 나온다는 것은 이 단어도 역시 세례(침례)시의 죄의 씻음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동사들이 부정 과거의 시제로 나왔다는 것은 곧 씻음, 성화, 그리고 칭의가 단 한번의 기회임을 나타내며, 주목할만한 표현이다.|그리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는 세례(침례)의 공식 문구에서 이 이름이 사용되었음을 보여준다. "우리 하나님의 영으로"는 고전 12:13과 행 2:38 등에 나오는 바와 같이 성령의 활동을 세례(침례)와 연결시킨다(G. R. Beasley-Murray).|(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A. Oepke).
구속(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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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 redemption, 구조 deliverance, 해방 release.||#1. 일반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아폴뤼트로시스는 아폴뤼트로오(%776: 속전을 받고 놓아주다)에서 유래했으며, '몸값, 속전'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아폴뤼트로시스는 70인역본에서 해당하는 히브리어 없이 한번 나타난다. 단 4:34에서 이 명사는 느부갓세살왕이 정신이상에서 자유롭게 되는 것에 대해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아폴뤼트로시스는 다른 곳에서는 드물게 나타나지만 신약성경에서는 10회 사용되었다. 아폴뤼트로시스는 '속전을 받고 자유롭게 함'을 의미하지만 또한 '해방'이라는 보다 일반적 의미를 가지기도 한다.|바울의 서신에서 이 단어는 주로 예수님의 대속적 죽으심으로 말미암은 죄와 죄의 형벌로부터의 구원을 나타낸다. 이런 의미에서 이 단어는 오직 그리스도에 기초한 현실이다. 즉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4; 참조: 롬 3:25).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엡 1:7);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골 1:14);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고전 1:30).|그러나 이 단어는 미래적인 국면도 갖고 있다. 왜냐하면 구속의 완전 실현은 재림과 함께 올 것이기 때문이다.|눅 21:28에서 아폴뤼트로시스는 제자들이 기대를 가지고 주목해야 할 새 시대의 결정적인 종말론적 구속을 의미한다: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구속이 가까왔느니라 하시더라".|엡 1:14과 롬 8:23에서도 이러한 의미를 지닌다. 롬 8:23에서 이 단어는 특히 몸 '으로부터'(from)의 구속이 아닌 몸 '의'(of)도 구속, 즉 부활하신 주님을 닮은 몸의 변형을 뜻한다: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엡 1:14; 엡 4:30에서 아폴뤼트로시스는 완전한 기업에 들어가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 완전한 기업 중 제일 첫 화분(first instalment)을 가지고 있다: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엡 1:14).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엡 4:30). 그러나 구속은 또한 그 자체를 현재에 소유하는 것이기도 하다(엡 1:7; 골 1:14). 구속은 하나님의 행동이신 용서로 이루어져 있다. 이 용서는 지금 약속을 통해 향유되고 있으나, 마지막 날에 용서는 완전한 갱생(renewal)을 가져다 줄 것이다. 구속의 역사적 현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의 죽음과 부활의 현실이며, 그리스도는 둘째 아담이요 하나님의 아들이며 인간의 형제로서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역사(history)의 중간점이 되신다. 현재 우리의 구속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 있지만, 이 구속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하고(살전 4:17) 그리스도와 더불어 영화롭게 될 때(고전 15:49) 완성될 것이다. 그리스도 자신이 우리에게 아폴뤼트로시스가 되셨다(고전 1:30). 그러므로 아폴뤼트로시스는 오직 그리스도와의 교제를 통해서만, 즉 그의 역사(work)를 힘 입고(갈 2:20), 그의 주권 영역 내에서만(골 1:13) 얻을 수 있다. 아폴뤼트로시스는 하나님으로부터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자신이 그리스도로 하여금 우리의 구속이 되게 하셨기 때문이다. 그것은 은혜의 선물이다(롬 3:24).|히 11:35에서, 아폴뤼트로시스는 '해방, 면제'(release)라는 일반 헬라어 의미를 지니지만, 히 9:15에서는 '사면, 용서' (remission)라는 의미를 지닌다. 신약성경 어느 곳에서도 실제적인 '속전'의 개념을 분명히 나타내지 않는다는 점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이 개념에 가장 가깝게 사용된 곳은 롬 3:24이다. 그러나 롬 3:25에 의하면 그 개념은 상업적이라기보다는 제의적이다. 만일 칭의(justification)가 롬 3:24에서 법적 개념이라면, 율법은 형벌 면제를 위한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다. 아폴뤼트로시스는 사실상 신약성경에서 핵심용어가 아니다. 이 단어는 신약성경에서 사용되지 않는 곳이 많으며, 바울에게 있어서도 디카이오쉬네($1343) 같은 용어보다도 덜 중요하다. 이 단어는 다른 사실들이나 개념들에 의해 그 특별한 내용을 부여받는 보다 일반적인 용어가 되었다. 이 단어의 가장 중요한 용법은 눅 21:28; 엡 1:14; 엡 4:30; 롬 8:23에서와 같은 종말론적 용법이다.|(참조: C. Brown; F. Buchs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