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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해설
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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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에 yoke, 저울 balance.||#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쥐고스(Homer 이래)는 쥬그뉘미(%11: 결합하다, 함께 멍에를 메다)에서 유래했으며,||(a) 짐승(호머)이나 종(Hdt)이 메는 '멍에'를 의미한다.|(b) '열 row, 저울대' 혹은 '저울 그 자체'(Aeschylus)를 의미한다.|이 의미는 하나의 멍에 아래에 함께 버티고 있는 짐승들의 모습을 보여준다.||#2. 70인역본의 용법||쥐고스는 70인역본에서 약 65회 나오며 다음과 같은 의미를 나타낸다.||(a) 쥐고스는 주로 히브리어 올(멍에)의 역어로 사용되어 그런 의미를 나타낸다. 동물의 '멍에'라는 문자적 의미로 사용되었다(민 19:2; 신 21:3). 대부분 비유적으로 사용되었는데, 왕정의 압제 정치(창 27:40; 대하 10:4이하), 속박과 노예 상태(레 26:13; 사 14:25), 이방인의 통치(사 19:10; 14:29; 49:6; 단 8:25), 하나님의 자비로운 통치(렘 2:20; 5:5)를 나타내며, 그리고 구원은 멍에를 벗어버리는 것으로서(사 9:3) 이 멍에는 하나님에 의해 깨뜨려진다(레 26:13, 참조: 렘 28:2,4,11의 거짓 예언). 도덕적인 측면에서 종은 멍에를 메어야만하는데(집회서 30:35), 사람은 혀의 멍에를 피해야만하나(28:19), 지혜의 멍에를 메는 것은 좋다(51:26).||(b) 쥐고스는 히브리어 모즈나임(척도, 저울)의 역어로 사용되어 '저울'이란 의미를 나타낸다. 여호와는 공평한 저울을 사용할 것을 요구하신다(레 19:36; 겔 45:11). 또한 하나님은 사람들을 저울에 달아 그들의 부족성을 찾아내신다(시 62:9). 한편 욥은 자신의 재앙이 저울에 달려지기를 원한다(욥 6:2). 이런 주장의 배후에는 저울을 공평의 상징으로 여호와를 최후 심판자로 보는 사상이 담겨있다(욥 31:6). 단 5:27 말씀을 기록하고 있는 마소라 본문과 데오도숀 역본은 벨사살 축제 때에 벽에 기록한 "데겔"이란 단어를 "왕이 저울에 달려서 부족함이 뵈었다"라는 말로 번역한다. 저울의 관념을 심판에 적용시키는 방법이 비교적 후기의 구약성경에서 발견되는데 반해, 그런 행위가 널리 유포된 것은 후기 유대교에 이르러서였다(SI. Enoch. 49:2; Eth. Enoch 61:8; 메시야의 심판은 성도들의 행위를 저울로 단다). 따라서 이러한 관념은 심판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묵시문학적 묘사로 인하여 받아들여졌다.이 단어는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운명과 인간의 가치와 관련하여 사용되었다(욥 6:2; 시 62:9; 사 40:15 등).||#3. 신약성경의 용법||쥐고스는 신약성경에서 6회 나오며, 다음과 같은 의미를 나타낸다.||(a) 쥐고스는 '멍에'를 의미하며, 오직 비유적으로 완전한 종속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① 딤전 6:1에서 노예 상황을 표현한다: "무릇 멍에 아래 있는 종들은 자기 상전들을 범사에 마땅히 공경할 자로알지니 이는 하나님의 이름과 교훈으로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종들은 법적 권리가 없었으며 여호와 하나님과 모세가 한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기를 요구했던 것처럼(출 3:8; 4:31; 6:6) 스스로 노예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자들이다. 이스라엘의 경우에 구원 사건은 애굽의 노예 상태로부터의 해방에 있으며, 교회의 경우에 그것은 제 1차적으로 인간의 육체적인 속박에서도 풀어줄 수 있는 그리스도의 영적 자유에 있다. 문맥상 종들은 그들의 행위와 관련해서 예수님의 사랑의 법 아래 있으나 그 사랑의 법과 일치하여 취급될 수 없는 비기독교인 주인들의 기독교 신앙을 가진 종을 가리킨다. 그러나 주인이 기독교인일 때 노예의 법적 지위는 본질적으로 변화되지 않으나(딤전 1:2; 몬 1:10이하), 그들의 상호 인격적 관계는 벌써 쥐고스를 지우는 형식적 법에 의해가 아니라 그들을 형제로 하는 사랑의 법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b) 쥐고스와 둘레이아(종)의 결합은 도덕적, 영적 의미에서 속박(bandage )을 표현한다.|갈 5:1에서 바울은 복음으로 세상의 초등학문이나 자연 요소(참조: 갈 4:8이하)의 노예에서 구원받는 갈라디아 교인들을 경고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유대파 기독교인들은 할례를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이 요구하며 따라서 마땅히 지켜져야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바울은 할례의 문제를 동시대의 유대교에서 받아들여진 율법의 기능을 요약한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유대파 기독교인들이 이해한 것처럼 그것을 지킨다는 것은 원칙적으로 구원이 신적 수용의 선결 조건으로서 인간의 의로운 행위에 기초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것은 근본적으로 그리스도의 속죄적 죽음(갈 3:10-갈 3:14; 참조: 5:3f) 및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르는 삶(갈 5:18)과 모순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기독교인들의 삶은 은총과 약속에 기초하며,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살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종이기 때문이다(갈 4:28-갈 4:31). 이런 점에서 율법은 갈라디아의 이방 독자들이 이전에 종노릇하였던 세상의 초등학문이나 자연 요건(스토이케이아 투 코스무)과 마찬가지이다(갈 4:8이하). 바울은 종의 멍에에 복종하지 말고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찾고 성령으로 살아가도록 독자들에게 요구하였다(갈 5:1-갈 5:26).|행 15:10에서도 쥐고스는 속박의 멍에를 나타낸다: 여기에서 그는 율법의 멍에에 관한 유대인의 언어를 받아들여 바울과 마찬가지로 그것을 속박의 멍에로 해석하고 있는 것 같다. 왜냐하면 여기에서도 할례의 문제와 이방 개종자들도 이 법률상의 규칙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문제가 쟁점이 되었기 때문이다.||(c) 마 11:29; 마 11:30에서 예수의 권유 말씀은 형식과 내용면에서 지혜 전승의 언어와 전통을 상기시킨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참조: 잠 8:1이하; 잠 9:5; 특히 집회서 51:25이하). "기독교인이란 예수님의 교훈을 받아들임으로써 뿐만 아니라 그의 삶을 특징짓는 덕을 본받음으로 예수로부터 배우는 사람이다 ……마태가 이해한 예수님의 멍에는 법전(code)에 충실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중에서 하나님의 대리자이시며 사람들과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시며 또한 구속과 하나님과 연합을 위한 투쟁으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에게 안식과 구원을 제공해 줄 수 있는 분(예수)에게 헌신하는 것을 의미한다. 쉼과 멍에는 동일한 축복을 그린 두 개의 그림이다. 이 멍에를 우리 위에 멤으로써 우리는 영혼의 안식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지는 자에게 쉼을 주는 멍에인 것이다(R. C. H. Lenski).||(d) 계 6:5에서 검은 말을 탄 세 번째 마부는 그 손에 저울을 가지고 있다: "셋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셋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내가 보니 검은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가 손에 저울을 가졌더라". 여기서 전달하려고 의도된 개념은 기근이 매우 심하여 곡식이 아주 귀하고 값비싼 무엇인 것처럼 면밀하게 저울질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직 곡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A. Plummer).|(참조: Walter Bauer; H. -G. Link, C. Brown; G. Bertram; K. H. Rengestore).
누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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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모, 누룩 leaven.||#1. 고전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쥐메(Aristot. 이래로)는 제오($2204: 끓이다, 뜨겁다)에서 유래했으며, '누룩, 효모'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a) 쥐메는 70인역본에서 약 10회 나오며, 히브리어 하메츠(누룩, 발효된 것, 유교병, 출 12:15; 13:3; 23:18; 34:25; 신 16:3)와 세올(효모, 누룩, 출 12:15,19; 13:7; 레 2:11; 신 16:4)의 역어로 사용되었다.||(b) 비유적으로 누룩은 랍비 전승에서 서로 다른 여러 가지 의미들을 갖는다. 랍비 알렉산더는 누룩을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에 대한 인간적인 억제를 나타내는 은유로서 사용하였다. 그러나 랍비 히야 바 압바(Rabbi Chiyya bar Abba)는 토라(율법)를 지키는 이스라엘 백성을 그 능력으로 다시 하나님에게로 인도할 `토라'를 누룩으로 묘사하였다.|필로(Philo)는 여러 가지 다른 의미를 부여하며, 한편으로, 그것은 과장된 오만한, 탐닉 및 허식을 상징하며(Quaest. in Exod. 1, 15; 2, 14),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완벽한(영적) 음식물과 행복한 기쁨을 나타낸다(Spec. Leg. 2, 185).||#3. 신약성경의 용법||쥐메는 신약성경에서 13회 나오며, 공관복음과 바울 서신에만 사용되었다. 각각의 경우는 문학적 표현, 즉 비유, 은유, 격언, 상징에 속하며, 그 의미의 초점은 문맥에 따른다.||(a) 비유적 용법|마 13:33과 눅 13:21에서 쥐메는 적은 요소에 의한 팽창 또는 성장을 묘사한다. 여기서 예수님의 말씀과 사역에서 보여지는 하나님의 왕국이 눈에 띄지 않지만 영속적으로 팽창한다는 사실을 가루 반죽에 감추어져 그 전부를 부풀게 하는 누룩에 비유한다. 어떤 주석가들은(C. L. Mitton 등) 영향력 있는 악의 힘과 비교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이 비유 앞에 있는 겨자씨 비유의 요점은 적은 것에 의한 팽창 또는 성장이다(참조: 고전 5:6). 도마 복음서는 누룩을 비유적으로 사용하면서 그것의 팽창하는 성질을 강조한다(B.Gartner). 마태와 누가의 요점은 은밀하고 신비한 침투에 의한 팽창이며, 악의 영향력은 아닌 것으로 보여진다(B.Gerhardsson). 반죽이 의미하는 것이 사회의 문화인지 아니면 지역적 세상(orbis terrarum)인지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시사된 바가 없다.||(b) 은유적 용법|막 8:15에서 쥐메는 제자들이 조심해야 하는 바리새인과 헤롯(헤롯당의 다른 표기)의 속성을 묘사한다: "예수께서 경계하여 가라사대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신대".|① 마 16:6; 마 16:11이하의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을 경계하라는 내용에서 쥐메는 그들의 '교훈'을 의미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신대, 어찌 내 말한 것이 떡에 관함이 아닌 줄을 깨닫지 못하느냐 오직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② 눅 12:1에서 쥐메는 바리새인들의 '위선'(hypocrisy)를 말한다: "그 동안에 무리 수만 명이 모여 서로 밟힐 만큼 되었더니 예수께서 먼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외식을 주의하라"||(c) 격언적 용법|고전 5:6과 갈5:9에서 바울은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진다"는 말을 한다. 형식에 있어서는 잠언(격언)이지만, 바울 외에는 다른 곳에서 잠언으로 사용된 예를 찾아볼 수 없다. 그 비유가 바울을 제외하고 복음의 전승 형성 이전에 존재했었다는 증거가 없으므로, 비유로 인하여 격언이 교회 내에 생겼을 가능성이 있다. 고린도전서에서의 그 격언은 윤리적 비행에 대한 묵인을 지적한다. 공동체 안에 범법자가 계속 존재함으로써 공동체가 범법의 죄를 짓게된다(고전 5:1)는 내용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갈라디아에서의 비유적 표현은 회중의 이해(판단)에 미치는 거짓 교사의 영향력을 가르키지만, 거짓 교사들보다 거짓 교훈을 더 지적한다.||(d) 상징적 용법|고전 5:7에서 바울은 공동체에게 "묵은 누룩을 내어버리라"고 권면한다. 이 권면은 범죄자를 축출하라(고전 5:13)는 명령이거나 죄와의 연합에 대한 "자랑"을 버리라는 훈계일 것이다. 명령의 근거는 유월절 어린 양 그리스도께서 희생당하셨다는 것과, 기독교인들은 "누룩 없는" 자들이라는 사실, 그리고 명절은 누룩(곧 악과 악의)를 내어버리고 누룩 없는 떡(곧 순전함과 진실함)을 함께 나눔으로써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A.T.Hanson). 이 상징은 유월절 의식을 상기시키며 기독교가 그리스도를 유월절 어린 양(요 19:14; 요19:31; 벧전 1:19)과 동일시한 것을 기억케 한다.|유대인들은 유월절 음식을 먹기 전에 누룩을 내버렸다. 이와 마찬가지로 기독교인도 누룩을 내버려야 하는데, 그 이유는 유월절 희생이 이미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기독교인은 하나님에게 받아들여지게 되고 하나님에 의해 새롭게 된다(고전 6:11). 이것이 바울의 윤리적 교훈의 전형적인 예이다.|이 윤리적 교훈에 따르면 기독교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행동(직설법)은 그리스도와 같은 삶을 살라는 권면의 근거(명령법)이니 하나님이 신자 안에서 역사할 때 악을 버리고 선을 쫓는 것이다(참조: 롬 6:1; 고전 6:19이하; 골 2:20 - 골 4:1)|(참조: W.Popkes; G.T.D. Angel; H. windisch).
부풀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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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효시키다 ferment||#1. 고전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쥐모오(Hippocrates 이래로)는 쥐메($2219: 누룩)에서 유래되었으며, '발효시키다'를 의미한다. 70인역본에는 나오지 않는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쥐모오는 신약성경에서 4회 나온다.|마 13:33, 눅 13:21에서 쥐모오는 "전부 부풀게한", 구원하는 복음의 능력을 나타낸다.|고전 5:6과 갈 5:9에서 쥐모오는 '죄악이나 거짓 교훈이 확산되는 영향력을 나타낸다.'|→$2219 쥐메, 신약성경의 용법 참조.|(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사로잡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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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채로 잡다, 취하다, 사로잡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조그레오(Homer 이래)는 조오스(%454: 살아있는)와 아그류오($64: 사냥하여 잡다)에서 유래했으며,||(a) '산채로 잡다'(Suidas., Hdt., Polyb. 등).|(b) 일반적으로 '취하다, 붙잡다, 사로잡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조그레오는 70인역본에서 8회 나오며 히브리어 하야(살다, 소생하다)의 역어로 사용되어(7회), '살려두다'를 의미한다(민 3:15, 18; 신 20:16; 수 2:13; 6:25; 9:20).||#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조그레오는 신약성경에서 2회 나온다.||(a) 눅 5:10,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일러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여기서 조그론이 '취하다'라는 의미에 의해 번역되는 경우에 많은 것을 잃게 된다. 그것은 '산채로 잡는 것'을 의미한다. 산채로 잡으라는 것은 얼마나 복된 소명인가! 산채로 잡히는 것은 얼마나 복된 상태인가!(R. C. H. Lenski).||(b) 딤후 2:26, "저희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바 되어 그 뜻을 좇게 하실까 함이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금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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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life.||#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조에(Homer 이래)는 '생명(life)'을 의미한다.||(a) 조에는 헬라에서 유기적 존재들, 동물, 사람, 식물의 물리적 생명력을 의미한다. 생명은 물건이 아니라 모든 살아있는 피조물을 특징 지우는 생명성(vitality)이다.|각 개개인 뿐만 아니라 전 우주까지도 살아있는 유기체, 또는 영혼을 갖고 있는 세계로 생각되었다.||(b) 헬라인들은 세 번째의 성분, 곧 이성 Reason, 정신 mind, 이해력 understanding($3563)이 인간의 생명을 특징 지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소마($4983)와 또한 다소간 프쉬케($5590)가 자연적 생명을 구성하는 반면 누스($3563)는 외부로부터 인간 생명으로 들어가 이 생명을 자연적 생명, 즉 동물의 생명 이상으로 향상시키고 여러 가지 양자택일을 할 수 있는 하나의 존재의 유형을 생산해내는 신적 요소인 것이다.||(c) 만약 신의 조에가 누스와 관련되어 있다면, 이것은 조에가 자연의 생명력을 포함하면서 동시에 초월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의 최고 가능성은 또한 누스이며, 누스는 육체와 분리될 수는 없지만, 육체와 구별함으로써만이 그 목적을 성취할 수 있다. 따라서, 참된 인간의 조에는 사람이 그것을 통해 몸과 혼을 결합함으로 조온이 되는 조에가 아니다. 프쉬케는 물질에 있어서 생명력의 원리이지만, 이것은 또한 물질과 대조되는 것인 인간의 자아(selfhood)의 원리이기도 하다. 이와 마찬가지로 조에는 자연의 현상으로서의 생명이지만 또한 특별히 인간의 생명이기도 하다. 이 인간의 생명의 가능성은 유기적인 본질에서 성취되지 않으며 이것은 종(species)의 영속화를 넘어선 의미를 지닌다. 인간의 생명은 그 자체의 운명을 가지며, 행복과 불행을 알고, 그 자신의 가능성에 대해 인식하고 있다. 그러므로 인간의 생명은 그것에 고유한 것이 무엇인지에 관한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2. 70인역본의 용법||조에는 70인역본에서 약 260회 나오며, 거의 대부분 히브리어 하이('살아있는' 것)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조에는 무엇보다도 생명의 길이나 질병, 죽음과 구별되는 생명력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때리시고 치료하시는 생명과 역사의 주인이시다. 후에 하나님의 선물인 생명은 영원한 생명이다(참조: 마카베오사서 18:18). 고대의 비문들은 지상의 생명에 대해 언급을 한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조에는 신약성경에서 135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조에는 자연적 생명을 나타낸다.|① 조에는 자연적 죽음과 구별되는 자연적 생명을 가리킨다.|롬 8: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고전 3:22,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빌 1: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② 눅 16:25에서 '살아있는 동안'을 묘사한다: "아브라함이 가로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눅 12:15; 행 8:33에서도 마찬가지이다.|③ 고전 15:19에서 이 세상에서 '삶을' 표현한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딤전 4:8에서도 같은 의미를 가지며, "내 생"과 대조되어 있다: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④ 약 4:14에서 일시적이고 제한적인 생명을 묘사한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⑤ 히 7:3에서 '생'의 끝을 묘사한다: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 아들과 방불하여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⑥ 계 11:11에서 '생'기에 대하여 사용되었다: "삼 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저희 속에 들어가매 저희가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참조: 창 6:17; 창7:15).||(b) 조에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에게 속하는 초자연적 생명에 대하여 사용되었다. 이 생명은 신자들이 미래에 받을 것이지만, 이 땅에서 지금 향유하는 것이다.|① 요일 5:20에서 하나님은 참 생명, 곧 영생이시다: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요 5:26a에서 하나님 안에 생명이 있다: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요 12:50에 의하면 하나님의 명령은 영생이다: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나의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이르노라 하시니라".|② 요 5:26b에서 그리스도는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받으셨다.|요 1:14에서 "그 안에 생명이 있다". 요일 5:11에서도 이를 증거한다. 그는 "생명의 주"이시며(행 3:15), "생명의 말씀"이시다(요 1:1). "이 생명이 인간에게 나타내시게 된 것이다"(요일 1:2). 그는 "생명의 떡"이다(요 6:35; 요 6:48; 요 6:33). 그는 단순히 "생명"이란 말로 표현되었다(요 11:25; 요 14:16). 그는 "우리의 생명"이시다(골 3:4). 그 안에 있는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며(요 1:4b) 따라서 사람들은 그를 따름으로 말미암아 생명의 빛을 얻는다(요 8:12).||(c) 조에는 하나님과 그리스도로부터 얻는 신자들의 생명을 나타낸다.|① 이 생명은 은혜와 거룩의 생명이다.|롬 6:4에서 우리는 "세례(침례)를 받음으로 말미암아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된다.|엡 4:18에서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는" 자들을 묘사한다: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② 이 생명은 구원과 영광의 생명이다. 이 생명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이며(딤후 1:1), 그의 말씀과 복음의 전도로 말미암아 효력을 발한다, 요 6:68; 요 6:63; 행 5:20; 빌 2:16; 딤후 1:10; 고후 4:12. 사도들은 복음의 전도로, 사람들을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게" 한다(고후 2:16).|③ 성령은 생명의 능력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하신다, 롬 8:2; 롬 8:6; 롬 8:10; 요 6:63.|④ 그리스도의 말씀과 같이 하나님의 계명(엔톨레)도 생명에 이르게 한다, 롬 7:10.|⑤ 이 생명은 하나님의 선물로 간주되었다, 딤후 1:1에서 "썩지 아니할 것"과 함께, 벧후 1:3에서 "경건"과 함께, 롬 8:6에서 "평안"과 함께 나타난다.|⑥ 진실로 생명의 에클레시아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은 생명, 곧 은혜의 선물의 상속자들이다, 벧전 3:7.|⑦ 이 생명은 그들이 육체로 거하는 동안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 있다, 골 3:3.|⑧ 그의 생명을 상실 당한 자는 누구든지 영광의 생명에서 제외된다. 행 11:18; 행 13:46; 행 13:48.|⑨ 특별히 요한복음에 따르면, 하나님의 생명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받는 것이다. 아들을 믿는 자는 생명(요일 5:12), 곧 영생을(요 6:40; 요 6:47) 소유하였고 이미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다(요 5:24; 요일 3:14). 신자들에게 주어지는 영생은 사랑과(참조: 요 15:17), 기쁨(참조: 요 16:20-요 16:24) 안에서 그 모습을 나타낸다. 요일 3:14에 따르면 형제간의 사랑은 참 생명의 척도가 된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에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비록 요한의 생명에 대한 견해에 많은 점들이 영지주의자들의 관점과 일치한다고 할지라도 요한은 정반대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왜냐하면 영지주의자들은 영생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거의 도달하기 어려운 세계로 옮겨 버린 반면에 요한은 영생을 바로 현재로 가져오며 또한 그리스도의 말씀과 계명과 인격에 굳게 닻을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요 17:3). 이 영생을 지금 이곳에서 소유하는 신자들은, 사망과 심판이 더 이상 생각할 요소들이 아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요 5:24; 요 11:25). 왜냐하면 영생은 그 안에 영원의 씨앗들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요 4:14; 요 6:27; 요 12:25).||(d) 조에는 종말의 복된 시대에서 누릴 생명에 대해 사용되었다: 요 3:15.|① 내세의 영생, 마 10:30; 눅 18:30; 막 19:29.|② 영생에 대한 질문, 막 10:17; 눅 18:18; 눅 10:25; 마 19:16이하.|③ 마지막 심판의 결과, 마 25:46; 롬 2:7; 마 7:14; 마 18:8이하; 막 9:43, 막 9:45; 롬 5:17이하, 롬 5:21; 롬 6:22이하.|④ 죽은 상태에서 나온 자들의 생명, 롬 11:15; 갈 6:8; 딤전 1:16; 딤전 6:12, 딤전 6:19; 벧전 3:10.|⑤ 이 생명은 참 생명으로 불리워진다, 딤전 6:19; 딛 1:2; 딛 3:7.|⑥ 생명 책, 빌 4:3; 계 3:5; 계 13:8; 계 17:8; 계 20:12, 계 20:15; 계 21:27.|⑦ 생명의 나무, 계 2:7; 계 22:2; 계 22:14; 계 22:19.|⑧ 생명의 면류관, 계 2:10.|⑨ 생명수, 계 21:6; 계 22:1; 계 22:17; 계 7:17.|(참조: Walter Bauer; H.G.Link; R.Bultm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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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 전대||#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조네(Homer. 이래)는 존뉘미($2224: 띠를 띠다, 허리를 졸라매다)에서 유래했으며,||(a) '띠, 허리띠'|(b) '전대, 지갑'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조네는 신약성경에서 8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마 3:4에서 세례(침례)요한이 가죽띠를 두르고 있다고 언급한다: "이 요한은 약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b) 행 21:11, "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주리라 하거늘".||(c) 계 15:6에서 천사들의 장식을 위해 띠를 두른다: "일곱 재앙을 가진 일곱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맑고 빛난 세마포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d) 계 1:13에서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들처럼 금띠를 두르신다: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e) 막 6:8에서 제자들은 그들의 허리띠(전대) 안에 돈을 지니지 말라는 지시를 받는다: "명하시되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양식이나 주머니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 것도 가지지말며".|(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띠 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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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 띠다 gird.||동사 존뉘미는 '띠 띠다, 허리를 졸라매다', 중간태로 '스스로를 띠 띠우다'를 의미한다.|동사 존뉘미는 신약성경에서 3회 나오며, 요 21:18과 행 12:8에 사용되었다. (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조오고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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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식하다, 자손을 낳다, 생명을 주다, 살려두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조오고네오(Aristot., Theophr. 이래)는||(a) '생명을 주다, 살게하다, 살아나게 하다',|(b) '살려두다, 산채로 보존하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조오고네오는 70인역본에서 11회 나오며, 히브리어 하야(살다, 생명을 가지다)와 하이야(살아있는)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조오고네오는 70인역본에서 하나님이 '살리다'(삼하 2:6), '살려두다'(출 1:17이하; 삿 8:19; 삼상 27:9, 삼상 27:11; 왕상 21:31)라는 의미를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조오고네오는 신약성경에서 3회 나오며, 일반 헬라어와 70인역본의 용법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a) 딤전 6:13에서 조오고네오는 생명을 주어 '살리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만물을 살게 하신 하나님 앞과 본디오 빌라도를 향하여 선한 증거로 증거하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내가 너를 명하노니".||(b) 눅 17:33에서 조오고네오는 '살려두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무릇 자기 목숨을 보존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행 7:19에서도 마찬가지다: "그가 우리 족속에게 궤계를 써서 조상들을 괴롭게 하여 그 어린아이들을 내어 버려 살지 못하게 하려 할새".|(참조: Walter Bauer; J.H.Thayer).
짐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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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 living creature.||#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조온(Hdt. 이래)은 조오스(%936: 살아있는)에서 유래했으며, '살아있는 피조물'을 뜻하며,||(a) '살아있는 존재, 생물',|(b) '동물, 짐승'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조온은 70인역본에서 약 35회 나오며, 하이야(살아있는), 하야(살다, 생명을 가지다), 하이(살아있는)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조온은 겔 1:5이하에서 생물을, 창 1:21; 시 68:10; 시 104:25; 겔 47:9; 지혜서 7:20; 11:15에서 '짐승'을 묘사한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조온은 신약성경에서 23회 나오며, 다음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a) 히 13:11에서 '동물(짐승)'을 의미한다: "이는 죄를 위한 짐승의 피는 대제사장이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고 그 육체는 영문 밖에서 불사름이니라".||(b) 유 1:10에서 '짐승'이란 비유적 의미를 나타낸다: "이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그 알지 못하는 것을 훼방하는도다 또 저희는 이성 없는 짐승같이 본능으로 아는 그것으로 멸망하느니라".|벧후 2:12에서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본래 잡혀 죽기 위하여 난 이성 없는 짐승 같아서 그 알지 못한 것을 훼방하고 저희 멸망 가운데서 멸망을 당하며". 이 단어는 이성없는 피조물인 짐승에 비유된다.||(c) 계 4:6이하와 계 5:6이하에서 하늘의 네 생물을 묘사한다.|(참조: Walter Bauer; R.Bultmann).
살려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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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다 make alive, 생명을 주다 give life to.||#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조오포이에오(Aristot., Theophr. 이래)는 '∼에 생명을 주다, 살게하다'를 의미하며, 일반적으로 동물의 출생이나 식물의 성장과 관련하여 사용되었다.||#2. 70인역본의 용법||조오포이에오는 70인역본에서 6회 나오며, 하야(살다, 생명을 가지다)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왕하 5:7; 시 71:20에서 하나님이 '살리다', 느 9:6에서 '보존하다'를, 삿 21:14에서 '살려두다'를, 전 7:12에서 '생명을 보존한다'를 의미한다.||#3. 신약성경의 용법||조오포이에오는 신약성경에서 10회 나오며, 뚜렷한 구원론적 의미를 전달한다.|갈 3:12에서 율법은 생명을 줄 수 없다: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라 이를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롬 4:17에서 하나님께서는 죽은 자에게 생명을 주신다: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의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롬 8:11에서 그는 우리 죽을 운명의 육체에 생명을 주실 것이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고전 15:22에서도 같은 의미를 나타낸다.|벧전 3:18에서 그는 그리스도를 일으키신다: "그리스도께서도 한 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이처럼 생명을 주는 것은 현재적인 것일 수 있다: 요 5:21; 골 2:13(하나님과 그리스도); 고전 15:45; 고후 3:6; 요 6:63(성령).|(참조: Walter Bau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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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변화사||불변화사에는 이접 또는 비교를 나타내는 기본 접속사이며 신약성경에서 약 357회 사용되었다.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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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가장 확실히.||부사 에멘은 '확실히, 가장 확실하게'를 의미하며, 확언, 약속, 맹세에 대하여 사용된다.|신약성경에서 히 6:14에 한번 나온다: "가라사대 내가 반드시 너를 복주고 복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 하셨더니".
총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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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스리다, 통치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헤게모뉴오(Homer 이래; Dit., Syll.)는 헤게몬($2232: 지도자, 통치자, 총독)에서 유래했으며,||(a) 지도자이다, 인도자이다, 길을 안내(인도)하다',|(b) '다스리다, 통치하다, 명령하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헤게모뉴오는 신약성경에서 누가복음에만 2회 나온다.||(a) 눅 2:2에서 수리아 총독 구레뇨에 대해 사용되었다: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되었을 때에 첫번 한것이라".||(b) 눅 3:1에서 유대 총독 빌라도에 대해 사용되었다: "디베료 가이사가 위에 있은지 열 다섯해 곧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헤롯이 갈릴리의 분봉왕으로, 그 동생 빌립이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왕으로, 루사니아가 아빌레네의 분봉왕으로,".|(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위에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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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치, 정부.||#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헤게모니아(Hdt. 이래)는 헤게몬($2232: 지도자, 통치자)에서 유래했으며, '최고의 지배, 통치, 주권'을 의미하며,||(a) '제위의 정부'에 대해(Hdt., Ep. Arist.),|(b) '통치직'에 대해(Jos., Ant. 등) 사용되었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헤게모니아는 신약성경에서 눅 3:1에 한번 나오며, 로마 황제의 통치에 대해 사용되었다: "디베료 가이사가 위에 있은지 열 다섯해 곧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헤롯이 갈릴리의 분봉왕으로, 그 동생 빌립이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왕으로, 루사니아가 아빌레네의 분봉왕으로,".|(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고을(두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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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치자,지도적인,최고의 중요한.||#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헤게몬은 `지도하다, 다스리다,생각하다'를 뜻하는 헤게오마이($2233)에서 유래했다. 헤게몬은 고전 헬라어에서,||(a) 첫째 의미로 어느 종류든지 `지도자, 안내자, 통치자, 우두머리, 지휘관, 주권자'를 의미한다. 특별히 황제(emperor), 또는 지방 총독(a provicial governor, Strabo)을 언급할 수도 있고 종종 애굽의 방백을 나타내기도 한다.||(b) 둘째 의미로 `첫째의, 지도적인, 최고의 중요한'을 뜻하며, `지방 수도로서의 중요한 성읍'에 대해서도 사용되었다.||#2. 70인역본의 용법.||헤게몬은 70인 역본에서 56회 나오며, 주로 알루프(아래의 해석 참조)와 사르(: (a)와 같은 의미)의 역어로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헤게몬은 신약성경에서도 (a)와 유사하게 사용되었는데(마 10:18; 막 13:19; 눅 21:12; 벧전 2:14), 특별히 유대 지방의 총독들, 빌라도(마 27:2; 마 27:11; 마 27:14 이하; 마 27:21; 마 27:27; 마 28:14; 눅 20:20), 벨릭스(행 23:24; 마 23:26; 마 23:33; 마 24:1; 마 24:10), 그리고 베스도(행 26:30)를 나타낸다. 벧전 2:13이하에서는 정치적 권세에 대한 동일한 자세가 보다 명백하고 강력하게 표현된다(J. D. G. Dunn).|헤게몬이 나타나는 가장 중요한 구절은 마 2:6이다: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여기에서는 `다스리는 자, 통치자'를 나타낸다. 따라서 본절에서 어떤 번역본(표준, NASV, KJV, NIV)은 복수 헤게모신을 `통치자들'이란 의미로 번역했다.|그러나 헤게몬($2232)은 둘째 의미 (b)를 따라 어떤 학자들은 마 2:6의 헤게몬에 대하여 `지방 수도로서의 중요한 성읍'을 의미한다고 한다. 따라서 어떤 번역본들(개역, 공동, GNB등)은 `고을'이나 `성읍들'이란 의미로 번역했다.|마태가 인용한 미 5:2에서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엘레프(505)의 복수 연계형 알페이다. 엘레프의 기본 의미는 일천 one thousand을 뜻하며, 정치적 감독의 지도권이나 군사상의 지도권을 분할하는 가장 큰 기본 단위(출 18:21; 민 1:16; 31:4; 신 1:15; 대상 13:1; 27:1; 암 5:3), 상징적 의미로 `무한한 것'이나 셀 수 없는 양이나 수를 가리키는데 사용되었다(참조: 출 20:6; 34:7; 신 5:20; 렘 32:18; 신 7:9; 시 50:10; 90:4; 105:8).|R. L. Haris는 엘레프가 `천인의 무리'(a company of a thousand men)을 의미하므로, 어떤 `군부대의 단위'(military unit)나 `족속'(clan), 심지어 `작은 단위'까지도 의미하게 되었다고 설명한다.|70인역본은 미 5:2에서 알페를 `여러 천'(ciliavsin: thousands)이라고 번역했으며, 한글 개역, 표준은 "족속", NASB는 "clans"로 번역했다.|그리고, 히브리어 신약성경은 마 2:6에서 헤게모신에 해당하는 단어를 알루프(441)의 복수 연계형인 알루페를 사용했다. 알루프는 ① 우두머리 chief, 천명의 지도자 ruler of a thousand(렘 13:21; 창 36:15 이하; 출 15:15; 대상 1:51 이하). ② 큰 가문이나 족속 clan(슥 9:7; 12:5-6, RSV). ③ 친구 friend(시 55:13; 잠 16:28; 17:9). ④ 수소 oxen(시 144:14; 렘 11:19)라는 의미를 나타낸다.|그러면 우리가 살펴본 바, 구약 성경 미 5:2의 해당 히브리어 알페는 `족속들', 이것을 인용한 마 2:6의 해당 헬라어 헤게모신은 `통치자들', 히브리어 신약성경 마 2:6의 해당 히브리어 알루페는 `족속들'을 의미한다고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그 말은 통치자들, 족속들’이란 의미를 지닌다.|마 2:6에서 헤게모신(헤게몬의 복수)은 유대 베들레헴과의 밀접한 관련를 나타낸다. "베들레헴"은 헬라어 베들레엠으로, 히브리어 베트-레헴을 음역한 것이며, 베트(집,house)와 레헴(빵, 떡 bread)이 결합된 것으로서 `떡집'을 뜻하며, `곡창'을 의미하기도 한다. 따라서 그 지명은 지역의 비옥, 다산을 지적하며, 여러 지역에 대해 사용되었다. 그 이름으로 불리워진 지역들 중에 잘알려진 곳은 유대 베들레헴(마 2:6)과 스불론의 베들레헴이다(수 19:15).|유대 베들레헴은 베들레헴-에브라다(미 5:2), 유대 베들레헴(마 2:1), 다윗의 성(눅 2:4; 눅 7:24)으로 불리워진다. 야곱이 라헬을 베들레헴 가까이에 장사했으며, 그 당시 이 마을은 에브라다로 불리워졌다. 요셉이 가나안을 정복한 후에 베들레헴은 유다에 할당된 땅의 일부이다(삿 17:7). 이 마을은 현대의 베이트 라흠(Beit Lahm)으로, 예루살렘에서 남서쪽 5마일 지점에 위치한 유대 산지의 마을이다.|이 마을은 유다 지파의 중심지였다. 유명한 가문, 곧 베레스의 후손들이 여기에서 살았으며, 사사 시대에 이 가문에는 다윗의 조상 보아스와 아버지 이새가 속했다.|다윗은 이 베들레헴에서 출생했으며(삼상 16:1; 17:12; 20:6), 이 베들레헴에서 하나님이 그를 왕으로 선택한 후에 사무엘에게서 기름부음을 받았다. 다윗의 세 용사들이(삼하 23:15 이하) 베들레헴의 우물에서 물을 떠 와서 그에게 드렸다. 지금 그 마을 북편에 있는 우물은 그 동일한 우물로 생각된다. B.C. 586년에 유대인들이 애굽으로 도망할 때 베를레헴 근처에서 피난처를 찾았다(렘 41:17).|그리고 이 베들레헴은 메시야 탄생지로 예언되었다(미 5:2). 예수 그리스도는 떡집에서 생명의 떡으로, 다윗의 고향에서 다윗의 자손으로, 메시야의 탄생지에서 메시야로 나오신 것이다.|마태가 마 2:6에서 헤게모신(통치자들)이란 말을 사용한 것은 그 메시야에 관한 재해석이다. 헤게모신은 통치자들, 족속들을 의미하지만, 그 둘째 의미와 더불어 베들레헴과 관련을 생각하면, 성읍들(고을들)이란 의미도 함축하고 있다. 이것은 메시야가 나올 성읍, 족속과 그 통치자의 위대성을 지적하기 위한 것이다.|"가장 작지 아니하도다"는 문자적으로 `결코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이다. 이 표현은 베들레헴을 근거지로 한 유다의 한 족속, 그 통치자가 어떤 의미로 다른 유다 족속에 비해 작은 것같이 보일지라도 메시야가 이 작은 족속에게 올 것이기 때문에 유대 족속들 중 가장 큰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