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를) 받은
ajnavqema
저주 받는 것, 파멸로 넘겨지는 것.||#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아나데마는 아나티데미($394: 올리다, 위에 두다)에서 유래했으며, 아티카형 아나데마($334)의 다른 형태에며, '올려진 것'을 의미한다. 이 의미에서 '신에게 바치는 것, 제물(신전에 올려 놓는다), 넘겨지는 것, (신들의 진노에) 바쳐지는 것' (파멸에) 저주의 힘 아래로 떨어진 것'이란 의미가 되었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아나데마($331)와 아나데마($334)는 70인역본에서 약 26회 나오며, 주로 히브리어 헤렘(바쳐진 것, 헌신, 금지, 저주)(18회)과 나머지는 동일 어군의 단어들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주로 '저주, 저주 받는 것'을 나타낸다(신 7:26; 신 13:16; 수 6:17; 수 7:12; 삿 1:17; 슥 14:11 등). 저주 받은 것(ban)이 봉헌물로 바쳐지는 것 외에 처형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레 27:28, 29). 저주받은 물품을 자신이 착복하거나, 그 어떤 아나데마라도 인정하지 않는 자는 그 자신 저주의 능력 아래 놓이게 된다(신 7:26).|[참고- 하나님께 넘겨주는 이런 행위에는 봉헌 예물과 저주를 뜻하는 신학적 의미가 있다. 봉헌 예물이 승인(삼상 10:27)과 복종(왕상 10:25)의 표시이며, 손상된 명예에 대한 보상의 표시이자(창 12:16; 창 20:16) 화해의 표시(창 32:14이하)이듯이, 이와 마찬가지로 아나데마를 선고받은 자는 봉헌 예물처럼 직접적으로 하나님의 심판에 넘겨진다. 동시에 최후 순간의 심적 변화에 대한 바람이 무시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그러한 것이 강조되고 있다(참조: 딤전 1:20)].||#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아나데마($331)는 신약성경에서 7회 나오며, 다음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a) 행 23:14,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가서 말하되 우리가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아무 것도 먹지 않기로 굳게 맹세하였으니". 여기에서 아나데마는 그것을 위반할 경우 저주 아래 오게 되는 맹세나 엄숙한 의무라는 의미에서 저주를 의미한다(J. Behm).||(b) 바울은 아나데마를 70인역본의 용법을 따라 '저주 받는 것, 멸망에로 넘겨지거나 바쳐진 것'이란 의미로 사용했다. 바울이 사용한 아나데마의 지배적인 사상은 죄 때문에 아나데마가 되어야 하는 자가 하나님의 사법적 진노에 넘겨지는 것을 의미한다.||① 롬 9:3,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찌라도 원하는 바로라". 바울의 유대적 혈연 관계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의 일원이 됨으로써 없어지지는 않는다. 자기 백성의 구원을 위하여, 사도 바울은 저주(아나데마) 아래 놓이며 하나님에 의하여 멸망 받으며, 메시야와의 교제를 끊으며(아포 투 크리스투)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하여 종말의 심판에 자신을 넘겨 줄 각오까지 되어 있었다.||② 고전 16:22,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찌어다 주께서 임하시느니라". 여기에 기록된 저주 관용어구는 주님의 성만찬의 예식에서 유래된 것이다. 아나데마는 성만찬 참여자들에게, 식사전 자신들의 믿음(주님께 대한 자신들의 사랑을 표현하는 것)을 시험함으로써 참여 전에 합당치 않은 자는 제외되어야 할 것을 요구한다(참조: 고전 11:28). 관용어구인 에토 아나데마("그에게 아나데마가 있을지어다")는 합당치 않은 자를 기소하라는 어떤 인간 법정의 "징계 명령"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은 어떤 특정한 경우에 대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판결을 선고하는 것이며, 범죄자를 하나님의 형벌에 넘겨주는 것이다. 이로써 책임은 전적으로 거론된 당사자에게 있으며, 아나데마는 자신을 성찰하라는 외침을 의미한다(참조: G. Bornkamm: Early Christian Experience). 하늘에 계신 주님을 언급하고 있는 마라나다는 아나데마를 일층 더 강조하고 있다.||③ 갈 1:8; 갈 1:9, "8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 9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 여기서도 아나데마는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거짓 복음을 전하는 자는 하나님에 의한 멸망에 넘겨진다. 이곳도 역시 추방이라는 의미에서의 교회 징계 행위 문제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저주는 범죄자를 하나님의 공평한 진노에 내어준다는 것이다.||④ 고전 12: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이 구절에서 문제는 하나님의 성령의 사역으로 인한 황홀(Ecstasy)과 귀신의 능력에 의하여 야기되는 황홀을 구별하는 것이다. 황홀경에서 예수님께 아나데마(anathema)를 말하는 사람, 즉 저주를 말함으로써 예수님을 하나님에 의한 멸망에로 넘겨주는 사람의 말은 성령에 의한 것일리는 만무하다. 이러한 사람들은 귀신적 세력의 입이요 도구가 된 것이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H. Aust; D. Muller; J. Beh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