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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해설
무할례자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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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례를 받지 않는 것 처럼 되다.||#1. 고전 헬라어 및 70인역본의 용법.||동사 에피스파오(Aeschyl. 이래)는 에피($1909: 위에, 에)와 스파오($4685: 검을 '빼다')에서 유래했으며,||(a) '끌어 당기다',||(b) '포피를 끌어 당겨 덮다', 그래서 '할례받지 않는 것처럼 되다'를 의미한다.|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Antiochus Epiphanes[B.C. 175-164])의 시대 이후(마카베오일서 1:15; Joseph. antt. 12, 5, 1), 유대인들 중에는 자기들의 국적의 그 외적 표시를 이방의 핍박자나 조롱자들로부터 감추기 위해, 포피의 남은 부분을 어떤 쇠도구로 앞으로 끌어 당겨 늘여서 인위적으로 또 억지로 포피를 재생시킴으로써 귀두를 가리고자 했던 자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랍비들은 그러한 사람들을 가리켜 메슈킨이라 불렀다. 이 단어는 마샤크(4900: 끌어당기다 draw out)에서 온 것이다(참조: Buxtorf, Lex. Talm.). 70인역본에서 이 단어는 9회 나온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에피스파오는 신약성경에서 고전 7:18에 한번 나온다: "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무할례자가 되지 말며 무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할례를 받지 말라".|그리스도인의 지위는 외면적인 의식에 의존하지도 않고 혹은 그것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유대인이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오게 되면 할례자로 그대로 있으나 이방인이 회심하게 된다면 그는 할례받을 필요가 없다. 유대교에서는 그처럼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할례가 기독교에서는 무의미한 것으로 보여졌다. '그리스도께서 오신 일은 하나의 신기원을 획정한 일이 된다. 거기에는 성결만이 남아있게 된다.' 유대인과 이방인이 할례에 관해서는 그들이 회심할 때에 있었던 각자의 육체적 상태에 그대로 있기를 만족해야 한다는 것이다(D. S. Metz).|(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에피스페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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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뿌리다 sow above.||#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에피스페이로(Hdt., Theophr. 이래)는 에피($1909: ~위에, ~에)와 스페이로($4687: 씨를 '뿌리다')에서 유래했으며, '(씨를) 덧뿌리다, 추가로 뿌리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에피스페이로는 신약성경에서 마 13:25에 한번 나온다: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에피스타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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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하다, 알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에피스타마이(Homer 이래)는 에피스테미($2186: ~에 두다, 세우다, ~위에 서다)에서 유래했으며, '~에 주의를 집중하다, ~에 생각을 고정하거나 집중하다'는 기본 의미를 가진다. 여기에서||(a) '이해하다'(X., Symp.), 발설된 것이나 해석되는 것과 관련하여,|(b) '알다, ~를 알고 있다, ~와 아는 사이다'(Aristoph., Equ., Plut.)를 의미하게 되었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에피스타마이는 신약성경에서 14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에피스타마이는 '이해하다'를 의미하다(딤전 6:4; 막 14:68).||(b) 에피스타마이는 '알다, ~와 아는 사이다'를 의미한다(행 19:15: 행 18:25; 약 4:14; 행 26:26; 행 15:7; 행 19:25; 행 22:19; 행 10:28; 행 20:18; 히 11:8; 행 24:10; 유 1:10).|(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선생(님)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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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목, 장관, 주인||#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에피스타테스는 에피스테미($2186: 세우다, ~에 서다)에서 유래했으며,||(a) '목자, 코끼리 몰이꾼',|(b) '공사 감독, 공적일의 감독',|(c) '경기 단체나 성전 지도자',|(d) '한 도시의 행정 장관이나 총독', 그리고|(e) 심지어 '수호신'을 의미하기도 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에피스타테스는 70인역본에서 12회 나오며, 히브리어 파키드(6496: 감독자, 행정관, 장관, 대표자; 왕하 25:19; 렘 29:26; 렘 52:25), 사르(8269: 수령, 장, 지배자, 통치자, 방백; 출 1:11)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장관, 감독, 유사 등'을 표현한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에피스타테스는 신약성경에서 누가복음에만 6회 나오며, '주인, 선생'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a) 눅 5:5,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b) 눅 8:24, "제자들이 나아와 깨워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 한대 예수께서 잠을 깨사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니 이에 그쳐 잔잔하여 지더라".||(c) 눅 8:4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게 손을 댄 자가 누구냐 하시니 다 아니라 할 때에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무리가 옹위하여 미나이다".||(d) 눅 9:33, "두 사람이 떠날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되 자기의 하는 말을 자기도 알지 못하더라".||(e) 눅 9:49, "요한이 여짜오되 주여 어떤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 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와 함께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f) 눅 17:13, "소리를 높여 가로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하거늘".|(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에피스타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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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력, 감독, 주의, 돌봄.||#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에피스타시스(Soph. 이래)는 에피스테미($2168: 두다, 세우다, 위에 서다, 현존하다)에서 유래했으며,||(a) '나아감, 접근, 침입, 공격, 압박',|(b) '지휘, 감독, 주의, 돌봄'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에피스타시스는 신약성경에서 2회 나온다.||(a) 고후 11:28에서 에피스타시스는 '돌보아야 하는 책임'을 의미하는 듯하다: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b) 행 24:12에서 에피스타시스는 선동에 의한 '소요'를 나타낸다: "저희는 내가 성전에서 아무와 변론하는 것이나 회당과 또는 성중에서 무리를 소동케 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으니".|(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에피스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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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로 알리다, 편지를 보내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에피스텔로는 에피($1909: 위에, 에)와 스텔로($4724: 정돈하다, 준비하다, 움츠리다, 제지하다, 억제하다)에서 유래했으며, '편지로서 알리거나 통고하다'(Hdt., Dit.), '편지를 보내다'(Pla.)를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기록된 전달문이나 지령문을 전달하여 '명령하다'(order)라는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전달된 것, 원래는 군사적, 또는 행정적 명령이 에피스톨레(1992), 즉 일반적으로 편지라고 일컬어졌다.|헬라 문화의 유포와 함께, 편지의 모든 범위도 개인적인 특징을 지닌 개인 서신, 공개적인 서신(예: 에피쿠로스 철학자들의 교훈적 서신들)에서부터 편지 형태상 미학 논문이었던 예술적 서신들에 이르기까지 발전되었다. 소요 철학자들과 그 제자들은 추천장들을 전하는데 익숙해 있었다(Diog. Laert.).||헬라의 편지들은 정해진 도식에 따라 발송자(주격)가 수신자에게(여격), 인사(카이레인)로 시작하여 짧은 작별 인사로 마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에피스텔로는 70인역본에서 6회 나오며, 히브리어 샬라흐(7971: 보내다)의 역어로 '통고(지)하거나 편지를 보내는 것'(왕상 5:22; 느 6:9)을 나타내며, 외경 마카베오일서(10:25; 12:7; 13:18)에서도 '편지를 보내는 것'을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에피스텔로는 신약성경에서 3회 나오며, '편지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a) 행 15:20,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 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가하니".||(b) 행 21:25, "주를 믿는 이방인에게는 우리가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피할 것을 결의하고 편지하였느니라 하니".||(c) 히 13:22,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권면의 말을 용납하라 내가 간단히 너희에게 썼느니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총명이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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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력이 있는, 유식한, 전문적인.||#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에피스테몬(Homer 이래; Epict., POxy.)은 에피스타마이($1987: 이해하다, 알다)에서 유래했으며, '이해력이 있는, 유식한, 숙련된, 전문적인, 전문가'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에피스테몬은 신약성경에서 약 3:13에 한번 나온다: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뇨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찌니라".|에피스테몬에 대해 JB는 '유식한(learned)', NIV, 새번역은 '이해력 있는(understanding)'이라고 번역했다.|여기에서는 전문가(전문적 지식을 가진 자)와 같이 '이해력 있는' 것을 의미한다.(J. H. Ropes).|(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굳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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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강하게 하다, 강화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에피스테리조(Aristot.)는 에피($1909: 위에, 에)와 스테리조($4741: 고정시키다, 단단하게 하다)에서 유래했으며, '강화하다, 더 강하게 하다, 더 확고하게 하다, 확실히 하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에피스테리조는 70인역본에서 13회 나오며, 히브리어 사마크(5564: 기대다, 의지하다, 지탱하다, 지지하다; 삿 16:29; 시 7:6; 사 36:6), 쿤(3559: 확고하다, 세워지다; 삿 16:26; 삿 16:29), 샤안(8172: 기대다, 의지하다; 삿 16:26; 삼하 1:6)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그런 의미를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에피스테리조는 신약성경에서 4회, 사도행전에만 나온다.||(a) 행 18:23에서 제자들은 '강하게 하는 것'을 나타낸다: "얼마 있다가 떠나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차례로 다니며 모든 제자를 굳게 하니라".||(b) 행 14:22에서 영혼들을 '더 강하게 하는 것'을 나타낸다: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거하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c) 행 15:41에서 교회들을 '더 강하게 하는 것'을 나타낸다: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녀가며 교회들을 굳게 하니라".||(e) 행 15:32에서 형제들을 '더 강하게 하는 것'을 나타낸다: "유다와 실라도 선지자라 여러 말로 형제를 권면하여 굳게 하고".|(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공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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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letter||#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에피스톨레(Eur., Thuc. 등)는 에피스텔로($1989: 편지를 보내다)에서 유래했으며, '편지, 서한'을 의미한다.|에피스톨레는 "사자에 의해 전달되는 것", 대개는 '편지'를 카리킨다(Rengstorf 593). 동족 동사 에피스톨레는 구두나 특히 글로 '메시지나 명령을 전달하는 것'에 대해 사용된다(Rengstorf 593). 이 동사가 나오는 행 15:20; 행 21:25; 히 13:22는 권위가 분명하게 나타나고 초기 기독교 서신의 거의 사무적인 성격이 나타난다(ibid).||#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에피스톨레는 신약성경에서 약 24회 나온다.||(a) 신약성경의 서신들은 신학적, 역사적인 중요성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신약성경이 명백히 서신에 대해 말하는 그러한 구절로 제한할 수 없다.|초기 기독교 서신에 대한 어떤 모노그래프가 필요하다는 것은 여전히 사실이다(Rengstorf 594n.2). 신약성경의 편지들은 개별적으로도 총체적으로도 필수적인 신학적 주제를 가진다.||(b) 신약성경 문헌들의 집합체 내에 문학 장르의 하나인 "서간문"이 여러 유형으로 풍부히 증명된다. 따라서 사도행전의 골격 안에 있는 서신들의 본문들(행 15:23-29; 행 23:26-30)은 물론하고 21개의 독립된 서신들이 포함된다(그중 2개인 히브리서와 요한일서는 익명이며 잃어버린 서신들은 아마도 고전 5:9; 골 4:16에 언급되어 있다).||(c) 계 2:1-3:22의 일곱개의 "편지들"은 비유적인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모두 편지의 형식적 요소가 결핍"되어 있으며 "다른 방식의 커뮤니케이션"을 나타낸다(H. Kraft, Rev HNT 52). 계 1:1; 계 22:21에 기초하여 우리는 이 문서의 어떤 양식화에 대해 말할 수 있다.||(d) 신약성경 서신들은 머리말(서문)에서 평범한 원안을 특색있게 다양화하며 그 당시 다른 편지들에서 발견되는 것과 다르다. 이 서신들은 그들의 특징을 개별적인 특징으로부터 취하며, 어느 정도는 전체적인 내용으로부터 취한다. 바울은 전형적인 신약성경 서신의 형식의 발달에 분명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수신자에 대한 광범위한 상세한 설명과 서문의 인사말(서신의 내용에 대한 언급을 포함하여 참조: 롬 1:1-7; 고전 1:1 이하; 갈 1:1-5)와 축복과 감사 같은 것들은 서간문과 다르지 않지만 개별적으로 내용에서 형성되며(그것들은 갈 1:6-9에는 빠져 있으며 [이 편지의 내용에 부합함], 고전 1:4-9; 빌 1:3-11에서는 상황에 의해 결정된다), 끝인사와 축복처럼 그 내용 때문에 특수한 그리스도교적 선포를 지닌 본문들이 되었다. 따라서 이 용법은 한 형식을 창조하는 유사한 본보기가 될 수 있었다(참조: 롬 16:25-27; 엡 3:20 이하; 유 1:25).|(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G. Finkenrath).
입을 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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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레를 씌우다, 침묵시키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에피스토미조는 에피($1909)와 스토마($4750: 입)에서 유래했으며,||(a) '입을 막다'(Aristoph., Equ., Pla., Plut. 등).||(b) 비유적 의미로, '침묵시키다'(Demosth., Libanius), '굴레를 씌우다, 방해하다, 예방하다'(Lucian, Proim. 10)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에피스토미조는 신약성경에서 딛 1:11에 한번 나온다: "저희의 입을 막을 것이라 이런 자들이 더러운 이를 취하려고 마땅치 아니한 것을 가르쳐 집들을 온통 엎드러치는도다".|이 단어는 여기서 '굴레 씌우거나 재갈먹이다', 즉 '침묵시키다'라는 의미를 지닌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다시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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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돌아가다, 돌이키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에피스트레포(Homer 이래)는 에피($1909)와 스트레포($4762: 돌리다, 돌아서다, 바꾸다)에서 유래했으며,||(a) '~으로 돌아가다(오다), 돌아오게 하다',|(b) '돌이키다, 몸을 돌리다, 되돌아오다(가다)',|(c) 수동태로 '뒤돌아 보다',|(d) '고려하다, 관심을 가지다, 주목하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에피스트레포는 70인역본에서 약 600회 나오며, 거의 대부분 슈브(돌아오다[가다])의 역어로 사용되었다.|70인역본에서 에피스트레포는 여러가지 형태의 전환(~을 향한 전환, ~로부터 전환, 원 상태로 전환 등)을 가리키는 용어로, 그리고 종교적으로 배교나 회심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사 6:10에서 치유를 위하여 돌아오는 것(회심), 렘 2:27에서 변절한 사람들이 하나님께 등을 돌렸던 사실을 언급하며, 렘 11:10에서 그들이 그들의 선조들의 사악한 행위들로 돌아갔던 사실이 언급된다. 또한 시 90:13 등에서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 그분의 얼굴을 다시 그분의 백성들에게로 돌리실 것을 간구한다. 시 80:3 등에서 백성들로 돌아오게 하여 주실 것을 간구한다. 한편 국가적인 경건함은 개인적인 경건함이 되며, 이 개인적인 경건함은 모든 것을 종말론적으로 회복시켜 주는 메시야의 구원의 사역을 보다 널리 파급시킬 수 있다. 그리고 악에서 돌이키는 것을 나타낸다(렘 18:8; 30:21).||#3. 신약성경의 용법.||(a) 동사 에피스트레포는 신약성경에서 36회 나오며, 누가가 가장 많이 사용하고(누가복음에 7회, 사도행전에 11회), 다른 두 공관복음서에서는 약간 사용되며(막 4회, 마 4회), 3회는 바울 서신(고후 3:16; 갈 4:9; 살전 1:9)에, 야고보서와 요한계시록에 각각 2회씩 나온다. 나머지 3회는 요 21:20; 벧전 2:25과 벧후 2:22에서 나타난다.|본문 이형인 마 9:22; 눅 2:20; 요 12:40과 벧후 2:21도 고려해야만 한다. 이 동사의 타동사적 의미는 '돌리다' turn이며, 눅 1:16; 눅 1:17과 약 5:19; 약 5:20에서만 발견된다. 그밖의 다른 곳에서는 자동사로 쓰이며 '돌다, 회전하다' turn around, '되돌아가다' return를 의미한다(예: 마 12:44; 막 5:30; 막 8:33; 막 13:16; 눅 2:39; 눅 8:55; 요 21:20; 행 15:36; 행 16:18; 계 1:12).|특히 "도덕적" 의미에서 '후회하다' repent, '회심하다' be converted(능동태 및 중간태)를 뜻한다.||(b) "도덕적" 의미에서 에피스트레포는 일차적으로 완전한 종교적 "회심"을 나타내며, 따라서 이 동사는 70인역본의 용법과 유사하게 사용된다. 그러나 이 동사의 용법은 제한적이며, 회심을 나타내는 어휘는 통상 메타노에오와 메타노이아이다. 하지만 누가의 자료에서는 에피스트레포가 메타노에오보다 더 두드러진다.||(c) 에피스트레포의 용례 가운데 두 경우는 특수하다. 벧후 2:22(참조: 잠 26:11)은 전통적인 기독교 윤리(벧후 2:21)에서 떠나 그들의 수치스런 습성으로 되돌아간 방탕한 거짓 교사들을 책망한다. 유추적 접근은, 이방 기독교인들을 유대화한 설교자들의 영향 아래로 유대의 법을 지키는 약하고 천한 지배권으로 되돌아가도록 유혹한 것을 언급하는 갈 4:9에서 바울이 이미 공식화하였다.||(d) 한편 눅 1:16 하반절의 천사의 고지에서 이 동사(타동사)는 긍정적 의미를 지닌다: 세례(침례) 요한은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저희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할 것이다. 따라서 그는 종말을 예비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신약성경에서 표준구인 사 6:9 이하의 인용도 언제나 유대인의 불신앙의 견지에서 이스라엘과 관련하여 사용된다. 공관복음에서 이 인용문은 왜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하시는가? 하는 질문에 해답을 제공해 준다.||(e) 막 4:12은 마지막 어구("돌이켜 ... 못하게 하려 함이라")-회개의 가능성에 대한 논의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마지막 어구를 "아마도 그들이 회개할 것이다"라는 의미로 이해시킨다. 이 인용문은 마태복음에서도 나온다(마 13:15). 여기서 마태는 이스라엘의 책임을 강조하며(참조: 호티, 마 13:13), 이스라엘의 완악함의 결과만을 볼 수 있다. 동일한 방법으로 행 28:27은 그 결과 이스라엘이 구원에서 배제되고 이방인이 선택되는 사태의 진전을 강조한다(참조: 마 13:28).||(f) 더욱 더 심각한 것은 요 12:40의 문구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람들로 하여금 완고한 가운데 직접 행동하도록 만드셨다는 문맥(요 12:39; 요 12:40)에서 나타난다.||(g) 사도행전에서 사도의 설교는 회개에의 응답을 촉구하고 먼저는 유대인을 위해(행 3:19; 행 3:26; 행 9:35) 다음은 (특별히) 이방인을 위해(행 11:21; 행 14:15; 행 15:3; 행 15:19; 행 26:18-20) 길을 예비한다. 메타노에오와 에피스트레포(행 3:19; 행 26:18-20)의 병치는 옛날의 신앙관을 바꾼 사람은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가져오시는 하나님께로(믿음의 행동으로, 행 11:21) 아직 돌이켜야/ 전향해야만 한다는 이중적 방법으로 나타난다.|살전 1:9에서 바울은 이 사실을 구체적으로 표현한다(참조: 행 14:15). 살전 1:9은 고후 3:16과 함께 기독교로 들어가는 것에 대해 에피스트레포가 사용된 구절이다. 고후 3:16은 출 34:33-35에 대한 기독교 "미드라쉬"이다. 모세가 하나님의 광채를 가리기 위해 그의 얼굴을 가린 수건은 이스라엘의 눈멈을 나타내는 것이며, 이스라엘로 하여금 성경에서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고후 3:13)을 주목치 못하게 하는 것이다. 오직 주 그리스도께로 돌아가기만 하면(참조: 호 14:2 이하; 욜 2:13 등) 그 장애물이 제거될 것이다(고후 3:16). 그 기독론적 개념은 벧전 2:25에 더욱 분명해진다.|여기서 기자는 "잃어버린 양" 이방인을 목자되신 그리스도께 돌아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고전적 동기를 사용한다(참조: 겔 34:5; 슥 10:2; 사 56:10 이하; 시 119:176; 마 18:12 이하 병행구).||(h) 약 5:19의 내용은 이 주제를 취하여 방황하는 자들을 '되돌아오게 하도록'(능동 의미에서 에피스트레포) 교회의 구성원들을 격려한다. "죄인들을 잘못에서 돌아오게 하는 것은 그의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할 것이다"(약 5:20). 여기서 관심은 잘못으로 인도된 형제들을 참된 기독교인의 삶으로 되돌아오게 하는 것이다. 눅 22:32의 베드로와 관련된 구절도 마찬가지다: "너는 돌이킨 후에", 그는 순간적 실패(부인) 후에 부활의 경험을 통해 힘을 얻고 그것을 형제들에게 전할 것을 요청받는다.||아마도 눅 17:4은 형제와의 화해가 그리스도께로의 내적인 "돌이킴"의 결과이며 교회의 일치를 가져온다는 것을 전제한다(S. Legasse).|(참조: S. Legasse; G. Bertram).
주께 돌아온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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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옴, 회심.||#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에피스트로페(trag., Thu. 이래)는 에피스트레포($1994: 돌아오다, 회심하다)에서 유래했으며, '돌아섬' turning의 의미를 뜻한다. 따라서||(a) '주목, 주의' attention(Soph., Demosth.),|(b) '회심, 개심' conversion(psSol.)을 의미한다.|고대 철학 문헌에서 인테르 아리아(inter alia), 즉 영혼이 경건함이나 신성함으로 돌아감을 의미한다. 이러한 개념은 일반 헬라어에서부터 70인역을 경유하여 신약성경으로 들어왔다(F. Lanch).||#2. 70인역본의 용법.||70인역본에서 에피스트로페의 배경에는 히브리어 슈브(7725)가 놓여있다. 이 히브리어는 구약성경에서 약 1,050회 나오며, '되돌아 보다, 되돌아 오다, 되돌리다, 회복하다'를 의미한다.|이 말은 약 120회 가량 특별한 신학적 의미를 가지고 나타난다. 이 경우 이 단어는 행동의 변화와 하나님에게로 돌아간다는 의미로 '되돌아오다, 회심하다, 되돌리다'를 의미한다.|그러나 에피스트로페는 70인역본에서 단 2회만이 슈브의 역어로 사용되어 사람이 '돌아오거나 돌아가는 것'을 나타내었으며(삿 8:9; 겔 47:7), 아 7:11에서 테슈카(동경, 열망, 사모)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에피스트로페는 집회서에서 '회개'(18:21; 49:2)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에피스트로페는 신약성경에서 행 15:3에 한번 나온다: "저희가 교회의 전송을 받고 베니게와 사마리아로 다녀가며 이방인들의 주께 돌아온 일을 말하여 형제들을 다 크게 기쁘게 하더라". 여기서 에피스트로페는 '회심'이란 의미를 나타낸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F. Laubach).
모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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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모이다 gather together.||#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에피쉬나고(Polyb. 이래)는 에피($1909: 위에)와 쉬나고($4863: 모으다)에서 유래했으며 `함께 모으다'를 의미하며, 추가로 모으거나 어떤 것(자)에 대항하여 모으거나 한 장소로 모으는 것에 대하여 사용되었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에피쉬나고는 70인역본에서 50회 이상 나오며, 아사프, 카바츠, 카할 등 12개의 어형의 단어들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이 단어는 `∼에 대항하여 모으다'(미4:11; 슥 12:3; 마카베오일서 3:53등), 한 장소로 모으다(시 101[102]:23; 시 105[106]:47; 마카베오이서 1:27 등)를 의미한다.||#3. 신약성경의 용법||에피쉬나고는 신약성경에서 6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에피쉬나고는 예루살렘을 향한 예수님의 한탄과 관련해서 사용되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마 23:27).|"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눅 13:34).||(b) 에피쉬나고는 선택된 자들을 모은다는 종말론적 표현과 관련해서 사용되었다: "또 그 때에 저가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 택하신 자들을 땅 끝으로부터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막 13:27).|"저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마 24:31).||(c) 에피쉬나고는 예수님 주위에 모여든 무리들과 관련해서 사용되었다: "온 동네가 문 앞에 모였더라"(막 1:33).|"그 동안에 무리 수만 명이 모여 서로 밟힐 만큼 되었더니 예수께서 먼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외식을 주의하라"(눅 12:1).|(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A. A. Trites).
모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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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집, 모임 gathering together.||#1. 일반 헬라어의 용법||명사 에피쉬나고게는||(a) `한 장소로 모임',|(b) `모임, 집회'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에피쉬나고게는 70인역본에서 마카베오 2:7에만 나오며, `한 장소로 모임'이란 의미로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에피쉬나고게는 신약성경에서 2회 나오며, 다음과 같은 의미를 나타낸다.||(a) 살후 2:1에서 에피쉬나고게는 주의 강림시에 성도들이 그리스도 앞에 모이는 것에 대해 사용되었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b) 히 10:25에서 기독교인들의 신앙적 모임, 집회에 대해 사용되었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참조: J. H. Thayer; Walter Bauer).
달려 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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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더하여 함께 달려간다(온다).||동사 에피쉰트레코는 에피($1909)와 쉰트레코($4936: 함께 달리다)에서 유래했으며, '에 더하여 함께 달려가다(오다)'를 의미한다.|신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막 9:25에 한번 나온다: "예수께서 무리의 달려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가라사대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에피쉰트레코는 무리가 이미 모인 자들에 '더하여 함께 달려 온다'는 것을 의미한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