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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해설
전하다
ejpidivdwmi
주다, 건네주다, 내맡기다, 포기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에피디도미(Homer 이래)는 에피($1909)와 디도미($1325: 주다)에서 유래했으며,||(a) '주다, 건네주다, 넘겨주다',|(b) '내맡기다, 포기하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에피디도미는 신약성경에서 9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에피디도미는 '주다, 건네주다, 넘겨주다'는 의미를 나타낸다.|① 마 7:9(병행구 눅 11:11)에서 돌을 '주거나 건너 주는 것'을 나타낸다: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② 마 17:10(병행구 눅 11:11)에서 뱀을 '주거나 건네 주는 것'을 나타낸다.|③ 눅 11:12에서 전갈을 '주거나 건너 주는 것'을 나타낸다: "알을 달라 하면 전갈을 주겠느냐".|④ 눅 24:42에서 생선 토막을(주는 것)을 나타낸다: "이에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매".|⑤ 눅 24:30에서 떡을 '주거나 건너 주는 것'을 나타낸다: "저희와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매".|⑥ 눅 4:17에서 수동태로 이사야의 책을 '넘겨 받는 것'을 나타낸다: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한 데를 찾으시니 곧".|⑦행 15:30에서 편지를 '건너 주는 것'(즉 전하는 것)을 나타낸다: "저희가 작별하고 안디옥에 내려가 무리를 모은 후에 편지를 전하니".||(b) 에피디도미는 행 27:15에서 바람의 힘에 '내맡기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배가 밀려 바람을 맞추어 갈 수 없어 가는 대로 두고 쫓겨 가다가".|(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바로잡다
ejpidiorqovw
(한층 더) 바로 잡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에피디오르도오(Dialekt-lnschr.)는 '추가로 또는 더 잘 정돈하다', '한층 더 바로 잡거나 바르게 하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에피디오르도오는 신약성경에서 딛 1:5에 한번 나오며 '바로 잡다'를 의미한다: "내가 너를 그레데에 떨어뜨려 둔 이유는 부족한 일을 바로잡고 나의 명한대로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 함이니".|(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에피뒤오
ejpiduvw
내려가다, 지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에피뒤오(Philo.)는 에피($1909)와 뒤노($1416: ~에 들어가다, 빠지다)에서 유래했으며, '내려가다, 지다(해에 대해)'(Plut.)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에피뒤오는 신약성경에서 엡 4:26에 한번 해가 '지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관용
ejpieivkeia
온순, 온화, 온유, 은혜로움, 너그러움, 관용. ⇒ $1933 에피에이케스
에피에이케스
ejpieikhv"
온순한, 온화한, 순한, 온유한, 친절한, 참을성 있는, 관용하는.||#1. 고전 헬라어 문헌||형용사 에피에이케스와 명사 에피에이케이아는 에이코스(알맞는, 어울리는, 적절한, 온당한)에서 유래하였거나 아니면 에이코(굴복하다, 양보하다)에서 유래하였을 것이며,호머 시대 이래로 '온당한 알맞는 생활방식'이라는 의미로, 투키디데스 이래로 '관용, 인내, 온유'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에피에이케스 및 그 어군의 단어들은 본래 제멋대로 방자한 태도와는 대조적으로 균형 잡히고, 지성적이며 잘 어울리는 외모를 표현하는 데에 사용되는 말이었다. 후에 그것은 법률의 적용에 있어서 어떠한 희생이 있더라도 자기 자신의 공민권을 포함한 모든 공민권이 단호히 확립되어야 한다는 태도와는 대조적으로, 정의의 엄격성을 그 법률적 표현 및 제권리와 함께 융통성 있게 할 용의가 있는, 인정 있고 사려 깊은 태도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게 되었다.|이 에피에이케스 단어군과 프라위스($4239) 단어군의 개념, 이 개념은 모두 억제되지 않는 분노, 가혹함, 야수성 그리고 이기심과 반대된다. 이 개념은 고상한 마음을 가진 사람, 즉 모욕을 받고도 화를 내지 않는 현인, 재판에 임하여 인정 많은 재판관,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서 자비로운 왕 등이 지닌 성격의 특징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이 단어들은 이상적 통치자에 관한 묘사나 고위직에 있는 사람에 대한 찬사 속에 자주 등장한다.|헬라 및 헬라 철학에서 이 개념은 높은 가치를 지닌 사회적 미덕이자 이상을 표현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런 개념을 정열과 무감정의 양극단 사이에 있는 복된 중용의 덕이라고 생각하였다(F.Hauck/S.Schulz).||#2. 70인역본의 용법||70인역본에서 명사 에피에이케이아는 l0회 등장하며, 에피에이케스 및 그 형용사형은 6회 등장한다. 이 단어들은 세상 통치에 있어서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자비심(삼상 12:22; 시 86:5; 지혜서 12:18)과 왕의 행동(마카베오이서 9:27), 선지자(왕하 6:3) 및 경건한 자(지혜서 2:19)의 행동을 묘사하는데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신약성경에서 에피에이케스는 5회 나오며, 에피에이케이아는 2회 나온다. 약 3:17에서 에피에이케스는 위로부터 난 지혜의 목록에 나타난다: 에피에이케스는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이 함께 살 때 지켜야 할 규칙을 표현한다: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빌 4:5),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딛 3:2). 딤전 3:3에서는 특히 감독들의 자질에 대하여 사용되었다: "감독은…오직 관용하며". 벧전 2:18에서 에피에이케스는 종들의 주인에게 적용되었다: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복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고후 1O:1에서 바울은 프라위테스와 에피에이케이아를 예수님께서 지상에 계실 동안 사람에게 보여주셨던 태도의 특징으로 언급하면서, 그것을 본받아야 할 모범으로 교회에 제시한다: "너희를 대하여 대면하면 겸비하고 떠나 있으면 담대한 나 바울은 이제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으로 친히 너희를 권하고".|에피에이케이아는 기독교인에게 요구되는 태도를 표현하지만,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들에게도 적용된다. 행 24:4에서 에피에이케이아는 총독 벨릭스 앞에서 유대인 변사 더둘로가 바울을 고소하는 연설을 할 때 사용되었다: "당신을 더 괴롭게 아니하려 하여 우리가 대강 여짜옵나니 관용하여 들으시기를 원하나이다".|(참조: F.Hauck/S.Schulz; W.Bauder).|→ $4239 프라위스. → $4240 프라위테스.
에피제테오
ejpizhtevw
추구하다, 애쓰다, 탐색하다, 찾다, 원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에피제테오(Hdt.이래로)는 에피($1909: 위에)와 제테오($2212)의 합성어이며, 기본적인 의미, 즉 '찾다', '조사하다', '애쓰다'라는 의미를 강조한다(예: Aristotle, Eth, Nic. 9, 9, 1169b, 13). 이와는 관계없이, 에피제테오는 '법적인 수색', '요구'라는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Josephus, Ant.).||#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에피제테오는 70인역본에서 21회 나오며, 주로 다라쉬(문의하다, 조사하다, 찾다, 질문하다)를 번역한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에피제테오는 신약성경에서 13회 나온다.||(a) 이방인들은 물질적인 것을 구하지만(마 6:32) 유대인은 의를 구하고(롬 11:17), 서기오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구한다(행 13:7).||(b) 히브리서는 구약성경의 성도들이 하늘의 본향을 구하였고(히 11:14), 기독교인들은 영구한 도성을 찾는다(히 13:14)고 말하고 있다.||(c) 행 12:19과 행 19:39에 나오는 이 단어의 의미는 '찾다'look for와 '바라다'desire이다.|(참조: H. GREEVEN; H. G. Link)
죽이기로 작정한
ejpiqanavtio"
죽음으로 선고한.||#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에피다나티오스(Dionys.)는 에피($1909)와 다나토스($2288: 죽음)에서 유래했으며, '죽이기로 정한(선고한)'을 의미한다.|Dionys에서는 이 단어를 Tarpeian 암벽에서 던져진 자들에 대해 사용되었다.||#2. 70인역본의 용법.||형용사 에피다나티오스는 벨(Bel) 31에서 한번 나오며, 사자들에 던져진 정죄된 음모자들에 대해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에피다나티오스는 신약성경에서 고전 4:9에 한번 나온다: "내가 생각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한 자 같이 미말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안(수)
ejpivqesi"
~ 위에 놓음, 얹음.||#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에피데시스(Pla., Xen. 이래)는 에피티테미($2007: ~ 위에 놓다, 두다)에서 유래했으며, '~위에 놓음, 얹음'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에피데시스는 신약성경에서 4회 나오며, 손을 '아무 위에 얹는 것', 즉 안수에 대해 사용되었다.||(a) 히 6:2에서 안수는 성령 받는 것을 가리키는데 여기서 그리스도의 초보 목록에 들어 있다: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데 나아갈찌니라".||(b) 딤후 1:6에서 안수는 성직 임명과 관련되어 있다: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딤전 4:14에서도 같은 의미를 가진다: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으로 말미암아 받은 것을 조심 없이 말며".|(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사모하다
ejpiqumevw
욕구하다, 원하다, 탐내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에피뒤메오(Aeschyl. 이래)는 에피($1909: ~위에)와 뒤모스($2372: 욕정, 격노)에서 유래했으며,||(a) '뒤모스를 어떤 것을 향해 돌려놓다",|(b) '욕구하다, 갈망하다, 원하다, 탐내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에피뒤메오는 70인역본에서 약 50회 이상 나오며, 주로 히브리어 아와의 역어로 사용되었다.|에피뒤메오는 금지하는 것을 요구하는 것(출 20:17; 마카베오사서 2:6), 어떤 것을 갈망하거나 탐내는 것(출 34:24; 잠 21:26; 잠 23:3; 잠 23:6; 지혜서 6:12; 집회서 24:19 등)을 나타내며, 어떤 목적 없이 사용되었다(출 20:17; 신 5:21; 미 2:2; 집회서 1:26 등).||#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에피뒤메오는 신약성경에서 16회 나온다. 이 단어는 배고픔과 같은 자연적 욕구(눅 15:16; 눅 16:21), 간절히 바람(눅 22:15; 계 9:6; 행 20:33; 약 4:2), 하나님의 비밀에 대한 갈망(마 13:17; 눅 17:22; 벧전 1:12), 어떤 좋은 것을 바라는 것(딤전 3:1; 히 6:11)에 대해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 단어는 그 대상(여자, 마 5:28)에 의하여, 귀소본능(갈 5:17)에 의하여, 악(고전 10:6)에 의하여 시사되는 바와 같이 일반적으로 악한 욕망을 나타낸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F. Buchsel).
즐겨 한 것
ejpiqumhthv"
바라는 자, 갈망자.||#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에피뒤메테스(Hdt. 이래)는 에피뒤메오($1937: 원하다, 갈망하다)에서 유래했으며, '바라는 자, 갈망자, 열망자'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에피뒤메테스는 70인역본에서 2회 나오며, 히브리어 아와(183: ~하고 싶어하다, 바라다; 민 11:34), 하마드(2530: 갈망하다, 즐거워하다; 잠 1:22)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탐욕을 내거나'(민 11:34) 거만을 '좋아하는'(잠 1:22)을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에피뒤메테스는 신약성경에서 고전 10:6에 한번 나온다: "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저희가 악을 즐겨 한 것 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여기서 민 11:34을 백성들이 탐욕을 낸 것을 암시한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열정
ejpiqumiva
충동, 욕망, 갈망.||#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에피뒤미아(Hdt. 이래)는 에피뒤메오($1937)에서 유래했으며, '충동, 욕망, 갈망'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처음에 문학에서 중립적인 의미로 사용되었으나 속에 윤리적으로 나쁜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왜냐하면 다른 세가지 격정 곧 두려움, 쾌락, 슬픔과 마찬가지로 에피뒤미아도 재물에 대한 잘못된 평가와 이생의 악에서 야기되는 것이기 때문이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에피뒤미아는 70인역본에서 약 80회 나오며, 주로 타아와 하마드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이 단어는||(a) 도덕적으로 평범한 욕망(예: 신 12:20 이하, 네가 원하는 만큼),||(b) 칭찬할만한 욕망(예: 창 31:30, 인간의 아버지 집에 대한 사모),||(c)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악한 욕망(민 11:4; 민 11:34; 신 9:22 등)을 나타낸다.|만일 열번째 계명(출 20:17)이 이런 욕망을 금지한다면, 이는 하나님이 인간에게서 단순히 행위의 순종을 요구하실 뿐 아니라 그들의 말, 생각, 모습, 노력 그리고 소망 가운데서의 순종을 요구하시기 때문이다. 그는 마음 전체에서 우러나온 사랑을 요구하신다(신 6:5).||#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에피뒤미아는 신약성경에서 38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에피디미아가 중립적이거나 좋은 의미로 나오는 경우는 눅 22:15; 빌 1:23; 살전 2:17; 계 18:14 뿐이며, 다른 곳에서는 나쁜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그러나 에피뒤미아가 '나쁜 욕망'(evil desire), 혹은 '정욕'(lust)이라는 나쁜 의미로 사용되는 곳에서 신학적으로 더욱 중요하다.||(b) 공관복음에서 에피뒤미아는 나쁜 의미로 나타난다.|① 마 5:28에서 성적 욕망과 정욕에 대해 언급한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② 막 4:19에서 이 단어는 부와 같은 이 세상의 모든 종류의 여러가지 재산들과 가치들에 대한 욕망에 대해 사용되었다: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치 못하게 되는 자요".|이 두 구절들에서 예수님이 에피뒤미아를 상당히 파괴적인 죄로 여기셨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이것은 말씀을 결실치 못하게 만든다(막 4:19, 여기에서 이것은 저지를 당하지 않으면 언제나 뻗어 나가려고하고 무성하게 자란 가시덤불에 비유된다). 이것은 결혼을 파괴시킨다(마 5:28). 다른 말로 하면, 예수님은 욕망이 "오직" 마음의 생각과 원망 속에서 작용하는 것이지, 행위의 영역에서 작용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욕망을 결코 가볍게 보지는 않으셨다. 예수님에게 있어서 악한 욕망은 악한 행실과 같이,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는 악한 마음에서 흘러나온 것이며, 그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c) 바울은 에피뒤미아를 인간을 지배하는 죄에 대한 하나의 표현이라고 본다. 그는 이것을 인간의 "육체", 곧 하나님을 떠난 죄에 가득찬 존재 속에 있는 휘몰아치는 힘으로 본다.|① 갈 5:16에 따르면 에피뒤미아는 육체의 욕심을 추구한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이것은 행동하도록 인간을 충동질한다. 이 모든 것을 통틀어보면, 이것은 자기 생의 중심을 자신 안에서 발견하고, 자신을 신뢰하고 다른 사람보다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하려는 인간 속에 깊이 뿌리내린 성향을 나타낸다. 욕망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은 성령이다. 성령과 동행하는 사람은 욕망을 이겨낼 능력을 지닌다(롬 8:9 이하). 왜냐하면 성령이 욕망 대신에 그의 삶을 결정하는 힘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엡 4:23).|② 엡 2:3에서 바울은 육체와 정욕을 지닌 이러한 경향을, 인간을 하나님에게서 몰아내는 능력들과 같다고 본다: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③ 엡 4:22에서 "옛 사람"의 능력은 에피뒤미아로 나타내어진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d) 바울 서신에서 욕망은 모든 방면에서 나타날 수 있다. 즉 성적 욕망, 물질적인 향유, 다른 사람의 재물을 탐내는 것(롬 1:24; 딤전 6:9; 딛 3:3; 갈 5:16-21) 등이다. 이 욕망들은 사람의 주의를 방향 지음으로써 인간을 완전히 욕망의 지배 하에 들어가게 할 수 있다. 자기 자신을 욕망의 충동에 내어맡긴 사람은 누구든지 이미 죄의 지배 하에 있는 것이라는 인식이 롬 6:12에 나타나 있는데, 이 인식은 자주 바울의 문서들에서 상기된다(엡 2:3; 딤후 3:6; 딛 3:3). 이 욕망들이 한 인간을 좌우하고 그를 사로잡는다. 그가 이 욕망의 매력과 유혹의 노예가 되는 반면(엡 4:22), 그의 "마음" 곧 그의 전 인격의 중심(롬 1:24)은 이 욕망의 지배 하에 들어가게 된다.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되면, 의지의 모든 결정, 그리고 심지어 가장 좋고 가장 숭고한 인간의 감정과 능력들까지도 이 욕망에 의해 좌우된다. 하나님의 뜻과 규정에로 향하고 하나님께 종속되고 그에 의해 결정되는 삶만이 이와 반대되는 모습을 제시해 준다(롬 6:12 이하; 엡 4:22 이하; 딛 2:12 이하).||(e) 롬 7:7,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바울은 인간의 욕망 속에는 원시적이고 본능적인 면이 있으므로 율법이 욕망에 대해 말할 때, 이 욕망 그 자체가 실제로 무엇인가에 대하여 인식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이리하여 욕망은 인식적인 죄가 되어(롬 7:7 이하) 극악무도하게 하나님의 계명을 거스린다. 내가 율법을 알기 전에는 욕망이 본능적인 것이었지, 아직 의식적으로 바라는 의지는 아니었다.||(f) 요한의 기록들에서 욕망의 근원은 훨씬 거슬러 올라간다. 욕망은 단순히 사람에게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기원한 것이다: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요일 2:16). 궁극적으로는 악마에게서 나온 것이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요 8:44). 여기에서 세상이란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해 적대 영역을 의미하며, 인간은 이 영역 속에서 "이 세상의 왕"이 지니고 있는 권세를 인식한다. 이 세상의 왕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요일 2:16), 곧 감각 및 그것들의 본성 안에 있는 관능에 호소하는 외적인 매력으로 우리를 유혹하여, 그것으로 우리의 "사랑"을 얻고자 한다. 그는 인간 안에 잠재해 있는 증오의 생각들과 거짓말하려는 인간의 경향들을 일깨운다. 왜냐하면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기 때문이다(요 8:44).||(g) 요일 2: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욕망이 "이 세상에서" 생겨난 것이므로, 이 욕망도 이 세상과 마찬가지로 무상한 것이다. 욕망에 의존하여 자기 자신과 자신의 삶을 욕망에 의해 결정되도록 허용하는 사람은 그 욕망과 더불어 "멸망할" 것이다. 반대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은 "영원히 거할" 것이다.||(h) 공동서신에서 에피뒤미아의 용법은 중립적이거나 바울 및 요한 문서에서와 같은 경향을 보인다. 이것은 "육체"와 육체의 정욕을 의미한다(벧전 2:11; 벧후 2:10). 이것은 정욕과 연락과 술취함과 방탕(벧전 4:3)과 허탄(벧후 2:18) 안에 있는 다른 여러가지 감각의 욕망들과 관련된다. 이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욕망의 지배를 받도록 하기위해 인간을 유인하고 부추기고 유혹하는 하나의 능력이다(약 1:14; 벧전 1:14; 벧후 2:18). 이것은 인간에게 완전한 해방과 자유를 약속하지만 실제로는 야비하게 인간을 예속시킨다. 이것은 언제나 인간의 마음 속에 숨어 있기 때문에 적절한 때가 되면 인간은 자기 뜻을 그 욕망에 굴복시켜 그 욕망의 지배를 받게 된다(약 1:14). 그런 일이 생겨나게 되면, 이 욕망은 죄에 가득찬 행동을 "유발시켜"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범죄하게 만든다(약 1:15). 그리하여 마침내 "사망"(롬 7:5)과 "썩어짐"(벧후 1:4)에 이르게 한다.|에피뒤미아가 인간의 본성과 이처럼 결부되어 있으므로, 기독교인들은 항상 이 욕망에서 벗어나는 일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깨어 있어야 한다. 만일 그가 언제나 하나님의 영에 의해 지배를 받고 "하나님의 뜻을 좇는"(벧전 4:2) 삶을 산다면, 그는 이 욕망을 이길 수 있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에피카디조
ejpikaqivzw
~위에 앉다, 앉히다, 두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에피카디조(Plut., Them. 등)는 에피($1909)와 카디조($2523: 앉게하다, 앉다)에서 유래했으며,||(a) 자동사로, '~위에 앉다'(Plut., Them.),|(b) 타동사로, '~위에 앉히다, ~위에 두다(놓다)'(Hippocr. 등)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에피카디조는 70인역본에서 8회 나오며, 주로 라카브(올라타다)의 역어로 사용되어 노새 등을 '타거나 태우는 것'을 나타내며(삼하 13:29; 22:11; 왕상 1:38; 왕상 1:44 등), 야샤브(앉다, 머무르다)를 번역하여, '앉다'를 나타낸다(창 31:34; 레 15:20).||#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에피카디조는 신약성경에서 마 21:7에 한번 나온다: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으매 예수께서 그 위에 타시니".|(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별명은 (~)라고 하다
ejpikalevomai
부르다, 호소하다, 상소하다, 청원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에피칼레오(마이)는 에피($1909)와 칼레오($2564: 부르다)에서 유래한 합성어이다. 이 단어는||(a) '~에 이름을 붙이다, 별명을 붙이다, 별칭하다'(Xen., Plato.),|(b) '소환하다'(Dem.).|(c) '호소하다, 상소하다, 청원하다', 신에게 드리는 예배와 관련하여 '호소하다'나 '청원하다'라는 의미로(Hdt., 이래; Plato, Polyb.), 법에 호소하거나 통치자, 국가 관리들에게 상소를 제출할 때 법률적 용어로 사용되었다(Plut.).||#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에피칼레오(마이)는 70인역본에서 약 200회 나오며, 거의 카라(7121: 부르다, 요청하다, 초대하다)의 역어로 사용되었다.|70인역본에서 대체적으로 보아 에피칼레오는 '요청하다, 예배 드리다'라는 의미로 사용된 가장 중요한 용어이며, 또한 공개적 고백이라는 특수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창 4:26; 33:20 등). 예배는 하나님 또는 이스라엘의 하나님(대상 4:10)에게나 여호와(왕상 17:21)에게 아뢰는 것이거나 또는 무엇보다도 예배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창 13:4; 신 14:23 이하; 사 64:7; 렘 10:25). 자주 셈어투의 엔(토) 오노마티 그리고 자주 셈어 투의 '이름으로'(왕상 18:24 이하)가 발견된다. 이것은 예배드리는 자는 마치 견고한 망대 안에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이름 아래에 들어가게 된다는 사상에 영향을 입었을 것이다(잠 18:10).|신명기에 따라 하나님은 그가 선택한 장소에서 경배 받기 원하신다는 관점에서 70인역본에서 히브리어 샤칸(거하다)을 에피칼레이스다이로 번역하기도 한다(출 29:45 이하; 신 12:11; 신 16:2; 신 16:6; 신 16:11). 하나님의 존재의 계시와 현현의 목적은,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에게로 돌아와 그에게 예배를 드리도록 하기 위함이다. 인간은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길로 그의 부르심에 응답해야 한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에피칼레오(마이)는 신약성경에서 30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에피칼레오마이는 별명을 가진 사람에 대해 사용되었다(행 4:36; 행 12:25; 행 10:18; 행 11:13; 행 12:12). 마 10:25에서 에피칼레오는 고유명에 대한 확인으로 사용되었다: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 집 주인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 집 사람들이랴".||(b) 고후 1:23에서 하나님을 증인으로 호소하는 것은 사법적인 표현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전 헬라어에서 에피칼레오는 이미 이러한 의미를 지닌다: Herodotus; Antpho). 에피칼레오는 바울의 심리에 관한 본문에서 '호소하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행 25:11 이하; 행 25:21; 행 25:25; 행 26:32; 행 28:19).||(c) 에피칼레오는 신학적 의미에서 중간태로 사용되어 교회의 선포에 믿음으로 고백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 고백의 내용으로서 언제나 "이름" 즉 선포된 주님 자신을 가진다.|① 롬 10: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문맥상 예수님을 주로(참조: 롬 10:9 상반절) 기원하는 것(롬 10:10 하반절)으로 해석된다. 이것이 인류의 구원의 기초가 된다. 롬 10:12 하반절에서처럼 여기서 에피칼레오는 고백(confession)의 외침에 대해 사용된다(아우투는 롬 10:12 상반절에서 퀴리오스를 가리킨다). 여기에는 이름을 부르는 것이 소유 관계의 근원(법률적 주장의 의미에서도)인 구약성경적 배경이 고려되어 한다.|② 행 2:21의 베드로의 말에서 구약성경의 인용(욜 3:5, 70인역본)에서도 주님에 대한 믿음의 고백의 측면이 전제되어 있다. 요엘의 말씀은 원래 종말론적 의미에서 의도된 것이지만 성령으로 충만한 선포와 함께 현재의 구원을 가리키게 된 것이다(행 2:16; 행 2:22-24 참조).|③ 고전 1:2 ("주의 이름을 부르다")에서 이미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공동체의 모든 사람을 언급하는 말이 되었다(세례의 기초, 참조: 고전 1:13). 여기서 이 말은 단일체의 기초가 되는 진술로 기능한다.|④ 롬 10:14에서는 피스튜오($4100: 믿다)와 관련됨으로써 에피칼레오의 이러한 어감은 (전례상의) 찬성의 외침으로 분명해진다.|⑤ 행 9:14; 행 9:21에서 에피칼레오 토 오노마는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대명사와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관계는 행 22:16에서도 볼 수 있다.|⑥ 행 7:59에서는 직접 부르기 때문에 목적어가 제거된다.|⑦딤후 2:22("주를 부르는")과 벧전 1:17("아버지라 부른")은 동일한 내용에 대해 더 나은 헬라어 표현을 제공한다.|⑧ 벧전 1:17은 롬 8:15; 갈 4:6에 의거하며,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새로운 선물의 실례이다.||(d) 에피칼레오의 동일한 의미가 히 11:16의 상이한 종류의 구문에서 나타난다("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정사 에피칼레이스다이는 수동태로 간주된다.|약 2:7("너희에게 대하여 일컫는 바 그 아름다운 이름을")에서 부정과거 수동 분사는 세례(침례)에서 예수님의 이름을 부름으로 말미암는 소유권의 이전에 대해 사용되었다(참조: 고전 1:2).|(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W. Kirchschlager).
가리우는 데
ejpikavluma
덮개, 가리개.||#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에피칼륌마(Aristot. 이래)는 에피칼륍토($1943: 덮다, 감추다)에서 유래했으며,||(a) '덮개, 덮는 물건' a covering, '베일' veil.|(b) 비유적으로 '구실, 핑계, 가리개' pretext, cloak와 같은 의미를 가진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에피칼륌마는 70인역본에서 4회 나오며, 출 26:14에서 믹세(4372: 덮개, 뚜껑)를 번역하여 '덮개'를 나타내며, 삼하 17:19에서 마사크(4539: 덮개)를 번역하여 '덮는 것'을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에피칼륌마는 신약성경에서 벧전 2:16에 한번 나오며,자유로 악을 '가리우는 것'을 나타낸다: "자유하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우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가리우심을 받다
ejpikaluvptw
덮다, 가리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에피칼륍토(Hes. 이래)는 에피($1909)와 칼륍토($2572: 덮다)에서 유래했으며, '덮다, 가리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에피칼륍토는 신약성경에서 롬 4:7에 한번 나온다: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여기서 에피칼륍토는 죄들을 '가리움 받는' 것을 의미한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