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해설 48 페이지 > 기독정보닷컴

아랍스
#Aray
아라비아인 Arabian.||아랍스는 아라비아인을 의미하며, 신약성경에서 행 2:11에 한번 나온다: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아르게오
ajrgevw
게으르다, 지체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아르게오(Soph. 이래)는 아르고스($692: 활동하지 않는, 게으른)에서 유래했으며, '게으르다, 중지 또는 휴지하다, 꾸물대다, 지체하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아르게오는 70인역본에서 6회 나오며, 히브리어 비탈(988: 그만두다, 중지하다)의 역어로 사용되어 '그치다'(전 12:3)를 나타낸다. 그리고 마카베오이서 5:25에서 '쉬다'(rest)는 의미로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아르케오는 신약성경에서 벧후 2:3에 한번 나온다: "저희가 탐심을 인하여 지은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를 삼으니 저희 심판은 옛적부터 지체하지 아니하며 저희 멸망은 자지 아니하느니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G. Delling).
게으름 장이
ajrgov"
무익한, 일없는, 게으른.||#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아르고스(Aeschyl., Hdt. 이래)는 '활동하지 않는, 게으른'을 의미하며,||(a) '게으른, 일이 없는, 실직한, 소용없는, 무익한, 쓸모없는',|(b) '행동할 수 없는'이란 의미로 사용되었다.||#2.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아르고스는 신약성경에서 8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마 12:3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여기에서 아르고스는 '무익한'을 의미하며, 무익한 말은 사실은 유해한 말이다.||(b) 아르고스는 '실직한, 일이 없는'을 의미한다.|① 마 20:3, "또 제 삼시에 나가보니 장터에 놀고 섰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② 마 20:6; 마 20:7, "6 제 십일시에도 나가 보니 섰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7 가로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섰느뇨 가로되 우리를 품군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가로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c) 아르고스는 '게으른, 일하지 않는'을 의미한다.|① 딤전 5:13, "또 저희가 게으름을 익혀 집집에 돌아 다니고 게으를뿐 아니라 망령된 폄론을 하며 일을 만들며 마땅히 아니할 말을 하나니".|② 딛 1:12, "그레데인 중에 어떤 선지자가 말하되 그레데인들은 항상 거짓말장이며 악한 짐승이며 배만 위하는 게으름장이라 하니".||(d) 아르고스는 '쓸모없는'이나 '가치없는'을 의미한다: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 것인줄 알고자 하느냐"(약 2:20).||(e) 아르고스는 '무능한, 무력한'을 의미한다: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벧후 1:8).|(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G. Delling).
은의
ajrguvreo"
은으로 만든 made of silver.||#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알귀레오스는 알귀로스($696: 은)에서 유래했으며, '은으로 만든, 은의'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알귀레오스는 신약성경에서 3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행 19:24에서 알귀레오스는 우상숭배와 관련되어 있다: "즉 데메드리오라 하는 어떤 은장색이 아데미의 [은]감실을 만들어 직공들로 적지 않은 벌이를 하게 하더니".|계 9:20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재앙에 죽지 않고 남은 사람들은 그 손으로 행하는 일을 회개치 아니하고 오히려 여러 귀신과 또는 보거나 듣거나 다니거나 하지 못하는 금, [은], 동과 목석의 우상에게 절하고".||(b) 딤후 2:20에서 알귀레오스는 큰 집에 있는 '은' 그릇에 대해 사용되었다: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참조: J.G.Baldwin; J.H.Thayer).

ajrguvrion
은 silver.||#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알귀리온(Hdt.이래로)은 알귀로스($696: 은)에서 유래되었으며, '은, 돈, 은전'이란 의미로 사용되었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알귀리온은 70인역본에서 매우 많이 사용되었으며, 주로 히브리어 케세프(은, 은으로 된 돈)의 역어로 사용되었다.||케세프는 새로이 채굴되어 제련된 은(잠 25:4; 잠 26:23; 겔 22:18), 그릇, 나팔, 우상을 만들기 위한 재료로서의 은(창 44:2; 창 24:53; 민 10:2; 출 20:23; 사 2:20)을 의미한다. 은은 성경에 교환의 매개물로서 처음 언급되었으며(창 23;15), 구약성경에는 이러한 용법이 종종 나타난다. 이 단어는 (판매의) 가격(레 25:50)에 대해 사용되었다. 그러나 은은 귀금속으로서도 사용되었고(출 2:22; 아 1:11), 때로 우상을 만드는데 쓰이기도 했다(삿 17:3).||은을 캐는 일은 욥 28:1에 언급되어 있고, 은은 순수한 형태로 발견되기 보다는 흔히 다른 금속과 섞여 있었기 때문에 꼭 정련을 필요로 했으며, 따라서 하나님이 인간의 마음을 정련하는 과정을 상징하게 되었다(사 1:25; 슥 13:9; 말 3:3).||은은 거래의 통상 기준이 되었다. 모세 시대에 있어서 두 세겔은 수양 한 마리의 가격이었다(레 5:15). 은으로 된 동전은 주전 670년 초에 그리스에서 통용되었다. 구약성경에서는 은으로 만든 동전에 대하여 명백한 언급이 없으나, 바사의 금으로 된 다릭은 스 8:27에서 언급된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알귀리온은 신약성경에서 21회 나온다.||(a) 마 25장에서 알귀리온은 게으른 종, 주인의 돈에 대한 취급과 관련하여 사용되었다.|마 25:18,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마 25:27,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 하고".|눅 19:15; 눅 19:23에서도 유사한 내용이다.||(b) 마 26:15; 마 27:3이하에서 알귀리온은 예수님이 팔린 값에 대해 사용되었다.||(c) 마 28장에서 예수님 시대의 종교 지도자들이 무덤을 지키던 군병들에게 준 돈에 대해 사용되었다.|마 28:12, "그들이 장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하고 군병들에게 [돈]을 많이 주며"(병행구, 눅 22:5).|마 28:15, "군병들이 [돈]을 받고 가르친 대로 하였으니 이 말이 오늘날까지 유대인 가운데 두루 퍼지니라".||(d) 눅 9:3에서 알귀리온은 전도자의 소지품과 관련하여 사용되었다: "이르시되 여행을 위하여 아무것도 가지지 말라 지팡이나 주머니나 양식이나 [돈]이나 두 벌 옷을 가지지 말며".||(e) 마 26:15에서 알귀리온은 남을 타락시키기 쉬운 것이고 부정부패의 잠재적인 근원이다: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 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f) 벧전 1:18에서 알귀리온은 삶의 무가치한 목표이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참조: 약 5:3).|사도행전에서도 나타난다(행 3:6; 행 7:16; 행 8:20; 행 19:19; 행 20:33).|(참조: J.G.Baldwin; J.H.Thayer; G.L.Archer).
은 장색
ajrgurokovpo"
은 세공장이.||#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아르귀로코포스(Plut.)는 아르귀로스($696: 은)와 콥토($2875: 치다, 강타하다)에서 유래했으며, '은을 치는 자', 곧 '은 세공장이' a silversmith를 의미한다. 행 19:24.||#2. 70인역본의 용법.||아르귀로코포스는 70인역본에서 삿 17:4와 렘 6:29에서만 나오며, 히브리어 차라프(녹이다, 정련하다)를 번역하여, '은장색'을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아르귀로코포스는 신약성경에서 행 19:24에 한번 나온다: "즉 데메드리오라 하는 어떤 은장색이 아데미의 은감실을 만들어 직공들로 적지 않은 벌이를 하게 하더니".|(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알귀로스
a[rguro"
은 silver.||#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알귀로스(호머로부터)는 알고스(%86: 빛나는)에서 유래했으며, '은'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알귀로스는 70인역본에서 15회 나오며, 히브리어 케세프(은, 돈)의 역어로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알귀로스는 신약성경에서 5회 나온다.||(a) 행 17:29에서 알귀로스는 우상숭배와 관련되어 있다: "이와 같이 신의 소생이 되었은즉 신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b) 약 5:3에서 알귀로스는 삶의 무가치한 목표인 것이다: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참조: 벧전 1:18).||(c) 마 10:9에서 예수를 따르는 자들은 은 없이 지내도록 요구하고 있다: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이나 가지지 말고".|(참조: J.G.Baldwin; J.H.Thayer).
아레오바고
#Areio"
아레오바고(법정) Areopagus||아레오바고는 아덴의 아크로폴리스(Acropolis)의 남서쪽의 한 언덕을 가리킨다. 그 언덕이 어떻게 그 이름을 가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두 가지 전승이 있다. 그 중 한 가지에 따르면 그곳에서 포세이돈(Poseidon)의 아들 Halirrhotios의 살해에 대한 재판을 벌인 전쟁의 신 아레스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한다. 행 17:22에 나오는 명칭이 유래했다(아레스는 로마의 신 Mars와 동일시된다). 다른 전승은 아레오바고라는 이름은 "아라이(Arai)의 언덕"을 의미한다고 이해한다. 일반적으로 퓨리에스(Furies)로 더 많이 알려진 아라이(Arai: "저주 curses")는 그녀의 일이 복수하는 살인자인 여신들이다. 만약 이 전승이 참이라면 그 이름은 매우 적절하다. 왜냐하면 아레오바고는 살인 사건을 재판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 언덕의 기슭에 그 안에 이들 여신들의 사당이 위치한 동굴이 있다. 그 여신들은 Semnai와 Erinyes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스파르타의 Pausanias는 아레오바고에서의 첫 번째 재판은 Orestes에 대한 것이었다는 전설에 대해 이야기 하는데, 그 여신들은 Orestes가 자신의 어머니, Clytemnestra를 살해한 것에 대해 저주하고 냉혹하게 고소했다.|바위를 쪼아 만든 계단은 언덕의 꼭대기까지 이르는데(높이는 약 370피트[113m]이다), 그 곳에는 역시 돌을 잘라 만든 벤치의 흔적들이 뚜렷하게 광장의 삼면을 형성하고 있다. 한 때는 그곳에 두 개의 하얀 돌도 있었는데, 그 위에 피고와 그의 고소인이 섰었다. 그것들의 명칭은 각각 "파렴치함의 돌"(the stone of shamelessness)와 "긍지의 돌"(the stone of pride)이다. 그 언덕의 이름은 후에 그곳에서 회합을 갖는 평의회에게 주어졌다. 아레오바고의 평의회는 그들의 회합이 그 언덕에서 Royal Stoa로 옮겨졌을 때에도 이 이름을 계속 가지고 있었다. Royal Stoa는 아마도 광장(agora)에 있는 Zeus Eleutheros의 주랑(stoa)일 것이다. 그 평의회가 한 때 아크로폴리스에서도 모였다는 것을 암시한다. 아레오바고의 평의회는 원로회의와 비스하며 아덴의 왕에게 복종한다. 그것은 귀족 정치의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 아리스토텔레스는(Pol. viii. 2) 그것의 지배력의 범위를 모든 관직의 임명과 행정, 그리고 모든 소송 사건을 벌하는 권리를 포함한다고 설명한다. 비록 그 평의회가 정부에 대항하는 음모의 사건에 대한 사법권을 유지하긴 했지만, 솔론(Solon)의 개혁(594 B.C.)에 의해 아레오바고의 권한은 크게 제한되었다. Pericles의 시대에 그것의 기능은 주로 형사상의 법정에서의 역할들이었다. 게다가 그것의 역할이 하원과 시민 의회와 민중의 법정으로 옮겨감으로, 살인 사건의 재판권은 유지되었지만, 그 평의회의 세력은 줄어들었다. Demosthenes의 치하에서 그 평의회는 얼마간의 권력을 되찾았고 몇몇 관리들의 당선을 무효로 할 수 있었다. 로마 통치의 시대에 아레오바고의 평의회는 위조(문서나 지폐의) 사건과 계량의 정확한 표준의 유지, 건축의 감독, 그리고 종교와 교육의 문제에 관여하였다. 아레오바고는 소크라테스가 그의 고발자와 만나게 되는 법정이다.|사도 바울은 예수님과 부활에 관한 그의 교훈을 더 듣고자 하는 어떤 에비구레오와 스도이고 철학자들에 의해 아레오바고로 이끌려 나온다. 아레오바고라는 이름은 그 언덕이나 또는 그 평의회에 다 사용될 수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다의성은 바울이 그 언덕에서 공개적으로 연설하였는지, 아니면 평의회 앞에서 그의 종교적인 교훈에 대해 조사받았는지에 관한 논쟁을 일으킨다. Romsay(SPT)는 그들이 바울이 군중에게 연설할 수 있는 보다 더 알맞은 장소를 찾기 위한 노력으로 그를 아레오바고의 꼭대기로 데리고 갔다는 견해를 부인한다. 그는 아덴 사람들은 자존심 때문에 그들이 멸시하는 사람인 바울에게 그런 명예로운 장소에서 그들에게 연설하도록 요청하지 아니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더욱이 그는 사람은 그 언덕의 한 가운데에 설 수 없기 때문에 본문의 표현이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바울은 그가 선포한 종교적인 교의 때문에 평의회에게 조사받은 것같다. 평의회가 공개적인 가르침에 대해 행사했던 감독권은 시세로(Cicero)가 "공개적인 판결에 의하여, 그들의 젊은이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그리고 그들의 도시를 영예롭게 하기 위해서 그가 아덴에 머물도록 해달라고 요청하기 위해 아레오바고의 법정에 섰다(Plutarch Cicero 24.5)"라고 하는 진술에서 보여진다. 설사 그 평의회가 여러 다른 장소에서 모였다는 것이 인정된다 할지라도, 그 평의회의 이름을 따온 그 언덕에서 회합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이며, 이것은 바울이 아레오바고의 언덕에서 평의회 앞에 섰다고 주장하는 Wright와 몇몇 다른 이들의 견해를 그럴듯하게 만든다.|(C. H. Madvig).
아레오바고 관원
!Areopagivth"
아레오바고 법정의 위원||아레파기테스는 아레이오스($697)에서 유래했으며, '아레오바고 법정(또는 의회)의 기원'을 의미한다.|신약성경에서 아레오파기테스는 행 17:34에 한번 나온다: "몇 사람이 그를 친하여 믿으니 그 중 아레오바고 관원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도 있었더라". 바울이 아데네에서 전도할 때 아레오바고의 위원(관원)이 개종했다는 것은 바울이 위원(관원) 수가 제한되어 있고 큰 특권이 있는 의회에서 연설했다는 견해를 뒷받침해 준다. --> 디오뉘시오스($1354)|(참조: PEB).
기쁘시게 함
ajrevskeia
기쁘게 하려는 욕망 the desire to please.||#1. 고전 헬라어의 용법||명사 아레스케이아는 아레스코($700: 기쁘게 하다)에서 유래했으며, '기쁘게 하려는 욕망, 기쁘게 함'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아레스케이아는 70인역본에서 잠 31:30에서 한번 나오며, 히브리어 헨(호의, 은혜, 은총)의 역어로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아레스케이아는 신약성경에서 골 1:10에 한번 나온다: "주께 합당히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아레스케이아는 아레스코스의 태도를 나타낸다. 따라서 이 단어의 의미는 여기서 단지 암시만 되어 있는 존재에 대한 모든 종류의 기뻐하는 태도이다.|(참조: W. Foerster)
기쁘게 하다
ajrevskw
기쁘게 하려고 애쓰다, 편의를 도모하다, 기쁘게 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아레스코(Homer이래)는 '어울리다', '적합하다'를 뜻하는 어근 아르(%857)에서 유래했으며, 원래 의미는 '긍정적인 관계를 세우다'이다. 따라서 '화해하다, 화목하다', 그 다음 미학적으로 '기쁘게 하다'를 의미하게 되었다. 이 단어는||(a) '호의를 가지고 있다',|(b) '즐거운 태도를 가지다',|(c) '기쁘게 하다'와 같은 뉘앙스를 지닌다.||#2. 70인역본의 용법||아레스코는 70인역본에서 60여회 나오며, 주로 히브리어 토브(좋다, 유익하다, 기쁘다, 호의적이다, 행복하다, 옳다, 선을 행하다 등)와 그 파생어들의 역어로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아레스코는 신약성경에서 17회 나오며, 그 중 14회는 바울 서신에 나머지 3회는 마태복음, 마가복음, 사도행전에 사용되었다.|마 14:6; 병행구, 막 6:22에서 아레스코는 헤로디아의 딸이 그의 음모를 이루기 위해 헤롯 왕을 기쁘게 하는 것에 대해 사용되었다.|롬 15:1, 롬 15:2, 롬 15:3에서 바울이 세 번 이 동사를 사용한 것은 주목할 만한다. 바울은 자칭 '강한' 기독교인들이 자기를 기쁘게 하는데 관심을 가지는 것, 즉 자기 중심적인 성향을 가지는 것에 대하여 경계하였다(롬 15:10). 헤아우토이스 아레스케인(자기를 기쁘게 하는 것)이라는 어군은 "인간 존재가 전도(inversion)된 것과 하나님을 회피하는 것을 나타낸다"(O.Michel). 연약한 자가 꺼려하는 것은 강한 자가 지워준 짐이다. 만일 연약한 자가 지식에 결함이 있다면 강한 자는 사랑에 부족한 경향이 많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에 있는 식자들에게 "지식"은 교만하게 하고 '사랑은 덕을 세운다'고 경고할 필요성을 느끼었다(고전 8:1). 바로 덕을 세우는 이 사랑을 바울은 주장한다(참조: 갈 6:2). 그래서 제멋대로 자기를 신뢰하는 자세에 대하여 바울은 각 사람이 선을 이루고 덕을 세워 이웃을 기쁘게 하여야 한다고 답변한다(롬 15:2). 이것은 다른 사람의 찬동이나 인정을 바라는 자세에서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애쓰는 것을 의미하는게 아니라(참조: 엡 6:6) 하나님의 뜻을 이웃에 대한 사랑의 형태로 - 연약한 → 형제 Brother의 경우에 - 실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기독교인의 행동의 근본적인 방향은 바울이 아레스코로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서, 자기를 기쁘게 하려고 살아가지 않으셨던 그리스도 자신의 태도에 근거하고 있다(롬 15:3; 우크 헤아우토 에레센). 오히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을 향하여 기꺼이 순종하였던, 구약성경에 나온 하나님의 종의 자세를 취하셨다(시 69:9). 그러므로 아레스코(aresko)는 바울에게 있어서, 그릇된 것이든 타당한 것이든 간에, 인간의 삶에 대한 태도를 특징 지워주는 용어였다. 바울 사도는 이것을 그 자신의 경험으로 알았다. 자신의 개종을 통하여 바울은 인간의 호의를 바라는 마음에서 벗어났다. 왜냐하면 그는 주의 명령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기쁘게 하여 살기를 바란다.|살전 2:4에서 바울은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해 전도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한 것이다. 하나님의 계속적인 감찰은 사람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데 뜻을 둔 사람들에게 큰 위로가 된다. 인간은 아무리 최선을 다한다 할지라도 외적인 것을 볼 뿐이다. 그러나 아무 것도 숨길 수 없는 하나님은 중심을 보신다(삼상 16:7). (A.E.Airhart)|고전 10:33에서 바울은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며 살았다: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라".|바울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려고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목표 및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유대인이나 헬라인을 다같이 기쁘게 하며 살아가기를 추구하였다. 즉, 그는 많은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그들의 유익을 위하여 살았다(고전 10:33). 이와 같은 사상이 이 동사가 사용되지 않은 롬 12:17이하나 고전 9:22과 같은 다른 구절에서도 나타나 있다.|살전 4:1에 의하면 기독교 회중은 그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는가를 살펴봐야 한다: "종말로 형제들아 우리가 주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구하고 권면하노니 너희가 마땅히 어떻게 행하며 하나님께 기쁘시게 할 것을 우리에게 받았으니 곧 너희 행하는 바라 더욱 많이 힘쓰라".|딤후 2:4에서 아레스코는 군인의 사명을 묘사하는데 사용되었다: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참조: 고전 9:7; 빌 2:25; 몬 1:2).|현재 복무 중인 군인은 민간의 생활에 휘말려 들지 않고, 오로지 그의 지휘관을 기쁘게 하고자 한다. 따라서 그가 세상적인 행복에 대한 염려로 인하여 그리스도를 위한 자신의 일로부터 자기 자신이 이탈되는 일이 없도록 하려는 점이 독자에게 큰 감명을 준다.|이와 마찬가지로 고전 7:32에 보면 결혼에 관한 염려에 묶이지 않는 미혼자는 그의 모든 정력을 그리스도의 승인과 인정을 얻어내는데 기울일 수 있다. 그에 반해 "육신에 있는 자들은(호이 데 엔 사르키 온테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롬 8:8). 여기에서 육신(살)은 인간적인 생각에 이끌리는 자기 중심적인 존재를 의미한다. 이는 영에 의해 인도되어지는 존재와 정반대인 것이다(참조: 롬 8:4이하, 롬 8:9, 롬 8:11, 롬 8:13, 롬 8:16). 그것은 마음을 육신에 두고 있으며, 하나님을 적대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법에 복종하지 않는다는 말로 정의된다(롬 8:7). 그 끝은 사망이다(롬 8:6, 롬 8:13). 예수와 선지자들을 죽게 한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게 대적이 되었다"(살전 2:15).|(참조: H. Beitenhard; W. Foerster)
아레스토스
ajrestov"
기뻐하는, 만족한.||#1. 고전 헬라어의 용법||형용사 아레스토스는 아레스코($700: 기쁘게 하다)에서 유래했으며, '만족스러운, 마음에 드는, 기뻐하는, 기분 좋은, 기꺼이, 동의하는, 합하는'을 의미한다(피타고라스 시대에 이미 나타남).||#2. 70인역본의 용법||아레스토스는 70인역본에서 33회 나오며, 7개의 히브리어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단어들은 '정직한, 좋은, 옳은, 기쁨, 호의, 좋다, 유익하다, 호의적이다, 완고' 등을 의미한다.||#3. 신약성경의 용법||아레스토스는 신약성경에서 4회 나오며, '기쁘게 하는, 만족스러운'이란 의미를 가진다.|행 12:3에서 아레스토스는 야고보를 처형한 일이 유대인들을 기쁘게 한 것에 대해 사용되었다: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 할새 때는 무교절일이라".|그 밖의 곳에서는 아레스토스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에 대해 사용되었다. 행 6:2에서 아레스토스는 '옳은, 합하는'이란 의미를 나타낸다: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여기서 이 단어는 고전 헬라어 및 70인역본의 용법을 반영하고 있다. 요8:29에 따르면 예수님께서는 항상 하나님에게 기쁨이 되는 일, 즉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는 일을 행하였다. 아레스토스는 보냄을 받은 자와 보낸 자 간의 하나됨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왜냐하면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고, 그분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행하기 때문에 그들은 그들이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받는다(요일 3:22).*
아레다
!Arevta"
아레다 Aretas.||아레다는 왕조의 이름인듯 하다. 이는 북부 아라비아의 민족인 나바데아인들의 여러 왕들이 아레다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바데아의 수도는 바위를 깎아 만든 요세인 페트라(petra: 구약성경의 셀라)였다. 최초로 알려진 나바데아왕 아레다 1세는 B.C. 169년에 역사에 등장하며 마카베오이서 5:8에 나오는 '아라비아의 통치자'는 아레다 1세였다. 바울을 체포하기 위해 '방백'을 보내어 다메섹성을 지키게 한 왕은 아레다 1세였다(고후 11:32). 아레다왕은 헤롯 안디바스의 장인이었다. 아레다왕은 B.C. 9년에서 A.D. 39년까지 통치했다.|아레다왕은 자기 딸과 이혼하였다는 이유로 사위 헤롯 안디바스(Herod Antipas)에게 전쟁을 걸어(A.D. 36) 그의 군대를 성공리에 완전히 대패시켰다(Joseph. antt. 18, 5). 이 때문에 시리아의 총독 비텔리우스(Vitellius)는 디베리우스(Tiberius)로부터 그 전쟁에 대비하여 아레다에 대항할 군대를 출병시키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러나 그동안 디베리우스가 사망하자(March 16, A.D. 37), 그는 군대를 퇴각시켜 동계 진영으로 해산시키고 로마로 떠났다. 비텔리우스가 떠난 후 아레다는 다메섹 영토를 통치하였으며(그가 어떻게 정복하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그 성을 다스리는 한 지배자(방백)를 두었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PEB).

ajrevth
덕 virtue.||#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이레테(Homer 이래)는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a) 업적이나 타고난 재능, 또는 이 둘 모두에서 '탁월, 뛰어남'을 의미한다.|(b) '남자다움'이나 용맹|(c) 명예와 관련해서 칭찬받을 만한 '공적'이나 '행사'.|(d) 철학에서 '미덕'(virtue )|(e) 신들의 '자기 선포'. 호머는 신들의 아레테와 신들의 권능의 시위의 아레테에 대하여 말하였다.|(f) '명성'|(참조: O.Bauermfeind).||#2. 70인역본의 용법||(a) 아레테는 70인역본에서 약 33회 나오며, 히브리어 테힐라(찬양할만한 행동, 여호와의 찬양, 사42:8,12; 43:21; 63:7)과 호드(위업, 영광, 합 3:3; 슥 6:13, 2회)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이 예문들 중의 어느 한 곳에서도 이 단어를 역사상, 여호와의 사역(여호와의 사역은 특히 이사야서에서 두드러지게 묘사됨)과 관련된 구약적 개념과 다른 의미로 사용하지 않고 있으며, 따라서 헬라적 개념과는 일치하지 않는다.||(b) 아레테는 마카베오서들 특히 마카베오사서에서 자주 언급된다. 마카베오이서 6:31에서 엘리아잘(Eleazar)의 순교는, 그의 아레테(arete)를 기념하는 것이라고 지칭된다(참조: 마카베오사서 1:8,10). 마카베오사서에서 아레테는 종종 믿음에 대한 순교자들의 충절을 의미하는데 이 충절을 그들은 고난과 고문에도 불구하고 죽기까지 유지하였던 것이다(마카베오사서 7:22; 9:8,18; 10:10; 11:2; 17:12,17). 동시에 우리는 아레테에 대한 헬라적 개념을, 즉 담대함(마카베오이서 15:17), 용맹스러움(마카베오사서 17:23), 영리함(마카베오사서1:2), 또는 이성(마카베오사서 1:30) 등의 개념으로도 쓰인 예를 발견한다. 헬라적 영향은 솔로몬의 지혜서에서도 발견할 수 있으니 곧 솔로몬의 지혜서 5:13에서 덕이 악과 대조되며, 또한 솔로몬의 지혜서 4:1에서는 덕이 불멸성과 함께 결합되어 있다. 솔로몬의 지혜서8:7에서는 4가지의 플라톤적 기본 미덕들이 지칭되고 있다|(참조: H.-G Lind; A.Ringwald).||#3. 신약성경의 용법||아레테는 신약성경에서 5회 나오며, 빌립보서와 베드로전후서에만 사용되었다.||(a) 아레테는 빌 4:8에서 인간의 미덕으로써 '탁월, 우수'를 의미한다: "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바울은 '무엇에든지 참되며'라는 어구 등의 나열에서 이 단어를 '찬양(기림)'이라는 말 옆에 두는데, 만약 여기 나열된 것이 주로 종교적인 의미를 지닌다면, 바울이 마음에 두고 있는 것은 의인이 삶과 죽음에서 유지해야만 하는 '탁월'(excellence)이다.||(b) 벧후 1:5에서 아레테는 미덕, 용기, 혹은 도덕적 능력을 의미한다: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이것은 그리스도교인의 의무를 행함에 있어서 부차적으로 얻어지는 용기이다. 또한 시험을 견디는 과정에서 발전되는 도덕적 능력이다(E.R.Fuhrman).||(c) 벧전 2:9에서 아레테는 하나님의 아레테이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은, 70인역본 사 43:21의 인용이므로 목적격 복수 아레타스(aretas)는 이사야서에 나오는 바와 같이(위의 구약성경 1을 보라) 찬양할 만한 행동들(praiseworthy acts)로 번역되어야 한다. 이것들은 하나님의 과거의 백성들과 또한 새로운 백성들에 의해 선포되어야 하는 것이다.|벧후 1:3에서도 하나님의 아레테를 나타낸다: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자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본문에서는 더 많은 헬라 사상들이 나타나는 것 같다. 이곳에서는 아레테와 함께 독사(영광)와 뒤나미스(능력)가 언급된다. 이곳에서 아레테는 하나님의 완전하신 속성을 언급하는데 이 속성은 그 능력(뒤나메이스)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인간들에게 은사들을 부여하였고, 그럼으로 인하여 그들은 4절에 나타나는 바와 같이 신의 성품(데이아스 퓌세오스), 즉 하나님의 완전하신 덕에 참여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참조: 마 5:48). 여기에 신의 성품과 인간의 성품의 관련성이 있다(참조: 행 17:28).|(참조: J.H.Thayer; R.P.Martin; H.-G.Lind; A.Ringwald; O.Bauernfeind).
어린 양
ajrhvn
어린 양 lamb.||#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아렌(Homer이래)은 '어린 양'을 의미하며, 비제사적 상황에서 도살용 양에 대해 사용되었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아렌은 신약성경에서 눅 10:3에 한번 나오며, 일반 '어린 양'을 나타낸다: "갈지어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여기서 "어린 양"은 "이리"와 대조되어 있는데,|① 무방비한 제자들의 위험한 상태,|② 하나님의 보호하심에 대한 확신을 나타낸다(J.Jeremias).|(참조: Walter Bauer; J.Jeremi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