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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다
ajrnevomai
거절하다 refuse, 부인하다 deny.||#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아르네오마이(Homer 이래)는 일차적으로 `부인하다'를 의미한다. 요구 혹은 도전의 문맥에서 부인은 분명히 `거부하다, 거절하다, 사절하다'이란 의미를 분명히 내포한다(Hesiod, Works and Days, 408; Demosthenes, 18, 282). 해명을 필요로하는 문제 혹은 의문에 대한 언급과 함께, 아르네오마이는 `논쟁하다, 경쟁하다, 다투다, 부정하다, 반박하다'(Thuc.6, 60)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아르네오마이는 70인역본에서 6회 나오며, 창 18:15에서 히브리어 카하쉬를 번역하여 `논쟁하다, 부인하다'를 의미하며, 지혜서 (12:27; 16:16; 17:10)에서 `거부하다', 마카베오사서 (8:7; 10:15)에서 `포기하다, 부인하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아르네오마이는 신약성경에서 32회 나오며, 다음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a) `거절하다', 히 11:24.||(b) `부인하다', 요일 2:22, 눅 8:45, 요 1:20, 행 4:16.||(c) `부인하다, 관계를 부인하다, 제것이 아니라고 하다'.|①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것에 대해, 마 10:33; 눅 12:9; 행 3:13, 행 3:14; 유 1:4; 요일2:23; 벧후 2:1; 마 26:70; 마 26:72; 막 14:68; 막 14:70; 눅 22:57; 요 13:38; 요 18:25; 요 18:27.|②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에 대해,|딛1:16에서 행위로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을 표현한다: "저희가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치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요일 2:22에서 하나님과 그의 아들을 부인하는 것을 거짓말과 동일시한다: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뇨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뇨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이러한 부인은 지상의 예수님께서 메시야이시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공격의 초점은 참으로 영적인 구속자를 육(肉)으로 오신 분에게서 구별하는(영지주의적?) 가르침에 집중되어 있다. 그것은 예수님을 하나님에게서 떼어놓는 것이며(요일2:23), 자기 스스로 예수님의 반대편에 서는 것이고 따라서 하나님의 반대편에 선다는 것이다.|③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것에 대해, 마 10:33에서 세상에서 하나님을 부인하는 자의 종말론적 보답을 묘사한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딤후 2:12에서 주님과 친분 관계를 내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④ 비인격적 대상과 함께 `거절, 거부하다, 사절하다'.|딤전 5:8에서 믿음을 `저버리는 것'을 나타낸다: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계 2:13,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부인하는 것'을 나타낸다: "네가 어디 사는 것을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단의 위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단의 거하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계 3:8, 예수님의 이름을 `부인하는 것'을 나타낸다: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d) `자기 자신을 부인하다, 포기하다.'|눅 9:23에서 완전한 비이기적인 방식의 행위로 자기를 부인하는 것을 나타낸다: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딤후 2:13에서 자기 자신에 진실하지 않은 것을 나타낸다: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일향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딤후 3:5에서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는 것'을 나타낸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딛 2:12에서 비신앙적인 것을 `버리거나 포기하는 것'을 나타낸다: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참조: Walter Bauer ; H.-G.Link ; E.Tiedtke ; H.Schlier ).
아르니온
ajrnivon
어린 양 lamb.||#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아르니온은 아렌($704)에서 유래했으며, '작은 양, 어린 양'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아르니온은 70인역본에서 4회 나오며, 시 114:4, 시 114:6에서 벤(아들, 어린 새끼), 렘 11:19에서 케베스(어린 양), 렘 50:45에서 차이르(작은, 어린, 젊은)의 역어로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아르니온은 신약성경에서 30회, 요한의 기록에만 나오며, 요한복음에 1회, 요한계시록에 29회 나타난다.||(a) 요 21:15에서 "내 어린양들"은 예수님께서 사랑으로 돌보시는 대상인 공동체의 회중을 가리킨다: "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b) 요한계시록에서 그리스도는 아르니온(28회)으로 묘사되었다. 요한계시록에서 이러한 묘사들은 그리스도를 구속자와 통치자로 표현한다.|① 어린양은 죽임을 당함의 표시를 가지고 있으며(계 5:6; 계 5:9; 계 5:12; 계 13:8), 그의 피는 속죄를 위해 흘리셨다(계 5:9; 계 7:14; 계 12:11).|② 그러나 어린양은 사망을 이기었으며(계 5:5-계 5:6) 전능하고 전지하다(계5:6),|③ 어린양은 하나님의 통치를 넘겨 받아 책을 열고(계 5:8이하), 기도를 받으며(계 5:8이하), 평화의 나라를 세우고(계 7:9), 사탄의 권세를 정복하고(계 17:14) 심판을 행한다(계 6:16-계 6:17; 계 13:8).|④ 어린양은 만주의 주이시며 만왕의 왕으로서(계 17:14), 공동체와 함께 혼인잔치를 열고(계 19:9), 하나님의 보좌에 앉아 그의 백성들을 다스린다(계 22:1; 계 22:3). (J.Jeremias)||요약하면, 암노스 투 데우는 하나님께서 세상 죄를 지도록 정하신 하나님의 제물, 즉 그리스도를 뜻하는데 반해 아르니온은 영원하신 주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이시기도 하다라는 사실을 강조한다.|(참조: Walter Bauer; J.Gess).
밭을 갈다
ajrotrivaw
(밭을) 갈다, 경작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아로트리아오(Theophr. 이래)는 아로트론($723: 쟁기)에서 유래했으며, '(밭을) 갈다, 경작하다' to plough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아로트리아오는 신약성경에서 3회 나오며,||(a) 눅 17:7에서 밭을 가는 종에 대해 사용되었다: "너희 중에 뉘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 오면 저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할 자가 있느냐".|(b) 고전 9:10에서 밭가는 자는 소망을 가지고 간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쟁기
a[rotron
쟁기 plough||#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아로트론(Homer 이래)은 아로오(%498: 갈다)에서 유래했으며, '쟁기' a plough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아로트론은 신약성경에서 눅 9:62에 한번 나오며, 사람이 일을 시작하기 위해 쟁기를 잡는 것에 대해 사용되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하시니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빼앗기는 것
aJrpaghv
강탈, 탐욕.||#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하르파게(Aeschyl. 이래)는 하르파조($726: 붙잡다, 빼앗다, 잡아채다)에서 유래했으며,||(a) '약탈, 강탈'(Aeschyl., Thu.),|(b) '도둑질한 물건, 약탈품'(trag.; Thu.),|(c) '탐욕, 욕심'(X., Cyr.)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하르파게는 70인역본에서 9회 나오며, 히브리어 가젤(1498: 강도, 약탈)의 역어로 '강도질'(레 5:21), 트레파(2966: 찢겨진 동물이나 고기)의 역어로 '찢은 것'(나 2:13), 그젤라(1500: 전리품, 약탈품)의 역어로 '탈취한 물건'(사 3:14)을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하르파게는 신약성경에서 3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마 23:25(병행구 눅 11:39)에서 '탐욕'을 의미한다: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b) 히 10:34에서 '강탈'을 의미한다: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산업을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산업이 있는 줄 앎이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취할 것
aJrpagmov"
강탈, 붙잡음.||#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하르파그모스는 하르파조($726: 붙잡다, 빼앗다, 잡아채다)에서 유래했으며,||(a) '붙잡는 행위나 붙잡음',|(b) '강탈'(Plut.),|(c) '강탈한 물건, 노획물'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하르파그모스는 신약성경에서 빌 2:6에 한번 나오며, '붙잡는 것'을 나타낸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끌어 올리다
aJrpavzw
훔치다, 잡아채다, 데려가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하르파조(Homer 이래)는||(a) '붙잡다, 데리고(끌고) 가다',|(b) '훔치다, 강제로 취하다, 약탈하다',|(c) '잡아채다, 채가다(환상에서)'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하르파조는 70인역본에서 약 40회 나오며, 히브리어 가잘(데려가다, 강탈하다; 레 6:4; 레 19:13; 삿 21:23; 사 10:2; 미 3:2 등), 타라프(찢다, 찢기다, 갈기 갈기 찢다; 창 37:33; 시 22:13; 시 104[103]:21; 암 3:4; 호 5:14; 시 50[49]:22; 호 6:1)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이 단어는 지혜서 4:11에서 '들어올리다'(에녹에 대해)는 의미를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하르파조는 신약성경에서 14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하르파조는 '훔치다, 끌고 가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① 마 12:29,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늑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늑탈하리라".|② 요 10:12, "삯군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또 헤치느니라".||(b) 하르파조는 '강제로 취하거나 붙잡아 가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① 요 6:15,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가 와서 자기를 억지로 잡아 임금 삼으려는 줄을 아시고 다시 혼자산으로 떠나 가시니라".|② 요 10:28; 요 10:29, "28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29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③ 행 23:10, "큰 분쟁이 생기니 천부장이 바울이 저희에게 찢겨질까 하여 군사를 명하여 내려가 무리 가운데서 빼앗아 가지고 영문으로 들어가라 하니라".||(c) 하르파조는 '잡아채 가다, 데려가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① 행 8:39, "둘이 물에서 올라갈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 간지라 내시는 흔연히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여기서 하르파조는 이 땅의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것을 나타낸다. 이 일은 공간적으로, 또 실제로 행해져야 한다. 이 사건은 어구상의 상세한 내용(왕하 2:12)에 있어서조차 열왕기하 2장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은 또한 예수님께서 세례(침례)를 받으신 후 예수님을 광야로 이끌어 낸 성령과 비교되기도 한다(참조: 마 4:1, 병행구 막 1:12, 눅 4:1). 고후 12:2 이하는 전적으로 다른 개념에 근거하고 있다.||② 고후 12:2,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 사년 전에 그가 세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고후 12:4,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여기에서 하르파조는 '데려가다'는 의미에서 들리우는 것을 나타내며, 행 8:39의 경우와는 구별된다. 바울은 자기가 경험한 들림을 이러한 최고도의 무아경지의 체험과 대비시킨다. 그것은 그의 영혼이 천국으로 여행하는 것이나-그는 이 들림이 그의 몸 안에서 있었는지 몸 밖에서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또는 육체의 승천도 아니었다. 이 들림에 대한 바울의 묘사는 심히 절제된 것이어서 들림이 일어난 방법에 관하여 아무 것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이는 정확히 말하면 베일에 가리운 상태로 남아 있는 들림 과정의 본질적 특색이다'(A. Schlatter). 바울은 여기서 일시적으로 믿음에서 미래의 모습을 보는 상태로 옮겨간 사실, 즉 그가 잠간 동안 낙원을 체험한 사실에만 역점을 두고 있다.||③ 살전 4: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여기에서 하르파조는 수동태로 '이끌려 가는 것'을 나타낸다. 바울은 마지막 날에 최종적으로 들림받아 구원 받는 자들과의 교제하는 것에 대해 언급한다.||④ 계 12:5,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하르파조는 그 아이(예수)를 '잡아 채어' 하나님께로 '올려가는' 것을 나타낸다.||(d) 하르파조는 마 11:12에서 '붙잡다'나 '빼앗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많은 사람들이 마치 천국을 강제로 빼앗으려는 자들처럼 요한의 말을 들으려고 달려 갔던 것이다(참조: 마 3:5). 주님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계속 몰려오고 있다고 말씀하신다. 천국이 복음이 선포된 이래 계속해서 사람들이 그리로 몰려들고 있다. 사람들은 진지하게 마치 힘으로 빼앗으려는 자들처럼 그 축복을 얻으려고 요한의 주변에 몰려들었다(Banes Notes).|그런데 천국 자체는 그 나라의 모든 선물과 복을 붙잡을 수 있기 위해, 즉 천국을 빼앗기 위해 그들 속에 힘과 용기를 넣어준다(R. C. H. Lenski).||(e) 하르파조는 유 1:23에서 멸망의 위험에서 구해내는 것을 나타낸다: "또 어떤 자를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 또 어떤 자를 그 육체로 더럽힌 옷이라도 싫어하여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참조: 암 4:11; 슥 3:2).|(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C. Brown).
노략질하는
a{rpax
탐식하는, 약탈자.||#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하르팍스(Hes. 이래)는 하르파조($726)에서 유래했으며,||(a) '탐욕스러운, 탐식하는, 게걸스럽게 먹는',|(b) 실명사로 '강도, 약탈자, 사기꾼'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형용사 하르팍스는 70인역본에서 1회 나오며, 타라프(2963: 갈갈이 찢다, 분열시키다, 잡아 뽑다)의 역어로, '물어 뜯는' 것(창 49:27)을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하르팍스는 신약성경에서 5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하르팍스는 마 7:15에서 '탐식하는, 게걸스럽게 먹는'이란 의미를 나타낸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b) 하르팍스는 '강도'나 '약탈자'를 의미한다.|① 눅 18: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② 고전 5:10; 고전 5:11, "10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과 토색하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 하려면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 11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람하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후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토색하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③ 고전 6:10,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알라본
ajrjrJabwvn
첫회 불입금, 첫지불금, 보증금, 서약, 담보, 보증.||#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알라본은 셈어에서 차용한 상업 용어이며(lseus, Aristotle, Suidas), 다음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a) 분할불 인데 어떤 사람이 아직 지불되지 않은 어떤 것에 대한 법적 요구를 보장하는 것이다.||(b) 계약을 법적으로 유효하게 해주는 보증, 선불.||(c) 한 성경 구절 속에 나오는(창 38:17이하) 약조물(a pledge). 이 단어는 각 경우에 있어서 채an자가 수령인에게 후에 지불하겠다는 것을 보증하기 위해 주어야하는 지불 보증 물건을 의미한다(Arndt, 109). 이 단어의 비유적 용법도 가능하다. 예를 들면, 생활의 보증으로서의 숙련된 기술(Antiphon, Frag. 123, 6)이다.||#2. 70인역본의 용법||알라본은 70인역본에서 창세기 38장에만 3회 나오며, 에라본(약조물)의 역어로 사용되었다(창 38:17; 창 38:18; 창 38:20).||#3. 신약성경의 용법||알라본은 신약성경에서 바울서신에만 3회 나오며, 세 구절 모두에서 성령과 관련되어 나타난다.||(a) 엡 1:14에서 알라본은 우리에게 장차 구원의 완전한 소유를 보증하는 성령에 대하여 사용한다: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서 미래의 기업에 대한 현재적인 보증인 성령은 안전하고도 최종적인 구원 곧 하나님과의 영원한 친교를 보증해준다. 이 구절은 다음 두 구절을 설명해준다.|고후 1:22에서 성령은 신자를 인치심에 있어서 인간의 마음 속에 주어지는 하나의 보증이다: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고후 5:5,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성령의 보증에 의해 표현되고 있는 미래의 실재는 하늘로부터 오는 처소로 나타나며, 그것은 우리의 세속적인 몸인 현재의 "장막"을 대신할 미래의 우리의 거처이다. 따라서 바울에게 있어서 성령은 세상의 몸을 벗어버린 영혼의 보증이 아니라 불멸의 몸(천국의 옷)을 입을 새로운 존재의 보증이다.|그러나 알라본은 신약성경의 세 구절 모두에서 성령을 보증으로 주신다는 점에서, 하나님이 법적으로 우리의 채무자이시다라는 의미로 이해되어서는 안된다. 성령의 분할불은 인간들에게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과분한 선물인 것이다.|(참조: Walter Bauer; J.H.Thayer; O.Becker; J.Behm).
호지 아니한
a[rjrJafo"
솔기 없는, 호지 않는.||형용사 아르라포스는 라프토(%499: 꿰메다)에서 유래했으며, '꿰메지 않은, 솔기 없는'을 의미한다.|신약성경에서 요 19:23에 나오며, '솔기 없는'을 의미한다: "군병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군인들은 솔기가 없는 예수님의 속옷을 차지하려고 제비를 뽑았다. 예수님의 속옷은 통으로 짠 것이었다. 그것은 곧 대제사장의 베옷의 묘사다. 예수님은 온전한 대제사장으로 그를 통해 만인이 하늘 아버지 앞으로 나가는 것이다. 요한의 기사에는 흔히 겉에 나타나는 뜻과 그 속에 숨은 뜻이 있는데 예수님의 속옷에도 마찬가지다. 요한의 그 속옷의 묘사는 그 어머니가 주었을 듯한 보통 속옷이었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온전한 제사장으로 만인이 하나님께로 나갈 온전한 길을 여신 것을 뜻했다. 군인들이 예수님의 속옷을 놓고 제비 뽑는 이 경솔한 행동에서 요한은 구약성경의 예언의 실현을 보았다(시 22:18).(W. Barclay).|(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아르렌
a[rjrJhn
남자 male.||명사 아르렌은 '남자'를 의미하며, 신약성경에서 3회 나온다(롬 1:27; 계 12:5; 계 12:13).|-->아르센(733b)을 보라.
말 할 수 없는
a[rjrJhto"
말할 수 없는||#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아르레토스(Homer 이래)는 부정접두사 %107와 레오(%548: '말하다)에서 유래했으며, '말할 수 없는, 말하지 않은'을 의미하며,||(a) 그것이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기 때문에 표현될 수 없는 어떤 것에 대해 사용되었다(Pla., Plut. 등).||(b) 그것이 거룩하기 때문에 표현되어서는 안되는 어떤 것에 대해 사용되었다(Eur., Hdt. 등).||#2.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아르레토스는 신약성경에서 고후 12:4에 한번 나오며, (b)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병인
a[rjrJwsto"
약한, 병든||#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아르로스토스(Hippocr. 이래)는 부정 접두사 %107와 론뉘미($4517: 강하다)에서 유래했으며, '강하지 않은, 힘없는, 약한, 병든'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아르로스토스는 신약성경에서 5회 나오며, '병든 자'를 나타낸다(마 14:14; 마 6:5; 마 6:13; 마 16:18; 고전 11:30).|(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남색하는 자
ajrsenokoivth"
남색하는 자, 비역하는 자, 계간하는 자.||#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아르세노코이테스는 아르센(%890)과 코이테($2845)에서 유래했으며, `남색하는 자' 즉 `여자와 동침하는 것과 같이 남자와 동침하는 사람'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아르세노코이테스는 신약성경에서 2회, 바울서신에 나온다.||고전 6:9에서 아르세노코이테스는 하나님 나라에서 제외된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딤전 1:10에서 아르세노코이테스는 율법의 정죄를 받은 자에 속한다: "음행하는 자며 남색하는 자며 사람을 탈취하는 자며 거짓말하는 자며 거짓 맹세하는 자와 기타 바른 교훈을 거스리는 자를 위함이니"(참조: 창19장; 레18:22, 레18:29; 레20:13; 신23:17).|(참조: J.H.Thayer; Walter Bauer; C.Brown ).
아르센
a[rshn
남성 male.||#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아르센(Homer 이래)은 여성(델뤼스)과 반대되는 `남성'(male)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아르센은 70인역본에서 54회 나오며, 주로 히브리어 자칼을 번역한다. 이 단어는 사람에 대하여 `남자'(창 1:27), `남성'(창 17:14, 23), 짐승들에 대하여 `수컷'(출 12:5)을 의미한다.||#3. 신약성경의 용법||아르센은 신약성경에서 75회 나오며, `남자'를 의미한다.||(a) 마 19:4에서 아르센은 이혼과 관련하여 나타난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병행구, 막 10:6).|예수님은 바리새인에게 대답하실 때, 이것을 결혼에 관한 그의 가르침의 대전제로 삼으셨다. 즉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이것에서부터 창 2:24에서 이용된 소전제가 나온다. 곧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마태복음에서는 "아내에게 합하여"라는 말씀이 나온다) 그 둘이 한 몸이 될찌니라"(막 10:7이하; 마 19:5). 이 구절의 결론은 다음과 같이 내려진다.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찌니라"(마 19:6; 막 10:8이하).||(b) 눅 2:23에서 초태생 남자에 대한 규정을 언급한다: "이는 주의 율법에 쓴 바 첫태에 처음 난 남자마다 주의 거룩한 자라 하리라 한 대로 아기를 주께 드리고". 예수님의 부모는 예수님이 태어났을 때, 출 13:2, 출 13:12에 남자에 관해 규정된 희생 제사를 드렸다.||(c) 롬 1:27에서 아르센은 3회 사용되었다: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이 구절에서 성도착증(sexual perversion)은 창조주보다는 오히려 피조물을 숭배함으로써 얻게 되는 인간의 죄악의 결과요 또한 마찬가지로 인간의 죄악에 대한 심판으로 간주된다. 인간이 오로지 하나님께만 속할 수 있는 곳에 어떤 것을 두었기 때문에, 인간의 자연스런 관계가 타락하게 된 것이다. 요세푸스(Josephus)도 남성들 사이의 이상한 관계는 죽음의 형벌을 받는다고 지적하였다(Ap. 1, 199; 참조: 레 20:13; 레 18:22, 레 18:29).||(d) 갈 3: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이 말씀은 지상의 모든 관계를 폐지하라는 요구는 아니다. 오히려 이 말씀은 이런 관계들을 구원사의 입장에서 전망하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바울은 그 뒤에서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갈 3:29; 참조: 롬 10;2)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 앞에서 똑 같은 지위를 갖고 있으나 그들이 반드시 똑 같은 기능을 지니는 것은 아니다. 갈라디아서의 할례 문제에 관한 문맥에 나오는 이 주장은 양쪽에 다 해당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여자들은 유대주의자들이 완전한 구원의 선행조건으로 주장했던 징표의 수령자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아담 유형론이 이 구절의 기초가 되는 것 같다. 어떤 랍비들은 아담이 본래 자웅동체(androgynous)였다고 주장하였다.(참조: J.Bligh; Galatians).|(참조: J.H.Thayer; C.Brow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