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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해설
막달라
Magdalhnhv
막달라 Magdalene||막달레네는 막달라 곧 아람어 믹델라(망대, 망루)의 헬라어 형태이다.|막달라라는 명칭은 이 성읍을 파수하는 망대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으로 생각된다. 헬라 시대의 대다수 이방인들은 이 성읍을 타리케이아(Tarichaea)라고 불렀다.|막달라는 고대에 염색 공업과 가는 베의 직물 공업으로 유명했다고 하며(Edersheim), 무역과 조선, 어업, 생선 저장법, 농경으로 크게 부한 성읍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막달라 성읍은 도덕적으로 부패하기로도 유명했다. 신약성경에서 막달라 마리아는 그녀의 이름에 그녀의 고향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신약성경에서 막달라 마리아라는 명칭은 12회 나온다(마 27:56; 마 27:51; 마 28:1; 막 15:40; 막 15:47; 막 16:1; 막 16:9; 눅 8:2; 눅 24:10; 요 19:25; 요 20:1; 요 20:18).|(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마술
mageiva
마술 magic||#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마게이아(Pla. 이래로)는 마규오($3096: 마술을 행하다)에서 유래했으며, '마술, 마법'을 의미한다. 70인역본에는 나타나지 않는다.||#2. 신약성경의 용법||마게이아는 신약성경에 행 8:11에 한번 나타나며, 마구스 시몬의 마술에 대해 사용되었다: "오랫동안 그 마술에 놀랐으므로 저희가 청종하더니". 마구스 시몬은 사마리아에서 극적인 마술을 행하던 자이나 빌립의 가르침에 응하여 회심을 고백한 바 있다. 시몬은 베드로와 요한이 안수함에 따라 내리는 성령의 현현을 보고 놀랐으며, 그 때까지도, 이전에 몸담았던 사상의 영향하에 있었으므로, 시몬은 사도들이 기독교의 마술가로서 사용했을 어떤 신비한 수법을 소지한 것으로 추정했다. 이 때문에 그는 베드로에게 혹독하게 비난 받았다. 초대 기독교 저술가들은 그를 영지주의 유형의 이단자, 시몬파의 창시자라고 설명한다(참조: Justin; Irenaeus).|(참조: Walter Bauer; C.Brown).
마술을 행하다
mageuvw
마술을 행하다 practise magic.||#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마규오(Eur. 이래로)는 마고스($3097)에서 유래했으며, '마술사이다, 마술을 행하다'를 의미한다. 70인역본에 나타나지 않는다.||#2. 신약성경의 용법||마규오는 신약성경에서 행 8:9에 한번 마술사 시몬과 관련하여 나타난다: "그 성에 시몬이라 하는 사람이 전부터 있어 마술을 행하여 사마리아 백성을 놀라게 하며 자칭 큰 자라 하니". 시몬은 사마리아에서 비상한 능력을 사용하여 운동을 일으켰지만(아마도 시몬은 메시야의 선구자로 여겨졌던 것같다), 그의 능력은 참된 하나님의 영의 능력이 아니었다. 그의 급속한 회심은 어떤 메시야적 관심을 지적해주지만, 그가 곧 바로 제시한 제안(행 8:18-행 8:19)을 보면 그가 성령의 역사를 더 높은(따라서 바람직한) 형태의 마술로 여긴다는 것을 알 수 있다.|(참조: G.Delling; Walter Bauer).
박사
mavgo"
마기 magus, 마술가 magician.||#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마고스는 거의 모든 시대에 다음 네 가지 의미로 사용되었다.||(a) '페르시아의 사제 계급의 일원'(Hdt., Aristot. 등),|(b) 더욱 일반적으로, '초자연적 능력과 능력을 소유하여 사용하는 자'(Python., Aristot. 등),|(c) '마술가'(Phot. 등),|(d) 비유적으로, '속이는 자, 유혹자'(Plat., Soph.)||#2. 70인역본 및 유대교의 용법||(a) 마고스는 70인역본 다니엘서에서만 나오며, 앗샤프(점성가, 마술사, 귀신추방자, 강신술사 등)의 역어로 사용되었다(단 1:20; 2:2,10,27; 5:7,11,15).|따라서 마고스는 박수들이란 뜻과 마찬가지로 느부갓네살의 꿈(Dream )을 해몽하기 위하여 소환되었던 마법사들이다. 그러나 이들에게 부과되었던 과제는 능력 밖의 일로 판명되었으며 진작 왕의 꿈을 해석할 수 있었던 사람은 다니엘이었다.||(b) 유대교. 필로에게 있어서 마고스는 하위 종교인 것이다. 필로는 페르시아의 마고이를 인정하긴 하지만, 단 그들이 과학적 연구로서 마게이아($3095)를 행하는 것으로서만 인정한다. 랍비들은 '마술가'magician 를 뜻하는 차용어로 마고스를 채택한다; 유대인들은 마고이를 피해야 한다.||#3. 신약성경의 용법||마고스는 신약성경에서 6회 나오며, 한글 개역에 "박사"와 "박수"로 번역했다.||(a) 사도행전에서 마고스는 일종의 '마술사'를 의미한다.|마기승(Magians )들은 원래 바사 제국 하에서 승려들이 되었던 메대 사람들이었다. 단 1:4과 단 2:2이하에 나오는 갈대아 사람들 같이 그들도 종족의 단일성을 자기들의 직업으로 동질화시켰으며 그들의 명칭(마구스)은 바예수처럼 마술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든지 적용되어졌다.|행 13:6; 행 13:8에서는 마고스가 프슈도프롭헤테스(거짓 선지자)와 병행되어 있다(참조: 행 19:13의 유대인 귀신 추방자). 이 구절에서 이 단어(한글개역, "박수")는 아마도 하나님의 이름을 마술적으로 사용하려 시도했을지도 모르는 가정 철학자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 "박수"는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접하자 당황하였다.||(b) 마태복음에서 마고스는 '특별한 지혜를 가진 현인'을 표현한다. 마 2:1; 마 2:7; 마2:16에서 마고스의 복수 마고이로 나타난다. 마고스는 후일에 '마술사'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이 구절에서는 전혀 다른 유형의 인물로, 비교적인(esoteric) 지식에 정통했던 사람들, `별들에 관한 관찰'을 매우 중요시하여 주의깊은 관찰을 했던 특별한 지혜를 가진 현인을 가리키는 것으로 본다.|그들이 연구하던 천문학은 반은 점성술로서, 전적으로 관찰에 의존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아마 메시야 왕에 관한 지식을 알고 있었던 자들일지도 모른다.|마고스들은 분명히 풋나기 신령술객(神鈴術客)들도 아니었고 평범한 점성가들도 아니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는 하늘을 통해 표적들을 보여주었다고 믿었으며, 또 어떤 한 천체의 출현과 그 위치를 통해(그 천체가 혹성이든, 항성이든, 혜성이든, 초신성이든 간에) 하나님께서 왕에 대한 약속의 성취를 보이셨다고 믿었다. 그들은 동방에 사는 유대인들로부터 분명 그 약속에 관해서 들었을 것이다(참조: E.Stauffer, Jesus and His story ).|(참조: J.H.Thayer; G.Delling ; C.Brown ).
마곡
Magwvg
마곡 Magog||고그($1136: 곡)을 보라.
미디안
Madiavn
미디안 Midian.||미디안은 아카바만의 동쪽 시내 반도의 맞은 편 모압의 남쪽 아라비아 사막 북서부에 살고 있는 민족의 이름이다. 이 베두인 족속은 유랑 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서쪽으로는 시내 반도로 북쪽으로는 동부 요단 계곡과 가나안으로 이동하였다. 그들은 사육한 낙타를 최초로 이용한 민족 가운데 하나였다(참조: 사 60:6).|창 25:1 이하의 족보 목록에 의하면 미디안은 아브라함과 그두라의 아들이다. 삿 8:24은 기드온의 날의 미디안 족속을 이스마엘 족속과 동일시한다. 이스마엘 족속이란 명칭은 창 37:25의 기자가 붙여준 것으로, 요셉의 형제들이 요셉을 판(창 37:27), 길르앗에서 애굽으로 통하는 대상로를 지나다니는 낙타를 사용하는 상인들을 가리킨다. 창 37:28에서는 "미디안 사람 상고들"과 "이스마엘 사람들"이란 용어를 모두 사용한다. 이스라엘에 대한 그들의 태도는 가지 각색이다.|애굽에서 도망쳐 온 모세는 미디안 사람 목자인 이드로(르우엘)의 후한 대접을 받았으며, 그의 딸과 결혼하였다(출 2:15-출 3:1). 또 후에 모세는 이드로에게서 정신적 인도(출 18:1-출 18:12)와 광야의 이스라엘인들을 어떻게 다스릴지에 대한 조언을 받았다(출 18:14 이하). 미디안 족속의 주(主) 이드로는 모세의 야훼였다. 이 기사의 장면은 미디안 족속이 고향을 떠나 아카바만을 건너 시내로 왔음을 시사한다.|미디안 족속의 일단의 무리는 금속을 다루는 겐 족속이었으므로(삿 1:16; 4:11) 그들은 시내 광야의 유명한 구리 광맥에 매력을 느꼈을 것이다.||사사 시대 동안에 미디안 족속은 아말렉인과 동맹하여 이스라엘이 점유한 영토를 빼앗았으며, 그 7년간의 압제 동안에 이스라엘인들은 거점을 산속의 토굴이나 동굴 속으로 피해 살았다(삿 6:1 이하). 이것은 이스라엘의 악행에 대한 여호와의 징벌로 해석되었다.|이스르엘과 요단 사이의 계곡에서 이 베두인 방랑 족속에 대한 기드온의 놀라운 승리가 삿 6-8장에 기록되어 있다.|미디안 족속은 점차적으로 팔레스틴 사람들과 융합되었다. 그들은 전형적이고 아름다운 유랑 민족으로 나타난다. 이 족속의 왕들은 황금 귀걸이를 하고, 여러가지 장신구와 목걸이를 하였으며 자주색 옷을 입었고, 그들의 낙타의 목에는 아마도 초승달 모양의 메달이 달린 사슬을 둘렀던 것 같다(삿 8:26). 오늘날의 베두인 족장들도 마찬가지다.||신약성경에서 미디안은 행 7:29에 한번 나온다: "모세가 이 말을 인하여 도주하여 미디안 땅에서 나그네 되어 거기서 아들 둘을 낳으니라".|(참조: HBD).
제자 되다
maqhteuvw
제자가 되다. 제자를 만들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마데튜오(Plut., Mor.)는 마데테스($3101: 제자)에서 유래했으며, '제자가 되다' to be a disciple, '제자를 만들다' to make a disciple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마데튜오는 신약성경에서 4회 나오며, 마태복음과 사도행전에만 사용되었다.||(a) 마 27:57,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 부자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왔으니 그도 예수의 제자라". 여기서 독구는 아리마대 요셉을 지칭하는데 사용되며, 마데테스의 용법과 내적, 외적 유연성이 있음이 분명하다.||(b) 기타 구절에서 마데튜오는 타동사로만 나오며, 따라서 '제자를 삼다, 제자를 만들다'를 의미한다.|① 마 13:52,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② 마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주고".|③ 행 14:21, "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돌아가서".||이 두 특별한 신약성경의 용법의 배후에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은 오로지 제자직에로 부르시는 소명에 기초하여서 만이 가능하다는 사상이 존재한다. 마 13:52의 배후에도 이러한 사상이 있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K. H. Rengstorf).
제자
maqhthv"
제자 disciple.||#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마데테스(Hdt. 이래)는 만다노($3129: 배우다)에서 유래했으며, '배우는 자, 생도, 제자'를 의미한다.||(a) 고전 헬라어에서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실제적이고 이론적인 지식을 습득하기 위하여 그 사람에게 자신을 결속시킬 때 그는 마데테스라고 불리운다. 그는 상업의 초보자나 의학도일 수도 있고 철학 학파의 일원일 수도 있다. 선생과 교제하는 사람만이 마데테스가 될 수 있었다.||(b) 소피스트들의 시대로부터 디다스칼로스는 마데테스에게서 보수를 받았다. 이에 대한 한가지 명백한 예외는 마데테스가 어떤 사상가가 죽은지 오래 지나도록 그에게 영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것을 언급하는 경우이다. 소트라테스는 마데테스를 거느리기를 원치 않았으며 자신을 디다스칼로스로 여기지도 않았다(Plato, Laches, 186e; Aopl., 33a). 소피스트들과는 달리 소크라테스는 어떤 종류의 것이든 제자들에게서 수업료 받는 것을 거부하였다. 소크라테스 시대 이후(이런 이유 때문에?) 스승에 관하여 제자라는 의미의 마데테스라는 말은 그 후의 헬라 철학자들 사이에서 대체로 쇠퇴해갔다.||(c) 피타고라스 학파와 신피타고라스 학파를 포함하여 광범위한 고대 철학 학파들 안에서 분명하게 정의된 스승-제자의 관계가 발생하였는데 제자들이 발전하여 스승의 입장을 대표한 것이다. 학자들이 오랫동안 신비 종교에만 존재한다고 믿었던 전통의 원리가 이런 학파들에서도 발견되고 있다(참조: K. H. Rengstorf, TDNT Ⅳ).||#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마데테스는 70인역본에서 예레미야에서만 3회 나온다. 오직 렘 13:21에서만 히브리어 알루프(유순한, 가르치기 쉬운)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히브리어 상당어 없이 렘 20:11; 렘 26:9에 나타난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마데테스는 신약성경에서 264회 나오며, 오로지 복음서와 사도행전에만 사용되었다.||(a) 마데테스는 디다스칼로스($1320: 선생, 교사)의 반대어로 사용되었다(마 10:24; 눅 6:40).||(b) 마데테스는 아무의 가르침을 따른 자에 대해 사용되었다.|① 요한의 제자들, 마 9:14; 눅 7:18; 요 3:25.|② 바리새인의 제자들, 마 22:16; 막 2:18; 눅 5:33.|③ 모세의 제자, 요 9:28.||(c) 예수님의 제자.|① 넓은 의미로, 복음서에서 유대인들 중 예수님을 지지하였고 그의 무리에 가담하였으며 그의 추종자가 된 자들, 요 6:66; 요 7:3; 요 19:38.|② "그 제자의 무리", 눅 6:17; 눅 7:11.|③ "제자의 온 무리", 눅 19:37.|④ 특히 '열 두 사도', 마 10:1; 마 11:1; 마 12:1; 막 8:27; 눅 8:9; 요 2:2; 요 3:22.|⑤ 단순히 제자들, 마 13:10; 마 14;19; 막 10:24; 눅 9:16; 요 6:11[Rec.].|⑥ 사도행전에서 제자들은 예수님을 메시야로 고백하는 모든 자들,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킨다: 행 6:1 이하; 행 6:7; 행 9:19; 행 11:26, 그 외 자주 사용됨; "주의"를 추가하여, 행 9:1. 이 단어가 구약성경과 또한 신약성경의 서신들, 요한계시록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이 단어는 제자로서 어떤 사람을 전적으로 따르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되었다. 예수님과 제자의 관계를 말할 때 배운다는 것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습득하는 단순히 지적 과정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을 영접하고 옛 존재를 버리며 그 안에서 제자 직분의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을 뜻한다. 제자로서 배움은 자기 자신의 판단을 포기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따르도록 인도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을 내어 맡김으로써 이루어진다(요 6:45).|(참조: K. H. Rengstorf; D. Muller).
여제자
maqhvtria
여제자 female disciple||#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마데트리아는 마데테스($3101: 제자, 생도)의 여성형이며, '여제자'를 의미한다(Diod., Diog.). 이 여성형이 드물게 나타나는데, 이는 여자들이 헬라에서와 랍비들 중에서도 조직화된 교육 밖에 있었기 때문이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마데트리아는 신약성경에서 행 9:26에 한번 나온다: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의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 여기서 다비다가 '여제자'라고 하는데, 이것은 그녀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이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맛다이오스
Maqqai'o"
마태 Matthew||맛다이오스($3156: 마태)를 보라(마 9:9; 마 10:3; 막 3:18; 눅 6:15; 행 1:13).|(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므두셀라
Maqousavla
므두셀라||#1. 구약성경||인명 므두셀라는 창 5:21, 22에 나온다: "21 에녹은 육십 오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22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므두셀라는 아담의 8세손이며 에녹의 아들이다. 성경의 기록상 세계에서 가장 오래 산 사람이다(969세). 에녹은 65세에 므두셀라를 낳은 후에, 그 때부터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했다. 성경은 이 변화의 이유나 방법에 대하여 말하지 않는다. 아마도 아들을 얻었을 때, 어떤 계시로 변화가 왔을 것이다. 그것은 '므두셀라'라는 이름의 의미에서 읽을 수 있다. "므두셀라"라는 이름은 '보낸다'를 의미한다. 어떤 학자들은 그 이름을 '그가 죽을 때에 그것을 보내리라'는 의미로 해석한다.|그것은 무엇인가? 바로 심판의 홍수이다. 므두셀라가 살아있을 때는 홍수가 임하지 않았다. 창 5장의 계보 연대를 계산해 보면 홍수는 정확히 므두셀라가 죽던 해에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해에 노아가 600세였다. '그가 죽는 날 홍수를 보내리라'가 곧 므두셀라란 이름의 의미이다. 에녹은 하나님의 계시에 따라 그의 아들을 므두셀라로 명명했다.||#2. 신약성경의 용법.||인명 므두셀라는 신약성경에서 누가복음의 예수님의 족보에 한번 예수님의 조상으로 언급되었다(눅 3:37).|(참조: 토브 주석 창세기).
마이난
Mai>navn
멘나 Menna||인명 마이난은 신약성경에서 눅 3:31에 그리스도의 조상 중 한사람으로 나온다: "그 이상은 멜레아요 그 이상은 멘나요 그 이상은 맛다다요 그 이상은 나단이요 그 이상은 다윗이요".
마이노마이
maivnomai
미치다 mad||#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마이노마이(Homer 이래)는 인도-유럽어족의 어근 멘(men-: 생각하다, 황홀 상태에 있다, 미쳐 날뛰다, 노발대발하다)과 관련이 있으며,||(a) 이 단어는 '미쳐(사납게) 날뛰다, 노발대발하다, 정신 나가다, 미치다, 헛소리하다'를 의미한다. 이 단어는 영웅들, 신들, 전쟁의 맹위, 독주의 영향, 대노(great anger), 슬픔, 격렬한 욕망, 사랑의 열정, 광란, 열광, 미침 등에 대해 사용되었다.||(b) 이 단어는 박카스 사제들의 광기와 열광에 대한 표현, '황홀경에 빠지다'를 의미한다. "예언자는 역시 디오니수스(Dionysus)이다. 그 이유는 박카스 주신의 광기 즉 술취한 광기는 그 속에 예언자적 능력을 담고 있기 때문이며 이 주신에 완전히 사로잡힌 자 그는 미래에 있을 일을 예언할 수 있다고 지껄이기 때문이다"(Eur., Bacchae). "그런 사람은 인간의 관심에 초연해지며 신성한 것을 명상하는데 몰두하기 때문이며 군중들은 그가 신의 영감을 받았음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를 정신착란자로 몰아부친다."(Plato, Phaedrus)||#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마이노마이는 70인역본에서 7회 나오며, 할랄(미치다)과 샤가(미치다)의 역어로 사용되었다.|렘 25:16에서 하나님이 내리신 전쟁의 심판의 공포 아래 열방이 미쳐 날뛰는 것을 나타낸다. 렘 29:26에서 거짓 선지자 스마야는 스바냐에게 한 편지에 나타나 있다. 곧 스바냐는 성전 감독의 책임을 맡은 제사장이므로 예레미야와 같이 미친 자가 더 이상 드러나게 활동할 수 없게 힘써야 한다고 한 것이다. 마카베오사서 8:5; 10:13에서 엘르아살과 그의 아들의 충절은 왕에게 미친 것 같이 보인다. 필로는 이 단어를 오직 현혹, 기만에 대해서만 사용하고, 요세푸스(Antiquities 1. 116)는 바벨탑 건축은 하나님 보시기에 미친 짓이라고 하였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마이노마이는 신약성경에서 5회 나오며, '미치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a) 요 10:20에서 예수님은 그의 메시지를 거부하는 자들에게 미친 것 같이 보였다: "그 중에 많은 사람이 말하되 저가 귀신 들려 미쳤거늘 어찌하여 그 말을 듣느냐 하며". 유대인들 중에 불신자들은 예수님의 메시지를 부인하여 "너는 귀신에 들려서 미쳤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귀신들린 사람 말에 귀 기울이도록 허용되지 않았다. 인간은 이런 면에서 강하게 종교적 동기를 부여받아 예수님을 부인하고 있다. 신앙심은 예수님 메시지에서 지고의 의미를 깨닫고 있는 반면 예수님 말씀은 불신앙에게는 미치광이 말로 여겨지는 것이다. 마이노마이의 용법은 우리에게 디오니수스(Dionysus)의 제식에서의 그 광기를 상기시키는데 이것에서 사람은 자신의 책임적 사고로부터 그 신에 의하여 야기되는 황홀에 빠져들어 마니아($3130)에 도취하게 된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일부 사람들은 악한 귀신의 작용으로 말미암아 예수님께서 제정신을 잃으셨다고(참조: 요 7:20; 요 8:43; 요 8:52) 말함으로써 더 이상 말씀을 들을 책임에서 벗어난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다른이들은 예수님께서 소경을 치료하실 때에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하나님의 확신을 보았다.(J. Schattenmann)||(b) 행 12:15에서 로데는 베드로가 문 앞에 서 있다고 말하여 미친 사람 취급을 당했다: "저희가 말하되 네가 미쳤다 하나 계집 아이는 힘써 말하되 참말이라 하니 저희가 말하되 그러면 그의 천사라 하더라".||(c) 행 26:24에서 베스도는 바울에게 그(바울)의 학문이 그(바울)를 미치게 한다고 말하였다. 그러자 바울은 자기는 미친 것이 아니라 정신차린 진실된 말을 한다고(25절) 대답하였다.||(d) 고전 14:23에 보면 하나님의 영감으로 행하는 방언은 은사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에게는 필히 미친 것으로 보이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방언으로 말하면 무식한 자들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이와 같이 신약성경은 하나님의 구원 사역과 그것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증거에 대한 불신앙적인 견해에 대해서는 항상 이 용어를 사용한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H. Preisker).
복되다 하다
makarivzw
복되다고 부르다, 복되다고 생각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마카리조(Homer 이래)는 '복되다고 칭송하다, 복되다고 선언하다'(Hdt., Aristoph., Epict.), '복되다고 부르다, 복되다고 생각하다(Hippocr., Diod.)'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마카리조는 70인역본에서 약 24회 나오며, '복되다 하다'(아 6:9; 마카베오사서 1:10), '행복하게 하다'(집회서 25:23; 45:7; 시 41:2)을 의미한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마카리조는 신약성경에서 2회 나오며, 누가복음과 야고보서에 사용되었다.||(a) 눅 1:48에서 메시야의 어머니가 만세에 복이 있다 일컬음을 받는다고 언급되어 있다: "그 계집 종의 비천함을 돌아 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b) 약 5:11에서는 인내하는 자를 복되다고 한다: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F. Heuck).
다행한
makavrio"
복된 blessed, 행복한 happy.||#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마카리오스(Pind. 이래)는 마카르(%226: 행복한)에서 유래했으며, 그 의미는 '일상적인 염려와 걱정들로부터 놓여 자유하는' 것이다. 시적인 언어에서 이 단어는 '신들의 행복'을 가리키는 말이며, 그리고 신들의 상태와 또한 신들의 행복한 실존을 함께 나누는 자들의 상태를 나타내었다.|그래서 이 단어는 '복된, 행운의, 행복한'이란 의미를 지니게 되었으며, '...한 자는 행복하다'(마카리오스 호스[티스])는 공식 문구로 자주 사용되었다.|헬라에는 어떤 사람에게 생긴 행운이나 행복을 칭송하는 것이 발달되었다. '사람들은 그들의 행복에 대해 축하나 칭송을 바았다. 수 세기에 걸쳐 시와 산문 모두에서 흔히 나오는 지복들(beatitudes)은 내용면에서 헬라인들의 슬픔과 고통, 열망과 이상을 반영한다'. 부모들은 자녀들(Aristoph., Wasps, 1512). 부자들은 그들의 부(Bacchyl., 5, 50), 지혜로운 자들은 그들의 지식(Plato, Laws, 2, 660e), 경건한 자들은 그들의 내적인 복에(Eur., Frag. 256, ed. Nauck 434), 입문자들은 그들의 하나님의 체험(Homeric Hymn to Demeter 480), 죽은 자들은(장례식의 비문들에서) 사물들의 헛됨으로부터 그들의 탈출에 대해 칭송이나 축하를 받았다(Aesch., Persians 712).||#2. 70인역본의 용법.||형용사 마카리오스는 70인역본에서 약 64회 나오며 히브리어 해당어를 가지는 경우에, 한번을 제외하고 모두 히브리어 에셰르(기쁨, 행복, 지복)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이 명사는 언제나 남성 복수 연계형 아쉬레로 나오며, '~는 복되도다(복이 있도다)'라고 번역할 수 있다. 따라서 마카리오스는 70인역본에서 지상의 축복들(집회서 25:8; 창 30:13; 시 127:5), 번영(욥 29:10 이하), 지혜로운 삶(잠 3:13; 집회서 14:20)에 관한 것이든 하나님의 계명들을 이행하는 것(시 1:1; 41:1[2]; 119:1)에 관한 것이든지 간에 관계 없다. 지혜 전승의 영향을 받은 이 시편들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를 복이 있다고 선언한다.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다 복이 있도다"(시 2:12; 34:8[9]; 참조: 시 84:12[13]; 사 30:18). "허물의 사함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시 32:1 이하). 여호와의 은총 가운데 있는 종교적인 행복과 창조주의 은사들을 통한 지상적 행복 사이의 연결이 지혜 문학에서는 기본적인 것이다. 그러나 여호와 자신은 결코 마카리오스로 불리워지지 않는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U. Becker).||#3.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마카리오스는 신약성경에서 50회 나오며, 마태복음에 13회, 누가복음에 15회, 바울 서신에 7회, 요한복음, 베드로전서, 야고보서에 각각 2회, 요한계시록에 7회 사용되었다. 신약성경에서 특별한 특징은 이 단어가 하나님 나라에 참여를 통해 오는 독특한 즐거움을 나타내는데 사용된다는 것이다. 마카리오스는 대개 직접적인 지복을 가리킨다. 이 단어는 사람들을 언급하며, 3인칭의 지복 구문은 서술적 마카리오스, 그 다음 사람, 마지막으로 종속절의 이유로 구성된다. 종말론적 구원의 맥락에서 구약성경의 지복들은 커다란 감정적인 의미를 지닌다. 종종 거짓된 행복과 대조되기도 하지만 이제 모든 세속적 가치들은 하나님 나라의 단 하나 최고한 선에 비하면 부차적인 것이다. 따라서||(a) 신약성경의 복은 종종 신성한 역설을 포함한다(마 5:3 이하; 눅 6:20-22; 벧전 3:14; 벧전 4:14; 계 14:13). 이것은 매우 초기 전승에서 분명히 산상수훈의 도입부를 이룬 놀라운 복의 경우에 특히 사실이다. 복에 대한 이 인상적인 형태에서 기본적인 진술은 스스로를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 여기는 자들에 대한 것이다. 이 진술의 힘은 모든 인간적인 가치의 역전에 놓여있다.|누가복음에서 복은 종말론적 위로로 보다 많이 이루어진다. 특별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 즉 가난한 자, 주린 자, 우는 자, 미움받는 자들이 하나님의 나라의 복을 약속받는다. 마태복음에서는 그들 자신의 도덕적· 종교적 행위의 요소가 보다 두드러지며 옳은 행실과 하늘의 보상 간의 관계가 강조된다. 사실상 복의 두 형태들 간에 실질적 차이점은 없다. 왜냐하면 부분적으로 보다 이전의 누가복음의 복의 형태는 복되다고 불리우는 자들의 쪽의 의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복은 경건한 가난한 자들을 위한 것이다. 그들은 비천하고 압제받는 자로(눅 6:20; 마 5:30; 눅 1:52 이하; 시 10:2; 시 14:6; 시 18:27), 갈망으로 가득찬 자들로(눅 6:21; 마 5:6), 세상의 빈곤한 상태나 혹은 그들 자신의 불완전함 때문에 매우 불안한 자들(눅 6:21; 마 5:4; 참조: 사 61:2 이하)로 묘사된다. 자의적이고 완고한 부자들과 경건을 가장한 거만하고 독선적인 자들이 여기에 대조되는 자들이다(참조: 눅 18:9).|누가복음의 복에 부가하여 마태복음의 복은 또한 그 마음이 하나님의 나라의 더 높은 법에 기꺼이 순응하는 자들을 언급한다: "긍휼히 여기는 자의 복"(마 5:7), "마음이 청결한 자의 복"(마 5:8), "화평케 하는 자의 복"(마 5:9). 여기서는 또한 유대인들 가운데 의인의 태도와 다소 대립되어 있다. 하나님 앞에서 중히 여김받는 것은 율법에 대한 차가운 지식이 아니라 단순한 동정심(마 25:31 이하)이며, 독선적인 외적 정결(마 23:26)이 아니라 마음의 청결이다(시 24:4). 2인칭의 마지막 복(마 5:11)은 제자들을 핍박의 결과로 가장 영예로운 선지자들 가운데 포함된 자의 복과 역설적으로 관련시키는 것이다. 그들은 순교 가운데 굳건히 남아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보상이 확실할 것이다.|또 복은 과거에 정직한 자의 채워지지 않는 갈망과 구별하여 이제 다가오는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는 자들에게도 확대된다(마 13:16 이하, 병행구). 또 진정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결정적인 계시를 만나는 자들에게 복이 있으며(눅 1:45; 마 16:17); 따라서 하나님의 계시를 이의 없이 받아들이고(마 11:6과 병행구) 그것에 대해 그릇된 요구를 하지 않는 자들(요 20:29)에게도 복이 있다. 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눅 11:28). 예수님께서 인간 앞에 심판과 구원이라는 가공할 만한 이중적 운명을 놓아두셨은즉 굳게 지키고(눅 12:37 이하; 계 16:15) 충성하고(마 24:26; 눅 12:43)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요구를 이행함으로써(눅 14:14; 요 13:17) 하나님의 보상을 발견할 자들을 축복하신다. 유사하게 굳건히 견디는 자들이 복되다 일컬음 받는다(약 1:12). 세상에서 그들의 인내가 영원한 구원을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확실한 보상의 사상은 의를 행하는 자들이 복되다고 불리울 때 또한 나타난다(약 1:25). 이 모든 구절들에서 미래의 영광의 빛이 의로운 자의 현재의 비참한 형국 위에 비춘다. 따라서 복은 거저 미래의 암시이거나 미래에 있을 위로인 것만은 아니다. 미래의 빛을 현재에서 본다. 헬라 세계에서 심각한 불행을 모면한 사람을 행복하다고 말하듯이 예루살렘의 임박한 심판의 위협 하에서 자식이 없어 불행한 여인이 오히려 복되다고 불리운다(눅 23:29). 여인의 영광은 위대한 아들에 의해 가장 높임 받으므로, 메시야의 어머니가 복되다고 불리운다(눅 11:27; 행 20:35의 비인격적 용법에서 그리스도인의 베풂은 이기적인 베풂과 비교할 때 복되다고 한다).|공관복음에는 많은 복들에 관하여 언급되어 있는 반면에 바울의 기록에는 거의 언급되어 있지 않을 뿐더러, 바울의 기록에 나타나는 복은 특별한 금언의 형태를 지니지 않는다. 그러나 바울이 언급하는 얼마 안되는 복은 신학적으로는 중요성을 지닌다. 바울이 롬 4:7 이하에서 구약성경으로부터 취하는(시 32:1 이하) 이중적 행복(macarism)은 죄 사함을 받는 자들을 복되다고 한다. 이것은 특별한 척도(measure)에서 구원의 복이다. 롬 14:22에서는 논란이 되는 윤리적 문제를 결단함에 있어서 자책의 이유가 없는 자들은 복되다고 한다. 고전 7:40에서는 결혼하지 않은 자가 복되다고 한다. 그 이유는 그들이 세상의 괴로움을 덜고 주께 더 전심으로 헌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마지막으로 요한계시록에서는 복에 관하여 강하게 묘사한다. 14가지 재앙과 함께 7가지 복이 열거되어 있으며, 모두 선포된 금언적 형태를 지니고, 종말 바로 앞의 시대가 공동체에게 암시하는 긴장으로 가득차 있다. 그 중 다섯 가지 복은 하늘로부터 더없이 확실한 권위로 선언된다(계 14:13; 계 16:15; 계 19:9; 계 22:7; 계 22:14). 요한계시록은 시종 하나님의 비밀에 대한 복된 계시를 획득하여 지키는 자들의 복이라는 골격을 유지한다(계 1:3이 계 22:7에 확증됨). 계 14:13에서는 지금 이후로, 즉 기독교에 대항한 최종적인 싸움의 시작부터 수난을 당하는 그리스도의 증인들이 복되다고 한다. 재판정에 서고(에스드라사서 7:35) 심지어 죽음까지도 당하는 그들의 행위(일)는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한 보상을 받을 것이다. 또 지상에서 사는 날 동안 깨어 근신하며(계 16:15) 세상의 모든 매혹적인 것들과 보화보다 하늘의 약속을 더 고귀하게 여기는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은 복되다. 하나님께서 혼인 잔치에 청하신 자들은 복되다(계 19:9). 첫째 부활에 참예하고 마지막 죽음을 피한 자들은 복되다(계 20:6). 마지막 이중적 행복(macarism)은 법적 선언이다. 악한 자들은 내쫓긴바 되나, 완전한 거룩(죄사함)과 성화로 영원한 도성에 들어가기에 합당하다고 여김 받은 자들은 복되다.||(b) 행 26:2에서 이 단어는 아무개를 운좋다(다행이다)고 할 때의, 순수한 세속적 의미로 쓰였다.||(c) 목회서신에서 마카리오스는 보다 헬라적인 의미로 사용되어 세상의 괴로움과 부패하기 쉬움을 초월하는 복되신 하나님을 묘사한다(딤전 1:11; 딤전 6:15). 딛 2:13에서는 마카리오스가 비인격적으로 사용되어 그리스도인들의 소망을 가리킨다. 이 소망은 썩지 않을 복되신 하나님의 영역에 속한 것이다.|(참조: F. Hau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