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을 것
brw'ma
음식 food.||#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브로마(히포크라테스 이래로)는 비브로스코($977: 먹다)에서 유래했으며,||(a) 먹는 것, 즉 '음식',|(b) '먹은 일'을 의미하며, 드물기는 하지만,|(c) 비유적으로, '영생의 음식'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브로마는 70인역본에서 약 75회 나오며, 주로 히브리어 아칼(먹다)의 파생어들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이 단어들은 '양식, 먹을 것, 고기, 열매, 연료'를 의미한다.||#3. 신약성경의 용법||브로마는 신약성경에서 17회 나오며, 그 중 10회가 바울 서신에 나온다.||(a) 브로마의 문자적 의미.|① 마 14:15에서 보면 모인 무리들에게는 먹을 것이 필요했다: "저녁이 되매 제자들이 나아와 가로되 이 곳은 빈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소서".|눅 3:11에서 보면 우리는 음식을 나눠먹어야 한다: "대답하여 가로되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하고".|눅 9:13에서 무리들의 식사에 대해 묻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고 명령하신다. 제자들이 먹을 것을 주는 것은 전혀 불가능한 일이었다. 인간적 불가능성이 확인된 곳에서 신적 가능성이 나타나는 것이다(이상근). 그러므로 제자들은 주님의 능력에 기대를 걸어야 한다.|② 딤전 4:3이하에서 음식은 신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아야할 하나님의 선물로 간주되고 있다.|어떤 음식을 먹어서는 안될 금기로 규정하는 금욕적, 제의적 경향은 신약성경에서는 그릇된 가르침으로 배제되고 있다(딤전 4:3이하; 히 13:9; 히 9:10). 어떤 음식도 그 자체로 부정한 것이 아니며(막 7:18이하; 참조: 행 10;14이하), 따라서 어떤 음식도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관계에 대하여 어떤 특수한 의미를 갖지 못한다: "식물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아니하여도 부족함이 없고 먹어도 풍족함이 없으리라"(고전 8:8).|"식물은 배를 위하고 배는 식물을 위하나 하나님이 이것 저것 다 폐하시리라 몸은 음란을 위하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며 주는 몸을 위하시느니라"(고전 6:13).|우리가 하나님의 구원에 참예하느냐 못 하느냐 하는 것은 음식에 관한 어떤 특정한 계명이나 금기를 지키느냐 안 지키느냐에 달려 있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에서 실현된다(롬 14:7).|하지만, 만약 어떤 형제가 아직도 어떤 특정한 음식(가령, 우상 앞에 제물로 드렸던 고기)을 먹는 것이 금기이며, 또한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 일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까닭에, 그 음식을 먹음으로써 양심의 가책에 빠질 위험이 있다면, 기독교인은 그러한 음식을 먹지 않아야 할 것이다(롬 14:15, 롬 14:20; 고전 8:13).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시험에 약한 형제들을 위해 죽으셨거니와 지식에 있어서 "강한"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형제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어떤 특정한 음식을 먹지 않을 수도 있어야 한다. 하지만, 죄지을 가능성은 우상 앞에 놓았던 음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전 8:4), 사람 자신 속에 있는 것이다(참조: 고전 10:27).||(b) 브로마의 비유적 의미|① 고전 10:3에서 언급되고 있는 하늘의 음식은 땅의 음식이 고갈되었을 때 기적적인 방식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살려준 만나이다. 이 음식은 유형론적으로 해석되어, 주의 만찬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② 브로마는 고전 3:2에서 영적 음식에 대해 사용되었다: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젖"은 구원의 계시의 사실들을 선포한 첫 전도의 말씀이고, "단단한 음식"은 그 의미를 밝혀 신령한 자들에게 말한 지혜의 말씀이다. 간단히 말하면 전자는 복음의 초보이고 후자는 복음의 해석이다. 진정한 말씀의 선포는 언제나 듣는 이에게 받아들여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믿음에는 성숙의 과정이 있으므로, 믿음에 있어서 "어린 아이"는 아직 하나님의 지혜의 심오한 진리를 "소화"할 수 없다. 그것은 그에게는 너무나 딱딱한 음식이다.|요 4:32에서도 음식은 은유적 의미로 언급되고 있다. 여기에서 예수님은 놀랍게도 자기 아버지께서 그에게 부탁하신 일을 성취하기 위해 행한 사역을, 자기가 먹고 사는 양식(브로시스); 다른 표기 브로마로 표현하고 있다. 예수님의 행위들, 아니 실로 그의 전 생애는 하나의 계시인 바, 이 계시는 예수님 자신에게서 유래된 것이 아니고 그가 자기 아버지로부터 받은 것이다. 그의 사역은 이 계시를 삶으로 표출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사역을 자신 이 먹는 음식으로 표현했다는 것(요 4:32, 요 4:34)은, 그가 "이 일을 위하여 왔을 뿐 아니라, 실로 이 일을 통하여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R. Bultmann, The Gospel of John).|(참조: J. Behm; H. Kropatsche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