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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해설
스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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덮다, 제지하다, 참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스테고는 '덮다, 감추다, 비밀로 하다, 보호하다, 막다, 제지하다, 참다, 견디다, 유지(지속)하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스테고는 신약성경에서 4회 나오며 고린도전서와 데살로니가전서에만 사용되었다(고전 9:12; 고전 13:7; 살전 3:1; 살전 3:5).||(a) 살전 3:1; 살전 3:5에서 스테고는 목적어를 가지지 않으며 "참다 to endure"를 의미한다. 바울은 그의 전도의 직무에 강요 당하여 어린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장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것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바울은 메케티 스테곤테스(살전 3:1) 또는 메케티 스테곤(살전 3:5)하여 자신이 갈 수 없었기 때문에 디모데를 데살로니가로 보낸다.||(b) 사도의 권리와 삶의 방식을 다른 고전 9장에서 고전 9:12은 삽입적인 어구이다. 고전 9:1-11에서 바울은 다른 사도들과 똑같이 먹고 마시고 아내를 데리고 다니고 그의 전도하는 일로 생계를 이어갈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라". 이것은 바로 앞과 바로 뒤의 구절들에서 그 언급은 사도들의 고난에 대한 것이 아니라 사도들의 권리와 자유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모든 것을 견딘다 또는 참는다"라고 번역해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그 의미는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침해하지 않기 위해 이 모든 것을 자제한다(즉 사도의 정당한 사적인 영역에 속하는 모든 것들을) 이다.||(c) 고전 13:7은 여러가지 번역이 가능하다. 여기서 스테고는 '참다, 견디다'란 의미하지 않는다. '용서하다, 참아주다'라는 의미에 대해서는 사전적 근거가 없다. 그러므로 (a) '모든 것을 덮다'와 (b) '억제하다, 자제하다'라는 번역이 남는다. (b)의 의미는 중간태를 필요로 한다. 그렇다면 추천할만한 번역은 '모든 것을 덮다'이다. 이 번역은 그 용법에 대한 우리의 비평에 비추어 볼 때 전혀 문제가 없다. 사랑의 덮개로 덮는다는 사상은 그것과 잘 맞는다. 그것은 또한 고전 9:12에 의해 입증된다. 유일한 의문은 판타 스테게이가 보다 더 엄밀히 "모든 것(입 밖에 내면 해로운 일)에 대해 침묵을 지키다"로 해석되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이것은 "모든 것을 덮다"와 거의 다르지 않다. 따라서 믿음과 소망과 견딤에 대한 말씀에 바람직하지 못한 것들을 덮는 것을 언급하여 확대한 고전 13:7은 하나님의 사랑에 뿌리박은, 그리고 이미 이 사망의 세계에 들어 온 사랑은 이웃에 대해 완전히 비이기적인 특징을 지니는 종말론적 실체이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구절인 고전 13:4-6의 적절한 요약을 제시한다.|(참조: W. Kasch; Walter Bauer; J. H. Thayer).
수태 못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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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마른, 임신 못하는.||#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스테이로스는 스테르로스(딱딱한, 굳은)에서 유래했으며,||(a) '굳은, 뻣뻣한, 딱딱한',|(b) '메마른, 임신 못하는'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스테이로스는 신약성경에서 4회 나오며, '임신 못하는'을 의미한다.||(a) 눅 1:7에서 엘리사벳에 관해 사용되었다: "엘리사벳이 수태를 못하므로 저희가 무자하고 두 사람의 나이 많더라".|눅 1:36에서도 나타난다: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수태하지 못한다 하던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b) 히 11:11에서 사라에 관해 사용되었다: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 늙어 단산하였으나 잉태하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줄 앎이라".||(c) 눅 23:29에서 '임신하지 못하는' 자의 행복에 대해 사용되었다: "보라 날이 이르면 사람이 말하기를 수태 못하는 이와 해산하지 못한 배와 먹이지 못한 젖이 복이 있다 하리라".|갈 4:27에서도 마찬가지다: "기록된바 잉태치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구로치 못한 자여 소리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스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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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돈하다, 멀리 떠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스텔로(Homer 이래)는||(a) '두다, 정돈하다, 자리잡아 주다, 위치시키다, 배열하다',|(b) '준비하다, 채비하다, 착수하다, 여행하다, 보내다',|(c) '움츠리다, 줄이다, 저지하다, 억제하다', 중간태로 '~로부터 자신을 옮기다, ~로부터 멀리 떠나다'를 의미한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스텔로는 70인역본에서 7회 나오며, 오직 말 2:5에서 히브리어 하타트(2865: 두려워하다, 당황하다)의 역어로 사용되어 '움츠리는' 것 곧 '두려워 하는' 것을 나타낸다. 잠 31:25에서 이 단어는 '예비하는' 것을 나타낸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스텔로는 신약성경에서 2회 나오며, 고린도후서와 데살로니가후서에만 사용되었다.||(a) 살후 3:6에서 바울은 회중의 훈육하는 토론에서 "규모없이 행하고 우리에게서 받은 유전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고 충고한다. 여기서 중간태의 의미 '~로부터 자신을 옮기다, ~로부터 멀리 떠나다'를 뜻한다. 이 충고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라는 어구에 의해 무게가 한층 더 실리는데, 언어적으로 정확히 일치하는 병행구가 없으므로, 갈 2:12(게바가 "떠나 물러가매")이나 히 10:38을 참고함으로써가 아니라 문맥으로부터 직접 해석할 수 밖에 없다.|본문 자체는 교회로부터의 공식적인 파문이나 식탁 친교의 정지를 암시하지 않는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참조: 고전 5:11). 바울이 사용한 표현의 정확한 실질적 정의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관심의 초점이 행실이 무질서한 그리스도인 개인보다 오히려 그와 접촉함으로써 그 비슷한 길로 이끌릴 수도 있는 교회의 기타 다른 성원들에게 있다는 것이다. 만약 해석의 열쇠를 바울 자신에게서 찾는다면 첫째로 고려해 볼만한 구절은 고전 14:33 이하이다. 바울이 제시한 규율은 징계 처분을 포함하지만, 특별히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이 자발적으로 되어 그들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도록, 따라서 사도 바울을 따름으로써 그렇게 하도록 의도된 것이다. 그 목적은 불건전한 요소들로부터 교회를 정화시키기 보다 오히려 공동체를 순수하게 유지하는 것이다. 이것은 어떤 상황에서 우리가 심지어 그리스도인 형제로부터 "멀리 떨어질" 수 있을 때만이 가능하다.||(b) 고후 8:20에서 바울은 예루살렘에 있는 가난한 성도들을 위한 연보에 관하여 언급하는 부분에서 이 일에 참여한 동역자들을 거론하면서(고후 8:16 이하) 고후 8:20에서 그렇게 하는 이유를 제시한다: "이것을 [조심함]은 우리가 맡은 이 거액의 연보로 인하여 아무도 우리를 훼방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이 구절은 의심할 여지없이, 선물(연보)의 양이 매우 많았기 때문에 바울이 그것들을 마음대로 관리하여 바울 자신을 위해 소비할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있음을 인식한 것이다. 하지만 연보를 올바르게 사용할 책임이 바울의 동역자들에게 맡겨져 있다면 그러한 생각은 절대로 설 자리가 없어질 것이다. 이런 해석이 충분히 분명하다 할지라도 '스텔로메노이 투토'의 정확한 의미에 대한 의문은 다소 남아있다. 일반적으로 이 표현은 결과를 나타내는 메($3361)절에서 명확히 표현된 바와 같이 바울의 두려움의 표현으로 간주된다. 즉 "이것을 피하므로" 혹은 "우리가 피하므로" 혹은 "~할까 두려워하여"라는 의미로 간주된다.|그러나 제시된 병행구들은 '스텔로메노이 투투 메...'가 '내가 그것에 유의하므로' 혹은 '내가 그것에 대해 조치하므로...'를 뜻함을 시사하는 것 같다. 그들이 거부되어서는 안될 정도로(참조: 말 2:5). 이러한 해석이 보통 사람과는 다른 바울 사도의 성품과 행실에 더 잘 어울린다. 그는 어려운 상황에서만이 아니라 항상 그의 성실성을 단지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에 관해 의심이 일어날 수 조차 없도록 그렇게 행동하는데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다(K. H. Rengstorf).
화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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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관 garland.||#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스템마(Homer 이래)는 스테포(%695: 둘러싸다, 관 씌우다)에서 유래했으며, '띠, 화환, 화관'을 의미한다.|스템마는 특히 제물을 바치는 제사장의 월계관을 지칭할 때 사용되었다. 호머는 자기 지팡이에 감겨 있는 것에 대해 스템마를 사용했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스템마는 신약성경에서 행 14:13에 한번 나온다: "성밖 쓰스신당의 제사장이 소와 화관들을 가지고 대문 앞에 와서 무리와 함께 제사하고자 하니". 여기서 스템마는 루스드라에서 바울과 바나바에게 희생 제물을 드리려 했던 이교 신당 제사장이 가져온 "화관"에 대해 사용되었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C. J. Hemer).
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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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숨, 탄식, 신음함.||#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스테나그모스(Pind. 이래)는 스테나조($4727)에서 유래했으며, '한숨지음, 한숨, 탄식, 신음'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스테나그모스는 70인역본에서 약 26회 나온다. 이 단어는 히브리어 아나하(탄식, 신음)와 아나카(외침, 신음)를 가장 많이 번역한다. 그렇지만 어떤 경우는 이 단어가 '임신'을 뜻하는 헤론의 역어로 사용되기도 한다(창 3:17). 출 2:24; 출 6:5; 삿 2:18에서는 나아크(신음하다)에서 파생한 네아카를 번역하며, 신체적인 괴로움과 고통의 결과로 나타나는 '신음', '탄식'을 의미한다.|시 37:8에서 이 단어는 히브리어 나함(으르렁거리다, 신음하다)을 번역하는데, 곤고함 가운데 있는 시편 기자의 탄식을 묘사한다. 레 4:31에서는 이 단어가 히브리어 차라(고통)를 번역하며 해산하는 여인의 고통을 묘사한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스테나그모스는 신약성경에서 2회, 사도행전과 로마서에만 사용되었다.||(a) 행 7:34에서 스테나그모스는 애굽에서 종살이할 때 이스라엘 사람들이 했던 탄식을 묘사한다: "내 백성이 애굽에서 괴로움 받음을 내가 정녕히 보고 그 [탄식하는 소리를] 듣고 저희를 구원하려고 내려왔노니 시방 내가 너를 애굽으로 보내리라 하시니라"(참조: 출 3:7-출 3:8).||(b) 롬 8:26에서 스테나그모스는 성령의 중재 사역에 대한 언급에 사용되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이 구절의 전후 문맥을 살펴보면, 바울은 피조물의 탄식(롬 8:22)에서 기독교인의 탄식으로 점점 더 진전시켜 언급하고 있다. 신자의 영과 성령과의 상호 관계에 있어서 명백한 동정적 관계와 또한(롬 8:9, 롬 8:16절) 바로 앞 부분(롬 8:23)에서 신자의 탄식을 언급한 것은, 성령과 신자가 모두 함께 탄식하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는 듯하다. 마음의 탄식은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감찰하신다(롬 8:27). 그러나, 그 탄식 소리가 귀로 들을 수 있게 표현되는 것은 아니다. 이 말할 수 없는 탄식은 탄식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신자를 위한 성령의 간구하심으로 승화된다.|스테나그모스에 내포되어 있는 강한 감정적 요소들은 소멸되지 않고 이 문맥에서 그대로 보유되어 있다. 여기에서의 탄식은 고통 또는 말할 수 없이 깊은 감정에서 생겨나는 탄식을 말한다(T.McComiskey).|(참조: Walter Bauer; J.H.Thayer; J.Schneider; T.McComiskey).
근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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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숨 쉬다, 탄식하다 sigh, 신음하다 groan.||#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스테나조(trag., Demosth. 이래)는 일반 헬라어 문헌에서 '한숨 쉬다', '탄식하다', 신음하다'를 의미하며, 또한 '…에 대하여 탄식하다' 또는 '슬퍼하다'라는 의미의 타동사로 사용되었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스테나조는 70인역본에서 약 30회 나오며, 9개의 히브리어 단어들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애통하다'(사 19:8), '한숨 짓다, 탄식하다'(사 24:7; 애 1:8, 애 1:21; 겔 21:6이하), 부상당한 자의 '신음하는 것'(겔 26:15; 렘 51:52), 곰이 '으르렁 거리는 것'(사 59:11), 땅의 '울부짖음'(욥 31:38), '슬퍼하다'(욥 30:25) 등을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스테나조는 신약성경에서 6회 나오며, 다음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a) 막 7:34에서 스테나조는 내적인 감정의 한 표현으로서 '한숨쉬다', '탄식하다'라는 일반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 예수님께서 귀머거리의 귀를 열리게 할 때에 나타낸 탄식어린 기도를 하셨다. 예수님의 탄식은 마술적인 기교의 일부가 아니라 하나의 기도의 서곡이었다. 치유받는 일 자체는 그 말씀에 의한 것이다.||(b) 롬 8:23에서 스테나조는 어떤 것을 갈망하여 '탄식하다'를 나타낸다: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고후 5:2; 고후 5:4에서 마찬가지이다.||(c) 히 13:17에서 스테나조는 "즐거움으로"의 반대어로 나오며, 문맥상 '슬퍼하다'를 의미한다: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목회 사역이 기쁨으로 이루어지고 한숨 짓는 일 없이 행해진다면 가치있는 것이라는 점을 밝혀준다.||(d) 약 5:9에서 스테나조는 '원망하거나 불평한다'를 함축하는 탄식 또는 한숨짓는 것을 나타낸다: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자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믿는 자들이 이 권고대로 행한다면 서로간에 원망섞인 탄식이 있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참조: Walter Bauer; J.Schneider; T.McComiskey).
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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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이 좁은||#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스테노스(Aeschyl., Hdt. 이래)는 '폭이 좁은, 얇은, 가난한'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스테노스는 신약성경에서 3회 나오며, '좁은' 문에 대해 사용되었다.|·마 7: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마 7: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눅 13:24,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좁아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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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쳐넣다, 억지로 채워넣다, 가두다, 억압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스테노코레오(Thuc., Plat.)는 '누르다, 압축하다, 좁다(좁아지다), 제한하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스테노코레오는 70인역본에서 5회 나오며, 외부적 곤란이나 압제와 관련되어 있다.||#3. 신약성경의 용법||스테노코레오는 신약성경에서 3회, 고린도후서에서만 나온다.||(a) 고후 4:8에서 스테노코레오는 정신적으로 압박(제)을 당하는 것을 표현한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바울은 그리스도에게 관련된 열정적인 신앙심에서 자신이 압제를 당하고 있으나 낙망하지 않는다고 한다.||(b) 고후 6:12에서 스테노코레오는 제한되거나 좁아진 것을 나타낸다: "너희가 우리 안에서 좁아진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심정에서 좁아진 것이니라".|너희가 우리 안에서 좁혀지거나 제한되고 있지 않다. '넓은 공간이 우리의 마음에서 너희에게 주어져 있다. 즉 우리가 너희에 대하여 넓은 마음, 큰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너희 심정에서 좁아진 것이니라"는 표현에서 의미하는 것은 너희가 너희 자신의 심정에서 좁아져 있으니 우리를 용납할 여지가 없다. 즉 너희는 너희 마음에 나를 향한 사랑의 장소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바울의 입은 그들을 향하여 열려 있고, 그의 마음도 넓게 열려있었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들 자신의 편협한 마음이 극복되어 자신에 대해서도 동등하게 열려지기를 바라고 있다.|(참조: J.H.Thayer; Walter Bauer; G.Bertram).
곤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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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궁 straits, 고통 distress, 고난 affliction, 곤란 difficulty.||#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스테노코리아(Thuc. 이래)는 스테노스($4728: 좁은)와 코리아(장소)의 합성어이며 '좁은 장소, 즉 내적, 외적의 곤경에 의해 압박'을 받는 것을 표현한다. 따라서 비유적으로 '비참한 재난, 극한 고생'을 나타낸다.||#2. 70인역본의 용법||스테노코리아는 70인역본에서 14회 나오며, 마촘(포위공격, 포위된, 신 28:53, 신 28:55, 신 28:57)과 추카(고통, 압박, 사 8:22; 사 30:6)의 역어로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스테노코리아는 신약성경에서 4회 바울서신에만 나온다. 롬 2:9에서 스테노코리아는 하나님의 진노를 나타낸다. 이것은 세상과 다음 세상에 있어서 심한 환난을 묘사한다: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게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며".|롬 8:35에서 믿는 자들이 환난에서 제외되지 않으나 이러한 것이 신자들을 하나님으로부터 끊지 못할 것임을 보여준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고후 6:4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에게 관련된 열정적인 경건심에서 자신이 압제를 당하고 있으나 낙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한다: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곤난과".|고후 12:10에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기쁘게 받는 '고난'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참조: Walter Bauer; R.Schippers; G.Bertram).
굳게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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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한, 견고한.||#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스테레오스(Homer 이래)는 기본어이며, '굳은, 단단한, 견고한, 강한, 확고한, 진실한, 완고한'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스테레오스는 신약성경에서 4회(히 5:12; 히 5:14; 딤후 2:19; 벧전 5:9) 나온다.||(a) 은유적 표현 "단단한 식물"이 나오는 히 5:12; 히 5:14에서 스테레오스는 매우 특별한 관계에서 사용되었기 때문에 성경의 그 밖의 다른 곳에서 관련성 있는 용법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여기서 음식은 '단단한' 것으로, 아이들에게 적합한 보다 소화하기 쉬운 유동식과 대조된다. 이것은 소화하기가 비교적 쉽지 않은 성인들의 음식물을 가리킨다. 이러한 비유적 표현은 스토아 학파의 지혜의 요소를 포함하는 헬라파 유대교의 학구적 전통에 기초한다. 그리스도교 공동체에서 자양물의 근원은 모든 연령의 사람들에게 기본적으로 동일한 것, 즉 계시인 것이다. 그러나 히 6:1에서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의 기초적인 교리들을 열거할 때 단단한 식물은 완전한 그리스도교 지식을 뜻하며, 그 핵심에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하나님의 우편으로 높임 받으심이 놓여 있다.||(b) 딤후 2:19은 부활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소망을 영성화한 의미로 변질시키거나 전개하는 영지주의자들과 비교하여 믿음의 확실한 기초석을 언급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하나님 자신이 견고한 터인즉, 그가 그것을 주신다. 테멜리오스는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의 많은 은유에서 페트라($4073: 바위, 반석)와 리도스($3037: 돌)에 상응한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께서 바위이시듯 여기에서도 하나님은 기초석이시다. 또 이 기초석은 하나님에 의해 놓여진다. 하나의 속성으로서 스테레오스는 불가결하게 하나님께 속한다. 그것은 아굴라 역본에서 하나님을 나타내는 용어이다. 따라서 우리는 구약성경에서 스테레오스 및 스테레오마와 결합되어 있는 모든 연합을 소유한다. 세상과 믿음의 공동체가 하나님에 의하여 선다(에스테켄). 그는 한결 같으시며, 그는 한결같게 하시며, 그는 참된 순결과 준비를 요구하신다(딤후 2:20; 딤후 2:21).|기초석에 관한 말씀은 첫째로 교회나 교리 체계가 아닌 하나님이 알고 계신 믿음의 공동체의 개개인 구성원을 향한다. 그러므로 기초석이 가리키는 것은 한결같음과 신실함이다. 하나님은 이 한결같으심과 신실하심으로 그의 공동체와 공동체에 속한 개인들을 날마다 새로이 부르시며 예수 그리스도께,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신 주님께 그들을 확고히 붙들어 매신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믿음의 견고한 터가 되신다.||(c) 벧전 5:9의 훈계에서 스테레오스가 인간과 관련하여 사용된 예를 볼 수 있다: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믿음에 굳게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믿음 안에서 확고부동하여 마귀를 물리쳐야 한다. 테 피스테이("믿음을")는 관계의 여격이나 원인의 여격(롬 4:20)으로 취할 수 있다. 피스티스($4102)는 주된 용어이고 스테레오이는 삭제하더라도 본질적인 의미의 변경을 가져오지 않는다. 스테레오이는 저항하라는 훈계를 단순히 강조하는 구실을 할 뿐이다. 고후 1:24의 "이는 너희가 믿음에 섰음이라"를 참조하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Bertram).
굳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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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게하다, 견고하게 하다, 강하게 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스테레오오(Xen. 이래)는 스테레오스($4731: 굳은, 견고한, 단단한)에서 유래했으며, '굳게 하다, 견고하게 하다, 확고하게 하다, 강하게 하다, 엄격하게 하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스테레오오는 신약성경에서 사도행전에서 3회 사용되었다(행 3:7; 행 3:16; 행 16:5).||(a) 행 3:7과 행 3:16은 유사 의료 행위 과정을 서술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스테레오오는 의학 용어가 아니다. 이 단어는 구약성경에 비추어 해석해야만 한다. 이 용어가 구약성경에서 창조와 관련되어 있으므로 신약성경의 치료의 기사는 창조 혹은 새로운 창조의 과정을 나타낸다. 즉 앉은뱅이의 발과 발목이 튼튼해졌다. 행 3:15에 따르면 사도들이 그 이름 가운데 행하는데, 그것은 바로 "생명의 주"이다.||(b) 행 16:5의 말씀 "믿음이 [굳어지고] 수가 더하니라"(이 형태는 MSE가 지지함)는 교회의 내적 성장과 외적 성장을 가리키며, 행 2:41 및 기타 구절들과 마찬가지로 내용상 벧전 5:9 및 골 2:5의 말씀과 일치하는 결론 문구가 된다. "믿음"의 내적 강화에 대한 강조는 하나님에 대한 신약성경의 개념과 실제적으로 일치한다(Bertram).|(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Bertram).
굳은 것
sterevwma
경고한 것, 확고한 것, 토대.||#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스테레오마(Aristot. 이래)는 스테레오오($4732)에서 유래했으며,||(a) '굳은 것, 견고해진 것, 확고한 것, 고체',|(b) '근거, 토대'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스테레오마는 70인역본에서 약 30회 나오며, 주로 히브리어 라키아(7549: 넓은 장소나 공간, 창공)의 역어로 사용되었다(창 1:6 이하; 겔 1:22 이하). 이 단어는 시 18:2에서 셀라(5553: 험한 바위, 반석)의 역어로 '토대나 지지(의지)물'을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스테레오마는 신약성경에서 골 2:5에 한번 나온다. 이 구절에 바울은 서언적인 훈계나 칭찬을 함께 섞는다: "이는 내가 육신으로는 떠나 있으나 심령으로는 너희와 함께 있어 너희의 규모와 그리스도를 믿는 너희 믿음의 굳은 것을 기쁘게 봄이라". 여기에 언급은 질서정연(규모)과 견고함의 개념으로 더욱 정확하게 규정된 믿음에 관한 것이다. 탁시스($5010)는 대열로 정렬된 군단을 상기시킨다. 스테레나마는 굳은 것의 견고성에 대해 사용되는데, 스스로 에워싼 몸체로 인해, 성채나 보류라는 의미에서 군사적 은유를 암시해준다.|바울은 사람들, 곧 고정된 질서(규율)에서 견고해진 공동체의 믿음의 태도에 대해 말하고 있다. 골 1:23과 골 2:7은 다른 말로 동일한 것을 암시한다. 선행하는 "너희"와 그 다음 되풀이 되는 "너희"에도 불구하고 속격 테스 피스테오스는 규모와 확고함이라는 두 개념과 연결되며, 믿음에 그 내용을 부여해 준다.|바울은 시편 기자가 말한 의인에게 요구되는 상황을 골로새 교회에게 적용하고 있다. 그들은 원수들에게 압박 받으나, 믿음과 확신을 강하게 붙잡음으로 굳게 설 수 있다. 신약성경에서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은 공동체의 견고함의 참된 기초이다. 트라키스와 스테레오마가 피스티스의 개념과 연관되어 나오는 경우는 신약성경에서 이곳이 유일하다. 그들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의 기초를 다시금 다지지만, 제도적인 사상이 그들 안에서 가능한 접촉점을 발견할 정도로까지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의 자유를 제한하도록 위협했다. 그러나 골 2:5은 그리스도 안에 굳게 기초하여 공동체에게 세상에서의 투쟁에서 설 수 있도록 필요한 힘을 주는 믿음을 염두에 두고 있다(Bertram).|(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Bertram).
스데바나
Stefana'"
스데바나 Stephanas.||스테파나스는 '왕관을 쓴'을 의미하며, 한글개역성경에서 스데바나로 음역했다.|그는 고린도 사람이며, 그의 가정은 바울에게 세례(침례)를 받은 소수의 가정들 중의 하나이다(고전 1:16). 바울은 자기가 세례(침례) 준 것을 그대로 시인하였으나 그로 인해 고린도 교회에 바울에 속하는 파당이 생겨나서 자기들이 결정적으로 우월하다는 식의 분쟁이 없게 하고자 하는 맘으로 이들 스데바나 집 사람들 이외의 소수자들에게만 세례(침례)를 준 것을 감사한다고 편지를 써 보냈다(고전 1:10-15).|스데바나 집 사람들은 아가야 지방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최초의 기독교인들이었다(롬 16:15). 아가야의 '첫 열매'라는 문구는 아데네 출신을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 되어왔다(행 17:34). 그러나 이 문구는 그 지방의 최초의 그리스도인 가정, 그곳에 있는 교회의 열심 있는 사람들을 나타낼 수도 있다. 바울은 스데바나 집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일하고 봉사한 사실을 들어 칭찬하였고 더 나아가서는 고린도 교회가 이같이 사도바울을 도와 여러 교회에서 동역자로 일하는 이들을 알아 주고 그들에게 복종할 것을 권면 하였다. 고전 16:15의 "성도 섬기기로 작정하다"라는 말은 스데바나 집 사람들이 그들의 집을 예배 처소로서와 및 성도간의 우애와 접대 장소로서 제공하였으리라는 사실도 포함하였을 것이다.|스데바나는 브드나도와 아가이고와 함께 에베소를 방문하여 바울을 기쁘게 하였고, 바울은 몹시 기뻐 하였는데 그 마음이 시원하다고 했고, 고린도 교회에 편지 할 때는 이러한 자들을 알아 줄 것을 부탁했다(고전 16:17-18). 분명히 그들은 고린도인들의 편지를 가져왔고 고린도전서를 가지고 돌아갔다.|이 이름은 애칭형이다. 행 16:27에 관한 두 개의 후기 사본들은 스데바나를 빌립보의 간수와 동일시 한다.|(참조: NIV; PEB; WEB).
스테파노스
stevfano"
왕관, 화관.||#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스테파노스(Homer 이래)는 스테포(%695: 둘러싸다)에서 유래했으며, '면류관, 왕관'을 의미한다.|스테파노스는 운동 경기들에서 승리한 사람이 쓰는 월계관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었으며, '승리, 축제, 예배, 공무나 명예, 왕권이나 왕의 방문'을 의미한 용어로 사용되었다.|스테파노스, 즉 면류관은 '기쁨, 슬픔, 탁월'을 표현하며, 밀폐된 면류관은 마술에 사용되기도 하였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스테파노스는 약 50회 나오며, 거의 항상 히브리어 아타라(관, 왕관, 화관)의 역어로 사용되었다.|이 단어는 '왕관'(삼하 12:20 등), 여왕의 관(렘 13:18), 귀족이 쓰는 관(에 8:15), 혹은 신랑이 쓰는 관(아 3:11)을 가리킨다. 관은 금과 은으로 만들기도 하고(시 21:3; 슥 6:11) 꽃으로 만들기도 했다(겔 23:42).|이 단어의 가장 중요한 용법은 비유적 용법이며, 비유적으로 사용될 때, 영예와 권위를 나타낸다. 잠언에서 흰 머리카락(잠 16:31), 손자(잠 17:6), 훌륭한 아내(잠 12:4), 지혜(잠 4:9; 잠 14:24)는 관(면류관)으로 간주된다. 마지막 비유로, 사 28:5에서 여호와께서 남은 자의 관(면류관)이 되실 것이다! 그는 남은 자를 축복하실 것이며 그들의 자랑이 되실 것이다(겔 16:12).|이러한 은유는 면류관이 옮기울 것이라는 것과 같이 부정적인 면이 강조될 때도 사용된다. 슥 6:11에서 선지자는 바벨론 유수에서 귀환하는 남은 자들이 가져온 금과 은을 취하여 관(히브리어는 복수형임, 아마도 최상급, 즉 최종적인 관을 나타내는 것같음)을 만들고 그것을 제사장 여호수아 머리에 씌우라는 명령을 받는다. 이 관은 성전에 보관해야 한다(슥 6:14). 이와 같은 관 씌움은 메시야에 대한 상징이다. 여호수아는 그 왕관을 받음으로써,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제사장의 직무와 왕의 직무가 결합됨을 보여준다. 그리스도만이 그 관을 쓸 수 있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스테파노스는 신약성경에서 18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스테파노스는 '가시 면류관'에 대해 사용되었다.|마 27:29(병행구 막 15:17; 요 19:2; 요 19:5), "가시 면류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가로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찌어다 하며". 가시투성이의 초목으로 만든 이 면류관은 군인들에게 있어서 거짓 왕권을 의미했으며, 조롱하기 위한 모조품이었으며, 상처를 내어 고통을 일으키고 예수님을 경멸하려고 고안한 것이었다. 그러나 복음서 기자들에게 있어서 그것은 또한 예수님께서 곧 죽음을 이기실 것이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으므로, 영적 왕국을 다스리실 그리스도의 참된 왕권에 대한 증거가 되었다. 요한에 의하면 가시관을 쓴 자가 참 승리자였다(참조: 요 16:33; 요 19:30; 요 20:28).||(b) 스테파노스에 대한 바울의 비유적 용법.|필로와 마찬가지로 바울은 경기에서 승리자에게 주어지는 썩을 면류관의 비유를 사용하며, 그리스도인의 삶을 운동 경기에 비유한다. 비유의 초점은 목표를 위하여 힘쓰는 자기 절제이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고전 9:25).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경기장에서 벌어지는 경주에 자주 비유한다. 고전 9:24-26 상반절 뿐만 아니라 갈 2:2; 갈 5:7; 빌 2:16; 빌 3:12-14도 참고하라.|형용사 아파다르토스로 수식되는 썩지 아니할 면류관은 스테파노스 테스 조에스(생명의 면류관)로서, 경기에서 승리자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종말론적 선물이다. 여기서 비유 그 자체에 대한 설명은 없다. 이 비유는 딤후 4:8에서 바울 자신의 삶과 관련하여 다시 사용된다. 바울은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삶을 회고하면서(딤전 4:6)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딤전 4:7)고 하였다. 따라서 그에게는 호 테스 디카오쉬네스 스테파노스("의의 면류관"), 즉 "그 날에" 궁극적인 의롭다하심을 가져 올 면류관이 주어질 것이다(참조: 고전 4:1-5). 이 면류관은 호 디카이오스 크리테스("의로우신 재판장")이신 주님께서 주실 것이며, 바울에게 뿐만 아니라 모든 토이스 헤가페코시 텐 에피파네이안 아우투("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자")에게 주실 것이다(딤전 4:8). 따라서 이 면류관을 받는 전제 조건은 그리스도에 대한 충성인데, 이 충성은 주의 나타나심에 근거하며,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여 완전히 충성을 바치는 그러한 충성이다.|-이 진술은 약 1:12 및 계 2:10과 유사하다. 딤후 2:5은 일반적인 규칙을 명확히 표명한다. 그리고 다른 비유들도 사용된다. 딤후 2:3과 딤후 2:4의 군사, 딤후 2:5의 경기장에서 경기하는 자(아드레오), 딤후 2:6의 농부의 비유이다. 경기자에 대해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면류관을 얻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승리의 면류관을 얻으려면 법대로 경기해야 한다(노미모스 아드레인). 노미모스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예수 그리스도와(딤후 2:8) 그의 사도(딤후 2:1 이하)로부터 명백히 알 수 있다.||면류관 비유는 바울에 의해 또 다른 방식에서 사용된다. 그는 공동체를 그가 주님 앞에 설 때 쓰는 면류관이라 부른다: 빌 4:1,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살전 2:19-20, "19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20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 여기에서 바울은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수사 의문문 형식을 취한다음 확언의 가르(**)로 직접적으로 답변을 되풀이함으로써 생동감 있는 문체를 구사한다. 본문은 잠 12:4; 잠 17:6과 같은 개념을 채용한다. 본문 말씀은 신학적으로 중요하다. 바울은 그와 모든 신자들이 궁극적으로는 주님에 의해 구원 받는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심판에서 그의 삶의 열매가 측정되고 판단 받을 것이다(고전 15:10; 고전 3:11-15; 고전 4:1-5; 고전 5:5; 고전 9:5-18; 고후 5:10 등). 바울은 단지 개인적으로 구원 받기만을 원하지 않는다. 그의 삶의 결과가 시험 받아 견디어내므로 그것에 대한 보상과 칭찬을 원한다. 그의 삶의 결과(공력)들이 견디어 낸다는 사실은 파루시아의 날에 그의 면류관이요 기쁨이요 소망이요 영광인 교회들로 나타난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것은 면류관과 기쁨의 결합이다. 면류관은 기쁨을 표현한다. 그리고 또한 면류관과 영광의 결합도 주목할 만하다. 면류관은 영광의 표시요 외형이다. 소망은 면류관을 바라는 것이다. 이 면류관으로 바울은 하나님으로부터 그의 영광과 칭찬을 받으므로, 영광스러운 면류관인 것이다.||(c) 승리와 생명의 면류관.|계 2:10에서 핍박과 고난의 위협을 받는 서머나 교회는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는 부름을 받는다. 이 말씀은 약 1:12에 나오는 축복의 말씀과 일치한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또 딤후 4:8도 유사하다. 고난 당하는 자들, 어떤 경우에는 순교까지도 당할지도 모르는 자들에게 주님이 직접 씌워주실 승리자의 면류관을 약속하는 이 세 말씀 사이의 내면적 관계는 권고의 공통적인 근거를 지시한다.|안 에핑겔리라토("약속된)라는 언급이 포함된 약 1:12은 주님의 말씀으로 여겨질 수 있는 확실한 약속을 나타낸다. "생명의 면류관"이 뜻하는 것은, 만일 그 면류관이 승리의 보상이라면 그것이 전달하는 내용물은 생명이라는 것이다. 이 말씀과 유사한 것으로 생명나무의 비유가 있다(계 2:7). 우리는 면류관이 이 나무로 만들어진다고 상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생명은 그것으로 만든 관을 쓴 자로부터 사망이 결코 빼앗아갈 수 없는 생명이다. 이 면류관은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에게 충성하는 자들에게 주시는(도소, 계 2:10) 주님의 약속이자 선물이다(약 1:12; 딤후 4:8). 이 충성은 공격에 저항하고 고난을 견디는 데서 나타난다.|계 3:7 이하는 빌라델비아 교회가 주님의 말씀과 인격(이름)을 굳게 붙들었다고(계 3:8 하반절) 증언한다. 그리하여 그 교회는 임박한 공격에 직면하여 "내가 또한 너를 지키리라"(계 3:10)는 약속을 받으며, 아울러 주께서 속히 임할 것이므로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는 권면을 받는다(계 3:11). 승리의 면류관은 약속된 선물이다. 주님의 말씀을 굳게 지킴으로써(계 3:8; 계 3:10) 그것은 주님 안에 약속된 이 선물을 굳게 붙잡을 것이다. 그 표현 형식은 유대 지혜 문학의 형식을 취한다.|벧전 5:4에 따르면 생명의 면류관은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 즉 불멸성이 그 빛나는 성질의 구성 요소인 영원히 썩지 않는 잎사귀로 엮은 것이다. 생명과 빛은 어둠과 사망처럼 함께 속하는 것이다. 생명의 면류관은 빛의 면류관이고, 따라서 머리 둘레에 빛나는 후광으로 나타난다.|벧전 5:4은 공동체의 지도자들에게 주어진 것이다. 양떼를 돌보는 목자로써 그들은 본이 되어야 하는데, 그리하면 목자장이 곧 나타나실 때 승리와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것이다. 벧전 5:4은 바울의 진술들과 계 2:10에 속하는 부류의 말씀 중간에 위치한다.||(d) 하나님의 영예의 상징으로서의 면류관.|요한계시록에서 기자는 24보좌에 앉아 있는 24 장로들을 본다: "또 보좌에 둘려 이십 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 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 면류관을 쓰고 앉았더라"(계 4:4). 여기서 "금 면류관"은 빛나는 형태의 면류관이다. 그들은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그 앞에 면류관을 던진다(계 4:10). 또 하늘에 있는 여자가 빛나는 광휘 가운데 나타난다: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 아래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 두 별의 면류관을 썼더라"(계 12:1).|이 여자에게 대적하여 적대적인 세력을 상징하는 큰 용이 일어나는데, 머리가 일곱이요 "그 머리에 일곱 면류관이" 있다(계 12:3). 용과 마찬가지로, 바다에서, 즉 그가 지배하고 관할하는 권세를 상징하는 바다에서 나오는(계 13:1) 그 짐승은 계 6:2에서 이기는 자로 불리운다: "면류관을 받고 나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계 6:2). 계 9:7에서 황충들은 면류관을 쓰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여기서 면류관의 이미지는 다소 약화되며, 황충들의 재앙을 묘사하는 모든 곳에서처럼 직유법이다: "그 머리에 금같은 면류관 비슷한 것을 썼으며"(계 9:7).|마지막으로 인자가 또한 구름 위에 앉았는데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다"(계 14:14). 그는 "그 머리에 많은 면류관 있는" 백마 탄 자로 나온다(계 19:12). 이 많은 면류관은 그를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로" 불리우는 자로 구별시켜 준다(계 19:16).
스데반
Stevfano"
스데반 Stephen(인)||스데반은 '왕관, 면류관'을 의미하며, 스테파노스란 이름은 신약성경에서 사도행전에 7회 나온다(행 6:5; 행 6:8; 행 6:9; 행 7:59; 행 8:2; 행 11:19; 행 22:20).|스데반은 아마도 예루살렘의 헬라파 유대인이었던 것 같다. 그는 그의 열심("믿음과 능력", 행 6:5)으로 인해 첫번째 그리스도교 순교자가 되었다. 그는 대개 예루살렘 교회의 최초의 집사들로 생각되는 "일곱"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들은 사도들에게 그들의 직무 중에서 영적인 활동을 위한 더 많은 시간을 제공하기 위해, 커가는 예루살렘의 그리스도교 공동체 중의 가난한 자들에게 음식과 다른 필요들을 분배하도록 임명되었다. 그러나 그 "일곱명"은 분명히 "식사 시중을 드는 것" 뿐만 아니라 스데반이 회당에서 행했던 것처럼 가르치고 전도하는 것도 기대되었다. 방탕한 유대교도 집단 내의 헬라파 무리들과 스데반의 지혜와 성별된 영을 시기하는 다른 사람들은 그가 모세에 대하여 모독적으로 말하고 있다는 죄목을 꾸며내고(창 6:9 이하), 유대의 장로들을 선동하여 그를 공회 앞에 끌려 나오도록 했다. 거기에서 거짓 증인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의 거룩한 곳을 헐 것이며 "모세가 전한 규례를 고치겠다"고 말하였다고 그를 고소하였다. 스데반의 대적자들은 새로운 그리스도교 시대가 이미 이루어 내었던 것을 정확하게 표현하였다. 그는 그의 믿음에 대해 변명하지 않고 성경의 해석에 기초하여 자신을 변호하였다(행 7:2-53).|그는 다음 네 가지를 지적하였다.|(1) 하나님께서는 가장 위대한 진리를 예루살렘 성전에서가 아니라 사실 팔레스타인의 바깥에서 계시하셨다.|(2) 이스라엘은 항상 하나님에 대하여 반역하였고 그의 대리자들을 거절하였다.|(3) 모세가 오시리라 예언한 선지자인 그 "의인"께서 배반 당하여 죽임을 당한 것은 이것과 일치한다.|(4) 율법은 거룩하나 그들은 그것을 지키지 않았다. 산헤드린을 향한 그의 유명한 진술은 행 7:2-53에 기록되어 있다.|적대자들을 향한 그의 질책은 그들의 마음을 찔렀다(행 7:54). 그들은 스데반에게 이를 갈았고, 그가 하나님의 곁에 서 계신 예수님의 환상에 대해 말할 때 귀를 막았다. 그들에게 이것은 신에 대한 모독이었으며, 그들의 율법에 의하면 죽음의 형벌을 받을 만한 것이었다. 로마의 허락 없이 한 사람을 처형하는 것은 그들에게 불법이었지만, 폭도들은 스데반을 붙잡아 동쪽 성벽에 있는 지금의 스데반의 문 근처의 성벽 부근에서 돌로 쳐 죽였다. 살인자들을 위하여 용서를 빌면서 스데반은 죽었고, 경건한 사람들이 그를 "크게 애도하며" 장사하였다. 스데반을 돌로 친 사람들의 옷은 다소의 사울이라 하는 젊은 유대인의 발 앞에 놓여졌고 사울은 "그의 죽음에 동의하고" 있었다(행 7:58-8:2).|스데반의 가르침은 유대교와 기독교의 차이점을 명백하게 보여준다. 그것으로 인해 단지 유대교의 한 분파로 여겨지던 기독교의 초기 단계가 끝나고, 특유의 기독교 교회가 출현하게 되었다. 스데반의 순교는 그리스도인들을 사마리아(행 8:1)와 아마도 멀리 다메섹까지(행 9:1; 행 9:2) 흩어지게 한 박해를 촉발시켰고, 그리하여 기독교 신앙의 이방 세계로의 확장을 위한 토대를 쌓았다. 주로 이방인을 향한 전도에 책임이 있는 사도 바울은 스데반의 순교와 밀접하게 연결된 기독교 개종을 경험하였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HB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