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화과 나무
sukh'
무화과 나무.||#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쉬케(Homer이래)는 '무화과 나무'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쉬케는 70인역본에서 약 26회 나오며, 히브리어 테에나(무화과 나무, 무화과)의 역어로 사용되어 무화과 나무를 의미한다(창 37장; 민 13:24). 무화과 나무(열매)는 약속의 땅의 특색으로 묘사되었다(신 8:8).|쉬케는 비유적(삿 9:10), 상징적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 단어는 특히 메시야 시대의 안락과 번영(왕상 4:25)을 나타낸다(미 4:4; 슥 3:10).|이 단어는 또한 본질적으로 바람직한 것(호 9:10), 갱생(욜 2:22), 시드는 것(사 34:4), 포획하기 손쉬운 것(나 3:12), 낭패된 소망(합 3;17)을 나타낸다.|다른 나무들과 수확물들의 멸종시킴 같이 무화과의 파괴는 심판을 묘사한다(호 2:12; 사 34:4; 렘 8:13; 욜 1:2-욜 1:12). 호 9:10(참조: 렘 24장)에서 이 단어는 국가를 상징하며, 그 외의 경우에는 이 국가가 대개 포도나무로 묘사된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쉬케는 신약성경에서 16회 나오며, 한글개역 성경에서 모두 '무화과 나무'로 번역했다.||(a) 요 1:48; 요 1:50에서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 아래 나다나엘을 보심에 대한 언급은 아마도 문자 그대로의 의미이며, 특별한 중요성을 지니고 있지 않다. 즉 이 기사의 요점은 나다나엘이 무화과나무 아래 있었다는 점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이미 그가 관찰하신 사실, 나다나엘이 무화과나무 아래 있었던 사실에 대한 언급을 통하여 예시하시고 계신 바와 같이 나다나엘에 대한 내적인 지식을 가지고 계셨다는 점이다.|이 단어는 나머지 구절들에서는 비유적이며 상징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b) 눅 13:6; 눅 13:7에서 무화과나무는 많은 혜택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열매를 결실하지 못한 이스라엘을 상징한다. 이 비유에서 주인은 지난 3년(예수님의 사역기?)동안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하였다. 과원지기는 무화과나무에 열매를 맺을 마지막 기회로 일년 더 여유를 주시고 그래도 열매 맺지 못하면 그 무화과 나무를 베어버릴 것을 요청한다. 여유를 준 시간은 이스라엘에게 마지막 심판의 재앙이 유보되어진 시간에 해당하는 것이며, 그래서 이스라엘이 열매를 맺을 최종적 기회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c) 마 21:19-마 21:21; 병행구 막 11:13; 막 11:20-막 11:21에 나오는 무화과나무에 대한 예수님의 저주는 공관복음서에 있어서 그의 심판에 관련된 유일한 기적으로서, 결실을 맺지 못하는 이스라엘에 대한 저주를 상징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유월절 시기에 무화과나무에 먹을 수 있는 무화과를 얻기를 기대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 것인가 하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유월절 시기는 무화과가 아직 익지 않은 상태에 있거나 그 이전의 늦은 무화과가 이미 수확된 상태에 있는 시기이다. 예수님께서 열매를 기대했던 나무는 잎사귀들이 있었다.|마가는 막 11:13에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라고 기록했다. 만일 이 나무에 잎사귀가 없었다면 예수님께서 이 나무에 오시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다른 무화과나무들에는 잎사귀 순이 막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가가 기록한대로 무화과의 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너무 때가 일렀다. 그런데 여기에 한 그루의 무화과나무가 너무나도 유리한 장소에서 자라 벌써 잎사귀들이 가득하고 다른 무화과나무들보다 훨씬 앞서 있었다. 무화과나무는 봄철에 첫 열매를 맺히고 잎사귀가 점차 그 뒤를 따라 나오므로 이 무화과나무의 무성한 잎사귀는 열매가 있을 가망이 컸다. 무화과 열매는 계속 번갈아 맺히므로 일년에 세번 맺힌다. 첫번 열매는 6월에, 두번째는 8월에, 세번째는 12월에 맺히며, 세번째 맺힌 열매들은 봄철에까지 나무에 그대로 매달려 있는 때도 가끔 있었다.|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크게 실망하셨다.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얻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새파란, 설익은 실과조차 얻지 못하셨다. 이것이 "잎사귀 밖에" 의미하는 것이다. 만일 이 나무가 한 개의 작은 설익은 열매를 갖고 있었어도 예수님께서는 이 나무를 마르게 하시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잎사귀가 당당한 이 나무는 텅빈 허식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 나무는 사람들로 하여금 적어도 먹기 알맞은 무화과가 몇개 달려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게 했던 반면 "잎사귀 밖에는" 아무 것도 갖고 있지 못했다.|열매를 맺을 수 있는 위치와 유리한 조건에서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것은 이제 존재 가치가 없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은 그의 생각에서 유리한 위치와 조건을 지니고 있었으나 기대한 결실을 맺지 못한 이스라엘을 암시하고 있다고 본다.|(참조: R.C.H.Lenski);||(d) 마 24:32이하; 막 13:28; 눅 21:29에 언급되어 있는 무화과나무에 대한 비유는 종말에 대한 묵시적인 징표들, 즉 미래의 사건들에 대한 미래의 징표들과 연관되어 있다. 이 구절들에 의하면, 무화과나무의 성장은 다가오는 여름의 표적이며, 그 여름의 절정은 무화과 열매가 수확할 만큼 무르익는 때가 될 것이다. 이 때는 인자께서 택하신 자들을 끌어 모으실 것이며(참조: 막 13:27; 마 24:36이하; 눅 21:34이하) 그리고 나서 회계를 할(참조: 막 13:34-막 13:37; 마 24:36이하; 눅 21:34이하) 때인 것이다.|예수님 사역기에 무화과나무에 대해 언급한 구절들을 연관 지으면 그 경우에 마 24:32이하, 막 13:28, 눅 21:29에서 나오는 무화과나무는, 열매를 찾으나 하나도 찾지 못하게 될 때 불가피하게 저주받은 무화과나무를 연상시키는 이스라엘을 생생하게 묘사하는 것이다.||(e) 약 3:12에서 기대되는 열매를 근거로하여 언행의 일관성을 묘사한다: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뇨 이와 같이 짠 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느니라". 이 말은 마 7:16의 내용을 상기시켜 준다.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를 하는 것은 한 나무가 각기 다른 열매를 맺는 것처럼 극히 부자연스러운 것이다. 식물은 물리적 모순을 결코 허락하지 않는다. 그런데 인간이 매우 극악한 종류의 모순을 범할 수 있을까? 자기를 지옥 세력의 통로를 만든 사람이 수시로 천국 세력의 통로를 만들거나 거룩한 제사(예배)를 드리는 자가 될 수 없다.||(f) 계 6:13에서 하늘에서 떨어지는 별들을 폭풍으로 인하여 무화과나무에서 떨어지는 열매에 비유하고 있다(참조: 사 34:4).|(참조: Walter Bauer; J.A.Motyer; J.H.Thayer; C.H.Hunzinger).