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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제사장
ajrciereuv"
대제사장 high priest||#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아르키에류스는 아르케고스($747: 통치자, 지도자)와 히에류스($2409: 제사장)에서 유래했으며, '대제사장'을 의미한다.||(a) 이 단어는 헤로도투스(Herodotus)가 고대 애굽의 우두머리 제사장을 가리키는 말로 처음 사용했으며, 서열상 왕의 바로 밑의 지위를 갖고 있었다(Hdt. 2, 142). 그의 조상이 그의 일생동안 신전들에 세워져 있었다. 페니키아 문서에는 두로와 관련되어 있는 우두머리 제사장에 대해 언급했다(Jos. Ap., 1, 157).|플라톤은 이 직무를 그의 이상 국가론에 도입했다(Leg., XII, 947). 거기에는 해마다 그 해 제사장 직무를 수행하는 제사장들의 우두머리 제사장이 있었다.||(b) 셀류시드(Seleucid) 왕가의 치하에서 아르키에류스는 사트라비(satrapy)라고 하는 행정 구역마다 공식적으로 임명한 대제사장을 가리킨다. 대규모 성소의 최고 제사장도 역시 아르키에류스였다. 톨레미도 왕가의 왕들이 다스리던 시대의 문헌에도 아르키에류스들이 언급되어 있다.||(c) 로마 시대에도 셀류시드 왕가의 체제는 계속 유지되었다. 황제 숭배의 제의를 담당하는 지방의 대제사장은 아르키에류스 투 세바스투 또는 아르키에류스 톤 세바스톤이라고 불리워졌다. 그 정점에는 황제 자신이 폰티페크스 막시무즈(pontifex maximus: 로마의 최고 승무원장)라는 칭호를 가지고 군림하였다. 시이저는 이 칭호로 불리웠으며, 아우구스투스에 이르러서 황제 존칭의 일부가 되었다.|폴리비우스(주전 2, 3세기) 이래로 아르키에류스라는 말은 폰티페크스(pontifex)라는 라틴어로 번역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르키에류스라는 직함은 지방의 대제사장 및 종교적 공동체의 우두머리를 가리키는 말로서 여전히 받아들여졌으며, 이것은 이 사람들이 성소와 관련된 일을 집중적으로 수행하는 사람들인 한에 있어서는 그렇게 인정 받았던 것이다.||#2. 70인역본의 아르키에류스.||명사 아르키에류스는 70인역본에서 약 45회 나오며, 구약성경에서 히브리어 코헨(제사장)의 역어로 4회(레 4:3; 수 22:13; 왕상 1:25; 대상 15:14 등), 히브리어 상당어 없이 수 24:33에 한번 나온다. 기타 다른 곳에서 대제사장은 호 히에류스 메가스, 또는 단지 호 히에류스로 나타난다.|그러나 아르키에류스는 외경에서 40여회 나타난다(마카베오일서 10:20, 32, 38, 69; 12:3, 6, 7; 마카베오이서 3:4, 9 이하; 4:13; 14:3 등).|대제사장의 가장 큰 임무는 대속죄일에 공동체의 죄를 속하는 일이었다(레 16장). 모세 율법에 따르면 아론의 지파가 아니거나 더욱이 대제사장 가계의 후손이 아닌 사람은 어느 누구도 대제사장직을 바랄 수 없었으며, 대제사장은 종신토록 그 직책을 맡을 수 있었다.||#3. 유대교와 신약성경의 아르키에류스.||명사 아르키에류스는 신약성경에서 122회 나오며, 막 2:26(삼상 21:7)에 있는 아비아달에 대한 언급을 제외하면 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서 예수님의 고난과 초대 교회의 박해(단수형 38회, 복수형 62회)와 연관하여서만 나오며, 히브리서에서 기독론적 칭호(17회)로 나온다.||(a) 대개 우두머리 제사장들을 나타내는 복수형 아르키에레이스(%1020)는 예루살렘의 대제사장, 그 전임자들, 제사장 계급 가운데 가장 특별한 의원(행 4:6)을 나타내는데, 그들 모두 산헤드린(서기관들, 장로들, 아르콘테스도 산헤드린 회원이다; 예: 마 26:59; 막 14:53; 막 14:55; 행 22:30)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제사장단이었다.|이들은 성전의 행정관, 종교적 재판관의 역할을 하였다. 이 제사장단 가운데 성전 관리자, 안식일 제사의 책임자들과 매일 제사의 책임자들, 성전 변호사, 성전 회계 등이 포함되었다(예: 마 21:15; 마 21:23; 마 21:45; 눅 22:4; 눅 22:52; 행 4:1; 행 5:24; 행 5:27).|이 무리의 대표격은 예루살렘에서 직무를 행하는 대제사장(high priest)이다. 흔히 복수형은 전체 산헤드린을 나타낸다(마 26:14; 마 27:6; 마 28:11; 막 14:10; 막 15:3; 막 15:10 이하; 요 12:10; 요 19:6; 요 19:15; 요 19:21; 행 9:14; 행 9:21; 행 26:10; 행 26:12). 서기관들(마 2:4; 마 21:15; 막 11:18; 눅 19:47; 눅 20:19; 눅 23:10)이나 바리새인들(마 21:45; 마 27:62; 요 7:32; 요 11:47)과 함께 산헤드린은 교리와 법률 문제에서 최고 법정으로 나타난다. 복음서는 개개의 무리들 중에서 권한의 분할에 대해 분명히 말하지 않는다. 행 4:6(참조: Josephus Antiquities 15. 40)에 있는 게노스 아르키에라티콘(대제사장의 문장)은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제사장 계급의 구성원을 나타낸다.|행 19:14에서 에베소의 스게와는 흩어져 살고 있던 유대인(Diaspora) 가운데 우두머리 제사장이다. 귀족들의 한 사람이다(참조: Josephus Ap. I. 187; Ant. Xii 108).||(b) 헤롯시대(B.C. 37)부터 예루살렘의 멸망(A.D. 70)까지 대제사장직은 원래 종신제로서 세습되었으며, 사독 가문에만 주어졌다. 그러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시대 이후로, 세레우시디(Seleucidea)의 왕들과 그후의 헤롯가의 왕들과 로마인들이 대제사장에게 주어진 권리를 침해했을 때 이 직책은 대제사장 가문에 속한 채로 남아있지도 않았고 종신토록 수여되지도 않았다. 이 직책은 타락하게 되었으며 시민 통치자나 군사 통치자의 마음대로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을 임명할 수도 있었다. 그리하여 헤롯 대왕과 예루살렘의 멸망 사이 107년 동안 28명이 대제사장직을 맡았다. 그렇지만 요 11:49; 요 11:51; 요 18:13은 이렇게 자주 대제사장이 바뀐 인상을 주지 않는다.|로마인들은 대제사장 후보자들 가운데서 친척 편중을 용인한 것으로 보인다. 대제사장 후보자들은 금전적 이유로 네 가문에 국한되었다(가문별 대표자수 Boethus: 8명, Ananus: 8명, Phiabi: 3명, Camithus: 3명).|신약성경에서 안나스 집안 출신의 세 명의 대제사장만이(A.D. 6-41) 언급된다. 세티(Sethi)의 아들 안나스(Ananus)는 A.D. 6-15)에 재임한 대제사장으로, 매우 진취적인 사람이었으며, 면직 후에도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그는 A.D. 35년에 죽었다(눅 3:2; 요 18:13 이하; 행 4:6).|안나스의 사위 요셉(별명 가야바, A.D. 18-37; 눅 3:2; 행 4:6)은 극악무도하였으며(요 11:49-53), 예수님의 수난(재판)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다(마 26:3; 마 26:57 이하; 마 26:62 이하; 마 26:65; 막 14:53 이하; 막 14:60 이하; 막 14:66; 눅 22:54; 요 18:13; 요 18:24).|아나니아(Nebedaeus의 아들)는 A.D. 48-46에 재임했다(Josephus Ant. Xx 103; B.J. ⅱ429, 441 이하; 행 23:2; 행 24:1). 신약성경은 총독 통치 기간 동안에 대제사장이 정치적으로 독립적인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 분명하게 말해주지 않는다.|그밖의 다른 역할 가운데서 그들은 산헤드린(수난 기사)을 관장하고 로마인들 앞에서 유대 백성을 대표한다(요 18:35; 요 19:6; 요 19:21; 행 22:30; 행 23:2; 행 25:2).|오직 히브리서에서만이 대제사장의 제의적 기능에 대해 언급한다. 대제사장은 희생 제사를 바치고(히 8:3), 대제사장을 위하여 날마다 소제를 드린다(히 7:27; 참조: 레 6:13; Sir 45:14; Philo Spec. Leg. ⅲ 131). 대제사장의 죽음은 속죄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민 35:25 이하). 그리고 대제사장은 속죄일에 의식을 집행한다(히 9:7; 히 9:25; 히 13:11; 참조: 출 30:10; 레 16장; Josephus Ant. ⅲ.242 이하 등).(참조: V. Kellermann).||(c) 히브리서는 세례의 고백(히 3:1; 히 4:14; 히 10:19 이하)이나 아마도 더 광범위하게 초기 그리스도교 예배의 전승을 취하여 하나님의 아들을 대제사장으로 고백하는 교회의 신앙을 해석한다. 히브리서에서 그리스도의 대제사장 개념은 창 14장의 멜기세덱과 메시야, 그리고 하늘의 대제사장에 관한 유대교 사상 뿐만 아니라 시 110:4와 렘 31:31 이하 같은 언약 구절 등 구약성경 본문에 의하여 분명해진다. 이러한 해석학적 범주는 유대교 및 초기 그리스도교 전승과 대조해보면 지상의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께 이미 적용되었다.|히브리서 기자는 레위 자손의 문제를(히 7:13-17) 피하여 빠져 나간다. 그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히 5:10; 히 6:20; 히 7:11; 히 7:15; 히 7:17)라는 어구를 이용하여 영원하고 영구적인 참된 대제사장의 합법성을 예표론적으로 분명히 한다. 예수님은 불완전한 구약성경의 대제사장 직무를 능가하며 자신의 단 한번의 희생 제사로 그것을 대신한다(히 7-10장).||이 대제사장의 구속 방법은 4가지 문구로 표현된다.|① 한편으로 인간의 실존의 조건 하에서(히 2:17 이하; 히 4:15), 그리고 완전한 순종과 죄없음(히 4:15; 히 5:5-10; 히 7:26-28)에서, 하나님께 충성한다(히 2:17; 히 3:1 이하).|다른 한편으로 지상의 예수님은 인간 존재와 하나님을 중개하신다. 따라서 그는 대제사장이 되신다(히 2:17; 히 5:5; 히 6:20; 히 7:16; 히 7:21 이하).||② 결정적인 것은 성 금요일-속죄일-에 하늘의 지성소에서(히 6:20; 히 8:1-3; 히 10:19 이하) 그의 생명(히 7:27; 히 10:10: 순교 신학) 혹은 피(히 9:11 이하; 히 10:19)를 드린 것이다. 속죄의 이 예물은 죄 사함, 영원한 구속, 죄의식에서의 정화를 가져온다(히 9:11-15; 히 10:22). 예수님의 대제사장 되심은 여기서 오로지 구약성경의 제의를 배경으로 하여서만 고려되며 예표론적으로 그것보다 우월한 것으로 언급된다.||③ 승천하시는 예수님은 그를 따르는 자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이르는 길을 열어주신다(히 4:14-16; 히 5:9; 히 7:19; 히 10:19-21; 히 12:2).||④ 박해 받는 교회의 현재 상황에서 높임 받으신 자는 하나님 앞에 보증(히 7:22), 중재자(히 7:25; 히 9:24), 중보(히 8:6)로서 하늘의 대제사장(히 7:26; 히 8:1; 히 10:21)으로 나타난다.|(참조: G. Schrenk; U. kellermann; Walter Bauer; J. H. Thayer).
목자장
ajrcipoivmhn
목자장 chief shepherd.||명사 아르키포이멘(Herodian Gr.)은 성경 용어이며 '목자장'을 의미한다.|벧전 5:4에서 한번 나오며, 교회의 우두머리인 그리스도에 대해 사용되었다: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참조: J.H.Thayer; Walter Bauer).
아깁보
#Arcippo"
아킵보 Archippus(인)||아르킵포스는 '마부'를 의미하며, 개역 한글 성경에서 '아킵보'로 음역했다.||(a) 골 4:17에서 아킵보는 골로새 교회의 한 직분을 맡은 자이다: "아킵보에게 이르기를 주 안에서 받은 직분을 삼가 이루라고 하라".||(b) 몬 1:2에서 바울은 아킵보를 "우리와 함께 군사된 자"라고 부른다: "및 자매 압비아와 및 우리와 함께 군사 된 아킵보와 네 집에 있는 교회에게 편지하노니".|(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회당장
ajrcisunavgwgo"
회당장 ruler of synagogue.||명사 아르키쉬나고고스는 아르코($757: 지배하다, 다스리다)와 쉬나고게($4864: 집합, 회당)에서 유래했으며, '회당장'을 의미한다.|신약성경에서 아르키쉬나고고스는 9회 나오며 '회당장'을 의미한다.|회당장은 회당의 낭독자나 교사를 선택하고, 공중 연설자의 강연을 검토하고 그 모든 것이 예법에 맞고 전통적인 관례에 일치하는지를 살피는 것이 임무이다.|막 5:22, "회당장 중 하나인 야이로라 하는 이가 와서 예수를 보고 발 아래 엎드리어".|막 5:35, "아직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가로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막 5:36,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막 5:38, "회당장의 집에 함께 가사 훤화함과 사람들의 울며 심히 통곡함을 보시고".|눅 8:49, "아직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이 와서 말하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선생을 더 괴롭게 마소서 하거늘".|눅 13:14, "회당장이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 고치시는 것을 분내어 무리에게 이르되 일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그 동안에 와서 고침을 받을 것이요 안식일에는 말 것이니라 하거늘".|행 13:15,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읽은 후에 회당장들이 사람을 보내어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만일 백성을 권할 말이 있거든 말하라 하니".|행 18:8, "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으로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다한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더라".|행 18:17, "모든 사람이 회당장 소스데네를 잡아 재판 자리 앞에서 때리되 갈리오가 이 일을 상관치 아니하니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알키텍톤
ajrcitevktwn
건축 청부업자 masterbuilder.||#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알키텍톤(Hdt., Xen.)는 아르코($757)와 테크톤($5045)에서 유래했으며, '건축 청부업자, 건축가, 건축감독, 청부인, 노동감독'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알키텍톤은 70인역본에서 3회 나오며, 사 3:3에서 하라쉬(조각사, 목수, 대장장이, 석수, 금속세공자)의 역어로 사용되어 '장인'을 나타낸고, 마카베오이서 2:29에서 '건축가'를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알키텍톤은 신약성경에서 고전 3:10에 한번 나타난다: "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지니라". 바울은 이 터를 그리스도와 동일시한다- 곧 바울이 전파한 교리에서 보여진 것이니 그 교리는 십자가로 말미암은 화해와 그것에 의해 창립된 새로운 공동체에 대한 교리이다. 이것이야말로 고린도 교회를 산출시킨 교리였다(고전 3:10이하).|(참조: J.H.Thayer; J.I.Packer).
세리장
ajrcitelwvnh"
세리장 chief tax collector.||#1. 일반 헬라어의 용법.||명사 알키텔로네스는 알코($757)와 텔로네스($5057)에서 유래했으며, '세리장'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알키텔로네스는 신약성경에서 눅 19:2에만 한 번 나온다: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알키텔로네스는 단 한번 삭개오에 대해 사용되었다. 아마 그는 포티토레스(portitores)와 푸블리카니(publicani)의 중간인 로마의 마기스테르(magister)에 해당하는 직위였을 것이다. 여리고는 어떤 상임 세금 관리를 위한 일종의 주재소 같은 곳이었으며, 세금 관리는 틀림없이 부자가 되었을 것이다. 그 도시는 요단강 본 지류에 위치한 주요 세무국 소재지로, 유대와 요단강 동쪽 지역 사이의 주요 도로로 예루살렘에서 약 17마일 떨어진 곳에 위치했다. 대규모의 운송업을 통제하는 것 외에도 여리고는 값비싼 향유를 생산하여 수출했다. 삭개오가 자기에게 사취당한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든지 다시 보상해 주겠다고 약속한 것은(눅 19:8) 그 자신이 그 돈을 강탈했다거나 위협하여 그 돈을 빼앗았음을 의미한다고 볼 필요는 없다.|푸블리카니(publicani) 단체의 주요 인물이었던 그는 그의 부하들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졌으며 그들의 행동 때문에 더러워졌던 것이다. 반대로, 삭개오가 자기 의향을 선언함으로써 그의 마음의 변화가 굳혀지고 표현되었을 뿐 아니라 실제로 그의 재산도 깨끗해졌으므로 이제 그는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영접할 수 있었으며, 이렇게 해도 그의 손님이 의식상 더럽혀지지 않는다.|예수님께서 그의 집에 초대해 주기를 먼저 청함으로써, 예수님은 삭개오의 마음의 부담을 가볍게 해 주셨다. 예수님께서 먼저 청하셨다는 사실은 그의 어떤 초자연적인 행위들과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이 놀라움을 유발시킨 하나의 이적으로 여겼던 바를 성취하신 셈이다(Derrett, op. cit., 278-85)|(참조: J.H.Thayer; N.Hillyer).
연회장
ajrcitrivklino"
연회장||#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아르키트리클리노스(Heliod.)는 아르코($757: 지배하다, 다스리다)와 트리클리논(%502: 세개의 침상이 있는 방)에서 유래했으며, '식당장, 연회장'을 의미한다.|테이블과 침상을 순서대로 배치하고 요리를 준비하며 음식과 포도주를 미리 맛보는 일은 아르키트리클리노스의 임무와 책임이었다(Heliod. 7, 27).||#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아르키트리클리노스는 신약성경에서 3회, 요 2:8이하에 사용되었다.|아르키트리클리노스는 연회를 돌보는 책임자이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비로소
a[rcomai
아르코($757)를 보라.
다스리다
a[rcw
시작하다 to begin, 통치하다 to rule.||#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아르코(Homer이래)는||(a) '첫째이다',|(b) '시작하다',|(c) '통치하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아르코는 70인역본에서 매우 많이 사용되었으며, 히브리어 할랄의 히필형과 야알의 히필형의 역어로 가장 많이 사용되었다. 이 두 히브리어 동사는 모두 곤경이나 관습의 극복과 관련된 행동의 시작을 의미한다. 이 용법은 순수하게 언어학적이며, 신학적 채색은 나타나지 않는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아르코는 신약성경에서 중간태 아르코마이($756)을 제외하고는 2회, 마가복음과 로마서에만 나온다.||(a) 막 10:42에서 아르코는 '통치하다'를 의미한다: "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소위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b) 롬 15:12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또 이사야가 가로되 이새의 뿌리 곧 열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시는 이가 있으리니 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 하였느니라". 예수님은 참된 권세를 오직 하나님께만 찾기 때문에, 지상의 모든 통치를 조건부적인 것으로 생각하신다.|(참조: Walter Bauer; G.Oelling; L.Coenen).
관원
a[rcwn
통치자 ruler, 군주 prince.||#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아르콘(Aeschyl., Hdt.이래)은 동사 아르코($757)의 현재 분사이며, '통치자, 지휘자, 군주'(prince)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아르콘은 70인역본에서 600여회 나오며, 주로 사르(권세와 능력이 있는 자, 지도자, 귀족, 방백, 창 12:15; 삿 8:3; 암 1:15등), 나시(지파의 두령, 족장, 민 1:10-민 10:4; 에스겔에서 13회), 로쉬(머리, 정상, 우두머리, 장, 대상 5:6-대상 12:23; 대상 23:2-대상 27:4등)의 역어로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아르콘은 신약성경에서 약 37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아르콘은 '통치자, 주, 군주'를 나타낸다.|① 계 1:5에서 그리스도는 땅의 임금들의 아르콘으로 칭함을 받으신다: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참조: 시 89:27의 인용; 계 19:16; 빌 2:11).|② 마 20:25에서 아르콘테스(주격 복수)는 권세를 부리는 자들이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가라사대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행 4:25이하; 시 2:1이하를 인용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음에 있어서 헤롯과 빌라도의 상호협조를 언급하였다. 헤롯과 빌라도는 모두 아르콘테스이다.||(b) 아르콘은 '관원, 장(長), 책임맡은 자'를 나타낸다.|① 아르콘은 이러한 의미로 특히 회당의 직원들(마 9:18, 마 9:23; 눅 8:41; 눅 12:58; 눅 18:18), 공회의 평회원들(눅 23:13, 눅 23:35; 눅 24:20; 요 3:1). 일반적으로 가장 높은 유대 당국자들(요 7:26, 요 7:48; 요 12:42; 행 3:17; 행 4:5, 행 4:8; 행 13:27), 그리고 대제사장들(행 23:5)에 사용되었다.|② 행 7:27에서 아르콘은 출 2:4의 인용구에서 나타난다: "그 동무를 해하는 사람이 모세를 밀뜨려 가로되 누가 너를 [관원]과 재판장으로 우리 위에 세웠느냐". 이스라엘인들은 모세를 자신들의 관원으로, 또는 그들을 다스리는 자로서 인정하기를 거부하였다.|③ 눅 14:1에서 바리새인들의 아르콘은 지도자격의 바리새인들이었을 것이다: "안식일에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한 [두령]의 집에 떡 잡수시러 들어가시니 저희가 엿보고 있더라".|④ 행 14:5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의 관원들이 사도들을 대적하는 기사를 싣고 있다: "이방인과 유대인과 그 [관원들]이 두 사도를 능욕하며 돌로 치려고 달려드니".|행 16:19에서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의 관원들 앞으로 끌려 갔다: "종의 주인들은 자기 이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잡아가지고 저자로 [관원들]에게 끌어갔다가".|롬 13:3에서 국가에 대한 가르침 중에서 바울은 관원들(아르콘테스)을 언급한다: "[관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c) 아르콘은 '악령'을 나타낸다.|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귀신들의 아르콘("왕")의 능력으로 귀신들을 쫓아낸다고 비난하였다. 이것은 디아볼로스인 바알세불을 의미하는 것이다(마 9:34; 마 10:25; 마 12:24; 막 3:22; 눅 11:15).|사탄은 이 세상의 임금(아르콘)으로 그는 심판을 받았다: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요 16:11).|사탄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승귀로 말미암아 하늘로부터 쫓김을 당한다: "이제 이 세상의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 [임금]이 쫓겨나리라"(요 12:31).|사탄은 예수님을 붙잡아 죽이고자 하는 헛된 시도를 한다: "이후에는 내가 너희와 말을 많이 하지 아니하리니 이 세상 [임금]이 오겠음이라 그러나 저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으니"(요 14:30).|고전 2:6에 의하면 이 세상 전체는, 멸망의 길로 가고 있는 아르콘테스의 지배하에 있다. 그들은 바울이 비밀 가운데서 선포하는 하나님의 지혜와 대조되는 지혜를 소유하고 있다. 예수님을 못박은 자들은 바로 이 아르콘테스이다(고전 2:8). 공중의 아르콘은 사단이다(엡 2:2).|(참조: Walter Bauer; J.H.Thayer; G.Oelling; H.Bietenhard).
향품
a[rwma
향품||#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아로마(Hippocr. 이래)는 '향유'나 '향료', 곧 '향품'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아로마는 신약성경에서 4회 나오며, 예수님의 시체와 관련하여 사용되었다(막 16:1; 눅 23:56; 눅 24:1; 요 19:40).|(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아사
!Asav
아사 Asa||#1. 구약성경.||아사는 갈대아어 아사(치료하다)에서 유래했으며, 개역 한글 성경에서 '아사'로 음역했다.||(a) 아사는 유다 왕이며 유다왕 아비야의 아들이다(B.C. 912-871)(왕상 15:8-10). 아사의 통치 기간 중 10년은 부분적으로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에 대한 부친의 승리에 힘입어 평안하였다(대하 14:1 이하).||(b) 아사는 평안한 기간에 남색하는 자를 쫓아내고 우상 숭배를 타파했다(왕상 14:1, 6; 대하 14:3, 5). 그는 유다 사람들에게 여호와의 율법과 명령을 행하게 하고(대하 14:4), 여러 성읍들을 건축하고 견고케 하는데 힘썼다(대하 14:6, 7).||(c) 아사는 구스 사람(에디오피아) 세라의 침공을 물리쳤다. 아사는 세라가 거느리는 거대한 군대의 침공을 받았을 때, 스스로 약한 자임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여 세라의 군대를 물리쳤다(대하 14:9-12).||(d) 아사는 아사랴의 예언을 받아들여 개혁 정책을 계속했다. 그는 국가적인 신앙 부흥을 주도했으며(대하 15:1-15), 모친이 아세라 우상을 만들었다 하여 태후의 위를 폐하기도 했다(왕상 15:13; 대하 15:16).||(e) 아사는 통치 16년에 바아사가 유다를 침공하여 라마를 요새화하고 통행을 금했을 때, 아사는 전과 같이 신앙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오히려 성전과 궁전에 있던 은금을 취하여 수리아 왕 벤하닷에게 뇌물로 보내어 도움을 요청했다. 이에 벤하닷이 바아사와의 동맹을 파기하고 북쪽 왕국의 북부 지역에 있는 여러 성읍들을 공격하여 바아사의 라마 건축 계획을 포기하게 했다(왕상 15:16-19; 대하 16:2-5). 그 결과 아사왕은 라마의 건축 자재를 옮겨 게바와 미스바를 건축했다(대하 16:6; 왕상 15:22).||(f) 아사는 선견자 하나니로부터 책망을 받고 노하여 그를 옥에 가두고 일부 백성을 학대했다(대하 16:7-10).||(g) 아사는 23년후(B.C. 873) 중한 발병에 걸렸을 때 여호와 보다 의원에게 구하였다(대하 16:12). 그는 결국 이 병으로 죽었다(왕상 15:24; 대하 16:14).||#2. 신약성경.||아사는 신약성경에서 마 1:7의 족보에 2회, 그리스도의 조상으로 나온다: "솔로몬은 르호보암을 낳고 르호보암은 아비야를 낳고 아비야는 아사를 낳고".
움직일 수 없는
ajsavleuto"
움직이지 않는, 흔들리지 않는.||#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아살류토스(Eur., Pla. 이래)는 부정 접두사 %107와 살류오($4531: 심하게 움직이다, 흔들다, 내던지다)에서 유래했으며,||(a) '움직이지 않는, 흔들리지 않는',|(b) '확고한, 안정된'을 의미한다.|이 단어는 바다의 '고요함'을, 비유적으로 마음의 '평온함'에 대해 사용되었다.||#2. 70인역본의 용법.||형용사 아살류토스는 70인역본에서 3회 나오며, 토타포트(2903: 머리띠, 표, 기호 등)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구원을 상기시키는 손과 이마에 표시했던 표를 나타낸다(출 13:16; 신 6:8; 신 11:18).||#3.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아살류토스는 신약성경에서 2회 나오며, 사도행전과 히 12:28에만 사용되었다.||(a) 행 27:41, "두 물이 합하여 흐르는 곳을 당하여 배를 걸매 이물은 부딪혀 움직일 수 없이 붙고 고물은 큰 물결에 깨어져가니".||(b) 히 12:28, "그러므로 우리가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찌니".|여기서 하나님의 나라는 흔들리지 않고, 따라서 영존하는 것으로 기술되며, 과거에 나타난 것이 아무리 견고하다 할지라도(히 12:26; 학 2:6 인용) 물질적인 피조물의 운명과 대조를 이룬다(N. Hillyer).|(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꺼지지 않는
a[sbesto"
꺼지지 않는, 즉 꺼지지 않거나 끌 수 없는.||#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아스베스토스(Homer이래로)는 부정 접두사 아(%107)와 스벤뉘미($4570: 끄다)에서 유래했으며, '꺼지지 않는, 끌 수 없는'을 의미하며, 후에 아에스퀼루스가 '그침 없는'이라는 뜻으로 그 의미를 확대하였다.||#2. 70인역본의 용법||아스베스토스는 70인역본에서 욥 20:26에 단 한번 나오는데, 히브리어 로 누파흐(불거나 피우지 않는)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모든 캄캄한 것이 그의 보물을 위하여 쌓이고 사람이 피우지 않은 불이 그를 멸하며 그 장막에 남은 것을 사르리라".||#3. 신약성경의 용법||아스베스토스는 신약성경에서 4회 나온다.|마 3:12(병행구, 눅 3:17)에서 세례(침례) 요한의 종말론적 설교의 일부를 인용한 구절에 사용되었다: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여기서 꺼지지 않는 것은 쭉정이를 비유한 것이 아니라 쭉정이에 상징된 사람을 의미한다. 이 단어의 사상은 아무리 많은 것을 계속 쌓아도 불을 끌 수 없다는 것이다. 시간이 흘러가도 꺼지지 않는다. 영원한 불이다. 자체적인 표현에서 볼 때 형벌의 영원한 지속성에 관한 내용이며, 절멸에 관계된 결정은 없지만, 그 아래서 개량(改良)의 가능성은 배제된다(참조: 사 1:31). (A.L.Williams)|막 9:43(막 9:46, 공인본문)에서 아스베스토스는 지옥의 꺼지지 않는 불에 대해 사용되었다: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버리라 불구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고대 세계에서 불은 가장 강력한 파괴력으로 인식되어 있었으므로, 아스베스토스는 신약성경에서는 하나님께서 합당하지 않은 것으로 혹은 가치없는 것으로 배척하신 모든 것에 대한 철저한 파괴를 의미하는 말로 사용되었다.|(참조: R.K.Harrison; C.Brown).
경건치 아니함
ajsevbeia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없음, 불경건, 신을 믿지 않음.||#1. 헬라어 문헌의 용법||(a) 대부분의 경우에서 아세베스 어군(곧 아세베스, 아세베이아, 아세베오)의 의미와 내용의 언어학적 용법과 범위는 유세베스 어군(유세베스, 유세베이아, 유세베오)과 병행한다. 예를들면, 이 부정어 어군은 국가를 유지시키는 질서에 반하는 행위들(Aristoph, Thes.,356-367), 보호를 요청하는 자들을 내어주는 것(Hdt.,1,1159), 법률에 불복종하는 것(Plat.Leg.,Ⅸ,868d), 총명, 지혜, 견해에 대해 악평하는 것(Plat.Phileb.,28a), 조약의 수호자들인 신들을 멸시하는 것(Polyb.,18,54), 친구들 관계에서 약정을 어기는 것(Apophth.Lac., Agesilaos) 등을 의미한다.||(b) 헬라 도시 국가에서 규례와 신들에 대한 숭배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으므로, 이 아세베스는 아디코스(불의, 죄)와 나란히 언급되는 경우가 많았다. 신들에 대한 공경심의 결여와 제의적 의무에 대한 경시는 반사회적인 것으로 생각되었다. 도시 신들에게 예배하기를 거절하거나 제사 의무의 이행을 거부하는 것은 아세베이아이다. 일반 대중의 신앙에서 볼 때 신들의 존재를 부인하는 철학자들은 에세베이스(불경한자)이다. 에픽레투스에게 있어, 신들의 선물과 능력을 영화롭게 하지 않거나 신이 정해준 운명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아세베이스이다.||(c) 도시 국가 및 도시 국가의 공식적인 예배가 쇠퇴하면서, 철학자들은 아데오테스(공식적인 신들에 대한 거부)와 아세베이아(법령 위반)를 구별하였다. 이러한 구별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중요한 것이었다. 공식적인 신들을 부인한다는 점에서 그리스도인들은 하데오이(불경건한 자들, 신을 믿지 않은 자)의 부류에 속하기는 하지만 그들이 아세베스(법령 위반자)의 부류에 속한다고 볼 수는 없다. 이런 이유로 목회서신과 베드로전서에는 행동으로 유세베이아를 이방인들에게 나타내 보이고, 그리함으로써 이방인들이 가하는 행악자라 하는 비난을 반박하라고 신자들을 권고하는 내용이 나온다(벧전 2:12).|그리고 헬라 세계에서 신들에 대한 예배가 차츰 차츰 시들해져 가고 대신 철학적 이상과 윤리-도덕적 태도에 관한 관심이 높아감에 따라, 철학자는 무신론자가 될 수 있었고, 그리스도인들도 역시 그들이 옛날의 그 신들을 공경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렇게 묘사되었다(참조:Lampe,44 이하). 하지만 옛날의 신들을 부인하고 있다 하여 고소를 당했다는 것은, 그들이 아세베이아로 고소당했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아세베스라는 단어는 종교도 없고 도덕도 없는 사람만을 전적으로 지칭하는 용어였기 때문이다(참조: Liddell - Scott 255).|아세베이아는 아세베스($765)에서 유래했으며,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확립된 질서들을 멸시 내지 위반하는 것과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이 없음, 불경건, 신을 믿지 않음'이란 의미를 나타낸다.||#2. 70인역본의 용법||(a) 70인역본에서 이 어군은 언제나 단순한 태도가 아닌 행동을 의미하며, 또한 제의적이나 특별한 종교적 행위에만 국한되어 사용되지 않는다. 주관적인 경향보다는 오히려 객관적인 사실이 문제가 된다(암 1:2). 70인역본에서는 부정적인 이 어군이 유세베스 어군보다 더 자주 사용되었다. 왜냐하면 유세베스 어군이 하나님께 대한 적절한 경외를 나타내기에는 너무 미약한데 반해, 아세베스 어군은 악인의 특징인 하나님과 그의 뜻에 대한 경멸을 매우 잘 나타내 주기 때문이다.||(b) 아세베이아는 아디키아(부정, 불의)와 동의어이며, 하마르티아(죄)와 매우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사회 질서와 사회정의는 예배와 불가분리의 것이기 때문이다. 아세베이아는 때때로 문제가 되고 있는 범죄 행위들이다(시 5:10; 시 65:3; 잠 28:3 등). 거짓 증인들은 아세베이아(아무에 대해 부정, 부당하게 증언하는 것)를 말한다(시 19:16).||(c) 요세푸스는 이 용어들을 매우 자주 사용하는데, 일반적으로 하나님을 그 대상으로 삼으며, 때로 아세베이아와 아디키아(불의, 부정)를 구별한다. 필로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부인(아데오테스)을 아세베이아와 관련시키고 있다. 그는 아세베이아를 모든 악의 근원인 욕망과 결합시킨다. Leg.ALL.,Ⅲ,9에서 아세베스를 디카이오스(의로운)와대조시킨다는 점에서 볼 때, 필로는 아세베이아와 아디키아(불의,부정)를 구별하지 않는 것 같다.||#3. 신약성경의 용법||아세베이아는 신약성경에서 5회 나타나온다.||(a) 롬 1:18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인이 되기 이전의 인간은 아세베이아와 아디키아, 즉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종살이하고 있다고 묘사하였으며, 그는 창조주가 아닌 피조물에게 신적 영광을 돌리기 때문에 하나님의 저주가 그에게 머물러 있다고 말하였다(롬 1:25). 그리고 바울은 당대의 모든 종교행위에 대하여 심판을 선언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기의 눈으로 볼 때 지혜로와 보일는지 모르지만, 사실은 예배의 영역에 있어서든 상호 인격적 관계에 있어서든 한 분이신 참된 하나님 및 그의 거룩한 뜻과의 만남을 이루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도, 70인역본에서와 마찬가지로 아세베이아와 아디키아 사이에 뚜렷한 구별이 되지 않고있는데(앞의 고전 헬라어 문헌 참조), 이는 그리스도의 계시의 빛에서 볼 때 양자가 모두 하마르티아(죄 sin)이기 때문이다. 이 중요한 개념은 실로 마귀의 권세의 작용을 의미하는 다른 모든 개념들에 대해서 그러했듯이, 아세베이아 보다 우월한 개념이다.||(b) 롬 11:26은 사 59:50의 인용문이다: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기록된 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치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c) 딛 2:12에 의하면 은혜는 우리로 하여금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살도록 하기 위하여 불경건한 생활에서 떠나도록 인도한다: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여기서 불경건이 유세베이아의 반대어로 나오는 것 같지만, 이 단어에는 고의적인 명령 위반도 포함되어 있다.||(d) 딤후 2:16에서는 거짓 교사들의 하나님으로부터 소원한 상태를 아세베이아로 표현하고 있다. 양심은 이것이 교훈의 도덕적, 종교적 결과이다: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라 저희는 경건치 아니함에 점점 나아가나니".||(e) 유 1:15; 유 1:18에서 거짓 교사들은 그들의 삶과 가르침 때문에 아세베이스이다: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치 않은 자의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않은 일과 또 경건치 않은 죄인의 주께 거스려 한 모든 강퍅한 말을 인하여 저희를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마지막 때에 자기의 경건치 않은 정욕대로 행하며 기롱하는 자들이 있으리라 하였나니".|(참조: W.Gunther; J.H.Thayer; W.Foers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