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에오
noevw
알다, 지각하다, 인식하다, 생각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노에오(Homer 이래)는 누스($3563: 마음, 이해, 이해력, 이성, 사고)에서 유래했으며, 다음을 의미한다.||(a) 노에오는 문자적으로 '어떤 것에 주의를 돌리다'를 의미하며, 감정적, 정신적 인상을 받는다는 의미에서 '지각하다, 알아채다, 인지하다'는 넓은 의미를 가진다.|(b) 그 다음에 '알다, 파악하다, 생각하다, 이해하다',|(c) '생각해내다, 의도하다, ~할 작정이다',|(e) '정확한 의미를 가지다, 뜻(의미)하다',|(f) '경험하다'를 의미한다(참조: J. Behm).||#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노에오는 70인역본에서 약 35회 나오며, 주로 히브리어 빈(관찰하다, 깨닫다, 이해하다)의 어형들(잠 20:24; 렘 2:10 등)과 또는 히브리어 사칼(이해하다, 통찰력을 지니다)의 여러 형태(잠 1:3; 렘 10:21 등)의 역어로 사용되었다.|구약성경에서 이해력의 대표적인 기관은 마음이다(잠 16:23; 사 6:10). 이것은 이 이해력이 도덕적 판단의 영역 안에 놓여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 47:7("이 일을 네 마음에 두지도 아니하며")에서 70인역본은 자유롭게 번역하지만, 그 뜻은 변화되지 않는다: "너희는 너희 마음에 이것을 깨닫지 못하였다"로 번역하고 있다.|필로(Philo)에서 노에오는 감각적 인식과는 관계 없는 '생각하다'를 의미한다(Leg. All. 2, 70; Abr. 44).||#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노에오는 신약성경에서 14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노에오는 '지각하다, 알아채다, 파악하다, 인지하다, 이해하다'를 의미한다.|① 막 7:1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도 이렇게 깨달음이 없느냐 무엇이든지 밖에서 들어가는 것이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함을 알지 못하느냐".|② 막 8:17, "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 떡이 없음으로 의논하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③ 마 16:9,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바구니며".|④ 마 16:11, "어찌 내 말한 것이 떡에 관함이 아닌 줄을 깨닫지 못하느냐 오직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⑤ 엡 3:4, "이것을 읽으면 그리스도의 비밀을 내가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⑥ 딤전 1:7, "율법의 선생이 되려 하나 자기의 말하는 것이나 자기의 확증하는 것도 깨닫지 못하는도다".||(b) 노에오는 '생각하다, 숙고하다, 주의하다'를 의미한다.|① 막 13:14(병행구 마 24:15),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찐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찌어다".|② 딤후 2:7, "내 말하는 것을 생각하라 주께서 범사에 네게 총명을 주시리라".||(c) 노에오는 '생각하다, 상상하다, 마음에 그리다' imagine를 의미한다: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엡 3:20).||(d) 노에오는 특별히 하나님과 관련하여 종교적 의미로 하나님의 행위와 의지를 '지각하다' perceive, '인(식)지하다' recognize를 의미한다.|① 요 12:40(사 6:9-10의 인용)에서 노에오와 카르디아(마음)가 병렬되어 나오는 것은 노에오가 마음의 활동, 즉 영적 인식으로 간주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저희 눈을 멀게 하시고 저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였음이더라".|② 롬 1:20에서 불가시적인 것은 지각되지만 신비적 환상으로 지각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불가시적인 것에 대한 가시적인 표현은 피조물에서부터 창조주에 이르는 일종의 숙고 과정에서 충분히 숙고된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③ 보이지 않는 것은 인식된 것으로 간주된다. 무한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유한한 질서에 의하여 도달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지혜서 13:4은 사람으로 자연의 아름다움과 능력을 생각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즉 "또 그들의 이런 것들의 능력과 힘에 놀란다면 마땅히 이런 것들을 만드신 분의 힘이 얼마나 더 큰가를 깨달아야 했을 터이다." 궁극적으로 이러한 인식은 믿음에 좌우된다.|④ 히 11:3에서 세상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은 믿음으로만이 인식할 수 있다고 말한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참조: G. Harder; J. Behm; Walter Bauer; J. H. Thay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