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해설 73 페이지 > 기독정보닷컴

시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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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다 marry.||#1. 일반 헬라어 문헌||동사 가메오는 '함께 어울리다, 짝지우다'를 뜻하는 어근 감(%111)에서 파생되었다. 이 어근은 겐나오($1080:낳다, 생기다)와 관련되는 것이며, '결혼하다, 결혼을 축하하다. 성관계를 갖다'를 의미한다.|희랍신화에서 일부다처제와 일처다부제의 많은 흔적을 찾아볼 수 있으나, 역사시대의 희랍세계에서는 일부일처제가 우세했다. 결혼 윤리는 엄격했다. 호머 시대의 영웅은 가정의 훌륭한 경영자요 어머니가 될 수 있는 신실하고 정숙한 여자 한 명을 아내로 삼았다. 헬라세계에서 결혼은 일부일처제였다. 반면에 남자는 많은 자유를 누렸다. 남자는 첩을 둘 수 있었으며, 창녀와 성관계를 가질 수도 있었다.||#2. 70인약본의 용법||동사 가메오는 70인역본에서 구약성경에서 에 10:3 결론 부분에만 나온다: "거기에 강이 되는 작은 샘이 있었다. 그리고 빛이 있었고, 해가 있었고, 많은 물이 있었다. 그 강은 왕이 결혼한 에스더였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가메오는 신약성경에서 30회 나온다. 이 어군의 용법은 일반 헬라어의 용법과 거의 구별되지 않는다. 원칙적으로 신약성경에서 이 단어들은 혼외 관계를 나타내는데 사용되지 않는다. 구약성경과 팔레스타인의 율법주의, 그리고 희랍의 헬라 문명에서 결혼 및 결혼생활은 자명한 제도였고, 그래서 그것들은 신약성경에서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신약성경 기자는 남녀관계에 대한 문제들을 이 어군의 단어들보다도 다른 단어들을 휠씬 많이 다루고 있다.|제도로서의 결혼은 신약성경에 분명히 전제되어 있다. 그것은 인간의 규약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신의 명령에 기초하고 있다. 남자와 아내의 연합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창 2:24이 그 출발점이 된다. 창 2:24에서는 창 1:28에 기록된 창조의 역사가 계속된다.||(a) 예수님에게 있어서 혼인은 인간 관계의 근원적 형태이다. 결혼의 근거는 창조이며, 결혼의 역사는 세 시기로 구분되고 이 시대와 더불어 끝날 것이다. 완전한 연합이 본래적 상태이다(막 10:6 이하). 죄로 인하여 이 완전한 연합이 와해되었 으며, 드디어 모세는 이혼증서를 줌으로써 이혼을 허용하게 된다. 신 24:1의 율법에서는 원칙적으로 이혼을 허락하고 있으나, 예수님은 원칙적으로 율법이 허용해준 것까지도 철저하게 금지시켰다(막 10:2 - 막 10:12). 오직 마 5:32과 마 19:9에만 음행의 연고가 있을 때 이혼이 허용되었다는 언급이 있다. 이혼에 대한 근본적인 거부는 하나님의 명령과 계명에 근거를 둔 것이다(마 19:5 이하).|예수님께서는 새로운 이혼법, 심오한 이상, 네 가지 유보 조항으로 특징지워지는 새 시대를 여신다(막 1O:9-1O). 이 실제적인 견해에 따르면, 이혼은 가능하나 재혼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한 배우자를 또 다른 배우자로 대체하는 것은 간음이고, 또한 원래의 연합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마 5:32; 막 10:11; 막 10:12). 혼인이 실패하는 이유는 마음의 완악함이다. 따라서 새로운 마음 가짐이 필요하다(마 5:27-마 5:28). 외적인 연합과 마찬가지로 내적인 연합이 요구된다. 친교(communion) 가 없는 성적 결합은 간음이다.||네 가지 유보조항은 다음과 같다.|1) 어떤 시대에서는 장가가고 시집가는 것이 상황의 심각성를 보지 못한 맹목성으로서, 경솔하고 무책임한 일이다. 이러한 한 시대는 노아의 때였으며, 이러한 다른 때는 시작되었다(눅 17:27).|2) 결혼은 때때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우리의 준비를 방해할 수 있다(눅 14:20).|3) 어떤 사람들은 천국을 위하여 독신의 은사를 받는다(마 19:12).|4) 새 시대에는 결혼하는 일이 더 이상 없을 것이다: "사람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막 12:25).|비록 예수님 자신께서 결혼하지 않으셨고 결혼은 지나가는 시대에 속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결혼에 대하여 경고하거나 독신을 명령하지 아니하시고 창 2:24에 나오는 결혼제도를 인정하신다.||(b) 한 사람 이상의 남편을 가졌던 아내가 부활 때 누구의 아내가 될 것인가 라는 사두개인의 질문을 받고서(마 22:23 - 마 22:33; 막 12:18 - 막 12:27; 눅 20:27 - 눅 20:38) 예수님은 하나님과 도래하는 나라에서는 제도로서의 결혼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서기관들이 제기한 문제가 아무런 쓸모도 없다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진술은 언제나 새로운 시대가 그의 인격 안에서 열리고 있었다는 사실에 비추어 이해되어 야만 한다(참조: 마 24:38; 눅 17:26). 다시 말하면 마 19:9 - 마 19:12와 같은 구절들은 단순히 구약성경의 결혼 율법의 종말을 선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차라리 이 율법의 바른 해석과 이 종말론적 시대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파악하는 것에 관한 문제인 것이다. 말하자면 예수님은 마태의 관점에서 제 2의 모세, 즉 종말론적 시대의 율법 수여자였다.||고자에 관한 문제(마 19:12) 역시 종말론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은사를 지닌 사람들 중에는 시간의 긴박성 때문에 독신 생활을 하는 사람도 있다. 은총을 받은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결혼을 하지 않았던 것같다. 왜냐하면 그러한 절차가 하나님을 섬기는데 필요한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었다("천국을 위하여"). 세례(침례) 요한과 바울은 독신으로 지냈다. 그들은 도래하는 나라에 비추어볼 때 결혼은 오직 일시적이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참조:고전 7:1 - 고전 7:9, 고전 7:26 - 고전 7:29)(W.Gunter).||(c) 바울은 고전 5장 이하에서 고린도 교회에서 일어난 사건들 중에서 결혼에 관한 여러 가지 문제를 다루고 있다.|바울은 고전 6:16 - 고전 6:17에서 창 2:24에 언급된 연합이 어떻게 간음을 배제시키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결혼 그 자체에 관하여 언급하고 있다. 그는 고전 7:3 이하에서 일단 결혼하면 부부는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해 잠시 동안 헤어져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서로에 대한 의무를 충실하게 이행해야 한다.|고전 7:10 이하에서는 예수님의 말씀에 호소하며 이혼을 거부하고 이혼 후의 재혼을 반대한다(참조:막 10:9이하; 병행구:마 19:6 - 마 19:9; 눅 16:18). 그러나 바울은 예수께서 제시하신 네 가지 조항을 보다 강하게 강조한다. 결혼은 하나님께 향한 참된 헌신을 방해할 수 있으며(고전 7:5; 고전 7:32 이하), 임박한 환난의 때에는 적합하지 않다(고전 7:26; 고전 7:28 - 고전 7:29). 바울은 금욕주의적인 시험에 찬성하지 않고 과부들은 자유하여 재혼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으나 바울 자신이 그의 특별한 사명을 위하여 그랬던 것처럼 모든 사람이 독신의 은사를 가지기를 원했다(고전 7:1 - 고전 7:2,고전 7:7 - 고전 7:8, 참조: 고전 9:5; 고전 9:12; 고전 9:15 이하). 후에 비록 과부가 재혼하지 않고 그냥 지내는 것이 이상적이긴 하지만 젊은 과부는 문제가 되는 행위를 하느니 차라리 재혼하라고 권면 받는다(딤전 5:5 이하; 딤전 5:11; 딤전 5:14). 딤전 4:3에서는 병적이라 할 만큼 지나치게 결혼을 금지한 거짓 교사들을 공격하고 있다.|(참조: E.Stauffer).||(d) 바울의 호소는 불신자와의 혼합결혼에 대한 문제를 다루는 관점이 된다(고전 7:12 - 고전 7:l6). 불신 배우자는 결혼을 지속시킬 것인지의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한편 기독교 신자인 배우자는 그 결혼을 지속시킬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즉 불신 배우자만이 선택의 자유가 있다. 그런 혼합결혼이 믿는 배우자에 의해 성화된다는 것은 매우 실제적인 능력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여기에서 은총은 불신 배우자의 불신앙보다 더 강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언약의 관계 안으로 자녀를 이끄는 수단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이 부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한 불신 배우자를 구원으로 이끌 수도 있다.|(참조: W.Gunter).||(e) 고전 7:36 이하에서 딸의 결혼에 관한 말은 언제든지 문제로 되어 있다.|* 적혼기를 지난 미혼녀 딸에 대한 아버지의 반응 문제로써 이 부분을 해석해 온 것이 전통적 견해이다. 바인(Vine)은 시사하기를 여기 관계된 기사는 딸이 결혼하는 것을 거부했을는지도 모르는 아버지에 대한 기사라는 것이다. 그러나 딸의 결혼을 거부하는 일은 공정치도 않고 지혜롭지도 못한 행동이라고 그 아버지는 드디어 결정하게 된다. 완고한 거절이 딸을 반역하는 길, 혹은 아마 부도덕한 길로 몰아 넣게 될 것이라고 아버지가 단정하게 되었다. 그 딸은 결혼 의사를 표시했을 것이며 자제할 만한 능력을 받지 못했다. 그러한 경우에 그 아버지는 혼인하게 해야 한다.|* 고려 중에 있는 본 구절에 관한 또 다른 하나의 해석은 정식으로 결혼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약혼 남녀에 관련된다는 것이다. 동일한 문제들을 같이 분담키 위해서 그들은 같이 살기를 결정한다. 그러나 성적 관계에 들어가는 일은 피한다. 바클레이는 시사하기를 그 약혼 남녀는 사실상 결혼했던 것이다. 그러나 육감적 결혼이 아닌 영적 결합에 대하여 그들은 의견을 일치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처음 결심은 육적 결혼을 위한 의욕 까닭에 폐기된다. 죄짓는다는 생각을 갖지 않고 그들이 결혼을 해도 좋다.|*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그 전통적 견해를 받아들이면서 해석하기를 이것은 아버지와 딸의 경우라는 것이다. 어쨌든 이것은 결혼해서 부부로서 같이 사는 일이 죄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 아버지나 혹 그 약혼 남녀가 그대로 있기를 굳게 결심한다면 이 일 역시 실제적인 기독교 윤리의 한도 내에 있는 것이다.|딸이 결혼하는 일을 아버지가 거부한다고 하면 네 가지 조건에 의해 결정해야 된다.|첫째로 딸이 독신 생활하는 일(그 처녀 딸을 머물러 두는 일)이 좋겠다고 확신해야 한다.|둘째로 아버지는 딸이 결혼에 관해서 특별히 흥미를 가지는 일이 없든가 또는 성적 감정으로 괴로움을 갖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세째는 부득이한 일도 없고 자기 뜻대로 할 자유가 있을 때,|네째로 일단 결정을 내리면 마음을 굳게 하고 그것을 지켜야 하며 미정된 상태에서 그 문제를 방임해서는 안된다.|그 딸이 결혼하든지 독신으로 머물러 있든지 간에 실제적 결과를 동반하는 것 뿐이지 영적인 우월성을 동반하는 것이 아니다.|"잘한다"와 "더 잘한다"(고전 7:38)는 본장의 결론이다. 잘한다는 결혼이 더럽히는 일도 아니고 거룩치 않다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더 잘한다는 일종의 사도적 판단인데 독신 생활이 유익하다고 하는 것은 환란을 피할 수 있고 주를 섬기는데 더 많은 시간을 얻게 되는 까닭이다.||(f) 가메오는 고전 7:39 이하에서 그리스도인의 재혼에 대한 언급에 나타난다. 어떤 경우에 바울은 독신 생활을 권장하고 있으나 결혼에 관해서 높은 개념을 가지고 있다. 바울에게 결혼이란 것은 일생 동안의 협정이었다. 아내가 그 남편이 살 동안에 매여 있다. 그러나 남편이 죽게 되면 그 과부는 아주 자유롭게 재혼할 수 있다. 그러한 종류의 재혼의 경우에 바울이 제한한 또 하나의 조건은 그리스도인 즉 주 안에 있는 자와 합해야 한다는 것 뿐이다. 그러나 그러한 경우에서까지도 바울은 첨가해서 말하기를 내 뜻에는 "그냥 지내는 것" 즉 독신으로 있는 일이 더욱 복된 일이라는 것이다.|바울은 편협한 금욕주의자라고 비난을 받고도 있지만, 사실상 그는 기독교의 일반 법칙으로서 결혼을 권장하고 있으며, 독신 생활을 윤리적이거나 영적으로 우월한 것이라고 평가하지 않는다. 결혼에 관해서 여기에 표현된 바울의 견해는 고린도 교회가 바울에게 제시한 문제들을 고려하면서 해석되어져야 한다. 독신으로 머무는 일을 영적으로 우월하다고 하는 극단적인 금욕주의를 막으려고 바울은 편지를 쓴 것이다. 환난이나 위급한 때에는 독신으로 있는 것이 책임도 덜하고 세상에 관한 일반적 사건들에 관한 염려를 덜하게 된다고 한다. 결혼과 재혼에 관한 결정을 내리는데 있어 상식적인 견해로 본문을 이해해야 한다. 결혼, 재혼 문제를 결정하는데 바울은 개인적 선택 여하에 일임해 버리고 영적인 강약 문제로 그 결정 표준을 삼지는 않았다(D.S.Metz).
가미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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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시키다, 시집보내다 give in marriage.||#1. 헬라어의 용법||동사 가미스코는 '시집보내다', 즉 '딸을 시집보내다'라는 의미를 지닌 후기의 어형이다. 이 단어는 70인역본에 나타나지 않는다.||#2. 신약성경의 용법||신약성경에서 가미스코는 눅 20:34에 한번 나온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세상의 자녀들은 장가도 가고 [시집도 가되]"
가미스코
gamivzw
결혼시키다, 시집보내다 give in marriage.||#1. 헬라어의 용법||동사 가미조와 가미스코는 '시집보내다', 즉 '딸을 시집보내다'라는 의미를 지닌 후기의 어형이다. 이 단어는 70인역본에 나타나지 않는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가미조는 신약성경에서 6회 나온다(마 22:30; 마 24:38: 막 12:25; 눅 17:27; 눅 20:35; 고전 7:38).
예복
gavmo"
결혼식 wedding.||#1. 일반 헬라어의 용법||명사 가모스는 호머(Homer) 때부터 나타나며, '결혼식, 결혼', 일시적인 것으로 생각하든지 영구적인 것으로 생각하든지 '신방 차리기'를 뜻하며, '결혼 잔치'를 의미하기도 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가모스는 70인역본 구약성경에서 4회 나오며, 히브리어 미쉬테(마실 것, 잔치, 축연)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히브리어 미쉬테는 창 29:22에서 야곱의 '결혼 잔치'에 대하여, 에 2:5에서 아하수로에로 왕이 수산 도성의 인민을 위해 베푼 잔치에 대하여, 에 2:18에서 왕이 에스더와 결혼을 축하하는 잔치에 대하여, 에 9:22에서 매일 경축일의 축연에 대하여 사용되었다. 헬라어 가모스도 각 구절에서 이러한 의미로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가모스는 신약성경에서 16회 나오며, '결혼, 결혼 잔치'라는 의미로 나타난다. 구약시대나 예수님의 시대에 결혼식은 잔치를 베풀기에 적당한 기회였다. 따라서 가모스는 '결혼 잔치'를 의미할 수도 있다. 그러한 잔치는 요 2:1 - 요 2:11에 묘사되어있다.|히 13:4에 의하면, 혼인은 존중되어야 한다: "모든 사람은 혼인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마 22:1 - 마 22:14에서 예수님은 임금이 베푼 결혼 잔치를 비유로 사용하신다. 그것은 배후에는 하나님과 임금의 비교, 종말론적인 잔치의 개념(참조: 사 25:6), 메시야와 그의 백성의 결혼 잔치에 대한 랍비적 상징(SBI 517), 아가서를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백성 간의 사랑의 표현으로 설명하는 것, 그리고 호세아 때부터 행해진 여호와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관계를 표시하는 결혼의 예언적 상징 등이 깃들어 있다. 이 세상의 결혼은 하나님과 그의 백성의 종말론적인 결합으로 대체될 수 있다.|메시야로서의 예수님은 진정한 신랑이시다. 결정적인 요인은 그의 잔치를 같이 나누는 것이다(마 1:1 - 마 1:13; 참조: 눅 12:36 - 눅 12:40). 주의 만찬의 제정에 관한 기록은(특히 마 26:29; 눅 22:30) 메시야적 식사와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설명을 연관시키고 있다. 어린양(Lamb)의 혼인 잔치는(계 19:7 이하) 승리하신 그리스도와 그의 백성들의 최종적인 결합을 의미한다.|(참조: W.Gunter; J.H.Thayer).
이는…(~)이니라
gavr
참으로, 사실은, 왜냐하면, 그러면||접속사 가르(Homer 이래)는 게 아라(%847 %933: 참으로, 그렇다면)의 단축형이며, 원인, 설명, 추정 또는 계속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는 접속사이다. 이 단어는||(a) '참으로, 진실로, 현재 현상으로는'|(b) '왜냐하면', 따라서 설명적 의미 '~하는 것은, 사실은, 즉'|(c) '확실히, 그러면'등을 의미한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gasthvr
자궁, 위.||#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가스테르(Homer 이래)는 어원이 불확실하며, 다음의 의미로 사용되었다.||(a) 배 the belly, 전체가 일부를 나타내는 환유법으로 사용되었다.|(b) '자궁' the womb.|(c) '위' the stomach, 제유법으로, '대식가' a glutton, '사람'(Hes. Arstph.)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가스테르는 신약성경에서 9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가스테르는 '자궁'을 의미하며, 에코($2192)와 함께 '수태하다'를 의미한다. 마 1:18; 마 1:23; 마 24:19; 막 13:17; 눅 1:31; 눅 21:23; 살전 5:3; 계 12:2.||(b) 가스테르는 '위'를 의미한다: "그레데인 중에 어떤 선지자가 말하되 그레데인들은 항상 거짓말장이며 악한 짐승이며 배만 위하는 게으름장이라 하니"(딛 1:12).|(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gev
적어도, 심지어||#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불변화사 게(Homer 이래)는 라틴어나 영어에서 정확히 일치하는 단어가 없는 후접 불변사이다: 헬라 문헌에서보다 성경 문헌에서 훨씬 많이 사용된다. 이것은 이 불변사가 속하는 단어의 의미가 특별히 두드러지며, 따라서 그 단어는 문장의 나머지 부분과 구별되어야 하며 더 크게 강조되어야 한다. 이 구별은 "두 가지 방법으로", 즉 가장 적게 중요한 것과 가장 중요한 것을 언급함으로써 구별할 수 있다; 이리하여 게($1065)는 반대의 의미를 가지는 것 같다: '적어도' at least와 '심지어' even.||(a) 가장 작은 것이 지적되는 곳에서; '실로, 적어도, 눅 11:8; 눅 18:5 그러나 …때문에'||(b) 가장 큰 것이 지적되는 곳에서; '심지어, 바로 그대로, ~인 바로 그 사람 등, 정확히 ~인 그'||(c) 이 불변사가 다른 불변사와 결합되면 그들의 의미를 강화 시킨다.|① 눅 24:21; 고전 9:2, 직설법이 뒤 따라서|② '과연, 만일 사실로': 고후 5:3; 엡 3:2; 갈 3:4.|③ '만약 …이면, 즉 말하자면': 엡 3:2; 엡 4:21; 골 1:23|④ 긍정문 다음에, '그러나 아마 …아니면', '그러나 만일 …아니라면': 마 6:1; 눅 10:6; 눅 13:9|⑤ 부정문 다음에 '만약 그렇지 않으면', '그 밖에', '반대의 경우에서': 마 9:17; 눅 5:36이하; 눅 5:14|⑥ '그리고 적어도': 눅 19:42, 그리고 진실로, 아니 그 뿐 아니라': 행 2:18; 행 17:27|⑦ '참으로 …일지라도, 그래도 참으로(실로)': 요 4:2; 행 14:17|(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기드온
Gedewvn
기드온 Gedeon.||명사 게데온은 히브리어 기드온(1439)의 음역이며, '자르는', 어떤 문헌에서는 '나무를 베는 자(벌목꾼), 즉 강한 용사'라는 의미를 제시한다.||#1. 구약성경.||(a) 기드온의 역사.|기드온은 므낫세 지파에 속한 아비에셀 사람 요아스의 아들이다(삿 6:11). 그는 바알 신당을 훼파한 후 여룹바알(바알과 다툰다)이라는 별명을 얻었다(삿 6:32). 그는 성경에 기록된 이스라엘 사사 중 다섯 번째의 사사이다.||당시 이스라엘은 미디안과 아말렉의 압제 하에서 7년간(B.C. 1176-1169년)이나 노략과 수탈을 당하고 있었다. 이 때 이스라엘의 부르짖는 기도를 듣고(삿 6:6)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침략자들의 손에서 구원할 큰 용사 기드온을 선택하셨다.|천사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 구원하라는 소명을 주셨으며(삿 6:12, 14), 기드온이 겸손히 변명했지만(삿 6:15), 여호와의 약속과 표적을 보고(삿 6:16, 21-24) 그 자리에 단을 쌓고 그 곳을 여호와의 샬롬이라 불렀으며(삿 6:21-24), 그날밤 그는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그 아비의 집에 있던 바알의 단을 부수고 여호와를 위해 단을 쌓고(삿 6:25-27) 그 옆에 있던 아세라 상을 찍어서 그 나무로 번제를 드렸다. 아침에 성읍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고 기드온을 끌어 내어 죽일 것을 그의 아버지 요아스에게 구하였다. 요아스는 그들에게 "너희가 바알을 구하려 하느냐 그가 과연 신일진대 스스로 쟁론할 것이다"라고 대답했다(삿 6:25-31). 이로 인해 기드온에게는 여룹바알이라는 칭호가 주어졌다(삿 6:32). 미디안의 침략(삿 6:33)에 대항하여 승리의 확증을 구하는 기도의 응답을 받고(삿 6:36-40) 선택된 300명의 정병으로, 미디안 사람의 꿈과 해몽을 듣고 용기를 얻어(삿 7:9-15), 싸워 승리했다(삿 7:15-23).|기드온은 전쟁에 부름을 받지 못해 화가난 에브라임 사람들을 달랬다(삿 8:1-3). 기드온은 미디안의 두 왕 세바와 살모나를 추격하여 생포하고(삿 8:10-12), 도움을 거절한 숙곳과 브누엘 사람들에게 보복했다(삿 8:10-12; 15-17).||기드온은 왕이 되어 달라는 이스라엘 백성의 요구를 거절하고(삿 8:22-23) 40년간 사사로 있었으며 그동안 이스라엘이 태평했다(삿 8:28).|그러나 기드온이 죽자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배반했다. 기드온의 고향은 '오브라'이며, 말년에 많은 아내와 첩을 두었으며, 첩의 자식 아비멜렉을 제외하고도 70명의 아들이 있었다(삿 8:30-32).|기드온의 흠은 이스라엘의 올무가 된 에봇을 만들어 자기의 성읍 오브라에 둔 것이다. 온 이스라엘이 그것을 음란하게 하였으며, 그러므로 그것이 기드온과 그의 집의 올무가 되었다(삿 8:27).||(b) 기드온의 인격.|기드온의 인격으로는 그의 겸손(삿 6:15), 주밀성(삿 6:17), 영성(삿 6:24), 복종(삿 6:27), 거룩한 영감(삿 6:34), 하나님과 친교(삿 6:36; 삿 7:4, 7-9), 계략(삿 7:16-18), 재치(삿 8:1-3), 여호와에 대한 충성(삿 8:23), 허물(삿 8:24-31) 등이다.||#2. 신약성경.||기드온은 신약성경에서 히 11:32에 한번 나오며, 믿음의 사람으로 평가되었다: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와 다윗과 사무엘과 및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참조: PEB; ISBE).
지옥
gevenna
지옥 hell.||#1. 구약성경.||명사 게엔나는 70인역본이나 헬라 문헌에는 나오지 않는다. 게엔나는 히브리어 게 힌놈(애곡의 골짜기, 느 11:30; 수 15:8; 수 18:16)에서 유래했으며, 더 충분히 게 벤-힌놈(애곡의 아들의 골짜기, 대하 28:3; 렘 7:32)의 역어로 사용되었다.||게엔나는 원래 예루살렘의 남동부로 뻗어 있는 히브리어 지명 와디에르 라바비(Wadier-Rababi)인 힌놈의 아들(또는 아들들)의 골짜기를 의미했다(수 15:8; 18:16; 사 31:9; 66:24; 렘 32:35; 대하 33:6). 이 골짜기에서 아이가 제물로 바쳐졌다(왕하 16:3; 왕하 21:6). 이 골짜기는 황소의 형상을 한 우상 몰록(Moloch)의 불로 이글거리는 팔에 던져진 어린 아이의 울음 소리에서 그렇게 불리워졌다. 유대인들은 이러한 가공스런 희생 제사가 요시야 왕에 의해 폐지된 이후 이곳을 혐오하여(왕하 23:10), 이곳을 모든 종류의 쓰레기 뿐만 아니라 심지어 죽은 동물과 처형되었으나 매장되지 아니한 범죄자들의 시체로 더럽혔다. 그런데 죽은 시체를 태우는데는 불이 사용되었으니 이는 그 공기가 부패물에 의해 오염되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그곳은 게엔나 투 퓌로스(불의 게헨나)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 설명적 속격 투 퓌로스에 대한 이러한 일반적인 해석은 시 27:13에 대한 Rabbi David Kimchi(A.D. 1200)의 해석에서 발견된다. 어떤 사람은 이 속격이 정화하는 불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몰록의 불을 가리킨다고 생각한다. 또 다른 사람들은 이것을 형벌에 대한 천연의 상징으로 간주한다(참조: 레 10:2; 민 16:35; 시 11:6; 마 3:11; 마 13:42; 살후 1:8 등). 렘 7:32; 렘 19:6 이하에 따르면 이 골짜기는 하나님의 심판의 장소가 될 것이라고 한다.||그리하여 유대 묵시 문헌은 최종 심판 후에는 이 골짜기가 불타는 지옥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고 최후 심판의 지옥과 동일시되게 되었다(에디오피아어 에녹서 90:26 이하; 27:1 이하; 54:1 이하; 56:3 이하). 마침내 게엔나는 단지 처벌 장소가 되었으며 그래서 음부(하데스)에 일치하는 개념들을 끌어 모았다. 이리하여 게엔나는 최후 심판이 있을 때까지 처벌의 일시적인 장소가 되었다.||「참고-A.D.1세기 말경이나 2세기 초에 불타는 연옥에 대한 교리가 랍비들 중에서 생겨났다. 공적과 죄과가 똑같이 균형을 이루는 경우의 모든 사람들은 게엔나로 간다. 거기에서 그들은 죄를 정결하게 씻게 되며, 그들이 참회하면 낙원(paradise)을 상속받는다. 여기서 최후의 심판이 있은 후 시간상으로 한정된 종말론적 게힌놈 심판(eschatological Gehinnom Judgment)이 있다는 개념이 나타난다(SB Ⅳ 1022-1118).」||#2. 신약성경.||게엔나는 신약성경에서 12회 나오며, 약 3:6을 제외하면 공관복음에만 사용되었다.||(a) 게엔나는 선재하는 실체이다: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마 25:41).||(b) 게엔나는 일반 부활 이후에 불타는 심연이다: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버리라 불구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막 9:43; 참조: 마 13:42; 마 13:50).||(c) 게엔나는 최종적 심판 후의 종말론적 처벌 장소, 영원한 형벌의 장소이다.|① 마 5: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지옥에 떨어지지 않기 위해 경멸하는 말도 삼가해야 한다.|② 마 23:33,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게엔나의 위협은 죄의 심각성을 보여 주고 하나님의 진노를 두려워하도록 양심을 일깨우기 위해 사용되었다(참조: 마 10:28).||(d) 게엔나는 최종 심판이 있기 전에 사자의 영혼들이 거주하는 음부와 구별된다.|① 후자는 일시적인 곳이고 전자는 최종적인 곳이다(막 9:43; 막 9:48).|② 후자는 영혼 만이 거하는 곳이며, 전자는 다시 결합된 몸과 영혼이 거하는 곳이다(막 9:43 이하; 마 10:28).||(e) 사악한 자들은 게엔나의 자식들이다: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마 23:15).||(f) 하나님은 죄인을 죽인 후에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를 가진다(눅 12:5).||(g) 사람은 지옥을 면하기 위해 죄에 대해 싸우는데 있어서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지나치지 않다(마 5:29; 마 5:30; 눅 18:9).|(참조: H.Bietenhard; J. Jeremias)
겟세마네
Geqshmaneiv
겟세마네 Gethsemane.||겟세마니는 기름 짜는 틀이라는 뜻의 아람어 갓셰마네의 음역이다. 이 단어는 신약성경에서 막 26:36과 병행구, 막 14:32에 나온다.|→ $1637 엘라이온, 신약성경의 용법 참조.
이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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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neighbor.||#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게이톤(Homer 이래)은 게($1093: 땅, 지구)에서 유래했으며, 따라서 본래 의미는 '똑같은 땅의'라는 의미이며(참조: Curtius 132), 호머 이후로 '이웃' a neighbor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게이톤은 신약성경에서 4회 나오며, '이웃'이란 의미로 사용되었다(눅 14:12; 눅 15:6; 눅 15:9; 요 9:8).|(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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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다 laugh||#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겔라오(Homer 이래)는 '웃다' laugh를 의미한다.|이 어군은 사람들에게 사용되는 경우 기쁨에 찬 웃음이나 비웃음, 혹은 그런 웃음을 짓는 것을 가리켜 자주 사용되었다.|헬라인에게 있어서 웃음은 신들의 특성이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겔라오는 신약성경에서 누가복음에만 2회 나온다: "21 이제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이제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25 화 있을찐저 너희 이제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 찐저 너희 이제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눅 6:21; 눅 6:25). 여기서의 웃음은, 적들에 대한 승리라는 개념이 없이 구원의 기쁨과만 연결되어 있다. 누가복음에 나타난 사상은 아마도 시 126:1 이하의 말씀을 염두에 두고 약속된 종말론적 웃음을 언급한 것이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K. H. Rengstore; E. M. Embry).
웃음
gevlw"
웃음 laughter.||#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겔로스(Homer 이래)는 겔라오($1070: 웃다)에서 유래했으며, '웃음' laughter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겔로스는 신약성경에서 약 4:9에 한번 나온다: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찌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찌어다". 좋은 유우머에는 죄가 없다. 여기서 야고보가 말하는 웃음은 세상을 벗삼아 꼴사납게 웃으며 즐거워하는 것으로서 바보들의 웃음이다. 이러한 웃음은 우상숭배, 방탕, 불경함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회개함으로 그 웃음을 겸손으로, 애통으로 바꾸어야 하는 것이다.|(참조: A. F. Parper; Walter Bauer; J. H. Thayer).
가득하게 되다
gemivzw
가득하게 하다, 채우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게미조(Aeschyl. 이래)는 게모($1073: 가득차다, 가득하다)에서 유래했으며, '가득하게 하다, 채우다, 짐을 싣다'를 의미하다. 게미조는 정확하게 배(Herodotus, Thucydides) 또는 짐승들(Posidonius)에 짐을 싣는 것과, 그리고 충만, 예를 들어 선박들로 가득한 항구에 대해(Plato) 사용되었다. 게미조는 전이된 의미로 진리의 충만(Aeschylus); 악의 충만(Euripides); 무분별함, 불균형과 추악함의 충만에 대해 사용되었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게미조는 신약성경에서 9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막 4:37에서 물이 배에 가득하게 된 것을 나타낸다: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부딪혀 배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b) 눅 14:23에서도 사람을 집에 가득하게 하는 것, 곧 채우는 것을 나타낸다: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c) 계 15:8에서 성전에 연기가 '가득차게 되는 것'을 나타낸다: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인하여 성전에 연기가 차게 되매 일곱 천사의 일곱 재앙이 마치기까지는 성전에 능히 들어갈 자가 없더라".||(d) 요 2:7에서 항아리에 물을 '채우는 것'을 나타낸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구까지 채우니".||(e) 요 6:13에서 바구니에 남은 조각이 '가득찬 것'을 나타낸다: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 두 바구니에 찼더라".||(f) 계 8:5에서 향로에 불덩이를 '충분히 채운 것'을 나타낸다: "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단 위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으매 뇌성과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더라".||(g) 막 15:36에서 해융에 쉰 포도주를 채우는 것을 나타낸다: "한 사람이 달려가서 해융에 신포도주를 머금게 하여 갈대에 꿰어 마시우고 가로되 가만 두어라 엘리야가 와서 저를 내려 주나 보자 하더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가득하게 하다
gevmw
가득하다, 가득차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게모(Aeschyl., Hdt. 이래)는 '가득하다, 가득차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게모는 신약성경에서 11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마 23:25에서 악이 가득한 것을 나타낸다: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눅 11:39에서도 마찬가지다: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인즉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b) 롬 3:14에서 저주와 악독이 가득한 것을 나타낸다: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c) 계 15:7에서 하나님의 진노가 가득한 것을 나타낸다: "네 생물 중에 하나가 세세에 계신 하나님의 진노를 가득히 담은 금대접 일곱을 그 일곱 천사에게 주니".||(d) 계 17:3에서 참람된 이름이 가득한 것을 나타낸다: "곧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광야로 가니라 내가 보니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의 몸에 참람된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e) 계 17:4에서 음행의 더러운 것이 가득한 것을 나타낸다: "그 여자는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f) 계 21:9에서 일곱 재앙이 가득한 것을 표현한다: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g) 계 4:6; 계 4:8에서 생물의 눈이 가득한 것을 표현한다: "6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앞뒤에 눈이 가득하더라 8 네 생물이 각각 여섯 날개가 있고 그 안과 주위에 눈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 하고".||(h) 계 5:8에서 향이 가득한 금대접을 묘사한다: "책을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 사 장로들이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J. G. Baidw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