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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해설
마가
Mavrko"
마가 Mark (인)||마르코스는 '비취이다'를 의미한다. 교회의 전통에 의하면, 이 사람은 두 번째 정경 복음서의 저자이며 사도행전에서 언급되는 '마가 요한'과 동일한 인물이다. 그는 예루살렘에 거주한 마리아라는 어떤 여인의 아들이었으며, 아마 베드로에 의해 기독교로 개종했을 것이다(행 12:11이하). 이 때문에 베드로의 '아들'이라 불렸을 것이다(벧전 5:13).|그는 바나바의 사촌이었으며 바울의 선교 여행 중 몇 차례에 걸쳐 그의 동역자로 일하였다.|마지막으로 베드로의 동역자이기도 하였다(행 12:12; 행 12:25; 행 15:37; 행 15:39; 골 4:10; 딤후 4:11; 몬 1:24; 벧전 5:13).|어떤 학자들은 두 사람의 마가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 중 하나는 사도행전과 바울 서신에서 언급되는 바울의 제자이자 동역자이고, 다른 하나는 베드로의 동역자로서 벧전 5:13에서 언급되는 자라는 것이다(참조: Jas. Morison, 마가복음 주석).|(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옥석
mavrmaro"
돌 stone, 대리석 marble.||#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마르마로스는 마르마이로(불꽃을 튀기다, 반짝이다)에서 유래했으며,||(a) '돌' stone, '바위' rock,(Hom., Eur.),|(b) '대리석' marble(Theophr., Strabo).||#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마르마로스는 신약성경에서 계 18:12에 한번 나오며, '대리석'을 의미한다: "그 상품은 금과 은과 보석과 진주와 세마포와 자주 옷감과 비단과 붉은 옷감이요 각종 향목과 각종 상아 기명이요 값진 나무와 진유와 철과 옥석으로 만든 각종 기명이요".
증거가 있다
marturevw
증언하다, 증거하다 to bear witness.||#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마르튀레오(Semonides, Hdt. 이래)는 마르튀스($3144: 증인)에서 유래했으며,||(a) '증언하다, 증인이 되다',|(b) '확증하다, 선언하다',|(c) '호의적으로 말하다, 잘 말하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마르튀레오는 70인역본에서 17회 사용되었으며, 법률상의 증언에 대해 사용되었을 뿐만 아니라(민 35:30; 신 19:15; 신 19:18) 기념비의 기념적 기능(창 31:46 이하)과 모세의 노래(신 31:19; 신 31:21)에 대해 사용되었다. 이것은 언약 문서와 마찬가지로 그것을 위반하는 사람들에 대한 고발장이 될 수 있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마르튀레오는 신약성경에서 78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사실들에 대한 인간의 선언.|마르튀레오는 신약성경에서 법적 증언에 대해 사용되지 않지만 종종 사실들 또는 사건들의 선언 내지 확증이라는 의미를 내포한다(마 23:31; 롬 10:2; 갈 4:15; 고전 15:15; 행 22:5; 요 2:25; 고후 8:3 등).|요 13:21에서, 사건은 미래의 사건이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심령에 민망하여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하시니". 요 4:44에서 사실은 체험의 일반적 사실이다: "친히 증거하시기를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 하시고".||(b) 좋은 평판.|독립적 용법에서 마르튀레오는 '좋은 평판을 하다(또는 받다)'를 의미한다(눅 4:22; 행 6:3; 딤전 5:10). 그 사상은 항상, 사람(들)이 직접적 관찰에 근거하여 증명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c) 하나님, 성령, 또는 성경의 증언.|특별한 용례에서는, 하나님, 성령, 혹은 성경이 판단이나 진술을 보증한다(행 13:22; 히 7:8; 히 7:17).|행 14:3에서 기적들의 확증적 증거가 사도의 선포를 뒷받침해 준다: "두 사도가 오래 있어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 주께서 저희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거하시니".|주로 히브리서 11장에 마르튀레오($3140)라는 동사가 오직 수동태로만 기록되어 있다는 점에서 히브리서는 신약성경의 다른 문서들과 구별된다. 호명된 사람의 신앙을 확증하면서 증거하시는 이는 하나님 자신이다. 이 말이 수동태 동사들 뒤에 숨겨져 있다(히 11:2; 히 11:4; 히 11:5; 히 11:39). 죽음으로써 신앙의 순교(martyrdom)의 모든 징표들을 얻는 사람들은 한 사람의 증인을 얻게 된다. 즉 하나님에게서 인정을 받게 된다. 이것은 그들의 신앙에 대한 소망을 잃지 않았기 때문에 인정을 받은 이 사람들이 현재 교회가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라는 명칭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바로 이 사실과 일치한다(참조: 히 12:1).||(d) 종교적 증거.|증거되는 사실들이 하나님에 의해 확립된 사실들일 경우에는 특별한 용법이 생겨난다. 따라서 그 증거는 또한 계시된 진리에 대한 증거가 되기도 한다. 행 23:11이 좋은 예다: "그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e) 요한의 특별 용법.|요한복음에서의 증언은, 특유하게 예수님의 생애에 관한 사실들에 대해서만 주어지는 증언일 뿐 아니라, 특히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로서의(요 1:15; 요 1:34) 예수님의 인격에 대해 주어지는 증언이다(요 1:15; 요 5:31 이하; 요 8:13 이하). 예컨대 세례(침례) 요한은, 빛이 되시는 성육신한 로고스를 증언하기 위해 왔다(요 1:8; 참조: 요 8:12).|아들로서 예수님은 진리이시며 따라서 진리를 증언하는 것은 그를 증언하는 것이다(요 3:26; 요 5:32; 요 5:33). 그에 대한 증언이 세례(침례) 요한에 의해(요 1:7; 요 1:8), 성경에 의해(요 5:39), 하나님에 의해(요 5:32), 그의 사역에 의해(요 5:36), 그 자신에 의해(요 8:13; 요 8:14), 그리고 나중에는 성령에 의해서와(요 15:26), 그의 제자들에 의해서(요 15:27) 주어진다.|요일 5:7에서, 증언하는 셋이란 세례(침례), 주님의 성만찬, 그리고 성령인 듯하다. 하지만 요 19:34; 요 19:35에 대한 시사를 내포했을 가능성도 있다. 요한에게 있어 증언은 신앙 고백이다. 확실히, 요한복음과 요한일서의 저자는 실제 목격을 강조한다(요일 1:1-2). 그러나 그 증언은 또한 그리스도의 영광에 관한 증언이기도 하다(요 1:14; 요일 5:9-10). 따라서 증언은 목격자가 아닌 자들 즉 예수님이 누구였는지와 그가 무엇을 의미하였는지를 고백하는 자들에 의해서도 주어질 수 있다. 이 용어가 결코, 자신들의 증언으로 인해 죽음을 당하는 자들만을 가리켜 사용되지는 않는다. 또한 이 사실이 요한계시록의 네 용례에서 마르튀레오에도 해당된다. 거기에서 마르튀레인은, 예언적 말씀을 증언하는 것(계 1:2; 계 22:20) 또는 그 예언을 수호하는 경고를 증언하는 것(계 22:18)을 의미한다.||(f) 딤전 6:13.|딤전 6:13, "만물을 살게 하신 하나님 앞과 본디오 빌라도를 향하여 선한 증거로 증거하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내가 너를 명하노니". 여기서 디모데는 빌라도를 향한 자신의 증언으로 친히 선한 고백을 하신 그리스도 앞에서 권고를 받는다. 논점은, 자기의 선언 또는 자신의 죽음 또는 이 양자에 의해 이루어지는 자기의 메시야적 사명에 대한, 예수님의 인정이다.|(참조: H. Strathmann; A. A. Trites).
마르튀리아
marturiva
증언, 증거.||#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마르튀리아는 인도 유럽 어근 스메르(smer: 기억하다 remember, 기억하고 있다 bear in mind, 주의하다 be careful[실수나 위험을 피하거나 올바른 판단을 하기 위해])에서 유래했다. 이 단어는 '증인으로 자진 출두하여 진술하는 것'을 의미하며, 호머의 작품에는 최초의 기본 명사인 마르튀로스(%807)로 나타나고 그 후에 마르튀르(%916)로 나타난다. 호머(Hom. Od. 11,325) 이래로 '어떤 사실이나 사건에 대한 확증'을 의미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우리는 이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깊이 생각하고 자문하며 행하는 회상이나 상기, 즉 무시되거나 잊혀질 수 없는 어떤 일을 경험하고 이제 이런 점에서 다른 사람들의 주목의 대상이 된 사람이 그 경험의 내용을 적절한 진술로 그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그것을 의식적으로 상기하는 것'이라고 더욱 정확히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경험했던 일은 증언이라는 수단에 의해 분명해지는 것이다(참조: Plato, Symp. 179b).||(a) 이 단어는 사건이나 사실들에 대한 법적 증언에 대해 사용되었다. 이 용어의 고유 영역은 법률적 영역이다. 증인들은 과거에 일어난 사건들을 현재의 재판 과정에서 증언하기 위해 출두하여 자유로이 증언할 수 있다. 그 내용은 사건, 관계, 개인 등에 대한 개인적 증언이다. 마르튀리아는 처음부터 항상 행동의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동시에 진술의 내용인 마르튀리온($3142: 증거)의 의미로도 사용된다. 보다 객관적인 마르튀리온은 행동의 의미로 사용되지 않고, 어떤 사실이나 진술을 확증하기 위해 끌어 댈 수 있는 어떤 것(증거)을 의미하는 말로 보다 일반적으로 사용된다.||(b) 이 단어(군)는 사실들에 대한 입증이나 증언이란 일반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 단어는 법적 영역에서는 물론 매우 넓은 일반적 의미에서 경험의 사실이나 실제적 관계들 혹은 사건들에 대한 확증을 의미한다.||(c) 이 단어는 진리나 견해들과 신념들에 대한 증언이란 의미를 지닌다. 이 단어는 앞에서 설명한 객관적으로 주어진 어떤 것을 입증하는 것과는 다른 용법, 곧 말하는 자가 확신하고 있는 견해나 진리들에 대한 선언이나 정신적 혹은 철학적 신념들에 대한 표현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것은 그 성질상 실험 관찰에 의해 입증될 수 없는 것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객관적 진술로서의 증언과 개인적 신념으로서의 증언 간에 차별을 두고 있다. 그는 또한 미래의 사건들에 대한 증언을 가리키기도 하는데 이러한 증언은 바로 그 본질상 사실보다는 믿음에 입각한다.|견유 학파나 스토아 철학자들은 자기 자신을 신적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도록 부름받은 증인으로 생각하고, 역경에서 - 고통을 감수하고 시련의 상태를 수용하고 어떠한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고 - 그들의 실천을 통하여 자신의 관념들과 교리들의 진실성을 입증하거나 증거했다(참조: Epictetus, Dissertationes). 이 종류의 마르튀리아가 비록 죽음까지도 불사할지라도, 후대 기독교인들의 순교의 개념과 동일시할 수 없다. 죽음이 진실의 증거가 될 가능성이 있으나 그렇게 될 수는 없다. 에픽테투스가 소크라테스를 마르튀스($3144)라고 부르지 않은 것은 주목할만한 것이다.||#2. 70인역본의 용법.||마르튀리아는 정경에서 7회, 외경에서 5회 나오며, 고전 헬라어 문헌과 거의 같은 용법으로 사용되었다.||(a) 이 단어는 법률적 용법으로 사용되었으며, 참된 증인, 거짓된 증인으로 특징지어질 수있는 증언의 행위를 나타낸다(잠 12:19; 25:18). 제 9계명은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고 명한다(출 20:15; 신 5:20).||(b) 이 단어는 일반적 용법으로는 어떤 일의 증거나 확증(집회서 31:23이하; 마카베오사서 6:32), 또는 증거하는 것(창 31:48)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c) 그리고 신학적 용법으로 "여호와의 증거", 곧 전체 율법이나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시 19:7).||#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마르튀리아는 신약성경에서 37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요한의 저술 외.|요한의 저술 이외의 일곱 용례 중 6회는 종교적으로 중립적이다. 예를 들면 막 14:55은 법정의 증거, 딤전 3:7은 좋은 평판, 딛 1:13은 이교도 시인(詩人)의 증언을 뜻한다. 예외는 행 22:18인데 여기에서 바울의 마르튀리아는 복음 전파자의 증언이다.||(b) 요한의 기록.|대조적으로, 요 8:17에서 인간의 증언이 논점이다: "너희 율법에도 두 사람의 증거가 참되다 기록하였으니".|요삼 1:12은 선한 평판을 나타낸다: "데메드리오는 뭇사람에게도, 진리에게도 증거를 받았으매 우리도 증거하노니 너는 우리의 증거가 참된 줄을 아느니라".|요일 5:9에서 사람들의 증언이 논점이다: "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거를 받을찐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하나님의 증거는 이것이니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하신 것이니라".|그러나 그 밖의 곳에서 그리스도의 본질과 의미에 대한 복음 전파자의 증언을 가리킨다. 이 단어가 요 1:7과 계 11:7에서는 증언 행위를 가리킨다.|그러나 기타 모든 사례에서, 예컨대 세례(침례)요한(요 1:19), 예수님(요 3:11 등), 하나님(요 5:32) 또는 저자에 의해(요 19:35) 주어진 증언을 의미한다.|하나님의 증언이 또한 요일 5:9이하의 요점이다: "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거를 받을찐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하나님의 증거는 이것이니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하신 것이니라". '증거를 가지다'라는 표현은 요일 5:10과 계 6:9; 계 12:17; 계 19:10에 나오는 독특한 문구이다.|요한계시록은 또한 예수님의 증언[증거]에 대해 이야기 한다(계 1:2; 계 1:9; 계 12:17; 계 19:10; 계 20:4). 그런데 이 예수님의 증거란 하나님의 말씀과 동일한 것이다.|계 1:2에서 예수님의 증거란 그 책을 가리키며, 이것이 아마 계 19:10의 요점도 될 것이다: 예수님의 증거는 기독교 예언자들로서의 그들의 증언이다. 그 밖의 곳에서 이 증언은 일반적인 계시를 의미한다. 이 증언 때문에 기자는 유형을 당하고(계 1:9), 순교자들이 죽음을 당하며(계 6:9), 용이 그들과 대항해 싸운다(계 12:17).|복음을 뜻하는 관용구로서 마르튀리아 이에수가 특별히 사용되는 것은, 아마도 예수님이 죽음의 지점까지 이른 충성스런 증인이라는 사실과 관련되어 있는 듯하다(참조: 딤전 6:13). 따라서 '증언'이라는 용어가 순교사적 의미를 띠기 시작한다. 요한계시록의 '증거를 가지다'라는 표현이 이를 입증한다. 왜냐하면 이 문구가 항상 자신들의 증언으로 인해 고난 받는 자들에게 적용되기 때문이다. 유사하게, 두 선지자들의 증언은 죽음에 의해 인침 받은 구두적 증언을 뜻한다(그리고 계 12:11). 마르튀리아가 단지 피의 증언 뿐만 아니라 복음 전파자적 신앙 고백을 의미한다는 데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것은 죽음으로 절정에 달하는 특별한 복음 전도자적 신앙 고백이다.|하나님의 말씀이나 자신의 신앙을 증거하는 일은 거부의 길이요 고난의 길이요, 죽음의 길이 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말씀의 증거와 죽음의 연계(인과관계)에 대해서는 마르투리아가 순교라는 용법을 가진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H. Strathmann).
마르튀리온
martuvrion
증거 testimony.||#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마르튀리온은 마르튀스($3144: 증인)에서 유래했으며, '증거, 증언, 증명'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증언하는 행위와 비교해 볼 때 오히려 '진술의 내용'(Hdt)이나 '한 마디의 증언'(Plato, Leg.)이라는 의미에 더 가깝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마르튀리온은 70인역본에서 약 290회 사용되었으며, 십계명이 기록된 두개의 석판(출 31:18; 출 32:15), 증거의 장막(출 29:4, 출 29:10이하; 출 40:2이하; 레 4:4이하; 민 4:25이하), 증거의 궤(출 40:3; 출 5:21; 레 16:2 등), 언약의 기둥(창 31:44), 기념비(수 22:27; 수 24:27), 심판의 증거(호 2:12; 지혜서 10:7), 말씀, 말씀의 증언, 여호와에 대한 지식이란 의미를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마르튀리온은 신약성경에서 19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고소를 위한 증거.|신약성경에서도, 통상적인 헬라의 용법과 같이 마르튀리온이 객관적 증거나 증명을 의미한다. 이점은 약 5:3; 막 6:11의 "너희[저희]에게 증거가 되며[증거를 삼으라]"라는 표현에서 찾아 볼 수 있다.|막 1:44-45도 참조하다: "44 가라사대 삼가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가서 네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고 네 깨끗케 됨을 인하여 모세의 명한 것을 드려 저희에게 증거하라 하셨더니 45 그러나 그 사람이 나가서 이 일을 많이 전파하여 널리 퍼지게 하니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는 드러나게 동네에 들어가지 못하시고 오직 바깥 한적한 곳에 계셨으나 사방에서 그에게로 나아오더라".|막 13:9에서, 제자들은, 회당에서 채찍질 당하고 통치자들 앞에서 심문 받으면서 증언을 행할 것이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사람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너희를 회당에서 매질하겠으며 나를 인하여 너희가 관장들과 임금들 앞에 서리니 이는 저희에게 증거되려함이라".|마 24:14에서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한 증거로서 전파될 것이다. 이 사례들에서 믿을 기회가 제공될 수 있지만, 복음 전파는 불신의 경우에도 증거가 될 것이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b) 어떤 것에 대한 증언.|마르튀리온은 주체의 속격(고후 1:12: "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써 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의 증거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이나 객체의 속격과 함께(행 4:33: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얻어") 어떤 것에 대한 증언을 의미할 수 있다.|그러한 용례에서 마르튀리온은 복음, 메시지, 또는 가르침에 상당한다(딤전 2:6).||(c) 증언 행위.|마르튀리온은 히 3:5에서 증언함이라는 행동적 의미를 가진다: "또한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사환으로 충성하였고". 거기에 모세는, 하나님에게서 받은 다음 백성에게 이야기해 주어야 할 그것을 증언함에 있어서 충성된 종이었다고 언급된다. 여기에서나 기타의 곳에서도 마르튀리온이 순교사적 방향으로 움직이지는 않는다.|(참조: H. Strathmann; A. A. Trites).
마르튀로마이
martuvromai
증언(거)하다, 확언(단언)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마르튀로마이(trag., Thu. 이래)는 마르튀스($3144: 증언)에서 유래했으며,||(a) '증거하다, 증언하다'|(b) '확언하다, 단언하다'|(c) '어떤 사람을 증인으로 소환하다'(plot.)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마르튀로마이는 신약성경에서 3회 나오며, 사도행전, 갈라디아서, 에베소서에 각 1회 사용되었다.||(a) 엡 4:17에서 '강한 요구'를 함축한다: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거하노니 이제부터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너희는 행하지 말라".||(b) 갈 5:3에서 어떤 진실, 사실과 관련해서든, 복음과 관련해서든 강조적 확언의 의미이다: "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거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c) 행 20:26에서 '단언하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행 20:26 그러므로 오늘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니".|(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H. Strathmann).
증거 하시게 하노니
mavrtu"
증인 witness.||#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마르튀스(Pind., Hdt. 이래)는 인도 유럽 어근 스메르(smer: 기억하다, 기억하고 있다, 주의하다[실수나 위험을 피하거나 올바른 판단을 하기 위해])에서 유래했으며, 기억이나 회상으로 어떤 것에 대하여 알고 있고, 그것을 말할 수 있는 자, 즉 증인이다. 증인은 무시되거나 잊혀질 수 없는 어떤 일을 경험하고 이제 이런 점에서 다를 사람들의 주목의 대상이 된 자로서, 기억이나 화상으로 그 경험의 내용을 말할 수 있고 말하는 자이다.|일반 헬라어에서 이 단어는,|(1) 사건이나 사실들에 대한 법적 '증인'|(2) 사실들에 대한 '증인'이란 일반적인 의미로,|(3) 진리나 견해들과 신념들에 대한 '증인'이란 의미로 사용되었다.|스토아 철학자들은 자기 자신을 신적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도록 부름 받은 증인으로 생각하고, 역경에서 - 고통을 감수하고 시련의 상태를 수용하고 어떠한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고 - 그들의 실천을 통하여 자신의 관념들과 교리들의 진실성을 입증하거나 증거했다(참조: Epictetus, Dissertationes). 이 종류의 마르튀스가 비록 죽음까지도 불사할지라도, 후대 기독교인들의 순교자들의 개념과 동일시 할 수 없다. 죽음이 진실의 증거가 될 가능성이 있으나 반드시 그렇게 될 수는 없다. 에픽테투스가 소크라테스를 마르튀스라고 부르지 않은 것은 주목할 만한 것이다.||#2. 70인역본의 용법.||(a) 명사 마르튀스는 70인역본에서 약 55회 나오며, 히브리어 에드(증인)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마르튀스는 70인역본에서 범인에 대해 판결에 관한 증인(민 35:30; 신 17:6; 신 19:15; 신 17:7), 거짓 증인(시 27:12; 시 35:11; 신 19:16-21), 소유물 매매(렘 32:10, 렘 32:12, 렘 32:25, 렘 32:44) 및 구속 행위(룻 4:9-11와 같은 여러 가지 거래의 증인), 하나님의 증인으로서 이스라엘(사 43:9-10; 사 44:8-9), 증인으로서 하나님 자신(삼상 12:5; 욥 16:19; 렘 29:23; 말 3:5)을 표현하는데 사용되었다.||(b) 죽음을 각오하고 자신의 신앙을 증거하는 사람의 행위 안에는 고통의 사상이 내포되어 있으며 유대주의에서는 이런 순교가 대단히 존경을 받았다(참조: 마카베오서, 특히 마카베오 사서 18:11).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마르튀스(마르튀리아) 혹은 마르튀레오 그리고 심지어 마르튀리온과 같은 용어들이 결코 그런 신앙의 위인들에게 사용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주시해야 한다(참조: H. Strathmannn, TDNT). 그 말들을 상세히 그리고 신중하게 분석하고 난 후에 브록스(N. Brox)는 "순교자(martyr)라는 말이 기독교 초기 역사에서 발전되었기 때문에 구약성경과 후기 유대주의가 순교자라는 칭호의 기원일 가능성이 없으며" 또한 "순교자들과 예언자들을 동일하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단언하였다(Zeuge und Martyrer).||#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마르튀스는 신약성경에서 34회 나오며, 일반 헬라어 문헌과 거의 같은 용법으로, 확신할 수 있는 사실들에 대한 증인이란 의미와 진리, 즉 확신하여 고백하는 진리에 대한 증인이란 의미를 지니고 발전했다.||(a) 일반적 용법.|사실들에 대한 증인. 이 용법은 막 14:63에서 나타나며, 대제사장은 예수님의 고백 이후에 더 이상의 증인들에 대한 여하한 필요성도 찾지 못하고 있다: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가로되 우리가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행 6:13; 행 7:58에서도 의미가 동일하다.|히 10:28과 마 18:16에도 마찬가지다. 이 두 구절에서는 두 명 이상의 증인을 요구하는 신 17:6과 신 19:15을 인용 내지 채용하고 있다.|딤전 5:19에 의하면 장로에 대한 고소도 동일한 원리에 따라야 한다: "장로에 대한 송사는 두 세 증인이 없으면 받지 말 것이요".|바울은 고후 13:1에서도 이 원리에 호소하는데 여기에서 그는 자기의 2회에 걸친 방문을, 사실을 명백히 확증한 두 사람의 증인들과 비교하고 있다. 이와 근소하게 상이한 용법은, 바울이 하나님을 자기의 끊임없는 기도 등에 대한 증인으로 부른 경우(롬 1:9), 혹은 그가 데살로니가인들(과 하나님)을 그의 비난할 데가 없는 행동에 대한 증인으로서 부른 경우이다(살전 2:10).|고후 1:23에서 그는 만일 자기가 진실을 말하고 있지 않다면 자기에 대(항)해 증언해 달라는 하나님께 대한 요청을, 이러한 호소로 삼는다. 사실들에 대한 인간 증인이 눅 11:48의 요점이다. 여기에서는 선지자들의 무덤 숭배가 그들에 대한 핍박을 입증해 준다.|마르튀스가 딤전 6:12에서도 유사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 디모데의 신앙 고백이 많은 증인들 앞에서 이루어진다(참조: 딤후 2:2).|히 12:1에서 경주를 지켜보는 증인들은 신앙 고백적 증인들이라고 여겨지지만(참조: 히 11:2) 이것이 사실적 증언의 요소를 배제하지는 않는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b) 누가의 특별용법.|눅 24:48과 사도행전에 나타난 누가의 용법은, 직접적으로 알려진 예수님에 관한 사실들의 증언을 포용하고 있다: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그러나 이러한 증언은 단지 그 사실들의 의미가 진가를 인정 받을 경우에만 주어질 수 있다. 그러므로 그 증언은 믿음의 형태, 복음 전도자적 신앙 고백의 형태를 취한다. 복음은 역사적 계시이므로 사실들의 증언과 진리의 증언은 동일하다. 사상이나 신화가 아닌, 사실들이 쟁점이다. 이 사실들을 증언하는 자들은 그것들을 통하여 살았다(눅 24:47; 행 1:8). 그들은 또한 그 사실들을 이해하였다. 성령을 받을 때 그들은 이로써 세계를 향한 증인들로서 나갈 수 있는 채비를 갖추게 된다. 부활하신 주님을 목격한 자들은 복음 전도자 바울 및 바나바와 대조되는 자들로서(눅 24:32), 특별한 의미에서의 그의 증인들이다(행 13:31).||(c) 누가복음에 나타난, 사실적 증인과 신앙 고백적 증인의 시초적 분리. 그러나 누가는 바울(행 22:15)과 스데반(행 22:20)을 여전히 증인들이라고 부른다. 바울은, 비록 행 1:8의 엄밀한 의미에서는 아니라 할지라도(그가 행 9:3이하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는 경우는 제외하고), 그의 선교사역 중에서 사실들에 대한 증인이 된다. 무엇보다도 그는 사실들의 의미에 대한 증인이다. 즉 예수님에 '대한'(to) 증인이라기보다는 예수님을 '위한(옹호하는)"(for) 증인이다(행 22:15). 이제는 신앙 고백적 요소가 사실적 요소보다 더 강하다. 하지만 자연적으로 신앙 고백 그 자체는 그리스도의 삶, 죽음 및 부활의 역사적 사실들을 포함하고 있다.|스데반도 역시 주요한 의미에서는 신앙 고백적 증인이다. 그리고 그는 특별한 방식으로 그러한 증인이 된다. 즉 자신의 죽음에 의해 자기의 신앙 고백의 진지성을 입증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하여 행 22:20의 용법은, 피에 의한 증인 즉 순교자를 뜻하는 마르튀스의 후기 용법을 위해 그 기초를 준비하는 역할을 한다.||(d) 베드로전서.|벧전 5:1에 독특한 양면적 용법이 존재한다: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예할 자로라". 첫째의 명백한 의미는 목격자이다. 그러나 그 연장선상에서 그 위에 동참의 뜻도 시사한다. 기자는 자기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그리스도의 고난이 무엇을 수반하는지를 알고 있다(참조: 벧전 4:13).||(e) 계 3:14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충성되고 참된 증인"으로 묘사되어 있다. 계 11:3에는 예루살렘에서 1,260일 동안 증거하고 짐승에게 죽임을 당하는 두 증인에 대하여 말한다. 그들은 죽임을 당했기 때문에 아니라 그들의 예언적 활동 때문에 증인들이다. 유사하게 2:13에서 안티바가 죽임을 당했기 때문에 증인으로 불리워진 것이 아니라 '복음 선포'라는 의미에서 증인이기 때문에 죽임을 당한 것이다.|이것은 계 17:6에 "이 여자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한지라"고 말한 것에 대한 단서를 제공한다. 여기에 "증인들"이란 말은 후기의 순교자들이란 의미를 취할 수 없다. 왜냐하면 순교한 성도들이 따로 언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에 대한 주석은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증인들에 대한 참된 개념을 파악하는데 결정적인 것이다. 복음의 증거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는 자들은 단순히 자기들의 신앙 때문에 죽임을 당하는 자들과 함께 언급되어 있다. 자기들의 신앙 때문에 죽을 처지에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증인으로 불리워지지 않는다. 그 명칭은 복음을 증거하는 사역에 종사하는 자들을 위해 구별해둔 것이다.|증인은 이제 복음의 진리를 설득력있게 선언하는 자이다. 그러나 또한 이것을 행하는 자마다 증인이 아니다. 그 명칭은 죽임을 당함으로 그들의 증거의 궁극적 중대성을 입증하는 자들을 위해 구별해둔 것이다. 이들은 충성된 증인들이며, 오직 충성된 증인은 완전한 의미에서 증인들이며, 참된 증인들이다. 요한계시록의 증인의 개념은 사도행전 22:20의 증인의 개념과 동일하다.|이 빛에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충성된 증인"(본절과 3:14)으로 불리워진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 이 문구는 시 89:37에서 취한 것이다: 하늘의 충성된 증인. 시편에서 그것은 하나님께 적용되며, 본문에서 메시야에 적용된다. 그 의미는 1:1, 2에서 볼 수 있다.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즉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을 전해준 계시이다. 따라서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라고 부른다(1:2). 그는 이 책무를 확실하게 수행하신다. 이것은 인사에(1:5), 마지막 편지의 시작에(3:15) 강조되어 있다.|그러나 이것은 "충성된 증인"이란 의미를 다 말한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계시와 관련하여 뿐만 아니라 더욱 일반적으로 그 타이틀(title 칭호)을 가지고 있다: "내가 났으며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함이로다"(요 18:37). 그는 죽으심으로 이 소명에 충성하신 것을 보여 주셨다. 우리는 그의 칭호를 "충성된 증인"이라고 부른 것을 생각할 때, 순교자 안티바가 동일한 칭호를 가졌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십자가에 못박히신 주님은 기독교 증인의 모델(model)이다(H. Strathmann).|모든 고백과 증거 행위의 배후에는 그리스도 자신이 참된 증인으로 임재하여 계신다. 그리하여 그는 역사의 표준으로서, 하나님의 영(영)을 지닌 자로서, 종말론적 증인과 심판자로서 공동체의 고백과 증거를 지지하신다(참조: O. Michel).|(참조: A. A. Trites; H. Strathmann; Walter Bauer; J. H. Thayer).
깨물다
massavomai
~을 물다, ~을 깨물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맛사오마이(Aristoph., Hippocr. 이래)는 맛소(%381: 반죽하다, 다루다)에서 유래했으며, '~을 물다, ~을 씹다, 먹다, 삼키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맛사오마이는 70인역본에서 한번, 욥 30:4에서 레헴(빵, 음식)의 역어로 사용되어 '식물을 삼는다'는 의미를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맛사오마이는 신약성경에서 계 16:10에 한번 나온다: "또 다섯째가 그 대접을 짐승의 보좌에 쏟으니 그 나라가 곧 어두워지며 사람들이 아파서 자기 혀를 깨물고".|천사가 다섯번째 대접을 쏟자 짐승의 나라가 어두워지며 사람들은 고통 때문에 자기 혀를 '깨문다'. 이 혼합된 비유는 혼란과 고통을 반영한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C. Schneider).
마스티고오
mastigovw
매질하다, 채찍질하다, 징계하다, 응징(징벌)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마스티고오(Hdt. 이래로)는 마스틱스($3148: 채찍, 매질)에서 유래했으며, 문자적으로 '채찍질하다, 채찍으로 때리다'를 의미하며, 그 다음 비유적으로||(a) '말로 채찍질하다' ,|(b) '고문하다, 괴롭히다'를 의미한다.|이 단어는 더욱 가혹한 형태의 처벌을 나타낸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마스티고오는 70인역본에서 30여회 나오며, 주로 히브리어 나카(치다, 때리다)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마스티고오는 '채찍질하다, 괴롭히다, 벌하다'라는 의미 등을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마스티고오는 신약성경에서 7회 나오며, 다음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a) 마 10:17과 23:34에서 마스티고오는 제자들이 회당에서 채찍질당할 것을 묘사한다. 이런 형벌은 여러 범죄에 대해 규정되었으며, 제정된 절차를 따른다. 채찍질 횟수는 39회를 초과해서는 안되며, 육체적으로 약할 경우에는 감해질 수도 있다. 도구는 마스틱스($3148: 채찍끈)이다. 여자들도 남자들처럼 채찍질 당하기도 한다. 회당의 종이 채찍질하는 일을 했다.||(b) 마 20:19; 막 10:34; 눅 18:33에서 마스티고오는 수난에 관한 예언에 사용되었다. 요 19:1에서 예수님이 당하신 채찍질은 로마의 형벌인데, 이것은 처형 전에 행해졌으며 매우 가혹했다: "이에 빌라도가 예수를 데려다가 [채찍질하더라]".||(c) 히 12:6(잠 3:12을 인용한 것)에서 마스티고오는 비유적으로 '교정하는 징벌을 가하다'를 의미한다. 부모가 사랑하는 자녀를 교정하듯이 하나님께서는 고난이라는 수단을 통해 교정하신다.|(참조: C. Schneider; Walter Bauer).
마스티조
mastivzw
채찍으로 치다 strike with a whip, 채찍질하다 scourge.||#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마스티조(Homer 이래로)는 마스티고오($3146)에서 유래했으며, 그와 같은 의미를 가진다. 이 단어는||(a) 문자적으로 '채찍질하다, 채찍으로 때리다'를 의미하며,|(b) 비유적으로는 '말로 채찍질하다', '고문하다, 괴롭히다'를 의미하며, 더욱 가혹한 형태의 처벌을 나타낸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마스티조는 70인역본에서 3회 나오며, 히브리어 나카(치다, 때리다)의 역어로 사용되었다(민 22:25). 외경 지혜서 5:11; 마카베오삼서 2:21에 나타난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마스티조는 신약성경에서 사도행전에 단 한번 나타난다. 행 22:25에서 바울이 당할 뻔한 채찍질은 심문을 목적으로 하는, 즉 억지로 자백을 받아내기 위한 채찍질이다: "가죽줄로 바울을 매니 바울이 곁에 섰는 백부장더러 이르되 너희가 로마 사람 된 자를 죄도 정치 아니하고 [채찍질]할 수 있느냐 하니". 로마의 법률은 시민들을 매질 당하는 것으로부터 보호하지만 예외도 있다.|(참조: Walter Bauer; C. Schneider).

mavstix
채찍(질) whip, scourging, 고통을 가함 torment.||#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마스틱스(Homer 이래로)는 본래는 '(말을 제어하기 위한) 채찍'을 의미하며, 그 후 어떠한 종류이든지 간에 모든 '채찍'(whip)이나 '채찍끈'(lash)을 의미하게 되었으며, 또한 비유적으로 '괴로움'이나 '고난'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마스틱스는 70인역본에서 30여회 나오며, 6개의 히브리 단어들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마스틱스는 하나님의 채찍질(욥 21:8)에서 어떤 '채찍'(왕상 12:11,14; 대하 10:11,14), 징벌(시 89:32), 슬픔(시 32:10) 재앙(시 9:10), 고난(시 37:17)에 대해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마스틱스는 신약성경에서 6회 나오며, 다음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a) 마스틱스는 행 22:24에서 로마의 채찍질이라는 문자적 의미로 사용되었다: "천부장이 바울을 영문 안으로 데려가라 명하고 저희가 무슨 일로 그를 대하여 떠드나 알고자 하여 [채찍질하며] 신문하라 한대".|히 11:36에서 같은 의미로 회당의 네 줄로 된 가죽 채찍을 나타낸다: "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b) 마스틱스는 막 3:10에서 괴로움을 주는 육체적 질병에 대해 사용되었다: "이는 많은 사람을 고치셨으므로 [병]에 고생하는 자들이 예수를 만지고자 하여 핍근히 함이더라".|눅 7:21에서도 같은 의미를 나타낸다.|막 5:29; 막 5:34에서도 비유적 용법으로 혈루병에 걸린 여인의 특수한 병을 나타낸다: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이것은 질병이 하나님의 형벌이라고 하는 당시의 믿음을 반영해 주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죄와 질병 사이의 필연적인 관련성을 부인했다(요 9:3).|(참조: C. Schneider; J. H. Thayer).
가슴
mastov"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마스토스(Soph., Hdt.)는 '가슴'을 의미하며, 남자와 여자의 가슴에 대하여 사용되었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마스토스는 70인역본에서 약 35회 나오며, 주로 히브리어 샤드(가슴, 유방)를 번역했으며, 유방(겔 16:7; 호 9:14), 품(욥 24:9)을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마스토스는 신약성경에서 3회, 누가복음(2회)과 요한계시록(1회)에만 사용되었다.||(a) 마스토스는 남자의 '가슴'에 대해 사용되었다: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계 1:13).||(b) 마스토스는 여자의 '젖가슴' 곧 '유방'을 의미한다: "이 말씀 하실 때에 무리 중에서 한 여자가 음성을 높여 가로되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도소이다 하니"(눅 11:27).|눅 23:19에서 마스토스도 같은 의미를 지닌다.|(참조: Walter Bauer; J.H.Thayer).
마타이올로기아
mataiologiva
쓸데없는 말 useless talk, 의미없는 말.||#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마타이올로기아(Plat. Lib. Educ.,)는 마타이올로고스($3151)에서 유래했으며, `쓸데없는 말, 무의미한 말, 헛된 소리'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마타이올로기아는 신약성경에서 딤전 1:6에 한번 나온다: "사람들이 이에서 벗어나 헛된 말에 빠져". 여기서 이 단어는 `쓸데 없는 말'을 의미하며 이런 일은 신실한 믿음을 저버리는 자들에게 적용되었다. 이런 일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정해주신 것을 지키지 않을 때 일어난다. 하나님께서는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나는 사랑"을 정해주셨던 것이다(참조: 딤전 1:5; 벧후 2:18). "헛된 말을 하는 사람들"(참조: 딛 1:10)은 많이 있으며 특히 할례파 중에는 사기꾼도 있다.|(참조: Walter Bauer; O. Bauernfeind; E. Tiedtke).
헛된 말하는 자
mataiolovgo"
쓸데 없는 말을 하는 사람||#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마타이올로기아(Telesles Lyr, Physiogn)는 마타이오스($3152)에서 유래했으며, `쓸데 없는 말(이야기)을 하는 자'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마타이올로고스는 신약성경에서 딛 1:10에 한번 나타난다: "복종치 아니하고 헛된 말을 하며 속이는 자가 많은 중 특별히 할례당 가운데 심하니".|이 단어는 여기서 복수형으로 나오는데 `헛된 말, 곧 쓸데 없는 말을 하는 자들'을 가리킨다.|(참조: Walter Bauer; O. Bauernfeind).
망령된
mavtaio"
공허한, 헛된, 효과 없는, 쓸데없는, 무가치한, 무익한||#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마타이오스(Pind., Hdt. 이래)는 마텐($3155: 헛되이)에서 유래했으며, `헛된, 무익한, 쓸모없는, 효과없는, 근거없는, 목적없는, 속이는, 악한'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케노스와 같이 `무가치한'을 의미하지만 완전히 같은 동의어가 아니다. 케노스가 `무가치한'을 의미할 때 내용이 없기 때문이며, 마타이오스가 `무가치한'을 의미할 때 속이거나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헬라어 문헌에서 마타이오스와 그 단어의 동족어들의 배후에는 어떤 일정한 가치관들, 도덕적 기준, 종교적 실재, 공인된 진리와 사실들이 있다. 이런 것들을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무시하거나 그것들을 경시하고 위반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그들의 행동은 마타이오스한 것이라는 판단을 받게 된다. 따라서 인간의 삶은 기만적인 모습이 된다. 또한 상황에 적용되는 케노스(kenos)는 그 강조점이 텅비고 무가치하거나 쓸모없게 된 사람들과 사물들의 텅빔에 있다. 이런 관념은 특별히 비극 작품들에서 자주 나온다. 권세를 얻으려는 열망과 증오로 눈이 멀어버린 크레온(Creon)은 스스로 운명에 의해 속임을 당했다고 느끼고 마침내 스스로 아네르 마타이오스(aner mataios )라고 공언하였다(Soph., Ant., 1339). 직역하면 이 말은 "쓸모없는 사람"을 의미하지만, 이 뜻은 "바보" 혹은 심지어 "범죄자"라는데까지 이른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자기에게 주어진 자유를 잘못 사용했기 때문이다. 헬라 세계는 반성하고 생각하여 이런 탈선에 빠지지 않도록 하라고 충고하였다.||#2. 70인역본의 용법||마타이오스는 70인역본에서 약 70회 나오며, 히브리어 헤벨(hebel : 증기, 무가치함, 허무, 무익, 헛됨, 하찮음), 샤우(saw : 무가치한, 헛되이, 근거없는, 속임), 카잡(kazab : 사기, 협잡), 토후(tohu : 직역하면 사막, 황무지 desert, 여기에서 텅빔, 비현실), 힌남(hinnam : 헛되이), 아웬(awen : 고생, 사악함 또한 우상숭배에도 사용됨)을 번역한다.|① 마타이오스는 거짓 선지자들의 헛된 말에 대하여(겔 13:6이하; 슥 10:2; 애 2:14; 렘23;16이하), 종마로적인 미래에 거짓말과 헛된 것(습 3:13)에 대해 사용되었다.|② 마타이오스는 종종 우상들, 우상을 만드는 것, 그리고 그것들에 대한 숭배의 명칭으로 사용되었다. 타 마타이아(텅빈 것들, 혹은 헛된 것들)는 종종 이방 민족 신들의 이름에 대한 역어로 사용되었다(사 2:20; 대하 11:15). 그 신들은 "무가치한 것", "존재하지 않는 것" 혹은 "무가치한 신들"이다(참조: G. von Rad)(레 17:7; 렘 2:5; 렘 8:19; 렘 10:15; 렘51:18; 욘 2:9).|③ 마타이오스는 인간의 삶과 사상이 쓸모없고 헛되는 것에 대해 사용되었다(렘 4:30: 사49:4; 말 3:14; 시 6:11; 시 62:9; 잠 3:30; 시 94:11).||#3. 신약성경의 용법||마타이오스는 신약성경에서 6회 나오며, 다음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a) 고전 3:20에서 마타이오스는 현자들의 사고나 사상을 헛된 것임을 묘사한다: "또 주께서 지혜 있는 자들의 생각을 헛것으로 아신다 하셨느니라".|바울은 기독교인들의 거짓된 지혜를 논박한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하나님과 인간 앞에서 어리석게 만든다. 바울은 이런 사실이 시 94:11에 확증되어 있다고 본다. 주께서 "사람의 생각이 허무함을 아시느니라." 지혜있는 자의 `기독교적인' 지혜는 믿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지혜인 십자가의 어리석음과 대조된다(고전 1:24; 롬 1:21). 십자가는 자연인의 생각에 어리석고 약하고 무익한 것으로 보인다.||(b) 딛 3:9에서 공론은 그것이 아무리 경건한 공론일지라도 여전히 헛된 공론이다: "그러나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 이야기와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을 피하라 이것은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이니라".|이것은 그것이 오직 인간의 종교적 관념의 산물이고 확실히 입증된 역사적 사건이 아니면 예수님의 부활에도 적용될 것이다.||(c) 고전 15:17에서 바울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실재를 부인하는 신앙을 헛된 것으로 묘사한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이런 믿음은 여전히 죄의 권세 아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케리그마의 근거, 곧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제거해버릴 것이다. 이것은 마치 이런 메시지를 믿는 믿음이 헛된 것처럼 헛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믿음 그 자체는 부활의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고 있지 않으면 안된다.||(e) 행 14:15에서 우상과 우상 숭배는 헛된 것들이다는 것을 묘사한다: "가로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너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함이라".|우상들에 대한 예언자적 공격이 복음 전도에서도 계속되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계시는 이방신들, 사람들이나 형상들이 신으로 숭배되도록 허용하지 않는다. 복음은 사람들을 이 무익한 것들(바나바와 바울의 모습 속에 의인화된 것으로 생각되어진 쓰스와 허메)을 떠나 살아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한다.||(f) 벧전 1:18에서 이교적 방식은 비록 그것들이 선조 때부터 이어져 내려온 것이라 할지라도 모두 헛된 것으로 묘사된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벧전 1:14-벧전 1:18은 교회의 성화된 생활방식과 이교도의 방식을 대조시킨다. 그리스도의 희생적인 죽음은 조상에게서부터 물려받은 무익한 생활 방식에서 구속을 가져온다(벧전1:18). 이방인 기독교인들은 여기에 나오는 마티이오스를 그들이 이전에 영위하였던 방종한 생활 방식의 근거인 우상 숭배로 이해하는 것 같다.||(g) 약 1:26에서 인간의 종교는 그가 외견상으로는 경건하나 동시에 그가 제멋대로 쓸데없는 말을 하여 자신의 무신적 상태에 대해 스스로 속일 때 실제적인 헛된 것이다(참조: 벧후2:18). 말하자면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은 부활의 실제성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헛된 것과 같이, 그리스도인의 경건은 교만한 자기 기만에 빠져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한다면 헛된 것이다. 공동서신들은 마타이오스를 기독교적인 존재의 신체적인 순종을 부인하는 무력한 삶으로 이해하였다. 공동서신들이 대결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점이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E. Tiedtke; O. Bauernfei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