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해설 45 페이지 > 기독정보닷컴

끌어 …쫓게 하다
ajpospavw
빼어내다, 떼어 놓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아포스파오(Pind., Hdt. 이래)는 아포($575)와 스파오($4685: 빼다)에서 유래했으며,||(a) '빼내다', 검을 빼거나 못을 빼내는 것에 대해 사용되었다.||(b) 비유적으로, '잡아 떼다, 떼어내다', 어떤 사람을 어떤 것이나 사람으로부터 떼어 놓은 것에 대해 사용되었다.||(c) 수동태로, '(~에서) 물러나다, 떠나다'(Diod., Poxy.)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아포스파오는 신약성경에서 4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마 26:51에서 아포스파오는 (a)의 의미로 검을 '빼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예수와 함께 있던 자 중에 하나가 손을 펴 검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b) 행 20:30에서 아포스파오는 (b)의 '떼어 놓는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또한 너희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좇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니". 거짓자들은 교회로부터 제자들을 떼어놓으려고 노력했다.||(c) 눅 22:41에서 아포스파오는 (c)의 의미로 '떠나가다'를, 행 21:1에서 '이별'을 나타낸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배도하는 일
ajpostasiva
변절, 배교.||#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아포스타시아(Diod.)는 아피스테미($868)에서 유래했으며, '반역, 변절, 포기, 배교 상태'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아포스타시아는 신약성경에서 2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행 21:21, 아포스타시아는 '변절'을 나타낸다: "네가 이방에 있는 모든 유대인을 가르치되 모세를 배반하고 아들 들에게 할례를 하지 말고 또 규모를 지키지 말라 한다 함을 저희가 들었도다". 여기서 유대인들은 바울이 구약 율법을 무시하도록 말하며,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에게 모세에 대한 변절을 가르친다고 비난했다.||(b) 살후 2:3,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 아포스타시아의 독립적 용법은 메시야의 출현 직전에 배교의 시기가 있으리라는 예언과 함께 유대 묵시의 일반적 용법이다(이디오피아어 에녹서 5:4; 93:9). 바울은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 있을 적그리스도 시대에 이런 사건이 일어난다고 본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W. Bauder).
이혼
ajpostavsion
이혼 divorce.||#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아포스타시온(Dem.)은 아피스테미($868)에서 유래했으며, '판매된 소유물의 포기'를 의미한다. 예를 들면 아포스타시우 쉰그라프헤(재산의 양도 증서)에 대해 사용되었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아포스타시온은 신약성경에서 3회 나오며,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만 사용되었다.||(a) 마 5:31에서 아포스타시온은 '이혼'을 의미하지만 여기서는 '이혼 증서'란 의미로 사용되었다.||(b) 마 19:7(병행구 막 10:4)에서 '이혼'을 의미한다: "여짜오되 그러하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 증서를 주어서 내어버리라 명하였나이까".||◎ 신약성경의 이혼에 대한 가르침.|① 신약시대에 이혼은 인정된 사실이었다(유대 관습에 관하여는 SB I, 303-321을 참조). 만일 아내에게 이혼을 알리는 합법적인 법률상의 절차를 밟았을 경우 남편은 자유롭게 아내를 버릴 수 있었다. 그러나 남편이 아내와 이혼할 수 있는 이유들에 관하여 두 계열의 랍비 학파, 곧 이혼을 간음의 경우에만 허용한 샴마이(Shammai) 학파와 부부간에 서로 마음이 맞지 않은 경우에도 허용한 힐렐 학파(Hillel, B.C. 1세기의 교사들)는 서로 다른 주장을 하였다.|신약성경에서 결혼은 그 본질상 분리될 수 없는 것으로 간주되어 있다. 막 10:1-막 10:12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님의 교훈은 하나님의 창조 목적이 남편과 한 몸을 이루는데 있다는 사실을 확증해 준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합한 것을 사람이 나누어서는 안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만일 적법한 법률상의 형식을 취했을 경우 이혼을 허용했다는 사실이 인정되었다. 그러나 모세가 이혼을 허용해준 것은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인간들의 마음이 완악(아마도 더 악한 상황들이 초래되는 것을 막기 위해)하였기 때문이거나 그런 완악함을 표출시키기 위해서였다. 예수님의 교훈은 이혼이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우쳐 주는데 율법이 허용해준 이혼 후의 재혼도 간음의 범주에 들어간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 교훈이 비기독교 사회의 법률에 대한 그리스도교인들의 태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혹은 교회가 이혼한 그리스도인들을 어떻게 취급했는지에 관하여는 분명하게 말할 수 없다(참조: 요 7:53-요 8:11, 바울의 논의).|예수님은 이혼을 간음이라는 말로 정의함으로 이혼이 왜 잘못된 것인지를 설명해 준다(마 5:32). 자기 아내를 버리고 다시 결혼하는 사람은 간음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막 10:11; 눅 16:18). 그가 첫 번째 아내에 대해 간음 죄를 범하고 있다는 것은 전통적인 해석이다. 그러나 비록 그 구문이 그가 두 번째 아내와 함께 간음을 하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할지라도 그 요지는 변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두 경우에 간음은 오직 첫번째 아내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은 아내에 의해 저질러졌든 그녀의 정부에 의해 저질러졌든 그녀의 남편에 대한 범죄로서의 간음에 대한 기존의 유대적인 관점을 능가하는 것이었다는 사실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여기에서 예수님은 아내도 남편과 동등한 위치에 있다고 말씀하신다. 왜냐하면 그가 다른 여자와 성교하는 것은 아내에 대한 간음이기 때문이다. 막 10:12에서는 똑같은 원리가 남편을 버리고 재혼하는 아내에게 적용된다. 이혼 후의 재혼은 간음이다(눅 16:18; 막 10:11).|그리고 마 5:32에서 예수님은 자기 아내와 이혼한 사람은 그녀와 그녀의 두번째 남편으로 하여금 자기에 대해 간음죄를 범하게 한 것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마 19:9(마 5:32)의 말씀은 막 10:11의 말씀과 일치하지만 "간음의 경우에" 예외를 허용한다. 학자들은 흔히 이런 사실에 대해 지상 교회가 그것을 샴마이의 규칙에 맞추고, 아마도 남편으로하여금 간음죄를 범하는 아내를 버린 후에 재혼할 수 있도록 허용해주기 위해 예수님의 말씀을 수정한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보른캄은 '이혼의 충분한 사유가 될 수 있는 것에 관한 여러 랍비 학파들 사이의 논란에서 마태는 부수적인 예외 구절("음행한 연고 없이")로서 샴마이 학파의 엄격한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예수님은 음행을 이유로 이혼을 허용하는 예외를 과연 인정하고 있는가?|한편 머레이(Hohn Murray)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이 구절은 예수님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며 마태는 마가와 누가가 손을 대지 못한 그 이상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마 19:9은 막 10:11과 눅 16:18과 같이 신 24:1-신 24:4에 함축된 이혼의 허락을 완전히 철폐시키고 있다. 모세의 율법은 간음으로 인한 이혼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왜냐하면 간음죄를 지은 사람에게 내려지는 형벌은 사형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모세의 율법은 이와 같이 이혼할 경우 재혼할 수 있는 권리를 다루지 않았었다. 머레이는 이 이혼의 문제가 바로 마태복음이 여기에서 다루고 있는 문제라고 주장한다.|만일 예수님께서 음행을 이유로 이혼을 허용해주는 예외를 인정했다면 그 음행한 당사자는 결혼 생활을 불가능케하는 상습적 음행자일 것이다.||② 간음은 하나님 나라에서의 삶의 소망과는 양립할 수 없는 것이며(고전 6:9 이하), 하나님의 심판 아래 놓여있는 것이다(히 13:4). 따라서 파멸을 부르는 방탕(벧후 2:14)은 그리스도의 재림 및 그 후의 심판에 대한 의심과 보조를 맞춘다는 점이 특기할만하다(벧후 3:3-벧후 3:7).||③ 예수님께서 간음에 대해 격렬하게 비난하시지만, 간음하는 자들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회개하고 돌아온 죄인들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자비(마 21:13 이하; 눅 18:9-눅 18:14; 참조: 고전 6:9 이하)를 받지 못한다고 말씀하시지는 않는다. 사형을 받을만했던 간음한 여자는 죄사함을 받았으나 반면에 외관상 죄없는 것처럼 보인 군중들은 그들의 위선적인 독선(self-righteousness)을 반성하게 되었다(요 8:3-요 8:11). 동시에 뉘우치지 않는 타락자들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제외되었다(딤전 1:10; 히 13:4; 계 21:8; 계 22:15).||④ 간음의 주제는 구약성경의 예언서에서처럼 신약성경에서도 비유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는데(참조: 약 4:4), 여기에서 간음하는 자들은(모이칼리데스[moichalides]; RSV "믿음이 없는 자들!") 세상과 벗된 자들이었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은 종교 대표자들 즉 바리새인과 서기관(마 12:39), 사두개인(마 13:4)들로 대표되는 것처럼 "악하고 음란한 세대"로 불리웠다. 비록 주석가들 중에는 이 구절을 실제적, 도덕적 상황에 대한 심판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비유적인 설명도 가능하다. 그 당시의 세대 즉 예수님을 거부함으로써(참조: 막 8:38) 하나님에 대해 불충분한 사람들은 예수님 안에 현존해 계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충분한 증거가 이미 있는 그 때에 표적을 요구하는 자로 특징 지워진다.||⑤ 끝으로, 이혼은 어느 시대에도 유해하고 파괴적인 것이다. 하나님은 결혼을 평생의 서약으로 규정하셨다(창 2:24). 결혼 생활에 들어갔을 때 사람들은 이혼을 문제 해결을 위한 선택으로 결코 생각해서는 안되며 결혼 관계는 죽음으로 끝나는 것으로 확신해야 한다. 예수님은 고의적으로 결혼 서약을 오용하는 자들과 다른 사람들과 재혼하려는 음욕을 만족시키려고 이혼하는 자들을 공격하였다.|사람은 결혼을 더 이상 지속할 수 없는 경우가 있을지라도 이혼은 사람의 일이 아니다는 믿음으로 극복해야 할 것이다. 자기의 배우자가 불성실하다는 것을 안 사람들은 먼저 용서하고, 화해하고, 회복하려고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한다. 사람은 항상 결혼 관계를 그만두려는 구실을 찾기보다는 회복하려는 이유를 찾아야 할 것이다.|(참조: J. H. marshall).
뜯다
ajpostegavzw
지붕을 벗기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아포스테가조(Strabo; Artem.)는 아포($575)와 스테게($4721: 지붕)에서 유래했으며, '지붕을 벗기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아포스테가조는 신약성경에서 막 2:4에 한번 나오며, '지붕을 벗기는, 곧 지붕을 뜯어 내는 것'을 표현한다: "무리를 인하여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의누운 상을 달아내리니".|(참조: Walater Bauer; J. H. Thayer).
내어 보내다
ajpostevllw
보내다, 발송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아포스텔로(Sophocles 이래)는 전치사 아포($575: ...으로부터, ...로부터 멀리)와 스텔로($4724: 올리다, 세우다, 준비하다)의 합성어이며, '보내다(사람과 사물을), 멀리 보내다, 발송하다'라는 의미를 지닌다.|아포스텔로는 일반 헬라어에서 더욱 자주 쓰이는, '보낸다'는 단순한 사실을 강조하는 펨포($3992: 보내다)와 구별된다. 헬라니즘 헬라어에서 이 단어가 파송자와 파송 받는 자 사이의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그 결과인 파송된 자에 부과된 임무(commission)를 함축하고 있다. 특별한 목적을 위해 대표를 파견할 경우에는 보내는 이유와 임무가 특히 강조되곤 한다. 따라서 이 단어는 위임, 즉 권한부여(authorization)라는 더 깊은 개념을 함축한다. 사절은 자신을 보내는 자의 인격적 대표자이므로, 전권을 가진다. 예를 들면 B.C. 3세기 이후의 관용어 '왕의 사절들'이다.||일반적으로 스토아 철학에서 주인을 대표하는 사절의 권한에 대한 사상은 종교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퀴닉 학파(Cynic)의 한 교사는 자신을 제우스가 보낸 한 사절과 모범(example)이라고 생각했다. 이 의미에서 아포스텔로도 신적 권위를 의미하는 전문 용어로 나타난다(참조: D. Muller; K. H. Rengstorf).||#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아포스텔로는 70인역본에서 약 70회 정도 나오며, 거의 대부분 히브리어 샬라흐(보내다, 내뻗다, 풀어주다)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주로 메시지나 임무를 위임하는 경우에 사용되었다. 번역자들은 샬라흐가 보냄 그 자체(펨포의 의미)보다는 본질적인 파견 목적, 사자에게 부여하는 권한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파악했던 것이다(수 1:16; 왕하 19:4; 렘 34:3).|더구나 아포스텔로는 독립으로 사용될 때 특별한 임무를 가진 사자의 보내는 사실을 강조적으로 나타내므로, 보냄을 받고 사명을 받은 사람에게 자신의 권한을 부여해 주는 그 사람이나 하나님에 강조를 둔다(사 6:8). 이런 경우에 사자는 일종의 전권 사자이다.||유대교의 랍비들은 예수님 시대에 사자들(messengers)에 관한 옛 셈족 법률에서 유래된 대표자나 대리인의 직능을 인식했음에 틀림없다. 그 사실은 미쉬나에서 발견된 '어떤 사람의 대리인(샬루아흐)은 그 사람 자신과 같다'(Ber. 5:5)라는 원리에서 간명하게 표현되어 있다. 그러므로 사자는 자신에게 사명을 부여한 사람의 대리인이 된다(삼상 25:40; 삼하 10:6).||#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아포스텔로는 신약성경에서 약 135회, 펨포($3992) 80여회 나오는데, 신약성경 자료의 종교적인 특성은 일반적으로 아포스텔로가 지배적으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설명해준다. 신약성경 전체에서 펨포는 보낸다는 것에 강조점이 주어질 때, 아포스텔로는 임무 위임이 강조될 때, 특히 보낸 자가 하나님일 때(공관복음서에서) 사용된다.|아포스텔로는 요한복음에 28회 나오며,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는데, 여기서 아포스텔로는 첫째로 그리스도론과 관련된다(19회).||(a) 아포스텔로는 발송하다, 보내다 send forth, send out 를 의미한다. 이 단어가 사자의 여행(물건이나 정보의 단편을 전달하기 위한)의 성공적인 완수를 제한하는데 사용되지 않고 문제의 사건의 목적과 목표와 그에 따른 보냄과 임무의 완수에 초점이 첨예하게 맞추어질 때 이 동사는 위임(commission)의 의미를 지닌다(마 2:16; 마10:40 병행구절; 22:3 이하; 막 6:17; 9:37 병행구절; 눅 1:19; 4:18, 43; 9:2; 요 1:6, 24; 3:34, 4:38; 5:36, 38; 6:29, 57; 7:29; 8:42; 11:42; 17:3, 8, 21, 23, 25; 20:21; 행 9:17; 롬 10:15; 고전 1:17; 히 1:14; 계 22:6). 이러한 의미는 전도를 변증하는 문맥에 앞 부분(→(b))과 그리스도론의 정당화를 목적으로하는 진술(→ (c))에서 규칙적으로 나타난다.||하나님뿐만 아니라 인간도 아포스텔로의 주어가 될 수 있다. 보내는 사람에 대해서 이 동사는 이러한 어떤 사람이 그가 임의로 사용할 수 있는 사자들을 가지고 있으며 그가 정보의 단편이나 물건을 전달하거나 제 삼자에게 요구하기를 원한다는 것을 나타낸다.|① 마 20:1; 마 21:33에서는 집주인이 주어이다.|② 마 22:2; 막 4:29에서는 임금이 주어이다.|③ 행 5:21에서는 대제사장이 주어이다.|④ 행 13:15에서는 회당장이 주어이다.||요구할 권리와 권세도 인자(목적어는 마 13:41; 막 13:27 병행구절에서 천사들이다), 즉 이 땅의 예수님뿐만 아니라(목적어는 제자들이다. -->(b)) 보내신 자(막 1:2; 눅 1:19; 눅 1:26; -->(c)로서의 하나님의 특성을 나타낸다.||아포스텔로의 목적어는, 일치되게, 보내신 자가 그들에게 사자로서 봉사하기 위한 복종과 자진하는 마음을 기대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① 마 20:2에서의 품군들,|② 막 12:2- 막 12:5에서의 종들,|③ 행 19:22에서의 돕는 사람,|④ 마 22:16; 막 11:1; 막 14:13; 눅 7:8; 눅 7:20에서의 제자들,|⑤ 막 12:16에서의 아들.||(b) 아포스텔로의 법률적인 의미는 이 세상의 예수님께서 열 두 제자들(막 3:13-막 3:19; 막 6:6 이하; 마 10:1 이하; 눅 6:12-눅 6:16; 눅9:1 이하; 10:1 이하)의 파송과 일치하여 복음서 기사들에 널리 퍼져있다. 예수님의 활동에 일치하여, 제자들에게 주어진 의무는 바실레이아의 선포(막 3:13; 마 10:7 이하 병행구절 눅 9:2; 눅 10:9)와 귀신을 쫓아내는 것(막 3:15; 막6:7; 마 10:1 병행구절 눅 9:1; 눅 10:9)을 포함한다. 제자들이 그들을 보내신 주님을 대표하고 그 분 자신을 대리하여 존재하기 위해 보내심을 받는다는 사실은, 보내심을 받은 제자들을 영접하는 것이 그것과 동시에 그들을 보내신 주님을 영접하고 대면하게 되는 것이며 그래서 결국 세키나를 대면하게 되는 것이라는 법률적인 격언으로 가장 분명하게 표현된다(마 10:40; 눅 10:16; 막 9:37 병행구절; 9:41 병행구절; 요 5:23; 요 12:44 이하; 요 13:20). 보내심을 받은 제자들은 주님의 권능을 공유하며(막 3:15 병행구절 6:7), 그들은 아버지이자 결국 그들을 보내신 분이신 하나님에 의해 보호 받으며(마 10:20), 그들은 둘씩 짝을 지어(막 6:7 병행구절; 눅 10:1), 그들의 위임 사명과 그들에게 위임하신 분에 대해 확실한 증언을 전할 수 있다.||(c) 이미 요한 이전의 전통에서 아페스탈렌("보내심을 받지"; 마 15:24; 눅 4:18; 눅 4:43)과 함께 엘돈("부르러온")이라는 말씀도(막 1:38; 병행구 막 2:17; 막 10:45; 마 5:17; 마 10:4; 눅 9:46; 눅 12:49 이하; 눅 19:10) 예수님께서 그의 구원하시는 활동을 위해 하나님에 의해 위임받으신 분이라는 것을 나타낸다.|또한 요한 이전의 복음은 하나님께서 그의 파이스("종")(행 3:26), 그의 그리스도(행 3:20), 그의 아들(갈 4:4; 롬 8:3)을 보내신다는 진술로 끝나는 고백의 형식이다.||보내는 것에 대한 유대교의 가르침의 영향 아래에서, 요한은 이러한 형식(요일 4:9; 요일 4:10; 요일 4:14; 요 3:16 이하)을 그리스도론의 정당화의 기초로 발전시켰다(요 5:36; 요 5:38; 요 6:29; 요 6:57; 요 7:29; 요 10:36; 요 11:42; 요 17:3; 요 17:8; 요 17:18). 아포스텔로는 하나님으로부터 위임받는 것과 권한을 부여받는 것을 나타낸다. 그러한 보내심은 아들이 아버지께 묶여 있는 독특한 방식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라는 말씀을 믿는 것은 고백의 목적과 내용을 구성한다(요 11:42; 요 17:3; 요 17:8; 요 17:21; 요 17:23; 요 17:25).|(참조: J. -A. Buhner).
분방하다
ajposterevw
약탈하다 rob, 사취하다 defraud, 빼앗다 deprive.||#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아포스테레오(Aeschyl., Hdt. 이래)는 아포($575)와 스테레오(%49,~에서 빼앗다)에서 유래했으며, 다음의 의미를 지닌다.||(a) '속여서 빼앗다, ~로부터 빼앗다, 사취하다'.|(b) '빚 갚기를 거부하다, 채무 불이행자가 되다' 또는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하여 타인에게 맡긴 재산이나 금전을 돌려주기를 거부하다, 횡령하다'.|(c) '어떤 사람이나 사물로부터 물러나다' 즉 '관계를 끊다'.|(d) 논리적으로, '부정적 결론을 이끌어내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아포스테레오는 70인역본에서 8회 나오며 히브리어 아샤크(2회)와 가라(1회)의 역어로 사용되었다.|출 21:10에서 둘째 아내를 취하는 남편에게 첫 아내로부터 음식이나 의복 또는 부부생활에서의 동침의 권한을 뺏지(가라) 말라고 경고한다. 신 24:14에 기록된 율법은 이스라엘 족속으로 하여금 가난한 품군의 임금 지불을 질질 끌어(아샤크) 착취하지 말라고 명한다. 말 3:5은 품군을 학대하는(아샤크) 자들에게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한다.|외경 집회서 34:21, 22에서 '빼앗는 것'을 나타내고, 22:6, 7에서 빚과 관련하여 나타난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아포스테레오는 신약성경에서 5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막 10:19에서는 예수님께서 한 부자 청년 관원에게 메 아포스테레세스(사취하지 말라, 속여 취하지 말라)라는 계명을 인용하신다: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속여 취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이 구절은 병행구인 마 19:18과 눅 18:20에는 생략되어 있다. 이 구절은 열번째 계명을 약술한 것일 것이다. 열번째 계명이 여기에서 달리 언급돼 있지 않은 이유는, 남의 것을 몹시 탐내는 자는 그의 마음 속에서 이미 그 사람으로부터 그것을 빼앗았기(아포스테레오) 때문이다.||(b) 고전 6:7; 고전 6:8에서 바울은 이방인의 법정에서 그들이 피차간 송사하는 것에 대해 고린도인들은 견책한다: "7 너희가 피차 송사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완연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8 너희는 불의를 행하고 [속이는구나] 저는 너희 형제로다". 사랑의 율법 그리고 아마 마 5:39이하의 예수님의 가르침도 분명히 알고 있는 자들로서 그들은 차라리 사취당하는(아포스테레이스데, 고전 6:7)편을 택할지언정 적극적으로 남의 것을 사취해서는(아포스테레이테, 고전 6:8) 결코 안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피해자가 가해자를 고소한다고 하는 것은 단지 그가 앙갚음하기를 원하여 그 보복으로 다시 가해자에게 악을 행하고자 하는 것일 따름이며 이것도 역시 자기 자신에게 악을 행하는 행위 그 이상의 어떤 것도 아니다'(Clem. Alex., Strom. 7, 14).||(c) 고전 7:5에서 아포스테레오는 부부 관계에 있어서 사기를 나타낸다: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의 절제 못함을 인하여 사단으로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부부는 서로에게 속해 있기 때문에 부부 중 어느 한 사람이 결혼 생활을 영적화 하고자 하여 부부(성) 관계를 피하고자 하는 시도는 사기에 해당하며, 이것은 응당 행해야 할 것을 하지 않는 행위인 것이다. 자제는 상호 동의하에 선한 목적을 위하여(선한 목적의 실례로서 바울은 기도를 들고 있다), 그리고 일시적 수단으로서 사용될 경우에만 합법적인 것이 될 수 있다.||(d) 딤전 6:5에서 아포스테레오는 '빼앗긴다' 내지 '관계가 끊어진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바울은 외적으로 나타나는 경건이 이익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고 가르친 자들을 공박한다. 그러한 자들은 마음이 부패하여져서 진리를 잃어 버린(아페스테레메논) 자들이다. 한때는 그들이 예수 안에 있는 진리를 알았으나 자만에 빠져 그 보화를 빼앗겼던 것이다(참조: 딤전 4:1). 이것은 진리와 관계가 끊어진 것을 나타낸다. 동료 기독교인들과의 일치점을 상실하였으므로 그들은 이제 단지 논쟁만을 일삼을 뿐이다.||(e) 약 5:4에서 아포스테레오는 품군의 임금을 착취한 것을 나타낸다: "보라 너희 밭에 추수한 품꾼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지르며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참조: J.H.Thayer; Walter Bauer; N.Hillyer).
사도 삼음
ajpostolhv
보냄, 파송, 사도의 직분||#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아포스톨레는 아포스텔로($649: 보내다, 발송하다)에서 유래했으며, 아포스텔로에 상응하는 다양한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이 단어는||(a) '배의 급송' despatch of ships(Thuc.), 함대의 파송, 군대를 가진 영사나 원정대(Polyb.),||(b) 어떤 종류든지 '보냄이나 파송' sending, '미사일의 발사'(Philo Mechanicus Belopoica), '어떤 사람에서부터 분리'(Aristot. Rhet.,), '바싹 마른 시체의 매장'(P.Oxy.), '원정' expedition을 의미한다.||2. 70인역본 및 유대교의 용법.||(a) 명사 아포스톨레는 70인역본에서 12회 나오며, 항상 샬라흐(보내다, 내뻗다, 풀어주다, 해방하다) 어군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왕상 9:16에서 '선물'을, 전 8:8에서 '해방, 면제'를, 시 78:49에서 '벌하는 사자'를 '보내는 것'을 나타낸다.|유대교에서는 아포스톨레는 '공물' tribute, 선물, 선물의 급송을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아포스톨레는 신약성경에서 4회 나오며, '그리스도의 사도의 직분이나 직무'를 가리킨다.||(a) 행 1:25에서 디아코니아($1248)와 함께 나타낸다: "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자를 보이시옵소서 유다는 이를 버리옵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 하고".||(b) 롬 1:5에서 카리스($5485)와 함께 나타난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케 하나니".||(c) 고전 9:22과 갈 2:8에서 단독으로 나타난다.|① 고전 9:2,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찌라도 너희에게는 사도니 나의 사도 됨을 주 안에서 인친 것이 너희라".|② 갈 2:8,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에게 사도로 삼으셨느니라".|(참조: K. H. Rengstore; Walter Bauer; J. H. Thayer).
보내던 사람
ajpovstolo"
사도 apostole||#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아포스톨로스(Lysias, Demosth.)는 처음에는 동사적 형용사로 사용되었으나 후에 명사로 사용되었다.||(a) 아포스톨로스($652)는 '보내다'를 뜻하는 동사 아포스텔로($649: 보내다)에서 유래되었으며, 그 기본적 의미는 '보내심을 받은 자'이다.||(b) 아포스톨로스는 고전 헬라어에서 처음에 해양 언어로 발견되는데, 화물선이나 보낸 선단, 후에는 원정 함대의 함장이나 해외로 임무를 위해 '파견된 자'나 원정대, 또는 일단의 식민 개척자들을 의미하였다.||(c) 아포스톨로스는 헤로도투스의 두 구절에서만 한 인격으로써 '사절, 대사, 특사'에 대하여 사용되었다. 그는 Alyattes가 Miletus에게 보낸 사자와 같은 메시지의 전달자를 말한다(1.21).||(d) 아포스톨로스는 파피루스에서 나일강의 배로 운반되는 정부의 곡물 창고로부터 알렉산드리아로 보내는 곡식의 선적량을 지시하는 공식 서류인 나타내는 전문 용어이다. 아포스톨로스는 여권, 안전 통행증, 또는 심부름꾼이 떠나려 할 경우의 출국 허가서(P.Oxy. 1271; 참조: Strabo 2.3.5), 수출 면허장을 말한다. '여권 없이 승선한(알렉산드리아에서) 사람에 대한 법적 조치가 장관의 관할 하에서 취해진다'는 규정이 있었다(Gnomon of the Idios Logos 162).||#2. 70인역본 및 구약 등의 용법.||(a) 아포스톨로스는 70인역본에서 왕상 14:6에 한번 샬라흐의 역어로 나오며, 여로보암의 아내에게 신적인 메시지를 전달한 아히야의 임무를 서술하는데 사용되었다.|대하 17:7-9에 의하면 이 보냄을 받은 자들은 단순한 사절이 아니라 책임있는 직무, 즉 어떤 사람의 권한을 위임받은 대표를 말한다. 그의 행위는 "보낸 사람"에 의해 결정된다. 이 점에서 당사자(보낸 사람)과 그 대리인은 동일하다: "어떤 사람의 샬리아흐는 그 사람 자신과 같다. 그러므로 사자는 자신에게 사명을 준 사람의 대리인이 된다(참조: 삼상 25:40 이하; 삼하 10:4, 6). 사자나 그에게 사명을 준 사람의 인격에는 관계 없이 그리고 심지어 임무에도 관계 없이 샬리아흐라는 말은 '전권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 행동하는 사람'을 의미한다(참조: W. Schmithals). 이 규칙이 종교적인 영역에까지 적용된다. 샬리아흐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행할 때 그것은 아브라함, 엘리야, 엘리사의 경우(Midr. Ps. 78 5; 173b)에서처럼 하나님 자신이 행하시는(b. B. Mes. 86b) 것과 같다. 랍비들은 희생 제물을 바치는 제사장들을 "우리가 행할 수 있는 것 이상을 행하는" 하나님의 샬리아흐로 생각했으며(b. b. Qidd. 23b; 참조: Rengstorf), 속죄의 날에 그들은 대제사장을 "하나님 앞에 있는 백성들의 대표자"로 불렀다(m. Yoma 1. 5; m. Git. 3.6). 회당 기도회의 인도자는 공동체의 샬리아흐였다. 랍비들은 고국의 유대인들과 디아스포라(diaspora) 유대인들을 시찰하고 결집시키는 산헤드린의 대리자로 보냄을 받았다. 다른 한편 미쉬나와 탈무드에서 샬리아흐는 공동체를 대표하여(m. Ros, Has, 4.9), 그의 선거인들에 의해 권한을 부여받는다. 이러한 사실들은 신약성경의 사도의 의미에 영향을 주었다.||(b) 요세푸스는 이 단어를 사명을 받고 파송된 사절단에 대하여 사용하였다(로마에 보낸 유대인들).||(c) 아포스톨로스는 아마도 후대 영지주의적 계통에서 신적 계시의 중재자로서의 '사자'라는 동방적인 개념을 지니게 되었는데, 그들의 학설에서 그 단수로는 '천상의 구세주'를, 복수로는 '수많은 구원자들' 즉 '영적인 사람들'을 표현하는데 사용했다.||#3. 신약성경의 용법.||아포스톨로스는 신약성경에서 80여회 나타난다.||(a) 신약성경에서는 고전 헬라어의 경우와는 달리, 아포스톨로스라는 말이 오직 '사자'라는 일반적인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무엇보다 하나의 특정한 직무 즉 원(原) 사도직에 대한 확고한 명칭으로 사용되었다.|눅 6:12-눅 6:13, "12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맟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13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 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그리스도께서는 그를 따르고, 그의 삶을 함께 나누고, 그에게 속한 제자들 중에서, 특별한 방식으로 그를 대표하고, 그와 보다 더 친밀하게 교제하고, 그럼으로써 특별한 권한을 가지게 될 열 두명을 선발하셨다. 그 당시에는 단지 샬리아흐라는 단어 자체가 그들이 합당한 권세를 지닌 사절이나 대리인이 될 것이라는 것을 나타낼 뿐, 그들의 역할에 대하여 아무 것도 말씀하시지 않으셨다.|그 역할에 대해서는 막 6:7에서 잠시 동안 갈릴리에서 제자들을 전도를 위해 보내실 때에 말씀하신다: "열 두 제자를 부르사 (그들)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세를 주시고"(참조: 마 10:1-마 10:2). 사도들은 그들이 배치될 때에 예수님의 엑수시아(권세)와 함께 그들의 사명을 수행하도록 준비되었다. 여기에서 이미 우리는 그리스도교의 사도직의 본질적인 특성을 보게 된다.||(b) 사도는 경건한 사람이며 예수님에 의해 다른 사람들 중에서 선택되어 부름받은 자이다; 이것은 사도는 예수님의 처지를 공유하고 그의 재산과 그의 직업과 그의 가족을 포기하며, 그의 잔을 마시고(마 20:23) 이와 함께 주님께서 받으시는 세례(침례)를 받게 될 것이라는 것(막 10:39)을 포함한다. 누가는 "예수님께서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셨다"(행 1:2; 참조: 요 15:16; 요 15:19)고 주장한다. 바울은 항상 대리자로서의 그의 권위의 정당성을 주장한다: 즉 (하나님의) 부르심에 의한, 즉 소명에 의한 사도(롬 1:1)이다. 되풀이하여 나타나는 문구는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고전 1:1; 고후 1:1; 골 1:1; 엡 1:1)이다. 속격 크리스투(벧전 1:1)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으로 명백히 설명되고 하나님의 뜻(델레마)으로 보강된, 소유와 기원에 대한 속격(참조, 롬 1:5)이다. 사도의 사명의 합당함을 위해 더 이상 확실한 근거는 있을 수 없다: 그 위임은 하나님으로부터 온다.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및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된"(갈 1:1) 것이다. 이러한 위임은 공적이며 영속적이다.||(c) 사도는 본래 어떤 누군가에 의해서 다른 누군가에게 보내어진 사람이다. 그 목적은 다소 세속적일 수 있다; 대리자나 대표로서 '아포스톨로스는 그를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다'(요 13:16);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보낸 자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다"(요 13:20). 한 사람이 살리아흐를 대하는 태도는 실제로 보낸 사람을 향한 것이다. 사도의 사명은 우선 첫째로 전도하는 것이지만 또한 교회들을 세우고(고전 9:2), 죄를 용서하며(요 20:23), 성령을 전하고(행 8:18), 집사를 안수하고(행 6:6), 장로들을 세우는 것(딛 1:5)이다. 만약 필요하다면 다른 청중도 열거된다: 베드로는 할례자에게 보내어지고(갈 2:7),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보내어진다(롬 11:13; 참조, 고후 10:13-고후 10:16).||(d) 하나님의 구원 계획 속에서의 이러한 역할을 위해서는 사도에게 능력과 권위가 부여될 필요가 있다(눅 24:49; 살전 1:5).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성령과 마귀를 억제하는 엑수시아(권세)를 주셨다. 그리스도의 후계자 또는 대리자로서 사도들은 순회하는 전도자로서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권위를 지닌 공동체의 우두머리로서 살아간다: "사도들로 인하여, 보다 더 정확하게는 하나님의 능력으로(고후 6:7)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났다"(행 2:43; 행4:33; 행 4:37; 행 5:12). 실제로 그들은 그들의 주님으로부터 받은 말씀만 전하였기 때문에(살전 2:13-"너희가 우리에게 들은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것은 사도들의 가르침과 약속들이 매우 신뢰할 만한 것임을 증명한다 (벧후 3:2; 유 17). 그들은 이것을 깨닫고 있었으며(바울이 말씀을 전할 때에 "성령의 능력의 증거"가 함께 했다[고전 2:4-고전 2:5;참조, 행 4:7-행 4:33]), 비록 그들이 만물의 페립세마("찌꺼기")로 여겨진다 할지라도(고전 4:13) 그들 스스로 지도자에 어울리게 처신한다. 그들은 특별한 특권을 주장하지 않는다; 그들은 종이다(요 13:12-요 13:17; 눅 22:25-눅 22:27).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왕국에서 최고의 계급이다. "거룩한 사도들은"(엡 3:5; 계 18:20) 하나님께 완전히 바쳐진 자들이므로 아포스톨로스는 영예로운 칭호이다("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로라"[고전 15:9]; "그리스도의 사도로 능히 존중할 터이나"[살전 2:6]).||(e) 신약성경에는 높은 사도들이 있고 두 번째 가는 지위의 사도들이 있다.|① 누가는 열 두 제자들을 사도로 알고 있다: 눅 6:13("열 둘"). 마 10:2은 열 두 사도를 열거한다. 막 3:13-막 3:19에서 셈족의 어투로 된 '에포이센 도데카'(문자적으로 '열 둘을 만드셨다')는 참으로 예수님 자신께서 새 이스라엘을 통치하시기 위해 열 두명의 성직자회(college)를 세우셨다는 것을 확증한다. 이들은 그가 소유하신 능력을 부여받은 대리자, 대표, 전권 대사들이다: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 하시니라"(참조: 눅 10:16; 마 10:14). 교회를 다스릴 때에(참조, 마 19:28; 눅22:28-눅 22:30), 쿰란(Qumran) 공동체를 다스리던 "열 두 사람과 세 명의 제사장"보다 나은 이 사도들은 "기둥들"(갈 2:9), "유명한 자들"(갈 2:2; 갈 2:6)이며 영원히 지속되도록 세워진, 그리스도와 연합한 정통 신앙의 재판관이자 보증인이다. 그들은 "어린 양의 십 이 사도"들이다(계 21:14).||여기서 우리는 바울의 사도직에 관해 생각해 볼 필요를 느낀다. 골 1:1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바울과 디모데는" 하며, 그의 서신을 시작한다. 여기서 바울은 그 말의 가장 높은 의미, 곧 보다 제한적인 의미로 자신의 사도직에 대한 주장을 공포한다. 그는 자신을 예수님과 직접적인 관계를 가졌던 12제자들의 반열에 선 사도로 간주한다.|바울은 최초의 12 사도에 속하는 사도가 아니다. 사도직의 자격 중 하나는 예수님을 목격하는 것이다. 그도 역시 부활하신 주님을 보고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들었다(고전 9:1; 고전 15:8-고전 15:9). 하나님은 그에게 그의 사도직을 입증할 기적적인 능력을 주셨다(고후 12:12; 히 2:3-히 2:4). 그가 세운 교회들은 그의 사도직에 대한 봉인이 되었다(고전 9:2). 그리고 그의 몸에는 사도로서 복음을 전하다가 박해를 받은(고전 15:10), 표적인 예수님의 흔적이 있었다(갈 6:7).|제자들의 특별한 경험과 비교할 때 바울도 복음 전파를 위해 그리스도께서 직접 개인적으로 보낸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행 26:15-행 26:19; 갈 1:11-갈 1:17). 그는 예수님이 부활하여 살아서 축복하고 다스리심의 인격적 경험이 입증하는 특권에 그들과 함께 참여하였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도의 부활의 사실에 대한 선택된 증인들인 원 사도들과 동등함을 주장한다.|바울의 전(全)기독교 사상은 예수 그리스도가 그에게 실제로 나타났었던 그 경험과 확신 위에 세워졌다. 다메섹 도상에서 본 그 환상은 그의 생애에 대변혁을 일으켰다.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의 주님을 보고 주님의 입술로부터 그의 임무를 받았기 때문에 그는 그리스도의 사도이다.|그의 사도직과 그 권위에 대한 주장은 그의 제자 디모데에 관한 묘사에서도 나타난다. 바울은 자신을 "사도"로 묘사하는 반면 디모데를 "형제"라고 묘사한다(참조: 롬 16:23; 고전 1:1; 고전 16:12). 이것은 일반적 의미로 디모데가 사도이지만(참조: 살전 2:6), 그러나 바울과 동일한 사도가 아님을 나타낸다(참조: H. M. Carson).||바울은 그의 서신의 서언에서 항상 그의 사도적 권위를 말하지 않았다. 그의 최초기 서신, 곧 데살로니가에 보낸 서신들에는 이러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빌립보 교인들에게 보낸, 사랑의 교제를 나누었던 즐거운 서신에서 그는 그의 권위를 주장할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 중에 아무도 그것을 전에 부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빌레몬에게 보낸 개인 서신에서 우정은 최상이며, 그가 말한 것과 같이 매우 대담하게 명령할 수 있을지라도, 그는 도리어 간청하며 사도로서 명령하지 아니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갇힌자로서 호소한다.|그는 그의 다른 서신들에서 그의 사도권에 관한 언급을 골로새서처럼 전면에 두지 않는다. 그리고 기억할 것은 갈라디아 교회에 보내는 서신에서 사도권과 그 토대가 하나님의 뜻으로 인한 것임을 매우 강하게 강조한다는 것이다. 거기서 그는 다른 어떤 곳에서 반대를 받은 것보다 더 반항적인 반대를 받았던 것이다.|한편 골로새서의 경우 그가 자신의 권위를 그렇게 강력히 주장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그는 개인적으로 알지 못하는 그의 독자들로 하여금 자신이 전하는 말이 주님의 명령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자신의 권위를 분명히 밝혀둘 필요가 있었다.|따라서 그의 말은 초대 교회 당시에 활동하였던 한 위대한 선교사 개인의 견해 이상의 권위를 갖게 된다. 즉 그는 하나님께서 임명하신 그리스도의 대변자로서의 권위를 갖고 있었다. 골로새 교인들은 이러한 바울의 서신을 읽을 때, 그 말씀을 단순한 인간 바울의 말로 받아들여서는 안되며, 사도 바울의 말, 즉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한다.|'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사도가 되었다'는 선포에 포함된 사상은 '나는 하나님께서 나를 보내셨기 때문에, 사도로서 너희에 말한다. 나는 나의 결정(의지)이나 나의 공로로 말미암은 사도가 아니다 나는 사도라 칭함을 받을 가치도 없다. 너희들과 같이 초라한 죄인이며, 하나님은 순전한 자비와 사랑의 이적으로 이 입에 그의 말씀을 두셨다. 하나님은 나를 통하여 말씀하신다. 내가 전하는 말씀은 나의 것도 아니고 어떤 다른 사람에게서 배운 것도 아니고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의 숨결이 음악을 만드는 깨진 파이프에 신경을 쓰지 말고 그 음악에 귀를 기울이라'는 것이다.|그러므로 바울은 자기의 메시지에 대하여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그의 권위에 대한 단호한 주장은 깊은 겸손과 연합되어 있었다. 소수의 기독교 교사들은 바울 처럼 강직한 성격을 가지거나 계속적으로 두드러진 경험을 가진다. 그러나 그가 전하는 말씀에 수반되기를 기대하는 영향력은 전적으로, 자기를 통해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 말씀에 있는 것이다.||② 다음으로 아포스톨로스는 '보냄 받은 자' 곧 '사자'(使者)라는 일반적 의미로 사용된 실례는 적지 않다. 고전 15:5-고전 15:8에서 부활하신 주님께서 먼저 게바에게 나타나시고 다음은 열 둘(제자)에게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 나타나시고 맨 나중에 나에게 나타나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열 두 제자들 다음에 언급한 이들 아포스톨로이(사도들)는 신적으로 사역자로 임명될 수 있으며 교회의 공적인 성직자들 중에서 첫 번째로 명기된 카리스마를 지닌 자들인데(고전 12:28-고전 12:31; 엡 4:11), 성직과 은사 사이에는 아무런 갈등을 찾아볼 수 없다. 그들을 익명으로 한 것은 행 15:4; 행 15:6; 행 15:22; 행 15:23; 행 16:4에서 막연한 교회와 관계가 있는 "사도들과 장로들"의 경우와 같다. 그렇지만 우리는 바울의 협력자인 바나바(행 14:4; 행 14:14; 고후 12:7)와 에바브로디도(빌 2:25). 디모데와 실루아노(살전 2:6), 디도(고후 8:23)와 사도들 중에서 유명한 안드로니고와 유니아 같은 특별히 열심있는 전도자들을 알고 있다.||③ 항상 불충성한 청지기가 있는 것처럼 편견으로 굳어진 유대인 그리스도교 전도자들이 있었으며, 그들은 사도의 칭호를 자랑하고 그들의 명성을 선전하였으니, "지극히 큰 사도로" 여긴 것이다(고후 12:11). 이들 "지극히 큰 사도들"(고후 11:5)은 "거짓 사도들"이다(고후 11:13). 에베소 교회는 그들의 정체를 밝힘으로 칭찬받는다: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계2:2).||(f) 히 3:1에서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히 3:1)고 말한다. 이 구절은 그리스도를 아포스톨로스라고 묘사한 유일한 구절이다(before Justin, 1 Apol. 1.12). 아마도 여호와의 천사, 사자, 광야를 지날 동안 이스라엘을 인도한 안내자(출 14:19; 23:20, 23; 32:34; 33:2; 민 20:16), 그의 백성을 위하여 사람의 형상을 입으신 하나님의 돕는 자에 대한 언급일 수도 있다. 우리는 또한 이스라엘을 인도하기 위해 그들 가운데서 선택받았으나, 아들처럼 하늘에서 오신 자가 아닌 모세와는 명백히 다르다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히브리서의 기자는 그리스도가 최초의 으뜸가는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은 받으신" 분이라는 요한복음의 전통의 영향을 보여주고 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요 17:3; 요 17:18; 요 20:21; 요일 4:10).|요 9:7의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를 주목하라. 그 복음서 기자는 운하 또는 물을 "보내는"을 의미하는 명사 살르아흐(실로암)를 수동 분사로 표현하여 그것을 고유의 이름으로 간주하고(참조, 사 8:6이하; 창 49:10, 히브리어 실로; 창세기에서 메시아에 대한 해석으로 주어짐. Rab. 98.13; 99.10; Tg. Onq.), 그 이름을 "보내신 이", 즉 예수님에 대해 환칭으로 사용한다(요 3:17; 요 3:34; 요 5:36; 요 7:29). 더욱이 히 3:1에서의 사도와 대제사장과의 결합은 예수님의 신성한 사명은 하나님 앞에서 인간을 대표하고 믿는 자들에게 변호를 위임받은 자, 변호자(요일 2:1), 샬리아흐가 되며 하늘의 지성소에서 그들을 위하여 끊임없이 중보하는 것이다(요 14:13-요 14:14). 그의 "사도직"은 그의 영속하는 제사장직이다.|(참조: C. SpicQ, TLNT; C. Brown; K. H. Rengstorf).
아포스토마티조
ajpostomativzw
면밀히 질문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아포스토마티조(Plat., Euthyd.)는 아포($575)와 스토마($4750: 입)에서 유래했으며, 본래 '말하다' to speak를 의미한다.||(a) '구술이나 받아쓰기로 가르치다, 반복하여 기억하다, 기억으로 암송하다'(Plat. Euthyd.).||(b) '면밀하게 질문하다, 심문하다'(L-S-J; Plat.)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아포스토마티조는 신약성경에서 눅 11:53에 한번 나오며, '면밀히 질문하다'를 의미한다: "거기서 나오실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맹렬히 달라붙어 여러가지 일로 힐문하고".|(참조: Walater Bauer; J. H. Thayer).
도로 …꽂다
ajpostrevfw
외면하다, 돌리다, 돌이키다, 거절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아포스트레포(Homer 이래)는 아포($575)와 스트레포($4762: 돌리다, 돌아서다, 바꾸다)에서 유래했으며,||(a) '외면하다, 돌리다, 떠나다',|(b) '되돌리다, 돌려주다',|(c) '스스로 돌이키다, 되돌아가다',|(d) '거절하다, 거부하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아포스트레포는 신약성경에서 9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아포스트레포는 '외면하다, 떠나게 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① 딤후 4:4, 귀를 진리에서 '돌이키는 것'을 나타낸다: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② 롬 11:26에서 야곱으로부터 불경건한 것을 떠나게 하는 것(제거)을 나타낸다: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기록된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치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③ 눅 23:14에서 백성을 '돌리거나 돌아서게 하는 것(유혹)'을 나타낸다: "이르되 너희가 이 사람을 백성을 미혹하는 자라 하여 내게 끌어 왔도다 보라 내가 너희 앞에서 사실하였으되 너희의 고소하는 일에 대하여 이 사람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고".|④ 딛 1:14, "유대인의 허탄한 이야기와 진리를 배반하는 사람들의 명령을 좇지 않게 하려 함이라". 여기에서 '진리에서 떠나거나 돌이키다'는 의미를 지니지만 거절하거나 배반한다는 의미를 함축한다.|⑤ 딤후 1:15,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린 이 일을 네가 아나니 그 중에 부겔로와 허모게네가 있느니라". 여기서 '거절하여 돌아서거나 떠난 것'을 나타낸다.||(b) 아포스트레포는 '돌려주다, 되돌리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① 마 26:52에서 칼을 칼집으로 되돌리는 것을 나타낸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검을 도로 집에 꽂으라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② 마 27:3TR에서 은돈을 '돌려주는 것'을 나타낸다: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c) 아포스트레포는 '돌이키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하나님이 그 종을 세워 복 주시려고 너희에게 먼저 보내사 너희로 하여금 돌이켜 각각 그 악함을 버리게 하셨느니라"(행 3:26).||(d) 아포스트레포는 '거절하다, 거부하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① 마 5:42에서 요구에 대해 '거절하는 것'을 나타낸다: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② 히 12:25에서 '거절하다'를 나타낸다: "너희는 삼가 말하신 자를 거역하지 말라 땅에서 경고하신 자를 거역한 저희가 피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하늘로 좇아 경고하신 자를 배반하는 우리일까보냐".|(참조: G. Bertram)
아포스튀게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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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어하다, 혐오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아포스튀게오(trag.; Hdt. 등)는 아포($575)와 스튀게오(%327: 미워하다)에서 유래했으며, '싫어하다, 혐오하다'(Hdt. 2, 47; 6, 129; Soph., Eur., al.)를 의미한다. 이 단어에서는 아포를 분리를 나타내는 것으로 보고(참조: 라틴어 reformidare), 다른 학자들은 아포를 강의 접두사로 본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아포스튀게오는 신약성경에서 롬 12:9에 한번 나오며, '혐오하다'란 의미로 사용되었다: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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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당에서 추방된||#1. 헬라어 문헌 및 70인역본의 용법.||형용사 아포쉬나고고스는 아포($575)와 쉬나고게($4864: 집회, 회중, 회당)에서 유래했으며, '회중에서 추방된, 파문당한, 출교한, 회당에서 추방된'을 의미한다. 고전 헬라어 문헌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2.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아포쉬나고고스는 신약성경에서 요한복음에만 3회 나오며, '회당에서 추방된'이란 의미로 사용되었다.|① 요 9:22, "그 부모가 이렇게 말한 것은 이미 유대인들이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는 출교하기로 결의하였으므로 저희를 무서워함이러라".|② 요 12:42, "그러나 관원 중에도 저를 믿는 자가 많되 바리새인들을 인하여 드러나게 말하지 못하니 이는 출회를 당할까 두려워함이라".|③ 요 16:2, "사람들이 너희를 출회할 뿐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 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라하리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작별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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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지다, 작별하다, 버리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아포탓소는 아포($575)와 탓소($5021)에서 유래했으며,||(a) '대리로 세우다, 임명하다'(Aristot.), '할당하다'(Polyb.), '곁에 두다', '따로 떼어두다'(Jos. Ant.), '분리하다',||(b) 중간태로, '분리하다, 헤어지다, 버리다, 떠나게 하다, 포기하다'를 의미한다(G. Delling).||#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아포탓소는 신약성경에서 6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아포탓소는 '헤어지다, 작별하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① 막 6:46, "무리를 작별하신 후에 기도하러 산으로 가시다".|② 눅 9:61, "또 다른 사람이 가로되 주여 내가 주를 좇겠나이다 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케 허락하소서".|③ 행 18:18, "바울은 더 여러 날 유하다가 형제들을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갈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바울이 일찍 서원이 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④ 행 18:21, "작별하여 가로되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하고 배를 타고 에베소를 떠나".|⑤ 고후 2:13, "내가 내 형제 디도를 만나지 못하므로 내 심령이 편치 못하여 저희를 작별하고 마게도냐로 갔노라".||(b) 아포탓소는 '버리다, 포기하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와 같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 14:33).|(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G. Delling).
장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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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하다, 이행하다, 성취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아포텔레오(Hdt., Xen. 이래)는 아포($575)와 텔레오($5055: 끝내다, 완성하다)에서 유래했으며,||(a) '완성하다, 완전히 끝내다(미치다)', 탑을 완성하거나 모든 말을 끝내는 것에 대해 사용되었다.||(b) 시작에 대한 특별한 언급없이 '행하다, 이행하다, 성취하다'(Pla., Gorg. Xen. 등).||#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아포텔레오는 신약성경에서 2회 나오며 (b)의 의미로 사용되었다.||(a) 눅 13:22에서 아포텔레오는 치유하는 일을 '행하는 것'을 나타낸다: "가라사대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낫게 하다가 제 삼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하라".||(b) 약 1:15에서 아포텔레오는 죄가 그 목적을 '성취하는 것'을 나타낸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참조: Walter Bauer; J.H. Thayer; EDNT).
아포티데미
ajpotivqhmi
벗어버리다, 버리다, 집어넣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아포티데미(Homer 이래)는 아포($575)와 티데미($5087)에서 유래했으며,||(a) '벗어버리다', 비유적 의미로 '버리다, 벗어나다',|(b) '떼어두다, 비축하다, 저장하다, 집어 넣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아포티데미는 신약성경에서 9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아포티데미는 행 7:58에서 옷을 '벗어 두다'를 의미한다: "성 밖에 내치고 돌로 칠쌔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앞에 두니라".||(b) 아포티데미는 마 14:3에서 옥에 '집어 넣다'를 의미한다: "전에 헤롯이 그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로 요한을 잡아 결박하여 옥에 가두었으니".||(c) 아포티데미는 '벗어버리다'를 의미한다.|① 롬 13:12,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② 엡 4: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③ 골 3:8,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버리라 곧 분과 악의와 훼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④ 히 12: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d) 아포티데미는 '버리다'를 의미한다.|① 엡 4:25,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② 약 1:21,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 버리고 능히 너희 영혼을 구원할 바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③ 벧전 2:1,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