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해설 63 페이지 > 기독정보닷컴

찍어다가
bavptw
담그다, 물들이다.||동사 밥토는 '~안에 혹은 아래에 담그다, 물들이다, 잠그다, 가라앉다, 물에 빠지다, 목욕하다, 씻다'를 의미한다.|신약성경에서 밥토는 4회 나오며, 문자적인 의미로만 사용되었다.|||(a) 눅 16:24TR에서 '담그다'를 의미한다: "불러 가로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b) 요 13:26에서 '~안에 담그다'를 의미한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한 조각을 찍어다가 주는 자가 그니라 하시고 곧 한 조각을 찍으셔다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주시니".||(c) 계 19:13에서 '물들이다'를 의미한다: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바라바
Barabba'"
바라바 Barabbas(인)||바랍바스는 아람어 바르 아바(아버지의 아들)의 음역이며, 한글 개역 성경에서 '바라바'라고 음역했다.|Origen은 절대적으로 "Jesus Barabbas"라는 이름을 말하는 마 27:16 이하의 읽기를 부인한다. 그러나 그 이름이 여기서 몇몇 다른 증언 속에 나타난다해도 그것은 아마도 필사할 때 필경자의 실수 때문이라고 한다.|만약 그 이름이 단순히 Barabbas나 Barrabban이라면 그것은 역시 그 사람이 랍비의 아들이라는 것을 의미하거나 또는 순수하게 전통적인 고유 명사였을 것이다. 빌라도가 유월절 절기 때에 놓아준, 제사장들의 선동으로 예수님보다 우선하여 예루살렘의 폭도들에 의해 선택된 범죄자(막 15:15; 마 27:20 이하; 눅 23:18; 요 18:40).|마태는 그를 "유명한 죄수"(마 27:16)라고 부른다.|마가는 그를 "민란을 꾸미고 이 민란에 살인하고 포박된 자 중에 한 사람(막 15:17)이라고 말한다.|누가는 그가 "성중에서 일어난 민란과 살인을 인하여" 옥에 갇힌 자(눅 23:19; 참조: 행 3:14)라고 말한다.|요한은 그를 "강도" 또는 "약탈자"(요 18:40)라고 부른다. 그에 대해서나 그가 참여한 민란에 대해서 더 이상 알려진 것은 없다.||그가 살인자라는 누가의 진술은 아마도 그가 민란 중에 살인을 저지른 폭력단 중의 한 명일뿐이라는 마가의 보다 더 상세한 진술에서 추론한 것이다. 요한이 제시하는 것처럼 약탈이 그의 범죄의 동기였는지, 또는 그가 "로마 정권에 항거하는 반란을 일으킨 사람"(Gould)인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제사장들(로마 찬성론자들)이 정치범을 풀어줄 것을 강요하고 빌라도가 그것을 허락하였다는 것도 마찬가지로 있을 법하지 않다. 특히나 예수님을 정치적인 죄목으로 처형할 것을 제사장들이 주장하고 빌라도가 그것을 반대할 수 없었을 시기에.|그 민란은 유명한 약탈 사건이다. 유대인들이 그러한 죄수를 풀어 주는데 석방시키는데 관심이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폭도들의 내력을 망각하는 것이다. 성경 이외의 자료들은 유월절에 죄수를 풀어주는 관례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는다.|(참조: Plummer; T. Rees).
바락
Baravk
바락 Barak.||#1. 구약성경.||발락은 아람어 바라크(번갯불)를 음역한 것이며, 이스라엘의 지휘관이었다.||(a) 바락은 납달리 지파로 게데스 성읍에 사는 아비노암의 아들이며, 납달리의 도피성인 게데스에 거주하였다(삿 4:6).||(b) 여선지자 드보라가 바락을 불러서 이스라엘 지파들을 집합시켜 야빈왕의 총 사령관 시스라와 싸우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전해 주었다(삿 4:6). 바락은 드보라가 자신과 동행한다는 조건으로 동의를 했다(삿 4:8). 그 때문에 드보라는 '시스라를 여인의 손에 파실 것임이라'고 예언했다(삿 4:9).||(c) 바락은 드보라와 함께 가나안 왕 야빈의 군대를 진멸하였으나 시스라를 죽이는 영광을 그가 얻지 못하고 겐 족속 헤벨의 아내 야일의 손에 죽임을 당했다(삿 4:12-24).||(d) 바락은 드보라와 함께 승전의 노래를 부른다(삿 5:1-31).||#2. 신약성경.||바락은 신약성경에서 히 11:32에 한번 나오며, 바울이 믿음의 사람으로 지칭한다: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와 다윗과 사무엘과 및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NBD).
바라갸
Baraciva"
바라갸 Barachiah(인)||#1. 구약성경.||바라키아스는 히브리어 베레키야(여호와께서 복주신다)의 음역이며, 한글 개역 성경(구약)에서 베레갸로 음역되었다.|베레갸는 슥 1:1, 7에서 선지자 스가랴의 아버지로 나온다: "1 다리오왕 이년 팔월에 여호와의 말씀이 잇도의 손자 베레갸의 아들 선지자 스가랴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7 다리오왕 이년 십일월 곧 스밧월 이십 사일에 잇도의 손자 베레갸의 아들 선지자 스가랴에게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여 이르시니라".||#2. 신약성경.||바라키아스는 신약성경에서 마 23:35에 한번 나오며, 한글 개역(신약)에서 "바가랴"로 음역되었다: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 가리라". 그는 선지자 사가랴, 즉 스가랴의 아버지이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야만
bavrbaro"
말더듬는, 낯선말의, 야만인.||#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바르바로스(Aeschyl., Hdt. 이래)는||(a) 기본 의미는 '말더듬는, 더듬거리는',|(b) '낯선 말의',|(c) 그 다음에 '낯선 종족의',|(d) 그 이상의 의미로, '거친, 천연 그대로의, 난폭한, 미개한',|(e) '야만인들'(통치자와 철학자들에 대해 사용될 때 긍정적인 의미를 지님)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형용사 바르바로스는 70인역본에서 6회 나오며, 라아즈(3937: 불분명하거나 알아들을 수 없게 말하다)의 역어로 '방언 다른'(시 114:1), 바아르(1197: 잔인하다, 야만적이다)의 역어로 '짐승같은'(겔 21:36)이란 의미를 나타낸다. 마카베오이서에서 이 단어는 '야만인'이란 의미로 사용되었다(2:21; 10:4).||#3.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바르바로스는 신약성경에서 6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고전 14:11에서 바울은 바르바로스를 '말더듬(거리)는'이란 의미로 사용한다: "그러므로 내가 그 소리의 뜻을 알지 못하면 내가 말하는 자에게 야만이 되고 말하는 자도 내게 야만이 되리니".||(b) 행 28:2에서 바르바로스는 '토착어를 말하는 자', 즉 헬라인이 아닌 사람들을 뜻한다: "토인들이 우리에게 특별한 동정을 하여 비가 오고 날이 차매 불을 피워 우리를 다 영접하더라". 행 28:4에서도 마찬가지다: "토인들이 이 짐승이 그 손에 달림을 보고 서로 말하되 진실로 이 사람은 살인한 자로다 바다에서는 구원을 얻었으나 공의가 살지 못하게 하심이로다 하더니".||(c) 롬 1:14에서 바울은 그의 사도적 사명의 보편성을 묘사한다: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참조: 롬 1:5).|그는 헬라인들에게 뿐만 아니라 야만인들에게도 설교해야 한다. 그는 로마인들도 헬라인들 가운데 포함시키고 있다. 그렇지만 바울은 유대 세계가 아닌 모든 세계를 바르바로스로 나타낸다. 롬 1:16에는 다른 구별, "유대인과 헬라인"이 나온다. 따라서 우리는 마침내 세 무리, 즉 유대인, 헬라인, 그리고 야만인들로 구별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d) 골 3:11, "거기는 헬라인과 유대인이나 할례당과 무할례당이나 야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분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 여기에는 유대인과 헬라인, 성경적인 관점에서 할례당과 무할례당, 그리고 야만인들과 스구다인에 관한 언급이 나온다. 이 경우에 바울은 유대인을 바르바로이(야만인들) 가운데 포함시키지는 않지만 복음을 통하여 모든 무리들을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총체 속으로 끌어 들이고 있다(H. Windisch, Ⅰ, 546-53).|(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H. Windisch).
고생을 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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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지우다, 내리 누르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바레오(Homer 이래)는 바뤼스($926: 무거운)에서 유래했으며, '짐을 싣다, 짐을 지우다, 무게로 내리 누르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바레오는 70인역본에서 2회 나오며, 히브리어 카베드(3513: 무겁다, 무거운 짐이 되다, 둔하다, 존경하다)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출 7:14에서 마음이 '완강하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바레오는 신약성경에서 6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마 26:43(병행구, 막 14:40 TR). 이 겟세마네 기사에서 바레오는 순전히 물리적 의미로 눈이 '내리 누름을 당하는 것', 곧 피로한 것을 의미한다: "다시 오사 보신즉 저희가 자니 이는 저희 눈이 피곤함일러라".||(b) 눅 9:32에서 바레오는 잠으로 "눌림을 당하는 것(압박 당하는 것)'을 나타낸다: "베드로와 및 함께 있는 자들이 곤하여 졸다가 아주 깨어 예수의 영광과 및 함께 선 두 사람을 보더니".||(c) 눅 21:34,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여기서 바레오는 방탕과 술취함 등의 욕망과 염려로 마음이 눌림, 곧 '압박을 당하는 것'을 나타낸다.||(d) 고후 1:8,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여기서도 바레오는 눌림 당하는 것, 곧 '압박을 당하는 것'을 나타낸다.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은 견딜 수 없을 만큼 극심한 것이므로 견디는 데 필요한 힘을 주시는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하는 것이다(9절).||(e) 고후 5:4,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 진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게 하려 함이라". 여기서 바레오는 피할 수 없는 죽음이라는 사상이 야기시키는 '정신적 압박'에 대해서 사용되었다.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 탄식하는 것은 성령 안에서 사는 삶의 징후이다.|이 탄식은 벗을 것을 기대하는 탄식이 아닌 것 같다. 짐은 죽음 그 자체에 속해 있는 것이며, 성령은 완전함에 대한 유일한 보증이다.||(f) 딤전 5:16에서 바레오는 재정상의 부담을 나타낸다: "만일 믿는 여자에게 과부 친척이 있거든 자기가 도와주고 교회로 짐지지 말게 하라 이는 참과부를 도와주게 하려 함이니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G. Schrenk).
바레오스
barevw"
무겁게, 어렵게.||#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부사 바레오스(Hdt. 이래)는 바뤼스($926: 무거운)에서 유래했으며, 무겁게 heavily, 어렵게 with difficulty를 의미한다. 듣는 것과 관련되어 사용되었다(X.; An.2, 1, 9).||#2. 70인역본의 용법.||부사 바레오스는 70인역본에서 카베드(무겁다, 둔하다)를 번역하여 귀가 '막힌다'는 의미를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부사 바레오스는 신약성경에서 2회 나온다.|마 13:15과 행 28:27은 70인역본, 사 10:6을 인용한 것이며, 그들이 그들의 귀로 어렵게 듣는 것, 즉 그들이 듣기를 원하지 않는 것을 나타낸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EDNT).
바돌로매
Barqolomai'o"
바돌로매 Bartholomew(인)||바르돌로마이오스는 아람어 바르탈메(탈메의 아들)의 음역이며, 신약성경에서 '바돌로매'로 음역했다.|바돌로매는 신약성경에서 4회 나오며, 예수님의 열 두 제자 중의 한 사람이다(마 10:3; 막 3:18; 눅 6:14; 행 1:13). 신약성경에서 그에 대한 언급은 그 이상 없다. 모든 명단에 빌립과 함께 그의 이름이 나오기 때문에 9세기 이후부터 많은 독자들은 그가 빌립의 친구 가나의 '나다나엘'(참조: 요 1:6 이하; 요 21:2)과 동일 인물일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불확실하다.|12제자의 계보(E. A. Wallis Budge, Comtenclings of the Apostles)에 의하면 '바돌로매는 납달리 가문에 속했다. 그의 이름이 원래는 요한이었으나 우리 주님께서 세베대의 아들인 그의 사랑하는 요한 때문에 바돌로매로 개명했다'고 한다. '바돌로매의 복음서'는 제롬(Jerome)에 의해 언급되었으며, 유세비우스는 바돌로매가 인도에서 복음을 전하고 히브리어로 된 마태복음을 인도에 전하고 마침내 물에 빠뜨림을 당하는 죽음으로 순교했다고 한다.|(참조: NBD; ISBE).
바예수
Barihsou'"
바예수 Bar-Jesus||바리에수스는 바르(아들)와 예수아(예수)에서 유래했으며, 그 뜻은 '예수의 아들'이다. 한글 개역 성경에서 '바 예수'로 음역했다.||신약성경에서 "바예수"라는 이름으로 행 13:6에 한번 나온다: "온 섬 가운데로 지나서 바보에 이르러 바예수라 하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 박수를 만나니". 바예수는 구브로의 총독 서기오 바울에게 붙어 사는 마술사(박수)이며, 거짓 선지자이다.|바예수는 "엘루마"라고도 하는데 바울의 전도 사역을 방해함으로 소경이 되었다(행 13:8-행 13:11).|(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바요나
Bariwna'"
바요나 Bar-Jonah.||바리오나스는 아람어 바르(아들)와 요나(요나)에서 유래했으며, '요나의 아들'이라는 뜻이다.|신약성경에서 바리오나스, 곧 바요나는 마 16:17에 한번 나온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바요나는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의 별명이며, 그의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다. 요 1:42; 요 21:15-요 21:17에서는 '요한의 아들'로 표기되어 있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바나바
Barnavba"
바나바 Barnabas(인)||바르나바스는 아람어 바르 나바(예언이나 예언의 아들)의 음역이며, 한글 개역 성경에서 '바나바'라고 음역했다.||(a) 바나바는 구브로 출신인 레위인 요셉의 별명이다. 그의 이름의 의미를 "권위하는 자"라고 한 것은 "권위"가 예언의 중요한 기능이고(행 15:32; 고전 14:3), 또 바나바가 권위하는 사역에 종사했기 때문일 것이다(행 4:36).||(b) 바나바는 공동체를 위해 자기 재산을 팔아 바쳤던 예루살렘 교회의 초기 교인이며(행 4:36; 행 4:37),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며(행 11:24), 복음의 선교사이다(행 14:14).|마가는 바나바의 생질이었다(골 4:10).||(c) 바나바의 선교 활동은 주목할만하다. 그는 사도들 앞에서 바울을 호의적으로 소개했다(행 9:26; 행 9:27).||(d) 그는 예루살렘 교회에 의해 안디옥에 복음 전파자들의 선교를 지원하도록 보냄 받았다(행 11:20; 행 11:22).|그는 안디옥에서 복음 전파자들을 격려하고(행 11:23), 많은 사람들을 믿게 하고(행 11:24), 동역자가 필요하여 바울을 다소에서 안디옥으로 데려오고(행 11:25), 바울과 함께 교회의 신자들을 가르쳤다(행 11:26).||(e) 바나바는 바울과 함께 예루살렘 교회에 보낼 안디옥 교회의 구호금을 전달했다(행 11:27-행 11:30). 바나바와 바울은 부조의 일을 마치고 마가와 함께 안디옥으로 돌아왔다(행 12:25).||(f) 안디옥 교회의 지도자들은 바나바와 바울을 복음 전파자로 파견했다(행 13:1-행 13:3). 바나바는 바울과 함께 안디옥에서 구브로섬으로(행 13:4-행 13:6), 구브로에서 버가로(행 13:13), 구브로에서 비시디아요 안디옥으로(행 13:14), 안디옥에서 이고니온으로, 이고니온에서 루스드라로(행 14:6-행 14:8; 루스드라의 사람들이 바나바를 쓰스[제우스신]라고 했다). 루스드라에서 더베로(행 14:20), 더베에서 다시 안디옥으로(행 14:21) 여행하여 복음을 전했다.||(g) 바나바는 안디옥 교인들에게 1차 전도 여행의 결과를 보고하고(행 14:27), 예루살렘 공회 앞에서 이방 전도 여행의 성과에 대해 보고했다(행 15:1 이하; 행 15:12).||(h) 예루살렘 교회는 예수님에 대한 그의 믿음을 인정 받았으며(행 15:26), 바울과 함께 이방 교회에 예루살렘 교회의 편지를 전했다(행 15:22 이하; 행 15:22-행 15:31).||(i) 바나바와 바울의 관계를 살펴 볼 수 있다. 그들은 마가라 하는 요한으로 인해 서로 심히 다투어 갈라섰다(행 15:36-행 15:39). 바울은 바나바의 가시적 행동에 대해 분노했다(갈 2:13). 그 후에 바나바는 바울과 화해하고 함께 일했다(갈 2:1; 갈 2:9). 바울은 바나바를 일하면서 복음을 전파하는 사도라고 했다(고전 9:6).|(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ISBE; NBD).
중한 것
bavro"
무게 weight, 짐 burden, 힘.||#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바로스는 보다 넓은 의미에서 '몸체의 무게'를 의미했으며, 그 후 비유적 의미로 '존재의 두가지 중요하고 불가피한 성격, 즉 압박하는 고통과 중대한 힘을 의미하는데 사용되었다.|바로스는 헬라와 헬라니즘에서 다음의 의미로 사용되었다.||(a) 바로스의 '물리적 무게'라는 첫 의미는 중성의 기반을 제공한다. 따라서 바로스는 우주론적 토의에서 자연력의 무게(Diod.), 인간이나 동물들의 무게(Polyb.), 임신 pregnancy, 저울 scales(Philo.), 배의 화물(Polyb.)에 대해 사용되었다.|비유적으로 '말의 음조나 강세'를 나타낸다.||(b) 바로스는 실제적 작전 행동의 '공격', '힘이나 폭력'을 의미한다(Diod.).||(c) 바로스는 '충만, 풍부,성숙'을 의미하며, 그 중요성은 무게 보다는 충실이나 내용이다.||(d) 바로스는 ① 몸의 '아픔이나 병', ② 영혼의 '고통, 압박감, 낙담, 의기소침', ③ 과세(세금)의 부담에 대하여 사용되었다.||(e) 바로스는 힘, 즉 중요성, 위엄, 영향력, 세력에 대해 사용되었으며, 예를 들면 ① 개인의 영향이나 위엄, 풍체(Plut.), ② 국가의 힘(Diod.), ③ 군사력(Polyb.)이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바로스는 70인역본에서 5회 나오며, 히브리어 케붓다(3520: 풍부, 부유)의 역어로 사용되었다(삿 18:21).|외경에서 이스라엘의 대적의 '힘'(유딧 9:4; 집회서 13:2)을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바로스는 신약성경에서 6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바로스는 마 20:12에서 종일 '수고한 짐(일)'에 대하여 사용되었다: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만 일하였거늘 저희를 종일 수고와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b) 바로스는 행 15:28에서 '짐'을 나타낸다: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가한줄 알았노니". 이것은 율법의 짐으로부터 해방을 받게 되는 율법의 짐에 관한 것이다. 이 해방은 기독교인들이 그리스도의 쉬운 멍에를 받아들임으로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예루살렘 공회는 이방 그리스도인들에게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하는 외에 더 큰 짐(부담)을 지우고자 하지 않았다.||계 2:24에 나오는 교훈도 짐으로 묘사되어 있다: "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단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이 없노라".||(c) 바로스는 고후 4:17에서 '무게 곧 중요성'이란 의미를 나타낸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기독교인들은 여전히 세상 고통이라는 짐 아래에 있지만, 이 짐은 영광의 무게와 비길 수 없으며(롬 8:18), 잠시 받는 환란은 경한 것이며, 이 짐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무게(중요성)"를 우리에게 이룬다. 여기에는 만다교(Mandean)가 이와 유사한 말들을 사용하는데서 볼 수 있는 것 같은, 공적에 관한 사상이 없다. 고통 중의 새로운 영광은 그리스도의 은혜에 확고하게 근거하고 있으며, 따라서 이것은 삶을 불운으로 보는 헬라적 견해나 만다교의 금욕주의적 혹은 무아경적 영혼의 해방으로 인간성에서 벗어나려는 신비주의적 시도들과는 대조된다.||(d) 갈 6:2,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이 구절은 고통과 관련한 사랑의 임무에 관하여 언급한다. 바울은 그의 편지 독자들에게 서로 서로의 짐을 져줄 것을 격려하고 있다. 그들이 잘못을 저지르게 되면 서로를 도우러 와야 한다. 고통을 함께 나누어 지는 것도 포함된다. 이렇게 함께 짊어지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의 개인적 책임을 제해 버리는 것이 아니다. 결과적으로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의 짐(포르티온, 5절)을 역시 짊어져야 한다.||(e) 바로스는 살전 2:6에서 권위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도로 능히 존중할 터이나 그러나 너희에게든지 다른 이에게든지 사람에게는 영광을 구치 아니하고". 신약성경에서 세속적인 세력이나 힘을 의미할 때, 이 말은 배척해야 할 어떤 것을 나타낸다. 바울이 살전 2:6-7에서 고려하고 있던 것은 "재정상의 짐"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사도적인 권위나 권세이다. 그는 외적인 권세나 풍체로 자기의 권위를 지지하지 않았다.|(참조: G. Schrenk; W. Mundle; Walter Bauer; J. H. Thayer).
바사바
Barsaba'"
바사바 Barsabas||바르사바스는 '사바의 아들'을 의미한다. 신약성경에서 '바사바'로 음역하며, 이 이름으로 두 사람이 등장한다.||#1. 요셉이라 이름하는 사람의 별명.||그는 가룟 유다 대신 사도로 추천 받았다: "저희가 두 사람을 천하니 하나는 바사바라고도 하고 별명은 유스도라고 하는 요셉이요 하나는 맛디아라"(행 1:23; 참조: 행 1:21-행 1:23).||#2. 유다라고 하는 교회 지도자의 별명.||그는 바울과 바나바와 협력하기 위해 안디옥으로 파견되었다: "이에 사도와 장로와 온 교회가 그 중에서 사람을 택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으로 보내기를 가결하니 곧 형제 중에 인도자인 바사바라 하는 유다와 실라더라"(행 15:22).|(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바디매오
Bartimai'o"
바디매오 Bartimoeus(인)||바르티마이오스는 '디매오의 아들'을 의미하며, 한글 개역 성경 '바디매오'로 음역했다.|바디매오는 여리고에서 예수님께 고침을 받은 소경 거지이다(막 10:46-막 10:52). 그는 초대 교회에 잘 알려진 사람이었기 때문에 마가가 기록했다. 이 사건은 예수님께서 마지막 예루살렘 여행에서 여리고를 지날 때 일어났다. 그는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막 10:47; 막 10:48), "랍비"(막 10:51)라고 불렀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바뤼노
baruvnw
내리 누르다, 둔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바뤼노(Homer 이래)는 바레오($916)와 유사한 의미, 즉 '내리 누르다, 짐을 지우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바뤼노는 70인역본에서 51회 나오며, 대부분 카베드(3513: 무겁다, 무거운 짐이되다, 둔하다, 존경받다)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무겁게 하다'(출 5:9; 대하 10:10), '무겁게 짐지다'(합 2:6), '강성하다'(삿 1:35), '완강하다'(출 9:7) 등의 의미를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바뤼노는 신약성경에서 눅 21:34TR에 한번 나온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70인역본의 영향으로 '둔하다'는 의미를 나타낸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