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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 open.||#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아노이고(Homer이래)는 아나($303)와 오이고(%40:열다)나 오이그뉘미(%41:열다)애서 유래했으며, '열다, 장애물을 제거하다'를 의미한다. 이 단어는 상징적으로 '대양(high seas)에 이르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아노이고는 70인역본에서 약 170회 나오며, 거의 대부분 히브리어 파타흐(열다), 그 다음으로 파카흐(열다, 10회), 파차(자물쇠를 '열다', 6회)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아노이고는 70인역본에서 '눈이나 귀를 여는 것'(창 21:19; 사 35:5; 사 37:17), 용기, 무덤(출 21:33; 삿 4:19; 시 5:9), 창문이나 문(삼상 3:15; 왕하 13:17; 사 22:22; 사 26:2), 책(느 8:5)를 여는 것, 태(창 29:31)를 여는 것 등에 대해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아노이고는 신약성경에서 77회, 요한의 기록에 가장 많이 나오며(계시록에 27회, 요한복음에 11회), 그 다음으로 누가의 기록(사도행전에 16회, 누가복음에 7회), 마태복음(11회), 바울서신(5회) 순으로 나온다. 이 단어는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마태복음. 마 2:11에서 동방박사들이 보배함을 열어 예물을 예수님께 드렸다: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의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마 5:2에서 예수님께서는 산에 올라가 앉으사 입을 열어 가르치셨다. 마 13:35에서도 유사한 표현이 나온다. 이것은 셈어의 관용법으로서 '말하기 시작한다'는 의미이다.|예수님께서 소경의 눈을 여셨고(마 9:30; 마 20;33), 예수님께서 세례(침례)를 받으실 때 하늘이 열렸다(마 3:16). 하늘을 여신 분은 하나님이시다.|하나님의 나라는 두드리는 자에게 열릴 것이다(마 7:7, 참조: 마 7:13이하). 그러나 적절한 때에 오지 않는 자들에게는 그 나라가 열리지 않을 것이다(마 25:11). 여기에서 이 말씀을 하시는 분은 열고 닫을 수 있는 하나님의 권위를 소유하신 종말적 주님이시다.|마 27:52은 예수님께서 운명하시는 순간에 무덤이 열리고 죽은 자들이 일어난 사건을 언급한다. 마 17;27에서 물고기 입을 열어 얻는 돈에 관하여 언급한다.||(b) 누가복음의 용법|누가복음에서 아노이고는 특별히 때(time)와 관련되어 있다.|눅 1:64에서 스가랴의 입이 열린 것도 적절한 때이다. 서판에 아이의 이름을 요한이라고 기록했을 때 입이 열렸다. 눅 3:21에서 하늘이 열린 것도 예수님께서 세례(침례) 받으신 직후였다(참조: 마 3:16).|눅 11:9이하에서 예수님은 문을 주관하는 분으로서 두드리는 자에게 열릴 것을 약속하신다.|눅 12:36에서는 종은 주인이 문을 두드릴 때 문을 열어 주기 위해 항상 준비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눅 13:25에서는 주인은 너무 늦게 문을 닫은 후에 와서 "문을 두드리며 열어 주소서" 부르짖어도 열어주시지 않는다. 이러한 누가복음의 구절들은 여는 때와 열 수 있는 권한이 하나님과 주님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c) 사도행전의 용법.|① 행 8:35에서 '입을 연다'는 관용구를 사용한다: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여기서 '입을 연다'는 말은 '말하기 시작한다'는 의미이다.|행 10:34; 행 18:14에서도 같은 의미를 지닌다.|② 행 8:32에서는 사 53:7을 인용하여 예수님께 적용한다: "읽는 성경 귀절은 이것이니 일렀으되 저가 사지로 가는 양과 같이 끌리었고 털 깎는 자 앞에 있는 어린 양의 잠잠함과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빌립은 이 말씀을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기독론적으로 해석해 주었다.|③ 행 9:8에서 바울은 하늘의 빛을 본 후 눈을 떴으나 볼 수 없었다: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행 9:40에서 베드로의 기도로 살아난 다비다는 눈을 떠 베드로를 보았다: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어 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가로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④ 행 26:18에서 누가는 이방인에 대한 바울의 선교 임무를 언급하면서 영적으로 은유를 사용하였다: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을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이 말씀은 종의 선교(사 42:6, 사 42:17)를 우리에게 상기시켜 준다.|⑤ 행 5:19; 행 12:10; 행 16:26이하에서 문은 신적인 섭리에 의해 열린 감옥문이었다. 이는 사도들을 투옥 시키거나(행 5:23), 의심 가운데서 교회 성도에 의해 잠겨져 있는(행 12:14; 행 12:16) 인간에 의한 닫힌 문과는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감옥의 문을 여시는 것처럼 "믿음의 문"도 여신다.|바울은 안디옥 교회에서 다음과 같은 말로써 자신의 첫번째 선교 여행을 요약하고 있다: "하나님이 함께 행하신 모든 일과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것을 고하고"(행 14:27).||(d) 요한복음의 용법.|①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장님의 눈을 여신 것을 언급한다. 이와 같은 일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다(요 9:10; 요 9:14; 요 9:17; 요 9:21; 요 9:26; 요 9:30; 요 9:32; 요 10:21).|② 예수님은 목자이시며,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어준다: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요 10:3).|③ 요 1:51에서 예수님은 나다나엘에게 하늘문이 열리는 것을 보리라고 약속했다: "또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하늘 문을 여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e) 요한계시록의 용법.|① 계 3:20에서 그리스도께 대하여 문을 여는 것에 대해 언급한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이 글은 미온적 신앙을 가진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낸 편지이다. 이처럼 이 구절 자체가 교회 전체에 보내진 글이지만, 이 구절의 단수 주어는 개개인의 응답을 촉구하고 있다. 이 구절의 저변에 깔려 있는 사상은 잔치로 묘사되는 하나님의 나라의 사상이다(참조: 사 25:6이하; 마 8:11; 마 22:1-마 22:14); 막 13:29; 막 14:25; 눅 12:34이하; 눅 22:28 이하).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먹고(참조: 요 6:35; 요 6:53 이하), 또 예수님과 함께 거한다(참조: 요 14:2 이하; 요 14:23)는 약속의 말씀도 있다.|② 영광 중에 계시는 주님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구원의 길을 열 수 있는, 하나님께 속한 권세를 가지고 계신다: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 이가 가라사대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계 3:7; 계 3:8). 여기서 열린 문의 은유적 표현은 선교 언어의 전문 용어가 아니다. 다윗의 열쇠라는 말은 엘리아김에게 주어진 약속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주는데, 그는 열면 닫을 자가 없고 닫으면 열 자가 없는 권한을 부여 받았던 것이다(참조: 사 22:22).|이 말은 계 1:18의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라는 말씀의 뜻과 같이 하나님과 영생에로 나아가는 길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참조: 마 16:19). 죽임 당한 어린 양, 곧 보좌에 앉으신 영화로운 주님만이 홀로 일곱 인(印)이 있는 두루마리를 열기에 합당하신 분이시다. 그 두루마리에는, 수많은 종말적 사건들과 아울러 마지막 날들의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이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계 5:2-계 5:9). 여기에서 지상에 계실 때의 예수님이 하나님과 동등한 분으로서 묘사되었다.|③ 하나님은 하늘(계 19;11)과 성전(계 11:19)과 거룩한 하늘의 장막(계 15:5)을 여시는 분이시다. 한 천사가 무저갱을 여는 것도 하나님의 권위에 의해서이다(계 9:2). 영광 중에 계시는 주님께서는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을 열 수 있는, 하나님께 속한 권위를 가지고 계신다.||(f) 바울 서신의 용법.|① 롬 3:13(시 5:9의 인용구)에서 아노이고는 열린 무덤을 묘사한다. 바울은 거기에 있는 일련의 인용구들에서 유대인들이 율법을 가졌지만 간악한 죄인들이라는 사실을 설명하면서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라고 말한다.|② 고전 6:11에서 바울은 "고린도인이여 너희를 향하여 우리의 입이 열리고…"라고 기록한다. 바레트(C.K.Barrett)는 이 구절을 '내가 나의 혀를 나와 함께 달려가게 해 왔다' 즉 '내가 완전히 자유로이 너희에게 말해 왔다'라고 해석했다.|바로 뒤의 후반절은 바울이 고린도인들에게 아무런 비밀도 감추지 아니하였음을 뜻한다. 그의 마음 속에는 그들을 수용할 수 있는 여지가 있을 뿐만 아니라 그는 적극적으로 그들을 갈망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예들과는 상관없이 여기에서 여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인 것이다.|③ 고전 16:9에서 바울을 위하여 문을 여시는 하나님에 대한 묘사는 열매가 있는 효과적 선교 사역의 가능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내게 광대하고 공효를 이루는 문이 열리고 대적하는 자가 많음이니라".|고후 2:12; 골 4:3에서도 동일한 것을 나타낸다.|(참조: Walter Bauer; J.H.Thayer; C.H.Peisker; C.Brow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