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좌
qrovno"
왕좌, 보좌.||#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드로노스(Homer 이래)는 사용되지 않는 형 드라오(%768: 앉다, 놓다)에서 유래했으며, '왕좌, 보좌'를 의미한다.|이 단어는 자리 및 발판과 관계가 있으며, 등받이와 팔걸이와 발판을 갖추고 있는 높은 의자를 뜻한다. 이것은 장로들, 교사들이 앉는 자리이며, 나중에 왕이나 신들의 자리가 되었다.|왕의 보좌는 근동에서 헬라로 들어왔다. 신의 보좌는 제우스의 특권이지만 때로 제우스와 헤라를 위한 두 개의 보좌가 있다. 보좌는 죽은 신에 대한 제사에서도 나온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드로노스는 구약성경에서 159회 나오며, 주로 히브리어 킷세(3678: 영광의 자리, 보좌, 왕좌, 창 41:40; 삼상 2:8; 왕상 2:4; 대상 17:12; 에 5:1; 학 2:22 등), 코르세(3764: 보좌, 왕좌, 단 7:9; 단 5:20)의 역어로 사용되었다.|70인역본에서 드로노스는 영광의 보좌(삼상 2:8), 왕의 보좌(왕상 9:5), 여호와의 보좌(대상 29:23), 악의 보좌(시 94:20)를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드로노스는 신약성경에서 62회 나오며, 사변적인 해석없이 하나님의 보좌에 대해 자유롭게 언급한다. 구약성경의 메시야적 종말론의 줄기가 마침내 신약성경의 구원의 사건을 낳고, 다음으로 궁극적인 완성으로 방향을 짓는다. 하나님의 보좌 곁에 또 다른 보좌가 존재하는 것은 새로운 구속적 상황을 표상하는 것이다.||(a) 하나님의 보좌로서의 하늘.|사 66:1 이하에 기초하여, 하늘은 예수님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보좌이다. 따라서 우리가 하늘로 맹세하는 것은 보좌에 앉으신 분이신 하나님으로 맹세하는 것이 된다(마 5:34; 마 23:22). 예수님께서 의인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제시하는 그 구약 성경 구절은 스테반의 연설에서 하나님은 사람의 손으로 지은 처소에 갇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한 예언적 증언으로 인용된다(행 7:49).||(b) 다윗의 보좌.|신약성경에서 세상의 보좌에 대한 유일한 실제적 언급은 눅 1:52에 있다. 눅 1:32의 다윗의 보좌는 메시야 왕의 보좌이다. 하나님은 그것을 마리아의 아들에게 그의 조상 다윗의 보좌로서 주셨은즉, 행 2:30에서 그를 가리켜 언급된 왕하 7:12 이하의 예언에 따라, 그는 야곱의 집을 영원히 다스릴 것이었다(참조: 사 9:6). 또 시 45:6에 마지막 날의 왕의 보좌가 언급되어 있는데, 이것은 히 1:8에서 천사들에 대한 아들의 우월성을 증명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그 의미는 하나님과 함께 보좌에 앉으신 그의 주권적 위엄이다(참조: 히 1:3). 여기서 "다윗 왕조의 사상이 완전한 실현을 이룬다".||(c) 영광의 보좌.|드로노스 독세스라는 표현은 공관복음의 주님의 말씀에서 자주 발견된다. 이 문구는 인자의 주권적 자리를 가리키며, 이 때 그는 심판하고 다스리는 메시야적 영광으로 나타난다. 이 언급은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를 다스리는 그의 미래의 통치를 나타낸다. 이 통치에서 열 두 제자가 한 역할을 담당할 것이다. 그들은 열 두 보좌에 앉아서 심판할 것이다(마 19:28). 또 이 보좌로부터 인자가 열방에게 심판을 행할 것이라는 언급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다른 자들이 이 심판에 참예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마 25:31 이하).|요한계시록에서도 똑같은 구별이 발견된다. 지상에서 그리스도께서 천년 통치를 시작할 때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계 20:4; 참조: 단 7:9, 22, 26, 이기는 자에게는 높임 받으신 주님과 함께 보좌에 참예하리라고 약속됨, 계 3:21). 그러나 천년의 끝에는 세상 심판의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만 보인다(계 20:11).||(d) 은혜의 보좌.|히브리서는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 육신의 날로 계신 동안 모든 시험을 견디시고 이제 하늘로 오르사(히 4:14) 위엄의 보좌(히 8:1) 곧 하나님(히 12:2)의 보좌 우편에 앉으신 사실에 의거하여 하나님의 보좌를 드로노스 테스 카리토스라고 부른다. 그것은 은혜의 보좌로 불리는데, 이는 "긍휼없는 심판 보다 오히려 용서하는 은혜가 거기서부터 이제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보좌가 은혜의 보좌일지라도 여전히 그의 주권적 위엄의 상징이다.||(e)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하나님의 주권적 위엄의 상징적 표현으로서의 하나님의 보좌는 요한계시록에서 보좌에 대한 환상의 핵심에 있다(계 4장). 그것은 하늘에 있으며, 환상에서 그 위에 앉으신 분과 불가분 결합되어 있다. 보좌 그 자체는 묘사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하늘의 보좌가 있는 그 장소의기타 모든 것들이 보좌를 중심으로 묘사되어 있다(계 4:3-7). 이상에서 살아있는 생물(계 4:8-9)과 장로들이(계 4:10-11)의 경배는 보좌의 앉으신 분께 집중된다. 이 표현은 하나님의 창조주로서의 무한한 영광에 비추어 거의 하나님을 가리키는 하나의 명칭이다(계 4:9; 계 4:10; 계 5:1; 계 5:7; 계 5:13; 계 7:15; 계 21:5; 참조: 또한 계 19:4). 따라서 모든 피조물(계 5:13)이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에게" 경배를 돌린다는 것은 보다 의미심장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이 심판을 두려워하여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양의 진노에서" 숨기를 구한다는 것도 역시 그러하다(계 6:16). 요한계시록의 기자에게 있어서 높임 받으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보좌에 참예한다. 이것은 마지막 장의 새 예루살렘에 대한 환상에서 가장 분명하게 표현된다. 한편 계 7:15에서 흰옷을 입은 무리는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으며,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실 것이다(계 7:17). 생명수의 강이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온다(계 22:1). 그리고 "하나님과 그 어린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을 하나님의 도성에 대해 분명히 말한다(계 22:3). 종국에 하나님의 보좌가 "땅으로 내려올" 때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라고 불리운다. 계 3:21에서 이미 예수님은 그의 아버지의 보좌에 함께 하며, 그는 이기는 자들에게 보좌에 함께 앉을 것을 약속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보좌에 이기는 자들의 무리가 함께 하는 것에 대해 요한계시록의 환상에서는 묘사하지 않는다. 계 4:4의 24장로들의 보좌는 하늘에서 다스리는 권세들의 자리이다. 그들의 통치권은 창조주로서의 하나님의 위엄과 관련하여 아무 의미가 없음은 그들이 보좌에 앉으신 자 앞에 엎드리고 보좌 앞에 면류관을 던진다는 사실에서 압도적으로 표현된다(계 4:9; 계 4:10). 그리고 세상 끝날에 하나님의 새로운 세계에서 하나님의 통치의 자리는 어린양의 보좌라는 사실에서 더욱 더 분명해 진다. 한 가지의 동일한 통치권을 대표하는 이 이중적 보좌에 대적하는 대응물이 있다.||(f) 사탄과 짐승의 보좌.|버가모 교회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때로 순교를 당할 수도 있는 핍박을 언급하면서 사탄이 거하는 이 도성에 사탄의 위(보좌)가 있다고 말한다(계 2:13). 이 강한 표현은 로마 제국의 권력이나(계 2:9에도 불구하고) 유대인 회당을 가리키는 것 같지는 않다. 또 제국적 제사의 중심인 아구스투스와 로마의 신전이 사탄의 위로 불리웠을 가능성도 희박하다. 왜냐하면 소아시아에서 이 제사의 본부는 에베소에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소테르 아에스쿨라피우스에 대한 버가모 특유의 제사를 가리킨다는 견해가 더 그럴듯하다. 그의 상징은 뱀이었으며 그의 기적적인 치료는 예수님의 구원 사역에 대한 악랄한 모방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이교 사상에 스며있는 순례 여행의 그러한 장소는 사실상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의 보좌를 나타내는 지역이었던 것이다. 만약 이 적대적인 사탄의 세력이 거한 실제 구조물을 반드시 가정해보아야 한다면 버가모 성곽에 있는 거대한 제우신 제단으로 보는 것이 가장 그럴듯한 것이다. 이 표현은 이러한 종교적 상징들을 모두 "부여한 총체"를 나타낸다고 보는 것이 개연성 있다. 계 13:2에 보면 사탄은 위를 가졌다고 전제한다. 여기서 용은 첫번째 짐승, 즉 적그리스도에게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주었다. 또 다섯째 천사가 그 대접을 짐승의 보좌에 쏟았다(계 16:10). 여기서 보좌와 통치권이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은 뒤이어 나오는 "그 나라가 곧 어두워지며"라는 구절에서 보여진다.||(g) 천사들의 계급으로서의 보좌.|골로새서의 기독론적 주석에서 의하면, 모든 다른 피조물들과 마찬가지로 보이지 않는 세력들도 "그에게", 즉 "그의 사랑하는 아들에게" 창조되었으니,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 만이 아니라 무엇보다 "보좌들"까지도 그에게 창조되었다(골 1:16). 이 칭호는 스라이브 에녹서 20:1에서 기자가 일곱번째 하늘에서 본 천상적 세력들의 목록에서 나온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레위의 언약에서 일곱번째 하늘에서 '보좌들과 권세들'이란 표현을 발견한다. 비록 정확한 구분은 가능하지 않다하더라도 이 표현은 천사들 중 가장 높은 계급 가운데 하나를 가리키는 것 같다. 이 명칭은 천사적 세력으로 분명 여겨지는 24장로들(계 4:4)처럼 그들도 그러한 보좌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주는 것일 것이다.(O. Schmitz).|(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O. Schmit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