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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해설
같은
i[so"
동등한 equal, ~에 상당한 corresponding to.||#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이소스(Homer 이래로)는 사용 초기에는 전쟁 전리품 분배의 기본적인 규칙을 표현하며, 여기서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a) 이소스가 뜻하는 동등함이나 같음은 일차적으로 크기나 수의 같음, 또는 양적 의미에서의 가치나 힘의 대등을 의미한다. 이런 의미에서 이 단어는 질을 시사하는 호모이오스($3664)와 다르다. 따라서 이소스는 돈의 합계, 지불금의 같음, 공간과 기간의 같음, 몫, 목소리의 같음 등을 나타내는데 사용되었다. 이소스는 수학적으로 정확히 같은 것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예를 들면 복사와 같은, 내용의 정확한 일치에 대해서도 사용되었다.||(b) 인간 평등의 개념은 그리스도의 법과 정치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것이다. 법은 평등에 기초하고 있다. 법적인 평등만이 법적 관계를 가능하게 한다.|희랍 민주정치는 도시국가들 속에서 모든 시민들이 사회적으로 동등한 지위를 가지며 동등한 권리를 누린다는 원칙에 기초를 두었다. 평등은(자유와 함께)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이다.|사법상의 공정성은 모든 당사자들에게 평등의 원칙을 적용하는 데 달려있다. 법적인 평등은 정의를 요구한다. 즉 법을 집행할 때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된다.|이러한 점에서 이 평등(이소스)는 디카이오스(의로운, 의)와 거의 동일한 의미를 갖게되고, 두 개념들이 서로 바꾸어 쓸 수 있었다. 법적인 면에서 공정성 외에 평등 원칙을 적용할 때 특히 그것은 모든 시민에게 부여되어야만 하며 그것은 정당하고 공평한 처사라는 것을 의미했다.||(c) 정의와 공평 사이의 관계는 각개의 철학파들 속에서 다르게 정의되었다. 스토아 학파의 덕(virtue)에 관한 가르침을 보면 정직과 공평은 정의(Justice)에 대한 의지에서 생긴다고 한다. 그러나 필로의 입장은(spec. Leg. 4, 231) 그와 정반대로 이소테스 메테르 디카이오쉬네스('공평은 정의의 어머니')라고 한다. 결과적으로 볼 때 이 두 개념은 서로 교체 가능한 한 쌍이 될 수 있다. 즉 이손 에 디카이온('공평한 또는 올바른')이 된다.||(d) 평등의 의미는 헬라의 지적 생활에서 너무나 공고하게 발전되어 드디어 헬라니즘에서, 철학적 사상을 구원의 개념에 적용하고, 영웅숭배사상을 경유하여 신격화의 교리에 이르렀다. 이미 호머의 서사시에서는 그 후에 나오는 비극에서처럼 신적 능력을 소유한다고 믿었던 영웅을 '신과 같은' '신들과 같이'라는 의미의 다이모니 이소스, 이소데오스, 이소다이몬이라고 표현하였다. 플라톤은 다음과 같이 철학적으로 이상적인 길을 제시하였다: 호 모이우스다이 토 데오 카타 토 뒤나톤('가능한 한 신과 같이 되다')(Theaet. 176). 이와 부합하여 이상적인 "신적 인간"도 어느 정도까지 신과 동등했다(이소데오스; 참조: Homer, Ⅱ, 2, 565: Od. 1, 324; Plato, Phdr. 255a).(참조: G. Stahlin; E. Beyreuther).||#2. 70인역본의 용법||형용사 이소스는 70인역본에서 40여회 나오며, 주로 히브리어 케(~와 같이, ~의 닮음; 주로 욥기)와 에하드(하나, 같은; 주로 에스겔)의 역어로 사용되어 그런 의미를 나타낸다. 이소스는 출 30:34에서 바드(한 부분)의 역어로 '동일한 부분의 혼합'을, 레 17:10에서 분배에 있어서 케아히우의 역어로 '같은'이란 의미를 나타낸다. 그리고 외경 마카베오사서 13:20이하에서 기간의 같음을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이소스는 신약성경에서 8회, 사복음서와 사도행전, 빌립보서, 요한계시록에 나타난다.||(a) 눅 6:34에서 이소스는 양이나 크기의 동등함을 나타낸다: "너희가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빌리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뇨 죄인들도 [의수히] 받고자 하여 죄인에게 빌리느니라". 이 형제애의 새로운 자세는 자기의 원수를 대범하게 사랑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얻기 위하여 주는 원칙을 능가한다. "다시 그만큼 받기 위해" 서로 돕는다면 그것은 죄인들도 할 수 있는 일이다.||(b) 계 21:16에서 이소스는 길이의 같음을 나타낸다: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장광이 [같은]지라 그 갈대로 그 성을 척량하니 일만 이천 스다디온이요 장과 광과 고가 같더라".||(c) 막 14:56와 막 14:59에서 이소스는 증인들의 증거의 일치를 나타낸다: "이는 예수를 쳐서 거짓 증거하는 자가 많으나 그 증거가 [서로 합하지] 못함이라…오히려 그 증거도 [서로 합하지] 않더라" 예수님께서 재판을 받을 때에 증인들의 증거가 서로 일치되지 않았다. 이는 그 증인들의 증거가 거짓 증거였기 때문이다.||(d) 마 20:12에서 이소스는 영원한 구원 및 보상의 동등을 나타낸다: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만 일하였거늘 저희를 종일 수고와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그리스도인의 평등은 법적 평등이 아니라 은혜와 사랑에 근거를 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포도원에서 일하기 위하여 일찍 들어갔든지 늦게 들어갔든지 간에 법적이나 공로에 상관없이 구원과 천국에서 동일한 보상을 은총의 선물로 받는다. 이것은 종말론적 평등이다.||(e) 행 11:17에서 이소스는 영적 소유의 내적 평등을 나타낸다: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저희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관대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더라". 이 영적 소유는 하나님께서 그의 주권적 은총으로 태생이나 믿기 이전의 역사에 상관없이 받는다. 그리스도인들의 평등은 영원한 구원이나 영적 소유의 동참 문제에 있어서 모든 민족과 종교의 영역을 초월하며, 성령의 유일하고도 동일한 경험을 통해 유대인과 이방인들 사이의 모든 장벽이 제거되는 초자연적 행위로 체험된다(참조: 벧후 1:1).||(f) 요 5:18에서 이소스는 하나님과 동등성을 나타낸다: "유대인들이 이를 인하여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만 범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여기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시한다고 비난하였다.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이라고(참조: 요 5:19) 분명히 표현하지는 않았으나 하나님과 자신의 사역의 동일함을 강조하였다. 요 1:1, 요 10:30에는 아버지와 아들의 연합이 아버지께 대한 아들의 복종의 관계에도 불구하고 명백하게 진술되어 있다. 요 10:33에서는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 함이로라"고 하는 비난을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경우에서 요 5:16의 이소스, 곧 하나님과 동등성은 새로운 깊이와 온전성을 지니며, 위엄, 뜻(will), 그리고 본질의 동등성을 나타낸다.||(g) 빌 2:6에서 이소스는 약간 난해하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이 구절에서 이소스의 문제는 하나님과의 동등성이 실재이냐 아니면 가능성이냐이며, 또한 이 구절에서 말하는 행위가 선재하신 그리스도의 행동이냐 아니면 그리스도의 행동이냐 하는 문제이다. 첫 번째 대답은 하나님과의 동등성은 하나의 소유로서, 이는 포기되거나 상실될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즉 이 동등성은 그리스도의 길의 시작이며(빌 2:6) 또한 마지막이 될 것이다(빌 2:9 이하). 그러나 그리스도는 일시적으로 그 동등성을 사용하지 않으시고, 종의 형체를 취하시어 자기를 낮춤의 형태로 그의 주님되심을 행사하시고 이렇게 함으로서 하나님과 자신의 동등성을 공적으로 인정받게 되셨다. 그리스도는 스스로를 존중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권면의 요지-그의 낮추심 안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신성이 그리스도의 영광에서 확증되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의 행위는 영원한 그리스도의 행위이며, 그의 비우심은 하나님과의 본질적인 동등성을 결코 상실하지 않았다는 것을 암시한다.|(참조: E. Beyreuther; G. Stahlin; Walter Bauer).
공평
ijsovth"
동등함 equality, 공평함 fairness.||#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이소테스(Eur. 이래로)는 이소스($2470: 동등함)에서 유래했으며,||(a) '같음, 동등함'(ps. -phoc. 137), 질서의 원리로서 이소테스는 우주적 조화, 모든 세력의 균형을 의미하며, 이 원리는 평등을 쟁취하기 위한 인간의 노력에 반영되어 있다.||(b) '공평, 공정'(Menand., Monost., 259 등)을 의미한다. 이소테스가 디카이오쉬네(공의, 공정)와 흡사하기 때문에 공평, 공정이라는 의미를 취하게 되었다.||질서의 원리로서 이소테스는 우주적 조화, 모든 세력의 균형을 의미하며, 이 원리는 평등을 쟁취하기 위한 인간의 노력에 반영되어 있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이소테스는 70인역본에서 2회, 상당하는 히브리어 없이 사용되었다. 이소테스는 욥 36:29에서 장막의 '치수나 범위(measure)'(한글개역에는 '울리는 소리')를, 슥 4:7에서 '동등한 것'을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이소테스는 신약성경에서 3회 나오며, 다음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a) 골 4:1에서 이소테스는 '공평'이란 의미를 나타낸다: "상전들아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지니 너희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지어다". 여기에서 상전들에게 종들을 공의롭고 공평하게 다루라고 권면한다. 하늘에 계시는 그들의 상전은 전적으로 공의롭고 공평하신 분이시다. 지상의 상전들은 하늘에게 계신 그들의 상전과 일치해야한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가 이스테스를 하나님을 언급하는데 사용했을 때, 그는 사변적인 이스테스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모든 회중에게 현존하는 사회적 불평등은 부정되거나 제거되지 않는다. 그러나 가난한 자와 부자, 주인과 종의 교제에서 새로운 규칙과 기준을 받아들이는데 이것은 그리스도인 사이의 생활을 규제하는 새로운 원리인 사랑을 통해서이다. 따라서 주인들은 공의와 공평으로 종들을 대해야 하는 것이다.|더구나 종들은 이미 자기 주인의 변덕에 복종하는 하나의 소유물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들이다(참조: G. Stahlin; E. Beyreuther).||(b) 고후 8:13; 고후 8:14에서 '평균'이란 의미를 나타낸다: "이는 다른 사람들은 평안하게 하고 너희는 곤고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요 [평균]케 하려 함이니 이제 너희의 유여한 것으로 저희 부족한 것을 보충함은 후에 저희 유여한 것으로 너희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평균하게 하려 함이라". 여기의 가난한 자와 부자의 교제에서도 주인과 종의 경우에서와 마찬가지로 사랑이 그 원리이다. 형제애는 항상 궁핍한 자를 보살핀다. 헌금의 취지는 여기서 다른 사람을 평안하게 하기 위해 고린도 교인들을 곤경에 처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었다(고후 8:13). 그 원리는 평균케하는 원리이다. 이제 바울은 평균케하기 위해 고린도 교인들에게 그들의 유여한 것을 주어 예루살렘 공동체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라고 권한다. 평균이 그 목적으로 하는 것은 '부족함을 구제하는 것이지, 재산을 인위적으로 평등화 하는 것'이 아니다.|(참조: Hughes; Nickle).
동일하게 보배로운
ijsovtimo"
동등한 가치의 of equal valus.||#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이소티모스(Strabo, Philo, Plut., Lcian 등)는 이소스($2470: 동등한)와 티메($5092: 값, 평가하는 것)에서 유래했으며, '동일한 가치의, 동일한 종류의'라는 의미를 가진다. 이 단어는 시민 생활에 있어서 동일한 지위와 계급을 의미하는데 사용되었다. 70인역본에는 나오지 않는다.||#2.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이소티모스는 신약성경에서 벧후 1:1에서 '동일한 종류'의 믿음을 묘사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과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같이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이 구절이 하나님의 나라에서의 동일한 지위와 권리를 언급한다면 그것은 동일한 영적 분배로 얻은 것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은혜로우신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 앞에 모두 동일하게 의롭게 하는 동일한 믿음을 받는다|(참조: Walter Bauer; G. Stahlin).
뜻을 같이 하는
ijsovyuco"
같은 영혼 또는 같은 마음의 of like soul or mind.||#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이솝쉬코스(Aeschyl., 이래로)는 이소스($2470: 동등한)와 프쉬케($5590: 호흡, 영혼)에서 유래했으며, '같은 영혼(마음)의'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형용사 이솝쉬코스는 70인역본에서 시 55(54):13에서 한번 케일티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그가 곧 너로다 나의 동류, 나의 동무요 나의 가까운 친우로다".||#3.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이솝쉬코스는 신약성경에서 빌 2:20에 한번 '같은 마음'이란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는 [뜻을 같이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밖에 내게 없음이라". 바울은 디모데를 완전하게 같은 마음을 가진 믿을 수 있는 동료라고 회중에게 추천했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E. Beyreuther).
이스라엘
!Israhvl
이스라엘 Israel.||#1. 구약성경||이스라엘이라는 이름(히브리어 이스라엘)은 히브리어 명사 엘(하나님)과 동사적 술어로 구성되어 있다. 그에 대한 설명은 창 32:28에서 야곱이 하나님과 씨름한 이야기에 나온다: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라"(참조: 호 12:4). 따라서 그 이름은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라고 해석되어 왔지만, 그 문구에 대한 정확한 번역에 따르면 '하나님과 더불어 힘을 얻어 강하게 된 자'를 의미한다. 그 문구에는 '통치하다'를 뜻하는 동사 사라르나 '다투다, 힘을 가지다'를 뜻하는 사라가 들어 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나님이 투쟁하신다'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이스라엘은 사람의 이름으로 사용되었다(예: 창 50:2; 출 1:1; 대상 1:34). 그러나 이스라엘은 또한 부족과 국가의 이름으로도 사용되었다. 예를 들면, "이스라엘 자손"(레 1:2; 삿 2:4), "이스라엘 족속"(출 40:38; 삼상 7:2; 사 46:3)이며, 그것은 특히 북왕국에 해당되는 말이지만(왕상 12:21; 호 5:1; 암 5:1; 미 1:5) 남왕국에게는 명예칭호로 사용되기도 했다(사 5:7; 렘 10:1). 구약성경 외에서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최초의 대외적인 언급은 애굽왕 메르넵타(Merneptah)가 주전 1220년경 그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의 비문에 나온다. 그곳에서 그는 "이스라엘은 황폐화되었다. 그 자손은 멸절되었다"라고 자랑하고 있다(참조: D. Winton Thomas, ed. Documents from Old Testament Times). 비롤레오드(C. Virolleaud)의 기록에는 이스라엘은 우가릿에서 사람의 이름으로 등장한다.||#2. 신약성경.||이스라엘은 신약성경에서 68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① "이스라엘 집", 이스라엘의 가족 또는 자손, 이스라엘 종족, 마 10:6; 마 15:24; 행 7:42.|② "이스라엘 자손", 이스라엘의(아들들 즉 자녀들) 자손, 눅 1:16; 행 5:21; 행 7:23, 행 7:37; 롬 9:27.|③ "이스라엘 지파들", 마 19:28; 눅 22:30; 롬 9:27.|④ 환유법에 의해 '이스라엘의 자손' 즉 '이스라엘 족속'이라는 뜻으로(특별히 영광스러운 이름이다. 왜냐하면 이 이름은 메시야를 통한 구원의 약속과 관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선택에서 에서가 아닌 야곱에게 주어졌고 훗날 그의 자손에게 성취될 약속이었던 것이다: 마 2:6; 마 8:10; 마 9:33; 눅 1:54, 눅 1:68, 눅 1:80; 행 4:8; 엡 2:12; 롬 11:2, 롬 11:7, 롬 11:26.|⑤ "이스라엘 백성들', 행 4:10, 행 4:27.|⑥ "이스라엘 땅', 즉 팔레스타인, 마 2:20.|⑦ "이스라엘의 왕", 마 27:42; 요 1:49.|⑧ "이스라엘의 소망", 행 28:20.|⑨ "하나님의 이스라엘", 즉 그리스도인들, 갈 6:16.|⑩ "육신을 따라 난 이스라엘", 생래적 이스라엘인들 즉 유대인들, 고전 10:18.|⑪ 강조적 의미에서,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육체의 혈통을 이스라엘로부터 받은 자들이 모두 참된 이스라엘인들인 것은 아니다, 롬 9:6.|(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R. Mayer).
이스라엘 사람(인)
!Israhlivth"
이스라엘 사람 Israelite||이스라엘리테스는 이스라엘($2474: 이스라엘)에서 유래했으며, '이스라엘 사람'을 의미한다.|신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9회 나온다(요 1:47; 행 2:22; 행 3:12; 행 5:35; 행 13:16; 행 21:28; 롬 9:4; 롬 11:1; 고후 11:22).|(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달아주다
i{sthmi
서다, 세우다, 멈추다, 무게를 달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히스테미(Homer 이래)는 다음의 의미를 지닌다.||(a) 이 동사는 '서다'를 의미한다(Soph.). 서는 것은 앉는 것, 기대는 것, 움직임의 반대이다.||(b) 이 동사(현재, 미래, 과거)는|① '멈춰서게 하다, 멈추다'(Polyb., Plat.).|② '세우다, 똑바로 놓다, 일으켜 세우다'(Hom., Soph., Eur.).|③ '지명하다, 정하다, 제정하다'(Soph., Dion Hal.).|④ '분발시키다, 고무하다, 일으키다(희망), (소리를) 높이다'(Hom., Soph.).|⑤ '저울에 두다, 무게를 달다'(Xenoph., Hdt.).||(c) 이 동사(중간태, 미래, 과거)는|① '가만히 서다, 선채 있다, 앞에 오다'(Hom., Soph.).|② '일어서다, 일어나다'(Hom.).|③ '시작하다'(Hdt.), '행동하다'(Polyb.).|④ '굳게 서다, 확고하게 서다'(Soph., Hom., Polyb.).||(d) 이 동사(현재 완료, 과거 완료)는 '서다, ~에 있다, ~이다'(Eur., Soph., Plat.)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히스테미는 70인역본에서 약 600회 나오며, 36개의 히브리어 단어들의 역어로, 그 중 주로 아마드(서 있다, 지탱하다, 견디다, 일어서다 등, 338회)와 쿰(일어서다, 일어나다, 세우다, 116회)의 역어로 사용되었다.|70인역본에서 히스테미는|(a) ① '서게하다, 서다, 세우다'(창 43:9; 창 47:2; 창 47:7; 민 3:6; 민 27:19; 민 27:22), 제의적 표시 등에 대해(창 28:18; 창 31:45; 창 31:48; 창 35:14; 민 21:8 이하; 신 27:2; 신 27:4; 수 4:20), 묘비에 대해(창 35:20), 제의적인 것들에 대해(창 12:8; 창 21:28 이하; 창 33:19 이하; 출 40:2; 출 40:17 이하; 민 9:15; 대상 25:1; 대하 8:14).|② '지명(임명)하다, 만들다, 되게 하다, 삼다'(삼상 10:19; 왕상 10:9; 대하 25:14).|③ '무게를 달다'(왕상 21:39; 삼하 14:26; 욥 6:2; 사 46:6)라는 의미를 나타낸다.||(b) 히스타나이(중간태)는,|① '가만히 서다, 앞에 오다, 똑바로 서다'(창 29:35; 창 30:9; 출 14:13; 민 9:17; 민 10:12; 신 31:15; 대상 11:14; 대상 28:2; 수 3:13; 수 3:16; 수 10:12; 신 34:11; 민 35:12; 출 9:13; 민 27:2).|② '견디다'(삼상 13:14; 삼상 14:21)라는 의미를 나타낸다.||(c) 이 단어는 '세우다, 정하다, 확정하다, 유효하게 하다'(신 19:15; 창 23:17; 출 6:4)라는 의미를 나타낸다.||(d) 이 단어는 '일어나다', 즉 엎드린 위치에서 일어나는 것을 의미한다(수 3:16).||#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히스테미는 신약성경에서 154회 나온다.||(a) 일반적 용법.|① 히스테미는 '인격에 대해 '두다, 세우다, 지명하다, 오게하다' cause to come를 의미한다.|마 4:5에서 사탄은 예수님을 성전 꼭대기에 세웠다: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병행구절 눅 4:9).|행 5:27에서 성전 맡은 자가 사도들을 산헤드린 회원들 앞에 세웠다: "저희를 끌어다가 공회 앞에 세우니 대제사장이 물어".|행 22:30에서 천부장이 바울을 유대인들 앞에 세웠다: "이튿날 천부장이 무슨 일로 유대인들이 그를 송사하는지 실상을 알고자 하여 그 결박을 풀고 명하여 제사장들과 온 공회를 모으고 바울을 데리고 내려가서 저희 앞에 세우니라".|요 8:3에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가운데 세웠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와서 가운데 세우고".|행 6:13에서 스데반의 원수들이 스데반에 대해 증언할 거짓 증인을 세웠다.|마 18:2에서 예수님은 어린 아이 하나를 제자들 가운데 세우시고 말씀하셨다(병행구절 막 9:36).|행 6:6에서 회중이 선택한 일곱 집사를 사도들 앞에 둔 것을 나타낸다: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행 1:23에서 '지명하거나 천거하는' 것을 나타낸다: "저희가 두 사람을 천하니 하나는 바사바라고도 하고 별명은 유스도라고 하는 요셉이요 하나는 맛디아라".||② 히스테미는 사물에 대하여, '세우다, 유효하게 하다'를 의미한다.|롬 3:31에서 율법에 대해 사용되었다: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롬 10:3에서 자기 의에 대해 사용되었다: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히 10:9에서 희생 제법에 대한 하나님의 뜻에 관하여 사용되었다: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니라".|위의 구절들에서 히스테미는 '세우거나 유효하게 하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③ 히스테미는 마 26:15에서 '값이나 지불금을 정하는' 것을 나타낸다: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여기서 히스테미는 '저울에 무게를 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받은 것이 아니고 약속한 것을 나타내는 듯하다(참조: 막 14:11; 눅 22:5).||④ 히스테미는 행 7:6에서 '저울에 무게를 달다, 보상하다, 지우다, 부과하다'를 의미한다: "하나님이 또 이같이 말씀하시되 그 씨가 다른 땅에 나그네 되리니 그 땅 사람이 종을 삼아 사백년 동안을 괴롭게 하리라 하시고". 어느 의미를 취하든지 살인자를 위한 용서를 구한다.||⑤ 히스테미는 '서다, 서 있다'를 의미한다. 마 6:5; 마 20:3; 마 24:15; 눅 24:36; 요 8:9; 요 11:56; 행 5:25; 계 5:6; 계 19:17; 행 10:30; 계 7:9; 계 8:2; 계 11:4; 계 12:4; 요 18:16; 눅 6:17; 행 21:40; 계 10:5; 계 10:8; 행 24:20; 행 25:10; 요 6:22; 마 27:11; 계 7:11; 눅 1:11; 행 7:55; 요 8:9; 요 20:11; 마 13:2; 계 3:20; 계 7:1; 계 14:1; 계 15:2; 행 26:16; 계 11:11; 눅 5:2; 눅 7:38; 막 13:14; 마 12:46; 마 12:47; 막 3:31; 눅 8:20; 눅 13:25; 눅 18:13; 계 18:10; 계 18:17; 눅 17:12.||⑥ 히스테미는 '곁에 서다, 가까이 서 있다'를 의미한다. 마 26:73; 요 1:35; 요 3:29; 요 7:37; 요 12:29; 요 18:18; 요 18:25; 요 20:14; 행 16:9; 행 22:25 등.||⑦ 히스테미는 '멈추다, 정지한 채 서 있다'를 의미한다. 마 20:32; 막 10:49; 눅 8:44; 행 8:38.||⑧ 히스테미는 문맥상으로, '움직이지 않고 서 있다', '확고히 서있다'를 의미한다. 딤후 2:19에서 건물의 기초에 대해 사용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침이 있어 일렀으되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 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찌어다 하였느니라".||⑨ 히스테미는 '굳게 서다, 저항하다'를 의미한다. 마 12:25 병행구 막 3:24 이하(참조: 눅 11:17); 마 12:26 병행구(참조: 왕상 13:14); 롬 14:4; 고전 10:12(참조: 고전 10:13).||⑩ 히스테미는 '서있다' 즉 '계속하여 안전하고 견실하다', '해를 받지 않고 있다'를 의미한다.|행 26:22,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내가 오늘까지 서서 높고 낮은 사람 앞에서 증거하는 것은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 밖에 없으니".||⑪ 히스테미는 '준비를 갖추고 있다'를 의미한다.|엡 6:14,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⑫ 히스테미는 '확고한 마음 상태에 있다'를 의미한다.|고전 10:12의 격언에서 이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b) 신학적 의미(일반적 용법에서 취급한 구절도 포함됨).|① 어떤 사람이나 사물을 세울 수 있는 것은 능력을 나타내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흠이 없이 세우실 것이다(유 1:24). 하나님은 심판의 때를 정하셨으며(행 17:31), 그리스도를 심판자로 정하셨다(행 17:31). 예수님은 심판석에 좌정하실 것이다(마 25:33).|주님은 또한 세우시는 권능이 있다: "남의 하인을 판단하는 너는 누구뇨 그 섰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제 주인에게 있으매 저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저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니라"(롬 14:4). 사람들이 넘어지므로 다른 자들이 판단할지라도 주인은 그들을 일으켜 세울 수 있다. 주의 말씀을 듣는 자들은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노력해야 하며(눅 21:36),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향해 서 있어야 한다. 예수님은 성전의 꼭대기에 세워졌으나 유혹을 거부하였다(마 4:5; 마 4:11). 교회는 사도직의 입후보자를 추천하고(행 1:23), 일곱 집사를 임명하는(행 6:6) 권위를 가지고 있었다.||② 롬 3:31에서 바울은 율법을 굳게 세우는 것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복음은 믿음을 추구하면서 죄를 깨닫고 사죄의 길을 여는 역할 속에서 율법을 확고하게 세워 준다. 구약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으로서의 율법은 믿음의 법이지 행위의 법이 아니며, 그러므로 오직 믿음으로만이 그 법이 성취되고 유효하게 된다.|히 10:9에서 희생 제사의 의식을 고려해 볼 때 예수님께서 오신 것은, 첫 언약을 무효케 하고 새 언약을 세우려는 것이었다. 그 언약에 의하여 우리는 그리스도의 희생의 근거 위에서 하나님 앞에 살게 된다.||③ 요 20:19에서 예수님은 제자들 앞에 부활하신 주님으로 오셨다: "이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그는 또한 문에 서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다: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행 7:55에서 스데반이 예수님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서 있는 것을 본다고 한 것은 매우 인상적이다. 그 이유는 시 110:1 및 신약성경에서 이러한 장면에 대한 일반적 묘사 방식과 대조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주님이 단지 거기에 있음을 지적한 것이지만, 그러나 또한 경외심으로 성부 앞에 서서 스데반을 위하여 중재하며 그의 대적들을 심판하려고 서 있는 것을 나타내고, 스데반을 영접하려고 서 있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행 6:15에 비추어 볼 때 마지막 표현이 가장 추천할 만하다.||④ 딤후 2:19에서 교회가 기반을 둔 신적인 터전이 견고하게 서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침이 있어 일렀으되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 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찌어다 하였느니라". 여기서 영지주의 이단자들(참조: 딤후 2:18)에 맞서 하나님에 의하여 엄연히 세워지고 인쳐진 진리, 따라서 유일하게 확실한 진리를 강조한다.|그러나 마 12:25-26에서 분열된 도시, 집 나라는 지속하여 설 수 없다: "25 예수께서 저희생각을 아시고 가라사대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질 것이요 스스로 분쟁하는 동네나 집마다 서지 못하리라 26 사단이 만일 사단을 쫓아내면 스스로 분쟁하는 것이니 그리하고야 저의 나라가 어떻게 서겠느냐". 딤전 3:15에서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다: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 롬 11:20에서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은 오직 믿음을 통하여 굳건히 섰다: "옳도다 저희는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우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결혼 문제에 있어서 주요한 일은 마음을 굳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믿음 안에 서 있으므로 가능하다. 그러면 모든 결정이 자유롭고 안전하다.|고후 1:24에서 믿음 안에서 견고하게 서 있는 것은 기쁨을 가져 온다: "우리가 너희 믿음을 주관하려는 것이 아니요 오직 너희 기쁨을 돕는 자가 되려 함이니 이는 너희가 믿음에 섰음이라". 그것이 곧 복음 안에 서 있는 것이다(고전 15:1).|롬 5:2에서 그리스도는 우리가 서 있는 은혜에 나아가도록 우리에게 길을 열어 주었다. 우리는 은혜에 굳게 서 있어야 한다(벧전 5:12). 우리는 넘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전 10:12). 기도는 우리가 온전히 서도록 도와 준다(골 4:12). 하나님의 모든 전신갑주를 취하라(엡 6:11). 우리가 능히 대적할 때 악한 날에 설 수 있을 것이다(엡 6:13).|사도행전 26장에서 바울은 부활의 소망 때문에 심문을 받으며 서 있다(행 26:6; 행 26:8). 그도 한 때는 이 소망이 성취되는 것을 반대하여 선적이 있다(행 26:9).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바울에게 나타나 그 발로 서도록 하였다(행 26:16). 그 후 바울은 선지자들과 모세가 말한 모든 것, 즉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반드시 이루고자 하셨던 일이 성취됐음을 나타내는 증인으로서 거기에 서 있었다(행 26:22 이하).|(참조: W. Grundmann; G. Schneider; Walter Bauer; J. H. Thayer).
심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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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하다, 방문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히스토레오(Aeschyl., Hdt. 이래)는 히스토르(%592: 아는 사람, 그의 지식으로 영향하는 사람)에서 유래했으며,||(a) '탐구하다, 조사하다, 연구하다',|(b) '증거하다'(Hippocrates).|(c) '방문하여 지식을 얻다'(Plut.)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히스토레오는 신약성경에서 갈 1:18에 한번 나온다: "그 후 삼년만에 내가 게바를 심방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저와 함께 십 오일을 유할쌔". 바울은 여기서 히스토레오를 당시 일반적인 의미였던 '알기 위하여 방문하다'라는 의미로 단순히 사용하였다. 그는 헬라의 역사가들과는 아무런 공통점을 갖지 않았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F. Buchsel).
능력(이) 많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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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있는, 강한, 강력한 strong, mighty.||#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이스퀴로스(Aeschyl. 이래)는 이스퀴오($2480: 강하다, 능력이 있다)에서 유래했으며, 신체나 정신이 '강한, 강력한, 힘있는'을 의미하며, 신, 생물, 혹은 사물들에 대해서도 사용되었다.||#2. 70인역본의 용법.||형용사 이스퀴로스는 70인역본에서 약 170회 나오며, 25개의 히브리어 단어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이 단어는 사람(민 13:18; 거민의 강약), 동물(잠 30:30, 사자), 사물(사 8:7, 하수) 그리고 하나님(신 10:17)에 대해 '강한'이란 의미를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이스퀴로스는 신약성경에서 30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이스퀴로스는 신약성경에서 독립적으로 사람과 사물에 대하여 사용되었다(눅 15:14; 고전 4:10; 고전 10:22; 고후 10:10; 히 5:7; 히 11:34; 계 18:2; 계 18:21).||(b) 고전 1:25에서 하나님의 약함이 사람들보다 "더 강하다"고 언급한다: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인간의 윤리와 종교는 구원과 관련하여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한다. 십자가의 약해 보이는 것과 어리석어 보이는 것이 인간의 지혜와 능력보다 더 강하다.||(c) 히 6:18에서는 앞서 가신 우리의 대제사장 그리스도의 구원하시는 행위에 근거를 둔 위로와 격려의 힘을 언급한다: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치 못할 사실을 인하여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하여 가는 우리로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d) 요일 2:14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젊은이들 안에 거하기 때문에 그들이 강하다고 언급한다: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시고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e) 계 18:8은 하나님께서 친히 강하신 재판장이 되신다고 한다. 그는 강한 바벨론을 심판하실 것이다(계 18:10).||(f) 우리는 계 5:2에서 강한 천사들을 볼 수 있다: "또 보매 힘 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치기를 누가 책을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하니". 계 10:1; 계 18:21에서도 마찬가지다.||(g) 마 3:11과 그 병행구절에서 세례(침례) 요한은 그의 뒤에 오시는 보다 더 강한 자를 언급한다. 세례(침례) 요한 자신은 하나님 나라를 바라면서 단지 회개의 물침례 만을 줄 수 있을 뿐이지만, 이 더 강한 자는 성령과 불로 세례(침례)를 주실 것이다.||(h) 눅 11:20 이하에서 예수님께서는 친히 자신을 더 강한 자라고 칭하였다: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문맥은 예수님의 귀신 축출에 대한 논쟁이다. 예수님의 적대자들은 그 능력을 바알세불에게 돌렸지만, 예수님은 더 강한 자에게 강한 자(사단)가 패하는 것을 비교하시면서 답변하셨다. 사단은 어떤 지배권을 가지고 있지만 예수님의 역사는 사단의 지배권에 대한 성공적인 공격과 사단의 지배를 전복시키는 역사이다. 이러한 진술 배후에 사 49:25(용사의 포로를 빼앗음)과 사 53:12(고난받는 종은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눈다)과 같은 구절이 있다. 이와 비슷한 구절들은 구약성경의 위전(僞典)과 랍비 문헌들에서 찾아볼 수 있는 신약에서도 나타난다(참조: 눅 4:6; 눅 13:16). 이러한 구절들이 공통적으로 가리키는 요점은 사단이 인간을 죄, 질병, 귀신들림, 그리고 죽음의 노예로 만들었으나, 그리스도께서 사단의 지배를 깨뜨리시고 사단을 정복하여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것을 자신의 사역으로 간주하셨다는 것이다. 이러한 해방시키시는 사역에서 나타난 예수님의 강하신 능력은 하나님 나라의 능력이다. 예수님은 이 능력을 그의 죽음과 부활에서 뿐만 아니라, 그의 생애와, 유혹에 대한 그의 승리와, 그의 치유와 귀신 축출, 죽은 자 가운데서의 살리심에서 이미 드러내셨다. 사 53:12은 예수님의 대속적인 죽음과 관련을 가진다(속죄의 비유). 사 53:12과 눅 11:22은 그리스도의 생애와 죽음, 부활을 인간 해방의 결정적인 행위로 보는 매우 밀착된 관계를 형성한다.|(참조: W. Grundamnn; G. Braumann).
힘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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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strength, power, 세력 might.||#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이스퀴스(Hesiod 이래)는 이스코(%819: 저지하다)에서 유래했으며, 생명체나 물건들이 지니고 있는 '힘' strength과 '능력' power을 의미한다.|헬라의 비극 문학에서 이 단어는 신들에게 사용되었지만 후기에는 별로 두드러지지 않게 되었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이스퀴스는 70인역본에서 약 330회 나오며, 30개의 히브리어의 역어로 사용되었고 주로 코아흐(능력 과시)를 번역한다.|이 단어는 사람의 육체적인 힘(수 8:3; 삿 16:5; 시 22:15; 시 31:10; 겔 30:21), 인간의 지적인 능력(잠 8:14)을 나타내며, 민 14:13에서는 특별히 신적인 능력을 뜻하는데 사용되었다. "애굽인 중에서 주의 능력으로 이 백성을 인도하여 내셨거들 그리하시면 그들이 듣고"(시 29:4; 시 147:5 등). 그래서 이것은 인간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기도 한 것이다(미 3:8; 시 18:1; 시 29:11).||#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이스퀴스는 신약성경에서 10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이스퀴스는 막 12:30에서 인간의 능력을 가리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것이요"(병행구 막 12:33; 눅 10:27). 즉 우리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b) 엡 6:10에서 주님의 능력은 그리스도인의 강건함의 근거라고 말한다: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c) 살후 1:9에 의하면 하나님의 영광스런 능력 안에서 심판이 집행되리라고 한다: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d) 벧전 4:11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힘)은 그리스도인의 사역을 위해서도 발휘된다: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것 같이 하라".||(e) 계 5:12과 계 7:12의 송영에서 이 힘(능력)은 하나님과 그리스도께 돌려진다.|(참조: W. Grundamnn; G. Braumann).
건강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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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하다, 능력이 있다, 할 수 있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이스퀴오(Pind. 이래)는 이스퀴스($2479: 힘)에서 유래했으며,||(a) '어떤 것을 할 수 있다, 할 능력이 있다, ~할 능력을 가지다, 강하다, 건강하다'(Sophocles),||(b) '힘을 사용하다', 힘 특히 육체적, 물리적 '힘을 행사하다',||(c) 특별히 법률적 영역에서, '유효하다, 적용되다, 가치를 가지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이스퀴오는 70인역본에서 약 110회 나오며, 하자크를 포함한 24개의 히브리어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이 단어는 사물(사 28:22)과 사람(삿 1:28)에 대해서 '강해지다', 물리적인 의미로 '강하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이스퀴오는 신약성경에서 28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이스퀴오는 제자들의 기도 시간에 관하여 사용되었다. 베드로(막 14:37)와 제자들(마 26:40)은 "네가 한 시간도[나와 함께] 깨어 있을 수 없었더냐"라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으면 안되었다.||(b) 이스퀴오는 마 5:13에서 맛을 잃는 소금에 관하여 사용되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c) 이스퀴오는 약 5:16에서 의인의 기도에 관하여 사용되었다: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의인의 기도는 그 효과면에서 큰 능력을 지닌다.||(d) 비유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병든 자와 구별되어 이스퀴온테스로 지칭되기도 한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막 2:17; 참조: 계 6:15).||(e) 법률적 용어로서 이스퀴오는 '효력 있다, 유효하다'를 의미한다.|① 히 9:17에서 유언의 효력에 대하여: "유언은 그 사람이 죽은 후에야 견고한즉 유언한 자가 살았을 때에는 언제든지 효력이 없느니라".|② 갈 5:6에서 바울은 할례든 무할례든,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아무 효력이 없다고 말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능력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능력이 승리하여서 그 안에 있는 제자들에게 전이 되었기 때문이다(빌 4:13). 끝으로 이스퀴오는 여러 곳에서 다른 무능력한 것들과 비교하여 그리스도의 우월하신 능력을 묘사하는데 사용되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이적과 기적을 행하시는 분의 위대함을 강조하고 있다. 막 5:4의 어떤 누구도 귀신들린 자를 능히 이길 수 있는 힘을 가지지 못했다는 말은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이적이 위대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양식 비평(form criticism)의 빛에서 이해할 수 있는 이 특별한 강조는 눅 8:43에 다시 나타나고 있다. 그리스도의 적대자들도 그리스도에 미치지 못하며(눅 14:6; 참조: 눅 14:30; 눅 20:26) 그들은 무력하였기 때문에 단순히 그리스도의 우월한 능력은 더욱 재빨리 구조하는 일에 사용된다. 이와 같은 우월성은 행 19:20에 나오는 연약한 교회의 성장, 그리고 스데반이 연설할 때 사용했던 "지혜와 성령"(행 6:10)에서 입증된다-그러나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연설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돌에 맞아 죽었다.|(참조: G. Braumann; Walter Bauer; J. H. Tha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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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필시.||#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부사 이소스(Theognis 이래)는 이소스($2470: 동등한, 같은)에서 유래했으며,||(a) '같게, 동등하게, 같은 방식으로',|(b) '아마도, 필시', 흔히 이치에 맞는 희망을 나타내는 세련된 표현으로 사용되었다||#2. 신약성경의 용법.||부사 이소스는 신약성경에서 눅 20:13에 한번 '아마도'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포도원 주인이 가로되 어찌할꼬 내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혹 그는 공경하리라 하였더니".|(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이달리야
!Italiva
이달리야 Italy.||이탈리아라는 지명은 수소나 송아지를 뜻하는 이태리어 비츌러스(vitulus)에서 유래한 것 같다. 헬라어 이달리야는 원래 반도의 남쪽 끝 즉, 남쪽 언저리를 의미했는데 로마가 제패(制覇)하게 되자 점차 반도 전역에 이르기까지 적용되었으며, 수도는 로마였다.|로마인들은 이 반도에 거주하던 모든 비로마인들을 이달리야인이라고 불렀다.||신약성경에서 이탈리아는 4회 나오며, 사도행전에 3회 히브리서에 1회 사용되었다.||(a) 행 18:2,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하나를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로마 황제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들에게 로마를 떠나라고 명령함으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이달리야에서 추방되어 고린도에 왔으며, 거기서 바울을 만났다.||(b) 바울이 가이사에게 호소한 후에 그와 또 다른 죄수들이 배타고 이달리야로 향하였다(행 27:1; 행 27:6).||(c) 히 13:24에서 히브리서 저자는 히브리 서신을 받는 수신자들에게 이달리야에서 온 친구들의 안부를 전하였다: "너희를 인도하는 자와 및 모든 성도에게 문안하라 이달리야에서 온 자들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참조: PEB; NBD 등).
이탈리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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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인)의 Italian.||이탈리코스는 이탈리아($2482)에서 유래했으며, '이탈리아(인)의'를 의미한다.|신약성경에서 이탈리코스는 행 10:1에 한번 나오며, '이달리야' 군대에 대해 사용되었다: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이달리야 대는 로마 군대의 한 단위이며 가이사랴에 주둔했던 로마군 5대 중의 하나이다. 백부장 고넬료는 이 부대의 장교였으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방인이었다. 이 군대 명칭은 A.D. 69-157년 사이에 가이사랴 지방에 주둔했다고 알려지고 있는 코호 Ⅱ세 이달리카(Cohor Ⅱ Italica)가 명명한 로마 군대의 단위 명칭이다. 이달리야대는 지방 사람으로 조직된 것이 아니요 이달리야에서 소집된 로마 시민권을 소유한 무리들로 구성되었다.|람세이(Ramsay) 같은 학자는 A.D. 69년에 수리아에 그런 군대 단위가 있었다는 것을 확실히 조사했으며, A.D. 41-44년에 걸쳐서 가이사랴에 이달리야대가 주둔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한다. 백부장이 속한 군대가 다른 곳에서 직책을 수행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고넬료와 같이 백부장의 신분을 가진 자는 위에서 언급한 시기에 가이사랴 지방에 거주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참조: PEB; NBD).
이두래
!Itouraiva
이두래 Iturea.||이투라이아라는 지명은 드라고닛과 관련된 히브리어 예투로, 즉 이스마엘 계통의 한 민족인 이두래 사람(창 25:15; 대상 1:31; 대상 5:19)으로부터 유래했다.|이두래는 산악지대로서 팔레스타인 북동쪽 그리고 다메섹의 서쪽에 있다(Strabo.). 그들은 때로 수리인들로 불리우고 때로는 아라비아인들로 불리었다. 그곳 주민들은 약탈 행위와 능란한 활솜씨로 유명했다. 이두래는 B.C. 100년 경 아리스토불루스(Aristobulus) 왕에 의해 유대인의 지배하에 들어 왔다(Jos. Ant.). 세례(침례) 요한이 공적으로 모습을 드러냈을 때 그곳은 헤롯 대왕의 아들 분봉왕 빌립의 지배 하에 있었다.||신약성경에서 이투라이아 즉 이두래는 눅 3:1에 한번 나온다: "디베료 가이사가 위에 있은지 열 다섯해 곧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헤롯이 갈릴리의 분봉왕으로, 그 동생 빌립이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왕으로, 루사니아가 아빌레네의 분봉왕으로,". 누가의 언급은 명사형으로 이해될 수 있는가, 아니면 형용사형으로 이해될 수 있는가? 그는 장소를 의미하려 했는가, 아니면 민족을 의미하려 했는가? 어떠한 확실성도 기대할 수 없다. 이 지역과 이 당시 장소의 이름들은 유연성이 많고 변조되기 쉬우며 또 자주 중복됨이 발견된다. 우리가 안전하게 말할 수 있는 최고의 대답은 맨슨(W. Manson)의 말에서와 같이(Luke in MNTC) '유랑하는 아랍인들이 거주하는 레바논 산의 구릉지대'라고 말하는 것이다(NBD).|(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