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리
Galilaiva
갈릴리 Galilee||#1. 갈릴리(지방, 영토)||갈릴리는 팔레스타인의 북부지역, 요단의 서편을 가리켜 구약성경에서 다소 막연하게 사용하게 된 명칭이다. 갈릴리는 히브리어 명칭으로, 왕하 15:29에서 '하갈리아', 수 20:7; 수 21:32에서 '하갈릴', 왕상 9:11에서 '에리츠 갈릴'로 표기되었다. 그 의미는 '원', 혹은 '순회'라는 뜻이다.|갈릴리는 원래 가나안을 분배할 때 스불론지파(수 19:10-16), 아셀 지파(수 19:24-30), 납달리지파(수 19:32-39)에게 할당되었으나, 삿 4장, 5장에 기록된 유혈 전쟁에도 불구하고 이 지파들 중 어느 지파도 가나안 원주민을 쫓아내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삿 1:30-33). 히브리 왕조 시대에 갈릴리는 시리아 전쟁으로 고통 당했다. 갈릴리는 벤 하닷에게 유린되었으며(왕상 15:20) 그 후 아람왕 하사엘의 지배를 받았다(왕하 12:18; 왕하 13:22). 주전 734년 디글랏 빌레셀 3세는 앗수르 군대를 위해 대로를 건설하였고(왕하 15:29) 많은 거민을 포로로 잡아갔다. 사 9:1(ASV 난외)에서 갈릴리는 "열방의 지역"으로 지칭되어 있다. 마케베오일서 5:15은 갈릴리를 "이방인들의 갈릴리"라고 부름으로써 이 지역의 이방인들과의 혼합성을 지적하였다. 일부 유대인들은 포로에서 돌아와 갈릴리에 정착하였다.|갈릴리는 다양한 정치적 운명을 겪는 가운데 주민들이 혼합되었으며, 그들만의 독특한 언어 및 방언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예루살렘 유대인들은, 그들의 언어 습관을 통하여 갈릴리인들을 쉽게 식별할 수 있었다(마 26:69-73; 막 14:70; 요 7:41); 아람어를 사용하는 갈릴리인의 발음은 특이했다. 특히 후음이 그러했다.|갈릴리 지역의 정확한 경계는 시대마다 다르다. 그리스도 시대에 갈릴리는 잘 구획된 로마 속주였다. 이 지역은 상부 갈릴리와 하부 갈릴리로 구분되었으며, 하부 갈릴리는 에스들론 평원 일부와 요단강, 갈릴리 바다를 포함하며 보다 낮고 평평하다. 상부 갈릴리는 봉우리가 2000~4000피트에 이르는 산과 산악 고원 지대였다(마 28:16). 나사렛은 이곳의 중심에 위치하였으며, 예수님으로 하여금 방대한 범위의 지리적 환경을 접할 수 있게 하였다. 강에 의해 물을 풍부하게 공급 받는 갈릴리는 매우 비옥하였다. 골짜기마다 풍성한 곡물과 목초지가 있었고 향료, 올리브 및 고산지대에서 나는 다른 열매들이 많이 산출되었다. 갈릴리 지역은 도로도 잘 갖추어져 있었다.|구약성경의 "바다의 길"(사 9:1)은 하부 갈릴리를 통과하였다. 애굽과 아라비아와 시리아 상인들이 대상로를 따라 이동하였다. 이 길은 오늘날에도 따라갈 수 있는데, 나중에 이 길 위에 로마 도로가 포장되었다.|그리스도 시대에 갈릴리인들의 생활을 특징짓는 물질적 풍요와 넓은 시계는 예수님의 비유에 반영되어 있다(마 20:1-8; 마 21:33; 마 25:14; 막 4:3; 마 13:34; 눅 13:6-9).|예수님 당시에 갈릴리는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았으며, 갈릴리 분봉왕 헤롯 안티바스가 통치하였다(B.C. 4 - A.D. 39)(눅 23:5-7). 헤롯 안티바스는 분봉왕으로 임명된 후에 락카드(Rakkath) 지역 근처에 수도를 세우고 왕에게 입은 은택을 기념하여 디베랴로 명명하였다.|갈릴리에는 가나안 땅을 분배할 당시에 60개 이상의 성읍이 있었던 것으로 언급되어 있다. 갈릴리의 성읍으로는 하솔(삿 4:2); 디베랴를 세우기 전 갈릴리 수도였던 셉포리스(Sepphoris),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하리라(마 5:14)고 하신 말씀에 나온 그 동네와 유사한 사베드(Safed), 여전히 활력이 넘치는 농업 마을인 가나(요 2:1-11), "도피성" 가데스(요 21:32); 바니아스(Banias)에 인접한 가이사랴 빌립보(마 16:13), 예수님께서 자라나신 동네 나사렛(눅 2:39; 눅 2:51); 그 유적지가 오늘날 광범위하게 남아있는 가버나움(마 4:13; 마 9:1; 눅 10:15); 고라신(마 11:21); 벳새다 혹은 율리아스(눅 9:10; 요 1:44)등이 있다.|갈릴리 사람들은 그들의 종교와 나라에 헌신적이었다.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순례여행을 하였으나(요 4:45), 순수한 혈통을 지닌 보다 엄격한 정통파인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에게 어딘지 모르게 건방진 모욕으로 멸시 받았다. 일상적으로 헬라 및 로마인의 생활과 접촉하는 유대교와 갈릴리인 사이의 이 묘한 긴장 때문에 예수님은 가장 초기에 제자들을 모았던 것이다.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 빌립, 바돌로매, 도마, 마태, 작은 야고보, 다대오, 열심당원 시몬은 모두 갈릴리인이었다. 마리아라 이름하는 여자 중 하나는 막달라 출신이었다. 처음의 12제자 중에서 유일한 유다 출신 가룟 유다가 제외되고 이제 100% 갈릴리인으로 이루어진 사도의 무리가 오순절에 구경꾼들의 중언으로 확증된다(행 2:7). 예수님은 이 갈릴리사람들이 가진 더 큰 경험과 더 넓은 사고방식에 호소하였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들을 통하여 "그의 이야기를 기쁘게 들은"(막 3:7) 큰 무리를 모았다. 예수님의 말씀과 행하신 일들은 갈릴리인들의 마음 속에 오래도록 기억되었으며,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행하신 사역에 관한 많은 기록들이 복음서에 기록될 수 있었다. 갈릴리인 베드로가 겪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대한 신비한 경험으로 기독교는 승리의 길을 내딛게 되었다(막 14:28; 요 21:1-23).|빌라도가 예수를 심리할 때 피고인이 '갈릴리인'인지 물었을 때(눅 23:6), 그는 이전에 문제를 일으킨 갈릴리인들에 대한 자신의 인기를 떨어뜨린 판결을 염두에 두고 있었으며(눅 13:1-3), 이 나사렛인 예수님에 대한 판결을 헤롯 안티바스에게 넘겨주고자 하였던 것이다.|주후 6년에 갈릴리인 혁명가 유다(행 5:37)는 "우리에겐 하나님 외에 주가 없다"고 가르쳤다.|"갈릴리에서 무슨 선지자가 나겠느냐"는 비웃음은 드보라, 요나, 엘리사를 간과한 것이었으며, 갈릴리인들의 문화적, 종교적, 애국적 특성을 반영한 것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대도시의 관료적인 유대인의 선입견을 드러낸 것이었다.|로마와의 전쟁에서 상부 갈릴리의 고지대 사람들이 유대의 도움을 받지 않고 일년 동안 로마 군대에 맞서 버티는 동안 150,000명의 갈릴리인들이 죽음을 당했다. 예루살렘이 끝내 멸망하자(주후 70년) 거처를 잃은 랍비 학파들이, 경멸 받던 갈릴리에서 도피처를 찾았으며, 사베드(Safed)와 디베랴가 그 중심지가 되었다. 미슈나와 "예루살렘 탈무드"가 그리스도교 시대의 초기에 갈릴리에서 쓰여졌다.||#2. 갈릴리 바다||갈릴리 바다는 북팔레스타인에 있는 심장 모양의 담수호. 요단강 수로의 필수적인 부분이다. 성경에서 여러 이름으로 나타난다. 신약성경에서는 갈릴리 바다(마 4:18, 마 15:29; 막 1:16; 막 7:31; 요 6:1); 디베랴 바다(요 6:1; 요 21:1); 게네사렛 호수(눅 5:1); 4회는 "호수"(눅 5:2; 눅 8:22 이하; 눅 8:33); 몇 회는 "바다"(요 6:16-25)라고 언급되어 있다. 구약성경에서 이 호수는 "긴네렛(하프) 바다"(민 34:11; 수 13:27) 혹은 "긴네롯"(수 12:3)으로 알려져 있다.|이 호수의 길이는 약 13마일, 너비는 8마일이고 표준 해수면 아래 680피트에 있다. 가장 깊은 곳의 깊이는 약 200피트에 이른다. 호수의 동쪽에는 2,000피트 높이의 산맥이 연안에서부터 솟아 있는 반면 서쪽 산맥은 비교적 덜 가파르다.|북쪽 방향으로는 북서쪽의 비옥한 게네사렛 초목 평야와 북동쪽의 엘 바딜라(티 Batila) 초목 지대가 완만하게 펼쳐진다. 요단강은 꼭대기가 눈으로 덮여 있는 헬몬산과 레바논에서 물을 공급 받아 이 호수로 흘러 들어 간다. 플리니(Pliny)는 이 바다가 "활기에 찬 마을들로 둘러 싸여 있었다"고 함으로써 신약성경이 이 호수에 대해 제공하는 인상을 확증한다.|예수님과 연관되어 있는 마을 가운데 가버나움(마 4:13; 요 6:17); 벳세다(막 6:45); 고라신(눅 10:13); 막달라(눅 5:39); 가다라(막 5:1)가 있다. 성경에는 언급되지 않았으나, 예수님 당시에 번성했던 마을 가운데 시나브리스(Sinnabris)와 트리케아([Tarichaea] 문자적으로 절이는 마을[Pickle town])가 있다. 이 마을에서 생선을 염장하고 말리고 보존하여 스페인(Spain)과 같이 먼 곳의 시장에 까지 배로 운송했다.|아마도 팔레스타인 경제사에서 순수한 의미에서의 최초의 산업도시 중의 하나일 것이다.|디베랴 교외에서 솟아나는 유황 온천은 몇 세기를 지나는 과정에서 의학적 가치를 인정 받게 되었다. 헤롯은 이 유익한 물이 솟는 곳 근처에 왕국을 지었다. 이곳은 이러한 치료용의 목욕과 해수면 아래 위치한 이 호수의 열대성 기후로 인해 건강을 위한 유흥지로 각광을 받았다. 이러한 사실은 예수님의 치료의 손길을 얻기 위해 이 호숫가에 몰려든 수 많은 병자들을 설명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막 1:32이하; 막 6:53-56).|배는 고기를 잡거나 호수가 마을들 사이의 교통 수단이 되었다. 예수님의 아버지는 배를 만드는 목수였기 때문에 거주지를 나사렛에서 가버나움으로 옮겼을 것이다. 예수님은 바다와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배(막 4:38)나 항해(막 4:35), 그리고 고기잡이(요 21:6)와 친숙해 있었다. 호수 주변 바로 가까이에 있는 육지와 멀리 호수 위로 솟아 있는 산맥과 고원 지대 사이의 기온차로 인해 호수에는 사나운 폭풍이 자주 발생한다(마 8:24). 바람은 연안에 인접한 산맥 때문에 호수 가장 자리로부터 몰아치다가 호수 중심에서 약해지고, 종종 맞은편 연안에서 사나워진다. 보다 덜 막혀 있는 북쪽 변두리가 폭풍을 자주 만난다. 예수님은 가버나움에서 거라사로 가는 도중에(마 8:23; 막 4:37; 눅 8:23; 눅 8:26), 그리고 벳세다에서 가버나움으로 가는 도중에(마 14:24; 막 6:48; 요 6:17이하) 폭풍을 만났다.|오늘날의 성지 순례자들은 갈릴리 바다와 그 성스러운 기슭을 방문하였을 때 받은 영적 감동을 표현할 만한 적절한 말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일출 때 해가 동쪽 연안의 언덕 뒤에서 갑자기 나타나서 "깊은 곳"에 던져 내리는 작은 낚시 바늘을 비추는 것을 보았을 때나, 장엄한 일몰 시에 오래 전 폐허가 된 마을에서 발에 걸리는 돌 한 개를 주워서 가지고 노는 동안 청 초록색의 바닷물이 살아있는 빛깔로 넘실거리는 것을 보았을 때나, 그 갈릴리 연안과 바다물은 평강과 폭풍, 성공과 불운의 대기에 젖어 있으니, 그것은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사역의 가장 활동적이고 광범위한 부분을 특징 지워주는 것이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HBD; IS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