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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해설
젖먹이
qhlavzw
젖을 주다, 젖을 먹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델라조(Lysias, Aristot. 이래)는 델레(젖가슴)에서 유래했으며,||(a) 타동사로, '젖을 주다, 젖을 먹이다'(Lysias, Aristot.),|(b) 자동사로, '젖을 먹다(빨다)'(Hippocr., Aristot. 등)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델라조는 신약성경에서 5회 나오며, 공관복음에만 사용되었다.||(a) 독립적인 의미로, 델라조는 젖먹이는 어머니들에 대한 애가에 사용되었다(막 13:17; 병행구, 마 24:19; 눅 21:23): "그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 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b) 마 21:16에서 델라존테스(시 8:3)는 젖먹이들을 의미한다: "예수께 말하되 저희의 하는 말을 듣느뇨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렇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케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 하시고".||(c) 눅 11:27에서 어머니의 태와 "당신이 먹인" 젖에 대한 찬양은 예수님의 어머니에 대한 것이다: "이 말씀 하실 때에 무리 중에서 한 여자가 음성을 높여 가로되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도소이다 하니".|(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여인
qh'lu"
여성 female.||#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델뤼스(Homer 이래)는 `여성의'를 의미하며, 실명사로 `여성, 여자'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델뤼스는 70인역본에서 약 37회 나오며, 주로 네케바를 번역하여 `여성, 여자, 암컷'을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델뤼스는 신약성경에서 5회 나오며, `여성'이나 `여자'를 의미한다.|마 19:4; 막 10:6; 롬 1:26, 롬 1:27; 갈 3:28.|(참조: J.H.Thayer; Walter Bauer).

qhvra
덫 trap.||#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데라(Homer 이래)는 데르(맹수)에서 유래했으며, '사냥', 사냥 '그물', '덫'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데라는 신약성경에서 롬 11:9에 한번 나온다: "또 다윗이 가로되 저희 밥상이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게 하옵시고". 이 구절은 70인역본에서 시 68:23의 자유 이용이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데류오
qhreuvw
붙잡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데류오(Homer 이래)는 데라($2339: 덫)에서 유래했으며,||(a) '사냥하러 가다, 사냥하다',|(b) 비유적으로 '함정에 빠뜨리려고 노력하다, 교묘하게 붙잡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데류오는 신약성경에서 눅 11:54에 한번 나온다: "그 입에서 나오는 것을 잡고자 하여 목을 지키더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맹수로 더불어 싸우다
qhriomacevw
맹수들과 싸우다.||동사 데리오마케오(Piod.)는 데리온($2342: 맹수)와 마코마이($3164: 싸우다)에서 유래했으며, '맹수들과 싸우다'를 의미한다. 신약성경에서 고전 15:32에 한번 나온다: "내가 범인처럼 에베소에서 맹수로 더불어 싸웠으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느뇨 죽은 자가 다시 살지 못할 것이면 내일 죽을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혹자들은 이 구절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바울이 맹수와 싸우는 벌을 선고 받았다고 생각한다. 어떤 이들은 비유적으로 이 구절을 야수적이고 잔인한 사람들과의 맹렬한 논쟁으로 설명한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들짐승
qhrivon
야생동물, 들짐승 wild animal, 짐승 beast.||#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데리온(Homer 이래로)은 데르(%66)의 지소사이며, 본래 '야생 동물'이나 '들에 사는 동물'을 의미하는데, 때로는 '새와 곤충'을 포함하기도 한다. 후기에는 일반적으로 동물을 의미하게 되었다.|데리온은 일찍부터(플라톤 이후) 은유적으로 불손함을 나타내는 용어로서 짐승과 같은 사람, 즉 동물, 괴물과 같은 자에 대해 사용되었다. 로마 황제 네로는 모든 것을 먹어버리는 맹수로 불리웠다(Philostr. VA Ⅳ 38).||#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데리온은 70인역본에서 약 160회 나오며, 대부분 히브리어 하이야(살아있는 것) 어군을 번역하고 있으며, 길들여지지 않았다는 의미, 즉 넓은 들판에 사는 -대부분의 경우- '크고 사나운 동물'을 나타낸다(Koehler -Baumgartner, 293; 참조: 동물계를 여러 종류로 분류; 창 1:24이하; 시 148:10; 호 4:3).|데리온은 인간의 적이다(창 3:14이하; 창 9:2, 5; 창 37:20).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경고에서 들짐승의 파괴 행위는 다른 재난과 함께 나열되어 있다(계 26:22; 신 32:24; 렘 12:9; 렘 15:3; 겔 5:17; 겔 14:21). 동물들이 인간의 시체를 먹는다는 것은 최고의 수치로 간주되었고 하나님에 의하여 버림을 받았다는 증거로 간주되었다(창 40:19; 삼하 21:10).|구원의 시대가 도래하게 되면, 그때 사람과 동물 사이에 조화가 낙원에서 존재했던 것처럼 회복될 것이다(레 26:6; 사 35:9; 겔 34:25; 호 2:20).|단7장에서 데리온은 세상의 권력을 가리키며, 이들은 초자연적이고 짐승과 같은 형상을 가진 것으로 나타난다. 이것들은 하나님께 적의를 품고 있는 혼돈으로부터 일어났으며, 인간과 적대적인 것으로 유대 민족이 수세기를 통하여 상대해야만 했던 정치의 권력 유형을 대표한다. 인자가 오심으로 그들은 종말을 고하게 된다. 단 4:13-33; 단 5:21에서 인간적인 긍지의 가장 높은 곳에서 동물과 같은 존재의 가장 낮은 곳으로 떨어지는 느부갓네살의 몰락을 기록하고 있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데리온은 신약성경에서 45회 나오며, 38회가 요한계시록에 나타난다.||(a)① 행 11:6에서 데리온은 살아있는 피조물, 즉 동물과 짐승의 목록에 나타난다: "이것을 주목하여 보니 땅에 네 발 가진 것과 [들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보이더라".|약3:7에서도 데리온은 마찬가지이다: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며 벌레와 해물은 다 길들므로 사람에게 길들었거니와".|② 계6:8에서 데리온은 재난의 도구의 하나로 나타난다: "내가 보매 청황색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의 이름은 사망이니 음부가 그 뒤를 따르더라 저희가 땅 사분 일의 권세를 얻어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으로써 죽이더라".|③ 딛1:12에서 데리온은 그레데인의 성격 묘사에 사용되었다: "그레데인 중에 어떤 선지자가 말하되 그레데인들은 항상 거짓말쟁이며 악한 [짐승]이며 배만 위하는 게으름쟁이라 하니".|④ 히12:20에서 데리온은 거룩한 산과 관련하여 나타난다: "이는 [짐승]이라도 산에 이르거든 돌로 침을 당하리라 하신 명을 저희가 견디지 못함이라".||(b) 막1:13에서 데리온은 '들짐승'이란 의미를 나타낸다: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셔서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예수님의 시험에 나타나는 데리온은 신학적으로 중요한 구절이다. 들짐승은 광야에서의 두려움과 인간의 외로움을 강조하며, 또한 인간과 동물 사이의 화평의 상태와 더불어 낙원 시대에 대한 메시야의 회복을 나타내는 말로써 사용되었을 것이다.||(c) 계16:13에서 하나님께 적대적인 세력을 나타내는 데리온(짐승)은 거짓 선지자와 함께 마귀의 삼총사를 이룬다: "또 내가 보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그들의 입에서 개구리와 같은 세 더러운 영들이 나와서 아마겟돈 전쟁을 위하여 세상의 지배자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계 11:7에서 그 짐승들은 다니엘서 7장에서 나타난 네 마리의 짐승이 지닌 특성에 부합하는 것으로 두려움의 강도를 더하고 있다. 계 11:7; 계 13:1에 의하면 그 짐승은 무저갱에서 올라온다: "저희가 그 증거를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저희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저희를 이기고 저희를 죽일 터인즉,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면류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참람된 이름들이 있더라".|계 13:2; 계 13:4에 보면 그 짐승은 "용"에 의하여 권세를 부여받았다: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가로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뇨 누가 능히 이로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계 11:7에 보면 그 짐승은 육식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 "저희가 그 증거를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저희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저희를 이기고 저희를 죽일 터인즉". 계 13:7이하; 계 13:5에서 무자비하게 힘을 행사한다: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또 짐승이 큰 말과 참람된 말 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 두 달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계 13:3; 계 13:14에서 적그리스도로서 짐승같이 생긴 괴물은 어린 양을 서투르게 모방하고 있다(그의 상처, 참조: 계 5:6; 그의 뿔, 계 13:1, 참조: 계 5:6; 세계 지배, 계 13:2 참조: 계 5:5; 경배, 계 13:4 참조: 계 5:8 이하).|그 짐승은 또한 하나님의 칭호를 흉내내고 있다: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이상히 여겨 짐승을 따르고; 짐승 앞에서 받은 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계 17:8; 계 17:11; 참조: 계 1:4).|"다른 짐승"(계 13:11)은 거짓 선지자로 달리 불리우며(계 16:13; 계 19:20; 계 20:10), 첫 짐승의 선전으로 그 짐승의 계획에 따라 이적을 행하고(계 13:13), 우상을 만들며(계 13:14), 사람들에게 표를 준다(계 13:16이하). 외모는 양을 닮았으나 용처럼 말한다(계 13:11; 참조: 마 7:15).||(d) 이와 같이 짐승의 힘을 제압할 최종적 승리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있을 것이다(계 15:2; 계19:19 이하). 그 짐승의 상징은 역사적으로 1세기 상황에만 적용되도록 의도된 것이 아니라 동시에 모든 세대들이 그와 같은 힘이 의하여 위협 받게 된다는 것을 가리키고 있다.|(참조: Walter Bauer; W. Foerster; C. Brown).
간수하다
qhsaurivzw
쌓아두다, 모으다, 저장하다, 비축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데사우리조(Hdt. 이래)는 '쌓아두다, 모으다, 저장하다, 간직하다, 비축하다'를 의미하며, 특별히 귀중한 것들에 대해 사용되었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데사우리조는 70인역본에서 13회 나오며, '쌓아두거나'(왕하 20:17), '쌓는다'(잠 13:22), 암 3:10에서는 비유적 의미로, 잠 2:7에서는 `예배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데사우리조는 신약성경에서 8회 나오며, 다음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a) 눅 12:21에서 예수님은 물질주의와 이기주의에서 땅의 재물을 쌓아두는 것을 금하신다: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그것들은 버리지 않으려 하면 잃어버릴 수 있는데, 그 이유는 그것들은 안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마 6:19이하). 사랑의 행위는 하늘에 보물을 쌓아두는 것이다(마 6:20).||(b) 고전 16:2에서 데사우리조는 연보를 모아두는 것을 표현한다: "매주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이와 유사하게 바울은 고후 12:14에서도 이 동사를 사용한다: "보라 이제 세 번째 너희에게 가기를 예비하였으나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아니하리라 나의 구하는 것은 너희 재물이 아니요 오직 너희니라 어린아이가 부모를 위하여 재물을 [저축하는] 것이 아니요 이에 부모가 어린아이를 위하여 하느니라". 이 문맥에서 바울은 자신의 앞으로의 방문과 결정이 그들에게 부담이 되는 것이 아님을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바울은 자신을 그들의 아버지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참조: 고전 4:15). 따라서 그들이 자신을 부양할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들을 부양할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c) 롬 2:5에서 데사우리조는 비유적으로 진노를 '쌓은 것'을 표현한다: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유대인들이 실제로 추정하고 있는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과 다른 한편으로는 선행에 대한 보상으로 내세에 저장될 보화에 대한 유대 사상과 반어적으로 대조된다.||(d) 약 5:3,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이 구절은 지상의 보화에 마음을 빼앗긴 자들에게 닥칠 심판을 분명하게 나타낸다. 여기에는 반어적인 것이 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보화를 쌓고 있다는 생각에 열중해 있는 동안 실제에 있어서 그들은 심판을 쌓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참조: 롬 2:5).||(e) 벧후 3:7,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예수님과 바울이 내세의 보화나 진노를 쌓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말하는 반면 베드로후서는 이 사상을 온 세상의 질서에 적용시킨다.|(참조: Walter Bauer; F. Hauck; J. Eichler; C. Brown).
보물
qhsaurov"
보물상자, 금고, 곳간, 창고, 보물.||#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데사우로스(Hes., Hdt. 이래)는 어원이 불확실하며,||(a) '저장되거나 보관된 것, 보물',|(b) '저장소, 창고, 곳간, 보물창고, 보물상자'를 의미한다.|매우 초기 시대부터 신전들은 보물창고들로 건축되어 그 곳에 헌물과 세금으로 받은 헌물과 돈이 저장되었다.|만다교(Mandaean) 영지주의 문헌은 영혼이 생겨나서 구원을 경험한 후 되돌아가는 생명과 빛의 보고와 보화라는 개념에 대하여 사용하였다.|(참조: W.Foerster, Gnosis: A Selection of Gnostic Texts, Ⅱ).||#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데사우로스는 70인역본에서 약 90회 나오며, 주로 히브리어 호찰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문자적, 비유적 의미로 '보물, 재물, 창고, 곳간, 보고'를 나타낸다.|유대교에서 자선과 같은 선행들은 하나님 앞에 쌓여지는 보물, 장차올 세상에 보상으로 쌓아둔 보화인 반면에 그 이자는 이 세상에서도 향유되는 것이다(참조: 토빗 4:8이하; 에스드라하 6:5이하; 7:77). "이스라엘이 율법 성취와 선행의 형태로 모은 모든 것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위해 모은 것이다"(신 1:1; 참조: F.Hauck, TDNT). 때때로 랍비들은 서기관이 묘사하는 보화와 영생의 보고, 즉 죽은 자들의 영혼을 저장해 두는 곳, 또는 그 영혼들을 "묶은" 묶음에 대해 말한다(참조: 삼상 15:29; F.Hauck).||#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데사우로스는 신약성경에서 18회 나오며, 그 중 공관복음에 15회 사용되었다.||(a) 마 2:11에서 데사우로스는 '보물 상자'를 의미한다: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의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b) 마 13:52에서 데사우로스는 '보관 창고'나 '보고'를 의미한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 것과 옛 것을 그 [곳간]에서 내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 이 곳간의 내용물은 단순히 가르침 그 자체가 아니라 천국에 들어가는데 필요한 근거로서 가르침이다.||(c) 마 13:44에서 데사우로스는 (문자적으로) '보물(화)'을 의미한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여기에서 천국은 보화와 비교된다. 예레미아스(J.Jeremias)는 천국이 주는 기쁨과 그것의 요구에 관심을 둔다: '이 기쁜 소식의 결과는 압도적인 것이다. 이것은 기쁨으로 심령을 충만케 한다. 또한 하나님의 공동체의 완성을 삶의 전 목표로 삼고 가장 진실한 자기 희생을 산출한다'.|랍비 교훈에 의하면, 만일 일군이 일을 하는 중에 보화를 캐내었다면 그것은 주인에게 속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 비유에 나오는 사람은 그가 그 밭의 실제적인 소유자가 되기까지 사실상 그 보화를 캐내지 않았다. 그 사람이 그 밭을 사기 위해 자신의 모든 소유를 들였다고 말하고 있으나 사실은 그 보화를 거저 얻었다는 것을 지적한다. 더구나 그는 그 보화를 얻기 위해 법이 허용해 주는 어떠한 일이라도 할 용의가 있었다.||(d) 마 12:35에서 데사우로스는 '보고' 또는 '보화'를 의미한다: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병행구, 눅 6:45).|여기에서 마음은 데사우로스와 병행한다. "쌓은 선"이란 말은 '선한 곳간이나 선한 보화'를 의미할 수 있다. 어느 쪽이든 간에 요점은 선함이 선한 마음으로부터만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곧 이 말은 선을 말하는 것으로 보이나 사실은 악을 도모하는 위선자에 대한 경고를 나타낸다. 마태복음에서 이 예화는 성령을 거스리는 불경에 대한 경고 뒤에 나오며, 요나의 표적과 니느웨의 사람들에 대한 말씀의 앞에 나온다. 누가복음에서는 이 예화가 평지 설교 말씀들에 포함되어 있다.||(e) 마 6:19; 마 6:20; 마 6:21에서 '보물(화)'를 의미한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그 병행구, 눅 12:33, 눅 12:34에서는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적도 가까이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라고 되어 있다.|'마태복음의 대귀법과 동의어 반복은 히브리식이며 아마도 원래의 말씀에 더 가까울 것이다. 그는 재물과 의복 등을 미련스러울 정도로 많이, 곧 사용하기에는 너무 많은 양을 저장해 두었던 동양인들의 참된 모습을 제공해준다'(A.H.McNeile, St.Matthew).||(f) 마 19:21에서 보화에 대한 가르침은 더욱 나아가 부유한 청년 관원의 이야기에 나타난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병행구, 막 10:21; 눅 18:22).||(g) ① 고후 4:7에서 데사우로스는 기독론적인 의미를 나타낸다: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신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사의 보배를, 그것을 받는 자의 육체적 존재와 비교한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이 보배는 앞절에서 이미 빛의 창조를 상기시키는 방법으로 정의되었다: "어두운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고후 4:6; 참조: 창 1:3; 시 112:4).|이 보배는 이렇게 계시된다. 그러나 동시에 감취어져 있다는 의미도 있다. 이 보배는 그것을 담고 있는 그릇에 의해 감취어지며 또한 내적 실재와 모순되는 신자의 생활의 외적 상황들에 의하여서도 감취어진다.|② 골 2:3에서도 보화를 기독론적으로 말한다: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 고후 4장에 나오는 바와 같이, 이 보화는 계시 및 지식과 연결된다(참조: 골 2:2). 그러나 감추인 것은 세속적인 눈으로는 그렇게 보이지 않을지라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를 뜻하는 것으로서, 그 안에서 만물이 창조되었고 또한 하나님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그 안에 거하신다(참조: 골 1:15; 골 1:19). 더욱이 그리스도께서는 지금 하나님과 함께 계시는데, 바로 그 하나님 안에 신자들의 생명이 감추어져 있다(참조: 골 3:3). 골 2:3에 나오는 모습은 숨겨진 보물의 모습으로서 여기에는 이것을 찾는 일에 모든 것을 걸라고 수색자를 유도하는 암시가 있다. 곧 이 구절은 지혜와 지식의 보물이 발견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만을 탐색하라고 하는 요구를 암시하고 있다. "유대 묵시는 바른 지식으로의 권유에 대한 관심을 일으키기 위하여 종종 감추인 보화에 대하여 말한다. 이는 하나님께서 계시를 통해 선택된 자들에게 할당하신 은사가 신비로 가장하여 나타나기 때문이다"(E.Lohes, Colossians and Philemon, Hermeneia ).||(h) 히 11:26의 정확한 의미는 상당한 논의의 주제가 되어 왔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 이것은 마치 모세가 빌 3:7에 기록된 바울의 경험에 필적할만한 그리스도 경험, 곧 그리스도를 애굽의 보화보다 더 좋게 여기게 한 그리스도에 대한 경험이나 환상을 가진 것으로 일반적으로 기독론적으로 해석한다.|그러나 모세가 애굽의 보화보다 오히려 낫게 여겼던 것은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의 신분이었다. 왜냐하면 모세는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들을 믿었기 때문이다(참조: 히 11:27). 따라서 이 구절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아들이다. 모세가 백성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대목에서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바로에게 이 점, 곧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는 것을 상기시켰다(출 4:22). 또한 모세는 자신을 이스라엘의 운명과 동일시하였다. 이 해석은 구약 역사에서 이끌어낸 히브리서 11장에 나와 있는 믿음에 관한 다른 모든 실례들과 화합하는 훨씬 더 우수한 해석이다. 이유는 이 실례들 중의 하나도 독특한 기독론적 해석을 주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들은 모두 구약성경 및 유대적 배경과 관련된다. 이스라엘의 백성의 운명이었던 훼방, 능욕, 또는 오명은 곧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의 운명인 훼방을 예상하는 것이다. 똑같이 믿음의 행위는 물질을 얻는 것보다는 하나님의 약속들에 비추어 고난을 택하라는 요구를 받는다. 이처럼 한가지는 다른 것의 유형인 것이다. 만일 우리가 투 크리스투(tou Christou)를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에 대한 언급으로 해석한다면, 이것은 일종의 속기법으로서, 그 안에서 유형과 원형이 연합한다.|(참조: Walter Bauer; F.Hauck; J.Eichler; C.Brown).
건드리다
qiggavnw
건드리다, 만지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딩가노(trag. 이래; Hippocr.)는 기본어로 디그에서 유래했으며,||(a) '건드리다, 만지다, 손대다, 접촉하다'(Aeschyl., Xen., Pla. 등),|(b) '폭행을 가하다, 상해하다'(Eur. Iph. Aul. 1351)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딩가노는 신약성경에서 3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히 12:20에서 딩가노는 '접촉하다'는 의미에서 '이르다'를 의미한다(참조: 출 19:12).||(b) 히 11:28에서 딩가노는 적대적인 건드림에 대해 사용되었다.||(c) 골 2:21에서 부정 명령형이 독립적으로 사용된다: "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이니". "만지지도 말라"는 '폭행하지 말라'는 의미를 가진다. 이것은 아마도 법률적인 강요를 "강하게 모방"한 것일 것이다(E. Lohse).|(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EDNT).
에워싸 밀다
qlivbw
압박하다 press upon, 억압하다 oppress, 괴롭히다 afflict.||#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들리보(Homer 이래)는||(a) '누르다, 짓누르다, 압착하여 짜내다, 문지르다, 둘러싸다, 가두어 넣다, 키스하다, 좁다, 작다'.||(b) 비유적 의미로, '괴롭히다, 억압하다, 방해하다, 좌절시키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들리보는 70인역본에서 약100회 나오며, 11개의 히브리어 단어 및 어군을 번역하며, 주로 차랄(∼을 향하여 적의를 보이다)와 찰(적, 원수)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이 단어는 '괴롭히다, 적대감을 가지고 대한다, 억압하다, 적대하다, 파괴하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들리보는 신약성경에서 10회 나오며, 다음과 같은 의미로 나타낸다.||(a) 막 3:9에서 들리보는 '바짝 에워싼' 것을 의미한다: "예수께서 무리의 에워싸 미는 것을 면키 위하여 작은 배를 등대하도록 제자들에게 명하셨으니".|(b) 마 7:14에서 들리보는 '좁다'를 의미한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c) 들리보는 '압박하거나 고난(환난)을 받는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고후 1:6: "우리가 환난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와 구원을 위함이요 혹 위로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를 위함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고후 4:8: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고후 7:5: "우리가 마게도냐에 이르렀을 때에도 우리 육체가 편치 못하고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여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라". 모든 방면으로부터 가해지는 고통을 표현한다.|히 11:37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딤전 5:10에서 들리보의 복수 분사가 사용되어 환난이나 고난 당한 자들을 의미한다: "선한 행실의 증거가 있어 혹은 자녀를 양육하며 혹은 나그네를 대접하며 혹은 성도들의 발을 씻기며 혹은 환난당한 자들을 구제하며 혹은 모든 선한 일을 좇은 자라야 할 것이요".|데살로니가전후서에서 들리보는 기독교인이 받을 박해를 언급한다: 살전 3:4,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장차 받을 환난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더니 과연 그렇게 된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살후 1:6, 살후 1:7, "너희로 환난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환난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참조: Walter Bauer; J.H.Thayer).
고난
qlivyi"
억압 oppression, 고난 affliction, 환난 tribulation.||#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들립시스(Thu. 이래)는 들리보($2346)에서 유래했으며, '억압, 압박', '고통, 괴로움, 고난'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들립시스는 70인역본에서 약 130회 나오며, 12개의 히브리 단어 및 어군을 번역하는데 주로 차랄 어군을 번역한다. 이런 히브리어 단어들은 '억압, 근심, 괴로움, 고난, 환란' 등을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들립시스는 신약성경에서 45회 나오며, 다음과 같은 의미를 나타낸다.||1. 고난의 성질.||(a) 신자와 사도들 모두 고난을 겪는다. 이 고난은 실제적인 것이다: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을 인하여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도를 유대인에게만 전하는데"(행 11:19). 또한 피할 수 없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요 16:33). 이와 관련하여 이스라엘은 하나의 본보기이다. 바울은 사도로서 특별한 고난을 당한다(살전 3:3-살전 3:4; 행 20:23; 고후 1:4).||(b) 이 고난은 그리스도 자신의 고난이며 계속된다. 그리스도의 고난은 사도에게 계속된다: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 1:24), 바울은 그리스도의 고난을 경험한다(참조: 고후 4:10-고후 4:11).|계 7:14의 순교자들도 이와 비슷하게 그리스도 자신의 고난들을 증거한다. 교회의 구성원들이 당하는 고난은 그들이 높임 받으신 주님이 이미 당하신 고난을 주님의 지체들에서 나타낸다는 의미에서 그리스도의 고난이라 일컬어진다. 그리스도는 자신의 고난에 기초하여 그의 백성들 안에서 고난 당하신다.||(c)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의 고난은 그리스도인의 생활과 떨어질 수 없으며, 그리스도 자신의 고난이며, 그리스도께서 끝내신 이 세대 가운데서 일어나는 것이라는 점에서 종말론적인 것이다(고전 7:26이하; 마 24:9이하; 계 1:9; 여기에서 현재의 환란은 말세의 대환난의 견지에서 고려된다). 유대교도 역시 종말론적인 환란은 기대하지만, 신약성경에서 새로운 특징은, ① 이 마지막 환란이 시작되었다는 것과, ② 메시야 자신의 수난이 이 환란을 개시하신다는 것과, ③ 이 환란은 그의 흩어져 있는 백성들이 당하는 고난이라는 것이다.||(d) 또한 마지막 심판과 관련된 고난도 있는데, 불의한 자들과 교회를 핍박한 자들은 하나님의 진노 아래 놓일 것이다(롬 2:9; 살후 1:6). 교회는 이 심판을 고대하는데, 이는 그 심판이 하나님의 심판을 대신 당하신 그리스도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인들의 고난은 믿음의 눈으로 볼 때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의 참된 표이다(참조: 살후 1:5).||2. 고난의 체험.||(a) 그리스도인들이 당하는 고난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롬 2:9; 살전 3:7; 요 16:21; 막 4:17).|① 구체적으로 이 고난들은 살전 1:6에서는 박해를 가리킨다: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② 행 20:23에서는 옥에 갇힘을 가리킨다: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③ 히 10:33에서는 조롱을 가리킨다: "혹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로 사귀는 자 되었으니".|④ 고후 8:13에서는 가난을 가리킨다: "이는 다른 사람들은 평안하게 하고 너희는 곤고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요 평균케 하려 함이니".|⑤ 계 2:22에서는 아마도 질병을 가리킨다: "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로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 던지고"(참조: 또한 계 8:35과 고후 11:23이하의 목록을 참조하라).|⑥ 또한 내적 고민과 슬픔(빌 1:16이하)이나 불안, 걱정과 두려움(고후 7:4이하)의 고난도 있다.||(b) 고난의 공통되는 힘은 그 안에서 역사하는 사망의 권세이다(참조: 고후 1:8-고후 1:9; 고후 4:10-고후 4:11; 고후 11:23). 그리스도의 지체들이 겪는 그리스도의 고난은 그리스도께서 타파하신 사망의 효과를 체험하는 것이다(참조: 빌 3:10). 고난은 그 뜻하지 않은 사건과 부패성으로 우리 현재 삶에 외적 흔적을 남긴다(고후 4:16이하). 따라서 우리는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복음을 지킬 것인지, 생 그 자체의 가능성의 견지에서 삶을 볼 것인지, 하나님의 약속으로 말미암아 열려진 가능성의 견지에서 삶을 볼 것인지를 시험받게 된다(고후 1:8-고후 1:9). 믿음은 고난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들이고, 생명을 하나님께 도로 바치는 것이다.|그러므로 고난은 소망 가운데 보이지 않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꿋꿋한 인내를 낳으며(살후1:4), 위로를 주며(참조: 고후 1:5-고후 1:6) 장래의 영광이 현재의 고난에 비할 수 없으리만큼 중하다는 확신(고후 4:17-고후 4:18)을 준다. 이리하여 덕스러운 순환을 가지는데, 이 순환에 따라 약속은 소망을 주고, 소망은 고난을 받아들이며, 고난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소망을 증대한다. 이리하여 기쁜 성령의 약속을 성취한다.||(c) 그리스도인들은 이렇게 고난을 받아들임으로 공동체를 세운다. 이러한 고난 속에서 말씀은 다른 사람들에게 적절한 위로의 약속이 된다: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고후 1:4이하). 그의 백성의 고난 가운데 그리스도께서 친히 교회를 세우시며, 따라서 사실상 그리스도는 이미 고난의 권세를 깨뜨리셨음을 보여준다.|(참조: J.H.Thayer; H.Schlier; R.Schippers).
드네스코
qnhvskw
죽다 die.||#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드네스코(Homer 이래)는 '죽다' die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드네스코는 70인역본에서 97회 나오며, 므트(4191: 죽다, 죽이다)의 역어로 사용되어, 그런 의미를 나타낸다(창 50:15; 출 21:35; 삼하 2:7; 왕상 3:20 등).||#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드네스코는 신약성경에서 9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드네스코는 '죽다'를 의미한다.|① 마 2:20, "일어나 아기와 그 모친을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 아기의 목숨을 찾던 자들이 죽었느니라 하시니".|② 막 15:44, "빌라도는 예수께서 벌써 죽었을까 하고 이상히 여겨 백부장을 불러 죽은지 오래냐 묻고".|③ 눅 7:12, "성문에 가까이 오실 때에 사람들이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오니 이는 그 어미의 독자요 어미는 과부라 그 성의 많은 사람도 그와 함께 나오거늘".|④ 눅 8:49, "아직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이 와서 말하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선생을 더 괴롭게 마소서 하거늘".|⑤ 요 11:44,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⑥ 요 19:33, "예수께 이르러는 이미 죽은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⑦ 행 14:19,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초인하여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성밖에 끌어 내치니라".|⑧ 행 25:19, "오직 자기들의 종교와 또는 예수라 하는 이의 죽은 것을 살았다고 바울이 주장하는 그 일에 관한 문제로 송사하는 것 뿐이라".||(b) 드네스코는 비유적으로 영적으로 '죽다'(영적 생명의 상실)는 의미를 나타낸다: "일락을 좋아하는 이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딤전 5:6).|(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죽을
qnhtov"
필멸의, 죽을 수 밖에 없는.||#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드네토스(Homer 이래)는 드네스코($2348: 죽다)에서 유래했으며, '필멸의, 죽을 수 밖에 없는'을 의미하며, 헬라인들이 신과 대조되는 인간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하기도 했다.||#2. 70인역본의 용법.||형용사 드네토스는 70인역본에서 9회 나오며, 히브리어 하이(2416: 살아있는, 생생한, 욥 30:23), 아담(120: 인류, 인간; 잠 3:13; 잠 20:24), 므트(4191: 죽다, 죽이다; 사 51:12)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생물, 사람, 죽음'을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드네토스는 신약성경에서 6회, 바울 서신에만 사용되었다/||(a) 드네토스는 고후 15:53; 고후 15:54에서 인간의 본질을 나타내는 포괄적인 묘사로 사용되었다: "53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54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b) 드네토스는 '필멸할 것'을 의미한다.|① 고후 5:4,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 진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게 하려 함이라".|② 고후 4:11,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③ 롬 6:12,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노릇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④ 롬 8: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소동케 하다
qorubevw
소란, 소동을 일으키다, 소란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도뤼베오(Hdt. 이래)는 도뤼보스($2351: 소란, 소동)에서 유래했으며,||(a) '혼란시키다, 소동을 일으키다', 수동태로 '소란하다, 야단법석이다, 난처하게 되다'.||(b) '괴롭힘을 당하다, 괴로워하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도뤼베오는 신약성경에서 4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도뤼베오는 행 17:5에서 능동태로 '혼란이나 소동을 일으키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저자의 어떤 괴악한 사람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동케 하여 야손의 집에 달려들어 저희를 백성에게 끌어 내려고 찾았으나".||(b) 도뤼베오는 수동태로 '소란하다, 야단법석이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① 마 9:23, "예수께서 그 직원의 집에 가사 피리 부는 자들과 훤화하는 무리를 보시고".|② 막 5:39, "들어가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훤화하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③ 행 20:10, "바울이 내려가서 그 위에 엎드려 그 몸을 안고 말하되 떠들지 말라 생명이 저에게 있다 하고".|(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도뤼바조
qorubavzw
야단법석하다, 괴로워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도뤼바조(Dositheus 71, 16)는 도뤼보스($2351: 소란, 소동)에서 유래했으며,||(a) '혼란시키다, 어지럽히다, 괴롭게 하다',|(b) 수동태 '야단법석하다, 고민(괴로워) 하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도뤼바조는 신약성경에서 눅 10:41에 한번 나온다: "주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여기서 '야단법석하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따라서 "염려하고 근심하나"라는 말에서 마르다는 속으로는 염려했고 겉으로는 동요하고 있었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