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해설 68 페이지 > 기독정보닷컴

내다
blastavnw
움튼다 sprout, 싹트다 shoot forth.||#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블라스타노(Pind.이래)는 기본어 블라스트(%103)에서 유래했으며,|(a) '싹이 트다',|(b) '산출하다'를 의미한다.|블라스타노는 태어난 어린 아이에 대하여 사용되었다(Soph., Aj.761).||#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블라스타노는 70인역본에서 12회 나오며, 주로 히브리어 차마흐(싹이 트다, 일어나다, 발생하다)의 어형들을 번역한다. 따라서 블라스타노는 식물이 싹이 나거나 열매를 산출하는 것(창 1:1; 욜 2:22; 사 55:10), 머리털이 자라나는 것(삿 16:22), 구원을 내는 것(사 45:8), 소원을 이루는 것에 대하여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블라스타노는 신약성경에서 4회 나타난다.||(a) 막 4:27; 병행구, 마 13:26에서 블라스타노는 씨앗이 싹나는 것에 대해 사용되었다: "저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그 어떻게 된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b) 히 9:4에서 블라스타노는 아론의 싹난 지팡이를 묘사한다: "금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언약의 비석들이 있고".||(c) 약 5:18에서 블라스타노는 열매를 산출하는 것을 표현한다: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참조: J.H.Thayer; Walter Bauer).
블라스도
Blavsto"
블라스도 Blastus(인)||블라스토스는 '싹'을 의미하며 한글 개역 성경에서 '블라스도'라고 음역했다. 블라스도는 신약성경에서 행 12:20에 한번 나오며, 헤롯 아그립바 1세의 시종이다: "헤롯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대단히 노여워하나 저희 지방이 왕국에서 나는 양식을 쓰는고로 일심으로 그에게 나아와 왕의 침소 맡은 신하 블라스도를 친하여 화목하기를 청한지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모독을 받다
blasfhmevw
중상하다, 비방하다 slander, defame, 모독하다 blaspheme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블라스페메오(Pla., 이래)는 일반적으로 '나쁘게 평하거나 말하다, 비방·훼방하다'(blaspheme)를 의미한다.|고전헬라어에서, 신(deity)에 대한 그릇된 표현(예를 들면 신인 동형론적[anthropomorphic] 어법에 의해)이 신성모독으로 기술되기도 하였다(예: Plato). 신의 권위에 대한 의심도 그러하다.|(참조: H.W.Beyer).||#2. 70인역본의 용법||블라스페메오는 70인역본에서 9회 나오며, 하나님의 위엄에 대한 직접적 또는 간접적인 반항을 나타낸다. 이 단어는 이방 적들에 의해 이스라엘이 모욕받는 것을 언급하였다. 예를 들면, 앗수르왕과 비교하여 여호와를 무능한 자로 내리 깍아 "훼방한다"(왕하 19:4[야카: 비난하다]; 왕하 19:6, 22[가답: 모욕하다, 훼방하다]). 이스라엘이 공격을 당할 때 여호와께서 모독을 받는다(마카베오이서 10:34). 사 52:5에서 (나하츠) 포로생활을 통해 하나님의 이름이 간단없이 모독 당함에 대한 관원들의 슬픔은 여호와의 구원적인 간섭의(참조: 사 52:6) 기초적 역할을 한다.|대체적으로 이방인들에게 있어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자기들을 향한 어떤 소망과 도움의 원천이라든지 두려움의 대상조차도 되지 않는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서도 그들은 일반적으로 훼방자들이라는 칭호를 얻기에 족하다(단 3:29[96], 아람어 샬라 또는 샬루).||#3. 신약성경의 용법||블라스페메오는 신약성경에서 34회 나오며, 다음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a) 사람이 목적어로 언급되거나 전제로 될 때 블라스페메오는 일반 헬라어의 용법과 같이 '헐뜯다, 중상하다, 비방하다'는 단순한 의미를 지닌다: 고전 4:13: "비방을 당한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같이 되었도다", 딛 3;2: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근신하며 아담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고전 10:30에서 블라스페메오는 '비난하다'를 의미한다: "만일 내가 감사함으로 참여하면 어찌하여 내가 감사하다 하는 것에 대하여 비방을 받으리요".||(b) 종교적 용법으로, 블라스페메오는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이름을(롬 2:24=사 52:5), 비기독교인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을(약 2:7), 거짓 교사들이 천적 권위들은 물론(유 1:8-유 1:10→988 블라스페미아; 벧후 2:10-벧후 2:12), 교회와 그 믿음을(딤전 1:20; 벧후 2:2)을 모독하고 조롱하는 통념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었다.|유사하게 블라스페메오는 삽입구의 진술에 사용되었다. 기독교인들은 그들의 구원(선)(롬 14:16), 하나님의 이름과 [기독교인의] 가르침(딤전 6:1)이나 하나님의 말씀(딛 2:5)이 비기독교 중에서 비방을 받거나 평판이 나쁘게 되어 조소와 조롱거리가 되게 하는 행위에 대해 경고를 받는다.|블라스페메오는 '모독하다'(blasphemy)라는 실제적 의미로 가장 많이 언급되었다. 그 대상은 하나님 자신이나 예수님과 성령이다. 행 19:37에서 대상은 여신 아데미이다(참조: Josephus Ant. ⅳ. 207; philo Spec. Leg. ⅰ. 53). 하나님에 대한 모독은 계 13:6; 계16:9; 계 16:11; 계 16:21에 명백히 언급되어 있다.|그러나 마 26:65에서 블라스페메오는 예수님과 관련하여 하나님에게 '모독적인 말을하다'를 의미한다: "이에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가로되 저가 참람한 말을 하였으니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보라 너희가 지금 이 참람한 말을 들었도다".|요 10:36에서도 같은 의미를 가진다: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 아들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참람하다 하느냐". (참조: 왕하 19:6; 마카베오이서 10:34; 12:14).||(c) 때때로 블라스페메오는 세속적 의미와 종교적 의미가 결합되어 나타난다.|롬 3:8에서 우리가 '비난을 받는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또는 그러면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 하지 않겠느냐 (어떤 이들이 이렇게 비방하여 우리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하니) 저희가 정죄 받는 것이 옳으니라".|벧전 4:4에 따르면 자기 뜻대로 사는 기독교인들이 그들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비방을 받을 때 하나님이 중상을 당한다: "이러므로 너희가 저희와 함께 그런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아니하는 것을 저희가 이상히 여겨 비방하나".|세속적·종교적 용법은 막 15:29; 마 27:39; 눅 22:65; 눅 23:39에서 나타난다. 블라스페메오는 특히 예수님에 대한 조소와 그의 메시야직의 주장에 대한 조롱을 표현한다. 동시에 이 동사는 이 행위로 말미암아 십자가에 못박힌 자와 하나님 자신이 조롱을 받는다는 것을 강조한다.||(d) 훼방이나 모독의 죄는(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의하면) 인자를 거스리는 훼방까지 포함하여 사함을 받을 수 있다(마 12:31, 병행구, 막 3:28; 눅 12:10). 오직 성령 훼방죄만은 용서받을 수 없다(마 12:32, 병행구, 막 3:29; 눅 12:10). 많은 해석 중에서 가장 설득력이 있는 것은 성령을 훼방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행위들 안에서 성령님을 통해 역사하고 계시는 것을 인식한 자이며, 분명히 의식적으로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마귀에 대한 신앙으로 잘못 전하는 자"라는 견해이다. "이 말씀은 인간 내에 존재한 악마적이며 거의 상상할 수 없는 잠재력, 곧 하나님께 대해 전쟁을 선포하는 것에 대한 극히 심각한 경고"이다. 이것은, 약함과 의심 중에서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에 의해 압도되었던 자, 자신이 전쟁을 선포하고 있는 분에 대하여 매우 잘 알고 있는 자에 의해 행해지는 것이다(E.Schweizer ). 이러한 자는, 문맥이 나타내주고 있는 바와 같이, 은혜의 하나님과 만난 후에 이러한 일을 고의적으로 행하는 훼방자이다. 예수님께서도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들을 쫓아낸다고 비난 받으셨던 것이다. '따라서 성령을 훼방하는 자란, 멀리 떨어져 있는 어떤 하나님을 거스려 말하는 자 즉 하나님께 대하여 단지 어리석게 잘 알지 못하고서 훼방하는 자가 아니라, 그의 은혜로운 사역을 익히 잘 알면서도, 나아가서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신적 인(seal)으로써 은혜의 사역을 명약관화하게 확증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그분을 대적하는 자를 의미한다. 그는 오히려 훼방이 아닌 감사를 드려야 할 자이다'(A.Schlatter).|레인(W.L.Lane)은 신 32:38(끝부분)에 대한 시프레(Sifre)에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찬송하리로다 거룩하신 분께서는 모든 일을 사하시나 그 이름의 모독(profanation, 즉 훼방 blasphemy )에 대해서는 즉시 보복하시는도다". 이어서 레인(Lane)은 여기서 주석을 달고 있다. '이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가져오신 구속을, 사탄에 의한 작용의 소치로 돌린 서기관들이 안고 있던 위험이었다. 귀신들의 축출은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했다는 증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서기관들이 비난한 것은, 하나님의 성령의 권능과 위대하심에 대한 거부나 마찬가지였다. 서기관들이 예수님의 행위의 기원을 귀신에게 돌린 것은, 영(spirit)에 대한 곡해를 무심코 드러낸 것으로서, 그들은 진리에 대항하여 빛을 어둠이라고 부르기를 택하였던 것이다. 이 역사적인 문맥에서, 성령에 대한 훼방은, 예수님의 말씀과 행위를 통해 발현되는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능력과 은혜에 대한 의식적이고 고의적인 거부를 의미한다'. 따라서 여기에서의 훼방은 신자가 회개와 믿음에로 나아오기 전에 행할 수도 있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것이다.|렌스키의 해석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모든 죄와 훼방, 심지어 말로 인자를 거역하는 죄까지도 사하심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예외는 성령을 훼방하는 죄이다 여기에는 사죄의 가능성이 없다. 다른 모든 훼방들은 회개를 불가능하게 하지 않는다. 회개를 낳는 것은 성령의 특수 사역이다. 그러므로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영원히 성령과 그의 사역을 거절하거나 추방하는 상태를 초래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그의 신적 능력으로 바리새인들이 얼마나 이 상태에 접근했는가를 보실 수 있었다. 우리의 제한된 능력으로는 그처럼 분명히 판단할 수 없다. 이런 이유 때문에 어느 누가 아무리 훼방한다 해도 그가 이 성령 훼방죄를 범했다고 결코 말할 수는 없다. 이 선고는 하나님의 권한에 속한다. 여기 예수님의 말씀과 히브리서 말씀(히 6:4-히 6:6)은 우리가 하나의 경고로만 사용할 수 있을 뿐이며 이것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그 누가 이 사함 받지 못하는 죄를 범했을까 두려워하는 자는, 또는 자신들이 사함을 받을 수 없는 죄를 범했다고 두려움에 괴로워하는 자는 그런 죄를 범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 누구도 이 죄를 무심코, 무의식적으로 범할 수는 엇다. 이 범죄는 말씀을 통해서 성령께서 그 사람에게 오셔서 그의 신적 능력과 구원의 은혜를 가지신 하나님의 성령으로 명확히 인정되었을 때만 가능하다. 어떤 사람이 고의로 성령을 훼방하여 대답할 때 그는 그를 변화시키는 능력까지도 영원히 무효로 만든다. 그러면 그의 상태는 이 변할 수 없는 마귀와 지옥의 상태가 된다(R.C.H.렌스키).|(참조: Walter Bauer; O.Hfius; H.Wahrisch; C.Brown; H.W.Beyer).
참람됨
blasfhmiva
비방, 중상 slander, defamation, 모독 blasphemy.||#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블라스페미아(Eur., Democr. 이래)는||(a) '욕설',|(b) '중상, 비방(하는 말)',|(c) '신성 모독적인 언사'를 의미한다.|고전 헬라어에서 신(deity )에 대한 그릇된 표현이 신성모독으로 기술되기도 하였다(예: Plato). 신의 권위에 대한 의심도 그러하다.|(참조: H.W.Beyer).||#2. 70인역본의 용법||블라스페미아는 70인역본에서 7회 나온다. 이 단어는 겔 35:12이하(네아차, 경멸)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모독하는 것, 마카베오이서 8:4에서 주의 이름이 모독을 받는 것, 마카베오일서 2:6에서 신성모독을 나타낸다.||#3. 신약성경이 용법||블라스페미아는 신약성경에서 18회 나오며, 다음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a) 블라스페미아는 사람과 관련하여 사용될 때, '중상, 비방, 욕설, 험담'이란 의미를 지닌다: 계 2:9; 막 7:22 및 병행구 골 3:8; 엡 4:31; 딤전 6:4.||(b) 블라스페미아는 종교적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 명사는 여러 구절에서 하나님에 대한 모독(훼방)을 나타낸다: 막 3:28; 마 12:31; 막 14:64; 마 26:65; 눅 5:21; 요 10:33; 계13:1; 계 13:5; 계 17:3. →987 블라스페메오,||(c) 논쟁의 대상이 되는 구절은 유1:9이다.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대하여 마귀와 다투어 변론할 때에 감히 훼방하는 판결을 쓰지 못하고 다만 말하되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 하였거늘." 거짓 교사들을 소돔과 고모라인들에 빗대어 말하고 있고(유 1:7), 육체를 더럽히며 권위(kyrioteta ; 참조: 9절의 Kyrios 의 사용)를 업신여기고 영광스러운 자들, 또는 영광들을 훼방한다고 비난하였다(유 1:8).|구약에는 단지 "그가(여호와) 그를(모세) 벳므올 맞은편 모압 땅에 장사지내셨다"(신 34:6, 한글개역: "벳므올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골짜기에 장사되었고")고만 기록되어 있다. 켈리(Kelly)는, 70인역본이 동사를 복수로 바꿈으로써("그들이 장사지냈다"), 신의 의인화(anthropomorphism)를 달갑지 않게 여겨 이를 제거하고자 시도하였다고 기술한다(op. cit., 265). 그러나 필로는 "불멸하는 천사적 권능들이 그를 장사지냈다"고 기술한다(Vit. Mos. 2, 291). 몇몇 초대 기독교 저술가들은, 유다의 기술이 모세 승천기에서 유래하였다고 생각했다. 이 책은 일찍이 1세기에 한 바리새인이 쓴 작품으로서 그것은 곧 헬라어로 번역되었던 것이다.|켈리(Kelly)는, 크리신 …블라스페미아스를 "그의 훼방에 대한 심판"보다는 "훼방하는 심판"(a reviling judgment )으로 번역해야 문맥과 더 잘 어울리는 이상, 이것이 가장 훌륭한 번역이라고 생각하였다. 천사장은 모세의 시체를 장사 지내는 일을 위임받았다. 그러나 사탄은 물질계의 주권자로 이 시체가 자신의 것임을 주장하며 또한 애굽인을 살해한 것에 대해(참조: 출 2:12) 모세를 고소하겠다고 위협하며 그를 방해하려고 최선을 다하였다. 이 진술의 요점은 천사장 미가엘이라 할지라도 욕설과 같은 것으로 응수하지 않고 슥 3:2에서 발견되는 기원(imprecation)을 사용함으로 사탄을 꾸짖는 책임을 하나님께 맡겼다는 것이다. 아마도 우리는 이 배경에서 사람이 저주를 하는 것 뿐만 아니라 훼방하는 것 역시, 그가 가히 맞설 수 없는 지극히 큰 권능에 대한 도적 행위임을 알아야 된다는 고대 개념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본문은 계속하여 "이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그 알지 못하는 것을 훼방하는도다 또 저희는 이성 없는 짐승 같이 본능으로 아는 그것으로 멸망하는도다"라고 말한다(유10; 참조: 고전 2:7-고전 2:16). 이 구절에는, 신령하지 못한 자들은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는 하나님을 훼방하기까지 한다는 의미가 있다. 따라서 이 의미는 공관복음서들에 나오는 의미와 유사하다고 생각된다(위의 5를 보라). 한편 여기에는 신자는 심판을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는 의미도 있을 수 있다(참조: 롬 12:19; 신 32:35).|(참조: Walter Bauer; H.Wahrisch, C.Brown; O.Hofius; H.W.Beyer).
모독 하는
blavsfhmo"
중상적인 salanderous, 모독적인 blasphemous, 모독자, 훼방자 blasphemer.||#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블라스페모스(Demosth. 이래)는 '욕하는, 중상적인, 비방하는, 모독적인'을 의미하며, 행위나 행위자의 성질을 표현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블라스페모스는 70인역본에서 6회 나오며, 언제나 70인역본에서 하나님의 위엄에 대한 직접적 또는 간접적 반항적인 측면을 나타낸다.|따라서 이 단어는 지혜서 1:6; 집회서 3:16에서 신성 또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을 표현한다. 사 66:3에서도(나아스) 모독자를 나타낸다. 이스라엘이 공격을 당할 때 여호와께서는 모독을 받는다(마카베오이서 9:28; 10:4).||#3. 신약성경의 용법||블라스페모스는 신약성경에서 5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블라스페모스는 사람과 관련될 때 '욕하거나 중상하는' 것을 나타낸다: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딤후 3:2).|블라스페모스는 벧후 2:11에서 천적 존재나 권위들을 거스려 모독하고 조소하는 것을 표현한다: "더 큰 힘과 능력을 가진 천사들이라도 주 앞에서 저희를 거스려 훼방하며 송사를 하지 아니하느니라".||(b) 유대인의 견해에 따르면 신성모독자는 경솔하게 토라를 거역하여 말하는 자이다(Sipre Num. 112 on 15:30).|행 6:11에서 고발은 스데반이 모세(즉 토라)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였다는 것이다: "사람들을 가르쳐 말시키되 이 사람이 모세와 및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하는 것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게 하고".|행 6:13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거짓 증인들을 세우니 가로되 이 사람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스려 말하기를 마지 아니하는도다". 이 고발은 당국자들이 매수한 거짓 증인에 의한 것이다.||(c) 딤전 1:13에서 십자가에 못박힌 자 예수님에 대한 모독(훼방)과 관련하여, 박해자 바울은 모독하는 자(훼방자)로 묘사된다: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참조: Walter Bauer ; H.Wahrisch; C.Brown; H.W.Beyer; O.Hofius ).
블렘마
blevmma
봄 look, 일견 glance.||#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블렘마(Eur. 이래; Demosth.)는 블레포($991: 보다)에서 유래했으며, '봄, 일견'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블렘마는 신약성경에서 벧후 2:8에 한번 나온다: "(이 의인이 저희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을 상하니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돌아보다
blevpw
보다 see.||#1.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블레포(Aeschyl. 이래)는 '보다 see'를 의미하며, 호라오($3708: 보다)에서보다 눈의 기능에 더 강조를 둔다. 따라서 블레포는 '눈이 멀다'의 반대어 역할을 한다.|그리고 이 단어는 '알아차리다, 인지하다' 심지어 '통찰(간파)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2. 70인역본의 용법||블레포는 70인역본에서 130회 나오며, 히브리어 '라아, 파나, 하자' 등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블레포는 70인역본에서 '보는 것, 인지하거나 보는 능력, 환상' 등에 대하여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블레포는 신약성경에서 132회 나오며,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되었다.||(a) 블레포는 감각-지각작용 중에서 단순히 '보는 능력' the capacity to see 을 뜻한다(마 12:22; 눅 7:21).||(b) '조사하다, 관찰하다'를 의미한다(마 5:28; 계 5:3이하).||(c) 블레포는 '주의하다, ∼에 주의를 기울이다'(막 13:33; 고전 1:26), '어떤 것을 주의하다'(고후 10:7), '혹은 조심하다'와 같은 지적인 기능들을 나타낸다.||(d) 블레포는 비유적으로 '알아차리다, 인지하다' 혹은 '관찰하다'를 의미할 수 있다(롬 7:23; 히 2:9).||신약성경은 '하나님을 보다'라는 말을 할 때, 블레포(blepo)라는 말을 쓰지 않고 있다(TDNT V 343f.).|(참조: Walter Bauer; K.Dahn; W.Michaelis).
넣어야 하다
blhtevo"
넣어야 하는.||#1.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블레테오스는 발로($906: 던지다)에서 유래했으며, '던져져야 하는' 혹은 '넣어야(놓아야) 하는'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블레테오스는 신약성경에서 눅 5:38에 한 번 '넣어야 하는'이란 의미로 나온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보아너게
Boanergev"
보아너게 Boanerges||보아네르게스는 '우뢰의 아들'을 의미하며, 예수님께서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에게 붙여 주신 별명이다(막 3:17). 이 명칭은 뇌우에 비견될 수 있는 격렬하고 파괴적인 열심을 나타내는 것 같으며, 그들의 성격을 적절하게 반영해 준다(막 16:35-막 16:39; 참조: 눅 9:54). 제롬(Jerome)은 그것을 그들의 불을 뿜는 듯한 열변과 관련하여 생각했으나 혹자는 그것을 그들의 불같은 성격과 관련된다고 보았다. 열 두 제자 가운데 야고보는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으며, 요한은 가장 오래 살았다. 혹자는 그들이 한 때 열심당원이나 혁명 당원이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아마도 그 성질은 야고보의 죽음의 원인이었을 것이고(행 12:2), 요한의 기록들에서 하늘의 소리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참조: NBD; PEB; ISBE).
보아오
boavw
부르다, 외치다, 소리 지르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보아오(Homer 이래)는 보에($995: 울음소리)에서 유래했으며,||(a) '무척 기뻐하다',|(b) '선언(포)하다',|(c) '부르다, 불러내다',|(d) '부르짖다, 외치다, 소리지르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보아오는 70인역본에서 약 15회 나오며, 20개의 히브리어를 번역한다. 가장 중요한 신학적 용법은 곤궁에 처하여 울부짖는 것에 관한 것이다. 예를 들면, 억압당한 자들(삿 10:10), 무고한 피(창 4:10), 노동자들(신 24:15), 토지(욥 31:38)의 부르짖음. 하나님은 이런 부르짖음에 대해 즉각 응답해 주실 것이다.|(참조: 출 22:21이하).||#3. 신약성경의 용법||보아오는 신약성경에서 12회 나오며, 사복음서, 사도행전, 갈라디아서(1회)에만 사용되었다.||(a) 막 15:34에서 보아오는 문자적 의미로 예수님의 고뇌의 외침에 대해 사용되었다: "제 구 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십자가에서의 이 외침은 시 22:1의 말씀에 나오는 바와 같이 하나님이 버리심이라는 의미의 비참함을 표현한다. 문자적 의미 그대로를 따른다면 이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이 그들의 역사를 통하여 경험한 그 비참함을 예수님도 경험하셨음을 시사하고 있다.|그러나 그 상황에서는 두가지의 아이러니(irony)가 존재한다. 왜냐하면 이 비참함을 경험하시는 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셨고 또한 이방인의 손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의 손에 의해 이것을 경험하시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많은 주석가들은 이 외치심이 시편 전체의 맥락에서 채택되어 있다고 생각하며 이 외치심 시편에서는 이것이 "절망의 울부짖음이 아니라 여전히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의뢰하며 하나님께서 변호해 주실 것을 확신있게 기대하는 의로우면서도 고난 받는 자의 기도이다(시 22:24, 시 22:26을 참조)".(D.Hill, The Gospel of Matthew; G.H.Dalman, Jesus-Jeshua; K.Stendahl, THe School of St. Matthew).||(b) 마 3:3에서 보아오는 세례(침례) 요한의 선포의 외침을 나타낸다: "저는 선지자 이사야로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하였느니라"(병행구, 막 1:3; 눅 3:4; 요 1:23; 사 40:3의 인용). 공관복음서 기자들은 이 구절을 예언의 성취로 보며 요한은 이 인용문을 세례(침례) 요한의 자신의 사명에 대한 인식으로 돌린다. 세례(침례) 요한은 자기 자신이 외치는 소리이며, 그의 전달문은 사 40:3에 나오는 외침의 기독론적 해석이었다. 주님의 도래를 위해서 광야에서 예비하는 예비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인물에게서 주님의 도래를 예비하는 백성들의 예비의 한 형태로 나타난다(C.H.H.Scobie; D.Hill; K.Stendahl; R.H.Gundry).||(c) 눅 18:7에서 보아오는 도움을 간청하는 부르짖음을 표현한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눅 18:38에서 보아오는 도움을 간청하는 외침을 표현한다: "소경이 [외쳐] 가로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d) 행 8:7에서 보아오는 귀신들이 외침(비명)을 발하는 것을 나타낸다: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앉은뱅이가 나으니".||(e) 행 17:6; 행 21:34에서 보아오는 소리치거나 높은 소리로 말하는 것을 표현한다.||(f) 갈 4:27에서 보아오는 '기쁨의 외침'을 표현한다: "기록된 바 잉태치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구로치 못한 자여 소리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 여기서 사 57:1은 이스라엘과 대조하여 교회에 적용된다(참조: 2Clem. 2:1이하). 이 인용문은, 이삭과 이스라엘, 사라와 하갈, 위의 예루살렘과 현재의 예루살렘, 새 언약과 시내산에서 받은 언약, 자유인으로 태어난 자녀와 종으로 태어난 자녀를 비교하는 논쟁의 문맥에 나온다. 각각의 경우에 있어서 후자는 율법 하에 있는 욕망에 의해 상속받는 종의 신분이 특징이며(참조: 21절) 전자는 약속에 의해 상속받는 자인 것이 특징이다(참조: 28절). 신자들이 하나님의 약속들로 말미암아 생활하는 한 사 40:3의 약속과 자유와 기쁨이 그들에게 부여된다.|(참조: J.H.Thayer; E.Stauffer).
소리지름
bohv
부르짖음 cry out, 외침 shout.||#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보에(Homer 이래)는 '부르짖음, 외침'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보에는 70인역본에서 약 18회 나오며, 보에는 삼상 9:16과 출 2:23에 나온다. 이 두 구절은 각각 하나님의 백성들이 고통 중에서 부르짖음을 나타내며, 울부짖음을 하나님께서 무시하지 않으신다는 내용이다.||#3. 신약성경의 용법||보에는 신약성경에서 약 5:4에서 한번 나온다: "보라 너희 밭에 추수한 품꾼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지르며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 여기서는 억압받는 자들의 울부짖음이다.|(참조: Walter Bauer; E.Stauffer).
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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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 help.||#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보에데이아(Thu. 이래)는 보에데오($997: 돕다)에서 유래했으며, '도움' help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보에데이아는 신약성경에서 2회 나오며, 행 27:17과 히 4:16에만 사용되었다.||(a) 행 27:17에서 항해 용어로 사용되었다: "끌어 올리고 줄을 가지고 선체를 둘러 감고 스르디스에 걸릴까 두려워 연장을 내리고 그냥 쫓겨가더니".||(b) 히 4:16에서 하나님의 '도움'에 대해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도와주다
bohqevw
돕다 help.||#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보에데오(Aeschyl., Hdt. 이래)는 보에($995)와 데오(%407: 달리다)에서 유래했으며,||(a) 본래 '도우라는 부름에 달려가다, 서둘러 피압박자를 도우러 가다',||(b) 그 다음에 '돕다'를 의미하게 되었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보에데오는 70인역본에 112회 나오며, 히브리어 아자르(5826: 돕다, 구제하다, 구원하다', 에즈라(5833: 도움, 원조, 조력자)의 역어로 '도움, 도우다'라는 의미를, 야샤(3467: 구원이나 구조하다, 해방하다)의 역어로 사용되어 '구원하다'를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보에데오는 신약성경에서 8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보에데오는 '도우라'는 부름에 대해 사용되었다.|① 마 15:25에서 가나안 여인이 귀신들린 딸을 위한 도움을 요청했다: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② 막 9:22에서 간질병 든 소년의 아버지가 아들을 위한 도움을 요청했다: "귀신이 저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막 9:24에서 그 소년의 아버지는 자기의 믿음을 위한 도움을 요청했다: "곧 그 아이의 아비가 소리를 질러 가로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하더라".|③ 행 16:9에서 한 마게도냐 사람의 요구에 대해 사용되었다: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가로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④ 행 21:28, "외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도우라 이 사람은 각처에서 우리 백성과 율법과 이곳을 훼방하여 모든 사람을 가르치는 그 자인데 또 헬라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서 이 거룩한 곳을 더럽게 하였다 하니".||(b) 고후 6:2(사 49:8 인용)에 하나님은 구원의 날에 도우신다: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c) 히 2:18에서 그리스도는 도울 수 있는 분으로 나타난다: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d) 계 12:16에서 땅이 용의 추격을 받는 여자를 도왔다: "땅이 여자를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키니".|(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돕는 자
bohqov"
돕는, 돕는 자.||#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보에도스(Hdt. 이래)는 보에데오($997: 돕다)에서 유래했으며, '돕는'을 의미하며, 실명사로 '돕는자'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형용사 보에도스는 59회 나오며, 히브리어 에제르(5828: 도움, 원조, 원조자, 조력자), 아자르(5826: 돕다, 구제나 구원하다)의 역어로 '도우다'(창 2:18; 출 18:4; 신 33:7; 시 70:6; 대상 12:18; 욥 29:12)라는 의미로, 추르(6697: 바위, 낭떠러지, 절벽)의 역어로 '바위, 반석'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보에도스는 신약성경에서 히 13:6에 한번 나온다: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 여기서 보에도스는 하나님에 대하여 '돕는 자'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하나님은 의인을 돕는 자이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보뒤노스
bovquno"
구덩이 pit.||#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보뒤노스(Cratinus 210; X. 등)는 아마도 바뒤스($901: 깊은)에서 유래한 듯하며, '구덩이, 구멍'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보뒤노스는 70인역본에서 13회 나오며, '구덩이'(사 51:1), '함정'(사 24:17, 18; 렘 48:43, 44), '골짜기'(왕하 3:16; 렘 48:28)에 대하여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보뒤노스는 신약성경에서 3회 나온다.||(a) 마 12:11에서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진 양에 대해 사용되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붙잡아 내지 않겠느냐".|랍비서의 병행구에 보면 '도랑'이나 큰 물통(물을 저장하는 구덩이)을 가리키는 것 같다.||(b) 마 15:14과 병행구 눅 6:39에서 소경이 도랑이나 구덩이에 빠지는 것을 나타낸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